마늘과 전복을 버터에 구운 다음, 당근을 많이 잘라 넣고, 파도 썰어 넣고,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귤도 넣었고 방울토마토와 두부도 넣었다. 그런데 이 국물은 어디서 나왔을까. 내가 물을 부었나? 채수인가? 아무튼 알 수 없는 요리지만 이렇게 먹으면 고추 때문에 매콤하면서 뜨거운 귤이 있어서 뜨거운 달콤함까지 맛볼 수 있다. 당근도 그렇고 토마토, 귤은 뜨겁게 해서 먹어도 아주 맛있다. 버터 덕분에 양념을 넣지 않아도 약간 짭조름한 맛이 있어서 알 수 없는 요리(요리라고 부르기에는 뭐 하지만, 뭐 어때) 전체에서 났다. 이렇게 국물이 있으면 어디에 덜어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흘리게 된다. 하지만 덜어 먹고 나면 또 설거지 거리가 생기니까 그대로 떠먹다가 예상대로 흘렸다. 국물을 닦으려고 보니 휴지가 다 떨어졌다.


어라? 휴지가 벌써 떨어졌다니. 휴지는 묶음으로 사 두는데 소리소문 없이 떨어지도 만다. 나는 예전부터 집에 선물한다고 하면 휴지를 주거나 받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휴지는 안 그런 것 같은데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집에는 비데가 없기 때문에 큰일을 본 다음에는 휴지가 있어야 한다. 딱히 휴지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휴지는 어느 순간 보면 다 소모되고 만다.


쿠팡으로 휴지를 검색했는데 전부 품절이었다. 뭐야? 휴지대란이라도 일어난 건가? 큭큭. 할 수 없이 옷을 입고 슈퍼로 향했다. 대형마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있어서 중형 마트가 있다. 그곳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편의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문 앞에 15명 가까이 모여 있었다. 줄을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피카추 빵 같은 걸 기다리는 건가? 편의점을 지나쳐 슈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다. 북적북적거렸고 시끌시끌했다. 나는 휴지코너에 갔지만 휴지가 하나도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휴지는 지금 다 떨어졌단다. 슈퍼에 몰린 사람들은 전부 휴지를 구입하러 온 사람들이다. 편의점 앞에 모인 사람들 역시 티슈나 휴지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휴지 언제 들어오나요?라고 사람들이 묻고 마트 직원들은 매니저가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매니저가 어딘가에 연락을 하고 와서 큰 소리로 휴지가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맙소사. 나는 그대로 집으로 왔다. 휴지가 없으면 어때 걸레로 대충 닦고 말리면 된다. 집에서는 큰일을 본 후에 휴지가 없어도 샤워기로 씻어내고 드라이기로 잘 말리면 된다. 뭐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그러나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세상의 휴지가 전부 사라졌다. 편의점과 마트, 슈퍼에서도 휴지를 팔지 않았다. 그동안 남아있던 휴지들은 전부 사람들이 사재기를 하거나 다 팔려 나갔다. 이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휴지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휴지를 생산하는 무엇 때문에 그 무엇이 더 이상 없어서 휴지를 생산해 내는 공장들이 전부 가동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충격이었지만 휴지 그까짓 거 흥 했다. 하지만 비데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는 걸레나 수건 같은 것들이 똥이 왕창 묻은 채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으며 건물의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두 손 두 발을 들고 전부 일을 그만뒀다. 공중화장실은 그야말로 악취와 더러움이 혼재되어 있었고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물을 내리면 그대로 변기 속의 물이 드래프트 되어서 위로 솟구쳤다. 그때 물 색은 갈색을 띠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튄 그 물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구역질을 하며 욕을 했다.


