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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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위치한 계급과 경제력 학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모든 조건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이해하는 범위내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타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보아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건 배워서 되는 일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나도 넓은 세상의 아주 사소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지하고,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자꾸 되물어보아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기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판단이나 조언없이 그저 들리는대로 들어주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자꾸 개입하고 싶은 나 자신을 눌러야 하면서 그 마음에 이입하고 동시에 다시 나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게 하는 힘 그게 필요하다,

 

가정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닫는다,

폭력에 노출되어 계속 반복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그 되풀이되는 폭력에 익숙해진다고 생각했고  왜 여성들이 그 지옥같은 곳에서 나오지 못하는가를 의아해했을 뿐이다,

나 역시 어쩌면 세상에서 운 좋게 양지만을 밟아 오면서 모든 세상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 유사 남성일 수도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다양한 연령과 학력 계급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 처음 놀랐다,

여러 사례에서 피해 여성들은 다양하다

단순하게 학력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여려움이 있는 여성들이 주로 폭력에 시달릴 거라는 편견

적어도 배웠고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여성이라면 폭력에서 벗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편견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남편의 문제( 외도나 폭력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에서 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떠도는 말인데 남편의 연봉이 얼마 이상이라면 그냥 참고 살아라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라는 거다.,

세상은 이혼녀에게 더 각박하고 험난한 곳이라는 말도 늘 곁들여진다,

물론 그런 조언이 시도때도 없이 맞고 살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왠만하면 남자들은 다 똑같으니까  그놈이 그놈이고 세상은 혼자 사는 그것도 다시 혼자 살게 되는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쉽게 보거나 실패한 인생으로 보는 게 전부이므로 새로운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그게 꼭 현실적인 조언인마냥 돌아다닌다,

 

또 하나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간혹 이혼을 고민하면서

아직 경제적 자립도 힘드니 아이는 두고 나오면 어떨까 하는 고민글에

빠지지 않고 붙는 댓글이 이것이다,

얼마나 독하면 자식도 버리고 나오려고 하느냐

돈이 없어도 파출부를 하더라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렇게 악마같은 남편이 자식인들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줄 아느냐 아이를 버리고 나오느니 차라리 참고 살아라

 

결혼한 여자는 이미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다,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며 딸일 뿐이다,

남들은 참고 사는데 그걸 못참고 뛰쳐나오려고 하느냐

아이 생각하지도 않고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이냐

시부모는 언젠가 늙고 죽는다, 조금만 버텨라

친정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으려느냐

어떤 선택이든 그 곳에 나는 없다, 주위의 눈만 바글바글 존재하고 책임없는 훈수들만 존재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들 중에는 아이만 다 키우면 다 혼인시키고 나면 이혼하겠다고 결심안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있을 거다 많이...)

결국 아이에게 결손가정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 오롯한 자식에 대한 책임을 여자는 짊어지고 있다,

학령기 아이를 애비없는 자식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애미없는 자식)

사춘가 아이가 혹시나 남들고 다른 부족한 가정형편으로 삐뚤어질까봐

행여 취직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혼인에서  손가락질 받거나  꺼려지게 될까봐

나아가서는 혼인 후에는 사돈보기 남사스럽고

이미 살아온거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라고 그럴까 하는 마음에

결국 모든 선택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만하면 나쁘지 않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세상이 바뀌어 여성상위시대라고들 했다,

알파걸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남녀공학의 남학생은 여학생들을 위해 깔아준다고들 하고 여성의 대학진학율이 높아지고 상위 성적을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사법고시등등에서 여성 합격율이 높아지고  있다, 교실에서도 여자애들은 만만하지 않다, 일단 말싸움에서 남자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은 논리와 표현력과 단결력까지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주먹이 날아가면 결국 폭력을 택한 남자아이는 야단을 맞는다,

부모들은 말한다, 여자애가 남자애를 자꾸 살살긁어대니까 그런거라고

결국 남자애들이란 단순하니 감정이 앞서서 때릴 수 밖에 없지 않냐고

결국 매를 벌는 짓을 하고는 여우같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때린 너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말로 놀렸거나 다그친 너도 잘한게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다,

