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짱아는 유아차도 아기띠도 격렬히 거부하며 오로지 내 두 팔로 안고 다닐 것만 요구했다. 피부의 80퍼센트 이상 나와 접촉되어 있지 않으면 발작하듯이 울어댔다. 한 시간쯤 동동거려 기껏 재워놓으면 5분 만에 눈을 반짝 떠버렸다. 나는 거의 언제나 녹초였다. 엄마가된다는 건 심신이 피폐해지는 일이었다.


--- 휴우... 생각만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이 팍팍 온다. 비슷한 아기를 나두 키웠으니까. 난 업고 있느라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고 손목도 아파서 손에 힘을 줄수 없을 정도였었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정말 심신이 피폐해지는 일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도 엄청 심했을 시기인데 그걸 몰랐다. - P36

"네가 어릴 때 한 짓을 생각하면 네 딸이 낮을 가리는 건 당연하지. 너처럼 심하게 낮을 가린 아이가 세상에 또 있었을라고?"
엄마 말이 옳았다. 사실 딸더러 뭐라고 할 수도 없는게, 꿀짱아의 낯가림은 유전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낮가림으로 악명 높았다. 삼촌들이나 고모부처럼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자지러져서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어야 했다.

---음...
유전 맞는걸거야^^ - P44

내 기억 속에 할머니의 얼굴은 없다. 마치 공기에서따뜻한 손이 솟아나 나를 달래고 어루만진 것처럼 할머니는 등 뒤의 익숙한 촉감과 목소리로만 존재했다. 큰일이 아니구나. 괜찮구나. 세상은 여전히 좋은 곳이구나. 나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병아리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기억이다. 할머니는 내 기억의 시초부터 오늘까지 늘 그런 식으느 존재했다. 그 분은 내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나를 둘러싸고,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않는 목소리로 나를 둘러싸고, 괜찮다고, 예쁘다고,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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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몇 주 뒤 거의 8월 말이었다-그가 밤중에전화를 걸어 로이스 부바, 자신의 이부누이인 그 여자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로 핏줄이니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녀가 그를 미워할지 몰라서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그의 어머니를 미워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루시." 그가 말했다. - P110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딸들은 찡얼거렸고, (내 기억에) 아이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비행기에 타자나는 딸들 사이에 앉아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애썼지만, 종종 화가 났다. 한 아이라도 울면 승객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보았고, 윌리엄과 그의 어머니는 비행기의 다른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 P117

그때 이후로 나는 내 일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녔고-책이 출간되자 외국 출판사들이 나를 초대했고 세상 곳곳에서 페스티벌이열렸다-그러니까 그때 이후 아주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비행기일등석에 탔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칫솔과 치약과 안대가 들어있는 작은 키트를 준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숱하게 경험했다.
삶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 P117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뉴욕은 내가 오래 살아온 곳이고, 익숙한 곳이다. 내 아파트, 내 친구들, 경비원,
정류장마다 한숨을 토하는 도시 버스들, 내 딸들……… 그 모든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은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무서웠다.
나는 그게 몹시 무서웠다.
하지만 윌리엄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는데, 겁이 난다고말할 만큼 내가 그를 충분히 잘 아는 건 아니라고 문득 느꼈기때문이다. - P140

다시 돌아보았을 때도 윌리엄은 여전히 그 사진을 쳐다보고있었다. 그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그가 맞아,
루시." 그러고는 더 조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아버지가 맞아." 나는 다시 사진을 보았고, 윌리엄의 아버지 얼굴에 떠오른표정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남자가 야위어 보였지만, 윌리엄의 아버지는 눈썹이 짙고 눈동자도 색이 짙었으며,
경멸적인 태도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 P155

캐서린과 나 사이에 리듬이 생겼고, 딸들이 종일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침대에 더 많이 누워 있었고, 침대 근처에 큰 의자가 있어서 나는 거기 앉았다. 그건 내게 힘든 일이 아니었고, 힘들었다는 인상을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여인을 사랑했으며, 밤에 내 딸들이돌아와 함께 있으면 그곳이 정확히 내가 있어야 할 장소라고 느꼈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마." 임종을 앞두고 의료장비를 방으로 들여올 때 캐서린이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 이걸 가지고 놀게 해." 그리고 (내 생각에) 아이들은 할머니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혹은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방에 들인 산소호흡기에 적응했고, 마지막이 다가와 간호사들이 찾아왔을 때에도 적응했다. - P181

