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기록하라 -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
박태순.황석영 외 20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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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기록 문학]

이 책은 녹색평론 146호에 실린 서평을 통해 알 게 책이다. 책의 제목과 지은 사람들만 보고도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소위 기록 문학이라는 하는 르포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굵직굵직한 일들을 직접 현장에서 기록한 글이다. 이 책의 부제는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 전태일에서 세월호까지이다. 책 제목인 <민중을 기록하라>도 잘 지은 제목인데, 부제인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라는 제목도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아주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역사서는 권력자들의 움직임을 따라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그들에 의해서 국가적인 사안이 결정되는 일이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역사의 진보는 민중들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런 민중들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런 민중들의 운동을 기록한 이들이 이 책의 지은이들이다.

르포. 르포라고 하면 생각나는 책은 공지영의 "의자놀이"란 책이다. 그 책은 쌍용자동차 해고 사건에 대한 르포인데, 그 사건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그 동안 읽은 르포들이 어떤 것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작년에 읽었던 세월호 사건에 관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과 역시 작년에 읽었던 히로세 다카시란 사람이 쓴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번에 읽은 <민중을 기록하라>의 머리말에 외국의 유명한 르포에 관한 책들도 여럿 소개해 주었는데, 그 책들 중에 읽은 책도 있었다. 그 책은 바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그저 고전 문학으로 읽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책도 르포라고 할 수 있겠다. 지은이 조지 오웰이 직접 전쟁이 참여하면서 그 전쟁에 대한 기록을 세세히 남긴 글이니까 말이다.

 

[민중의 역사]

암튼, 이번에 읽은 <민중을 기록하라>. 이 책은 그 두께와 무게만큼 책의 내용 또한 진중하고 강한 가슴과 머리에 울림을 주었다. 명저(名著). 이 책을 보고 크게 느낀 바는 역사를 진보하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큰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60, 70년대 노동 운동, 80년대 민주화 운동 모두가 결국 민중들의 큰 움직임, 그리고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역사가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오늘날을 생각해봤다. 권력은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들로부터 자유를 빼앗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있지만, 옛날과 달리 민중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다들 가만히 있는다. 물론 몇몇은 움직인다. 그리고 같이 움직이자고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다들 가만히 있는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민중들은 사회부조리에 큰 움직임이 없다. 무엇이든 수긍하는 자세. 갑자기 이해심이 많아지셨는가? 그래서 오늘날 역사는 진보하지 못하고 퇴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최근의 르포는 민중들의 큰 흐름에 관한 기록이 아니고 사건 중심의 기록이다. 대부분 정상적인 국가라면 일어나지 말아야 사건들이어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

오늘날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살게 된 것은 앞 세대 민중들의 일구어놓은 것이 크다. 그들이 자갈길 같은 우리나라 시스템을 시멘트 길 같은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세대는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을 갚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날의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한다. 시멘트 길을 고속도로로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바꾸기 어렵다면 그것을 바꾸려는 사람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모순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핵발전소와 그에 따른 방사능이다. 이 책을 펴기 전에 이 책에서 탈핵에 대한 르포가 있었으면 바랬는데,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 미래에,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핵발전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핵발전소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소수의 시민 단체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만의 목소리는 너무 작다. 좀 더 많은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갖게 되고, 다 같이 힘을 모아 소리를 질러야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쉽지 않다. 핵발전소를 없애기는커녕 늘리려고만 한다. 핵발전소에 찬성하는 정당이 압도적인 일등을 하고 있다. 다가오는 하나의 선거를 앞두고 있다. 탈핵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지만, 결과는 벌써 눈에 보이듯 뻔하다. 너무 암울하다.

올해 선거로 인해 2주기가 되는 세월호 사건도 묻히게 될 것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세월호 사건.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은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세월호 사건에 대한 르포는 싣지 않고 정우영이란 분의 시로 대신했다. 슬프다. 아직도 이런 모순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희망이 잘 안 보인다는 것에 더욱 슬프다.

...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는 맞지만 모두 지나간 것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떤 부분을 읽을 때는 오늘 아침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글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많이 변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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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언제부터 한국인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들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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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이라는 글쓴이의 비판에 나도 자유롭지 못하고 불편했다. 사실 나 또한 바쁜 회사 생활을 핑계로, 그리고 개인적인 성격의 이유 등으로 지금의 자리에 불편한 안주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작가의 역할]

이 책의 실린 글들의 지은이는 대부분 소설가나 시인이다. 그래서 글들은 참 쉽게 읽혀진다. 공지영, 김남일, 이원규, 안재성 등 좋아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반가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르포들이 이렇게 많았는지 새삼 놀랐다. 그러면서 이런 르포들은 어디서 접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책 마지막에 이 책의 출처들이 적혀 있었다. 문학계간지 등 문학잡지에 실렸던 글들이 많았다. 최근 문학관련 잡지를 하나 구독을 해볼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었다.

