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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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

  작가 - 구본형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 떠올랐다. 아,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두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특징을 잡아서, 현대에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말하는 점이 비슷했다. 다른 점은 진 시노다 볼린의 책은 여신들만 나왔지만, 이 책은 신화에 나오는 남신, 여신 그리고 인간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헐, 우리에게 다중 인격을 요구하는 건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시 읽어볼까 찾아보니 없다. 아, 애인님에게 선물로 드렸지. 조만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삼천포는 여기까지 가고, 본 책으로 돌아와야겠다.


  이 책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물론 몇몇 경우는 ‘이건 좀 무리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봐서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신화의 현대적 적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현대인들이 무수히 많이 느끼는 감정들을 신화의 인물들에 대입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정도의 제시를 하고 있다.


  즉, 자기 계발서 라고 볼 수 있다.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 이라는 의미라면 계발이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자기 계발이라는 게, 남이 하라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거나 읽고, 공감을 하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1 밀리그램이라도 변화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란, 남이 뭐라고 하면 반발심을 먼저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초반까지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신화와 현대를 논리적으로 잘 연결시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맞아, 그런 법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연상 작용의 기발함에 무릎을 친다. 아,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구나! 특히 ‘크로노스와 시간’, ‘시시포스와 반복적인 일’, ‘니오베와 허영’ 등은 진짜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후반이지만 ‘다이달로스와 사유 불능’도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들면 ‘오디세우스 두 번째 이야기인 교활함’에 관한 것이라든지 ‘안티고네와 불복종’ 그리고 ‘미노스와 추기경과 조소’는 다소 억지스러운 연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건 남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적절한 고전 그림의 삽입과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견해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133쪽 두 번째 문단 다섯 번째 줄의 ‘당시에는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대단한 수치였기 때문에 왕비는 왕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왕비는 여자였고, 그녀가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 것인데 왜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라고 적혔을까?


  차라리 ‘당시에는 남자끼리라도 남에게’로 썼으면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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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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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요시모토 바나나


  처음 이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과일 이름이라니 참으로 특이하다고 넘겼다. 그리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다른 작가에게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나나 너무 좋아!’라고 종종 말을 해서, 과일이 좋다는 건지 작가가 좋다는 건지 나에게 고민의 시간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난생처음 읽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었다. 『유령의 집』, 『엄마!』, 『따뜻하지 않아』, 『도모 짱의 행복』 그리고 『막다른 골목의 추억』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떤 한 사건으로 자신과 주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깊은 사색의 시간을 통해 그녀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이 겪는 사건은 어찌 보면 극적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유령의 집』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미래를 갈 것 같은 둘. 하지만 여자는 그 길을 원했고, 남자는 변화를 원했다. 단순한 동류의 호감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 하지만 운명의 순간이 그들에게 찾아왔고, 둘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글은 차분한 어조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가 보는 ‘이와쿠라’와 내가 생각하는 ‘이와쿠라’ 그리고 내가 따뜻한 눈길을 보낸 ‘노부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확신에 찬 어조로 그와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둘을 맺어준 것은, 그들이 공양하고 배려해줬던 노부부의 유령일 수도 있다. 아니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을지도.


  『엄마!』는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의 무차별 테러로 약이 섞인 카레를 먹고 쓰러진 여직원이 주인공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충격이 컸던 그녀.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약혼자와 자신을 길러주신 조부모 그리고 아기였던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던 조부모와 엄마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양쪽을 다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녀는 엄마를 용서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갖는다. 일에 치어 사는 것도 좋지만, 나와 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주인공은 알려주고 있다. 꼭 독극물 테러를 당해야만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뜻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은 기억을 떠올리는 주인공이 나온다. 부잣집의 서자이지만, 누구보다 자신과 남을 사랑했던 천사 같은 친구. 그와의 짧았던 만남을 추억하며, 주인공은 가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코토의 대사였다.


  “그건 집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 빛이 밖으로 비치니까, 그래서 밝고 따뜻하게 느끼는 거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이 켜져 있어도 썰렁한 경우도 많은걸 뭐.”


  무슨 꼬맹이가 이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지. 하지만 그런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이었기에,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우리 집의 불빛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남들에게 따뜻하게 비춰지면 좋을 텐데.


  『도모 짱의 행복』은 아버지의 부정으로 감정이 메말라버린, 아니 내적으로는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남녀의 애정에 대해 한없는 회의와 불신을 가진 그녀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조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어쩐지 너무도 매사에 무덤덤한 그녀이기에,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너무도 편안한 솜털 안에서 생활하던 여주인공이 나온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고, 멋진 약혼자가 있는 그녀. 하지만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간 약혼자의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던 어느 날. 그를 찾아간 그녀는 예상은 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삼촌이 여행을 떠난 집에 머무르게 된다. 거기 아래층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상호명이 바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었다. 그 가게의 주인인 비슷한 또래의 ‘니시야마’를 통해 그녀는 조금씩 슬픔을 잊어간다.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조금씩 변해간다.


