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작가 설터의 '인본주의'라는 '광고'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 태평양전쟁 중 긴급한 상황의 배 위에서 시작한 청년 필립 보먼의 인생은 그를 아껴주었던 이모의 장례식장을 나서는 산책길에서 연인과의 대화까지 이어진다. '그'라고 지칭하지만 주인공 필립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이다. 작년에 읽은 <스토너>가 생각났는데, 곧 머릴 흔들었다. 어딜 감히.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이제 무릎 아래 빈약한 다리를 연인 앞에 보이길 꺼려지는 나이까지 이어지는 팔자 좋은 한 남자 이야기다. 한 문장에 인생의 큰 사건이 하나씩, 사망과 이별이 툭툭 실릴만큼 시크한 소설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여인과의 만남과 밀월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설레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면 집안 배경과 결혼 이력, 그리고 재산 정도가 두세줄 이력서 처럼 따라온다. 대화는 짧고 (역시) 툭툭 끊어져서 인물들 사이의 교감은 없다. 역시 시크함. 이런게 노작가 설터의 인생 회고 방식이려나. 60, 70, 80년대의 뉴욕의 (소위) 지성인 혹은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기대했는데, 멍한 표정의 표지 여인 만큼이나 답이 없는 소설이다. 중반부 부터는 돌림노래 가사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읽었으니 할 말 없다. 그저, 인생무상? 눈을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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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6-01-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바마 대통령이 읽는다고 한 소설이 이것이던가요????

유부만두 2016-01-27 18:29   좋아요 0 | URL
글쎄요. 몰랐어요. 전 광고 문구랑 별점만 보고 샀던 책인데 완전 속은 기분이에요. ㅠ ㅠ. 100자평 다시 보니 성의없는 별다섯이 많네요...
 
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평론집
김지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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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좋은 동화책이 많은데' 라는 책머리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다. 저자 김지은 선생님은 여러 좋은 동화책을, 어른들이 지어낸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거짓말 이야기'를 주제별로 묶어서 소개, 그리고 분석해주셨다. 여느 문학평론집과는 다르게 동화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른과 어린이를 오가며 따뜻하고 엉뚱하게, 하지만 올곶게 이어졌다. 읽는 내내 바쁘게 책 제목과 동화 작가 이름을 따로 적어 놓았다. (이 좋은 책에 왜 동화책 목록이 없는겁니까!!!) 어린이들이 좋아라하는 책들, 서점마다 비닐로 싸놓은 "~되는 법" 류의 책 말고도 이 책에는 이곳, 학원 말고 '다른 곳'의 '숨은'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눈부시다. 소개된 50여권의 동화책 중 내가 읽은 건 고작 다섯 권쯤. 큰 아이를 키울 때와 이리 달라진 동화판이 반갑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동화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독자를 너무 아래로 만만하게 보아서도, 계도의 대상으로 다루어서도 안된다. 그 위험하고 섬세한 작업의 의미를 김지은 선생님의 이 책은 밝혀주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이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가 억지로 부모의 짐을 지거나 어른의 옷을 입지 않토록, 어린이가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우리, 어른들이 보살펴주고 사랑해주어야한다. 동화는 그러니까 어린 시절의 나, 지금의 아이들, 그리고 미래까지 아우르는 '거짓말로 된 사랑'인지도 모른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 동화책을 읽고 싶어졌다.

 

이 책 진짜 좋아요! 머리글부터 좋아서, 끝까지 다 좋아요! 선생님들, 초딩 부모님들 강추!

동화 평론집인데 다 읽고나면 울컥, 하면서 동화책 찾는 동심이 흘러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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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에 짜~한 서민 교수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처음 부분에는 기생충 나쁘지 않아요, 오래된 생명체에요, 라면서 긴장을 풀게 했지만 이어지는 디스토마 부분 부터는 내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돌이켜보면서 온갖 재앙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북으로 읽었는데, 사진은 너무 작게 들어가거나 그림표의 글씨는 흐려서 보기 불편했다)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 덕에 어렵고 복잡한 기생충 열전을 쉽게 읽어내려갔고, 이런 저런 우스개 소리 속에서도 중심은 "인간사랑"이라고 계속 생각했다. 그나저나 내가 좋아하는 소간, 간장게장,,,,,,,은 당분간 먹기 힘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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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1-19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간장 게장을 포기해야 한다고요? 서민 교수님도 간장 게장 좋아하실 분위기였는데...