2009년 용산에서 자신들의 집과 가게를 지켜려다가 공권력에 의해 목숨들을 잃은, 가슴 아픈 사건에 대한 르포를 실으면서 당시 작가들이 한 선언을 실었다. 그 선언이야말로 시대를 대하는 작가들의 역할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던 산소 같은 작가의 자세. 이런 작가들이 있다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선언이 작가 뿐만 아닌 모든 민중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희망은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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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 2009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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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수정하여 작성함.

(39쪽)
언제부터 한국인은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비겁하고 옹졸한 인간들로 되어버렸을까.
나는 자책감을 느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래의 근로자들로부터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편의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듯한 노동운동이 되고 있어요.
이래서는 되지 않습니다.
근로자들이 밑에서부터 자기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학생들이 근로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하여튼 전태일 씨의 분신자살은 획기적인 살신성인의 의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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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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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
영화 '']

이 소설은 두어 달 전에 영화 예고편으로 알게 된 책이다. 소재가 독특한 영화라서, 그 영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원작 소설이 있었다. 요즘 영화보기가 쉽지 않아서, 책으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엠마 도노휴라는 아일랜드 사람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자신의 친딸을 밀실에 24년간 가두면서 폭행과 나쁜 짓을 한 사건이라고 한다. 소설보다  실재 사건이 더 잔인하고 무서운 사건이었다. 이렇듯 요즘 세상에는 소설보다 더 무서운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연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그런 무서운 일들이 일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이 과연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환경도 날이 갈수록 나빠진다. 그저 과학기술만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이 더 나아지는 세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암튼, 그런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고 해서, 평범한 범죄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고, 영화로까지 만든 것 같다.

아참! 이 영화에서 엄마 역할을 했던 브리 라슨라는 배우는 얼마 전에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영화가 된 것 같다. 나도 언제가는 꼭 봐야겠다.

 

[잭의 세상]

소설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한 잭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가 바로 다섯 살 잭이다. 영화 예고편을 보지 않았다면, 잭이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예고편을 봐서잭이 조그마한 방에 엄마와 갇혀 있다는 것을 금방 이해했고, 잭이 이야기하는 것을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읽는 이들은 ?’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그들은 그 조그마한 방에 갇혔는가? 그 궁금증으로 책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그 이유를 알게 되고는 분노하게 된다.

7년 전.... 7년 전 잭의 엄마는 대학교 1학년의 어여쁜 학생이었다. 물론 그때 잭은 태어나기 전이다. 올드 닉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개가 잘못되었다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사정을 하는 바람에, 그의 차를 탔는데, 그 이후로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조그마한 방이었던 것이다. 그 방은 사방이 박혀 있었고벽은 납으로 되어 있어 완벽한 방음이 되었고철문으로 잠겨 있었다. 창문도 천장에 달려 있는 창이 하나가 전부였다. 천장에 있는 조그마한 천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바깥 세상은 그 네모로 보이는 하늘이 전부였다. 그녀는 몇 번 탈출을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방법이 없었다. 소리를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고밤마다 형광등을 껐다켰다해서 빛을 이용해서 자신을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왜 갇혔을까? 그녀를 가둔 올드 닉이 싸이코인 이유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전에 그를 알고 지낸 것도 아니다. 그녀를 가둔 이유는 그녀의 생명을 담보로 그녀를 강간하려는 이유가 전부였다. 그 잔인한 이유로 그녀의 자유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반항을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올드 닉의 아이까지 갖게 되었고, 이내 유산을 하였다. 그 조그마한 방에서 아이 낳는 것이 쉽겠는가. 그런데, 다시 임신하게 되었고, 그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잭이다. 그 조그마한 방에서 혼자 아이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범죄자의 아이를하지만, 엄마는 잭을 무척 사랑했다. 오랜 감금생활과 폭행을 견디게 해줄 수 있는 힘이었고, 희망이었고, 행복이었다. 잭은 엄마에게 모든 것이었다. 그 오랜 세월 그 좁은 방에서 갇혀 지내면서 미치지 않은 것도 잭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잭에게도 엄마가 전부였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그 방을 나가본 적이 없다. 잭에게는 그곳이 곧 세상이었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엄마가 있었고, 화분이 있었고, 침대가 있었고, 싱크대가 있었고, 벽장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모두 잭의 친구였던 것이다. 그 방에는 공중파 몇 개가 나오는 TV와 최소한의 가구와 용품이 있었고, 그리고 일요일마다 꼭 필요한 만큼의 생필품을 범죄자가 가져다 주었다.

