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은 그게 무엇이든 망치곤 하지. 

아주 이따금 무엇이든 제대로 하는 누가 나타나. 

그 누구는 어떤 결함도 없는 완벽함을 우리에게 알게 해. 

보통 그 누구는 베토벤이다." 


"사람들이 내게 종교가 있느냐 물을 때 

나의 답: 베토벤 9번." 


유튜브 클래식 동영상에 

이런 댓글들이 무수히 달린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에서 Solti가 지휘한 말러 5번 교향곡을 들었던 걸 잊을 수 없다.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음악을 처음 듣는 거 같았다. 각 악장이 끝날 때 사람들이 숨을 멈추었었다. 

피날레에서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나가지 않고 박수치고 환호했다." 


어제 위의 댓글 보고 

.....  죽기 전 나도 한 번은 해보아야할 경험이 이것이구나 했다. 


음악이 

단지 듣기만 하는 것도 사치스런 취미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 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인 거 같다. 무엇이든 좋아하거나 잘하려면 긴 시간 투입해야겠지만 

다른 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반면에 음악은 아니므로. 음악을 글로 배울 수는 없으므로. 


아무튼. 위의 어린 시절 베토벤. 

이 초상도 베토벤 주제 다큐에는 반드시 나오던데 

저 시절 베토벤에게 가서 "너는 커서 베토벤이 될 거야" 말해주고 싶다 느껴지게 하는 초상이다. 

너 알고 있니. ㅎㅎㅎㅎㅎ 너는 9번 교향곡을 쓸 거야. 미리 그에게 알려주고 싶은 그의 위대함. 


베토벤 관련 전해오는 흥미로운 일화들 중 이런 것이 있었다. 

늘 남루하고 남루함을 넘어 더러웠던 베토벤. 냄새날 정도로 오래 같은 옷 입곤 했던 베토벤. 

어느 날 그가 아주 날렵하고 세련된 옷을 입고 나타나고 그는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평소와 다르게 입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 내가 오늘 다르게 입고 나왔나요? 

그냥 아무 거나 주워 입었는데 우연히 좋은 옷을 입었던 것이었다. 


Ludwig van Beethoven의 van은 그가 귀족 출신임을 말한다고 누가 지적했을 때 그는 발끈하면서 답했다. 

"I'm not a land-owner! I'm a brain-ow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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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ining의 이 엄청난 오프닝. 

이 엄청난 음악. 


이 음악은 영화음악인가? 아닌가? 크레딧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가? 

얼마 전 갑자기 이거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잠시 검색하다가 포기한 적 있다. 찾아지지 않았던 거 같다. 

잘 찾았다면 찾았겠지만 그 때는. 그 웅장한 샤이닝 오프닝 음악. 그 웅장하고 크리피한. 웅장하고 크리피하고 

애도하는 듯한 그 음악. (....) 영원히 그렇게 여겨야 한다면 그러기로. 


어제 알았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 출전이라고. 

bbc에서 제작한 교향곡 4부작 다큐가 있다. 2부에서 베를리오즈 다루는데 

대형 금관악기 (악기 이름....) 연주자가 이 음악을 연주했다. 

the shining berlioz로 검색한 나는 마음의 (일부 마음의) 평화를 얻음..... 



bbc의 교향곡 4부작.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업. 느껴진다 그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진지하게 음악 얘기를 해주는 프로그램.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프로그램 보고 나면 심리적 정향이 좀 바뀌는 거 같다. 

덜 냉소적이 되고 더 진지하게 (좋은 의미로) 되는. 더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더 샤이닝 오프닝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었다. 

이런 걸 알게 되는 것도 아무 쓸데없는 사실 하나를 알았을 따름에 그치는 게 아닌 거 같다. 

어쨌든 나한테 그렇다. 마음의 평화도 얻었지만 어쩌면 어떤 길 하나가 열린 거 같기도 하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왜 모든 게 너무 늦게야. 

음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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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서 엔딩. 

좋은 엔딩과 나쁜 엔딩. 

엔딩에 대한 일반적 취향의 변천사. 


이런 내용인데 

2:40 지점에서 베토벤 5번 교향곡 (바렌보임 지휘) 엔딩을 보여준다. 

교향곡 엔딩의 아이콘 같은 그 엔딩. 그 장엄하고 진지하고 자기 중요한 엔딩. 팡. 팡. 팡. 팡. 촤-잔. 


4:34 지점에서 

에릭 사티가 1913년 그의 피아노 곡에서 썼다는, 5번 교향곡 엔딩을 조롱하는 엔딩이 나오는데 

.......... 웃깁니다.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웃길 거 같아요. 순간 빵 터짐. 정녕 제대로 조롱함.  

클래식 음악 곳곳에 위트와 유머가 있지만 그걸 단번에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그린버그 교수가 

말한 적 있다. 왜 이 예를 쓰지 않았을까? 정말 단번에 알게 하는 예. 다른 유형의 위트와 유머는 

어떤 것들이 있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올해 타계한 막스 폰 시도우. 

2012년 인터뷰. 잉마르 베리만과 어떻게 작업했는가, 그와 작업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면서 베리만을 칭송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내용으로 말하다가 


<제7의 봉인> 찍을 당시 그는 무신론자에 가까웠고 

베리만은 아니었다는 애기를 한다. 그들은 수시로 죽음, 죽음 이후, 진리, 믿음 등을 주제로 

오래 토론했다. 회의적인 시도우에게 베리만이 말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야. 내가 세상을 떠나면 알게 될 거야. 


