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 (2disc)
김종현 감독, 이범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재미없는 영화였다
평론도 좋고 책이 워낙 유명해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다소 실망스럽다
너무 밋밋하고 배우들 연기도 너무 무난해서 진짜 평범 그 자체다
엔터 시네마에서 봤는데 우리까지 포함해서 열 명도 안 됐다
내 옆 자리에 혼자 영화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극장이다
그런데 왜 혼자 보러 왔을까?
이런 영화는 집에서 컴퓨터로 다운받아 보거나 비디오로 봐도 충분한데 말이다
혼자 이런 영화 보려고 시내까지 나오면 우울해지지 않을까?
혹시 공짜표가 딱 한 장 생겨서 온 건가?
아니면 시간 때우기?

어쩜 그렇게 연기를 무난하게 하는지...
못한다기 보다는 참 무난하고 평범하게 한다
다른 배우는 신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김수미는 연기 경력이 벌써 몇 십 년일텐데 참 연기를 펑범하게 한다
고두심이나 윤여정 같은 배우를 보면 진짜 감탄할 정도로 리얼하게 하는데, 김수미는 정말 평범하다
아마 그래서 역할을 많이 못 맡을 것이다
김범수도 정말 무난 그 자체다
얘는 아무리 봐도 스타로 성공하기 글렀다
일단 생긴 게 너무 평범하고 연기도 너무너무 평범하다
얘 짝으로 나온 여자애도 진짜 무난 그 자체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얘기다

대신 공유는 참 멋졌다
별 대사도 없는데 생긴 걸로 관심을 끈다
내가 보기에 공유가 훨씬 더 클 것 같다
이혁재야 원래 코메디언이니까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걸 테고
감사용을 갈구는 "양승관" 으로 나온 배우가 좀 낫다
캐릭터가 멋있어서 그런가?
솔직히 멋있다기 보다는 좀 싸가지가 없다
그래도 잘난 놈이 형편없는 팀에 있으면서 겪어야 하는 울분을 비교적 잘 그린다
자기는 올스타전까지 나가는 실력파인데 같은 팀 놈들이 패배주의에 젖어 형편없는 경기를 하면 얼마나 화가 날까?
감사용의 형으로 나온 배우도 리얼리티가 있다
약간 모자라 보이면서도 후까시를 세우며 동생을 격려하는 무능한 형의 모습을 잘 그린다
그렇지만 택시 사고 내면서 동생 응원하는 장면은 진짜 오버다

딱 한 장면은 기억에 많이 남았다
맨날 패전처리 전문 투수로 나서면서 괴로워 하던 감사용이 감독에게 (장항선도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워낙 형편없어서 그런가? 진짜 별 볼 일 없더라) 선발로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감독은 콧방귀도 안 뀌고 너한테 주어진 일이나 잘 하라고 한다
그게 프로라면서 감사용을 비참하게 만든다
사실 프로가 그런 거 아닌가?
실력만큼 대우 받는 거, 그게 프로니까 선발 나갈 실력 안 되면 자존심 상해도 패전 전문으로 나가야지, 어쩌겠어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해진 감사용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은 가슴이 좀 아팠다
나는 아직껏 그 정도로 괴로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서 그런가?
그 정도로 힘들고 비참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은 아직 없었다
나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맛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겪고 나면, 또 잘 이겨내면 정말 강해질 것 같다
근육을 키울 때도 고통을 이기면서 근육이 파열된 후 다시 생성될 때 훨씬 커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파열만 되고 다시 안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이기지 못한 고난은 미리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이가 들면 그래서 안정을 추구하나 보다