잭은 다섯 살이 되면서 호기심이 많아졌다. 우리 둘째가 다섯 살인데, 호기심 대장이다. 우리 아이들이랑 잭의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소설에 더욱 집중을 한 것 같다. 잭의 행동 하나하나에 우리 아이들의 행동을 떠올리기도 했다. 잭의 궁금증은 엄마가 해결해주었다. 엄마는 잭에게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을 많이 알려주었다. 잭은 글도 잘 읽었다. 잭은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한 아이였다. 그만큼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올드 닉은 가끔씩 밤에 찾아왔고, 그러면 잭은 벽장 안에 숨어서 삐그덕거리는 침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가 가고 나서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었다.

...

 

[탈주]

엄마는 어느 날 범죄자에게 대들었다가 벌을 받았단다. 올드 닉이 방에 들어오는 전기를 끊어버린 것이다. 냉장고 음식도 상해가고, 난방이 안되어 무척 추웠다. 엄마는 이때 다시 한번 탈주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잭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엄마는 잭이 모르고 있던 바깥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진짜 세상 말이다. 이 좁은 방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이다. 갇히게 된 이유도 해주었다. 잭은 혼란스러웠다. TV속의 세상은 모두 가짜이고, 이 좁은 방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잭은 바깥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잭에게 탈주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고잭은 결국 엄마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계획은 이랬다. 엄마는 잭에게 아픈 척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올드 닉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할 것이고, 병원에 도착하면 소리쳐서 살려달라고, 경찰을 만나라고 이야기했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 잭은 싫다고 했다. 무섭다고 했다. 정말 무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고, 엄마가 그렇게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잭은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 종일 아픈 연기를 했다. 그리고 올드 닉이 왔다. 하지만, 그는 안 된다고 했다. 그냥 그들을 두고 올드 닉은 돌아갔다.

엄마도 예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로 두번째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진짜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죽은 척하기. 어제 조치를 안 취해서 결국 잭이 죽었다고 올드 닉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잭을 데리고 갈 거라고... 그때 소리지르면서 도망가라고... 경찰을 만나라고... 이것은 아픈 척 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엄마는 양탄자에 잭을 돌돌 말고, 악취가 나게 만들었다. 최대한 시체와 비슷한 냄새를 나려고 말이다. 더러워서 올드 닉이 시신 확인을 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잭은 무서워서 못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바깥세상을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양탄자 속에서 죽은 척하는 연습을 하고, 돌돌 만 양탄자에서 빠져나오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 엄마는 어제 병원에 가지 않아서 결국 잭이 죽었다면서 울부짖는 연기를 했다. 올드 닉이 속아서 당황을 했다. 그리고 빨리 시체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잭을 데리고 갔다. 양탄자에 싼 채로 트럭 뒤에 실었다. 돌돌 만 양탄자에서 빠져나와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간신히 빠져왔는데, 올드 닉이 알아차렸다. 잭은 도망을 갔지만, 이내 올드 닉에게 잡혔다. 그런데, 다행히 이 장면을 산책하던 어떤 아저씨가 모두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 아저씨가 질문을 던지자 당황한 올드 닉은 잭을 버리고 혼자 도망을 갔다. 그 아저씨가 경찰을 불러주었고, 드디어 잭은 드디어 경찰을 만났다. 그보다 잭은 드디어 진짜 세상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경잘에게 상황을 이야기해서 경찰은 엄마가 갇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리고 엄마와 다시 만났다. 드디어 그들은 그 길고 긴 감금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진짜 세상] 

한편, 그들을 가두었던 올드 닉은 경찰에 잡혀서 철창신세가 되었다. 다른 범죄 소설이었다면 올드 닉의 재판 현장과 그 사건의 진실을 캐는 것을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태어나자마자 5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진짜 세상에 나온 다섯 살 잭이 적응해 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인 것이고, 읽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적시는 것이다.