  그 과정이 조금은 눈물겹고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여 보상받으려는 연약한 여주인공이 아니어서 더 괜찮았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보내는 따스한 힐링 메시지’라고 책날개에 쓰여 있는데, 잘 모르겠다. 100% 완벽한 힐링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말이다. 완벽한 힐링이 없기에, 완벽한 방법도 없다고 본다.


  나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했을까?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써먹었던 같다. 온전하게 그 상처를 느끼고 모든 감정을 쏟아 부어 탈진 상태가 된 다음, 내 자신을 위한 변명도 만들어 보았고, 대응책도 연구해보고, 미화시키기도 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사건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과 주변과 사건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아픔을 이겨낼 힘을 가졌고 말이다.


  언젠가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지고 죽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전혀 변하지도 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어차피 지구는 돌고, 시간을 흘러가는 법이니까요.”


  그래, 지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생각해보자.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서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내가 최초도 아니고 유일무이도 아니고 최후도 아닐 거야.


  기지개를 켜고, 맛있는 걸 먹어보자. 그리고 이런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깊고 넓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읽으면 약발이 떨어지니까, 아주 가끔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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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내가 어릴 적에 본 동화책의 표지, 오른쪽은 원서 표지. '왕자의 비밀'이라고 나온  책의 표지는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았다.

 

 

 

  원제 - The Eyes of the Dragon

  작가 - 스티븐 킹

 

 

  언제였더라, 대학교 때였던가? 동네 도서관에서 어린이용 스티븐 킹 소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앞을 들춰보니 꽤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빌릴 책을 골라놓았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책을 내려놓았다. 다음번에는 저 책을 빌리자!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때가 아닌지 그 책은 다시는 볼 수 없었고, 도서관은 문을 닫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끝까지 보는 건데…….

 

  이후 그 책은 존재하지만 볼 수가 없는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되어, 내 기억에만 남았다.

 

  그런데 얼마 전, 지방에 사시는 지인이 자신이 일하는 동네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으셨다는 염장을 지르셨다. 이럴 수가! 서울에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 책을 읽기 위해, 토요일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노란 표지의 완전 어린이용 두 권짜리 책을 손에 받아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좋아서.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두 시간도 채 안 걸려서 다 읽었다. 물론 어린이 용이라 글자가 좀 크긴 했다.

 

  내용은 그냥 간단하다. 들랭이라는 왕국에 두 왕자가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왕위를 위해 태어난 큰아들과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언제나 실패만 하는 작은 아들. 그리고 모든 동화가 그렇듯이 나라를 말아먹겠다는 야심을 가진 궁정 마법사가 있다. 그는 자기가 맘대로 하기 쉬운 작은 아들을 위해 마법의 독약으로 왕을 죽이고, 그것을 큰아들에게 뒤집어씌운다. 뾰족한 탑에 감금된 큰 왕자. 그는 이제 목숨을 건 탈주 계획을 세우는데…….

 

  예전에 아주 잠깐 읽었을 때는 두근두근하고 왕자가 어떻게 탈출을 하는지, 마법사를 어떻게 물리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이번에 완독을 하고 나니, 그 때의 감정과는 아주아주 많이 달랐다. 물론 내가 그 동안 나이를 먹은 것도 있지만.

 

  그 동안 범죄 수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큰 왕자의 탈주 계획을 보고는 '얘는 편집증 환자가 틀림없어! 아니면 집착이 강하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마법사가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한 작은 왕자를 보고는 '아버지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애새끼가 저 모양이지. 역시 가정교육이 문제야.'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왕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비슷한 꿈을 꾸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큰 왕자는 사실 능력자였던 걸까? 이런 의문까지 들었다.

 

  도서관 문이 닫기를 기다려 지인과 심야 영화를 보고,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비록 무박 2일로 지방을 후다닥 갔다 왔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불필요한 사족을 붙이자면, 저 지인분이 지금 현재 내 애인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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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2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스티븐 킹 소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니. 몰랐어요 ( '')~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 먼 거리 달려가기는 그 마음... 저도 왠지 알 것 같아요.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다별님~!

바다별 2012-08-27 23:30   좋아요 0 | URL
아직 저 책은 완역본이나 그런 걸로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아쉽죠. 감사합니다 ^^
 
기생령
고석진 감독, 이형석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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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고석진

  출연 - 한은정,이형석,효민

 

  작년에 본 영화중에 제일 무서웠던 작품이다. 극장엔 관람객들이 열 명 남짓 되어서, 편하게 무서움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주연 배우가 연기를 제일 잘 한 영화였다. 여기서 주연 배우는 한은정씨와 아역배우 이형석군이다. 특히 아역 배우의 연기는 그야말로 대단하다고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 19세 관람불가인데, 저 배우는 자기가 연기한 영화를 봤을까? 어차피 대본이나 그런 건 찍으면서 다 봤을 텐데? 궁금하다.

