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칼럼>


더 추락할 게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 부제 : 고 노무현과 엄행수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5월 23일) 소식을 접하며 행복의 조건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 높은 권좌에 오르지만 않았다면 자살하는 죽음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면 좋은 생애를 살았을 것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최근 어느 일간 신문(5월 14일자)에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게재되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구는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가 주도한 것으로, 미국 하버드대 2학년생으로 전도유망했던 남학생 268명의 일생을 72년간 걸쳐 추적해 본 것이다. 연구 대상자의 약 3분의 1은 정신질환을 한때 겪었음을 알아냈다. 하버드 엘리트라고 해서 다 좋은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던 것. 이 연구에서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요소는 7가지로 추려졌다. 그 첫째가 ‘고통에 적응하는 자세’였고, 교육과 안정적 결혼, 그 밖엔 금연ㆍ금주ㆍ운동ㆍ적당한 체중 등의 건강을 위한 것들이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행복의 조건의 으뜸이 ‘고통에 적응하는 자세’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고통을 견디는 능력’의 유무를 말할 것이다. 이 연구에 근거해서 생각할 때,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중엔 고통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한때 이어졌던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도 고통에 견디는 능력이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물론 자살의 원인은 본인만 아는, 더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더 추락할 게 없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


박지원 저, <예덕선생전>이란 작품에 매력적인 인물 두 사람이 나온다. 한 사람은 엄행수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똥을 져 나르는 일에 종사한다. 그는 남이 그에게 고기 먹기를 권하면 ‘허허, 목구멍을 지난 다음에야 나물이나 고기나 마찬가지로 배부르면 그만이지, 하필 값비싸고 맛 좋은 것만을 먹을 것이 무어냔 말이오’하고 사양하며, 또 새 옷 입기를 권하면 그는 ‘저 넓디넓은 소매돋이를 입는다면 몸에 만만치 않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면 다시금 길가에 똥을 지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 아니오’하고 사양한다. 그는 더럽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자기 삶에 불만이 없고 분수를 지키며 평화롭게 산다.


또 한 사람은 선귤자인데, 그는 남들이 모두 무시하는 엄행수를 존중한다. 그에 의하면, 엄행수는 하는 일이 더럽고 신분은 미천하지만 마음이나 행동은 의롭기 때문에 존경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엄행수를 ‘예덕 선생’이라고 부른다. 선귤자는 말한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차린 음식이 너무나도 먹을 것이 없을 땐, 반드시 이 세상에 나보다도 못한 가난뱅이가 있음을 생각했네. 그러나 이제 저 엄행수의 경지에 이른다면 무엇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이 없겠지.”


엄행수는 더 이상 추락할 게 없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는 챙겨야 할 가족이 없으니 가족으로 인한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명예도 없다. 그러므로 근심도 없다. 그저 배고플 때 먹는 한 끼의 식사와 달콤한 밤잠이면 충분한, 그런 삶을 산다.



중요한 건 삶이 아니라 삶에 대응하는 방식


엄행수의 삶을 통해서 보면 행복의 조건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밝듯이, 불행 속에서 더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는 게 행복이라는 역설도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삶 자체가 아니라 그 삶에 대응하는 방식일 것이다. 이것이 행복 또는 불행의 인생길로 갈라놓는다.