그들이 모르핀을 주었지만-캐서린은 그것을 정말 마지매이 오기 전까지는
거부했다. 그날도 그녀는 여전히 아주 고통스럽고 불안한모습을 보였다. 내가 살피러 들어갔을 때 캐서린은 침대보를 잡아 뜯으며 거친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이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점점 불편해하는 것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캐서린을 지켜보다가, 내손을 그녀의 팔에 얹고 이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오, 캐서린, 얼마안 남았어요. 약속할게요."
그러자 그 여인이 나를 쳐다보았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캐서린은
침을 뱉고-뱉으려고 했고- 말했다.
 "여기서 나가!" 그녀가 한쪽 팔을 들어올리자 원피스 잠옷의 소매통을 통해
맨팔이 드러났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나가. 너 -이 몹쓸 계집애 같으니! 넌 쓰레기야!"
내가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말을 했다는 걸 대번에 깨달았다.
그녀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암시하는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캐서린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나조차 (어느 정도는)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이 (그 당시에는)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 P182

시간이 좀 걸렸지만, 크리시는 회복되었다.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는데, 윌리엄과 내가 상담을 받았던 그 끔찍한치료사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공회 신부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말했다. "네가 크리시를 위해 올린 기도가 왜 그애에게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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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집에 돌아오니 언니의 방문 앞에 이런 글귀가쓰인 진노랑 포스트잇이 떨어져 있었다. 어쩌다여기까지 굴러온 모양이다. 누군가 언니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구나. 안도하는 밤. 어쩌면 언니가쓴 소설의 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문틈 새로는작은 빛도 비치지 않았다. 나는 포스트잇을 주워언니의 방문에 다시 붙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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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
최근에 윌리엄의 실험실 조교가 윌리엄을 ‘아인슈타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윌리엄은 그걸 정말로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윌리엄이 아인슈타인처럼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않지만, 그 젊은 여자가 말하는 게 뭔지는 알 것 같다. 윌리엄의콧수염은 회색이 섞인 흰색으로 풍성하지만 잘 손질되어 있고,머리칼도 숱이 많고 흰색이다. 커트를 했는데, 일부 머리칼은 삐죽삐죽 뻗쳤다. 그는 키가 크고 옷을 아주 잘 입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인슈타인은 묘하게 광적인 인상을 풍기지만 윌리엄은 그렇지 않다. 윌리엄의 얼굴에는 보통 유쾌한 표정이 고집스럽고 폐쇄적으로 떠올라 있지만, 아주 드물게 한 번씩은 고개를뒤로 젖히고 진짜로 껄껄 웃는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갈색이고 한결같이 크다. 모든 사람이 나이를 먹은 뒤에도 큰 눈을 유지하지는 않지만, 윌리엄은 그렇다. - P11

그러다 어느순간 윌리엄이 나를 쳐다보더니 "버튼,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있어" 하고 말했다. 그가 몸을 잠시 앞으로 숙였다. "요즘 한밤중에 끔찍한 공포를 느껴.
윌리엄이 나를 과거의 애칭으로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그가 이 순간 여기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그는 그렇지 않을 때가많기에 나는 윌리엄이 그렇게 부르면 늘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말했다. "악몽을 꾼다는 거야?"
그는 내 말을 생각해보는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더니대답했다. "아니. 깨어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 어둠 속에서뭔가가 나를 찾아와." 그가 덧붙였다. "이런 경험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정말 무서워, 루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무서워."
윌리엄은 다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 P17

"필" 내가 말했다. "이것만 물어볼게. 요즘은 밤에 어때? 그러니까, 당신이 느낀다던 악몽 같은 공포 말이야."
그리고 윌리엄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것이 그가 내게 전화한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 루시." 그가 말했다. "지난밤에도 그랬어-새벽 세시쯤이었을 거야. 캐서린에 대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이상했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캐서린이 거기 서성이고 있는 것 같았어." 윌리엄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약을 먹어야 할까봐. 정말로 점점 더 힘들어져." 그가 덧붙였다. "캐서린이 나하고 같이 있는 느낌이야. 그러니까, 캐서린의 존재감이 느껴져. 그건・・・그건 정말 좋지 않아, 루시."
"오 필리." 내가 말했다. "어쩜 좋아. 정말 힘들겠다."
우리는 잠시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화를 끊었다. - P43

내 남편은 그해 이른 여름에 병에 걸렸고, 11월에 죽었다. 그결혼이 윌리엄과의 결혼과는 아주 달랐다는 점 외에는 그것이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하지만 이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내 남편의 이름은 데이비드에이브럼슨이었고, 그는-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그였다! 우리는 우리는 정말로서로에게 잘 맞는 상대였고, 이런 표현은 정말로 진부한것 같지만-오, 지금은 더 말할 수 없다. - P45

도시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열린 데이비드의 장례식-당시에도, 지금도 내게는 흐릿할 뿐이다-에서 베카가 내게 속삭인 말이 기억난다. "아빠도 여기 와서 같이 앉고 싶어했어요.‘
"아빠가 그렇게 말했어?" 내가 그애를 돌아보며 물었고, 그애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쌍한 윌리엄, 나는 생각했다.

