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영국의 정치가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처칠은 독서예찬이 아닌 책의 예찬을 쓴 적이 있다. 그는 그 글에서 설령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가의 책을 한 권 빼어들고 쓰다듬거나 아무데나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띈 최초의 문장부터 읽어보라. 그리고 설사 그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책이 서가 어디에 꽂혀 있는가를 기억해두라. 그러면 책은 당신의 친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1)

책은 소년의 음식이 되고 노년을 즐겁게 하며, 번영과 장식과 위급한 때의 도피처가 되고 위로가 된다. 집에서는 쾌락의 종자가 되며, 밖에서는 방해물이 되지 않고, 여행할 때는 야간의 반려가 된다는 키케로의 지적처럼 책에 대한 효능을 정의해 주는 말도 드물 것이다.

 

(25)

김시습만큼 책 사랑이 남달랐던 선비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도서명(도서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도서만이

 오직 나의 벗이라네

 옛것을 읽혀 새것을 알고

 정밀하게 연구해서 굳게 지키리

 도리에 어긋나는 그런 글이야

 (꾀일) 물리쳐 유혹당하지 말아야 하리

 성리에 관한 책을

 극진하게 미루고 분석하기

 이것이 군자가 도서를 사랑하는

 참 뜻이라 이르는 것이네

 

(49)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존재의 가치와 평가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61)

45세의 나이로 고독하게 운명하기 전에 남긴 <지성개조론>의 서두에 스피노자는 이렇게 썼다.

세상 사람들은 부와 명예와 쾌락을 인생의 최고선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한다. 나도 그런한 것에 끌렸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최고선이 아님을 깨달았다. 부와 명예와 쾌락은 인간의 정신을 질식시키거나 교란시키거나 우둔케 하거나 적지 않은 후회를 남긴다. 쾌락의 추구에는 회오(悔悟)가 따른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에게 최고의 생활인가. 그것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생활이다.”

 

 

(74)

인간이 상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들 가운데 가장 놀랄 만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책이다. 다른 것들은 신체의 확장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을 확장한 것이고,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이고, 칼과 쟁기는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다른 것이다. , 책은 기억의 확장이며 상상력의 확자이다.” – (보르헤스 <허구들>)

 

(86)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시(문장)는 마땅히 세 가지가 쉬워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알기 쉬워야 하고 둘째, 글자는 어렵지 않게 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기 쉬워야 한다.

 

(103-104)

몽테뉴의 <수상록>에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은 언제나 나를 환영해 준다. 내가 책을 원하는데 책이 나를 거절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가는 길에 동행을 한다. 내가 노년과 고독 속에 있을 때도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 준다. 대개의 경우 나는 구체적이고 자극이 강한 즐거움이 없을 때만 책을 찾는데, 책은 그런 줄 알면서도 조금도 성을 내지 않으며 언제나 똑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준다.

나의 독서실은 3층에 있다. 나는 이 독서실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겨울철에는 난방을 할 수가 있고, 채광과 통풍을 위해서 적당하게 창이 나 있으며, 세 방향을 내다볼 수가 있다. 벽이 원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다섯 층으로 늘어선 책꽂이를 한 눈으로 쭉 살필 수 있다. 방의 지름은 16보쯤 된다. 여기가 인생에 있어, 또 우주에 있어서의 나의 위치다.

나는 젊은 시절에 남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그 이후에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공부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분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 그러나 책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정신은 활동을 하는데 신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이 활동하지 않으면 졸음이 오는 것처럼 신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이 위축을 한다.

 

 

(115-116)

책에 대한 예찬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 파울 에픔스트의 말은 걸작이다.

좋은 책은 어디에서든지 우리에게 무엇이든 제공한다. 그러나 자신은 어떠한 것도 우리로부터 요구하지 않으며, 우리가 듣고 싶어할 때 말해주고, 우리가 피로를 느낄 때 침묵을 지켜주며, 몇 달이든 몇 해든 간에 참을성 있게 우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설사 우리가 다시 그것을 손데 든 때라도 책은 결코 우리의 감정을 상하는 일을 하지 않고, 마치 최초의 그날과 같이 친절하게 말해준다.”

