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던 일들
신소현 글.사진 / 팜파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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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던 일들]여행을 즐기는 자의 자유분방함이 그려낸 감성 에세이!

 

여행 서적들을 보면 작가의 개성이 묻어난다. 같은 장소를 가도 모두 다른 책이 되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기도 하다. 어떤 이는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고, 어떤 이는 개그콘서트처럼 웃기고, 어떤 이는 스릴러처럼 으스스한 여행기를 쓴다. 문득, 나라면 어떤 여행기를 쓸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닌 체험담, 그 당시의 생각들을 계절별로 정리한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묶었지만 계절감은 그리 실감나지 않는다.

어쨌든 계절에 따라 정리한 감성 여행 에세이 랄까. 여행 장소는 들쭉날쭉, 천방지축, 오리무중의 맘대로 3종 세트다.

필리핀 보라카이의 가게에서 본 한글인 망고이 들썩 (Mango Shake)했다가, 일본 롯폰기 레스토랑 '수지스'에서의 공짜 파이와 커피에 행복해 하고, 아일랜드 더블린의 템플바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걷기도 한다.

봄날 부암동에 올랐다가 영월의 청록다방 쌍화차를 그리는 마음은 무엇일까. 추억이 그리웠던 걸까. 건강에는 좋지만 따끈따끈한 쌍화차는 겨울용인데…….

 

사는 건 곁들이는 거다.

잘 구운 식빵에 크림치즈를 곁들이듯,

짜파게티에 채 썬 오이를 곁들이듯,

당신의 삶에 내가 곁들여져서

더 맛있는 짜파게티가 되고

더 맛있는 세상이 되는 거다.(115쪽)

나에게도 걷고 싶어서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보고 싶어서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쉬고 싶어서 무작정 날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중국 관련 책을 많이 읽으면서 요즘, 중국에 끌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고 싶은 곳도 중국이다. 도시와 시골, 물 따라 산 따라, 토박이들을 만나고 여행자를 만나며, 그렇게 세상을 넓히고 인심을 넓히고 싶다.

직접 찍은 사진, 몸 가는대로 떠나는 여행, 맘 가는대로 쓰는 체험기를 읽으면서 자유와 행복이 느껴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의 자유분방함, 오래 머물지 않아도 좋을 여정의 가벼움, 눈에 보이는 이면의 것도 사랑하는 너그러움, 때로는 감정이 가는대로 즐기는 발랄함이 있는 여행 체험기다. 조금은 색다른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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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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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2]그림과 음악이 만났을 때…….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림에서 받은 느낌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그림이 만난다면 예술가들은 온통 환희와 카타르시스에 휩싸지 않을까.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2. 읽는 독자의 마음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았는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

 

내면적인 우울함을 가졌다는 것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삶, 타인으로부터 인정보다는 조롱으로 인한 상처들을 가슴으로 안고 그림을, 음악을 완성해 가는 두 천재의 모습……. 가슴은 뜨거운데 자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의 세계가 죽음을 그립게 했을까. 저 세상을 그립게 했을까.

 

 

고흐도 그랬던 걸까. 그에게 벼른 '희망'이었다.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리고 지독하게 외롭기만 한 이 세상을 벗어나

아름다운 별들에게 갈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었다. (책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고 있으면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향연이 매우 역동적이어서 빨려들 것 같다. 붓 터치가 굵으면서도 짧아서 더욱 강렬한 걸까. 파란색과 노란색의 조화를 보고 있으면 황금빛 찬란한 저 세상의 유혹 같기도 하고…….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해…….

왜 프랑스 지도 위의 검은 점들처럼

하늘의 빛나는 점들에는 닿을 수 없는 걸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이,

우리는 별에 다다르기 위해 죽는 거야…….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겠지.(책에서)

 

 

라흐마니노프 역시 내성적이고 어두운 면이 있었다. 그가 24세에 초연한 교향곡 1번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신동으로 자란 그에게 "지옥의 주민에게 마약을 가져다준 것 같다."는 작곡가 체자르 큐이의 비난은 얼마나 잔인하고 혹독했을까. 이후 3년간을 술에 빠져 살던 그는 니콜라이 달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최면요법으로 일어서게 된다.