그들은 탈출했지만,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사회와 시스템은 그들은 치료의 목적이라며 정신병원에 머물게 하고 이런저런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을 환자 취급을 당하고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다. 엄마는 그런 것들이 화가 났다.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절차라고 했다. 병원의 태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상황을 왜곡하고 자극적인 TV 보도를 했던 것이다. 잭은 이 진짜 세상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자극,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것이다. 심지어 계단도 그에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와 둘만 있었던 그 방을 그리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했다.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와 삼촌 등 엄마의 가족들과도 만났다. 엄마가 감금해 있는 동안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혼을 해서 할아버지는 호주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레오라는 새로운 사람과 같이 살고 있었다. 할어버지도 엄마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에서 만나러 왔지만, 범인의 아들인 잭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곧 돌아갔다. 잭과 엄마는 계속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절차라는 이유로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엄마는 TV 인터뷰도 하게 되었는데, 언론 기자들은 잔인하고 악의적인 질문만 해댔다. 엄마는 제발 그냥 우리를 놔두라고 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장면을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열을 내며 촬영도 하고, 플래시가 더욱 많이 터졌다. 이런 언론의 모습이 소설 속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안타깝다. 나쁜 사람들...

엄마는 그 일이 있고 많은 약을 먹었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엄마가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엄마는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고. 잭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굿바이]

잭은 할머니와 새할아버지 레오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잭은 엄마를 그리워하고, 가끔 엄마와 함께 있던 방을 그리워했다. 할머니는 잭을 보살폈지만갑자기 생긴 진짜 세상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다섯 살 손자는 할머니에게도 낯설었다. 잭에게 가끔씩 화를 내기도 했다. 오히려 그의 새할아버지가 잭을 잘 보살펴주었다. 다행히 엄마가 의식이 돌아와서 전화 통화를 하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엄마는 돌아왔다. 잭이 엄마를 다시 만나서 안정을 취하는 듯했지만, 하지만, 여전히 잭은 새로운 진짜 세상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와 둘이 지냈던 그 방을 몹시 그리워했다. 잭에게 있어 그 방에서는 행복이 대부분이었는데, ‘진짜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고잭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 방을 몹시 그리워해서 엄마는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그 방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 방은 예전에 행복만 가득했던 그 방이 아니었다. 그래도 잭은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방 안의 침대, 싱크대, 세면대 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씽크대, 안녕 벽, 안녕 침대, 안녕 바닥...

그래, 잭은 그 방을 나오면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세상에 적응이 어려웠던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끝났지만, 이 소설을 읽은 이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앞으로 잭은 진짜 세상에 잘 적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거라고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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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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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팬心]

작년에 서민 교수가 쓴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완전히 서민 교수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그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겠다고 검색을 했다. 그는 아주 예전부터 많은 책들을 썼다. 심지어 소설도 썼다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서민적 글쓰기>란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의 예전 책들을 안 읽은 것이 약간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서민 교수는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에서 자신의 예전의 책들을 완전히 실패작이라고 자기 비하에 가까운 솔직함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글쓰기에 잘 모르던 시절, 이상에 휩싸여 쓴 책들. 그래서 창피할 정도로 실패한 책들이라면서, 그 책들이 책으로써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해 주었다.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은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글쓰기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 아니라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지은이가 서민 교수였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한 내용보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서민 교수의 유머 넘치는 글솜씨였다. <기생충 열전>에서 보았던 황당하면서도 촌철살인 같은 유머. 여전히 그의 글에는 그런 유머가 가득 넘쳤다. 부러울 따름이다. 어떻게 글을 이리도 재미있게 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서민 교수도 처음부터 그렇게 글을 재미있게 잘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글쓰기 성장기]

이 책의 주된 내용은, 글쓰기를 못하는 지은이가 어떻게 지금 글 좀 쓰는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대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온갖 글쓰기를 하였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이 못생기고 말도 어눌하게 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면서 글쓰기에서 위안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첫번째 출간한 책이 <소설 마태우스>라는 단편소설집이다. 그 이후로도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교양 과학 서적을 냈는데, 잇단 실패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책을 자신이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회수해 오기도 하고, 어떤 지인으로부터 책을 그만 내면 안되겠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한다. 한때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멈출 수가 없었다. 블로그에 계속 글을 쓰고, 신문에서 제안 받은 칼럼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글쓰기는 그만의 독특한 글로 완성되어 갔다. 자기 비하 수준이 거의 극에 달할 정도의 솔직함, 그리고 파안대소를 하게 만드는 유머를 장착한 글. 그는 심지어 논문을 낼 때 조차도 딱딱하게 사실만 적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유머라는 살을 붙여서 논문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 해외 논문지에 실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실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신문 칼럼이라고 하면 보통 진중함이 잔뜩 배여 있지만, 그의 칼럼은 유머가 장착되어 있어서, 당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그리고 그를 위해서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글을 잘 쓸 수  있다고그의 글쓰기에 대한 노력을 보면, 우리집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 <쿵푸 팬더>의 주인공 포를 보는 것 같다. 쿵푸에 그렇게 소질이 없던 포가 쿵푸의 최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포는 뚱뚱하고 별 볼 일 없었지만, 그의 몸에는 타고난 쿵푸의 재질이 숨어 있었던 것처럼, 서민 교수가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고 하지만서민 교수 내면의 그런 글 잘 쓰는 유전자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글쓰기를 해도 그런 내공이 쌓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냥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며, 기억의 보조장치로 글쓰기를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두 가지 핵심]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두 가지이다. 그 두 가지 모두 지은이 서민 교수가 정리해 두셨다. 먼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내용이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아래 내용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내용은,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라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면 힐링이 된다. 앞서 기억의 보조장치로 글쓰기를 한다고 했는데, 거기에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바로 스트레스를 완화해 주는 이유도 있다. 읽기와 쓰기. 그것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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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래이고,

