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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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늘 비슷한 패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쓰는 글은 어쩔 수 없이 내 스타일이구나 하는 생각

그것이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할 수 없지만 내가 쓰는 글은 늘 비슷하구나 생각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어쩜 이렇게 쓸 수가 있을까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라는 욕망을 느끼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아도 결국 내 스타일로 돌아온다,

 

내 스타일이란 어떤거지?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뭐랄까

투명하지 않고 조금 애매하며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표정같은거??

 

저자는 사회심리학자로 심리치유적 글쓰기 연구에서 시작에서 사람들이 쓰는 글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프로그로밍된 컴퓨터가 개인이 쓴 글을 분석하면서 엌던 단어를 쓰고 어떤 보조어를 썼는가를 계산하고 분석하면서 사람을 판단한다,

'나'와 '우리'를 쓰는 것에 대한 비교

부정적 감정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인칭대명사를 쓰는 빈도

등등등

여러가지 분석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한다,

흥미롭다,

이렇게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구나

그런데 읽어갈수록...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사고가 강한 나라서인지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든다,

어떤 심리학 실험이든 결론은 항상 ... 세상은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긴다는 것 그것이다,

그 다양한 경우의 수를 비슷한 것들로 묶을 수 있지만 결국 비슷하다는 것이지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컴퓨터의 정확성을 수치로 여러번 말하지만 사람이 판단하는 50%의 정확성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내 생각엔)

통계적으로 50%와 75%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화고 맞지 않은 50%와 25%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변수가 있고 예외상황이 있다면 결국 그저 이렇게 저렇게  대략적 구분이상은 아니지 않나 싶다,

저자도 늘 강조하듯이 사람이 쓰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지만  사용하는 단어를 바꿈으로써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이러한 단어를 쓰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랆 말을 하는 사람은 이런 특성이 있다고는 알 수 있지만  이러이러한 성격이나 특징을 가지려면 이런 단어를 쓰야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론이 아닐까

그래도 흥미로운 부분이 몇 있다,

 

왜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할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단어를 통해 나의 <성취욕구>  < 권력욕구>  < 소속욕구>를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는 알듯 모를 듯 최고로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단어이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 스타일로 관계의 지속 여부를 알 수 있다,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명사를 쓸까 동사를 더 많이 쓸까?   명사다.

대입 논술에 쓴 단어로 미래의 대학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

위증과 진실로 밝혀진 증언의 차이는 대명사에 있다,

대통력의 연설을 보면 그의 리더쉽을 알 수 있다,

단어는 나를 보여주는 <광고판>이다.

 

 

흥미롭지만 딱 거기까지...

어쩌면 굳이 컴퓨터를 돌려 분석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말투 쓰는 말 단어 그리고 글에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딱 구분지어 이러이러한 유형의 사람이라고 나누진 않더라도

내가 지금 대화를 나누는 사람

내가 읽는 이 글을 쓴 사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의 말투와 말의 내용을 통해서 ...

우리는 사람을 알 수 있다,

 

어제 뉴스룸에 나왔던 한잔 걸친것 처럼 무례한홍준표 답답하게 단답형 대답만 반복하던 안철수 그리고 부들부들하면서도 끝내 침착함을 유지한 손석희의 말을 보면서 그 사람을 다시 알게 된다

사람은 의외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모습을 많이 흘리고 다니는  존재다.

나도 어딘가 나를 많이 흘리고 다녔을 것이고 그게 나의 전부일 수도 일부일 수도 혹은 전혀 나와 상관없을 수도 잇지만..... 어쨌든 타인의 눈에 보이는 나다,

 

이 책은.... 처음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조금 미약하다, 유감스럽지만,

 

 

p.s.  나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으로 책을 평가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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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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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의 기억에는 그림책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줄글이 있고 삽화가 곁들어진 동화였다,

글을 알게 된 이후 책을 만났을 것이다,

누군가 어른이 내게 책을 읽어준 기억이 없고 혼자 글을 알고 난 이후 책을 만났고 읽었다,

누군가에게 안겨 책을 듣는 달콤한 추억이 없다고 슬프거나 불행하진 않다, 우리 나이때는 누구나 그랬을테니까

내가 만난 그림책은 국민학교 4학년때  미국에서 나온 이모가 사촌인 자기 아이들을 위해 가지고 왔던 영어라 씌여진 그림책이었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 귀여운 곰돌이 캐릭터가 있고 색감이 화려한 책

읽을 수 있는 글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예쁘고 볼만했고 갖고 싶었다,

 

