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든 지옥의 2박3일 수사 기록. 

삼십대의 사설 탐정이 도시와 교외, 산속 골짜기를 누비고 수사 방향과 용의자를 조금씩 틀면서 독자에게 자신의 지능과 강철 같은 체력을 뽐낸다. 나쁜 남자의 순애보 끝에는 아주 아주 더 나쁜 여자가 있다는 공식. 그나저나 이 시대엔 음주운전법이 없었나봄. 사람들은 계속 마시고 계속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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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것 보다 시몬 베유의 정치인, 행정가로서의 회고담 비중이 크다. 아름다운 어린 시절은 너무 짧고 2차대전과 유대인 박해가 시몬의 가족을 산산조각낸다. 시몬 베유는 자신의 유대인 수용소 경험과 차별에 대한 피해 경험을 매우 담담하게 적었다. 어느 상황에서건 완전한 선함이나 악행으로 나누기 보다는 행위에 따른 책임감과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의인들의 용기 덕에 누군가는 목숨을 구하고, 사람들은 더 나은 생을 향해서 힘을 모은다. 하지만 '평범한' 악의 결과와 그 '비겁한' 궤변에 대해선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다.



나는 연합군의 침묵에 대해, 악의 평범성이나 집단적 책임을 말하는 한나 아렌트와 같은 지식인 마초이스트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의 비관주의는 나를 거북하게 만든다. 나는 심지어 이것이 손쉬운 속임수라고도 생각하는데, 누구에게나 죄가 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나라를 살리기 위한 방편을 백방으로 찾기 위해, 나치의 책임을 보편적 책임에 녹여내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비인격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절박한 독일인이 찾아낸 해결책이다. 양심의 가책이 일반화되면 개인적으로는 선한 마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용서한다. '내게는 책임이 없어. 모두가 그렇듯이.' 수많은 저서에서 역사의 비극이 닥쳐올 때마다 모두가 죄인이며 책임자이기 떄문에 누구도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인간의 야만성에서 예외란 존재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를 상징적인 인물로 추대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측히나 아이히만 재판에 대해서 아렌트가 남긴 말에 대해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77-78)



역사적 큰 사건들을 몸소 살아낸, 그것도 소수자인 유대인 여성으로 겪은 사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법무부 장관으로 '임신중단법' 통과를 위한 업무, 유럽 의회와 프랑스 정부 (와 수많은 선거과정들) 사이의 협의와 갈등 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 (특히 극우 르펜의 등장과 득세)하다. 더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남편의 뒷바라지와 육아를 해내면서도 법조인의 경력을 놓지 않았다는 것에 감탄과 존경을 보낸다. 


처음엔 회고록이라는 책 소개에 그저 사르트르의 <말>과 비슷하리라 생각하고 원서로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색조의 글과 내용이라 당황했다.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검색하다가 지쳐서 번역서로 바꿔서 읽었다. 그런데 오타(71쪽. 하루가 지나게 그가 쇠약해 지는 모습), 오역이 꽤 되고 (124쪽.좌파의 보수주의/우파의 보수주의 바뀜) 직역(이랄까, 매우 거칠고 투박하다) 문장이 많아서 가뜩이나 낯선 프랑스/유럽 정치사 부분을 읽을 때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다시 다듬어서 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2008년에 나온 회고록이고 시몬 베유는 2017년에 작고했다. 끝까지 인류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았던 강단있는 인물인데 만약 그가 작금의 세계 정치를 본다면 어떨까 ... 아니, 모르는 게 나았으리라. 차라리. 

좀 더 자란 나는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기꺼이 사전을 뒤지는 아이가 되었다. - P21

같은 나라의 국민들은 우리가 결코 우리와 우리의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사건을 잊기 위해서 온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말하고 싶었으나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 P81

25년이 지난 이후, 나는 이전의 판단에서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극우와 연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지자가 순교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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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6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몬 베이유가 2017년에 작고했군요. 저는 이분은 거의 보부아르와 비슷한 연배이지 않을까 했는데 약간 뒤쪽이네요. 한나 아렌트를 지식인 마초이스트라고 하는 저 강단은 어떤 논리에서 나왔을까 궁급해집니다. ^^

유부만두 2023-02-19 15:35   좋아요 0 | URL
보부아르가 13년 연상이에요. 후반부를 아직 남겨놓은 상태인데 사르트르 이야기는 한 번 (알제리 해방 운동을 하던 프랑스인 정치범들이 사르트르 면담을 원했고 정부 허가도 났지만 사르트르가 안왔다고) 썼지만 아직 보부아르 이야기는 없어요.

베이유는 철학가라기보다는 행정가, 정치인 모습이 많이 보여요. 여러 유명인들에 대한 평이 무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믿지는 말아야겠지요?
 