불쌍한 윌리엄. - P47

그렇게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소 빠르게 연이어서, 윌리엄에게 두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먼저 몇 가지 더 말해두
겠다. - P48

나는 눈알을 굴렸고, 물론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오 필, 제발 그만. 출생증명서를 조작하진 않아. 캐서린은 아이를 낳았던 거야!"
"좀더 조사해봐야겠어." 윌리엄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소리 내서 말했다. "이 바보야. 캐서린은 아이를 하나 더낳았다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묘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았다. - P71

우리는 그날 밤 저녁을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스토랑은 오래되고 편안해 보이는 곳이었고 연중 그 시기에는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우리는 안쪽 깊숙이 들어가 앉아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영 착잡했다. 한때 남편이었던 이 남자 때문에 영착잡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에스텔과브리짓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딸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다. 그는 에스텔이 떠난 것을 크리시와 베카에게 자기가 직접 알려야 하는지 물었고,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윌리엄이 빵 한 조각을 집으면서 "내가 태어나기 전에캐서린이 낳은 아이가 있었어" 하고 말했고, 나는 "그건 알아"
하고 답했다. - P93

내가 그 자리에서 함께 어울리는 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쉬운일이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한순간 같았고, 우리 넷은 가족이었을 때 만들어진 지난날의리듬 속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긴장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이것도 내가 하려는 말의 일부다. 나머지 세 사람도 그런 것같았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그럴 수 있는지 놀라웠다. 나는 세사람 모두를 보았고, 그들의 얼굴은 행복에 젖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 이혼한 부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이 쉬운건 아닐텐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한편으론 부럽네. 만약 남편과 이혼했다고 가정해봐도 ...
아이들과 함께 만난다고 해도 이런 분위기와 감정은 가지지 못할거란걸 확실히 알겠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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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가 나를 평양호텔 로비까지 데려다주었다. 로비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도 헤어지기 아쉬워 서로 손을 잡은 채 시간을 마냥 흘려보냈다. "고모가 곧 또 올게. 다음에 평양 오면 더 많이 이야기하자. 선화랑 계속 붙어 있을 테니까." 선화는 몇 번이나 안녕이라고 인사하면서 문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선화를 호텔 바깥까지 배웅하기로 했다. 선화를 쫓아내듯이 돌려보냈다. 선화는 아빠와 함께 걸음을 떼면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것이 선화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 P134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밀려왔다. 언젠가 어머니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에게 치매가온다면 어떨까.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이 어떨지는 오롯이나에게 달려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도량 그리고 나의 경제력에달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 P139

아버지는 "왜 못 죽게 해. 이런 몸이 됐는데 어째서 죽으면안 돼"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 흥분해서 심각한 얼굴로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영희가 아버지! 하고 부를 사람이 없잖아.
그럼 내가 쓸쓸해. 영희 아버지는 하나뿐인데, 다른 사람은 될 수없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 그러니까 영희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요."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버지를 향해 필사적으로호소했다.
"그렇구나, 알았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울었다. 수년간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분출하는 듯한 소리였다. 나도 함께 소리 높여 울었다.
나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침대 옆에 올라가 낮잠을 잤다. 자기곁에 눕는 마흔 넘은 딸을 보면서 아버지는 다시없을 만큼 기뻐했다. 더 이상 죽여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 P144

사방에서 빵빵 총소리가 들리니까. 제주 아낙들이 많이 죽었어. 학교 운동장에다 강제로 끌어내서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두두두. 끔찍하지.
.
• <수프와 이데올로기> 중에서

어머니가 입원 중인 병실 침대에 누워 제주4.3사건의 체험을이야기했다. 이때 어머니는 돌연 생생하게 1947년 3월 1일 관덕정에서 목격한 내용, 1948년 4월 3일 이후 마을에서 일어난 살육의현장, 잔혹하게 살해당한 자신의 큰아버지와 그 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제주4.3사건의 생존자임을 알리며 <수프와이데올로기>가 시작된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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