여자는 대꾸하거나 말대답을 하거나 논리를 앞세우며 남자에게 대척하는 순간 나대는게 되고 매를 버는 일이 된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아들들에게 딸들가 상대하지 말라고 하고 그렇게 나대는 여자애들이랑 사귀지 말라고 하고 여자에게 나서지 말라고 하고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쓰는 족속이라고  말하고 여자보다 성욕이 강한 존재이니 그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 살랑거리지 말라고 하고... 남자는 남자는  어찌어찌해서 여자가 조심해야한다,

결국 당하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조심해야할 일들뿐이다,

그러게 조심했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을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느냐고 안그래도 상처입고 피를 철철 흘리는 여자에게 또다시 소금을 확 뿌리는 꼴이다,

 

그런 모든 일들은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는 그대로 다시 재현될 뿐이다,

니가 살림을 하지 않았고 게을렀고 내 말에 대꾸했고 무시했고 나보다 돈을 잘 벌고 나보다 더 배경이 좋으니 맞아도 된다고.. 그렇게 합리화된다,

 

 

책에서 가장 무릎을 치는 부분은 가족은 사회의 영역이 아니고 사적인 영역이라는 말이었다,

교과서에 나온 문맥 가족이란 사회의 기본단위이다 라는 명제 그게 참 무서운 거였다,

가정  즉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로서의 존재이지 사회는 아니다,

가족의 영역은 사적인 영역이고  그곳은 가부장적인 힘을 가진 남성 가장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격영역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알력이나 갈등은 그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사회에서 개입해야 할 곳은 아니다,

그저 사생활이라는 말로 외면받는 치외법권지역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를 맞아도 그건 부부사이의 일이고 부부싸움이란 타인이 끼어들어서는 안되는 영역일 뿐이다,

누구나 알지만 눈을 감는다, 가족은 타인의 성역이고 사사로운 일이므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서로 에티켓이되어버린다,

 

가족폭력방지법이라는 것조차 매맞는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폭력으로 깨어진 가족을 어떻게든 다시 끼워맞추어서 행복하고 화목한 사회의 기본구성으로 되돌리는 것뿐이다,

여성의 고통을 드려다 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 와중에 여성들 또한 가족을 꺠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게 결국 여성의 역할로 완성되는 기괴한 구성이다보니

여성이 가족에서  도망치거나 독립해버린 순간 그것은 가족이 아니게  된다,

온간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가고 모든 비난은 여성이 감당한다,

아직 어린 혹은 예민한 아이들을 위해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라고 믿고 싶은 남편을 위해

남들에게 우세스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그러진 자존심때문에 그저 모든 문제를 끌어 안고 가려고 하고 그 러기 위해 택하는 선택은 모든 것이 내탓이다,,, 라는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애교가 있지 않아서 내가 게을러서 내가 그때 한눈을 팔아서

저 사람은 순간 욱해서 너무 화가 나서 자존심에 기스가 나서,

그렇게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돌리고 어쨌든 금이 간 가정을 부둥켜 안는다,

그 날카롭게 깨어진 모서리에 가슴을 베이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내 폭력은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들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모두 정치적이고 권력문제라고 본다면 폭력을 당연할 수도 있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신뢰로운 관게여야할 부부사이에도 권력이 존재해서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왜 부부사이의 폭력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아니라고 다들 믿어버리는 것이가가 문제이다,

아내 폭력이 사회속으로 나와서 이것은 더이상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할 때  불편해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 역시 불편하고 힘들었다,

내가 아는 세상이 내가 글로 배운 세상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 알게되는 도끼로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몰랐던 일이었다,

 

안서니 부라운의 <돼지책>에서 돌아온 엄마는 변한 아버지와 아들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평안하게 가정일을 분담이 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돌아온 엄마는 다시 구타속으로 돌아가고 가족을 버린 모진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게되고 그녀를 믿지 못해 화가 난 남편의 행동에는 정당성을 얻게 되고 그녀는 점점 더 의무감만 늘어갈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 그녀조차 이혼녀라는 이름으로 쉬운 여자라는  편견속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책이 나온지도 꽤 되지만  지금껏 변한 것은 여전히 없다,

념편의 폭력은 가정사이고 여자의 반응은 계획적인 범죄가 되고 

가정의 행복은 여전히 사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 책은 차라리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읽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일이다,