명예가 실추되는 일로 또는 다른 불행한 일로 큰 고통을 받을지라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게 과연 최선일까, 그러한 시련을 새 인생을 사는 계기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이렇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볼 것이다. 자살로 죽느냐 굳건히 이겨내고 사는냐의 선택이 바로 삶에 대응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은 부족함이 많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미 반성과 뉘우침으로 얼룩져 불행해진 사람에 대해선 그 누구도 마음의 돌을 던질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어리석은 행동으로 괴로워 할 때가 있는데, ‘난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하면서도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모습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번 전직 대통령의 자살 사건은 국민들에게 많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동안 있어 온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세인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명예 훼손과 같은 일로 ‘추락’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추락한 자의 비애를 ‘자살’로 마무리한 그들의 고통스런 마음을 헤아려 보며 엄행수가 떠올랐다. 그를 통해서 더 이상 추락할 게 없는 밑바닥의 삶이어서 오히려 불행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엄행수는 행복의 조건 따윈 갖추고 있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불평 없이 사는, 아름다운 덕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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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무엇을 단정하거나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깨달음은 ‘독서’가 준 선물이었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것은 결국 살면서 갖게 될 이런 저런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은 이렇게 글을 썼다. 하지만 내일 쓰는 글은 오늘과 다른 견해를 가진 글이 될 것이다. 사람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닌, 흐르는 물과 닮았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성’의 인생을 사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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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유형지에서 (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변신'을 읽고 -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어느새 거대한 벌레로 변신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그레고르는 상과대학을 나와 군대생활을 마쳤고, 아버지가 5년 전 파산한 이후 세일즈맨이 되어 성실하게 일하며 부모와 17살의 누이동생을 부양하며 살고 있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던 그에게 이런 기이한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그가 한 마리의 벌레로 변하자 가족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를 대신하여 돈을 벌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은행의 말단 수위로 취직하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고, 여동생은 가게 점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리고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한 방에 세 명의 하숙생을 받게 되어 그로 인해 그레고르의 방은 짐으로 가득 찬 창고처럼 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는 불행하게도 벌레로서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는 공간조차 없게 된다.


벌레란 어떠한 가치도 지니고 있지 않은 혐오스러운 존재이다. 가족은 한때 가족이었던 그에게 식성에 맞지도 않은 음식만 그의 방에 가져다 주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들에게 가족이 아닌 것이다. 가족 모두 그를 점점 소외시키고 짐스러워함으로써 그레고르의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벌레 같은 존재가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우리에게 잘 보여 준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 대해서 가족은 처음엔 무척 놀라고, 그 다음엔 가엽게 여기고, 무서워하고, 분노하고, 화내고, 나중엔 귀찮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며, 그로부터 점차 식욕을 잃고 비실대다 시체가 되어 하녀에게 발견된다. 결말에는 벌레가 죽은 뒤 가족은 소풍을 갈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귀찮은 존재가 죽었으므로 예전의 삶의 즐거움을 되찾은 것이다. 이것이 ‘인간’임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여기서 벌레라는 설정이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 독자라면 벌레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버지가 병에 걸려 누워서만 지내는 환자로 변했다고 가정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혹은 각자의 삶에서 소외된 적 있는 자신의 모습을 벌레의 처지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비인간적인 면을 다룬 이 소설의 핵심은 물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버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인간이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은 어떻게 변화하고, 또 주위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화할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변신이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대응하는 방식일 것이다. 벌레가 되어 버린 그레고르는 자신이 인간이었던 사실을 점점 잊게 되고 진짜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가족이 그를 가족이 아닌 벌레로서만 취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레고르는 몸은 벌레일망정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하나 가족은 그를 벌레로만 인식하고 소외시켜 버린다. 그가 가장 사랑한 누이동생마저 처음엔 벌레가 된 그를 잘 돌봐 주다가 나중엔 마음이 변하여 그를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어머니 역시 모성을 가지고 늘 그를 걱정하지만 그레고르를 쫓아내자는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벌레는 일상적 세계(가정과 사회)에서의 소외됨을 상징한다. 누구든지 한번쯤은 소외감이 느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사소한 일로 이런 경험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외국 얘기가 나왔는데 나만 외국 여행을 한 적이 없어서 친구들의 화제에 끼지 못한다거나, 친구들의 직업은 모두 화려해 보이는데 나만 무직자임을 자각할 때 마치 이 소설 속의 그레고르처럼 소외감과 고독을 느낄 것이다.


벌레로 변신한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갖는데,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면서는 그런 진지한 사색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일상 생활을 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윤택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또 하루라도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생활에 타격이 오기에, 한가롭게 생각할 여유가 없이 바쁘게 살았던 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었던 것.


이처럼 벌레로 변신하기 이전엔 노동이 그레고르를 자신으로부터 소외시켰다면, 변신한 이후엔 자신의 경제적 무능함이 그를 인간세계로부터 소외시킨다. 결국 가족이라는 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초를 두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논리에 영향을 받는 관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즉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인간학이라고도 한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는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돈을 못 버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면 이렇게 구박을 받아도 마땅한가,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혜택을) 받아야만 호의적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물질만 중요시하여 인간의 정신이 황폐해진다면 너무 몰인정하고 살벌한 세상이지 않은가, 만일 가족 중 누군가가 벌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어떤 태도를 갖는 게 바람직한가, 인간의 운명이란 원래 모순과 불안과 허무 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일까 등등….