박철순의 20승 재물이 된 경기는 정말 오버였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거라 역시 감사용의 패배로 끝났다
만약 가상의 이야기였다면 당연히 극적으로 이겼겠지
그러나 현실은 소설보다 언제나 냉정하고 잔인하다
1승도 못 해 본 감사용이 어느 날 선발로 나서 한국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어떻게 1승을 올리겠는가?
대신 패배 장면 후 바로 삼미 팀이 열심히 런닝하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승승장구를 전하는 자막은 괜찮았다
산뜻한 구성이라고 할까?
결국 감사용은 그렇게 소원하던 1승을 올렸고 삼미도 그 해 패넌트 레이스에서 4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여자 주인공과의 과장된 로맨스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 정말 영웅 대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보다
옛날 같으면 당연히 박철순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20승을 극적으로 그릴텐데, 1승도 못 올린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다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그래서 영화 보는 게 더 편하다
노태우가 주장하는 바로 그 보통 사람의 시대가 된 걸까?
아니면 다들 너무 똑똑해져 더 이상 잘난 놈들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걸까?
가히 주체성과 자의식의 시대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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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1-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너무 흥분하시 마시길~~ ^^
 
알포인트 : 디지팩 한정판
공수창 감독, 감우성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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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포인트" 관람

감우성 때문에 봤는데 그런대로 느낌이 괜찮았다

다소 유치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귀신 소리나 피 같은 거)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진부하지 않고 뭔가 자아성찰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까?

나는 느낌이 괜찮아서 평론들을 찾아 봤는데 역시 비교적 호평을 들었다

알 포인트에서는 살아 나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왜냐면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서려있다고 할까?

그럼 민간인이 이 곳에 오면 안 죽는다는 얘긴가?

귀신이 나온다는 진부하고 유치한 설정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적이나 귀신이 죽이는 게 아니라 실은 우리 자신이 서로를 죽인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무고한 양민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공포감이 소대원들을 짓누른다

참 재밌는 건 전투가 시작되면 미친듯이 총을 쏘다가도 1:1 로 대응하게 된다거나 눈 앞에서 총을 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멈칫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집단으로 할 때는 아무런 부담감도 안 갖다가, 혼자 하면 공포감과 두려움에 떠는 걸까?

알 포인트에 온 군인들만 죽은 이들의 원한에 사로잡혀 죽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무고한 양민 학살 때문에 그들의 복수로 죽게 된다면 베트남전에 참가한 모든 군인들이 다 응징을 받아야지, 왜 하필 알 포인트에 주둔한 병사들만 본보기로 죽는단 말인가?

결국 상식적으로 따지자면 그 소대원들을 죽인 것은 원귀 따위가 아니라 전설이 주는 공포심과 두려움, 또 양민 학살에 대한 죄책감 등이 어우러져 자기편들에게 총을 휘갈긴 것에 불과하다

즉 내면의 공포감과 양심의 소리가 스스로를 죽인 셈이다

마지막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고뇌하는 지식인상에 딱 어울리는 감우성이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리라 믿었는데 결국 그도 죽고 만다

요즘 영화들은 주인공에게 관대하지가 않다

적의 모습이 보이거나 죽은 이들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총을 갈기지만, 실상은 자기 편 병사를 쏜다는 사실을 아는 감우성은 결국 눈이 먼 병사에게 자신을 쏘라고 명령한다

마지막 남은 병사를 자신이 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결국 소대원들을 보호해서 알 포인트로부터 빠져 나가려고 했던 감우성 역시 부하의 총에 맞고 죽는다

그로서는 그 부하를 죽이게 될까 봐 스스로 죽은 셈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좀 유치한 면도 있지만, 내용은 진지하고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감우성이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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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아주 묘한 영화. 전 전쟁영화이자 공포영화인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쟁에 대한 성찰도, 억지 공포도 강요하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독특한 영화였죠. 근데, 그 아오자이( ? 맞나요?) 입고 나오던 하얀 베트남 소녀는 좀 너무 했어요.

marine 2004-12-1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우성한테 달려드는 그 여자요? 좀 오버긴 했죠 그런데 왜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못 올랐을까요? 괜찮은 영화였는데 흥행 실패한 걸 보면 아무래도 홍보 부족 아니었을까요?
 