 

 

-당신은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둘 거예요.(책에서)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는 열정을 담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완성하게 된다. 이 작품은 그동안의 아픔과 슬픔, 절망과 고독을 담아냈다는데…….하지만 그의 염세적인 경향은 <죽음의 섬>에서도 드러난다. 염세주의적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뵈클린의 <죽음의 섬>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한다.

 

 

라흐마니노프가 뵈클린의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처럼,

고흐 역시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염세주의가 짙게 깔린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그가

자신의 그림에 음악의 색채와 그 역동성을 담고자 했다.(책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평가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면 누구나 천재성이 번뜩이게 될까. 고통도 실패도 삶의 일부임을,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삶의 일부임을 알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림과 음악이 만나는 순간을 그린 벌써 두 번째 이야기다. 중국어로도 번역되었다는데……. 첫 번째 이야기는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몹시도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는 40명의 화가와 음악가의 삶과 예술을 담았다. 미술관에서 연주를 하는 듯, 음악 홀에서 그림을 영상으로 띄운 듯, 음악의 선율과 미술의 색감의 절묘한 조화가 신선하고 향기롭다. 빛깔을 담은 멜로디, 리듬을 담은 붓터치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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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집 - 사부작 사부작 오월의 전주
이새보미야 글.사진, 박상림 그림 / 51BOOKS(오일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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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집]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전주를 구경한다면 이렇게!

 

전주를 가 본 적은 없지만 전통적인 예향이고 음식으로 유명함을 잘 알고 있다. 예전에 남원을 들렀다가 전주 정식의 다양한 상차림과 그 맛에 감동을 먹은 적이 있다. 그래서 전주는 늘 한 번쯤은 가고 싶은 곳, 진짜 전주 정식을 먹고 싶은 곳이었는데……. 예로부터 전주 음식은 맛깔나기로 소문이 났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전주를 찾은 세 젊은이의 청춘에세이를 만났다.

전주시·집

강원도에서, 서울에서 출발한 친구들이 전주에서 만나 영화도 보고, 전주 음식도 맛보고, 전주 풍물도 즐긴 것을 상큼발랄하게 담은 에세이다. 멋진 사진과 예쁜 그림, 이야기가 깜찍하게 어우러진 책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제에 가 본 적이 없다. 세계의 다양한 영화를 한꺼번에 즐기는 재미는 어떨까. 전주영화제를 매년 챙겨 본다는 생기발랄한 젊은이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나 보다.

 

그 유명한 전통의 빵집이다. 1951년부터 시작했다는 PNB풍년제과 앞에는 줄지어선 사람들로 붐볐을 텐데......가게에서 앞치마를 두른 흑인 종업원, 중국인 직원, 빵을 고르는 일본 젊은이들로 들썩이는 모습에 세계적인 축제가 열렸음을 실감했을 텐데 …….

풍년제과와 PNB풍년제과가 서로 다르다니. 무슨 사연이길래…….

가맥집. 가게맥주집의 준말이다. 동네 가게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병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는 곳이라고 한다. 전국에 가맥집은 많을 텐데, 굳이 가맥집이라고 붙인 센스가 돋보이는 전주 사람들. 사실 가맥집은 예전부터 내려온 전통 아닌가. 어릴 적 집 앞에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 앞에는 늘 평상이 놓여 있었고, 동네 아저씨들이 막걸리나 맥주에 마른안주와 과자, 김치 등으로 술상을 펼쳤는데……. 예전 평상이 오늘날 테이블로 바뀐 것뿐이다.

콩나물국밥에도 두 종류가 있다니!

뚝배기째 펄펄 끓여 내놓는 방식, 뜨거운 육수를 부어 말아 나오는 왱이콩나물 국밥(남부 시장식)이 있다. 콩나물국반과 모주는 세트로 마셔야 한다는데. 모주는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끓인 해장술의 의미다. 새우젓갈로 간을 맞추는 콩나물국밥은 나도 좋아하는데......

전주막걸리집은 대박이다. 헐~ 역시 음식의 고향 전주답다. 콩막걸리 한 주전자에 19가지 반찬이 좌르르 나오다니! 한 주전자씩 추가할 때마다 반찬을 업그레이드해 준다는데.

전주는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는구나. 우린 소금을 살짝 치는데…….설탕을 뿌린 콩국수는 달콤할 것 같다.