밀란 쿤데라(‘소설의 기술’의 저자)에 의하면,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소설은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존이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소설가들은 인간의 이러저러한 가능성들을 찾아냄으로써 실존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누구인가를 보게 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알게 해 준다는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싸울 일이 생기는데, 싸움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상대방의 밑바닥까지 본 느낌을 가져야 비로소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관계가 좋은 상태에선 상대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인간의 실존은 극단적 상황에서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쓴 카프카는 그런 극단적 상황을 만들어 인간의 실존을 보여 주려고 인간을 벌레로 만들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먼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극단적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독자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다. “소설 속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신한 것처럼 어느 날 나의 부모님이 치매에 걸린 환자로 변신한다면, 나의 실존은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까?”


인간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각에 비추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대인 관계에서 우리가 상대방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서로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까. 누구든,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은 늘 변화가능성이 많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를 알려면 우선 ‘인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적인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적 사색의 기회를 갖고 싶은 독자에게 ‘변신’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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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IC 2009-06-0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번을 다시 봐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명작입니다.
늘 잊지 않고자 노력하지만, 쉽게 잊혀지는 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글 정말정말 잘 읽고 갑니다.

페크pek0501 2009-06-07 13: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을 읽은 뒤에 그 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리뷰를 써서 좋은 점은 책의 내용을 훤히 꿰뜷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권을 읽고도 마치 두 권을 읽은 것처럼 좋은 공부가 됩니다. 좋은 글이라 하시니 고맙습니다.

옹달샘 2009-10-2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학창시절 변신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었어요. 이 글을 읽으니 그 때의 감동이 밀려오는군요. 정확한 분석과 사색이 담긴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좋은 글 읽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09-10-26 12:30   좋아요 0 | URL
옹달샘님, 고맙습니다. 오늘 본 동화, 가능성 많은 작품입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행복한 작업, 많이 즐기며 하세요.

2010-02-07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0-02-07 13:00   좋아요 0 | URL
반가워. 다음부턴 로그인 하지 않고 댓글 남겨도 돼. 그냥 이름 쓰는 칸엔 이름 적고 비밀번호는 아무거나 본인이 기억할 수 있는 숫자 적으면 돼. 비밀번호를 쓰는 이유는 나중에라도 본인이 댓글을 삭제하고 싶을 때 그 비밀번호를 써야 되기 때문이야. 아무나 삭제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 내가 쓴 글 중 책 리뷰만 읽으라고 말하고 싶네. 공부에 도움이 될 듯 싶어서. ㅋㅋ
 


잘 쓴 일기는 접속사·반복어 수 적어


어머니들이 아이 교육에 있어 관심을 많이 두는 것 중의 하나가 ‘일기 쓰기’일 것이다. 일기를 잘 쓰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나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일기를 잘 쓰는 아이가 될까,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어머니들을 위해 한 가지 요령을 전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일기를 쓸 때 그리고, 그런데, 그래서, 왜냐하면 등의 접속사를 많이 쓴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잇기 위해 써야 할 때가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접속사를 많이 써서 문장이 산만해지는 것은 좋지 않다. 접속사의 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문장이 좋아진다. 예를 들면 ‘학교에 가다가 친구를 만났다. 그래서 반가웠다.’와 같은 문장은 이렇게 고친다. ‘학교에 가다가 친구를 만났다. 반가웠다.’ 더 간결한 문장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좋은 문체는 간결체라는 것을 기억하여 접속사를 줄이는 훈련을 해보는 것이다.


또 ‘감기가 들었다. 왜냐하면 우산을 잃어버려 세차게 오는 비를 맞았기 때문이다.’의 문장은 이렇게 고쳐 보자. ‘감기가 들었다. 우산을 잃어버려 세차게 오는 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를 없앰으로써 문장이 더 세련되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엔 반복어를 없애는 것이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좋고 봄보다는 가을이 좋다’의 문장에서 ‘좋다’라는 낱말이 중복해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나는 여름보다 겨울이, 봄보다는 가을이 좋다’로 수정함으로써 더 좋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때 유의할 점은 낱말이 생략되는 부분에 반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복되는 낱말을 없애고 다양하게 낱말을 사용할수록 글은 좋아진다.  

