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 박사 과정 대학원에 가고 싶다며 추천서를 부탁하러 온 학생과 

교수 사이 대화. 유튜버가 만든 동영상인 거 같은데, 그렇다면 정말 쓸데없이 고퀄. 


말리고 싶다. 대학원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너 지금 내가 어디서 강의하고 있는 줄은 보고 있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네브라스카의 노웨어 한복판이다. 

가르치려고, 노웨어로 가고 싶니? (We're in the middle of nowhere, Nebraska. Do you want to move to the middle of nowhere to teach?) 


학생은 에머슨 주제로 쓴 페이퍼로 A를 받았다면서

박사과정에 가서, "에머슨과 죽음" 주제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런 말까지, 대학원 시절 기억하는 문학 전공자들에게 순간 복잡한 감정, 가슴이 뭉클해질 법도 하다). 이 말에도 교수는 말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연구한 주제에 대해 너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무엇을 생각해내기는 극히 어렵고, ta는 노예노동이며 그 노예노동을 하면서 매주 수천페이지 분량의 책들을 읽고 수백 페이지 분량의 페이퍼를 써서, 날마다 은밀히 자살을 생각하는 교수들에게 제출해야 해. 그게 대학원의 삶이야. 


학생은 예일대로 가서 해롤드 블룸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이 말에 교수는 "OMG! 해롤드 블룸은 여성혐오주의자고 인종차별주의자다. 

그 사람은 심지어 영문과 소속도 아냐. 아무도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사람 혼자를 위한 학과를 따로 만들어 줘야 했어." 


과장이 물론 있긴 한데, 00년대 미국의 문학 전공 대학원 현실에 대한 완전히 정확한 클립. 

그래서 추천서를 써주실 거에요? 학생의 마지막 질문에 "월요일까지 써두기로 하겠다"고 교수가 약속하면서 

끝나는데 이런 설정에서 보이는 미국식 낙관 (할 사람은 한다.... 누군가는 그를 돕는다), 그 낙관도 좋다. 





캐나다 CBC 라디오에서 95년에 했던 해롤드 블룸 인터뷰. 

2012년에 다시 방송하면서 당시의 인터뷰어가 17년 뒤 붙인 짧은 해설이 앞에 있는데 

"호전적인 반동(pugnacious reactionary)으로 유명한 블룸이어서, 나 역시 그를 만나러 가기 전 

그를 싫어할 것으로 예상했다. 뜻밖에, 그의 깊은 감정과 학식, 문학을 향한 열정이 나를 감동시켰고 

나는 그의 편이 되었다" 이런 얘길 한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보면, 아 정말 이 사람 같이 잘 지내기 힘든 사람이겠다. 

같은 생각이 아마 거의 반드시 떠오를 듯. 


이 정도로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은 내겐 처음. 

"나는 지금도 책을 빨리 읽는다. 물론 65세를 넘기면서 25세일 때만큼 

빠르진 않다. 그래도 억지로 나를 강제하는 게 아니면, 그리고 미학적 즐거움이 아니라 정보의 흡수가 목적이면 

페이지 전체를 한 눈으로 보고 기억하면서 책장을 연달아 넘기는 속도로 읽을 수 있다." 인터뷰어가 "5백 페이지에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죠." 


"형제들 중 막내였는데 가장 똑똑한 아이이기도 했다. 내 형제들 중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고졸 이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살때부터 강박적 독자였다. 절대적으로 강박적 독자였다. 그리고 내겐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방대한 기억력이 잇었다." "내 유년기 브룩클린의 우리집 근방은 유태인들만 살았고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이디시어만 들었다. 나의 영어는, 지금까지 발음이 조금 어색하지만, 전적으로 내가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영어 발음을 책으로 독학했다. 책을 읽으며, 발음을 궁리했고 익혔다. 나의 영어는 나의 것." 





위의 영문과 대학원 가서 "에머슨과 죽음" 주제로 논문 쓰겠다고 하는 여학생에게 

공감...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머슨의 삶도 글도 아주 매혹적일 수 있을 듯. Ralph Waldo Emerson: Mind on Fire 이런 제목 전기가 96년에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는데, book tv에서 전기 저자 인터뷰. 


