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사람 공부 공부의 시대
정혜신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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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떧한 상황에서든 사람이 우선이다,

무슨일이든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다,

내가 상대하는 것이 어떤 집단이고 어떤 논리이고 어떤 가치관이고 어떤 대상일지라도

내가 직접 이야기하고 얼굴을 마주보고 쌍욕을 하고 삿대질을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내가 안아야 할 대상 내가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 내가  인정하고 배려해야하는 대상 역시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갈등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단절이 생기겠지만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 다시 이어지고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다

늘 사람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상대하는 이가 나랑 다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면

거기서 상담과 치유가 시작하는 게 아닐까

 

옆에 두고 내가 잊어버릴 때마다 읽어보고 싶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한 사람의 삶과 사회적인 연대를 하는 공익적 삶 사이의 갈등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건강한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우리 부부가 트라우마 현장에서 매일 얘기하는 것도 대부분은 결국 그 문제예요. 줄타기하는 광대를 멀리서 보면 여유롭게 줄 위에 서 있는 것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한손에 쥘부태를 들고 끊임없이 중심을 잡고 있는 거잖아요.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고 정물처럼 서 있는 거죠 옆에서 보는 분들은 제가 참혹한 형장의 특성과 달리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모양이예요 그렇게 봐주셔서 다행이긴 해요 제가 불안해 보이면 안되니까 그런데 저는 이런 현장에서 갈등없이 안정적인 상태라면 그게 더 위험하다고 봐요 그러면 곧 줄 아래로 떨어질 운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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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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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벌써 몇년전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언니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한번도 호들갑을 떨거나  심하게 우울해하거나 슬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좋은 의미로 하려고 했던 거 같다,

그만큼 신뢰가 가고 일희일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사실 내 성격이 그렇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물에 물탄거 갔고 술에 술탄거 같고

어떤 일에도 쉽게 동요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와라라 입이 찢어지도록 웃은 기억도 없고 땅이 꺼지도록 꺼이꺼이 울어본 기억도 없다,

한 번은 돌아가신 아빠가 혼잣말처럼 한 말이 있었다,

"언제 한 번 확 필려나 필려나 하다가 나이 먹어가네"

뭐 그게 외모에 대한 품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일에도 크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 그게 싫지 않았다,

난 언제나 이성적이고 원칙이 있으며 분별이 있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회적 매너를 지닌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사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심한 변덕을  보이는 사람이 불편하고 싫었다,

물론 나도 변덕이 심하고 마음이 자주 바뀌는 편이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고도 잘 다스려 왔다고 믿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고 감정이란 많이 드러내지 않은 것이 세련되고 멋있다고 믿었다,

 

#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던 거 같다,

어디 가서 욕먹거나 험담 듣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 흔한 말로 잘 되라고 하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였다,

그 덕인지 아이는 예의있고 나름 반듯하게 자랐다고 믿었다,

문제는 사춘기에 터졌다,

언제나 어른 말을 잘 듣고 순하게 자라는 초등 저학년때의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다

개구지고 말안듣는 녀석들이 간혹 섞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말 잘듣고  질서나 예의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자기주장이 나타났다,

아이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어하지 않은 동시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나를 주면 누군가도 내게 하나를 주어야 했고

실수로 타인을 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하면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함께 할 때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공평해야 하고 남의 물건을 쓸 때는 꼭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쓰거나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건  다른 아이들이 악하고 못되먹어서가 아니었다,

고의가 아닌 실수는 누구나 그냥 장난처럼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자기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못 알아차릴 때도 있고 친한 친구라면 연필 하나 펜하나 정도는 그냥 나눠 쓸 수도 있고  뭔가 일이 있으면 남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남의 물을 허락없이 입대고 마시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늘 사과받기를 원했고 허락받기를 원했다,

아이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말했다,

난 엄마가 잘 교육시켰다고 생각해 그런데 다른 집에서는 그런 교육을 하지 않나봐...

왜 모두가 예의없고 더러운지 모르겠어....