 

-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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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칼럼>


두 갈림길 - 부제 : 앗! 할말없음


내년이면 큰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게다가 올해 둘째 딸아이마저 중학생이 되었다. 조그맣다고 꼬마 취급을 해 온 막내인데, 요즘 부쩍 커서 키가 나와 비슷해진 딸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딸들의 성장이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쓸쓸한 감회에 잠기게 된다. 딸들이 커갈수록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는 것이니 머지않을 나의 노년기를 예감하게 되어서일까.


문득 친정어머니가 떠올랐다. 그 옛날 어머니도 나의 성장에 흐뭇하면서도 당신은 조금씩 인생의 무대 뒤로 사라지는 듯한 쓸쓸한 기분이 들었으리라. 그러면서도 지금의 나처럼 딸의 성장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도 싶었으리라.


딸들이 ‘뜨는 해’라면 나는 ‘지는 해’가 되는 셈이다. 거울을 볼 적마다 나의 ‘늙음’이 느껴져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이 어머니답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의 성장과 나의 늙음으로 기쁨과 슬픔의 갈림길에 놓인 것만 같다.



그 갈림길에서 요즘 갖게 되는 화두가 있다. 어떤 어머니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학식이 풍부하기보다 지혜롭고 바람직한 어머니가 되고 싶은데 도무지 자신이 없다. 자식을 키우면서 올바른 생각을 모색해야 할 때마다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우선 딸의 이성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느 날 둘째아이가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남녀 공학 교실에서 자유롭게 공부하는 아이는 사고방식 또한 나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평소 나는 그것을 염려하던 터라 처음엔 이성 교제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표했다. 왠지 남자친구를 만나러 다니면 성적이 떨어지고 나쁜 방향으로 빠질 것만 같아서였다. 이성 교제를 반대하고 나서 육체적 순결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혼전에 순결을 잃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 남자들은 순결한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 결혼한 뒤에도 여자의 과거사로 인해 결혼생활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 등을 들려주었다.


순결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다른 걱정이 뒤따랐다. 만에 하나, 딸이 어떤 이유로 순결을 잃는 경우가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순결의 상실로 인해 지나친 열등감으로 괴로워하거나 어떤 죄의식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다. 딸이 성인이 되어 진실로 사랑하는 연인과 육체적 관계를 가지고 나서 그 상대방과 이별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잘못으로 순결을 지키지 못할 경우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그땐 정말 난감한 일이다. 실제로 성추행을 당하여 자살하는 여성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순결 교육의 부작용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순결이 생명을 버릴 만큼 소중한 것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순결을 강조할수록 그것을 지켜내지 못해 생기는 심적 고통을 극복할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요즘 혼전에 동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아마도 딸들이 결혼 적령기에 있을 쯤이면 동거문화가 더 확산될 것이다. 신문을 통해, 이미 프랑스에서는 동거가 결혼에 버금갈 정도로 제도화하여 있으며,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 자유롭고 분방하게 크는지라 순결성이 사라지는 시대가 올 거라는 말도 있다.


이에 따라 성에 대한 우리 기성세대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고들 한다. 성에 대해 보수적인 부모는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와 큰 충돌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딸의 책가방에 피임약을 넣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충격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순결을 못 지킬 바엔 여식이 불행하게 미혼모가 되는 것은 최소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말도 안 되는 소리로만 여겼는데 지금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를 대비하여 어머니로서 마음가짐을 달리 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엔 친구 문제에 대해서도 마음가짐을 달리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언젠가 둘째아이가 친구 둘을 데리고 집에 왔다. 전화도 자주 하는 친구들인 걸로 보아 딸과 친한 아이들 같았다. 엄마로서 나는 그 애들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길 바랐다. 그런 애들을 닮아서 딸애도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싶었다. 그 애들이 가고 나서 궁금하여 딸에게 물었다. 걔들은 공부 잘 하니?, 반에서 몇 등 하니? 하고 물은 것이다. 다음 순간 성적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옛일이 기억났고 부끄러워졌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한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어머니가 내게 성적을 물으셨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 친구에게 다짐을 받기라도 하듯 말하였다. 그것은 ‘공부 잘 하는 애와 놀아야 너도 잘 하게 된다’는 뜻의 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머니가 좋게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날 내가 바로 그런 어머니가 된 것이다.(앗! 할말없음, 첫 번째)


내 물음에 딸아이가 대답하였다.