혼불문학관, 전주한옥마을, 전동성당,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까지 알차게 보낸 전주여행기다.

전주 이씨 왕조의 본관인 전주, 북한 김일성의 본관도 전주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완주 모악산에는 전주 김 씨의 시조묘도 있다고 한다. 전주 사대부들의 역사를 담은 소설<모악산>도 얼마 전에 나왔는데......

코스소개 그림지도, 마을소개 그림지도, 여행자 노트의 가격들..... 깜찍한 그림에 깨알 같은 글씨들이 멋스럽고 세련되어 보인다.

꼼꼼한 여행기. 더불어 전주에 다녀온 기분이다. 사진과 그림이 잘 조화된 전주여행기다. 입에 군침이 도는 맛깔 나는 전주, 나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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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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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책과 통하고 싶은 날. 읽고 싶은 책!

 

왜 그런지 잘 모르지만 나는 책을 좋아한다. 아마도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슬프고 우울한 날이면 도서관을 찾아 코 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 한참을 책과 노닐다 보면 슬픈 표정은 사라졌고, 양 손 가득 책을 빌려 집에 오는 길은 근심 걱정 잊은 해맑은 얼굴이 되곤 했다. 나는 책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도 좋아하고 새로 나온 책의 휘발성 냄새도 좋아한다. 오래된 책에서는 작고 하얀 책벌레를 본 적도 있고 새로 나온 책을 넘기다 손을 베었는지 선홍빛 피를 흘린 적도 있다. 오래된 책에선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고 새로 나온 책에선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수 있어서 좋다.

 

책등에 베이다.

책을 좋아하기에 공감 가득한 책이다.

취기와 치기와 열기로 책방 하나를 겨우 얻었을 때 듣게 된 말은 '서점의 위기와 출판의 죽음'이었다. '어떻게든 죽이지 못해 조급하구나. 영광의 시절 지나고 1등에서 내려오면 그때부터 모두 시체 취급당하는구나. 아직 살아 있다고 죽도록 외치는 이를 붙잡고 관 속에 우겨넣는...(19쪽)

 

1등에서 내려오면 시체 취급한다는 말에 깊은 동감이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뭐 할 말은 없다. 아직 사고가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면서 차츰 바뀌고 있는 중이다. 2등도 소중하고 꼴찌도 소중하다고 말이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당연지사. 각자의 꿈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잠시 휴식할 수도 있고 잠시 뒷걸음질 할 수도 있고, 잠시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렇게 가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만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게 행복인 걸.

 

우와~ 꼬마 니콜라, 나도 엄청 좋아한다. 장 자끄 상뻬의 글과 그림에는 순수와 감동, 유머가 담겨 있으니까. 상뻬의 어린 시절 아픔을 알고부턴 그의 작품들이 더 좋아졌는데...... 김모세와 이규성의 명랑만화 <꼬마 니꼴라>도 있다니. 그것도 표절작이라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생물이 사라진 섬> 일단 목록에 올린다.

130년 전, 화산의 분화로 섬 절반이 사라진 크라카타우 섬에 생물들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렸다고 한다.

 

공기를 머금고 흘러온 씨앗, 떠내려 온 나무 조각에 살던 개미, 헤엄쳐 온 도마뱀, 어부의 옷에 붙어 옮겨온 식물, 선박에서 섬으로 이동한 바퀴벌레와 쥐, 본래 자유로웠던 새와 나비. 분화라는 절망 위에 특별한 상징이라곤 없는 평범한 생물들이, 날짜에 맞춰 비행기 표를 사지 못하면 다른 국가로 이동할 수도 없는 우리보다 훨씬 더 위대한 방식으로 집을 지었다. 절반으로 잘린 섬이 다시 하나의 온전한 섬이 된다. (199쪽)

 

100년에 걸쳐 섬이 회복되는 과정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절망과 우울한 섬에 하나씩 모여들어 뿌리를 내리고, 유기질을 토해내고, 꽃을 치우고 열매를 맺고 벌과 나비, 새들을 먹이며 그렇게 섬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니. 마치 창조의 순간 같다. 섬 모양의 퍼즐 조각을 메우듯 자신의 역할을 찾아온 생명체들은 모두 필연의 존재들 같다.