 

#

뒤늦게  독서상담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감정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 감정에게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감정표현을 어떻게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은 괜찮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공부를 하며서 나는 내가 대가리만 커다란 콩나물같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아는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감정은 하찮게 여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머리로 들어와서 머리에 자리 잡은 모든 지식이나 사고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가슴으로 들어오는 감정 정서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원칙을 정하자

객관적으로 생각하자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그렇게 나는 비대칭적이고 기괴하게 머리만 크고 있었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만 크진 엄마는 결국 아이에게도 머리만 커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생각을 했었다,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감정은 어느정도 본능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본능이기때문에 억누르면 누르는대로 저 깊은 곳에 숨어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감정조차 내가 나에게 집중해서 느끼고  공간해주는 연습기간이 필요했다,

내가 내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남도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가끔 머리로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섬뜩해졌다. 내가 공감하고 있다, 존중하고 있다는 사고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

내 감정을 안다 느낀다는 것도 어쩌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

머리가 언제나 대장이 아니라는 것 머리가 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야 말로 그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요즘

이 책은 명확한 정리가 되게 해주었다,

어쩌면 알고 있는 일 나도 느끼고 있는 생각들이 언어로 정리된다,

아... 어쩌면 이것도 머리로 하는 이성적인 '생각'인가보다

나는 요즘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 그리고 타인 특히 아이들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걸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늘 익숙했던 이성이 먼저 들어오고 감정표현이 서투르고 그래서 타인의 표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뎌볼 생각이다,

조금 마음을 풀고 긴장을 풀고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내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 사랑과 욕망의 문제

흔히 사랑이라는 것 관심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관심과 사랑은 이것인데 타인이 주는 사랑과 관심은 이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책에도 있었다,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미워서 저러는 구나 하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해주는 그 나에게 버겁고 무거운 그 사랑은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걸 거부하면 내게 죄책감이 생기고 그렇다고 받아주자니 내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고 무겁다,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이라고 책은 말한다,

내가 이만큼 주니까 고마워해주길 바라고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으니까 알아주면 좋겠다는 나의 욕망일 뿐이지 타인을 위한 사랑은 아니라고 말이다,

 

#

여행을 가면 늘 싸우게 된다.

가족여행이라고 함께 들뜨고 출발하지만 꼭 한번 큰 소리가 나고 싸우게 된다,

별거 아닌데 사실 정말 별거 아닌데 내가 해주고 싶은 것과 바라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기왕 돈을 쓰고 나온 김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고 더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나를 가족들이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기왕 멀리 나온김에 조금이라도 더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하나를 더 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여유있게 생각지 못한 골목을 발견하고 맛있는 걸 여유있게 먹고 조금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일도 하고 싶다, 어짜피 휴가 아닌가 일이 아닌 휴식이 목적이니 쉬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른 취향과 다른 기질이 부딪친다,

각자 서로가 참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희생하고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은 너무 독재적이거나 너무 게으르다,

그래서 참다 참다 정말 엉뚱한 시점에서 터지지 말아야할 욱이 터져버리고 어색해지고 순간 여행 아니 온것만 못한 상태가 된다,

초창기에는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머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유없이 이러는 걸까

그러나 그 이유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바람이 다를 수 있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내버려두고

좋은게 좋은 거고 기왕 나온거 내가 계획한대로 하고 싶고 다른 가족은 따라주고 박수쳐주고 잘했다고 해주면 안되나? 게다가 나랑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맞는것도  외롭다는 생각도 있고.... 그렇게 욱 하고 가장은 폭발한다,

날도 덥고 힘든데 마음은  염전이다,

늘 나만 힘들고 나만 참는다, 내 선의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입장에서 아버지가 애쓴다는 건 알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뒹굴거리는 시간을 주길 바랄 뿐이다, 일정을 짜고 돌아다니고 하나라도 더 눈도장을 찍고 좋은 스폿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안해도 되는데...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그래서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상대는 아버지다, 가장이고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까 화를 내고 말안듣고 싶은 내가 나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나쁜 놈으로 나쁜 년으로 모는 아버지가 싫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내가 나쁜 놈년이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건 사랑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결국 이 다음엔 가족여행은 가지 않는게 낫겠다는 각자의 잠정적이 결심만 안고 여행은 끝이 났다, 책을 먼저 읽고 간다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

갈등은 부딫져 풀어질 수 없다면 가능한 피하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답고 싶다면 내 멋대로 해도 되고 내 욕구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안다 물론 잘 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함께 해야하는 존재일때는 내 욕구 내 감정은 쉽게 닫아 버리게 된다,