트로이 한정판 (2disc)
볼프강 피터슨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영화였다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자칫 지나치게 큰 scale 때문에 지루해지기 쉽상인데 트로이는 모든 면이 빛나는 훌륭한 영화였다
확실히 영화의 주제가 과거와는 달라졌다
옛날에는 영웅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한 사람의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영화 역시 아킬레스와 헥토르라는 두 영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영웅으로서의 삶보다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친구 등등을 버리고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괴로움과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웅 아킬레스 대신 인간 아킬레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

사실 영화의 배경 자체만으로도 감동스러운 면이 있다
처음 해설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나온다
3200년 전이라, 너무 아득해 잘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오래 전이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면 호모의 일리아드가 원전으로 등장한다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일이다
무려 3천여년 전에 쓰여진 서사시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을 흔드는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책들 중 과연 몇 권이나 3천년 후 우리 후손들이 읽어 줄까를 생각하면 호머의 일리아드가 갖는 위대함을 금방 알 수 있다
고전이란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류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위대한 문명의 진수 같다
영화 내용으로만 따지자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이름을 얻은 셈이다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 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데, 의외로 영화는 헥토르와 아킬레스 두 사람의 관점으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으로 보자면 헥토르가 더 멋지고 비극적인 인물로도 보여진다
그는 전쟁 때 가장 앞에 서서 군대를 지휘하는 용맹하고 책임감 강한 왕자이지만, 명예욕이나 정복욕에 휩싸여 백성을 전쟁터로 모는 어리석은 군주는 아니다
또 조국 트로이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가능하면 그리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한다
아킬레스와 싸울 때 그는 이길 수 없음을 알지만 조국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성문을 열고 나아간다
그리고 유언처럼 아킬레스에게 명예로운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랑하는 사촌 동생을 헥토르 손에 잃은 아킬레스는 너는 망자가 되어서도 끔찍한 모습으로 이승을 떠돌거라면서 너의 귀와 눈과 입을 모조리 뽑아 버리겠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아킬레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사다
이 두 사람의 결투 장면이 가장 압권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가는 헥토르의 막막한 심정이 보는 이를 아프게 했다
이런 비극성이 헥토르라는 캐릭터를 더 멋지고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평생을 받들어 온 아버지와 자기 백성들을 뒤로 하고 죽으러 나갈 때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헥토르의 절절한 심정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안타까웠다
해 볼만한 싸움도 아니고 자신에게 역부족인 시대의 영웅과 결투를 치룰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헥토르는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적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룰 수 있는 자비라도 베풀어 주라고 부탁하지만 오히려 너는 죽어서도 편하게 쉬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이 영화에서 아킬레스라는 캐릭터는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로 나온다
그는 신이 사랑하는 영웅으로 어떤 전투에서도 패한 적이 없는 가장 용감하고 뛰어난 전사로 나온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과 싸울 때 가장 무섭고 떨릴 것 같다
헥토르는 열심히 싸우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백성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아킬레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아킬레스는 그를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마차에 그의 시체를 매단 후 질질 끌고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다
트로이 최고의 전사가 시체가 되어 비참하게 적의 마차 뒤에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가족과 백성들의 슬픔과 분노, 또 그 적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더 감동적인 장면은 헥토르의 아버지인 트리암 왕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스의 진영으로 숨어들어 갔다는 것이다
왕은 헥토르의 막사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키스를 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한다
아들을 죽인 적의 손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왕은 아킬레스에게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전사로서의 명예에 걸맞는 장례를 치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내 사촌을 죽였다고 말하는 아킬레스에게 왕은 천천히 말한다
당신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촌과 아들과 아버지들을 죽였는가?
그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웅이라는 아킬레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후 고통받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
비록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적들 역시 집에서 애타고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내 편, 니 편을 떠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혹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전쟁이란 이렇게 허망하고 끔찍한 살육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킬레스 역시 그 비극성과 덧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트로이에 대한 총공격이 시작되기 전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부관에게 말한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왕을 위해 싸운다지만 그들은 왕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아가멤논 왕은 정복욕에 사로잡혀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비겁하고 어리석은 군주일 뿐이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개죽음인지 아킬레스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고대의 영웅에게 어울리지 않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죽어가는 군인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이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전체의 보잘 것 없는, 이름없는 구성원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 고귀한 인간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 같다
전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의 전환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보인다