꺠닫고 실천하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지만 몰랐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런 저속한 짐승같은 남편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남성들도 자기를 무얼 모르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스스로 누리고 있는 평온과 행복 뒤에 누군가의 눈물이 있는건 아닌지 누군가의 억울함이 숨은 건 아니지 말이다,

 

책이 도끼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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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 -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땅콩문고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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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맘에 든다,

일단 두께가 부담이 없고 언제 어디서든  쉽게 펼쳐 읽기 편하며 어디든 펼쳐지는 부분에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나의 책읽기 단계는 어디쯤일까

적어도 초급은 지났다고 할 수 있고 중급도 조금 지나지 않았을까 하고 과감하게 생각한다

고급이라고 하기엔 아직 독서력이 단단하지 않고 어려운 책은 조금씩 피하고 있는 중이니까

중급이긴한테 조금 연차가 된 중급? (이게 무슨 말인지,,,,)

한때 ebs 초금 영어회화를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제 왠만하게 초급은 넘어가도 될 상황이라고 판단했지만 중급은 초급보다 조금 더 어려운게 아니라 많이 어려워보였다,  한달 중급을 듣다가 다시 초급으로 계속했다,

뭐 영어라는게 언어니까 초급만 열심히 해도 문제 없지 않냐고 스스로 중급을 신포도로 만들면서

그 단계를 넘기질 못했다,

무언가를 배울때도 사실 시작은 잘 하는데 어는 순간 한 과정을 넘어가는 순간에 늘 머뭇한다,

충분히 자기 능력을 믿고 저질러야 하는데 그게 늘 힘들다,

누구나 10을 모두 가지고 앞으로 나가지는 않아요 4 밖에 없어도 10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10은 아니어도 5 6  7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라고 충고도 들었지만

늘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어서 늘 나를 채워내지 않은 채 단계를 넘어가거나 남앞에 선다는 건 일종의 사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책읽기에 대한 책 리뷰를 써야하는데,, 자꾸 옆으로 이야기가 세고 있다,

이 책에서 책 읽기에 대한  충고들은 책을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다,

왜 책을 읽는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사실 책읽기에 어떤 정해진 모범 담안이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수가 인정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있다,

좋아하는 책부터 읽고 조금 어려운 책도 도전하고 다양하게 읽도록 해서 지식이나 정서상의 편중을 피해야 한다든가,,

 

책에도 나오지만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세상에 내가 아는 건 얼마나 적은 부분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내가 모르는 세상이 많고 내가 모르는 작가도 많고 내가 모르는 분야도 많다는 걸 알아가는 것 결국 나는 이 우주에서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겸손함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양가적 감정인지 몰라도 조금만 읽어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를 인간은 읽는 인간이기만 해서 읽을 수록 점점 움츠려 들기도 하고 어쩌다 이러아러하지 않을까요 하고 언급했다가 와` 하는 눈빛들을 보는 순간 아! 실수~~ 하는 감정이 훅 하고 들어온다

읽는 건 잘하는데 그걸 안다고 드러내는 일은 늘 쉽지 않다,

읽었다고 아는게 아닌데 하는 생각은 동시에 읽어도 모른다는 건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까지 야기한다,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펼져야하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깨가 움츠려드는 이유

내가 모른다는 걸 자꾸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는 게... 좋은 걸까? 좋지 않을까?

 

책을 읽어 겸손해진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알게 된 지식이라면 지식   정서라면 정서 자기성철이라면 성찰들이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니까 내가 알게 된 것 깨닫게 된것이 당연히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그래서 이정도도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누군가를 대할때 한없이 가혹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왜 모를까? 하는 답답함을 느끼는게

항상 기준에 내가 되어버려서일것이다,

사람에 따라 어떤 부분은 부족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월등하기도 하다,

누구나 균형있는 게 아닐 것이다,

어느 부분은 넘치지만 어느부분은 모자라는 것이 사람일진데

늘 나는 내가 가진 부분을 기준으로 넘치는 사람에게는 와~ 하며 기가 죽고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아니 이럴수가 ~ 하며 놀라고 화가 난다,

책을 읽어도 인간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이

적어도 몰라서 잘못하는 일들을 줄이는데는 도움되었으면 한다,

남의 감정을 몰라서 남의 상황을 몰라서 타인이라고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상황들

