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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노트 에버그린북스 17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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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도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단지 우리가 어리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의 결정과 열정을 다 무시해 버린다면, 우리가 할 일은 무얼까, 집을 나가서 우리 힘으로 살아 내는 것, 아니면 그냥 죽어버리는 것? ...너무 다른 두 소년 다니엘과 자크는 '데미안' 의 듀오 만큼이나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힘겨운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이 빠리지안 소년들, 그들의 불행한 가정사, 다니엘 어머니의 결단을 그려내는 묘사는 더 생생하고, 우아하다. 이제 나는 소년들의 입장이 아닌 그 어머니의 입장에서 읽는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예전에 나도 일기장에 이들 처럼 터져나오는 순수와 열정의 단어들을 적어내려 가기도 했었는데!  

그렇게도 젊은 너, 오오, 사랑하는 벗이여, 그렇게도 젊은 너에게 인생을 저주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잘못된 생각이다. 뭐라고? 너의 넋은 지상에 얽매여 있다고? 공부하라! 희망을 가지라! 사랑하라! 독서하라! (84)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을 선언할 것! (106)

두발을 현실에서 십오 센티미터 쯤 떨어진 곳에다 놓고 이 세상의 모든 거짓과 더러움을 나 혼자만 꿰뚫어 본다는 착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더랬다. 마르세이유와 바닷가 벼랑을 걷는 두 소년을 따라가다 보면, 젊은 날의 추억 말고도 지금 내가 살아내는 오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을 책 한 쪽에서 힘있게 버무려 보여주는 건, 역시나 대작가의 힘이겠지. 

다시 한 번, 격동의 사춘기가 이미 지나갔음에 감사하고, 내 아들이 지낼 그 끔찍한 시간에 심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래서인지 제일 감동적인 장면은 다니엘과 그 어머니의 재회였다. 

 다니엘은 빵을 다시 내려 놓았다. 눈을 여전히 내리깐 채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학교에선 어머니께 뭐라고 했어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어!"
다니엘의 이마가 마침내 펴졌다. 그는 눈을 들어 어머니의 시선과 마주쳤다. 확실히 신뢰하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묻고 있었으며 자신의 신뢰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시선이었다. (145)

적잖이 놀라운 반전이 있는 마지막 쪽을 읽으면서, 역시나 시리즈물인 <티보가의 사람들>을 마저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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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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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난 밉살스러운 아이였어요. 중학교 입학 후, 구 교복 시대의 마지막 세대에  검정색 교복, 나팔 치마, 커다랗고 어깨를 덮는 하얀 칼라를 달고 네모난 가방을 들고 다녔지요. 양갈래로 땋아내린 머리에 앙 다문 입술. 그게 나였어요. 아, 그래도 사진은 칼라였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면서 내 몸에 닿는 사람들, 눈에 거치는 사람들, 내 주위에 숨쉬는 것들이 다 싫고, 밉고, ... 그러면서 혼자있기는 무서웠어요.  

점심시간이면 후다닥 점심을 먼저 먹고 고등학교 언니들이 공부하는 학교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앉았더랬지요. 그 틈에 고고하게 앉아서 앙드레 지드를 읽는거예요. 등 뒤에 꽂히는 언니들의 눈총이 따갑지요. 쟤, 뭐냐?  

어느덧 나도 그 언니들 처럼 자라서 고등학생, 또 대학생, 어른이 되었어요. 그리고 내 큰 아이의 입술 위로 거뭇 거뭇한 그림자가 생겼어요. 아직은 어벙한 교복을 입고 등교길에 나서는 내 아이의 모습 위로 그 옛날 고집불통 제 모습이 떠올라요.  그 땐, 나도 그랬다, 고 아이와 말을 하려고 보면 그 아이의 눈동자에 언뜻 언뜻 분노가, 아니 비웃음 같은 게 비치는 것 같아요. 그땐 입을 다물고 문을 닫아야지요.  

여기 이 책 속에서 만난 아이들도 다르지 않아요. 내 속을 들킨 것 같아서 흠칫 놀랐을 뿐이에요. 여고괴담이 묻어나는 하얀 벽, 그저 벽처럼 남의 말을 들어주고,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던 아이들이 사라졌다가 뒤늦게 그 존재를 느끼는 민희를 그 속으로 초대하지요. "너도 이제 혼자구나." 등을 돌려 눈을 맞추기가 이리 힘들었을까요. 왜 우리는 계속 견주고 미워하고 무서워했을까요. 다 똑같은 마음이었을텐데.
 