 

(132)

다시 오가이의 말이다.

 “사람의 얼굴은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스무 살 정도까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얼굴로 통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행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 조금씩 그 사람의 마음과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나타난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 말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보다 많은 책을 읽으면 많은 말을 알게 되고 보다 깊은 인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생활에서 깊이 있는 얼굴이 나타난다.

또 책을 읽는 생활을 하면 자신과 대화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내 생활이 제대로 된 것인가 아니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자답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이부로 무사시, <삶을 향상시키는 독서철학>)

 

(270)

이옥의 소품중에서 놓치기 아까운 내용을 빌려온다.

이상하다! 먹은 누룩이 아니고, 책에는 술그릇이 담겨 있지 않는데, 글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겠는가? 장차 단지를 덮게 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글을 읽고 또다시 읽어, 읽기를 삼일 동안 오래 했더니, 꽃이 눈에서 생겨나고 향기가 입에서 풍겨나와, 위장 속에 있는 비릿한 피를 맑게 하고 마음속의 쌓인 때를 씻어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즐겁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여, 자신도 모르게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들어가게 한다.” (<묵취향>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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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내가 쓰는 이 책에도 꽃들의 사진이 무수히 들어가지만, 내게 있어 모든 꽃 사진은 인내와 땀, 그리고 시간의 결과이다.

 

(74)

원래 군사분계선 가까이 접근하면 어느 쪽에서든 발포하게 되어 있는 것을 충분이 알고 있었지만 꽃이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홀린 것이었다. 다른 조사단원들은 모두 점심을 먹고 있던 터였기에 내가 그곳까지 가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열심히 기어가는데 노란색의 표지 말뚝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쳐다보니 군사분계선 표지였다. 아차, 번쩍 정신이 들어 더욱 몸을 낮추고 우선 바로 앞 건너편 진지에 있는 북한군 병사들의 동향을 살폈다.

 

(81)

당시는 눈에 이상이 온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다시 백령도까지 강행군을 하여 8월 말이 되어서야 조사 활동을 끝맺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눈 한쪽이 하얗게 덮여 백내장이 와 있었다.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확연했지만 감히 병원을 찾을 수도 없었다.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빚쟁이에 시달렸고 더구나 외상으로 가져간 필름 값을 구할 길도 없었다. 끝내는 필름 값 때문에 사무실에 집달리가 와서 딱지까지 붙이는 소동도 벌어져 앞이 더 안 보였다. 야생화를 찾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사무실 차압은 면할 수 있었다.

 

(141)

나는 여기서 커다란 경험을 했다. 우리 토종식물 같으면 그렇게 무성하게 번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구에서 들어온 이 외래식물들은 그 높은 강원도 함백산 고원지에서도 잘 견디니 서울의 우리 집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그 모습을 보고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이 말뱅이나물 외에도 그와 비슷한 돼지풀, 달맞이꽃,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한 여러 귀화종들은 우리 땅을 무섭게 뒤덮고, 더구나 우리 토종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록 그 한 종의 외래식물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직접 길러보고 나서 커다란 경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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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돈 말고도 세상에는 만족감을 느낄 거리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 세상의 진보는 권력이나 돈, 이런 것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특별한 재능으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71)

인간은 죽을지언정 포기하면 안 되는 존재라고 헤밍웨이가 그랬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희망과 성공을 위해 인생의 모든 걸 쏟아붓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부분은 성과 없이 사라져 갑니다. 그럼에도 우린 포기하면 안 됩니다. 좋은 인생이란 기술이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과연 나는 좋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걸까요? 인생과 싸우면서 좀 더 살아볼 생각입니다.