“다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야, 근데 내가 공부 못하니깐 걔네들 엄마가 나를 싫어할지도 몰라.”

“…….”(앗! 할말없음, 두 번째)


딸의 친구 중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 애에 대해 가정환경이 어떠한지 자세히 묻기도 한다. 혹시 그 어두운 면이 내 딸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그것만을 염려하는 것이다. 밝은 애를 사귀면 좋겠다고 말하는 내게 이번엔 딸이 묻는다.


“엄마, 그럼 걔는 누구와 사귀어야 돼?”

“…….”(앗! 할말없음, 세 번째)


자식에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말해야 옳은데, 나는 개인의 이득만을 중시하라는 뜻을 은연중에 전했던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만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가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난 딸들이 정이 넘치는 따뜻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어머니로서 나는 두 가지의 갈림길을 자주 만난다. 과거에도 만났고 앞으로도 수없이 갈림길 앞에 있게 될 것이다. 기혼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만큼이나 좋은 어머니가 되기도 어려운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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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이렇게 인간은 착각을 하며 사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에라도 ‘진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진실’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또 알아야 할 것은, 어느 부분에선 나도 끝까지 모르는 ‘진실’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친정어머니에 대해서, 딸에 대해서,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서, 좋은 어머니에 대해서, 늙음에 대해서, 딸의 친구에 대해서, 개인이기주의에 대해서, 이성 교제에 대해서, 순결에 대해서, 피임약에 대해서, 동거문화에 대해서,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 그리고 갈림길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에 골몰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의 좋은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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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해♥ 2009-05-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저지해예요^^
학교컴퓨터시간끝나고시간이남아서블로그들렷어요~
앞으로도자주들릴게요~

페크pek0501 2009-05-12 17:56   좋아요 0 | URL
반가워 지해야. 논술수업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어엿한 대학교 2학년생이라니...시간 빠르다. 대학생활은 재밌겠지? 내가 보낸 이메일로 보면 블로그의 화면이 작을테니 블로그의 주소를 복사 붙이기 이용해서 다음 사이트에서 검색해서 큰 화면으로 보도록 해. 즐겨찾기 해 놓으면 편할 거야. 또 보자.
 
젊음의 탄생 (양장) - 젊음의 업그레이드를 약속하는 창조지성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음의 탄생’을 읽고 - 오리로도 보이고 토끼로도 보이는 건 생각의 힘


이 책은 77세의 저자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읽혀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젊음의 탄생>이지만 이것을 <생각의 탄생>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우리는 흑백논리와 OX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라는 본문의 글들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기존의 생각을 바꿀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은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중요하랴. 오늘을 사는 현대인 모두에게 중요하리라.


누군가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외모나 직업, 학력도 그 사람을 파악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은 그 사람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이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생각은 행동의 씨앗이므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하는 문제도 따지고 보면 어떤 생각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생각에 따라서 아주 다른 인생을 살게 되기에.


저자가 독자들에게 힘주어 말하고자 하는 것 중,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열정을 가져라 - “꿈을 향해 목숨을 건 그런 바보들이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열정에 몸을 불사르는 그런 미치광이들이 사회를 바꾸어갑니다.”


둘째, 다양성을 중요시해라. - “하늘처럼 열린 공간에서는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날 수 있습니다. 360명이 360도의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지요.”


셋째, 질문을 해라. -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타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질문하는 버릇을 어린아이 때부터 길러 준 가정교육 때문이라고 합니다.”