내일 아침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과장에겐 밥벌이다.

피 끓는 청춘에게는 연애의 방법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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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번째 핵심은 글을 잘 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잘 쓰기 위해서는 마지막 '지옥훈련'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님도 생전에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TV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글을 쓰시냐는 질문에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벽에 머리를 쥐어막는 듯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진정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그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때 잘 쓰겠다는 생각은 하지는 않는다. 직업 글쓰기 꾼도 아니고,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읽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검토도 잘 안해서 오타도 많다. 아래 내용 중에 솔직함, 간결함, 꾸준함, 정확함 정도만 주로 의식하고 글을 쓴다. 비유하기, 돌려까기, 웃기기, 삐딱함 등은 나의 내공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 요컨대, 서민 교수님이 이야기는 글 잘 쓰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지옥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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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

.

.

.

.

지옥훈련이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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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블로그를 찾아서...]

서민 교수님이 블로그를 오랫동안 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파워 블로그라고 한다. 그래서 서민 교수님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최근에도 가끔씩 글을 올린다. 그래서 팔로워를 신청했다. 가끔씩 업로드되는 그의 글을 보는데, 유머와 솔직함은 여전하다. 간혹 블로그에 올라온 그의 글을 읽으면서 책도 추천 받고, 힐링도 해야겠다

글쓰기는,
논문을 써야 하는 학생에게는 미래이고,
내일 아침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김과장에겐 밥벌이다.
피 끓는 청춘에게는 연애의 방법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삶을 위로하는 마음의 위안이다.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17쪽)

나에게 글쓰기는,
솔직함이다. 간결함이다.
꾸준함이다. 비유하기다.
돌려까기다. 웃기기다.
정확함이다. 삐딱함이다.
.
.
.
.
.
지옥훈련이다.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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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소문난 책]

이 책은 재미있다고 소문난 소설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출간했을 때도 신간 소개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책표지 디자인에 대한 약간의 반감이 있었다. 몇 년 전에 읽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란 책이 성공한 이후로, 파스텔 톤의 단색 바탕에 손글씨로 쓴 듯한 책제목의 표지이런 스타일의 책 디자인의 많은 소설들이 출간되었다. 이런 것도 아류작이라고 하면 아류작 아닐까? 책표지 디자인의 아류작 말이다. 이 책도 또 그런 디자인의 책이 나왔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도 하늘색의 파스텔 풍의 단색 바탕에 손글씨로 쓴 듯한 제목이 써져 있고, 까칠한 주인공 오베의 캐릭터 그림으로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인기가 꾸준했다. 그렇게 재미있나? 내가 표지에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베스트셀러에도 오르고, 여기저기에서도 추천을 하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읽었다. 바로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힘들게 읽어서 좀 가볍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은이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다. 지은이 프레드릭 배크만은 스웨덴 사람이고, 이 소설이 그의 첫작품이라고 한다. 책날개의 지은이 약력을 보면 이 사람이 ‘오베라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글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출간해달라고 요청에 따라 출간을 했다고 한다. 그의 모국 스웨덴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잭 니콜슨이 열연했던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란 영화다. 재미있어서 몇번을 본 영화다. 남들이 보기에 아주 냉정하고 까칠한 남자 주인공은 사실은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고, 로맨티스트였다. 그 남자 주인공은 성격이 괴팍하기까지 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그가 동성연애자를 보살펴주는 장면도 있는데, <오베라는 남자>에서도 동성연애자를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는 주인공이 강아지와 엮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고양이와 엮이는 장면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그 영화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이 오베라는 남자 또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은 맞고,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전형화된 캐릭터였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은 리뷰는 여기까지만 읽기를 바란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오베였던 남자]