상식적으로 살기 위해서 교양있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나아보이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원래 감정에 흔들림 없는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드러내어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고 그냥 똑똑해보이는 것 이성적이고 담담해보이는 모습에 더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하나 일에 징징대지 말라거나  왜 그렇게 변덕스럽냐거나 너무 기분대로 하지말라는 말들

어쩌면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받는 입장에서 자잘하고 사소한 것을 좀스럽고 찌질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아닐까

그렇다고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진심은 몰라주고 왜 멋대로 해석하느냐고 하기도 뭣한게

누구나 사람은 자기 기준과 그때의 감정과 상황으로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축적된 어떤 피드백들이 감정은 되도록이면 드러내질 말것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해왔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맞춰가면서 점점 내가 원래 어떠했는지 뿔을 가지고 있었는지 뾰족한 가시가 있었는지 산만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냥 담담하고 조금 재미없는 내 성격이 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

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니다,

어쩌면 오래동안 내것인 줄 알고 가지고 있어서 이젠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성정이되었고 가장 안전한 내 은신처이기도 하다. 내 성격과 표현방법들이 말이다,

사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든가

내 성격이나 행동이 정말 맘에 안든다..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나는 내가 너무 좋다  그런 건 아니고 물론 나 스스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하는 생각 이 정도면 그래도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후회도 있고 불안도 있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집애 내어 보아도 그때 그래서 이렇게 성격이 형성되었구나. 그래서 그 사람과는 좀 불편하구나 .. 하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게 다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지 않은 탓도 있겠고 이미 지난 일 누구탓을 하면 뭐하나 싶은 것도 있고 나름 운좋게 괜찮게 살았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그럴 것이다,

<뿔을 가질 권리>를 읽으면서도 나를 생각해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받았던 겪었던 무엇도 생각하지만 그보다 나로 인해 내 아이들 혹은 주변사람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아주 썩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좋기도 하고 안맞기도 한 사람일테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상처를 입은 만큼 그 상대도 상처를 입었겠다 싶기도 하고 뭐 그랬다,

띠지에 적힌 것처럼 몇번이나 울고 내 삶의 빛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 되었다,

가장 좋은 점은 참 쉽게 조곤조곤 설명하고 알려준다는 것

조금 유치해보이는 그림들과 도표들이 이해를 쉽게 한다,

일본은 이런 책이 특화된거같다,

쉽고 별거 아닌데 읽고 나면 조금 개운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치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엔 조금 애매한 그런 책들....

 

따라서 억압당한 것을 갈등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면 충분히 의미있는 치료가 된다,

의뢰인은 '병이 나으면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야할 고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낫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하고 있을 때는 '병적인 안정'이라 할 수 있다, '병적인 안정'에서 건강한 불안정으로 옮겨가는 작업 그것이 치료의 본래 모습이다,

                                                                            26-27

 

 

지금까지 사람들은 말의 두 가지 측면을 나름대로 구분해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구분에 서툰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사적인 말을 그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거나 반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던져진 말을 자신의 사적인 필터로 받아들여 '상처입었다'거나 '심한 말을 들었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아졌다,

이런 사태는 자타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에 일어난다,  

자신과 타자가 서로 다른 내면 세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과 타자가 다른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다,

                                                                   43 

 

 

머리는 이성의 장소다

머리에서는 '해야만 한다' '해서는 안된다'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시간 공간인식에서는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나 이곳 이외의 장소를 모의 실험하는 것이 특기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 반대로 지금 이곳에 관해서는 서툴러서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 다른 머리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든 제어하려는 경향성이다,

자신의 마음이나 몸에 대해 닥쳐오는 운명에 대해 자연에 대해 등등 그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 데 소위 '욕망'은  '역구'와 달라서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머리의 제어 지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58-59

 

 

인간에게는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고 여성에게는 월경주기도 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도 기분도 이리저리 변한다, '생물'인 인간은 계절도 날씨도 나날이 변하는 관경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시계로 정한 인공적인 시간에 맞춰 규칙적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난폭한 이야기다,

                                                    80

 

 

이때 감정의 우물 뚜껑을 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분노를 말로 내뱉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한다, 뚜껑을 열고 분노를 토해내야 하지만 그걸 말로 하지 않은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원망이나 미움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 감정을 승인하는 데서 그치면 인간관계가 깨지는 문제를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이론 상으로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을 승인하는 것만으로 오래된 분노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분노를 글로 표출할 것을 권한다,  (중략0