결혼하면서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책을 많이 읽어줄거라고 결심했다,

아이를 낳고 그림책을 많이도 사들였다, 전집은 절대 금지 하나하나 서점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보면서 그림책을 모았다,

그 나이때  그 월령때 누구나 본다는 그림책에서 내가 궁금한 그림책

의외로 별로인 그림책을 아이가 좋아하는 경우가 잇었고

나는 정말 좋아하는데 아이가 시큰둥한 경우가 있었다,

큰 아이는 새로운 그림책을 자꾸자꾸 궁금해하고 탐내서 목이 쉬어라  이책 저책 읽어준 기억이 있고 작은 아이는 뚜렷한 주관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만 몇번이고 읽기를 요구했다,

읽다읽다 내용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지루하기도 하고 또 새롭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고 이젠 그림보다 글이 더 많은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글자들이 빽빽하게 채우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은 멀어졌다,

나도 이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되어 행복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몇권 남기고 정리했다,

그리고 독서치유를 공부하면서 다시 그림책을 읽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글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새롭게 내게 왓다,

그렇게 다시 그림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나는 그림이 주는 빈 여백과 공간이 많은 그림책이 어려웠다,

시시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너무 단순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때때로 그림속의 아이가 내 아이의 표정이고 내가 잊은  그때 나의 표정이고 상황이고 내가 미워했던 내 부모의 모습이기도 하고 그랬다,

그렇게 그림책이 다시 내게 왔다,

아직은 초보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읽고 만나면서 이야기가 주는 감동과 또 다른 묘한 감동을 배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여질때

이게 과연 상대에게 도움이 될까 주저될때

내 마음을 말하고 싶지만 내 감정이 너무 격해서 혹은 내 감정이 동하지 않아서 아무말도 나오지 않을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을때

그림책은 그렇게 슬쩍 내밀어 주는 것으로 그냥 무심하게 넘기는 것으로  유용했다

 

그리고 그 그림책을 그리는 작가들의이야기를 본다,

창의성에 대해  공감과 위로에 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이렇게 전해주고 싶었어

아니 내가 이런 말로 위로받고 싶었어 하는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갖는다,

단순하게 그들의 생각이 말들이 위로가 되었기에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적어두기로 했다,

누군가  언젠가 이 말들이 필요할 때가 있고 묘하게 다가올 때가 있을 것이고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의 그림책중 내가 아는 건 한 손가락도 다 못되지만 그래도 장바구니 가득 담아두었다,

상상력과 창조성

공감과 소통에 대해

그들은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다,

당신에게도 아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것이다, 당연히,.

 

내가 이 작가들의 그림책을 일고 난뒤 다섯개의 별을 채우기위해 하나를 뺀다,.

 

 

 

 

1. 조엘 졸리베

 

관찰력이란 정확히 어떤 능력을 말하는 걸까요?

 

-관찰력은 보는 대상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감찬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감탄하는 마음이 관찰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관찰이라는 행위안에는 사랑의 성분이 분명 들어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째 카페나 지하철에서 관찰 크로키를 하고 잇는데요., 우리는 흔히 못생겼다고 치부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전 그 사람만이 가진 선과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특징같기도 한데 사실 전 모든 존재는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2. 키티 크라우드

 

--30년 후에 두 아이가 저를 좋은 엄마였다고 회상할지 잘 모르겟습니다, 우선은 엄마이전에 자기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읻 ㅚ어야 한다고 믿어요 아무리 음식을 잘하고 뒷바라지를 잘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엄마의 열정과 영혼이 안느껴진다면 아이는 껍데기 엄마를 만나는 겁니다, 뭔가에 열정을 지닌 사랑잇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표를 모으거나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그 대상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이 없어요, 엄마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나 자신의 행복을 디자인해가는 과정과 그리 밀리 떨어져 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올리비에 탈레크

 

공감능력과 창의성의 상호관계에 대해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 전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예술가는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술가가 하는 일이 대개 혼자만의 고아간에 앉아 하루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작품 생각만 하는 건데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정된 자의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자기 안에 함몰되기 보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새로운 경험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한계를 조금씩  깨면서 성장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게 공감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감 능력이 없으면 상상도 허약해질 수 밖에 없답니다, 일례로 제가 "리타와 마샹"시리즈를 그릴 때 "내가 리타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하도 많이 하니 나중에 "리타는 이런 목소리 톤을 가진 꼬마일거야 " 하며 목소리까지 들리는 경지에 이르더군요.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었죠. 공감 능력은 상상에 숨을 불어 넣고 생각에 디테일을 더해줍니다,

 

 

4. 클로드 퐁티

 

현실논리가 통하지 않고 상식이 전복되는 상상 세계를 왜 그토록 좋아하시나요?