넷째, 창조성을 가져라. - “여름밤 아버지는 덥다고 창문을 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들어와서는 모기 들어온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합니다.(중략) (어떻게 할까요.) 망으로 된 창을 만들어 다는 것이지요. 바람은 들어오고 모기는 막아주는 이 방충망을 창조하는 것. 그것만이 분쟁 없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 책에는 색다른 구성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매직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나눈 점이다. 카니자 삼각형, 개미의 동선, 매시 업, 지의 피라미드 등 아홉 개 제목의 매직카드는 각각 내용을 구분짓는 장(章)의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끄는 것은 ‘개미의 동선’이란 매직카드에서 우리의 삶이 ‘우유성으로 가득 찬 숲’과 같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우유성이란, ‘반은 규칙적이고 반은 우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예상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게 우리들의 삶이요, 그 현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날쌘 사슴을 쫓아 경주를 하는 사냥꾼의 새벽 숲이야 말로 가장 우유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또 축구가 사람들을 매혹하고 열광케 하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처럼 우유성에 가득 차 있는 경기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게 ‘빈칸 메우기’라는 매직카드에서 인생을 ‘빈칸 메우기의 퍼즐’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삶의 반은 운명처럼 주어진 문자가 있고 그 옆에는 마음대로 자신이 써넣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백이 있다는 것.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처럼 정해진 부모와 관계를 맺는다. 또 성장하는 동안의 가정환경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노력한다든지 어떤 재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따라 삶의 좌표는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빈칸 메우기’이다. 빈칸 메우기는 삶을 변화시킨다. 축구경기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기에 인간은 의욕적으로 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평생 정해져 있는 어떤 운명에 따라 살아간다면, 즉 빈칸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맥 빠지는 일인가.


“빈칸은 결핍이다. 그러나 결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목표를 낳고 목표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창조를 낳고, 창조는 당신의 젊음을 더욱 새롭고 찬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177쪽>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183쪽>


“산업사회의 열등생(우리나라)이 정보사회의 우등생이 된 것은, 양이 없고 땅이 없고 전력이 없고 부존자원이 없었던 빈칸이 만들어 낸 창조력 덕분입니다.”<187쪽>


저자는 자원의 ‘결핍’이 낳은 ‘발전’의 예로 우리나라를 들었는데, 이런 예를 개인의 삶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보다 부족한 면이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는 실제로 아주 많다. 어떤 게임에서든 이긴 사람보단 진 사람이 그 다음의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열망이 더 강한 법이다. 패배감을 맛본 자는 갈망으로 인해 더 많이 노력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열등감이 오히려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등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열등감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만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점이다. 자신도 약점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약점이 있는 타인에 대해 무시하기보다 포용하는 아량을 베풀 수 있다.



이 책 속에 ‘오리토끼 그림’이 나오는데, 이것은 ‘오리’로도 볼 수 있고 ‘토끼’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오리로 보일 때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엔 오리가 지워지는 것이다. 이와 연관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부자와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만약 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부자가 찬이 많은 식탁에도 흥미가 없고, 빈자는 찬이 없는 밥상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할까. 언제나 할 수 있는 쇼핑에 권태를 느끼는 부자와 월급날에만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빈자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어느 쪽이 더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오리토끼 그림’처럼 생각의 각도에 따라서 사물은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는데….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희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고 비극의 무대에서 살 수도 있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비극적인 일로 느껴지는 것도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 다시 바라보면 희극적인 일로 생각되는 경우가 우리 삶에 많으니까. 이렇게 비극도 희극으로 변화시키는 건 발상의 전환, 곧 생각의 힘이다. 그래서 ‘생각’에 대한 글이 많은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를 처음 만난 것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 서장에 씌어진 ‘풍경 뒤에 있는 것’이란 글을 아직도 수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확하게 표현한 저자의 글들에 감탄하곤 했는데, 그때의 글들에 대한 기억으로 <젊음의 탄생>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마음이 젊어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연령에 상관없이, 보다 높은 곳을 향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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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는 글


- (그 그림은) 오리로 보일 때에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에는 오리가 지워집니다. 언제나 둘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관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자유이면서도 때로는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편으로 쏠리는 편향성을 갖게 됩니다. 쏠린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98쪽>


- 우리가 익혀야 할 진정한 지식과 진리는 오리-토끼 그림처럼 항상 양면성을 띠고 있는 모호한 도형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고정 시점처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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