그저 자신의 의식속에 쌓아두는 것과 글자로 자신의 외부로 꺼내 놓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노트에 쓰는 동안 자기 안에 억눌려 있던 오래된 분노와 슬픔이 넝쿨처럼 줄줄이 밖으로 나와 정리되고 정화된다, 이승을 떠돌던 혼령같던 오래된 감정이 이 작업을 통해 구원받는다,                                

                                                                 108

 

 

사랑: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

욕망; 상대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기를 강요하는 마음

 

 

 

스위스의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사랑으로 위장한 부모의 욕망만큼 아이를 왜곡시키는 것도 없다, 오히려 악의가 더 죄길이 가볍다, 사람은 자신을 향한 악의에 대해서는 거절이나 반발할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반면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가 자신에게 향할 때는 거절도 반발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ㄴ를 위해서 라고 말하며 강요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에 둔감하다, 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 생각 이면에 상대에게 감사받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감사 받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것도 역시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제어 지향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은 것이라 생각해서 한 일이니 부디 너그럽게 봐달라고도 할 수 없다,

 

               130-132

 

 

때로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했으니 그만큼 더 사랑받지 못하면 나는 이 고통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밖에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게다가 이 경우 당사자가 기대하는 사랑은 자기 생각대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희망대로 상대가 응해주는 것이며 명백히 비대화한 욕망이라는 환상이다,

이 생각을 깨기 위해 플요한 것은 '사랑의 자급자족'을 채현하는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급자족을 방해하는 요소를 성심껏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해야한다,

 

 

기다리다 지치면 사람은 어떤 상태에 묶인다, 절망을 입에 담을 때 사람들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대했지만 얻을 수 없다며 한탄하는데 그 고통은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타에 묶여 자연스럽지 못한 데서 온다, 결국 이것은 집착에서 오는 고통이다, 하지만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약간의 바람이 남아 있을 때 절망을 말한다, 만일 기다리는 대상이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만두고 다른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원망이 끊긴 절망의 모습이다, 진짜로 절망했을 때 사람은 집착을 떠나 자유로워진다, 더는 그 곳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그리고 진실로 필요한 행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

                                          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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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하는 목표점은 높으나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점은 낮다,

그래서 뭘하든 엄격할 수 밖에 없고 양에 찰 수도 없고 늘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늘 부족한 존재이고 잘 하는 것이 없고 아직은 많이 부족한 순간이다,

그냥 저지른다는 건  삶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얽어매는 것인지 모르지만 자꾸자꾸 스스로에게 엄격해지고

내가 아는 것 할 줄 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내가 못하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한 안달이 심하다,

그러 주제에 무기력하고 게으르기까지 하다,

스스로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한,,,,

그게 나다,

 

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이전에 나를 먼저 이해하고 공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왜 목표점이 어이없이 놓은지 그 배후를 파고 들고 싶지 않다,

지금 이순간 내가 어떻다는 걸 알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찬찬이 보면 잘하는 것도 많고 매력도 많고 꽤 괜찮은 편이라고...

더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늘 검열하고  엄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머리를 불필요하게 많이 쓸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보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하는 일도 괜찮다,

이것저것 준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모든 사람을 이해해 줄 필요도 없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필요도 없다,

나는 괜찮지 않고 짜증난다고 할 수도 잆고  이만하면 괜찮은거 아니냐고 뻣대도 뭐 상관없다,

의외로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나를 다시 생각하기로 했고

책을 읽었다,

 

 

흔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면 된다,

불가능이란 없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등등 말도 안되는 구호들이 가능한 이유는 정신력이면 뭐든 가능하다고 믿는 어리석음때문이다

조금 더 노력하라거나

정신력으로  버티라거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는 등등....

그러고 보면 명수옹이 말이 현명하다

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고 애쓰다 보면 골병만 든다는 것....