그래서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일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줄여나가기 위해 책을 읽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서 모든 사람에게 적확한 대응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책 속의 누군가를 만나면서 아 이런 감정도 있겠구나 이런 상황도 있는거구나 알아가면서

그럴 때 내가 조심하고 도움은 아니더라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알아서 남주는 건 아니어도 알아서 남에게 상처 입히는 것만은 아니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책에서도 함께 읽는 모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오래 독서모임을 했지만  책에 대한 지식이나 그런 것을 더 많이 얻은 것은 아니다,

자꾸 삼천포로 빠져서 짜증나는 순간도 많았고

내가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책을 누군가가 단정적으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의 욱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경험도 했고 너무 시시한 책을 선책하는 것이 한숨도 쉬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느끼는것 생각하는게 제각각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같은 책을 읽어도  저마다의 상황이나 성장과정 성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는 걸 늘 지나고 나서 꺠닫는다,

그렇게 꺠닫고도 다음 시간에 가면 또 열을 받고 짜증을 참고 잘난척을 누르지 못한다,

그리고 지나고 또 깨닫지만.. 늘 되풀이다,

그래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나 스스로 위안을 한다,

 

어떤 책이 내게 왔으르 때도 나의 상황에 따라 그 책이 다르게 읽히듯이

서로 다른 타인들이 같은 책을 읽는다고 같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끔찍하지 않을까

 

나는 아마  앞으로도 책을 계속 읽을 것이고

조금 변화되기도 하고 전혀 바뀌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터무니 없이 너그러워질 수도 있고 찌질하고 통속적으로 질투하고 미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앞으로 두걸음 뒤로 한걸음 해가며 조금씩은 나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죽을 무렵에는 그래도 태어났을 무렵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면 되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책 읽는 거라는 건 변함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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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0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의 진짜 목적은 ‘뒷풀이’입니다. 사실 뒷풀이 분위기가 정말 좋아서 독서모임에 출석했어요. 뒷풀이 시간에도 책 이야기는 빠지지 않습니다.. ㅎㅎㅎ
 

 

 

 

 

 

 

 

 

 

 

 

 

 

 

 

책을 읽고 나니 나는 그동안 독후감을 써왔구나..

뭐 서평이라고 쓴건 아니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도 해본다,

알라딘 서재에는 리뷰가 있는 거지 서평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내성적인 아이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야매로 검사한 애니어그램의 5번 유형은 사교성이 없다, (절대 사회성이 없는게 아니다)

자기 원칙에 엄격하고 감정적인 발산을 자제하며 머리를 쓰는 일을 좋아한다,

머리를 쓴다고 머리가 좋다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바로 연관시키면 곤란하다,

그냥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행동이 굼뜨고 쉽게 지쳐버린다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은 아이가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부모에게 야단맞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내가 말을 걸 때만 나에게 다가온다,

먼저 다가와 나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책은 내파 펼쳐 들어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해주지만 필요이상 친근하게 굴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거나 침묵할 뿐이고 나에게 질문하지도 않는다,

책은 가장 좋은 도피처이고 가장  행복한 해방구이다,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책을 읽는다는 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멀어지게도 만든다,

잘난척 하느라 책만 보고 사람은 무시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잘나서 책만 보는 사람이 끔찍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누구보다 내가 잘나지 않은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그렇게 말한 당사자도 내가 잘나서 책이나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냥 감정적으로 뱉은 말일 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외롭지 않고 책을 읽는 동안은 행복하고 책을 읽는 동안은 의미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싫지는 않았지만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온 날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고 지쳤다, 그저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울때 느끼는 만족감이 변태처럼 좋았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했다,

한권만으로 불안한 적도 있어서 차려입은 것과 어울리지 않게 무거운 가방으로 비스듬한 어깨짓을 한 채 외출하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심지어 업무시간에도 틈틈히 책을 보는게 좋았다,

뭐 그래서 대단한 무언가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많이 읽었던 아이가 많이 읽는 어른이 된 것 뿐이다,

 

지금 나는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 대신 친구랑 노는게 더 좋고 친구랑 떠드는게 더 좋다면 그걸 해도 된다도 생각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 빠져서 하루종일 그 오빠만 생각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도피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 내가 책으로 도망갔듯이 아이가 무언가로 도망치기 위해 열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요샌 너무 안읽어서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책읽기 = 지식이라는 공식은 믿지 않는다,