인쇄소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로) 책을 만드는 기술자, 영업 사원, 출판사 편집자, 작가, 제본 디자이너와 그 가족들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나라 보다 책을 많이 만들고 읽는다는 일본이지만 이제 출판업은 사양산업, 가라앉는 배다. 자조적으로 지금은, 아직은 배가 가라앉지 않게 만드는 게 등장 인물들의 일이다. 그러니 독자는 책 안의 인물들에 바로 공감하며 "그래요, 알아요, 그 마음"이라며 응원하게 된다. 인쇄소의 덩치 큰 "데쿠노 군"과 1호기 등 인쇄기를 포함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 모두를 응원하게 된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경제적 수익성을 무시하며 그저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나오고, 하루 하루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야근과 추가 업무를 해내는 사람도 나온다. 생활의 고단한 면들과 크고 작은 자부심도 보인다. 그리고 주말드라마 최종화(모두가 모여서 감동을 터뜨린다) 같은 책 마무리엔 인쇄소 견학을 하며 웅변조의 책 사랑, 근본 정신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또 다 내 마음이었어. 


덧: 일괄 변환의 오류로 "바람이 불어와" 가 "바람이 프랑스어와"로 되는 사건이 생기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심장은 다시 얼어붙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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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2-13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출판까지 사양산업이면.... 우리나라는 어쩌나... 하면서 잠깐 나라 걱정 했어요.
책 더 사야하는 거잖아요, 그죠?

다락방 2023-02-11 11:34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제가 이번 주에도 많이 샀어요. 🙄

단발머리 2023-02-11 11:40   좋아요 0 | URL
한국 출판 진흥 위원회에서 우리 다락방님 명예 회원으로 모시고 돈도 드리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지요. 🙄🙄🙄

독서괭 2023-02-11 13:02   좋아요 1 | URL
저는 반성합니다…

다락방 2023-02-11 13:08   좋아요 1 | URL
부디 돈을 좀 주는 방향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발머리 2023-02-11 13: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게 좋을 거 같기는 해요. 근데 어쩌죠? 독서괭님도 요즘에 책구매 줄이고 계셔서 그 분도 좀 드려야 하는데 말이지요 🙄🙄🙄

유부만두 2023-02-15 09:35   좋아요 0 | URL
책 마무리에도 ‘그래도 우리는 산다, 읽는다‘ 분위기에요. 맘이 짠하면서 막 .. 막..

moonnight 2023-02-1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반 정도 읽었어요. (나머지 반도 읽어야 하는데ㅠㅠ;; 세상엔 읽을 책이 너무 많;;;) 출판사 말고 인쇄소도 맞다 중요하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던 바보입니다-_-;;;(막연하게 출판사에서 다 하는 거라 생각-_-;;;;;;)

유부만두 2023-02-15 09:37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후반부가 조금 늘어지긴 해요.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를 땐 또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하지만 작가 센세와 북 제본 디자이너 센세들이 갑질 할 땐 ... 다른 사람들 너무 불쌍한데, 또 그들이 묵묵하게 다 일을 해요. 일본엔 초과 근무라는 개념이 아예 없나봐요.

혹시 <교열결> 시리즈 읽으셨나요? 전 책, 드라마 다 봤는데 드라마가 더 재미있었고요, 만화 <중쇄를 찍자> 시리즈도 책 만드는 이야기라 좋아해요. (추천...)
 

브론테 소설을 다수 번역한 조애리 교수님의 19세기 영미소설 논문집이다. 8개의 논문은 빅토리아 시대 '가정의 천사', 푸코의 '육체의 통제', 지젝의 '호명', 들뢰즈/가타리의 '여성 되기'와 '유목적 공간'(<천개의 고원>) 이론 개념을 이용해서 소설 속 여성들이 어떻게 통제 되었고 탈출하려 (때론 성공적으로, 하지만 한계에 부딪히며) 노력했는지 분석한다. 문장이 논문투라 낯설지만 어렵지는 않다. 


1장 '가정의 천사' 부분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읽었던 부분과 많이 겹치기도 하고 어떻게 위생과 안락함의 책임이 주부에게 부과되면서 여성을 통제했으며 기존 사회 질서에서 노동자 계층이 도외시 되는지 보여주어 제일 흥미롭게 읽었다. 2장의 육체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노란 벽지>를 통해서 전개되는데 일부분은 이제 교과서적인 해석 같이 보일만큼 익숙하고 옛스럽다. 3장은 케이트 쇼우펜의 작품을 다루는데,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이 적용되어 진정 주인공들이 여성되기에 성공했는지는 의아하다. 3장을 제일 어색한 기분으로 읽은 건 내가 들뢰즈/가타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탓이리라. 


조애리 교수님은 '여성 되기'에 대한 책을 더 내셨다. 전작 3장의 들뢰즈/가타리를 비롯한 신유물론과 페미니즘 이론을 더 살펴 본 것인데 (1부 읽다 덮;;;) 들뢰즈를 읽고 잘 설득 된 후에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19세기 영미문학과 젠더>는 읽고 밑줄만 정리하려다 수하님께서 궁금하다 댓글 주셔서 짧게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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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30 06: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안녕?!