헥토르 역시 전쟁의 허망함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하고 인간적인 군주로 나온다
비록 그 자신은 아버지인 왕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뤄왔고 가장 앞에 서서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운 전사지만, 정작 전쟁 여부를 결정할 때는 언제나 화친 편에 선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입으로 전쟁의 승리를 외치고 평화주의자를 비겁하다고 비웃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거나 불리한 상황이 되면 제일 먼저 도망가는 표리부동한 사람이기 일쑤다
아니면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현실 판단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든가
헥토르는 어떻게 해서든 그리스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한 차례의 승리에 도취된 신하들은 그리스를 섬멸해야 한다도 떠들어댄다
특히 아폴로 신전의 신탁을 내세우며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신관들이 제일 밉살맞았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후방에 숨어 있을 사람들이 감히 신의 뜻을 내세우며 전쟁을 부추긴단 말인가?
트리암 왕은 인자하고 자상한 군주로 나오지만 상황 판단은 전혀 못하는 어리석은 왕이기도 하다
너무 늙어서 판단이 흐려진 것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신의 뜻에 의존하는 것일까?
영화의 전개상으로 보면 왕의 자질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파리스 왕자가 그리스의 왕비 헬렌을 데리고 왔을 때 헥토르는 그녀를 돌려 보내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왕은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면서 오히려 파리스 왕자를 위로한다
한 사람의 사랑 놀음으로 온 국민이 희생당하게 생겼는데도 왕이란 사람이 사랑의 위대성 어쩌고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또 왕은 그리스가 쳐들어 왔을 때도 화친하자는 아들 헥토르의 말 대신, 아폴로 신전의 신탁에 의거해 공격을 감행한다
그 덕분에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트로이의 영웅인 헥토르를 잃고 만다
왕의 어리석음은 계속된다
그리스군이 목마를 만들고 물러가자 둘째 아들 파리스는 적의 것이라면서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왕은 신전에 바치라는 신관들의 말을 쫓아 성내로 목마를 들여 온다
결국 왕의 어리석은 판단들 때문에 트로이가 멸망한 셈이다
지도자란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가?
차라리 왕이 빨리 죽고 헥토르가 왕위에 올랐으면 트로이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헥토르가 위대한 영웅으로 남는 것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겁쟁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면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왕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그를 보필한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권력을 탐하지 않는 바람직한 모델상을 보여 준다고 해야 할까?

헥토르는 아킬레스와의 전투에 나가기 직전 아내에게 비밀통로를 가르쳐 주면서 자기가 변을 당하면 아들과 함께 이 길로 빠져 나가라고 한다
그 장면을 볼 때 헥토르에게 약간 실망했다
결국 영웅이란 사람도 제 가족의 안전만을 챙긴단 말인가?
그가 그토록 떠들어 온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어쩌란 말인가?
백성들은 버려두고 가족의 살길만 찾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뒷말이 다시 그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는 아내와 아들만 피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백성들을 이 길로 피신시키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트로이가 망한 후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버틴 트로이 병사들의 희생 덕분에 백성들은 그 통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간다
통로로 향하는 마지막 성문을 막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병사들의 희생이 감동적이었다
단칼에 죽는 것도 아니고 곧 죽음이 닥치리라는 공포와 대면했을 때 그 두려움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켜 줘야 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죽음의 순간을 벗어나지 않는 병사들의 희생정신은 인간이 가진 고귀한 가치로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살아 남은 백성들은 이탈리아 반도로 넘어가 로마를 건설한다
그리스 보다 더 위대하게 역사에 길이 남을 대로마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자기 백성들을 사랑한 위대한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지혜가 트로이를 역사 속에 길이 남게 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트로이의 목마가 존재했냐는 것이다
트로이라는 존재 자체가 최근에서야 입증된 걸 보면, 전설이 사실의 변형과 과장은 있을지언정 전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분명히 트로이의 목마 역시 뭔가 있는 사실의 변형일 것이다
진실은 뭘까?
설마 전설처럼 진짜로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 보내 트로이를 함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적이 만든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을 함부로 성에 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
트로이 정복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증거물이 발견되서 그 진상을 속시원히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전투 장면도 실감나게 잘 보여주고,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개성있는 살아있는 모습이라 마음에 든다
세련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웅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를 건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다
더불어 브래드 피트의 근육 장난 아니게 멋지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근육질 남자였단 말인가!!
전투복을 입고 칼을 든 팔 근육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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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SE [dts]
변혁 감독, 한석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이게 아직도 상영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상영 중이라면 완전히 스포일러가 될텐데... 안 보신 분들은 이 글 읽지 맙시다 ^^