오히려 책많이 읽어서 대가리만 기괴하게 커진 괴물보다는

읽지 않아도 원칙을 알고 도리를 아는 게 더 낫다고 믿는다,

 

나는 왜 읽을까

내게 독서는 도피처였다,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너무 힘들고 불안할때 내 앞에 쌓인 숙제가 너무 많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며칠을 계속 책만 보고 싶다,

책만 보고 또 보다가 어느 순간 기록을 남긴다,

셔평이란건 생각치도 않았다,

그냥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내 감정 내 성찰 정도였다고 할까

책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게 고작이었다,

남들의 서재를 보면서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는  글들을 좋아했지만

막상 나는 나에게로 향하는 길 이외에는 알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내 속엔 내가 꽉 들어차서 다른 곳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어도 결국 머리만 커지고 아무것도 아닌 어른인 나는

그렇게 아직도 나에게만 매달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왜 읽을까

적어도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픈 사람 악한 사람 대책없는 사람 어이없는 사람 순한 사람 악만 남은 사람  후회하는 사람 불안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

나처럼 대책없이 비관적인 사람,,,,

조금씩 만남을 넓혀가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생각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

어떤 것도 옳고 그름으로 나뉠 수 없다는 걸 배운다,

누구나 옳고 누구나 귀하다,

제각각이 이름을 가지고 살아온 시간을 가지고 그만큼의 관계들을 가지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 그들 누구도 뭉뚱거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타인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걸 공감이라고해도 될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 입장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부류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는 걸 알아주고 쓰담쓰담해주는 것을 배운다,

책속의 누구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책속의 누군가를 닮은  내 곁의 누군가를 본다,

이 사람은 그때 그 이야기속의 누군가를 닮았구나

진짜 이런 유형도 있구나 ...

나는 거꾸로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다,

 

역시 나는 서평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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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2-07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제가 쓴 글인양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0   좋아요 0 | URL
여기 서재엔 서로 닮은 부분을 가진 분들이 많을거같아요. 그 중 님이 공감해주셔서 너무 좋네요~~^^

아무개 2017-02-07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좋아요 열번 누르고 갑니다 *^^*

푸른희망 2017-02-07 16: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님도 은근 소심하신가요?^^

cyrus 2017-02-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목적이 개개인마다 다르더라도 저는 리뷰, 서평, 독후감을 단순하게 같은 의미로 보고 싶습니다. 세 가지 용어를 비교하면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차이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다릅니다. 굳이 용어의 정의를 통일하면서까지 리뷰는 어떻고, 독후감은 이런 글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푸른희망 2017-02-07 16:53   좋아요 0 | URL
사실 책을 읽으며 사이러스님의 리뷰가 떠올랐어요 딱 서평이라고 할만한.....님의 리뷰를 보면 제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책이 끌리거든요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리라이팅 클래식 5
이혜경 지음 / 그린비 / 200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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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난 맹자가 아닌

누군가가 소개시켜준 맹자를 만나다.

유교라고 하면 늘 공자가 떠오르지만 맹자의  유교도 매력적이라는 걸 알게 해준 책

 

 

그는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파악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을 염려하는 능력이다, 함께 느끼는 능력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그르므로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인간은 고립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넘나든다, 그러므로 맹자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과 우애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한가지 일이다,

 

 

유학이 인간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준 윤리이론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학은 또한 정치이론이다, 개인의 선한 삶이 모두의 선한 삶으로 이끈다는 윤리 정치 이론이다,

서양에서 수입된 근대의 정치는 윤리와 분리된 것이다, 물론 정치인의 직업윤리는 묻지만 정치인의 자질로 전인격적 고귀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보수주의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전통은 유학이고 맹자일 것이다, 맹자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자각했다, 인간의 본성을 먼저 자각한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장 포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정치였다, 그에게 정치는 자신의 사랑을 가장 폭넓게  실행하기 위한 길이엇을 뿐이다, 이기적이기 십상인 권력자들을 다루는 것은 그의 또다른 과제였다

 