 

결국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게 아니라 몸이 정신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뭐가 뭐를 지배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표현 말고 더 우선적으로 역동을 일으키는 것이 결국은 몸이고 그 몸이 건강하고 건전해야 정신도 함께 움직이는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이먹고  드는 생각이다,

 

김중혁의 새로운 에세이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은 명사 그것도 추상명사가 아니라 그냥 동사일 뿐이다,

정신이 가끔 개뿔이고 몸을 움직이고 흘러가고 가끔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을만큼 혹독하게 학대하기도 하고 마냥 늘어지기도 하는 그런 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머리만 굴리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

 

작가는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 느끼는 것 움직이는 것들을 주제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나는 상실에 대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상실을 상상하게 하는 이야기가 더 좋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보다 이미 많은 걸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는 이야기보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야기더 마음에 든다, 이야기 속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게 좋다,

 

인간들은 결국 시간 속에서 소멸해가는 스스로를 상실해가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몸은 소멸의 징후를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전광판인 셈이다,

 

                                                             41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47

 

 

철학자 칼 포퍼는 ' 사람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다, 그것은 무 ㄴ제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 들으라고 한 말 같은데 칼 포퍼 아저씨 이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구요 뭄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지면서까지  타인의 감정에 이입해야만 하는 겁니까?

                                                                                                  56

 

 

예술의 작동원리와 가상현실 상자의 작동원릭 다르지 않다, 예술은 거울이 되어 현실을 되비쳐준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고통스러워 잊으려고 했던 것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늘 거기에 숨어 있던 것들을 보여준다, 진통제나 마약으로 통증을 이겨낼 수 없다, 우리가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뭐가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한다,

                                                                                         65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다, 눈에 보이는 걸 믿는다,   114

 

 

상대방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 결핍을 눈여겨보지 않을 때 불필요한 질투가 생겨나고 결핍을 비난하면서 재능을 애써 무시하려 할 때 무시무시한 편견이 시작된다, 누군가를 천재라고 부르는 순간 그의 결핍이 뒤에서 가려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를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서 , 우리를 합리화하기위해서 상대방의 특별한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아닐까 천재 바보 사이코  등신 장애인 그런 이름들로 뭔가를 슬쩍 가리는 것은 아닐까 ' 솔직히 말해서 '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솔직하게 않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닐까

솔직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결핍을 동시에 알아채는 법도 배워야 한다,

                                                                                           140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하늘 높이 던진 야구공 같은 존재들이다, 끝도 없이 높이 아주 높이 하늘로 올라가다 어느 순간 정점에서 잠시 머물곤 곧장 아래로 추락한다,

 

                                                                                        167

 

우리의 시간은 몇시 몇분 몇초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지만 반복되는 숫자로는 우리의 삶을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이 순환되는 24시간속에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함께 공유하는 두 사람의 시간은 낯선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시간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져야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견뎌온 시간을 짐작해야한다, 어려운 일이다,

                                 190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책과 다른 결심을 한다,

그래 건강해져야겠다,

기력이 약하니 무기력하고 게을러지고 괜히 목표만 높게 잡아서 좌절만 해대는 거야,,

일단 건강하게 운동부터 해야지...

음...

이게 책이랑 무슨 상관인지 이 페이퍼랑 무슨 상관인지 몰라도 뜬금없이 건강론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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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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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이 책을 권하주고 싶습니다,

책이 작고 예뻐서 그리고 쉽게 읽혀서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조근조근하지만 힘있는 말투에 다양한 생활근접한 예들이  쉽게 다가옵니다,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국끓여먹는거냐고'

그렇게 꼭 전투적으로 남자 여자를 구분해서 피곤하게 살아야하는 거냐고

여자들은 참 별나다고

좋은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선량한 표정을 짓는 이들에게

가만히 선물하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란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그냥 함께 사는 사람들이 어떤 기준을 정해 차별받지 않고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기준을 성별로 본 것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그냥 인권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단순한 인권안에서도 젠더의 문제가 있고 인종의 문제가 있고 계급의 문제가 있습니다,

각각의 문제는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성격도 가집니다,

뭉뚱거려서 인권... (물론 인권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이라고만 해버리면

그 안의 많은 세심하고 다른 문제들이 묻혀버리는 일이니까요

각각의 문제가 갖는 특수성 그리고 성격을 존중하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더 생각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생각하자는 거라고 믿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문제를 겪는다는 건 남성들에게도 편한 일만은 아닙니다,

색이 다를 뿐 여성에게 가해지는 편견만큼 남성들도 스스로 편견에 갇히는 모양새일테니까요

 

무심하게 넘기거나 생각지 않고 습관적으로 했던 말들 행동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기회가 이책을 통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아,,, 이런 면이 있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가 되는 거요...

문제란 생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면 달라지지 않지요

의식하고 생각하고 자꾸자꾸 곱씹어보는 일 그걸 피곤하게 생각하지말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한 번 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른 페미니즘 도서로 이어지면 더 좋겠습니다,

 

길게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책만 권하고 싶었는데 말이 많아지네요..