한석규는 연기를 참 잘 하는 배우다 한석규 한 물 갔네 어쩌네 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연기력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번 영화에서도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고 본다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은주 연기도 괜찮았다 블루 노트에서 재즈 부르는 장면도 멋지고 섹스 장면도 나름대로 화끈하게 찍은 것 같다 특히 이은주네 방은 인테리어의 승리 같다 대체 몇 천 만원 투자하면 그 정도로 꾸밀 수 있을까? "올드 보이" 에서 유지태네 방 보는 기분이었다 반면 성현아와 엄지원은 정말 별로였다 특히 엄지원은 좀 답답했다 캐릭터의 성격 탓일까? 마지막에 엄지원과 이은주가 동성애 관계였다는 거 고백할 때도 하나도 감정이입이 안 됐다 극전 반전이라더니, 웃기네 이 수준이었다 성현아 역시 평범 그 자체였다 왜 영화를 보면 TV 볼 때와는 달리 연기 잘 하는 배우와 못 하는 배우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걸까? 누드집 때문에 더 드러내고 말 것도 없는 성현아는, 벗는 장면조차 신선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벗는 걸로는 조금도 시선을 잡아끌 수 없는 만큼 연기력으로 승부해야지 않을까? 무지하게 많은 발전이 필요하리라 본다


제일 웃기는 장면은  한석규가 권총 조립하면서 하는 말, 이 권총 갖고 싶어서 하고 많은 대학 중에 경찰대 갔는데 미국 갔더니 슈퍼에서 팔더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툭 던지는 농담 한 마디가 작은 웃음을 유발한다 자상하고 예의바른 경찰이 아닌 싸가지 없고 거친 경찰이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든다 캐릭터가 보다 현실적이고 살아 있다고 해야 할까? 툭툭 던지는 농담에 웃을 수 있는 건 외국 영화를 볼 때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리라 한국 영화 볼 때 이런 아기자기한 코메디 장면에 웃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사진관 살인 사건과 한석규와 이은주의 치정 관계는 겉도는 느낌이 든다 그냥 각자 두 개의 사건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연관성이 아주 약하다고 할까? 마지막에 한석규가 죽으려다 살아나서 완전히 성격이 변한 뒤 성현아 찾아가는 장면도 참 별로였다 갑자기 풀이 죽은 한석규 모습이 느닷없어 보였다 하긴 죽으려다 살아났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석규와 이은주가 트렁크에 들어가 죽어가는 모습은 정말 사실적이었다 특히 한석규가 이은주에게 제발 니 손 좀 치워 줄래, 말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극한 상황이 되면 사랑이고 뭐고 없게 된다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결국 공포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고 만 이은주, 나중에 보니까 한석규가 권총으로 쏜 것 같다 하긴 트렁크 안에서 낙태를 했으니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만도 하다 사람 참 우습게 죽을 수도 있구나 싶다 신문에 나오는 어이없는 사건들도 실은 다 이런 하찮은 일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은주가 죽고 난 후 한석규는 시체와 동거한 셈이다 경찰이라 시체 보는 게 좀 더 익숙했을까? 어쨌든 강한 놈만 살아남는 건 확실하다 목이 타니까 이은주가 흘린 피까지 핥는 모습은 정말 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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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이요. '사진관 살인 사건' 이 너무 겉돌았지요. '손' 과 ' 거울에 대한 명상' ( 제목 이거 맞나요? -_-a ) 과 ' 손' 도 작품을 읽고 충격 받았던 거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 단순히 내용을 알고 봐서만은 아니고요) 아무튼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많아도,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전 재미있게 봤습니다. 새무앨 헌팅턴의 '미국' 리뷰 타고 들어왔는데, 낯익은 사진, 오늘 제 서재에 들러주셨던 '나나' 님이시군요.


