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학식이라는 영역의 지도를 그리는 데 필요한 철학적 통찰과 분별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감히 말하건대 독자들은 이러한 면에서 이 책에 비견할 만한 책을 찾지 못할 것이다.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문헌을 개관한 까닭은 어두운 구석에 빛을 비추려는 나의 노력이 과연 성공했는지를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책의 결론에서 권고한 내용이 원숙한 나이에 혼자 힘으로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 P12

내가 이 책을 ‘안내서’guide라고 부르는 까닭은 종국에는 매력적인 목표이자 노력의 완성인 이해와 지혜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모든 사람이 여정을 시작할 때 필요한 지도를 이 책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 P17

우리 앞에 놓인 방대한 학식의 영역을 포괄하는 지도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탐구하고 조직할 지식이 훨씬 적었던 과거에도 있었던 체계가 지식이 폭발한 지금과 같은 정보사회에 없다는 현실은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해도 기이하다. - P18

전문적이기보다는 종합적이고, 직업보다는 교양을 중시하며, 기술적이기보다는 인문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청년들이 학창 시절을 마치고 성년기에 접어든 뒤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성년기에 계속 공부를 한다는 열망과 목표를 충족하고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이 학교 교육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점은 분명하다. - P16

교육은 기관에서 시작될 수는 있어도 거기서 완료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나 성인만이 교양을 두루 함양한 인간을 낳는 교육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한 교양인은 인간 지식의 전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그 영역에 익숙하고, 근본적인 관념과 쟁점, 가치를 이해할 뿐 아니라 모두가 바라마지않는 약간의 지혜까지 갖추고 있다. - P15

백과사전은 "그저 사실을 저장하는 창고 이상", 즉 사전과 마찬가지로 항목을 알파벳순으로 배열해 이용자가 무언가를 찾도록 돕는 참고 도서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백과사전은 알파벳이 아닌 방법으로 내용에 접근할 길을 이용자에게 내놓아야 한다. 지식을 체계적으로 혹은 주제별로 개관하는 방법, 다시 말해 학식의 전 영역에서 서로 연관된 모든 부분을 탐험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지도를 어떻게든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 P45

그렇게 이해한 교양학부는 우리가 다양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거론한 다음에 남는 학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학식의 모든 갈래를 포함한다. 또한 우리는 고도로 전문화된 학식인 오늘날의 철학과 달리, 한때 철학이 모두의 관심사인 학식을 뜻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48

박사 학위가 애초부터 폭넓거나 종합적이거나 인문학적 학식보다는 전문적 학력을 나타내는 표지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은 이 학위가 언제나 요구하는 자격 요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없으며, 그 대신 역사학이나 영문학, 물리학, 지질학, 경제학 등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야 한다. 설령 누군가 철학 박사 학위를 받더라도, 그때의 철학은 모든 기예와 학문을 포괄하는 종합적 의미의 철학이 아니라, 근대의 대학이 제공하는 전문적인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로서의 철학이다. - P49

의회도서관의 체계와 듀이 10진 분류법은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수많은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주요 범주는 어느 정도나 대등하거나 같은 수준에 있는가? 범주 사이에는 어느 정도나 위계질서가 있는가? 위계질서가 있다면 오름차순이나 내림차순으로 각 범주의 중요성 등급이 정해지는가? 일부 주요 범주의 하위 범주는 그 명칭이 적절한가? - P65

우리는 문화적 다원주의 및 지적 이설異說이 지배하는 시대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식의 부문이나 학식의 영역을 위계적으로 배열하려는 시도, 즉 무엇이 더 근본적이고 중요하고 유의미한지에 대한 판단 또는 논리적이거나 교육학적인 이유 때문에 무엇을 먼저 공부하고 무엇을 나중에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따르는 가치를 척도로 삼아 오름차순이나 내림차순으로 배열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배열은 문화적 다원주의가 아닌 획일주의로 여겨지거나, 지적 이설이 널리 퍼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 순전히 주관적인 정설의 표현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한 배열은 마땅히 표현해야 하는 공적 합의를 외면하고 편향된 방식으로 개인의 독선적인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져 조목조목 비판받을 것이다. - P139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지식의 골자‘를 이루는 10부가 하나의 원을 이루며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보다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10부는 제각기 원 위의 다른 부분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각 부분은 원의 중심에서 반지름을 따라서 원주 위에 있는 나머지 9부로 나아가는 초점이될 수 있었다. - P140

