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서 저런 눈빛을 보내는 여우라면, 거짓말 선수 겠지.

 

이 동화는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역시 희곡으로, 그리고 연극으로 봤다면 조금 더 좋아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공항 대기실, 계속 알약을 먹으며 약상자를 끌어안고 있는 원숭이, 꾸벅꾸벅 조는 덩치 큰 팬다, 선그라스를 끼고 은근 주위를 의식하는 나이든 호랑이, 똑같이 생겨서 학식을 함께 뽐내는 양 두 마리, 불안해서 계속 가방을 뒤지는 기러기가 사흘째 오지 않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타나는 공항 경비견, 개.

 

그리고 빨간 여우 한 마리.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친구가 되면서 진실을 말할 수는 없는걸까. 친구와 우정은 모든 과오와 불편을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인가?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해피엔딩인거야? 애초에 왜 사흘 동안 얌전히 있었을까? 이 바보들은? 우화인지라 각 동물이 상징하는 인간이 있겠고,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하게 웃기도 하겠지. 나...나는 ...기러기 같....

 

정신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에 뭐, 덧붙이자면 이런 저런 분석이랄까, 감상이 있겠지만. 작가의 전작 '8시에 만나!'에서 받은 쿨한 즐거움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사는 아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 집에서 혼자 살며 나무짐도 지고 품도 팔아 하루 삯으로 서푼을 받아 외롭게 집으로 걸어가는 아이. 다른 어린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포옹을, 떡과 간식을 먹을 때 혼자 배를 곯는다.

 

 

 

 

 

그러다 발이 없고 머리는 삐죽 난발인, 다행히 덩치는 엇비슷해 보이는 도깨비를 만난다.

 

돈을 달래. 갚을거래.

 

하지만 도깨비는 잘 까먹는대서 주저하다가, 도깨비의 해꼬지를 당할까 걱정되는 아이는, 착하고 순딩한 아이는 돈을 내준다.

 

그리고... 다음날 돈을 갚는 착한 도깨비. 이자는 없지. 단기간 무이자 대출. 그런데 잘 까먹는 도깨비는 돈 갚은 걸 잊어버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돈을 들고 찾아온다. 아무도 찾지 않던 아이의 외딴 집을 매일 도깨비는 찾아오고, 물욕이 없는 이 순딩이는, 그리고 돈을 나눠주거나 이 멍청한 도깨비 이야기를 소문 낼 친구도 없는 아이는 무심하게 돈을 집에 던져둔다. 물건을 사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이 순딩이가 은근 담이 세고 기가 맑았나보다. 혼비백산 하거나 헛된 욕심을 부리려 도깨비를 속이려 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부채는 청산되었다고. 그래도 도깨비는 까먹었는지 오기를 부리는지 매일 오고, 아이의 허름한 살림살이가 눈에 밟힌다. 이것 저것 또 들고 오는데 그걸 또 까먹으니 자꾸 아이의 집에는 도깨비의 선물이 쌓인다. 그리고 도깨비는 ....

 

 

도깨비는 서푼을 들고 아이의 집에 찾아와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얼하고 놀았을까. 정들었겠지, 그렇게 한참 매일 만났는데. 아이가 크고, 장가 들어 자식 손주 손녀 보고 오래 살다 눈을 감을 때, 그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를 불렀대지. 도깨비야....도깨비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헐벗은 남 프랑스의 산악지대에 1910년부터 수십 년 간 혼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다. 작가 장 지오노가 만난 그 소박하고 겸손하며 조용한 사람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엮은 그림책. 부드럽지만 강렬한 프레데릭 바크의 그림과 함께 강한 울림을 준다.

 

산속에서 양을 치며 혼자 강아지와 함께 사는 노인(오십오세), 정갈하고 튼튼하게 지은 집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묵묵히 매일매일을 산다. 그가 꼼꼼하게 골라낸 백 알의 도토리. 매일 백 개씩, 삼 년 이면 십만 개의 씨앗을 심고, 그중 몇 만개의 씨앗을 보고, 묘목을 가꾸며, 결국은 '천연숲'을 이룬다. 그는 그 공을 내세우는 대신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나무 심기를 계속 이어간다. 야생 동물보다 거칠고 서로 시기하며 으르렁 거리던 사람들은 점차 너그럽게 변한다. 숲과 함께 샘이 살아나고, 산동물과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명이 넘치는 땅이 된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헌신과 많은이들이 못보고 지나치고 간섭을 하지 않은 덕이다. 이 노인의 비극적인 가족사, 이야기 마무리의 종교적 채색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길을 내지 않고 숲을 만든 사람이라니.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웃통벗고 소리치며 닭 잡아먹는 대신, 자연을 만들고 뒤로 조용히 물러나는 사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8-06-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십오세,,,에 노인;;;;;;;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울어야 하는 건가요???)