marine 2004-12-07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하이드님 반갑습니다^^ 네, 하이드님 서재에서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화양연화(花樣年華) - [할인행사]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만옥, 슬픈 눈빛의 양조위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 특히 장만옥의 차이나 드레스는 예술이다 한 30여 벌 입고 나왔을까?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바꿔 입고 나온다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의상인데 날씬하고 우아한 장만옥이 입으니까 영화의 분위기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요즘 그녀의 옛날 영화 몇 편을 봤는데 십 수년 전 영화인데도 하나도 늙지 않은 것 같다 장만옥의 주인집 여자로 나온 여배우는 "아비정전" 에서 장국영 계모로 나왔던 여자다 내가 사람 기억을 잘 못하는데 그녀 입술 위의 독특한 점 때문에 기억한다 아비정전에서는 몰랐는데 화양연화에서 중국 전통 의상 입고 나오니까 진짜 배 많이 나왔더라 장만옥과 무지하게 비교됨


영화 자체는 크게 감동적이는 않았다 솔직히 무슨 얘기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답답한 면도 있었다 오히려 장만옥 의상 보는 재미에 빠져서 봤다 음악도 잘 어울렸다 왕가위 감독 영화라는 걸 금새 알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말보다는 분위기로 설명한다고 해야 할까? 요 근래 본 "아비정전" 이나 "열혈남아" "화양연화" 등 모두 왕가위 작품인지 금방 알 것 같다 홍콩 영화와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솔직히 나는 지루하다


나중에 영화 해설을 읽으니까 전혀 다른 내용이긴 한데, 영화 보고 내가 이해한 바로는 장만옥이나 양조위 모두 소심하고 정적인 사람들이다 각자의 파트너들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두 사람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상으로는 장만옥이나 양조위는 기질이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둘이 살면 딱 맞을 것 같은데, 한 번 결혼하면 쉽게 깰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 다 너무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적극적인 대쉬를 못하는 게 문제다 사랑이 이뤄지려면 때로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면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똑같이 조심스런 사람들끼리 만나다 보니 잠자리 한 번 같이 못 해 보고 인연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사실 영화만 보면 정말 둘이 사랑하긴 한 걸까, 의심스럽다 약간의 호감은 있었지만 관습을 깨고 결혼할 정도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60년대 홍콩 아파트 구조가 무척 특이하다 세를 내 준 방의 현관은 따로 있는데 부엌은 같이 쓴다 현관이 따로 있으면 안쪽 방은 독립적 공간일텐데 밖으로 나가 부엌을 같이 쓴다는 게 얼른 이해가 안 갔다 일본에서 전기 밥솥이 처음 나와 홍콩 사람들이 모여서 밥 지으며 신기해 하는 것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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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수를 사들고 집에 가서 먹는 것도 신기했어요.^^

marine 2004-12-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온통을 가지고 가서 국수 받아 오는 거 저도 신기했어요 요즘도 그럴까요?

키노 2004-12-10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성으로 읽어야하는 영화^^ 지금도 징하네요 ㅎㅎㅎㅎ

marine 2004-12-10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이 맞네요 논리적으로 끼워 맞추기 보다는 느낌으로 풀어야 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