찰리 로즈는 "내 친구가 죽음이 끝이라는 걸 확신한 건, 친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그토록 강한 성격이던 어머니가 이 세상에 다시 찾아올 길을 

찾지 못했을 리 없다고 친구는 말했다" 이렇게 반응하고 


시도우는 아주 진지하게 

베리만이 자기를 찾아오고 베리만과 여전히 얘기한다고 말한다. 

극히 사적인 거라서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상하지만, 이런 말들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관계가 어떤 관계였나 이보다 더 잘 말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로서의 나를 만든 감독. 감독으로서의 나를 만든 배우. 수시로 오래 

각자에게 내밀하게 중요한 주제들을 토론한 사람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언제나 곁에 있고 실제로 대화가 진행 중이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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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0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장면도 좋지만 

공습 피하다가 둘이 같이 피아노 치게 되던 장면이 더 좋았는데 

유튜브에서 어떻게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줄리앙이 치면 소음만 생산하던 피아노가 

장 보네가 치자 고통받는 인간 영혼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함. 


사실 곡이 

줄리앙에게 곡의 본성상 시끄러운 곡을 치게 하고 

장 보네에게 누가 쳐도 영혼의 음악이 될 곡을 치게 한 거 아니냐는 

반발이 아주 조금 일기도 한다. 그러나 초등 ㅎㅎㅎㅎㅎ 시절 학교 음악실 피아노에서 

누가 치면 시끄럽고 누가 치면 음악이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으므로. 그 기억이 반발을 압도한다. 

그 시절 그랬다. 같은 5-6학년 어린이들 사이에서. 



bbc의 "Imagine being a concert pianist" 동영상에 달린 댓글 중 이런 댓글이 있었다.  

"고도로 피아노 연습을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과 돈은 어린이에게만 있다. 

그 어린이에게 그 둘을 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는 한에서. 어른인 사람들은 자기 시간을 팔아야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이들에게 매일 피아노 앞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라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 사치를 누리고 싶은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차이코프스키 콩쿨 취재한 다큐도 있는데 

파리에서 문학 전공하다가 20세에 피아노 전공으로 바꾸고 (이전 레슨 경험이 있기는 커녕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시작한 무모한 선택이었고) 콩쿨에 초청되는 영광을 안은 청년이 나온다. 피아노를 배우고 4년만에 이룬 놀라운 성취. 


그런 청년의 사례도 있다는 건 

한 생활인이 꿈꾸는 매일 피아노 앞에서 보내는 몇 시간이라는 사치가 

사치이자 동시에 현실이라고 말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어른으로 피아노를 처음 치기 시작해도 

음악적 자기 표현..... 할 수 있을 거 같다. 위의 댓글 쓴 사람은 이미 피아노를 오래 친 사람이었을 거 같긴 하지만 

그 사람도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을 꿈꾸는 건 아니었을 것이고. 언어를 배운 다음 언어적 자기 표현이 가능한 것과 비슷할 거 같다. 언어도 피아노도 자기 표현을 위한 테크놀러지. 아 나도 매일 몇 시간... 피아노 앞에서 보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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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쓴 유명한 글. 사회학과 심리학. 

유명한데 인용은 별로 되지 않는다. 그의 글들 중에서 뭐가 특히 더 난해하다거나 뭐는 그래도 

덜 난해하다 같은 얘기는 할 수 없겠지만 (고르게 같은 수준으로 그의 언어다. 그 자신 말로는 "입말"이라는 강의록까지도) 어쨌든 이 글, 독자 편에서는 집요하다 느껴지게, 멈춤 없이 끈질기게 많은 양 에너지 요구하는 글이다. 문장들마다 인류 역사 전체의 축적이고 압축인 현재의 사회 현실, 이것이 그대로 다 들어가 앉아 있는 느낌. 이해가 안된다는 느낌이기보다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다는 느낌. 


로버트 훌롯-켄터가 

그의 인생을 바꾼 글로 이 글을 말하기도 했다. 

비교 문학을 공부하던 학부 시절, 1-2년 문을 걸어잠그고 불어와 독일어를 공부했고 

불어와 독일어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나서 신세계가 열렸고 아도르노의 "사회학과 심리학"이 안긴 충격이 있었고... 


바슐라르의 심리학 페이퍼 쓰면서 

바슐라르의 심리학을 옹호하는 (그의 심리학이 단호히 사회를 거부하는, 사회를 떠나는 1인의 심리학이라서. 반-사회적이고 반-역사적인 심리학이라서 옹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닌가? 옹호 안해도 되는가...) 논의를 줄 사람이 아도르노라서 이 유명하지만 참으로 읽기 힘든 글 읽고 있는데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합리성에는 언제나 무용한 희생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희생에서 해방되는 세계, 합리성을 옹호할 이유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합리성은 비합리성이 될 것이다." 


아도르노 옹호하는 독자들, 사랑하는 독자들 중에 

그들의 그 지지가 그의 저런 문장들에서 오는 경우가 아주 많을 것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유토피아적 충동. 이런 것이기도 하겠고..... 

아무튼 너무 무거워서 쓰러질 지경이다가 이런 (제법 바로 이해되고 감동적인. 무려 감동적인) 문장을 만나면 

..... 그를 기억하며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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