유부만두 2016-01-19 07:55   좋아요 0 | URL
아예 포기는 아니고요. 15일 이상 숙성시키거나 하루쯤 냉동하는 방법도 있대요.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읽고나서 당분간은 못먹을듯해요... 책은 정말 재미있어요!
 

짧은 연설문 정리글인데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녀의 시대에나 지금에나 널리 퍼져있는 꼰대 아저씨들의 무지막지한 글에 분노를 느꼈는데, 울프는 그런 여성의 분노와 여성성의 의도적 노출이 소설의 서사를 어지럽혀서는 안된다고 썼다. 여성운동의 맥락 말고도, 문학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소설가의 '완전성', 독자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고 가능하리라 믿지도 않았던 장면을 설득력있게 그려내주는 그 완전성에 대한 설명은 내가 왜 소설을 읽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어렵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이 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기위해서는 다른 참고 서적들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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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지만 읽어내면 참 뿌듯한 책일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16-01-18 12:49   좋아요 0 | URL
조금은 뿌듯한데요,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 않아서 재독해야하는 책이에요. 너무 천천히 읽어서인지, 아니면 제가 울프의 책을 처음 접해서 그런가봐요.
 

단테가 지옥에서 처음 보는 죄인들은 방관자들이다.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이들.

 

천사의 비호와 대시인의 인도를 받아 어렵게 열리는 지옥의 문. 시인 그룹의 제6인으로 걸어가며 으쓱 거리는 단테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뒤 참혹한 지옥의 모습이 계속 되다보니 어느 장면들은 판타지 소설 처럼 읽히기도 한다. (인간과 뱀이 서로 모습이 바뀌는 장면과 얼음호수 위 거인들 모습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죄인들은 성서,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로마 역사의 인물들이고 단테의 시대에서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인물도 있다. 그들은 지옥에서 벌을 받으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있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단테는 부끄러움을 깨닫기도 한다. 지옥의 죄인들의 소원은 기억되고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라서 하나같이 (매국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테에게 자신의 이름과 사연을 말하려 애쓴다. 끔찍한 것은 죄인의 영혼은 이미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데 죄인의 몸은 악마에게 입혀져서 아직 지상에서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의 신곡-지옥 편이 있다면 누가 해당될까 상상해 본다.

 

지옥의 죄인들의 공통점은 '배신'이다. 신앙과 도리, 의리와 정의를 어긋나게 행동하고 속이며 그릇된 이익을 얻은 자들. 그 중에는 오딧세우스가 있고, 기독교 시대의 작가에게는 당연하게도, 마호메트도 소환되었다. 기독교 세계를 분열시킨 마호메트는 몸이 분열되는 벌을 받아 처참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지옥은 죄인 뿐 아니라 죄인들을 벌주는 괴물들, 이어지는 불과 구렁들 때문에 소심한 단테는 겁에 질려 떠는 모습인데 마지막 장에 가까워지면 단테가 공동체를 배신한 죄인의 머리칼을 잡고 뽑아버리는 행동까지 보인다. 하지만 그가 담력을 키웠다고 볼 수는 없고, 단테도 죄인들의 업보에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현하는 것 같다. 지옥을 모두 둘러본 다음, 그는 지구의 중심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구멍을 통해 하늘과 별이 보이는 곳으로 빠져 나온다. 마지막 장을 읽고나서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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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독서 계획 열심히 실천 중이시군요~
단테가 지옥에서 처음 보는 죄인들이 방관자 라는 사실이 큰 깨달음을 주네요.

유부만두 2016-01-06 17:39   좋아요 0 | URL
저도 그점을 곱씹게 되더라구요. 많이 찔리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