꽤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각도 많이 하게 합니다,

그게 좋은 책이지요..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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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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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비로소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살아계시는 그 긴 시간동안 그는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었고 당연하게 내 아버지였고 언제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 아무런 의심없는 당연함은 그의 부재를 더욱 낯설게 했다,

사실 부녀간이라고 해도 정다운 관계가 아니었고 경상도 남자답게 무뚝뚝하고 바쁜 대한민국 아버지의 전형이었다, 오래 앓기도 했고 임종 전에는 어떤 징후가 잇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올해를 넘기지 못할지도....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는 의외로 다른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준비를 했지만 막상 닥친 임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어쩌면 언제나 당연하게.. 라고 여긴 탓에 뭐든 나중으로 미룬 탓에 어떤 것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채 맞이한  이별이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한 것도 한참 후였다,

어.. 이게 뭘까 싶게 죄책감이 들었고 억울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내 자식을 돌보고 일상을 살고 웃고 사람도 만나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문득 그런 나 자신이 무섭다는 느낌이 선뜩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였을 것이다,

애증의 관계

두 사람은 그런 관계일 것이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면 이혼해야지 하는 마음을 살았다고 그런 와중에도 정도 들었고 한 팀으로서 나누어야 할 의리와 함께 해치워야 할 일들이 있었고 동지애와  증오심 가족간의 신뢰  미움 등등이 이리저리 묘하게 섞인 마음이 어쩌면 두 사람을 단단하게 이어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툭 하고 그 관계가 끊어지고 이제는 미워하거나 의지해야할 때로는 지긋지긋했던 상대가 사라지고 난 뒤의 엄마에게도 미안한 마음 그동안 고마운 마음이 많이 남았던 모양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40년넘게 함께 한 부부가  스토리가 많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끊없이 실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엄마의 이야기는 네버엔딩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하고 듣는 일이 상대방에게 나를 공개하고 서로 나누고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이 확장하는 관계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나는

한 쪽 귀를 열어놓고 들어오는 이야기를 다른 귀로 다시 내보내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등을 도닥이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생각을 하면서 들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서로를 나누지는 못했다,

리베카 솔닛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녀와 모녀관계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애도하면서 동시에 애도하는 누군가가 피곤해지고 피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솔닛과는 다른 이유지만 나도 엄마를 피하고 싶었다,

늘 반복되는 이야기도 지겨웠고 그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아서 더 힘들었고

누군가의 고생담들   내 삶으로 책을 쓴다면 수십권이 나온다는 그 시대 여자들의 보편적인 이야기 그리고 은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계속 들으면서 어쩌면 이런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주면서 점점 멍해지고 아프고 피하고 싶지만

그렇게 내 감정을 드러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건 또 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도 아무런 감동도 없이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맞장구치면서 듣는 딸을 보는 것도 큰 고역일 수도 있겠다,

그냥 내 속을 뱉아내듯이 이야기를 쏟아놓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맞장구 치고  눈 맞추며 들어준다면 더 어색하고 못할 거 같아 차라리 무심하고 아무런 영혼없는 대꾸가 편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자위한다,

 

엄마를 무언가를 말하면서 자기 신세타령이상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살아온 삶이 딸에게 이어지기를 이해받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건 나도 알았다, 그리고 이해했고 삶을 알아갔지만 그래서?

그 다음이 막막하다,

엄마를 감히 위로하거나 괜찮다고 하기가 참 막연했다,

어깨를 토닥여주고 삶이란 그런 거라고... 다들 진창인 줄 알고 디디게 되는 것이고 빠져들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주어야 하나 싶으면서

그건 또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 하는 마음에 주저하게 된다,

내가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끊어내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주는 인내심은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딴 곳에 멍해져 있는 경우가 있다는 건 몰랐다,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흘려들을 뿐이다,

내 마음에 닿는 것은 받아들이고 닿지 않으면 굳이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물러나는 걸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관계 맻음이라는 것이 서툴러서 그랬다,

들을 수는있지만 대꾸하는 건 어렵고

늘 상대에게 꼭 맞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정답 강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다