앞에서 나는 고대와 중세, 근대의 학식을 개관했다. 나는 독자들이 전통적인 학식의 지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현대 세계의 학식에 분류와 길잡이가 필요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관한 기존의 문헌에서는 그러한 길잡이를 발견할 수 없다.
다음 장에서는 인간 학식의 전 영역을 탐험하는 데 필요한방향과 길잡이를 내놓기 위해 20세기에 꼭 필요한 통찰과 분별에 관해 서술할 것이다. - P161

먼저 정보를 보유하는 것은 기억하는 행위다. 지식을 획득하는 것과 그 지식을 이해로 보완하는 것, 지혜에 이르는 것은 지성과 이성을 사용하는 행위다. - P168

뒤이어 ‘결론’에서 살펴보겠지만, 특정한 분과나 주제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이들은 수학이나 경험 과학의 어떤 분야, 역사적 연구나 철학적 학문의 어떤 갈래에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종합적 교양인이 되고 싶은 이들은 모든 분과와 주제에 대한 인문학적·종합적 접근을 중시해야 하며, 그러한 분과와 주제는 학식의 초월적 형식인 역사와 철학, 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 P200

우리의 학교와 대학은 오늘날 전문가인 동시에 종합적 교양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 들어선 졸업생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그 졸업생들이 살아가면서 종합적 교양인이 된다고 해도, 그들은 혼자 공부하면서 그 목표를 스스로 성취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 효율적으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능력과 효율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제도 교육에서 거의 익히지 못한 자유기예, 즉 공부 기술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 P205

모두가 익히려 노력해야 하는 자유기예를 제외한 나머지 기예에 관한 한, 종합적 교양을 추구하면서 예술작품을 최대한 많이 경험하고 좋은 취향을 형성해야 한다. 개개인은 이런저런 예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종합적 교육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평생공부를 지속하는 데 특히 필요한 것은 시와 상상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이해다. - P205

시에서 얻는 학식과 동격인 다른 두 가지 학식은 역사책과 전기물을 읽어서 얻는 학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였으며 위대한 관념과 쟁점을 다루는 철학책을 읽어서 얻는 학식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적 지식의 갈래는 여기서 말하는 학식이 아니다. 그 갈래는 일반인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위대한 관념과 쟁점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만큼 고도로 전문적인 분야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갈래는 고도로 전문화되고 있는 논리학과 수학, 다양한 실증과학, 기술의 갈래와 다르지 않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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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책을 알파벳순이나 연대순으로 배열하는 대신 더 유의미하고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배열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은 우리의 현재 관심사와 관련이 있다. 알파벳순과 연대순처럼 지적으로 중립적인 배열법을 포기하거나 넘어서야 공부를 위한 길잡이를 찾는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48

특정한 위대한 관념을 (익숙한 학문이나 지식의 갈래 그리고 위대한 관념이 연결되는 다른 방식을 나타내는) 다른 위대한 관념 아래에 묶는 이 모든 사례는 알파벳순 목록보다 우리에게 훨씬 의미가 있다. 이 사례들은 알파벳의 무미건조한 중립성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상하위나 중요도를 척도로 삼아 관념들을 위계적으로 배열할 만큼 중립성을 완전히 넘어서지도 않는다. - P156

‘지식을 조직하거나 지식의 갈래를 배열하고 연관 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철학의 과제다. 그것은 역사가나 과학자가 할 일이 아니다. 역사가나 과학자가 자신의 탐구 영역을 정의하고 그 영역을 다른 학문과 구분하려고 시도할 때, 그는 역사가나 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 P156

20세기에 지식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즉 지식의 부분을 어떻게 배열하고 연관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조명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철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그러한 시도는 현대의 문화적 다원주의와 지적 이설에 어느 정도 부응해야 한다. - P157