고속도로 공중화장실에 휴지가 없으니 급하게 볼일을 보고 난 후 사람들은 양말이나 속옷으로 닦은 다음 휴지통이나 바닥에 그대로 버렸다. 마치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듯. 전역 각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특히 도심지 속에서는 사람들의 분노가 쌓여 서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널려 있던 휴지가 사라지고 난 후 사람들은 하찮은 휴지 때문에 펙트와 편견을 구분하지 못했다. 일단 화가 나면 상대방이 자신보다 좀 작다 싶으면 주먹부터 휘둘렀다. 그러다가 상대방은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서 휘둘렀다.


여객기 한 대가 도심지에 그대로 추락을 했다. 비행기 안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서 배치해 둔 마른 수건을 다 써 버린 한 승객이 다른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난동으로 이어졌다. 난동은 조종석까지 침투해서 칼을 들고 격렬하게 서로 찌르고 피를 흘리고 하는 가운데 피를 많이 흘리던 기장이 그만,,,,, 비행기가 떨어진 도심지 역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치 지옥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국가탄생이래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은 사람들이 짓이겨지고 몸이 터져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수백구였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정신이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옥은 점점 확대되어 갔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휴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휴지가 아닌 사람들의 문제로 서로 칼을 겨누고 쟁탈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요리를 먹다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버리기.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니까 오늘의 선곡은 밴드 에이드 30주년(그래도 거의 10년 전 앨범이다. 2014) Do They Know It’s Christmas? https://youtu.be/-w7jyVHocTk?si=1cQEibmv8S2Pz1Fx


밥 겔도프와 유투의 보노는 예전에도 이때에도 같이 해줬다. 밥 겔도프가 라이브 에이드 Do They Know It’s Christmas? 공연할 때 프로듀스를 했다. 그때 영상 보면 밥 겔도프가 제일 신났다. 밥 겔도프는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의 주연까지 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었던 밥 겔도프는 아주 예쁜 모델 딸이 25살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때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나. 밴드 에이드 첫 앨범과 달리 라이브 에이드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프레디 머큐리, 데이빗 보위, 폴 메카트니가 같이 불렀다. 그 영상을 찾아보자. 마이크 들고 이야기하는 밥 겔도프로부터 시작을 한다. 30년이 지난 후 밥 겔도프와 보노가 서로 끌어안는 장면은 어쩐지 뭉클하다.

https://youtu.be/Gifrd7ljNL4?si=OClOkD1seMTUiUL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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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있는데 저 멀리 유조선이 보인다. 점 같던 유조선이 조금씩 커진다. 13살 딸이 유조선이 점점 이쪽으로 오는 것 같다며 시선을 떼지 않고 보고 있다. 다른 가족은 해안에서 태닝을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자는데 딸은 유조선을 보고 있다. 유조선이 크다며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다. 어쩐지 유조선은 해안으로 오는 것 같다. 점점 커지더니 아파트 몇 백 채를 합쳐 놓은 것처럼 거대한 유조선이 해안으로 올라오며 강렬하게 영화는 시작한다.

이 영화는 아주 영리하다. 테러로 인해 인터넷이 전면 중단된 미국은 와이파이가 끊기면서 하나씩 망가지는 인간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 상상으로 보게 된다. 유조선이 항로 장치가 고장 나서 바닷가로 올라오고 비행기가 추락하고 테슬라의 자동차들이 운전자 없이 몇 십대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부 가고자 하다가 엄청난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은 긴 영화 속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 속에서 휴가를 즐기는 줄리아 로버츠 가족이 점점 두려워하면서 이런 테러 현상으로 인해 망가지는 현대사회를 이야기할 때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 참극을 상상하도록 영화는 끌고 간다. 곧이어 이 장면 뒤에 어떤 일이 터질 것이다,라는 상상을 계속하게 한다. 음산한 음악과 주인공들의 대사, 연기력으로 관객을 홀린다.

