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전쟁 생각하는 책이 좋아 5
게리 D. 슈미트 지음, 김영선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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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 책의 번역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고 서점에서 큰아이에게 보여줬더니, 몇 줄 읽지도 않고 "어려워요" 라면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주에 다시 이 책이 눈에 띄기에 내가 먼저 꺼내 들었다. 주인공은 지금의 큰아이와 동갑 중학 1학년생 (미국 학제에선 7학년) 이다. 2년동안 기다리길 잘했다.  

1967년, 월남전에 남편을 보낸 영어 선생님, 그리고 학생 홀링은 매주 수요일 단 둘이 학교에 남는다. 다른 모든 학생들은 종교 활동으로 유대교 성전이나 성당으로 가버린 수요일 오후, 선생님은 학생과 세익스피어 작품을 하나씩 읽는다. 쪽지 시험도 보고, 독후감도 쓰고, 연극에도 참가하면서.  

그 아이의 "완벽한" 집에는 대화 없는 부모들과 히피 누나가 산다. 껄렁하기도 하고 유머감각이 풍부한 이 소년이 학교에서 이런 특별한 선생님의 특별 방과후 활동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동네 특별 연극에도 부모는 오질 않고, 양키스 선수의 특별 사인회에도 아빠는 오질 않아서 아이는 별난 연극 복장을 입은채로 버스에 오른다. 아이가 병원에 실려가도 부모 대신 선생님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가출한 누나가 돌아오는 길에도 부모는 냉냉하게 반응한다. 그들이 사는 집은 너무나 예쁘고 완벽한데. 

중반부까지는 너무 "유치한게" 아닐까 싶었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아이가 자라나는 게 눈에 보이고, 이 아이가 집안에서 혼자 고요함 (이걸 이 아이는 진짜 세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을 견뎌내는 모습이 대견하다 못해 불쌍하기 까지 했다. 이 아이는 부모의 관심 밖에 있어도 꾿꾿하게 살아낸다. 하긴, 학교도 그리 평화롭지만은 않다. 사십년 전의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남자 중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영웅 처럼.  

부모의 입장에서 읽어서 그런지, 나 자신의 모습을 자꾸 반성하게 됬다. 1960년대 미국의 정치사와 베트남 전쟁, 히피, 세익스피어의 명작과 멋진 해석, 또 비틀즈 노래 가사들도 적당히 버무려져 있어서 짧은 영화를 상상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큰 아이가 읽고 자기 또래의 영웅을 어떻게 읽을까 궁금하다. 

책이 너무 두껍고 (행간을 줄일 수도 있건만!) 무거운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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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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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철학이라고 해서, 중학생 방학 숙제라고 해서, 이 책이 쉽겠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우습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 도덕 시간, 또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계속해서 나오는 철학사. 철학 사상 정리를 한두 줄로 해서는 안돼는 건데, 시간에 쫓기고 내용은 어려워서 대충 땜질 공부만 했던 탓에 아직도 나는 철학이 어렵고 무섭다.  

전 3권으로 나온 <소피의 세계>는 소피라는 (우리 나라 나이로 중2) 여자 아이가 의문의 엽서, 철학사 내용 설명이 담긴 편지와 비데오 테입등을 받고 공부도 하고 미스테리도 풀어가는 이야기다. 1권에선 상황이 점점 미궁에 빠지는 데까지 나오고 철학사는 제일 처음 문제, "세계의 시작은 어디인가?"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가?" "나는 누구인가?" 에서 시작해서 기독교의 시작, 헬레니즘 문화와의 충돌 및 융화, 바울의 전도 까지 다루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인 요슈타인 가아더는 중간 부분 철학과 신화를 비교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니라 북유럽 신화를 다루고, 영혼이나 종교 이야기를 다룰 때도 철저하게 비종교인의 입장을 취한다.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비교도 언급되는데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설득력이 있었다. 철학사와 종교사를 따로만 봐와서인지 기독교의 시작을 이렇게 인류사의 입장에서 다루니 교인도 아니면서, 왠지 불경스런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참신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다. 책 속의 철학선생님이 말한대로 우리는 마법사가 모자에서 꺼내드는 토끼, 그 털 속에 사는 진드기인지도 모른다. 진드기에겐 토끼가 모자안에서 따뜻하게 웅크리고 있어주면 만사형통일텐데. 그렇지만 모자 밖으로 나와서 두 긴귀를 웅켜잡은 마법사의 손을 알아볼 수 있는 진드기라면 정말 더 없이 멋진 일이고.  