소설 속 오베는 59살로 아내와 여섯 달 전에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었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로 아침마다 동네를 돌면서 주차 금지에 주차한 차를 보면 참지 못하고자전거도 지정장소가 아닌 곳에 세워져 있으면 보관소에 넣어버리는 그런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영역에 남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이웃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한 그런 남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까칠함 뒤에 숨어 있는 포근한 사랑이 있다고나 할까? 어떻게 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알려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오베의 어린시절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철도회사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러다가 오베 나이 열여섯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다. 오베의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분이었는데, 철도회사는 그런 분의 아들인 오베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 회사에서 일하게 해 주었다. 오베도 그런 아버지를 쏙 닮아서 올곧고 도덕을 중시했고, 양심에 따른 행동을 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 누명을 쓰고도 양심에 따라 남을 고발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소냐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소냐는 오베에게 너무 과분한 여자였다. 고 오베는 생각했다. 아름답고, 책을 몹시 사랑하는 여인이었고, 무엇보다 오베를 사랑했다. 둘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오베는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자치위원회의 회장도 맡았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소냐가 임신 중에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서 아이는 유산하고, 소냐는 하반신 장애로 아이를 못 가질 뿐만 아니라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소냐는 그 장애에 굴복당하지 않았다. 존경 받는 교사가 되었다. 오베도 평생 소냐를 사랑하고, 소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러던 소냐가 4년 전 암에 걸렸다. 그리고 6개월 전 소냐는 세상을 떠났다. 오베에게 있어 소냐는 삶의 이유였다그런 소냐가 세상을 등지다니이후 오베의 삶은 소냐의 묘지에 가서 잠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거기에 오베는 직장에서마저 실직을 하게 되었다.

 

[자살 시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오베는 자살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소냐의 곁으로 가기로 했다. 그에게 있어 소냐가 없는 삶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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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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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배는 자살을 하기 전, 이것저것 살폈다. 누가 까칠한 성격 아니랄까 봐. 거실 한 가운데 목을 매달아 죽을 결심을 했는데, 나중에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거실에 흙 묻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닐로 거실 바닥을 깔아 놓았다. 이제 소냐를 만나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밧줄에 목을 걸었는데그만 밧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자살 실패. 오베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요즘은 밧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기로 했다. 자동차 안으로 배기가스를 들어오게 하고 그곳에 잠들려고 했다. 차고에서 죽으려고 했다. 배기가스가 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소리가 계속 그의 귀 안으로 들어왔다. 차고 문을 심하게 끊임없이 두들기는 소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자살은 다음에 하면 되니까.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일단 누구인지 보려고 나갔다. 화를 내며 나가보니 옆집에 사는 임신중인 이란 여자 파르바네가 서 있었다. 그의 옆집은 패트릭이라는 남자와 그의 아내 파르바네그리고 일곱살 난 딸과 세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파르바네의 남편 패트릭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응급차에 실려갔다면서, 자신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오베는 남자가 되어서 그런 것 하나 못하나 투덜거리면서, 파르바네와 그녀의 두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그가 파르바네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오베의 행동 기준은 죽은 아내 소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가 기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냐라면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도와준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베도 그 스스로 착한 심성을 분명이 가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파르바네의 두 딸을 보살펴 주기까지 하고다시 집까지 그들을 데려다 주었다. 파르바네는 차 안의 짙게 배여 있는 배기가스 냄새와 고무 호스를 보고 걱정했다. 파르바네가 눈치를 챈 것이다.

오베의 세번째 자살 시도는 열차에 몸을 던지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관사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직전에 선로로 몸을 던지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계획 직전 어떤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며 선로에 떨어졌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를 구할 이는 역시 오베뿐이었다. 오베는 되는 일이 없다며 또 투덜거리며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출해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기회였다. 자신이 죽을 수 있는 기회. 올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면 그럴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그 장면을 본 기관사는 기차를 멈춰 세웠다. 이번에도 오베는 살아났다. 그에 입장에서 보면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영웅이라는 호칭까지 생겼다. , 젠장.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