                                                               머리말에서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도의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두가지를 다 가질 수 없다면 나는 살을 버리고 도의를  택할것이다, ........... 만일 사람들이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다면삶을 얻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없다면 환란을 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에게는 삶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나에게는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환란을 피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느 ㄴ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진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잃지 않았을 뿐이다,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공경하는 마음 (공경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인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의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이다,

 

 

이 사단의 마음 말고맹자는 또 다른 중요한 마음의 작용에 대해 말한다, 그는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얻는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착한 마음의 싹 즉 본성을 잃지 않고 지키는 것이 이 "생각"하는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이 생각이란 본성에 대한 생각하는 것일 텐데 본성을 생각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맹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  "사람이라면 이러면 안되지" 하고 순간 엇나갈 숭 ㅣㅆ는 자신에 대해 제동을 걸고 반성하는 마음이 이 마음에 해당되리라 생각한다,  

 

 

측은지심의 마음 즉 사랑은 자극에 의해 자라는 감정이다, 그르므로 채어나면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면서 형성한 부모와의 유대감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르므로 아이가 자신의 측은지심의 범위를 점점 확대해난가 점점 많느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도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수는 없다, 부무 자식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다, 그 사랑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하며 그 사랑을 핵으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퍼져 나간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언대이고 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 측은지심을 키우는 첫번 째 장은 그 가족이다 부모이고 형제이다, 부모 자식 뿐 아니라 형제 사이의 애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옳고 그름의기준이라든지 원망이나 노여움의 감정이 그것을 이길 수 없다,  

 

 

맹자는 사상가이면서 어쩌면 심리학자이다,

초기 애착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볼비가 그 안에 있고

초기 애착이 잘 형성되면 욕구가 안정되고 나아가 사회성형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맹자에게서 볼 수 있다니

결국 초기 양육자 결국 엄마를 비롯한 가족간의 사랑이 모든 인의 시작이라고 맹자는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타고난 것이라 무턱대로 억누르거나 없는 척 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타고난 인의에지와 함께 타고난 오감의 욕구도 자연스럽다

인간은 주체적 존재이므로 스스로 원리에 의해 행동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존재이다,

세상에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스스로 타고난 선함을 인간의 노력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키워나가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그 길로 가지 않으며 마음을 놓아 버리고서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픈 일이다, 사람이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 모르는구나 학문의 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쇨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하며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진실에 대해 항상 깨어있으려는 의지 옳은 것을 실천해야한다는 의지를 갖는일이 맹자가 말하는 '일 삼음"일 것이다, 또한 그긋이 내 몸과 마음을 전일하게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조급하게 강행해서도 안 된다, 억지로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은 있더라도 몸은 그릏게 안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스스로 하나가 되는 지점에 이르도록 서로를 키우는 과정을 쌓아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 내 마음의 올바름에 비추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것이 어떤 위협을 동반하는 일일지라도 나는 흔들림 없이 그것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

내 감정 내 몸 내 정신이라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배우고 반복하고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모든 것을 해내는 것도 아니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연습과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 감정도 내것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남에게 적당하게 피해지주 않고 보이는 것이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

이것은 심리학책에서 본 것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근거는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인의에지의 싹이다, 내게 와 닿는 타인의 인의에지는 나의 싹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본성을 어느 정도 키웠느냐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본질적응로 너와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는 같다, 누구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맹자의 생각처럼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기제가 같다면 문제는 자신의 인의에지가 부족한 경우에만 일어난다,

 

누구나 타고 나는 선함의 싹을 어떻게 인의예지로 키워나갈것인가는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고

그가 처한 상황화 교육에도 좌우된다, 내가 가진 본성의 선함은 결국 타고난것인 동시에 키워나가야하는 것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 맹자가 대답햇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지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림 없이 따르실 것이다,

 

 

 

덕을 존중하고 정의를 즐기며 등용되는가 여부에는 초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비는 공궁한 상황에 처해도 정의를 잃지 않으며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곤궁해도 정의를 잃지 않기 때문에 선비는 자족할 수 있고 출세해도 도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옛사람은 뜻을 이루면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도록 했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몸을 닦아 세상에 드러냈다, 곤궁한 상황에서는 홀로 자신의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천하 사람들과 함께 선을 실천한다,  

 

 

 

 