건강, 힘, 활력, 생명력이 신체의 자산인 것처럼 정보, 지식, 이해, 지혜는 정신의 자산(습득해서 정신을 완성하는 자산)이다.
다만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 네 가지 자산이 동격이 아니라는 것,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금 나열한 순서에서는 뒤로 갈수록 가치가 높다. 즉 정보가 가장 가치가 낮고 지혜가 가장 가치가 높다.
이러한 견해는 앞선 시대와는 달리 남아도는 정보와 지식의 폭발을 칭송하는 우리 시대의 시류에 역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이 이해가 넓어지거나 깊어진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세기에 지혜가 합당한 평가를 받는다고 감히 말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 P164

지혜는 정신의 네 자산 가운데 위계가 가장 높다. 지혜는 우리의 정신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통찰을 얻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 이해를 갖추고 있음을 전제한다.
문화적 다원주의와 지적 이설 때문에 20세기의 사람들은 인간 학식의 영역에서 위계질서를 용납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정보가 맨 아래, 지혜가 맨 위, 중간에서 이해가 지식보다 위에 있는 가치의 오름차순을 생각하지 않기는 어렵다. 이 위계질서는 경험적·실험적 연구를 통해 얻는 역사적·과학적 지식의 가치와 역사적·과학적 지식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얻는 이해의 가치와 명백히 관련이 있다. - P167

‘알다’라는 낱말을 최대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면, 공부의 네 범주는 다음과 같이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1) 정보를 얻거나 받아들이는 것, 2) 지식을 획득하는 것, 3) 지식을 이해로 보완하는 것, 4) 지혜에 도달하는 것. - P167

철학이 역사와 실증적·경험적 과학보다 우위에 있는 까닭은 ‘그것’과 ‘무엇’에 대한 앎이라는 방식으로 지식을 더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와 과학에 비해 철학은 그러한 종류의 지식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철학이 제공하는 지식을 이용해 우리가 기술적 응용이나 발전이라는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철학적 지식에는 그러한 쓰임새가 없다. 철학적 지식으로는 다리를 건설할 수도, 케이크를 구울 수도 없다. 또한 그 지식은 무언가를 만드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철학이 우위에 있는 까닭은 이해와 지혜(‘이유’와 ‘원인‘에 대한 앎이라는 형식의 지식)를 선물할 뿐 아니라 그러한 지식을 사용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방향을 내놓기 때문이다. 그 지식은 도덕철학과 정치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규범적 지식이다. - P172

라틴어로 ‘scientia‘(스키엔티아)로 번역하는 ‘에피스테메‘는 개개인이 20세기에 급증한 모든 전문 분야가 아니라, 특정한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 통달하거나 정통하는 모든 형식의 전문적 지식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존재한 학문의 모든 갈래에서 능숙한 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른바 지식 폭발의 세기라 불리는 20세기에는 아무도 만물박사, 즉 학식의 모든 전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라틴어로 ‘후마니타스‘로 옮기는 ‘파이데이아’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종합적 학식(앞에서 구분한 앎의 방식을 전부 포함하는 학식)을 뜻한다.
내가 지식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을 가리키기 위해 이들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하는 까닭은 학식을 과학과 인문학으로 나누는, 오늘날 만연한 그릇된 구분법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앞에서 나는 19세기 말부터 오용되기 시작한 ‘인문학‘이라는 낱말이 그때 이후로 학계에 두루 퍼졌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있다. - P173

‘인문학’이나 ‘인문학적 학식‘은 지식의 특정한 갈래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것과 상반되는, 지식의 모든 부문에 대한 종합적 접근법을 의미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다양한 부문을 열거한 뒤에 남는 지식의 갈래나 부문을 인문학과 동일시하는 것은 인문학을 부정확하고 그릇된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 P174

박사 학위는 근본적인 관념을 종합적 또는 인문학적으로 탐구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학위도 그러한 종류의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 P176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종합인이면서 전문가여야 한다. 달리 말해, 인생의 초반과 후반에는 종합인이어야 하고, 중반에는 전문가여야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숙련된 전문가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길잡이는 교양 있는 종합인이나 종합적 교양을 함양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필요한 길잡이와 상당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학과들의 알파벳순 목록을 수록한 대학의 안내서는 학생들이 선택할 전문 과정인 전공과 부전공에 대해 설명해 준다. 즉 안내서는 무언가를 전공하려는 이들에게 필요한 길잡이다. 대학에서 종합적인 교육과 흡사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안내서는 적절한 길잡이를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내가 이 책으로 내놓고자 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 P177