그는 일이 계속 꼬이게 되었다. 동네에 길 잃고 얼어 죽을 뻔한 고양이를 그가 떠맡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고양이를 맡지 못할 사정들이 있었는데, 오베는 그런 사정이 없었다. 전혀그 고양이를 떠맡게 되면서 예전에 소냐가 좋아한 고양이 어니스트도 생각이 났다. 이 고양이를 두고 어떻게 자살을 하나. 고양이가 건강해지자 그는 다시 시도하였다. 소냐의 곁으로 가는 것. 그는 네번째 자살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한번에 끝낼 수 있는 권총자살최근 동네에 강도가 출현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의 집에 얼쩡거리는 이들을 보게 된 것이다. 동네를 위해서는 저 강도를 잡아야 했다. 다시 자살은 잠시 뒤로그는 그 강도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가 가끔 가던 술집에서 일하는 건실한 청년 지미와 그가 일하는 술집의 젊은 사장인 동성애자였다. 아버지가 그의 정체, 즉 동성애자임을 알고 내쫓았고, 그는 갈 곳이 없어서 오베에게 온 것이다. 하루만 재워달라고 말이다. 엄동설한에 그를 재워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살을 할 때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국]

오베는 이번에 실제 강도를 만났다. 강도로부터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입원까지 했다가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그렇게 죽기 어려웠는데, 잘못했으면 한번에 죽을 뻔했다. 그가 퇴원한 이후에 그는 파르바네 식구들을 비롯한 이웃들과 잘 지냈다. 특히 파르바네의 두 딸들은 그를 좋아했다. 이제 오베는 또다른 행복이 있음을 아는 것 같았다. 오베는 파프바네의 첫째딸이 생일선물로 아이패드를 갖고 싶다고 해서 한번도 컴퓨터를 해보지 않았던 그가 아이패드를 사러 가는 노력도 했다. 그는 컴맹에 아이패드란 존재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웃집 청년 지미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소냐에게 가는 시간을 미뤄지만, 그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 그리고 소냐의 묘지에도 수시로 가서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소냐가 원하는 것도 오베의 이런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어느 아침 그는 홀연히 오베는 소냐에게 갔다. 처음에는 오베가 자살을 한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가 아주 자세한 유서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다시 읽어보니 자살은 아니고, 아마 그가 큰 병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어서 유서도 써 놓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파르바네를 비롯한 이웃들에게 주라고 했다. 그리고 장례식도 간소히 하라고 했지만,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했다. 그렇게 오베는 소냐를 만나러 갔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프레드릭 배크만, 오베, 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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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읽기가 왜 이리 어려운가

이 책은 너무나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1976년 이후 줄곧 과학분야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을 시작으로 관련분야에 관한 많은 책들을 썼고 대부분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지만, 유시민, 최재천 등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해준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추천하면서 책의 내용을 대충 이야기해주어 책의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들이 너무 좋게 평했기 때문에 꼭 읽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어느날 알라딘 중고서점에 싼 가격에 이 책이 올라왔길래 구입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첫 출간 이후 1989년 개정판을 냈고, 2006년에 출간30주년 기념으로 한 번 더 개정판을 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2006 30주년 개정판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쉽지 않다.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한 문맥을 잡기 쉽지 않다. 책 읽는 속도도 너무 느리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앞부분을 읽기도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그런데도 쉽지 않다. 아직 이런 과학서적을 읽어낼 깜냥이 되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살짝 했다. 하지만, 솔직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도 한 몫을 차지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봤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번역을 문제 삼는 글들이 많았다. 어떤이는 이 책의 원작을 직접 소개하면서 잘못된 번역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가 1989년 첫번째 개정판 때 추가한 60페이지 분량의 후주는 책에 포함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예의 없는 번역이다. 많은 독자들이 불만과 이슈를 재기해서인지출판사는 2010년에 다시 개정판을 냈다. 그 책은 번역도 한 사람이 추가되었고, 문제가 되었던 후주도 추가했다. , 책을 절반을 읽고 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책을 덮고 2010년판을 찾아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책은 일단 다 읽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2010년판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이 책을 힘겹게 다 읽어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자연선택설의 주체는 결국 누구?]

이 책의 주제는 간단하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주체는 다름 아닌 유전자. 바로 이것이 주제다. 많은 과학자들의 다윈의 자연선택설의 주체로 개체다, 그룹이다, 종이다, 유전자다, 의견이 분분했는데,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그 주체를 유전자라고 주장하고, 그것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유전자들이 그들의 종족 유지를 위해 조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는 동물행동학자로써, 그는 이 책을 동물 행동에 관한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라는 것이다. 자연선택설의 주체 단위가 개체라고 생각해보자. 이럴 경우,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이타적인 개체를 설명이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그룹이 자연선택설의 단위라고 하떨가? 그렇게 되면 유전의 법칙에 의해 이기적 개체들이 늘어나게 되게 되고, 결국 이기적 개체들만 남게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자연선택설의 단위는 뭐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유전자인 것이다.