영화는 마치 샤말란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초현실적 공포를 느끼게 한다. 특히 사슴 떼가 와서 쳐다볼 때는 그 공포가 확대된다. 이 영화의 테러는 총 들고 와다다닥 하는, 밖에서 안으로 테러를 하는 옛 방식이 아니라 전자 펄스 같은 것으로 중요한 공급원을 끊는다. 즉 전기나 인터넷이나 전화망을 끊어 버려 내부에서 밖에서 퍼지는, 자기네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테러를 한다. 영화에서 이런 방식으로 국가 소멸을 꿰한 영화가 다이하드 4.0이 그랬다.

이 영화에서 테러의 주범이 한국인이라는 말이 영화에서 나와서 읭? 했지만, 영화는 정말 영리하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연기력으로 조져 버리니까 빠져서 보게 된다. 얼마 전 카카오 먹통과 유튜브 먹통 때가 생각난다. 고작 몇 시간이었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영화에 서처럼 며칠만 먹통이 된다고 하면 현대국가는 정말 그대로 피폐해질 것이다. 그나저나 아예 방송국처럼 지어놓고 유튜브로 생방송하고 매일 그 시간에 영상 송출하는 곳들은 유튜브가 먹통 되면 어쩌나. 유튜브 먹통 한 번더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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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가 하루키는 단편 소설 작가라고 불릴 만큼 단편을 너무나 잘 써낸다고. 이 단편도 너무나 좋아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의 장점은 식탁 앞에 서서 식빵을 먹을 때 꺼내 읽어도 읽을 수 있을 정도인데 내용이 좋아서 식탁 앞에 계속 서서 읽게 되는 소설이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조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내용이다. 조카는 한쪽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건 없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스치는 풍경들. 버스 속 이질적으로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과 조카와의 대화. 조카가 치료를 받을 동안 친구의 여자친구를 병문안 갔던 일을 떠올린다. 거기서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에는 잊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시간과 함께 점점 퇴색되어 간다. 어떤 기억은 너무나 어렴풋하여 내 기억이 맞나 싶을 때도 있고 무심하게 스친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도 있다. 그 속에 누군가의 나도 속해있다. 나는 그저 스쳐가는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로 남을지도 모르고 내내 기억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단편의 리뷰를 너무나 잘 적은 작가(라고 하겠다)가 있다. 조선대 국문과 2학년 학생으로 이 단편과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작가 유년의 기억을 토대로 쓴 글이다. 이 리뷰는 2017년에 쓴 글이니까 당시 국문과 2학년이었던 김연우 작가는 지금쯤 좀 더 나은 작가가 되어 있겠지.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은 [인디언을 보았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인디언은 거기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다. 귀가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듣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른이 되면 귀가 있어도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차진우의 수어가, 손동작이 말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건, 말은 말이 하는 것 같은데 수어는 온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점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선과 면으로 둥글게 이루어져 있어서 멀리 돌아가더라도 당신의 세계로 이어져 있다.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84104 <= 기사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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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많은 것들이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 타에코의 기구한 삶이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마츠코를 닮았다. 영자와 마츠코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타에코의 마음은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타에코 역의 키무라 후미노의 한국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수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요 근래에 보는 시리즈에서 기묘하게도 전부 수어를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퍼스트러브 하츠코이 전부 수어를 하고 이 영화에서도 영화 내내 수어를 한다. 타에코는 오셀로 최연소 우승자인 9살 아들과 함께 재혼을 하여 생활하고 있다. 전 남편은 몇 해 전에 집을 나간 뒤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아들 케이타는 엄마와 오셀로를 두는 걸 즐기는 귀여운 아이다. 재혼한 남편 지로는 케이타와 타에코를 사랑하지만 지로의 부모는 타에코를 중고로 본다. 그 눈빛과 따스한 말속에 가시 같은 말들을 뱉어낸다. 대 놓고 너네 싫다고 하는 시아버지보다 늘 타에코의 편을 들어주며 나긋한 시어머니는 진짜 손주를 갖고 싶다며 타에코의 가슴에 통증을 남긴다. 그런 통증이 조금씩 쌓여 깊은 멍울이 된다. 그러둔 중 케이타가 욕실에서 놀다가 미끄러져 머리를 박고 욕조에 담아 놓은 물에 빠져 죽고 만다. 타에코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지 말라는 지로의 말을 듣지 않다가 그렇게 된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한다.