유부만두 2018-06-07 15:16   좋아요 0 | URL
전 울면서 읽었고요, 다행히 노인이 팔십을 훨씬 넘게 장수해서 위로받았습니다.

psyche 2018-06-11 08:46   좋아요 0 | URL
나도 오십오세에 노인이라는 말에 헉하면서 눈이 흔들렸는데...ㅜㅜ
 

콜리어리 초등학교의 일주일을 4학년 어린이 두갈의 눈을 통해서 그려내는 동화다. 두갈의 베스트 프랜드는 두미사니, 함께 '두두 브라더스'를 이루며 지루한 수학, 사회 수업시간을 견딘다. 매일 매일이 모험이기도 도전이기도 한 초등학교 생활. 학습을 개그로, 운동을 올림픽으로 바꾸는 능력자 아이들. 반아이들의 특징을 잡아서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쏟는 두갈. 대장'질'을 하는 아이는 없고 다들 한마디씩, 두마디씩 말과 생각을 보태고 쌓는 학급. 교장 선생님은 감동에 겨우면 눈물을 쏟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발표를 막는 대신 웃으며 들어준다.

 

소설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라고 해서 두건을 쓴 토미가 전학왔을 때 부터 피부색에 대해 생각했다. 삽화에는 어둡고 밝은 피부색의 아이들이 나오지만 내용에는 '인종'이 언급되지 않는다. 전학, 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은 아이의 긴장, 새학교 아이들의 과한 관심, 그리고 적대감과 폭력을 저자는 부드럽고 참을성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한 두건의 이유와 그 뒤에 감춰진 토미의 얼굴, 그리고 마음.

 

'전학'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800권이 넘는 책이 나오고 거의 어린이 책이다. 몸이 바짝 얼어서 스무 명 넘는 낯선 아이들을 맞서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얼굴을 가려버리고 싶었을 토미를 이해한다. 아이들의 작전과 결말은 예상대로여서 살짝 실망은 했지만 착한 이야기를 읽어 마음이 따뜻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지로는 번역 동화책 같이 보이지만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다. 네 가지 동화 단편들이 실려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마다 '걱정'이 특기고 버릇인 어린이들이 나온다. 


'등뒤에 고양이', 바로 표지의 여자 어린이는 통통한 몸과 둥근 얼굴을 갖고 태어났다. 여동생과 비교되는 외모에 자존감도 낮고 툭하면 주눅이 든다. 어느 날 '귀엽다' 라는 낯선 칭찬을 듣자 자기 뒤에 귀여운 고양이가 '유령같이' 따라 붙었다고 여기고 혼비백산.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서 어쩌면 그 칭찬은 자신을 향할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린다. 느린 이야기 흐름에 (아이는 달음질 치는 중이지만)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여자 어린이들이 '외모 코르셋'이 얼마나 일찍, 또 강하게 작용하는지 생각하면 갑작스럽고 희미한 결말이 아쉽다. (옥의 티랄까,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들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이티에 산다)


'두근두근 걱정대장'을 읽으니 전에 본 보험사 광고의 걱정인형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걱정인형은 사람의 걱정을 대신 해주기는 커녕, 자기 걱정이 넘쳐서 도리어 사람을 정신없게 만든다. 소이는 걱정인형을 달래주고 따져보면서 평소의 걱정, 혹은 작은 포비아들을 조금씩 해결해버렸다. 이 이야기의 어른들은 '나아지라'고 계속 말하고 '해결법'을 보내며 소이의 걱정'병'을 치료하고 없애버릴 대상으로 취급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괴로움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정도로 불안하다면 (동화책이지만 묘사되는 증상은 꽤 심각해보인다. 아이가 걱정에 치여서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게 해야하지 않을까. 아이가 혼자 자신을 치료하게 내버려 두기 때문에 소이가 (외국에서 선물 보내는 이모도 있지만) 많이 외로워 보인다. 


'소원을 들어주는 상자'는 흔하고 쉽고 착한 단편이다. 그래도 준영이의 속마음 '아니야, 아직 기회는 남았어' 하는 현실부정이 귀엽기만하다. 그런데 그 상자는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걸까. 아이고 그 상자 나 한번 갖고 싶네.


'포도나무가 될지도 몰라' 역시 기시감이 드는 동화다. 나도 어릴적에 씨앗을 삼켜서 뱃속에서 수박이 자랄까봐 겁이 났었다. 그뿐인가 속옷에 개미가 들어가서 알을 깐다는 괴담은 여자애들이 악몽을 꿀 정도였는데. 그정도로 고민을 해서 나미가 아픈걸까. 나미는 열이 펄펄 나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엄마는 '내가 잘못했어'라며 자책을 한다. 계산원으로 근무한다는 나미 엄마는 그날따라 퇴근이 늦었는데. 동화책의 엄마들은 바쁘고 (거의 다 마트의 계산원으로 근무하거나 분식집을 한다. 왜 동화책 엄마들의 직장은 이리 한정적일까) 지치고 계속 미안해야한다. 또 아이들은 방과후엔 이런 저런 학원에 다닌다. 학원과 게임을 빼면 어린이들의 일상을 묘사하기 힘든가보다. 


화요일 아침에 말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