엄마와도 그렇다. 정확하고  바른 답을 찾아 위로하고 공감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초조감과 강박이 집중을 방해하고 듣기를 거부했던 거 같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야기란, 말하는 행위안에 있는 모든 것이다, 이야기는 나침반이고 건축이다, 우리는 이야기로 길을 찾고 성전과 감옥을 지어 올린다, 이야기 없이 지내는 건 북극의 툰드라나 얼음 뿐인 바다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는 당신이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그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장소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이야기는 지형을 이루고 감정이입은 그 안에서 상상하는 행위이다, 감정 이입은 이야기꾼의 재능이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건너가는 방법이다, 심장마비로 말을 잃어버린 노인. 처형앞에 선 젊은이 국경을 넘는 여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어린아이처럼 오직 책에서만 접해 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혹은 나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옆 사람이 되어 본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p13

 

 

 

세상이 크다는 사실은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댱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 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 내는 광활함이다,.

 

                                                                      p53 

 

 

자아라는 것 역시 만들어지는 것,  당신의 삶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자 모든 이로 하여금 예술가가 되게 하는 어떤 작업이다, 늘 무언가가 되어 가는 이 끝없는 과정은 당신이 종말을 맞이할 때 미로소 끝나며 심지어 그 후에도 그 과정의 결과는 계속 살아남는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아라는 작은 우주와 그 자아가 반향을 이르키는 더 작은 큰 세계의 작은 신이 된다, <프랑켄슈타인> 이 동화라면 그건 바보같은 짓을 벌이던 와중에 죽어가는 낯선 이를 구한 혹은 그 낯선 이의 이야기 덕분에 구원을 얻은 월턴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허영심 가득한 고독 그 실수에서 깨우침을 얻은 월턴은 죽음같은 극자방과 영광을 쫒던 자신의 야망을 버리고 온대 지역으로 동료애와 생존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올 준비를 한다, 월턴의 짦은 이야기가 마치 조개껍데기처럼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감싸고 있고 그 책 전체에 메리 셀리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P 85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마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ㄷ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눈앞의 인간관게보다는 깊은 어딘가에서 홀로 지내는 것 아닐까? 그것이 둘만으로 구성된 관계일지라도 말이 실패한 것을 글이, 아주 길고 섬세하게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P100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상황에 놀랄 만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말이었다.

 

                                                               P151 

 

 

어떤 감정이입은 배워야만하고 그 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 감정이입은 다른 이의 고통을 감지하고 그것을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비교해 해석함으로써 조금씩이나마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당신 스스로에게 해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받아 마땅하다고 말하는 이야기들때문에 그런 감정이입이 차단될 수도 있다.

사회 전체가 자신은 경계에 있는 소수자들과 무관하다고 여길 만큼 무감각해지도록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마치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맺는 인간적 관계를 지워 버리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감정이입 덕분에 당신은 고문 배고픔 상싥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다. 당사자를 당신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 다음엔 마치 그 곹통이 자신의 것인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를 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P158

 

 

 

나는 앤을 아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꼬처럼 지고 있다고 적었다.

 

                                                               P 187

 

 

그러나 진정 놀라운 점은 실을 잣는 이들이  모두 아직 형태가 없는 덩어리르 ㄹ앞에 놓고 거기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고기잡는 그물이나 잠옷같은 세상을 담을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실 잣는 이는 형태가 없는 것에서 형태를, 조각들로부터 연속된 것을 , 흩어진 사건들에서 서사와 의미를 만들어 내는데 왜냐하면 이야기꾼은 또한 실을 잣는 이 혹은 천을 만드는 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굽이굽이 흐르며 우리들 각각을 서로에게 이어주고 목적과 의미 우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어떤 길처럼 보이는 그곳으로 이어준다. 그긋은 그날  늦은 밤까지 해변에서 우리가 했던 일처럼 우리 뒤로 바늘땀같은 발자국은 남기는 일이다.