케이타의 장례식에서 느닷없이 전 남편, 케이타의 생부가 나타난다. 그는 청각장애자로 한국 사람이다. 그동안 노숙자처럼 지낸 생부가 장례식에 나타나 타에코의 뺨을 때리고 자신의 뺨도 때리며 운다. 타에코는 그 뒤로 생부가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케이타의 죽음과 전 남편의 자립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당위가 생긴다.

남편을 찾아야 한다며 구청에 매일 오는 타에코를 도와주다 구청 직원이었던 지로는 타에코에게 사랑을 느껴 결혼을 했지만 타에코를 마뜩잖아하는 부모님, 케이타의 죽음 앞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 자신과 갑자기 나타난 생부와 타에코의 수어를 하는 다정한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마음이 인다. 하지만 지로 역시 타에코를 만나기 전 만났던 여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

이 이야기는 지극히 단조로워 보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꼬이고 꼬인 관계와 상실을 잔뜩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생부의 아버지가 위독해서 돈을 빌려 한국의 함안으로 가는데 결국 지로를 버리고 따라나서는 타에코.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서 알게 된 사실은 케이타를 낳기 전, 자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서 그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거기에 가려는 것이었다.

마지막 일본 집으로 돌아온 타에코는 물건을 사들고 집에 들어오는 지로에게 평소처럼 왔냐며 인사를 하고 같이 배고프니까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마치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대사를 하며 끝난다. 2시간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 우연과 인간의 간극, 관계, 의지와 무관하게 오는 피폐, 선입견 같은 것들이 몽땅 들어있다.

키무라 후미노는 페이블에서 미친 엉뚱 청부 살인마 역으로 하하하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감정 연기를 해내고 있다. 남편 지로는 아직 자기 형 에이타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거 같고, 한국인 박 씨로 나오는 배우는 읭? 같고,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느낌이 많이 나서 감독도 사진만 보고 고레에다와 비슷한 연배인가 했는데 응?

인도코끼리 방구끼는 얘기지만 인간은 5세 전까지 부모에게 모든 행복을 다 준다. 그 이후에는 꼭 효도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너무나 이상하게 생겨 먹어서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해도 그게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죽을 때까지 길게 간다면 그건 사랑이라기 보다 흔히 말하는 의리다 의리. 부부가 되면 언젠가부터 대화할 때 서로 눈을 보지 않게 된다. 타에코가 함안으로 와서 야외 결혼식에서 비가 쏟아지는데 상실에 의해 혼이 나간 듯 혼자서 흐느적 춤을 추는 장면은 마더가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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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걸 거의 먹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도 이상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 먹는 고추장 불고기는 매콤하게 먹게 된다. 나에게 있어 매콤함이란 매운맛이 강하지 않아서 먹으면 코끝에 땀이 약간 배일라말라 할 정도를 말한다. 맵다고 입에서 쓰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가 아닌 정도의 맵기가 나에게 있어 매콤함이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는 비가 오는 날과 잘 어울린다.


비가 오면 막걸리와 파전을 찾아 먹기도 하고, 뜨거운 칼국수를 먹기도 한다. 비가 오면 어울리는 뭔가를 찾아서 먹는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면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가 어울린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아직 본격적인 영하의 날씨가 아니라 시동을 걸고 있다. 고추장 불고기를 집어 먹고 나면 몸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겨울비가 내리는 풍경을 본다. 비는 모든 세상을 적시고 있다. 특히 겨울비가 내린 나뭇가지는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이 통증을 겪어야만 혹독한 겨울의 날이 닥쳐오더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는 이제 갓 지어낸 뜨거운 밥에 어울린다. 뜨거움과 매콤함이 입 안에서 춤을 추고 터지고 팡파르를 울린다. 매일 먹는 밥을 뜨거울 때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갓 꺼내서 먹는 밥의 추억이 있어서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티브이는 끄고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면 풍경이 몹시 아련해진다. 거세게 비가 쏟아지지 않아서 80년대 우울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어떤 음악을 틀까. 푹푹 꺼지는 음악으로는 마이 퍼니 밸런타인 같은 쳇 베이커의 음악이 좋다.