 

-- (중략)  말로만 민주주의 저항을 외치면서 실제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모순을 보면서 어른들의 저 번지르르한 말이 실은 상상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거를 하고 투표를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실생활에서 정말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사나요? 저는 우리가 쉽게 현실이라고 이름 붙이며 묘사하는 내용이 얼마나 현실에 가깝냐고 질문하는 겁니다, 스코틀랜드 네스 호에 산다는 괴물 '네시 이야기를 아시죠? 각국에서 탐험대를 파견하는데 연구자마다 외양에 대해 서로다른 묘사를 내놓습니다, 쟈기 머릿속에 있는 걸 본다는 뜻이예요.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 아는 것을 봅니다, 저에게 상상은 허왕된 게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설명입니다,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과 관점이 무척 다양할 수 있다는 것 단 하나읮 ㅓㅇ답지 따위는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상상 셰계를 그립니다,

 

 

 

작가님 책의 주인공들은 늘 여정 안에 있스빈다, 난관을 마주하면서 때로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왓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집니다, <끝없는 나무>의 주인공 이플렌은 여행 끝에 괴물을 만나는데요. 괴물이 소리칩니다, " 난 네가 전혀 무섭지 않다" 이뮬렌의 대답이 정말 절묘합니다, "나도 내가 무섭지 않아" 이 용감한 선언에 괴물은 녹아서 사라집니다,

 

--  인생의 난관에 좌절하지 않고 그걸 발판 삼아 성장하려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잇어야 합니다, 장애물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잇을 수 잇어요. 도망가거나 맞서거나 빙 둘러가거나 ... 해겨책이 한 가지 모습일거라고 믿지 마세요. 예전에 부모님과의 불화로 오랫동안 거식증을 앓다가 거의 회복되어 이제는 다른 환자를 돕는 젊은 여성을 만나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그녀에게 거식증은 죽지 않고 버티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거식증은 회복으로 가는 과정이자 해결책이지요. 시간이 지나 더 이상 거식증에 기댈 필요가 없을 때 빠져 나와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좌절이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하려면 '해결책은 하나가 아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반응들은 당연한 거다" "난 과정중에 있는 거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5.새르주 브로크

 

작은 용기내기 습관이라 .. 흥미로워요

 

-- 전청의성이 그저 무언가를 할 용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그것뿐이예요. 스스로에게 무언가해보는 것을 하락하는 마음. "왜 안되겠어" 라는 생각 '실패해도 괜찮아 별거 아니야  말해주는 자세 이것이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유일한 차이예요. 학교 쉬는 시간에 가졌던 태도와 자세를 기억하는 겁니다, 쉬는 시간에 애들하고 놀 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내 앞에 잇는 상황과 논다는 생각으로 덤비는 거죠. 노는 마음이 중요해요. 유희하는 마음은 여유를 낳고 여유는 작은 용기를 낳으니까요. "나는 지금 노는 거야"라고 생각을 가지면 요리 친구와의 모임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지고 창의성을 표출하고 싶어져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창의성잉 ㅣㅅ어요. 창의성을 너무 국한 지어 특별한 사람만 가질 수 잇는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조금 더 용기를 내지 안으면 때로는 타인에 의해 내려진 선택 혹은 타이밍이 만들어준 선책에 삶이 끌려갈 수 있어요.

 

 

6.  뱅저먕 쇼

 

자신의 결점과 함께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인지 이해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결점과 함께 창작한다는 건 다시 말해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누군가가 되려 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라고 결심하다는 뜻이죠.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보이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에 흔딜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타인의 부족함은 관대하게 이해하고 오히려 그 서투름에서 매력을 발견하면서 스스로에게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잇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제가 다른 창작자들 작품에서 감돋받는 지점은 기게같은 완벽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빈틈이거든요. 우리가 똑같지 않은 이유도 그 빈틈과 서투름에 있고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해요. 만약 모두가 완벽한 그림을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림이 전부 완벽하게 지루할 겁니다, 또 자기 작업의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응로 평가할 수 있는 최선의 인물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단체 사진을 찍고 나면 자마다 자신이 제일 못나왔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어느정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뭔가를 창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재능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라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적당히 눈을 사로잡는 창작물은 많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작물은 많지 않아요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의지가 가장 필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죠. 그런 의지 덕분에 똑같은 사람 얼굴을 50번씩 그리는 반복을 견딜 수 있고 스쳐가는 풍경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기를 쓰며 관찰할 수 있고 사람들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계속하는 힘을 낼 수 잇답니다,