 

(85)

나이를 하나 더 먹는다는 것은 후회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

그때 그 일을 더 열심히 할 걸,

그때 그걸 선택할 걸,

그때 좀 더 참을 걸,

그때 그만 때려치울 걸,

그때 그에게 더 잘해 줄 걸,

그때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걸

후회할 일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를 인생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흘러가는 이 인생에 충실해야겠습니다.

 

(87)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무언가 꿈이 생겼음에도 그걸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서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 주위에서 손가락질할 거라는 두려움 등등. 두려움은 대개 최악으로도 최상으로도 흘러가지 않습니다. 운이 좋으면 좋은 쪽으로, 운이 나쁘면 나쁜 쪽으로 갈 뿐입니다.

 

(97)

제자와 사귀는 40대 노처녀 선생, 50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20대 여대생, 남자 몸을 찾아 게이클럽을 들락거리는 게이, 사촌끼리 부부처럼 사는 커플, 스와핑을 하는 부부, 내가 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모든 인간사는 나름대로 질서와 사정이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 없이 그 문화권 사람끼리 행복하다면 그건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우리가 진정 분노해야 할 문화는 사회구조가 아닐까요. 개인 정의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사회정의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99)

조선 건국 이래 6백 년 동안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 어떠한 부정과 불의가 저질러져도,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모른 척하고 외면해야 했습니다. 눈감고 귀 막고 비굴하게 살아야만 목숨 부지하고 살 수 있었던 6백 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역사가 이뤄져야만 비로소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 출마 연설 중

반역의 현대사동학군은 반란군으로 불렸고 독립군은 테러 분자로 불렸고 반독재 투쟁은 빨갱이로 불렸고, 현재는 노빠로 불립니다. 내가 노빠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름, 그 이름 노무현. 당신과 함께했던 시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219)

제대로 잘 맞은 공이 노골이 되기도 하고 빗맞은 공인데 골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인생인데. 살다 보면 억울하고 원통한 일도 있고 의도치 않은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것이 역사이고 인생입니다. 결국은 집념이 강한 쪽이 승리하게 됩니다.

 

(226)

학명 : 흰수마자

분류 : 잉어목 잉어과

크기 : 6

서식장소 : 낙동강 상류 여울의 돌덩어리 사이

분포지역 : 한국 낙동강

4대강 사업으로 멸종

 

(312)

예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세상의 중심은 세상이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의 역할은 따로 있다. 예술은 세상을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만 주면 된다. 풍부함은 그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킨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일수록 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가는 누구보다 공부를 해야 하고, 도를 닦아야 한다. 그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 그냥 싸우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그림과 싸우는 예술가는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좋은 작품을 할 수는 없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거대한 산이 되어야 하고 하늘이 되어야 한다. 수도승 같은 철학자가 되어 세상 발전에 꼭 필요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 과정은 지독한 고통을 수반한다.

세상의 냉대도 있고, 대중의 손가락질도 받아야 하고, 가족이나 친지의 잔소리도 견뎌야 하며, 경제적 고통과 외로움과도 싸워야 하고, 끝없는 실패도 맛보아야 한다. 그렇게 거장 예술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321)

거대한 타락이 승리하는 것이 한국의 운명이라면, 그 타락과 싸우는 것 또한 우리의 운명이다. 진정한 정의가 뭔지 아는 이들은 이 운명에 맞서야 한다.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363)

표현의 자유는 가장 소중한 민주주의의 가치이고, 우린 권력자를 뒷담화 깔 권리가 있다. 뒷담화 좀 깠다고 권력 있는 자들이 처벌하려고 드는 건 정말이지 치사한 짓이다.

우리가 재수 없어 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정치에 대해 시원하게 엿을 먹여야 한다. 이 사회가 타락한 근본 이유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396)

정치를 가지고 예술을 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다. 우린 자유로운 사람이므로 예술가는 자유를 꿈꾸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것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공한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와 사상이 서로 공존하며, 서로 존중해 주는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예술 작품이 사랑받으며, 어떤 탄압도 없다. 민주주의가 덜 성숙한 사회라면 예술가가 나서야 한다. 어떤 불편함에도 굴하지 말고 과감하게 세상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가의 숙명이고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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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이건 부끄러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문제다. 사생활은 나에게 속한 나만의 삶이다.