 

  남편의 형 부부가 갑자기 살해당하는 바람에, 그 집의 유일한 생존자인 조카를 돌보기 위해 이사를 한 주인공 가족. 집은 크고 정원도 근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을 끄는 것은, 정원 구석에 있는 이상한 작은 건물 하나. 형님의 어머니, 그러니까 조카의 외할머니가 무당이셨는데 거기엔 그 분이 쓰시던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이사한 이후부터 이상한 꿈에 시달리는 주인공과 그녀의 여동생.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인지 조카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고, 섬뜩한 눈빛을 번득인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있었던 무서운 일이 서서히 밝혀지는데…….

 

  영화는 상당히 잔인했다. 부부가 죽는 장면이나 폐허가 된 건물에 버려진 사람들의 상태라든지, 피로 뒤범벅이 된 욕실 장면 등등. 물론 형 부부가 저지른 일이 제일 끔찍하긴 했다. 너무도 잔인했고 말이다.

 

  그런데 영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냥 도망치고 죽이고 썰고 자르고 찌르고 사지 절단하는 영화가 아닌 이상, 미스터리 요소를 도입한 공포 영화라면 서서히 밝혀지는 비밀이 있어야 한다. 그걸 파헤치면서 느끼는 공포가 잔인한 장면들과 연관되면서 무서움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썰고 자르고 죽이는 잔인한 장면 따로, 공포의 근원이 되는 사건 따로.

 

  왜냐하면 식상한 전개와 스포일러를 하는 포스터 때문이다.

 

  ‘가족 상속 괴담’이라는 대만 영화가 있다. 원하던 것은 다르지만, 그걸 위해서 누군가를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리고 집을 물려받았다는 것도. 그리고 희생된 그 존재가 보복을 하는 것까지. 그러니 대충 보면, 아 이거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물론 100% 새로운 것은 없으니,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포스터였다. 그것을 보면 커다란 항아리가 나오고, 거기에 한 남자아이가 숨어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살면 안 돼요?’라는 카피.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 창고에서 항아리가 나오고 꿈에 자꾸 어린 아이가 나온다면 대충 때려 맞출 수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슬슬 이야기 전개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물론 막판까지 아슬아슬하니 줄을 타는 느낌을 주는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진짜, 아역 배우의 연기는 요즘 유행어로 甲이었다. 그 배우 덕분에 영화가 긴장감 있게 끝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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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ute Witness

  감독 - 앤소니 월러

  출연 - 마리나 주디나, 페이 리플리, 에반 리차즈, 올렉 얀코프스키


  어렸을 적에, 동생과 비디오를 꽤 많이 빌려보았다. 그런데 남매사이라는 게 뭐랄까, 영화에서 키스 장면만 나와도 서로 민망해했다. 그래서 주로 사람을 죽이는 호러 스릴러 영화를 주로 빌려다보았는데, 이런! 그런 영화에도 은근히 야한 장면이 종종 나오곤 했다. 하여간 처음에 그런 부분이 나오면 빨리 감기를 하거나 시선을 외면하곤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가 아무렇지 않게 보았다.


  이 영화도 그 당시 동생과 함께 본 기억이 난다.


  소련으로 영화를 찍으러온 미국 제작팀. 주인공은 비록 말은 못하지만 소품 담당으로 일을 열심히 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려다가 뭔가 놓고 온 것이 생각나 다시 스튜디오로 향한 주인공 빌리. 그런데 누군가 영화를 찍고 있었다. 소련 측 스태프들이 포르노를 찍고 있었던 것. 발걸음을 돌리던 그녀. 하지만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그들이 여자를 죽이면서, 그 광경을 찍는 것이다. 현장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들켜버린 빌리. 겨우 언니의 도움으로 빠져나온다. 경찰을 불렀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은 단지 그녀가 영화 찍는 것을 오해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진짜로 스너프 필름을 찍고 있던 조직은,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 동시에 그들을 노리던 비밀경찰도 사건에 개입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혹시라도 잡힐까봐 두근두근 조마조마했었다. ‘어떡해!’라거나 ‘말도 안 돼!’라고 중얼거리다가 서로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 정도로 주인공이 스튜디오에서 쫓기는 장면은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게다가 그녀는 말도 못하니, 전화로 누군가에게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더 손에 땀을 쥐고 안타깝게 보았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이후는, 배후에 엄청난 조직이 있다는 것도 나오고 비밀경찰까지 등장하니까 판이 아주 커진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극의 조임이 약간 풀어진 느낌? 갑자기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초점이 분산되면서 시선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빌리 언니 부부의 약방의 감초 역할은 팽팽하게 잡아당긴 긴장의 끈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 시간은 너무 길었다. 그래서 느슨하게 풀어주려다가 완전히 놓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꽤나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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