쌍둥이로 자라면서 언니에게 한없는 질투를 느꼈던 지영이는, 주영이가 되면 행복할거라고 믿었어요. 엄마와 아빠를 다 보내놓고 삼촌과 선생님들도 속이면서, "난 네가 되고" 만 이루어 진다면, 주영이는 없어지겠지만 지영이도 사라지는 걸 그 아이는 알까요?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와 함께 반지하 연립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만나는 곰팡이는 눅눅한 벽 뿐이 아니라 소녀의 아빠의 팍팍한 목, 동생의 여린 살, 엄마의 얼굴에도 번지고 있지요. 어디로 도망쳐도 할 수 없어요. 그저 내가 붉은 곰팡이 처럼 악착스레 살아낼 수 밖에요. 아마 주인공 아이도 어른이 된 다음에, 엄마처럼 곰팡이 기미를 얼굴에 쓰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몰라요. 너무한가요? 하지만  도망갈 수가 없어요. 영화 '링'의 복수처럼 저주는 계속되는 기분이에요.  

얄미운 동급생의 얼굴을 손톱으로 내리 쳐서 생채기를 내고, 두 손을 쫘악 펴서 내 힘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아, 저에게도 있었다구요! 다만 나는 얄궂은 책상만 볼펜으로 콩콩 찍어서 곰보를 만들었지요. 아이들이 내 뱉는 욕설들은 둥둥 떠다니면서 전염이 되나봐요. 욕을 안 쓰면 욕을 먹는거야. 그게 싫으면 욕을 뱉고 괴물이 되어야해. 손톱이 자라날 때 괴물로 변하는 유지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괴물이 아니라면 아주 독살스러운 가짜가 되는 방법도 있어요. 나 혼자라도 나에게 둘! 하면서 손가락을 고누(다) 고 그 일을 해 내는 거예요. 그럼 난 새롭게 될거예요. 지금의 나는 다 필요없으니 아무리 아프더라도 잡아 먹히고 새롭게 태어나는는 거예요. 이런게 사춘기인가요? 진짜의 흐릿하고 멍한 상태 따위는 다 없어지고, 남들처럼 뻔뻔해지고 싶어요.  

진짜? 진짜 그럴까요? 어른이라고 다 아는것 처럼 말하지 말라고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다시 열 다섯 소녀로 돌아가서 읽었어요.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생생하게 겪는 공포와 환상이 펼쳐졌어요. 아이들에게는 학교, 선생님, 집, 친구, 부모, 공부, 언니나 동생, 모두 다 공포였어요. 슬프게도 이야기들 속에 믿을만한 어른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진짜 열 다섯에 겪었던 내 이야기 같았어요. 아이들이 좀 편한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해 줄 말이 없어요. 내가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나도 이미 진짜를 잡아 먹어버렸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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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반양장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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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공지영의 <착한 여자>를 읽다가 짜증이 일어서 하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착해도 너무 착하고 바보 같이 참기만 하는 이야기는 책이나 드라마나 내 취향이 아니다. 몽실언니 역시 그럴까 해서 걱정을 잔뜩하고 읽기 시작했다. 역시나, 하지만, 이 언니야는 좀 달랐다. 간간이 자기 생각을 정리도 하고, 자기 속내를 드러내면서 - 물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겠지만 - 상대의 눈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몽실 언니는 끝 까지 읽어 냈다.  

독립만을 바라고 살던 몽실네 일가족이 돌아온 고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은 동포의 따뜻한 포옹대신 “해방 거지”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먹고 살 일이 급급한 어머니는 돈 벌러 일 떠난 남편을 버리고 새 남편 집으로 들어 갔다. 따라 나선 몽실이에겐 힘들고 혼란스러운 일의 연속이고, 이게 인생이려니, 그리고 팔자려니 살아낸다. 용케도 어린 몽실이에게는 용기와 사랑이 있었기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정을 나누면서 살아낸다.

동생들을 업어 키우는 몽실이를, 내 아이는 별 감정 없이 읽어냈다. 불쌍하다, 는 한 마디 뿐, 별 이야기를 덧 붙여 내지 않는다. “기구하다” 는 말은 너무 어렵고, “바보같다”는 말은 너무 야멸차다. 한 나라 사람들 끼리 서로 죽이고 해하는 세상에서, 몽실은 가족의 경계선을 자꾸 넓혀서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한다. 미워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힘들고 처참한 시대의 삶이라 뭐라 할 수도 없다. 이야기가 연재되던 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몽실이와 공비 사이의 우정 어린 장면을 삭제했어야 했단다. 착한 공비가 그렇게 무서운 내용이었을까. 더 무서운 내용들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둘씩 생기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다른 동생들이 셋이나 생기는 몽실이 인생아니었을까, 동화라고 끝 장면을 막연한 해피엔딩으로 놓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몽실이 남편은 열심히 사는 장애인이고, 여전히 열심히 정직하게 가난하게 산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도 이보다 더 낫지는 않았겠지. 그의 소박하다 못해 남루한 오두막이 떠오른다.  

단, 이철수 선생님의 삽화에 기대가 컸는데 책 내용과 다른 그림이 많다. (난남이와 손을 잡고 간 시장 장면에서 그림 속 난남이는 몽실에게 업혀있는 식으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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