놈들이 내게서 사생활을 조금씩 빼앗아가고 있다. 감방으로 다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이렇게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규칙을 어기며 살아왔으면서도 용케 벌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게 정의일지도 모른다. 내 과거가 나를 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학교를 땡땡이쳤기 때문이 아닌가.

 

(176)

슈퍼 에이즈라는 새로운 질병이 있다고 치자. 슈퍼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백만 명 중 한 명이다. 누군가가 99퍼센트의 정확도를 보이는 슈퍼 에이즈 탐지기를 만들었다. , 99페센트의 확률로 정확한 결과를 내놓는다는 이야기다. 검사 대상이 감염되어 있으면 참, 건강하면 거짓을 내놓는다. 그걸로 1백만 영을 검사한다.

슈퍼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1백만 명 중 1명이다. 하지만 그 검사에서는 100명 중 1명이 허위 양성반응을 보일 것이다.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검사에서는 슈퍼 에이즈로 나오는 것이다. ’99 퍼센트의 정확성 1 퍼센트의 오류를 의미한다.

1백만 명의 1퍼센트는 얼마인가?

1,000,000/100 = 10,000

슈퍼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1백만 명 중 1명이다. 무작위로 1백만 명 중 1명이다. 무작위로 1백만 명을 검사하다 보면 진짜로 슈퍼 에이즈에 걸린 1명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검사는 1명이 아니라 10,000명을 슈퍼 에이즈 환자로 식별할 것이다.

99퍼센트의 정확성을 가진 검사는 다시 말해 99.99퍼센트의 부정확성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허위 양성 반응의 역성이다.

 

(245)

미국을 창설한 사람들은, 정부가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우리가 믿을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될 것이며, 우리가 정부를 믿지 못할 때에는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그 뜻 맞죠?”

 

(390)

미디어 먹이사슬 최상위에는 <뉴옥 타임즈>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이 신문사는 사실 확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그 신문사가 취재하라며 보낸 기자가 결국 모나코 호텔까지 추적했는데, 호텔에서는 실제액션롤플레잉 주최자들을 소개해주었고, 주최자들은 껄껄 웃으며 모든 이야기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실제액션롤플레잉은 아주 유치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극악한 사기꾼이자 괴상하고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알려졌다. 의도치 않게 우리에게 속아서 구시대 사람들 이야기를 보도했던 언론들이 실제액션롤플레잉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믿기 힘들 정도로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보도함으로써 오보를 벌충하는 사이, 학교에서는 찰스가 아무나 닥치는 대로 붙잡고 대릴과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액션롤플레잉 게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멍청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479)

우리가 그들을 투표로 뽑았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월급을 줍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우리 편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자유를 수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우리의 신뢰를 배신했습니다.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밖으로 나가 찍을 사람이 없다며 투표를 포기한 이웃 사람 다섯 명을 찾아낸 시간은 충분합니다.

이웃들에게 말하세요.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다짐을 받으세요. 고문 기술자들과 조폭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만 바닥에 있는 무덤에 누워 있는 내 친구들을 비웃던 사람들에게서 우리 나라를 되찾자는 다짐을 받으세요. 그리고 자기 이웃들에게도 이야기하겠다고 다짐받으세요.

우리 대부분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 기권을 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해야 합니다. 부디 자유에 투표하세요.

제 이름은 마커스 얄로우입니다. 저는 이 국가에게 고문당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저는 열일곱살입니다. 저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자라고 싶습니다. 저는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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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오늘날 기계화, 자동화가 이미 깊숙이 생산 현장 속에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예전처럼 장시간 노동에 얽매여 있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자본과 국가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수를 줄이거나 정규직 사원들의 비정규직화를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은 노동자들은 예전보다 더 긴 노동시간, 더 힘든 노동조건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내몰려 있다.