맹자는 인간은 선의 싹을 얻어 태어나고 스스로 결단과 노력을 통해 그것을 키워나간다고 보았다, 그 선한 싹은 서로를 알아가는 공감의 능력이지만 그저 싹일 뿐이니 계속 키워나갸야 하느 ㄴ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은 것 그것은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세상을 선하게 만드는 것도 선한 싹을 키워나가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는 성선설이란 타고난 선함이 아니고 키워나가야 하는 선함이라고 할때

맹자는 인간의 의지 인간이 가지는 주체성을 더 말하고 있는게 아니었을까

 

이것이 저자가 소개해주는 맹자의 이야기다,

내가 직접 맹자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난 맹자는 활달하고 유쾌하며 단호하다. 공자의 춘추시대를 지나 전국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세상의 질서가 혼란으로 덮인 시대에 맹자는  그 욕망가특한 인간이 그래도 선한 싹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제후와도 관계하지 못하고 관직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맹자는 낙천적으로 세상을 바라본게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군가 스스로 노력해서 선함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짧은 식견으로 맹자가  생각하는 정치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도덕적인 군주라면 마땅히 실패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나?

그정도 흠이 없는 사람이 있나?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원만하게  두루뭉실 안일하게 지도자를 생각해왔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대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고 당연히 타인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쩌면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으니 완전하지 않은 삶에  완전하지 않은 질서에 순응한다는 건 다른 말이다

완전하지 않아서 완전함을 추구해야한다는 게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것을 알고 겸손해야한다는 게 우선 아닐까

 

나는 완전하지 못하니 완전하과 위대한 누군가 절대자를 기다린다?

그건 착각이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없을거다,

누구든 흠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인간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한계를 스스로 알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

그래서 겸손하고 늘 자기를 돌아보려는 사람 그리고 돌아보는 사람을 원한다,

실수하면 질책도 받아들일 줄 알고 고치려고 시도를 하는 사람

보수든 진보다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 아닐까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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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에니어그램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5번 유형이었다,

그냥 간단한 검사여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에니어그램을 공부하신 분께 두 차례 강의를 듣고 다시 검사하니 내 유형이 아리송했었다,

에니어그램도  mbti.처럼 성격유형을 알아보는 검사로 쉽게 접근했었는데

공부하신 분의 열강을 들으면서 솔깃하다가도

결국은 꼭 사람을 그렇게 유형별로 나눌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란 언제나 어떤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면도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대충 넘어갔는데

 

이 책을 빌려서 한 번 제대로 알아보자 하다가

결국 중간도 못가고 일단 덮었다,

여러가지 문항을 보면서 점검을 해보면 내가 아닌 성격은 확실하게 아닌데 맞다 싶은 건 이렇게 보니 이것도 맞고 저렇게 보니 저것도 맞고 알 수가 없다,

읽다보니 1번 유형도 보이고 3번 유형도 보이고 4번 유형도 보이다가 이젠 5번은 전혀 아닌것도 같고...

어쩌면 내가 갖고 싶은 성격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가 원하는 성격으로 살려고 가면을 쓰다가 그렇게 굳어버린 면도 있지 않나 생각도 하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뿌옇게 된다,

공부가 짧아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삐딱한 마음에 꼭 이렇게 사람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거다

그떄 강희하신 분도 성격이라는 것이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딸다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꼭 이렇게 검사를 해야하나?

요새는 진로지도에도 에니어브램이나 MBTI 가 이용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어떤 길을 찾는데 작은 도움은 되게지만 딱 그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이런 검사도 어떤 용한 점쟁이한테 사주를 풀이하고 점괘를 얻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생기는 장벽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내 삶에 딱 정확한 정답을 달라는  억지를 부리느라

모든게 못마땅한걸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역시 리어왕의 이말이 어떤 검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이다,

이런 멋진 말을 정말이지 구리고 구린 누군가가 자기 소설 표제로 써버렸다는게 몹시 괘씸하지만,,,

나로서는 에니어그래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소설속의 인물을 만나는게 더 편하게 느껴지니

역시 공부 부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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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을때마다 유형이 바뀌어서 나중엔 2~3개 빼고 다 해당되는것 같아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버리더라구요. 차라리 애니어그램보단 별자리가 더 정확한것 같아요 ㅎ

존재혁명 2020-06-1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격심리로 접근해서 그래요. 영성심리로 접근해야 이해가 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