...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가장 최적의 물질이 오래 생존하는 최적자 생존 또는 안정자 생존이란 법칙에 의해 보존된다고 한다. 그것은 생명체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분자 상태가 안정한 상태이면 분자 상태로 존재하고, 원자 상태가 안정한 상태인 물질은 원자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최초로 생명체가 발생한 시점을 살펴보자. 여러 가지 반응에 의해 아미노산이 생성이 되었을 테고그것에서 시작하여 생물이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때 생명체는 안정한 상태로 있으려고 했고, 그런 생명체들은 그 안정한 상태를 마구 복제를 했다. 자신을 복제하는 생명체를 자기복제자라고 한다. 자기복제자가 오래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세가지가 있는데, 먼저 장수해야 하고, 그리고 그 수가 많아야 하고 마지막 조건은 복사의 정확도라고 한다. 유전자들은 이런 것들을 갖추었고, 그들 또한 진화해서 자신들이 오래 살아가기 위해 보호막을 만들었을 거라고 한다. 그 보호막이 바로 생명체, 즉 생존기계라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체들이 모두 생존 기계란 소리다. 그리고 유전자들은 더 오랫동안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우수하고 더 효과적인 생존기계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복잡한 보호막이 된 것이다. 그런 과정이 바로 진화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생겨난 것은 바로 유전자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최초 자기 복제자는 아마 DNA와 연관된 분자일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몸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 임시 운반체일 뿐이고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오랜 생명연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염색체는 이런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유성생식은 염색체를 반반씩 만나 또다른 염색체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기계를 왜 늙게 두는가? 그리고 왜 죽게 두는가? 만약 모든 생명체가 죽지 않고 산다면, 자원 부족으로 곧 생명체가 멸종하게 될 것이다. 똑똑한 유전자가 이걸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유전자의 생존 기계를 언제 없애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다음 세대를 번식한 다음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개체를 죽이는 것에 관련된 치사 유전자는 생식활동이 끝난 다음에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개체의 보살핌이 필요 없어지게 되면 치사유전자가 출현하기 시작해서 결국은 그 개체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 즉 다른 생존 기계로 옮겨 탄 후 쓸모없는 기계는 없애겠다는냉철한 킬러와 같은 존재그것이 바로 유전자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지만, 너무 설득력이 있다.

 

[천재 유전자]

, 그럼 이타적인 개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신들의 개체를 희생하면서 다른 개체들을 살려내는 것은 비단 사람들 사이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이타적인 모습은 근친간에서 더 많이 보이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희생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다루고 있다왜 그럴까? 그것은 근친간에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식들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도 자식들 몸 속에 있는 유전자가 더 오래 살아야 그들의 존속에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타적인 개체들의 행동은 바로 자신의 희생으로 더 많은 유전자들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을 근친도라는 용어로 설명해준다. 지은이는 각 가족관계에 따라 근친도를 계산하고몇명을 살리고 죽어야 유전자에게 유리한지 계산한다고 한다. 그 계산할 때는 살려야 하는 개체의 남은 수명도 고려한다고 한다. 지금 내가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것도 유전자가 조정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허무감이 든다고 한다. 나란 존재를 도대체 무엇인가? 유전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생존기계. 그것이 정녕 나의 실체란 말인가?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면 인구 증가의 조절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보통 출산율과 사망율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드는 것도 바로 유전자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 새의 경우는 낳는 알 수도 몇 개가 최적인가를 계산한다고 한다. 몇 개를 낳아야만 자원이 부족하지 않고 종족을 잘 유지할 수 있는지 말이다.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에서 보면 수컷보다는 암컷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그리고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일반적으로 더 각별하다고 한다. 이런 것도 모두 유전자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암컷은 자신의 자식이 확실히 자식이라는 것을 알지만, 수컷인 경우는 자신의 자식일 확률이 100%는 아니라는 것이다. 암컷이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자식이 너의 새끼라고즉 근친도에 있어 수컷은 암텃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근친도가 높은 암컷이 새끼에게 있어 더욱 이타적인 개체가 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보면 외할머니가 친할머니보다 근친도가 더 높은 것이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행동, 인간의 행동을 모두 유전자의 입장,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유전자의 종족 유지에 유리한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설명들이 오묘하게 합리적이라서 반대할 수 없게 만든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반박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의 주장의 타당성에 반기를 들 수가 없다. 그저 한가지 지은이한테 묻고 싶은 것만 생겼다.

 

[묻고픈 것]

그럼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유전자들이 조정을 하는 기계들이 그들의 터전을 망치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잘못하면 그들의 멸종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 그것을 멈추고 있지 않다. 도대체 왜 유전자는 그들의 생존기계를 지구파괴자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궁금하다.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의 대답을 듣고 싶은 대목이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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