 

(31)

여러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가 죽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008년 이후로는 자본주의가 죽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체제 속에 있습니다. 이 체제를 나는 뱅크럽토크라시(bankruptocracy)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파산한 은행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체제입니다. 은행이 파산을 크게 할수록, 이 파산한 은행이 사회의 다른 부문-산업자본과 노동을 포함한-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들을 동원해 소모해버리는 능력은 더욱 커집니다. 6년 이상이나 우리는 사회의 생산적 부문에서 형성된 부와 경제적 가치를 금융 영역으로 이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도 금융 영역은 여전히 지급 불능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37)

첫째, 누군가 게으르다고 사회가 그에게 간섭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굶주려 죽게 해야 합니까? 만약에 그게 제 자식이라면, 저는 꾸짖고 야단을 치겠지만 집 밖으로 내쫓아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만, 어떤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는 원활한 노동시작의 작동을 위해서나 사회와 문명화를 위해서나 불가결하다는 점입니다. 그 권리, 즉 일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진정한 권리를 갖자면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아무 일자리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41)

우리의 실수는 저 순간적인 번영을 신성한 것, 영속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우리가 누리는 번영이 영구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확신은 지난 10~20년간 우리가 대안적인 것이나 재생 가능한 것을 미친듯이 찾아온 까닭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현재의 정치가들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고 대중들이 평정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을 끝없이 찾아왔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있을 것이며, 테크놀로지가 계속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유혹적인 세뇌작용에 길들어왔다. 우리 대다수는 무엇인가를 바라기만 하면 실현되는 풍요의 경제학을 신봉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게 실은 한정된 탄소연료에서 온다는 사실을 무시해왔다. 그리하여 우리가 돈만 들인다면 대안이 발견되어 우리의 생활양식을 유지시켜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석유를 둘러싼 갈등과 싸움은 그게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알려준다. 세계 석유경제의 중심축은 사우디아라비아이다(‘사우디아메리카라는 개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가는 여기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모래언덕과 높은 탑들로 이루어진 저 환상의 땅은 지금 세계 석유의 동맥이 끊어지면 선진 산업사회들이 죽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광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63)

우리가 애써 노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진정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그를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확보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나 다른 나라의 경험은 무엇인지,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이런 질문들을 부단히 던지고 공부하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해 이분법 내지 흑백논리 식의 찬반 논란에 머물 일이 아니라, 서울시의 선구적 시도를 계기로 현재의 조건 속에서나마 경영참여의 폭을 넓혀나가면서도 현장 조직력과 교섭력을 기초로 연대성을 강화해 마친내 (자본독재라는) 두꺼운 벽을 허물겠다는, 보다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다. 열린 마음으로 모이고 배우고 나눠야 한다. 참자유(liberty)를 위해선 노동과 자본, 권력과 국가의 굴레에서 해방(liberation)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제대로 된 변화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75)

“GMO작물을 재배하면 안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GOM 반대이런 형태로 운동을 해왔습니다만 이 시작부터는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이 정부나 몬산토가 절대 중단하지 않습니다. 안정성 검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몬산토 장학생들입니다. 볼 것도 없이 다 안전하다이렇게 결정이 될 겁니다. 기반 확충을 다 해놓고 바로 심도록 돼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절대 용서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막아야 합니다. … Non-GMO에 대한 법을 지금 식약처에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농사지은 것이 GMO 아니다이렇게 표시하면 (법에) 걸린다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GMO를 안 먹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것은 GMO가 아닙니다.’하고 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위법이라는 겁니다.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게 이 정권입니다.