전체가 다 들을 만하지만 내게 특히 좋았던 대목은 

"이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5페이지 분량 짧은 장들이 100개가 있다. 그렇게 쓴 이유는?" 

이런 질문에, 대학원 시절 한 교수가 주었던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말라'는 조언이 중요했고 

그에 동의한다, 그에 따른 선택이다.. 같은 답을 저자가 한다. 아주 대단히 파격적인 건 아니라도 어떤 장르에서든 

누군가는 실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주변 공기가 신선해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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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국회 로텐더 홀에서 벌어진 철야농성). 




(*초선의원 박주민이 완성한 럼버섹슈얼). 



어제 종일 지극히 우울했는데 

자고 일어나 산책하고 들어와서 

박주민 의원 얼굴 보니 매우 상태 좋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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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공친 하루. 

저녁 먹고 나서, 망가져가는 세계에 대해 토니 주트는 뭐라 썼을까 보자고 

Reappraisals: Reflections on the Forgotten Twentieth Century 펴서 마지막에서 두번째 장 

"양들의 침묵: 리버럴 아메리카의 기이한 죽음" 조금 읽다가 토니 주트의 말로 구글 이미지에서 어떤 게 찾아질까 검색해 봄. 


위의 말이 순간, 작지만 현실적인 위로 주었다. 

"역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고, 변하지 않는 그 무엇도 없다." 음.

그 위로의 정체는 뭘까. 그것 분명 반동적인 무엇일 거 같단 불안이 든다. 

부시 주니어 재선한 다음 <식스핏언더>에서, 클레어 이모 사라가 하던 말. 

"우주는 그리도 광막하고, 무엇도 우리 통제 하에 있지 않다는 것." 이런 방향 위로였나. 






"작정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그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는

사람들에게 거의 언제나 불편한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하고 

어째서 그들이 느낄 불편함이, 우리가 좋은 삶을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의 한 부분인가 설명해야 한다. 잘 조직된 사회는, 우리가 집단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회지, 우리 자신에 대해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하는 사회가 아니다." 


좋은 삶, 옳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진실엔 반드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있다. 

이 정도 아이디어도,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지 않나. 진짜로는. 


며칠 전에, 쓰다 만 페이퍼를 열어봤더니 (그러니까 근 한 달 냅뒀던 건가) 

일단 길이로 거의 반은 썼고 그 중 좋다 할 대목들이 없지 않아서, 그래 이어서 쓰면 돼. 

이거 쓰고 이어 하나 더 쓰면 정규직 될거야. 정규직 되어야 책을 쓰지. ;; 이런 생각과 함께 잠시 

낙관했었다. 사실 주로 늘 낙관하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아니었고, 우울하고 힘들고 졸리던 하루. 


이런 독서 모임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데 

참여 인원은 다섯 명 정도. 독서 대상은 철학이나, 아니면 본격 인문서 (피터 게이의 <계몽> 같은). 

각자 다섯 개의 질문을 가져와서 그 질문들을 놓고 무겁고 진지하게 천천히 얘기하기. 그 질문들은 

책 내용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기보다, 바깥으로 많이 확장되는 종류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 주제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종류. 


같은 주제 하에 다섯 권의 책을 고르고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은 다음, 다섯 권 전부에 관해 가져온 질문들을 놓고 얘기하기. 

얘기의 방향이 자기가 읽은 책과 직접 연관되고 해설이 필요하다면 읽은 사람이 책임지고 해설하기. 

토니 주트의 <재평가>도 그렇게 읽어보고 싶어진다. 질문 다섯 개를 고심하며 작성해 보고 싶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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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은 사야겠으니 

12월의 책으로 이것들 주문했다. 


사흘 걸러 한번씩은 그래 오늘부터, 저녁에 30분 프루스트 읽기 다시 시작하자. 