 

목록을 보는 순간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많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세상에 이리도 많은 책들이 언제 다 나왔을까. 나도 모르게 말이다. 본격적인 독서를 한 지 기껏 1년 남짓 되면서,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나 보다. 양에 비중을 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생소한 책들이 많음에 놀랐다. 낯선 작가들......

언제쯤 나도 책과 통하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아직은 책을 향한 짝사랑 같다. 아직은...

책과 통하고 싶은 날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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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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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현실~

 

법정에서 다루는 범죄이야기가 살벌할 줄 알았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로 매일 설전을 벌이다보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었다. 어마무시한 사람들을 상대로 매일 법정에 선다면 정신이 온전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을보다 갑의 위치이건만 그리 부러워보이진 않았는데…….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현실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짧은 에피소드들이기에 순서 없이 눈 가는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가 말하는 법원 풍경은 어떨까. 살벌함과 공포만 있을까. 감동과 웃음은 없을까.

 

<막말 판사의 고백>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막말은 누구에게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막돼먹은 죄수에게라도 말이다.

저자가 형사단독판사 시절에 만난 피고인은 상습사기꾼이었다. 특이한 점은 50대 후반이 되도록 전과 20회 이상, 20여 년의 교도소 생활동안 죄명과 형량, 수법이 한결 같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짐작에는 바깥 생활보다는 교도소 신세를 지는 것이 편해서 일부러 그랬을 거라는데…….그리고 법정에서 거짓말만하는 상습사기꾼에게 막말을 하게 되는데…….

 

-피고인, 평생 그런 식으로 없는 친구나 친척을 내세워 반복했는데 또 그 이야기입니까? 교도소 콩밥도 국빈의 혈세로 마련하는 겁니다. 피고인에게는 콩밥도 아깝습니다!

-판사님, 콩밥도 아깝다니요? 저는 이 나라 국민도 아닙니까? 사람도 아닙니까? (책에서)

 

교도소밥이라도 먹으려고 일부러 죄를 지어 들어오는 것도 문제지만 막말은 참아야 했는데……. 아무리 흉악 죄인이라도 그 범죄의 이면에 부모의 애정결핍 등이 자리하고 있기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셈인데…….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격려를 받고 자랐다면, 그에게도 따뜻한 가정이 있었다면 그런 죄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를 수 있었을까.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나는 부분이다. 범죄의 이면에는 가정과 사회, 국가의 책임도 있을 텐데…….

 

나중에 저자는 재판정에서 막말에 대한 사과를 했고 상습사기꾼은 선고대로 복역했다고 한다. 저자는 미안한 마음에 퇴소 후 그가 배운 이발 기술을 써 먹을 수 있도록 작은 교회와 연결 시켜주었다는데…….

한동안은 일에 충실하며 편지를 보내더니 지금은 편지가 뚝~ 끊겼다고 한다. 손버릇, 말버릇이 쉬이 바뀌지 않겠지만 어딘가에서 성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고아원을 방문해 마술을 보여주고 선물을 전하는 모습,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의 질문을 받는 모습에서 따뜻한 판사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서울 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에 대한 이야기는 무려 4편까지 이어진다. 다른 책에서 이미 읽은 사실이지만 부탄 공주의 국가 행복론 이야기도 흥미롭다.

 

한 번도 용서받지 못해 22년간 도둑질로 옥살이한 남자의 이야기는 마음이 저려왔다. 그에게 한번쯤은 너그러운 용서와 이해를 바라는 의사 선생님의 증언에서 장발장이 생각날 정도였다. 누군가 어린 소년에게 너그러운 아량과 따뜻한 인정을 베풀고 지원을 해줬더라면 과연 22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기만 했을까. 나 역시도 마음이 아픈 대목이다.

자신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범죄란 약물이나 주사, 형량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사랑의 결핍, 신뢰의 결핍 증후군인데…….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는 어른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절대 어긋난 길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버린 도벽을 이제라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유죄냐 무죄냐를 판단하는 판사자리의 막중함,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재판정의 권위, 사법부에 대한 신뢰, 시민들과의 친근한 교류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느 직업인들 쉬울까마는 법의 잣대로 행동을 판단하고 인간을 판단하는 자리가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 같다.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따뜻함과 유머, 정의로운 판단, 법의 형평 등을 만나게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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