 

 

7. 에르베 틸레

 

(중략) 노는게 좋은 건 알지만 아이를 이렇게 마냥 놀려도 될까? 이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조언이 필요합니다,

 

--  이런 질문은 한국과 러시아 중국등 급속한 성장을 이룬 국가를 방문했을 때 공통적으로 받았던 질문입니다, 개개인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시스템 정부와 기득권의 논리 그 틈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불안이 우리를 조종하니까요 우리를 불안에 넣는 것은 불안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세상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할 시간이 없게 됩니다,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라 시간을 확보하고 투쟁하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이겨낼 수 밖에 없죠. 그걸 돕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예술입니다, 젊은 부모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시인으로 태어납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배우세요. 성과주의의 논리가 통하지 않은 세계가 거기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면 부모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가담됩니다, 그런 순간을 자주 가지세요 그렇게 세상이 강요하는 리듬을 거부할 힘을 차곡차곡 쌓으십시요.

 

 

8. 이치카와 사토마

 

작가님이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제 안엔 제가 의지하고 믿는 친구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있는 제 본성입니다, 중요하고 무거운 고민이 있을수록 남을 만나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그 아이와 대화합니다, 프랑스에서 저는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친구가 생겼다고 해도 그드에게 연애 경제문제등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순 없었어요. 모든 문제를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조언을 구할 주변인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자기안에 의지할 친구를 만들게 됩니다, 제 안에 그런 존재가 있어요. 지금도 고민이 생기면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이 결정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죠. 단지 그 친구가 '응' 이라고 답하면 떨치고 일어납니다, 머뭇대지 않고 추진하죠 새로운 프로잭트를 시작할 때 제 유일한 판단의 잣대가 내면의 친구가 좋아하는 일인가 아닌가 이것 딱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내면의 친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오랫동안 혼자 있을 시간을 줘야해요.

 

 

9.  베아트리체 일레마라

 

창의성에 대한 작가님만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행복에 대해 말하는 창작물을 짓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행복했던 느낌을 떠올려 그걸 전달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창의성은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최초로 태어나는 순간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때 입니다, 그 느김과 생각 충동 자기안의 목소리를 믿고 그리로 자신을 던지는 것 저에겐 그게 창의성입니다, 자기 믿음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불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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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3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이들이 부모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스마트폰입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 책을 가까이하기 힘들할 겁니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1
정희진 엮음, 정희진.권김현영.루인 외 지음 / 교양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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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은 코메디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고민도 생각도 맥락도없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는 집단의 앞뒤가 안맞는 행동들은 분노보다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그런데 그런 우스꽝스런 행위들이 힘을 얻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혐오하게 한다는게 섬뜩하다.

양성평등이 옳은 명제라고만 생각했다.
인간은 양성으로 나뉘고 그 두 성이 서로 평등한건 당연히 옳다고만 생각했다.
양성이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한다
여성과 남성사이에 다앙한 성들이 있었다.
일반적 다수가 가진 성기와 성적취향만으로 기준을 삼으면 배제되고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성들이 많아진다는걸 몰랐다.
평등이란건 결국 양팔저울이다
균형이 맞지않은 양팔저울은 한쪽이 올라가고 동시에 다른 한쪽이 내려와야 평등한 균형이 된다.
현실의 남성 평등에서 여성쪽의 추는 올라가기위해 즉 남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남성쪽의 추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균형을 맞춘 저울은 한쪽이 이그러처버린 이상한 모양새로 서로 마주한다
평등이란 어떤 기준에 다른쪽이 맞춰가는것이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닮아가며 동시에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해야한다.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그들이 세상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는 어떤 평등도 이그러진 저울이다.