 

                                                    P 195 

 

 

지진은 오랜 시간 쌓여 온 긴장이 낳은 결과이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커지던 그 긴장이 쌓이는 과정은 볼 수 없다. 긴장은 오직 그것이 터져 나올 때만 볼 수 있다, 아픈 사람과 노인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런 광경이 우리 안에 쌓이고 어느 시점에선가 우리의 삶이 바뀐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갑자기 바뀌고 그 모습이 영원히 유지된다. 편리하고 극적이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서 우리는 무언가와 거리를 두고 되돌아 가고 결심하고 다시 시도하고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그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변화는 대부분 천천히 이루어진다, 내 인생에게 변화를 일으킨 여러 사건이 있었고 갑작ㅈ스러운 깨달음이나 위기도 있었다. 루비콘 강을 한두 번 건거기도 했지만 대체로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다,

 

                                                                     P159

 

 

 먼 거리르 작은 공간에 압축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미로는 인간이 만들어 낸 다른 두 고안물과 닮았다. 하나는 실타래이고 다른 하나는 단어와 문단과 쪽을 하나로 묶어 놓은 책이다, 책의 문장이 실타래에 감긴 한 가닥의 실이라고 , 그 문장도 실처럼 풀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풀린 문장이 만들어낸 선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실제로 걷고 있다고 말이다, 독서 또한 하나의 여정이다, 눈은 선처럼 펼쳐진 생각을 따르고 책이라는 압축된 공간에 접혀 있던 그 생각들이 당신의 상상과 이해안에서 다시 차근차근 풀려 나간다,

                                                                                  P278

 

듣는다는 것은 귓속의 미로에서 소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게 허락하는 것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거꾸로 그 길을 되돌아서서 그 소리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다, 이 듣는다는 행위 말이다, 이는 당신이 각각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 당신의 고유한 언어로 그것을 번역하는 것 당신이 이해하고 반응 할 수 있게 당신의 우주에서 그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리하여 그것이 당신읭 ㅣㄹ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감각의 미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맞아 주기 위해 손을 뻗는 것 그것을 껴안고 그것과 섞이는 일이다, 즉 타인의 삶이 여행지라도 된다는 듯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를 밖으로 살짝 나와서 여행하는 일 자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진정으로 타인의 현실적 존재를 알아보는 일이며 바로 이것이 감정이입을 탄생시키는 상상적 도구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P 286

 

 

어머니가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화를 내던 시절 , 나 역시 내가 어머니와 비슷하다는 사실에 끔찍해하고 비슷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 우리가 사실 얼마나 닮았는지 어머니가 나의 가장 본직적인 취향이나 관심사 혹은 가치체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SUNGMOME)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 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던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한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ㅁ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룽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어쩌면 그것들은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커다란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누구와도 겹치지 않은 자기만의 부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세계.. 내가 보지도 접하지도 못한 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공감이 아닐까

우리는 그저 나와 겹치는 세게만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서 타인을 공감한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게는 모르는 까닭에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 들일 생각도 안하면서 그저 내가 아는 것을 이해함으로서 공감한다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닐까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이 결국 아주 개미허리만큼의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 동동거리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게 전부라고 믿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장 잘 안다고 믿어버리고 나랑 닮았다고 믿어버림으로서 그저 내가 아는 세계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는 엄마를 그렇게 판단하고 엄마도 나를 그렇게 판단할 지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알고 싶어하는 만큼일 뿐이다,

책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자꾸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족좁은 인간이고 얼마나 편협하고 얼마나 생각만 많은 사람인가

내가 이해하는 타인은 내가 보는 만큼일 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면서도 겨우 손톱만큼만 나를 확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

세상은 넓은데 나는 그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고 눈을 돌리지도 귀를 다른 곳으로 기울이지도 않은 채.....

 

 

책은 그냥 툭 끝맺음을 한다

솔닛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그것이 때로는 자기 고백이기도 하고 나기 주장이 되기도 한다, 뭐가 다르랴만....

감정이입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가 이어주는 관계에 대해 그래서 사람이 섬으로 고독해지지 않고 서로 연결될 수있음을 말한다

귀를 기울이는 것 누군가를 돌보고 마주 보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어두워지지 않은 밤과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무력감에서 느끼는 어떤 깨달음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은한 노~ 라고 말하지 않고 받아들일거라고 결심하게 된 래프팅의 제안  수술 어머니의 치매 그런 경험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야기는 어떤 주제도 교훈도 주지 않고 그냥 시작하고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마무리 된다,

강이 흘러 바다로 간들 그게 끝일까?

삶이 죽음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그게 끝일까

(저자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듯이 윤회라는 것도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우리 엄마의 관계도 둘 중 하나가 이 세상에 없다고 끝이 될까

어떤 이후의 시간도 우리 둘은 여전히 모녀일것이고 서로 생각할 것이고 그리고 그때 너무 늦게 깨달으며 후회하겠지만 그렇게 또 누군가는 살아가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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