유부만두 2023-01-30 06:51   좋아요 1 | URL
라로님 안녕?! 잘 지내고 계시죠? 올리신 글을 잘 읽고 있었어요. 댓글은 게을러서 매번 못 달았지만요. 전 아직 막내 방학이라 챙겨주느라 힘듭니다. 명절도 있었고요.

건수하 2023-01-30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감사합니다 ^^ 이 시리즈들 궁금했어요

유부만두 2023-01-30 09:31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
전 시리즈 중 몇 권을 더 찾아볼 생각이에요.
 

<밀크맨>의 홍한별 번역가의 사전 이야기는 이 얇은 책 한 권에 담기기엔 너무 풍성하고 깊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사전과 단어 이야기, 사람이 우리말과 외국어 단어들을 익히고 잃어가는 과정과 인생사가 담겨있다. 번역가의 가족은 모두들 단어의 중요함을 잘 알고 그 단어들을 소중하게 (하지만 엄숙하게 묶이지는 않으며) 다루었다. 이런게 바로 가풍이겠지. 남자친구를 처음 집으로 데려온 날,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한 보드게임이 영단어 맞추는 스크래블이라니! 


저자는 사전의 태생적 모순, 살아있는 단어들을 모두 담는 '완벽한' 사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언중의 선택으로 생사가 결정되는 단어가 오용과 편견으로 차별적 무기가 되는 폐해도 짚어낸다. 


이 책 덕분에 여러 다양한 사전들의 특성 (롱맨이나 옥스퍼드 사전이 어떻게 다르고 특별한지)을 새로 알았다. 유료 사전 사이트 natmal.com과 재미있는 현대어 사이트vocabulary.com를 따로 즐겨찾기 표시를 해두었다. 이토록 사전을 가깝게 두고 (사전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양이 없어도 행복하기' 방식도 알려주며 '한국어기초사전'의 용례의 등장인물들 사이의 애정의 사각관계를 풀어주는 멀티버스-즐거운 책!) 단어를 모으며 사는 저자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사전 만드는 일에 대한 책들과 단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1984의 '정반대 의미'의 사전 포함)을 따라 읽다보면 (주섬주섬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아, 내가 가진 사전에 대한 애정은 진정 애송이의 풋사랑이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재미있게 읽은 다른 '사전류' 책이 홍한별 번역가의 친오빠 역서였다는 걸 알게 되니(이 사실은 편집자K 유툽에서 번역가가 직접 얘기한 것), 더욱 완벽한 사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책이 얇아서 더욱 아쉽고 looseleft 상태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책을 끝까지 다 읽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라는 이 책에만 나오는 특별한 단어.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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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1-27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분이 친오빠인가요? 저 이 분 책 몇 권 읽고서 이름이 비슷해서 혹시? 했었는데 ^^

전 얼마전 홍한별님 북토크에 갔었어요. 멋있으시더란… :)

유부만두 2023-01-27 22:19   좋아요 1 | URL
이 책에 아버지 이야기가 비중있게 실렸는데 남매가 번역가가 된 것이 당연해 보였어요. (이 책 추천요!!) 그래도 남매의 번역 작업 스타일은 다르다고 하네요. 이 얘기도 편집자K 유툽에서 나온 거에요.

건수하 2023-01-27 22:45   좋아요 1 | URL
다른 분께도 추천 받았는데 읽어봐야하려나봐요. 언제쯤 읽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 유부만두님도 편집자k 유튜브 보시는군요. 저도 가끔 들어요.

유부만두 2023-01-28 08:18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편집자k 영상은 듣는 편인데요, 서점 방문기 같은 시리즈는 눈도 즐거워요. (책 마구 사게 되니 위험하지만요)

난티나무 2023-01-27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전의 배를 쓰다듬으며 ‘고양이 없어도 행복하기‘!!!!! 아 제가 고양이 없어도 행복한 이유가 책이었~! 다는 당연한 사실을 또한번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01-28 08:1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책이 있어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라요. ^^

psyche 2023-02-08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가족도 명절에 모이면 스크래블 종종하는데 엠군이 주로 이겨서 우리가 제이양을 놀렸더니 제이양이 삐져서 요즘 뜸했었네. 다음에 가족들 모이면 다시 해야겠다. ㅎ
편집자 K 유튜브는 뭘까 가서 찾아봐야겠다

유부만두 2023-02-11 10:08   좋아요 0 | URL
편집자K 유툽에서 하는 책 추천들도 좋고요, 서점 탐방, 저자들 인터뷰 영상들도 좋아요. 스크래블 ...예전에 큰애 애기 때 까진 가끔 했는데 이젠 철자 알갱이도 많이 잃어버렸고요 어딘가 처박아 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