나도 제주 모 검사장의 사건을 바바리맨 사건으로. 변태짓으로만 생각했다.그런 나의 규정에 어떤 불공정함 편견이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 의미로 두번째글은 내게 내려진가장 세찬 도끼질이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가지 양성만 존재하며 그 이외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이고 있더라도 비정상이며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글에 동의하든 아니든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알게 해준 도끼질이었다,

 

세번째 미성년자 의제강간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서 여러번 읽었다,

사실 한번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은 문잗을도 있었고 그래서 미성년자 의제강간에서 미성년자 규정 연령을 내려야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조금 헷갈렸다, 내가 예 아니오 라는 테두리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은 나중에 깨닫는다,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는 성인들의 기사를 볼때 마다 불쾌하기 짝이 없고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비해 터무니없는 형량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이때 대상 미성년자의 나이를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몇살이 되었건 나이 많은 어른들의 요구는 그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권력이고 강제이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동의하에 행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 동의가 과연  단어 그대로 동의인지 동의할수 밖에 없는 강제인지를 살펴야하는데 법은 너무 헐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또다시 성인의 미성년자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와 미성년자와 미성년자 사이의 강간 혹은 합의된 성관계의 문제가 있고  성인 여성의 미성년자 남학생에 대한 강간 혹은 성관계의 문제등등 사안에따라 생각해야할 방향이 한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보호되어야 할 딸의 순결이 아니라 개인의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의 문제라는접근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다,

다른 모든 권리는 상한선이 높으면서 성행위에 대한 결정만은 그 상한선이 겨우 13세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나아가 그렇게 어린 아직도 애기티가 나는 아이를 대상으로 성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성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네번째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사실 잘 알지 못하다가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번번히 거론되면서 흘려들은 게 전부였다,

당신들의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는데 발끈하는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

누군가의 행동은 당연한 반응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반응은 공겨기고 있을 수없다고 생각하는 무리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미러링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고 일그러진 여성에 대한 시선이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안된다는 ,, 고루하고 가부장적인 관념일 뿐이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억압과 차별에 대해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못알아먹는 사람이 셍각외로 너무 많다,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없어서 고도의 블랙유머나 해학을 알아먹지 못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에 어긋나면 모든 것이 잘못된 일이고 틀린일이다,

 

두고두고 자주 들춰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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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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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한다, 그 책이 통과한 후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늘 제자리이고 그 모양 그 꼴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왜? 늘 질문을 하며 읽었어야 했다,

늘 비슷한 책들 내 취향에 맞는 내가 소화시킬만한 양념이 듬뿍들어가고 연하게 숙성시겨서 입에 맞게 잘 잘라놓은  책들만 읽었다,

물론 사이사이 나름 독서근력이 필요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냥 읽었을 뿐이엇다,

읽는 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었고 몸이 떨리는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하는 쨍한 두통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예전의 나였다,

처음 어딘가에 잘못끼워진 단추가 분명히 하나가 있는데 쓱 보기에 아무렇지 않고 멀쩡해보여서 그냥 계속 단추를 채워나갔는데 순간 마지막 구멍이 하나 남거나 단추가 하나 남은 꼴이었다,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열심히 알게 되고 느꼈고 배웠는데 나는 여전히 나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아이들에게 혹은 덜렁대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 쉽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하고 예측을 해서 행동하라 그래서 실수를 줄여라  아니 없애라.. 뭐 그런 의미겠지만

책을 통해 나는 이제 행동하고 생각하라,... 를 더 믿게 되었다,

자꾸 생각만 하고 계산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나면 행동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계속 불안하고 아직은 아닌거같다는 주저함만 남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사건이 터지고 모든 일이 과정을 넘긴후에 되돌아보고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 그 의미를 찾는 일일 뿐이다, 늘 사후 약방문같은 거고  일 처리후에 남기는 보고서같은 것이다,

물론 미리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정돈된 이론이나 관념은 늘 뒤에 따라오는 거였다.

내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저질러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내게는 필요했다.

늘 준비하고 준비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 챙겨야 할것들의 목록은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끝이 없이 계속될것만 같고 이대로 일단 저지르는 건 누군가 등쳐먹는 일이거나 사기치는 일같다는 스스로의 검열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뭐 그런 말만 되내이면서 계속 생각하고 준비하고 또 생각하고....

배가 덜 찼어도 옴직일 수 있고 부족한 건 하면서 혹은 살면서 채워도 되고 덜 채워진들 어떠하랴 하는 마음을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도록 갖질 못했다,

그런 처지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턱없이 높아서 왠만한 변화나 발전은 변화도 발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보니 늘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고 배고픈 가오나시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끝없이 채워야 할 것들의 목록만 쥐고 있다,

내게 책 읽기는 계속되는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지 이 이상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저자의 독서목록에서 내가 읽었거나 들어본 책은 열손가락을 채 꼽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책이었고 이런 책도 있나? 이런 주제의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무지한 끄덕임만 계속되었다,