프루스트 읽기보다 더 반시대적일 읽기 없을 것이다. 읽자. 읽자고. 읽고 싶다. 읽을 거야. 

하지만 안되고 있는 지금, 일단 4권까지는 구입해둔 한국어판의 5권을 구입. 넘기다 우연히 본 한 문장이 

결정적으로 읽기를 자극할 수도. "교육받은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기준으로 책들을 평가한다면, top 10 안에 들지 않겠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아아아아 그런데 언제 어떻게. 


이디스 해밀튼의 그리스 신화는 

무엇보다 그녀의 문장들을 보고 싶어서 선택. 그녀의 문장이  

남자는 못 쓰는 문장들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흐흐 그래요 정말. 


사라 처치웰의 <위대한 개츠비> 연구서 Careless People은 

그녀의 강연들로 짐작하면, 문학 연구에서 새로운 접근, 새로운 쓰기. 

학술서가 오디오북도 나오는 일은 드물 텐데, 이 책은 오디오북도 나와 있다. 

누군가는 열정적으로 좋은 연구를 하고 있다 :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닥쳐올 것 같은 우울한 시기에

적지 않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 





카뮈가 했다는 이런 말을 봄. 

"공포에 근거한 존경보다 더 비천한 게 없다." 


지금 한국같은 사회에서, 순진함이 찾아보기 어렵듯이 

"존경" 이것도 (심지어 공포에 근거하는 종류도) 극히 희귀하지 않나 생각했다. 


<시지푸스 신화> <이방인> <전락> 이 셋 읽으면서 한 번도 끌리지 않길래 이젠 더 읽지 않겠다 

했다가 The Rebel (<반항하는 인간>이었나 한국어판 제목은) 구입. 아마 니체에 대한 논의가 이 책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읽을 이유가 넘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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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6-12-0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카뮈 다시 한 번 되뇌어 봅니다. 존경은 어떤 것인가 생각하면서...

몰리 2016-12-02 08:28   좋아요 0 | URL
˝respect for everybody˝ 민주주의의 원리로 이런 의미 존중도 허약한 것 같고
˝동생을 존경하는 기쁨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건 아니어서...˝ 전혜린이 자기 동생 가리켜 하던 말인데요, 그런 의미 존경도 극히 드문 것 같은데,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price vs. worth. ˝사람들은 가격은 알지만 가치는 몰라˝ 와일드부터 여러 사람들이 했던 얘기,
정말 한국에서는 ˝worth(value)˝ 이것이 평가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 않나...; 하게 되네요.
완전소중. 이런 말을 쓰긴 하지만, 그게 ‘리스펙트‘와 연결되지 않기도 하고. 불평등의 이면일까요.
 



사라 처치웰이 연사로 보여주는 열정. 

서구 지식인들이 흔히 보여주는 자신, 자신감. 자기 주제에 대한 유창함(eloquence, 자기 입장을 

막힘없이 설명하기. 가장 선명히 이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런 것이 왜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도 

얼마 전 수업에서 같이 얘기해본 적이 있다. 연설, 강연 이런 것이 문화의 진정한 일부려면, 내가 하는 이 일이, 그래서 내가 여기서 하는 이 말이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what I do matters to all of us. "matters"의 의미로 "중요하다")..... 는 점에 대해서 연사에게 의심이 없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나는 중요하지 않다... 고 여겨야 하고 침묵해도 괜찮게, 침묵해야 하게 되어 있다. : 나는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어쩌면 지금은 사정이 다를 수도.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배울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주려 할 뿐이다." 


배움이 일어나는 환경. 

내 생각이 중요해지는, 내 생각을 중요히 여길 수 있는 환경. 

그래서 자기를 존중하게 되고, 그에 따라 남도 존중하게 되는 환경. 

그러니까 정말, 진정 배움이 일어나는 조건... 을 만들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 깊이 민주주의적인 것 아닌가. 


*라고 쓰고 연쇄인용마는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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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16-12-0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쇄인용 감사^^
식사잘하세요

몰리 2016-12-01 12:01   좋아요 1 | URL
헷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