 

(78)

한국에서 GM농산물에 대한 검역 및 검사 제도와 GMO 표시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전자조작 DNA 또는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 한국의 GOM표시제도이다. 이에 따라 간장, 식용유, 당류 등과 같은 식품은 표시를 안해도 된다. 그런데 한국이 수입하는 유전자조작 콩, 옥수수, 카놀라의 대부분이 식용유, 간장, 전분당 원료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GMO표시제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같은 허술한 제도 때문에 식용 유전자 조작작물 수입이 세계 1위이고 수많은 가공식품들이 이를 원료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GMO 표시가 된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한국이 이미 GM농산물의 주요 소비처가 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GM농산물 생산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중심지는 농촌진흥청이 있는 전북혁신도시이다.

 

(83)

세계적 거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부부는 몬산토 주식 20%를 소유하고 있다. 그가 아프리카를 돕겠다며 GMO곡식을 무상 원조하겠다고 나섰다가 짐바브웨가 거부하여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람이 먹어서는 안될 GMO 따위는 안 받겠다고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러한 GOM작물을 한국정부에서는 상용화하겠다며 이를 추진하고 있다.

 

(110)

금주주의사회가 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 잊혀졌다. 생명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 생명은 각각이 특유한 삶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가지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환경은 다양한 생명들로 구성되어서 자신의 생명대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환경을 문명의 힘으로 억눌러서 수탈해온 것이 물량물량이었던 것 아닐까.

 

(115)

혹독한 미애에 대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절망적인 미래이기 때문에 오히려 삶의 힘에 자신을 가지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량문명의 파탄이 가깝다. 인류의 멸망도 가까울지 모른다. 중동의 참극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불신과 증오가 뒤덮고 정의의 가면을 쓴 힘들이 서로 싸우는 악순환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자신의 정의와 상대의 약함을 맹신한 채 힘이 충동하고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의 불행을 보아서일까. 북한의 김정은은 핵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불신을 선동해서 전쟁준비를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곤란한 상황이라며 인상만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힘에 의해서 나아가는 부조리를 다른 힘으로 멈출 수는 없다.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활을 바구고 사치스러운 식생활의 물량문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에 의한 문명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활의 문화를 찾아야 한다. 주어진 풍토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지혜를 소중히 해야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데는 기쁨도 있다. 그러한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평온하고 조용한 행복이 약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참한 파국을 저지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포기할 수도 없다. 파국을 막는 노력은 정신의 개벽으로부터 시작되고, 이를 위해서는 원한과 증오 그리고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해원상화가 필요하다. 공감하고 협조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동원도리를 기초로 하여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할 것이다.

(136)

우리사회가 20대 총선에서 희망과 절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는 볼 수 있는데, 전체적인 표심을 보면 적어도 절망으로 가는 것은 안돼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오만한 권력에 대해서 그렇게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사실상 진보정당은 대중에게 의미 있는 세력으로서 평가를 못 받은 거죠. 일반 대중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당신들을 미래의 대안 세력으로 볼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 거예요. 저는 이 점에 대해서 뼈저린 성찰을 기대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139)

거칠게 평가하자면 이번 선거는 보수당들의 승리로, 진보정당들이 그 존재가치를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정리하는 것이 맞겠죠. 진보정당 국회의원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게 유의미한 정도의 당선인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비빌 언덕이 있으니 이것을 키워나가면 되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을 저는 경계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1987년 민주화투쟁으로 만들어졌던 열기, 노동자 대중과 농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 어떻게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면서 만들어졌던 운동에 뿌리를 둔 민주노동당이 사실상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생명을 다했다고 평가하는 게 솔직한 것 아닐까요. 3당의 지위, 즉 캐스팅보트를 쥔 추게도 끼지 못하는, 매우 미약한 존재로 전락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과연 이러한 상태로 계속 갈 때 진보정당이 위력적인 세력으로서 존재를 드러내게 될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그마한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겨우 숨만 쉬면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선거로 고공에 올라간 노동자들이 내려왔습니까? 백남기 농민에 대한 정치권의 태도가 달라졌나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에 대한 해법이 보입니까? 공권력에 의해 노동자들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권력의 창끝은 종전에 마찬가지로 가혹하게 노동자와 민중들을 향하고 있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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