그렇다면 혼자 공부하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학교 교육을 모두 끝마친 뒤에도 계속 공부하려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하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혜를 추구하는 평생공부를 가득 채울 만큼 풍성하고 실질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그 간단한 답변이란 이것이다. 읽고 토론하라! 결코 읽는 데서 그치지 마라. 읽기만 하고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이들과 토론하지 않으면, 읽더라도 이해의 수준이 훨씬 떨어진다. 토론하지 않고 읽기만 해서는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하고 위대한 책들이 제공하는 알맹이 없이 토론만해서는 잡담으로 빠지거나 기껏해야 각자의 의견과 선입견을 교환하는 데 그치고 만다. - P207

달리 말하면, 종합적 교양인은 프로피디아의 ‘지식의 골자개요’(부록 1 참조)를 검토했을 때, 거기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신토피콘의 위대한 관념의 목록과 그 관념들의 부분집합에 대한 서술(146~157쪽 참조)을 검토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관념들 전체에 관해 능숙하게 지적인 질문을 하고 그 관념들이 제기하는 쟁점을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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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순과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특히 우리는 가치판단이 편향적이거나 순전히 개인적 선입견의 결과일 공산이 클 경우 이러한 배열에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항목 집합을 알파벳순이나 연대순으로 배열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항목에 대한 가치판단뿐 아니라, 항목 사이의 내적 연관성이 암시할 수도 있는 관계의 유의미한 패턴을 생각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 P30

나는 그저 알파벳순 배열보다 유의미하고 납득할 만한 배열법으로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대학 안내서를 보완할 필요가 있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알파벳순 배열이 완전한 무작위 배열보다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납득할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알파벳순 배열 이상의 좋은 배열법을 궁리해 낼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는 지적 결함을 가리키기 위해 나는 ‘알파벳주의’라는 낱말을 만들었다. 알파벳주의는 과거 어느 때보다 20세기에 널리 퍼진, 현대에만 있는 병폐다. - P32

백과사전의 항목을 알파벳순이 아닌 체계적인 방법으로 구성하면 이용자에게 지식의 구조, 즉 학식 세계의 지도는 제공할 수 있겠지만, 이용자가 관심 있는 항목을 손쉽게 찾게 해 주는 참고 도서로서의 기능은 잃게된다. - P41

두세 가지 주목할 만한 예외를 빼면, 20세기의 백과사전 가운데 이제껏 알파벳주의라는 결함(근대, 특히 오늘날에 만연한 병폐)을 바로잡은 사례는 없다. 나는 제2부에서 고대와 중세, 근대에 학식의 세계를 지도로 그리려 했던 시도, 즉 사전dictionary 모델에 따라 구성된 백과사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도를 검토한 뒤 제3부에서 그러한 예외적인 백과사전을 다룰 것이다. - P45

7자유기예는 정신이 동원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기예의 면모가 있다. 또한 원리에 호소하고 규칙이나 결론을 확립한다는 점에서 학문의 면모가 있다. 기예로서 7자유기예는 우리에게 지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학문으로서의 7자유기예는 정신이 그 자체의 활동과 개념적 추상화를 돌아보며 숙고하는 지적인 대상에 관한 지식을 준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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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백과사전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모든 것을 일정한 방식으로 일러 준다. 그러나 어떤 순서로, 어느 정도나, 어떤 목표를 위해 배워야 하고, 그러한 배움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이 물음과 관련해 대학과 백과사전은 알려 주는 바가 전혀 없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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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음모론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존재하지 않는 위험으로 끌고 가서 진짜 위협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놈 촘스키를 인용하자면 <음모론의 음모〉를 상상하는, 즉 음모에 대한 열광에서 커다란 이익을 얻을 만한 제도 및 기관은 음모론이 겨냥하는 바로 그 제도 및 기관이다. 부시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얻으려고 쌍둥이 빌딩 테러를 기획했다고 상상하고 이런저런 환영 사이를 헤매다 보면 부시가 이라크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수법, 그와 신보수주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분석은 놓치기 십상이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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