책은 옛날식 편집이라 (1994년 초판) 행간도 빡빡하고 말투도 뻑뻑해서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다. 갑작스레 편지나 엽서를 받는다는 설정이 진부하기도 하고. 하지만 두어장을 넘어가면 철학사를 공부하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생겨서 계속 읽게된다. 한 번만 읽어서는 내용도 정리가 안 될거고 두세 번은 반복해서 읽어야한다. 설명이 친절하지는 않지만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중학생 아들도 열심히 읽는다. 어느정도 이해했는지 의문이지만 어려운 책을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한다. 이제 시작이다. 진드기가 토끼털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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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1 - 눈동자의 집, 개정판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한지희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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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표지, 기괴한 분위기의 어른 앞에 주눅들어 보이는 세 어린이. 게다가 뒷 표지에는 작가의 경고성 글까지. "읽지 마시오. 이 글은 위험하고 슬픈 이야기요."  

얼마전 완역된 13권의 스니켓의 대 서사시(!) 의 첫 권을 읽었다. 6년 쯤 전 영어로 읽은 기억이 가물거리기도 하고, 짐캐리 주연의 영화 장면들도 드문 드문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 책에서 누굴 만났던가? 귀여운 세 꼬마도, 교활하게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명배우 올라프 백작도, 그에게 당하는 후견인들도 아니다. 난 장난꾸러기 레모니 스니켓을 읽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의 윙크하면서 "넌, 알지? 내 말?" 하는 그 능청스러움을 읽었다. 책은 마치 그가 단테인양 베아트리체에게 헌정되었고, 아이들 이름은 보들레르. 또 유산 관리자는 포우 아저씨, 그의 아들 이름은 에드가 이런 식이다...그래서 아이들이 당하는 온갖 비극들이 덜 무섭고 - 아, 난 애엄마지만 어린이 소설이나 영화를 읽을 때 완전 회춘해서 초등생이 된다는! - 아이들 뒤에 이 힘센 (그렇다, 펜은 칼보다 세다) 스니켓 아저씨가 버티고 있어서 듬직했다.  

부모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이 풍진 세상에서, 맏이가 법정 성인이 될때 까지, 세 아이들은 못된 후견인의 탐욕을 피해서 버텨야 한다. 그렇다. 이 세상은 어른들의 것이니, 아이들은 억울할 뿐이다. 아이들은 당하고, 또 당한다. 착한 어른들은 게으르거나 어리석고, 나쁜 어른들은 아이들을 잡아먹으려 술수를 쓴다. 아이들이 이기는 방법은 어서 어른이 되는 거다. 그 새 나쁜 어른들은 힘이 빠지고 늙어버릴테니까. 이런 괴씸한 아이들의 속내를 스니켓이 알아서 이야기를 만들어주니 아이들이 (그리고 나처럼 나이를 잊은 어른들도) 좋아할 수 밖에.

우리말로 읽는 스니켓은 많이 달랐다. 분위기는 여전히 슬픈 비극으로 가득찼고 첫 장부터 타버린 집에서 올라오는 재와 연기로 자욱했지만, 뭔가 달랐다. 영문을 그대로 직역하는 대신, (안타깝다. 조금만 더 직역을 했다면 영문합본으로도 나왔을것을) 우리말 분위기와 흐름에 맞도록 문장을 새롭게 편집한 덕에 세 어린이 주인공들이 더 생생하게 자신들 목소리를 낸다. 종종 글 속의 "나"는 스니켓이 아니라 빅토리아나 클라우스가 되기도 한다. 스니켓이 슬쩍 사라지니 어쩐지 섭섭하기도 했고, 책 표지 안쪽에 턱하니 써있는 그의 본명과 실제 나이에 그간 내가 품었던 그림자 사나이 스니켓의 환상이 홀딱 깼다. 아니, 아자씨, 나 보다 젊었어요? - -;; 물론 그동안도 인터넷 검색으로 이 작가의 본색을, 아니 인적사항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의 작품에서 만나는 건 실제 인물이라기 보다는 소설 전체에서 독자들과 상호 작용을 벌이는 스니켓이었는데....  