몇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고 몇권은 끌리긴 하지만 내가 읽을 거 같지않기도 했고 몇권은 나도 읽었지만 전혀 다른 감상이었고 ... 그랬다,

처음엔 말랑말랑한 문장들도 보여서 뭐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자만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파이이야기> 는 나도 꽤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 좀 더 느낌이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그저 리처드파커와의 이별을 통해 저자의 상실감을 이야기해서 조금 실망이긴 했지만 다른 글들에서 나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참 잘 정리하고 표현했구나 싶은 문장들에 샘도 나고 그랬다,

연재를 했던 글이라 쓸 때의 감정이나  상황등이 제각각일테니 어떤 글은 너무 과잉된 감정이 보이고 어떤 글을 필사를 하고 싶을만큼 완벽하게 좋았다, 아주 잘 쓴 글 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른 거지만 아주 잘 쓴 글..이란 말이 주는 매끈함은 없지만 투박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파도치는 감정들이 모두가 절실하고 솔직했다, 투박할 때도  이게 뭐지 싶게 툭 끝맺음이 있기도 했지만 글은 경험하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나름 자기가 찾은 자기의 답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 되고싶었다,

누구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해내고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억울하고 이게 아닌데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 순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일들이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었다,

부모의 말이라고, 어른의 말이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면서 잔뜩 약이 오른 모양으로 소리만 꽥꽥 지르는게 전부였던게 어린 맘에도 참 창피하고 분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책읽기의 한 시작이 되었던거 같다,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점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모르는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따지기 좋아하던 꼬마는 말없는 사춘기를 지나고 말없는 성인이 되었는데

속에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넘쳤고 그게 한쪽으로는 열등감도 되어허 누군가  몇 마디 하지도 않은 내 말에 딴지를 걸거나 내가 미쳐 표현하지 못한 언어들을 유창하게 드러낼때 바글바글 속만 태웠다, 나 내가 저랬어야 했는데,,.. 저건 내 생각이고 내 언어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몇번을 경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으면서 나는 점점 입을 닫고 책속으로만 들어갔지만

어려운건 이쪽으로 치우고 위험한 건 저쪽으로 치우고 맘에 안드는건 던져놓으면서 내 취향 내 수준에 맞는 독서만 게속이어갔다,

누군가가 권하는 책 누군가가 읽고 좋다는 책을 몰래 아닌척 읽으면서 왜 나는 좋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게 이해가 안되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 정작 책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는 태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책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을 보여주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렇게 제각각 다른 책이 된다, 그걸 나는 몰랐다,

타인이 알아낸 것 타인이 느낀것 타인이 감동한 것을 나도 똑같이 알지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해서 늘 동동거렸다,

저 사람은 저런 책도 읽어내는데,. 나는....

오랜 독서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누군가를 따라하고 흉내내고 질투하면서 보냈었다,

차라리 누군가 한 사람읨 모텔을 놓고 따라하는 책읽기라도 했더라면 나았을까 싶게

마음만 급해서 이사람 저사람 마구잡이로 흉내내고 따라하다가 제풀이 지치곤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선명해지는 건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것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그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내가 아는 것이며 그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내 것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했다,  책이 누군가 타인에게 다다르는 길과 나에게 다다르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하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만났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 내 감정 내가 했던 실수나  결과은 오롯이 내것이어서 그런 단하나의 내가 만나는 책은 또 다른 단하나의 타인이 만나는 책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나름 괜찮게 책을 읽어왔던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내 방식으로 읽었던 것이고 그걸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안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게 그걸 말해줬다,

계속 너의 방식으로 읽어라 대신 너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라,,

읽을수록 불안하다는 건 읽을수록 겸손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마음이다,,)

읽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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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북플에 접속하면 관심 있는 책들을 많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 취향과 거리가 멀고, 읽으려고 해도 다른 책에 눈길 가느라 읽지 못합니다. 선호하는 취향에 맞는 책을 읽을 때가 마음 편합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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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모든 비문이 다 등장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읽습니다. 처음엔 이런 실수는 안하지 하고 큰소리치며 읽다가 점점 넘겨갈수록 예문들을 보며 이것도 꼭 고쳐야하나싶은 맘도 들었는데 소리내어 읽어보니 알겠습니다. 멋부린 비문임주는 어색함과 반듯하고 단순한문장의 익숙함의 차이?
글을 쓸 때 사실 내글 전체적 맥락이 이상한지 괜찮은지만 생각했지 내 문장은 간과했네요. 그 문장하나하나가 모여 글의 맥락이 되고 주제가 되는것인데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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