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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는 소설의 주장을 거짓으로 여기지 않으며, 호메로스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독자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저자와 암묵적인 규약을 맺는다. 저자는 정말로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 〈척하고〉, 우리는 그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척한다는 규약 말이다. - P210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인물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을 안다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보바리 부인은 자살했다>라는 주장이 반박 불가능한 진리의 모델이라는 위안 어린 확신을 더 이상 갖지 못할 것이다. 소설의 가능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히,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욕망이 닿지 않게, 일은 다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좌절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숙명에 전율해야 한다.
나는 이 <운명 fatum>에 대한 교육이 문학의 주요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교육이 허구 속의 인물들, 속세의 성인들과 신자들의 성인들이 지닌 패러다임적인 가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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