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솔직하게 개인의 이야기를, 어머니와 인생의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될까, 싶었다. 살구와 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은 개인의 몸 속, 작은 세포에서부터 저 멀리 우주의 별자리, 그리고 먼 과거와 설화 속의 사냥까지 그 끝이 닿아있다. 내가 읽는 이 페이지의 이 문장이 어느 시대의 공간을 두드릴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없이 쪼그라들다 한없이 멀리 멀리 뻗어나가는 경험을 했다.

 

중반부는 읽기가 조금 버거웠지만 견디고 끝까지 읽을만한 책이다. 작년에 읽은 <새벽의 인문학>이 생각났지만, 그보다 더 진하고 더 아름답다. 각 장마다 이어지는 눈물 마시는 나방 이야기는 따로 한 번 더 읽어야했다. 이런 책 한 권이 살아가는 일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만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가 index나 주석으로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에서 뻗어나가는 그 다음 도서목록은 꽤 풍성할텐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작인 <환상의 빛> 보다는 덜한 감동이다. 아름다운 표지와 매끄러운 문장으로 짧은 시간에 읽어버려서 조금 아깝기도 한 소설. 부부 사이였던 이 두 사람은 편지로 대화를 나눈다기 보다는 각자의 독백을 써내려간다. 남편이었던 아리마는 다른 여인과의 일화를 은밀한 부분까지 필요이상으로 묘사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상대방 보다는 독자를, 그보다는 자기 자신들을 더 의식한다. 하지만 업보라는 개념은 영 불편했고 그 책임을 아이의 어머니가 짊어지겠다고 (싸워나가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은 답답한 기분 마저 들게 한다.

 

인형 같은, 아니면 아리마의 꿈 속에 나오는 다섯 살 어린 소녀의 여주인공 아키는 아버지, 남편들, 그리고 불편한 몸으로 태어난 아들까지, 삼종지도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관계 속에 서 있다. (남자 작가라서 그런걸까, 나약하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판타지가 등장 여자 인물들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소설 말미에 어머니 묘소 앞에서 결단을 (아버지와 함께) 내리는 아키, 그녀의 앞길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편지로 쓰는 독백 없이 혼자서, 아니 느리지만 성장해 나가는 아들도 함께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녀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읽은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되풀이된다는 그의 기억/탐정/안개 등이 내게는 새로웠다. 노년이라는 주제가 다른 작가나 소설을 떠올리게 했지만 모디아노의 이 소설은 해결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남겨놓은 부분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고, 적당한 긴장감도 소설 말미까지 이어졌다.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시간과 공간을 오가는 화자는 조급하게 보채는 그 젊은 커플과 대조적이다. 꼬맹이 쟝은 어른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조각난 기억들은 아직도 이어지지 않고 그리운 사람들도 지금 드러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하지만 '십오 년의 차를 두고 방 한 켠에서 맞은 편으로 옮겨간 느낌'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남는다. 그는 과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여기 이 자리에서 저 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쓴다.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종이에 주소를 적어주는 (아직은 너무 젊은) 어른. 불어 접속법 te perdes 길을 잃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길을 잃을 뿐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라 옛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을, 기억을, 어린 시절의 그 사람들을 더듬는 작가의 심정이 더 애잔하다. 어쩌면 '그 사건'이나 감옥살이, 장의 부모와 지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소설을 다 읽고, 해설을 읽고, 그 뒤에 나오는 작가연보를 읽고 책을 덮을 때 까지도 소설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작년 '제르미날'과 '나나'를 읽고 이제야 그 등장인물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인 '목로주점'을 읽었다. 강렬한 막장 세탁장 장면으로 시작해서 처참하기 그지 없는 지경으로 몰린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통속적인 소설은 서사와 등장인물, 그리고 예리한 관찰과 문장, 그리고 커다란 울림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고전 목록에 올라있겠지. 제르미날에서 등장한 탄광촌 기계는 이 소설에서 증류주 만드는 기계와 나사를 만드는 기계의 괴물 같은 덩치와 소음으로 등장한다. 기계에 밀리고, 돈에 밀리고, 술에 밀리는 사람들. 재개발 되는 도시 파리의 모습과 알콜 중독과 빚으로 파산에 이르는 사람들, 여덟 살 짜리 꼬마 아이가 당하는 아동학대 까지 너무 생생하게 그려내는데 그 어조가 매우 차갑고 냉소적이라 섬찟하다. 작가의 필력에 압도되는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류의 책을 벌써 몇 권이나 '사서' 읽고 있는지.... 하지만 나에겐 가르침과 자극이 필요해서 읽고 보고 있다. 아, 하지만 다시 깨닫는 건, 깨끗하게 정리된 방/집에 사는 사람들은 타고난다는 사실.

 

여기 실린 많은 일반인들은 '청소 하기를 즐기고', '정리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이다. 심지어 한 사람은 정기적으로 친구의 방을 청소, 정리 해주었는데 늘 깨끗한 자신의 방과는 달리 친구의 방 청소는 전,후의 차이가 커서 보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아....

 

일본인의 정서인지, 몇 년 전 유행했던 '청소하면 복이 와요' 류의 공감대가 이 책에도 있다. '비우면 좋아져요' '버리면 행복해져요' 같이 비우고 단순해 지는 삶에는 어떤 보상이, 정신 세계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마 나도 그 정신 세계, 기운을 받으려고 '정리' 와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자꾸 사서 읽는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16-04-0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책부터 좀 치워야....ㅜ.ㅜ

유부만두 2016-04-09 21:08   좋아요 0 | URL
하아.... 그렇죠. 전 그래서 요즘 읽은 책들은 중고서점에 팔기도 하는데, 신간도 많이 사서...책이 줄지 않아요.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