하지만 겨울비에 맞게 겨울비를 듣자. 겨울비는 김종서의 겨울비가 있다. 그런데 김종서의 겨울비는 시나위 4집[보컬 김종서, 베이스 서태지]에서 좀 더 록 버전으로 먼저 나왔다. 시작 전에 쏴아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배기량이 좋은 자동차가 그 빗속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서 기타 리듬으로 시작하는 김종서가 겨울비를 부른다. 김종서의 홀로서기로 부르는 겨울비에 비해서 날 것의 느낌이 확 든다.


나에게도 시나위 4집을 비롯해서 몇 장이 엘피판으로 있었다. 레코드앨범으로 가지고 있는 음반들이 꽤 있었다. 시나위도 그렇고, 판테라, 데미스 루소스는 몇 장이나 되었다. 아프리카의 토토, 알파타우르스 같은 앨범들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몇 개가 남아 있는데 왜 싹 다 없어졌을까.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같은 김종서가 사랑해, 행복한 순간들을 부른다. 이 부분에 접어들기 전에 이 풍부한 록 사운드가 너무나 좋다. 드럼소리가 확 치고 나오면서 기타와 베이스의 사운드가 풍부하게 터진다. 그 사이로 김종서의 겨울비처럼 가는 목소리가 점점 시동을 걸어 샤우트된다. 좋다.


시나위의 겨울비 https://youtu.be/BRjX6aziD9U?si=j88dbyMzdkZB2QdE


학창 시절에 시나위를 어두운 음악 감상실에서 많이도 들었다. 그때 디제이가 신대철이 딥퍼플의 곡을 따라한 곡들을 들려주었는데 그때는 그게 뭔가 응? 이럴 수가? 같은 느낌이었다. 양가적 감정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와 어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가 동시에 들었다.


딥 퍼플의 ‘마이 우먼 프롬 도쿄’는 정말 노래가 좋다. 딥 퍼플의 그 아이덴티티가 집대성이 된 노래처럼 들린다. 표지의 여인이 오노 요코처럼 보이는 앨범인데 당시에 디제이가 들려주었다. 이게 정말 비슷하다. 딥퍼플의 강력한 보컬에 비해 김종서의 목소리가 떨어지지만 또 김종서의 매력으로  [마음의 춤]을 부른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혹시 한 번 찾아봤더니 정말 유튜브에는 모든 것들이 다 있다.

https://youtu.be/ZPhEPrelZ1I?si=M_IrvE64R6C98tcV


한 번 들어보시라. 내가 학창 시절에는 인터넷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뭐 노래가 좋으면 그만이지 같은 생각이 있었다가 근래에 들어 아마도 신대철이 서태지의 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시나위 표절에 대해서 걸고넘어지는 것 같다. 시나위 하면 가장 유명한 노래 중에 ‘크게 라디오를 켜고’다. 임재범이 보컬이었던 시절 굉장했다. 이 노래도 산타나의 [러브]와 너무나, 아주 비슷해서 사람들이, 특히 시나위 팬들이 읔 하기도 했다.

https://youtu.be/EeHWqaFVZpA?si=N58fYIAIBrhiLawS


아무튼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강하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일기예보와 달리 강풍도 없고 그렇게 춥지도 않다. 마치 2월의 졸업식 날에 내리는 비 같은 기분이다. 김종서가 겨울비를 부른다. 사랑해~~ 행복한 순간들~~~라고 노래를 부른다. 매콤한 고추장 불고기를 먹는다. 겨울의 비를 본다. 이 겨울비가 내리고 나면 차갑고 긴 겨울이 몇 달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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