그래도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세 아이들이 예쁘다. 빅토리아의 절망과 결심의 독백 (아니, 방백)은 절절하고 클라우스의 목소리도 힘차다. 서니의 "아아앙"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 아이들이 나머지 열두권에서 얼마나 더 자라고 더 용감해져서 이 나쁜 어른 (의 종합세트인) 올라프에 대적하는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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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가의 독서교육
최효찬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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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큰 아이의 방학 숙제로 나온 책이다. 세계 여러 명문가와 위인들의 독서 취향과 교육관을 정리했다. 저자의 다른 책 <세계 명문가의 자녀 교육>과 겹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자녀들에게 그저 책을 읽으라고만 하는 대신 부모가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누고,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데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그런 독서가 - 요즘 말로 공부 잘하는 학생을 '공신'이라 부르듯 저자는 독서를 잘하는 학생을 '독신'이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재치도 없는 이 표현을 저자는 계속 반복한다 - 만들어내는 진정한 독서가는 대입 시험장에서 독서 기록장을 자랑스레 내밀수 있는 학생, 미국 명문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저자에게는 신사임당도 '알파 맘'이 된다.  

세계의 명문가의 자녀들은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서 특별한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그중에는 저자가 예로 든 흥청망청 부자 아들들도 있었겠지만, 그외 명문가 사람들의 독서 이력을 내 자녀에게 그저 본받으렴, 하고 보여주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유럽의 강대국이 식민지 정책을 죄책감 없이 펼치고 있을 때의 대갓집 도련님들이 읽는 책들을 말이다. 빌 게이츠가 공공 도서관 이용을 했다지만, 그도 있는 집 자제였고 자퇴를 했어도 하버드 대학에 다녔던 사람이다. 스티븐 잡스의 요즘 구설수를 생각한다면 그를 단순히 '위인'으로 부를 수는 없다. 아무리 그가 책을 많이 읽었다 하더라도.

특권층들이 누렸던 기존 독서 필독서 목록 말고, 진짜 (어느 독서가의 표현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 목록과 그 책을 읽고 기뻐했던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책 안에서 간간이 인용되는 청소년기의 방황이나 애독서는 너무 간략하게 소개되고 넘어가 버리고 시종일관 이렇게 해야 좋은 대학에 갑니다, 식으로 설명을 하니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읽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이책은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자녀 교육법, 대학 보내기 법, 의 또다른 변형에 불과하다. 표지에 책과 독서가들을 내세웠지만 대학입시나 유명인사가 목표가 되어버린 '독신讀神'이라면 반갑지 않다. 이 책이 중학생들에겐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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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9-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재미 없댄다. 아들 녀석말이.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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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증 장애를 앓는 아이라고 부모가 덜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힘들다. 아이도 힘겨운 몸짓으로 계속되는 발작을 견뎌낸다. 경제적인 부담도 이루 말할 수 없고, 부모들은 이혼하기에 이른다. 다른 형제들은 상대적으로 방치되고 만다. 이 가족에게 사랑이 남아있을까.  

그래도,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다소 위험한 방안을 꺼내든다. 아이가 갑갑한 몸뚱이 안에 갇혀있으면서 고통 받는 상황을 끝내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부모가 진정으로 해 주어야 하는 보살핌이라고. 위험하고 끔찍한 주제이지만 이 책은 열네살 사춘기 소년의 발랄함으로, 하지만 중증 장애인이니 그 말이나 생각을 밖의 사람들에 하나도 전달하지 못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소년이 끝까지 애타게 부르짖(고자 노력하)는 말은 제목 그대로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미련이 없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딘다. 하지만 정작 가장 무거운 짐을 진건, 당사자. 그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답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션 같은 장애아를 아들로 두었기에 잔인한 이런 상황의 글을 쓸 수 있었을 게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었을 아들의 눈으로 무력한 아버지인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게다. 감동의 인간 승리 이야기가 절대 아닌데,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 자신의 부모된 마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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