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의 자전 "수인"을 예약 주문해 놓고, 스님의 바랑을 닮은 에코백을 받고도 한참 동안 읽기를 미뤄두었다. 그러다 어제, 화요일 저녁 오랫만의 문학행사에 가는 길에 읽기 시작했다.
강연회는 노련한 작가의 문장 만큼 부드럽고, 알찬 구성에 감동적이었다. 황작가의 인생,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픈 농담과 대화로 더듬는 자리에는 작가가 다시 만나고싶다는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가 함께 했다.
80년대 격랑의 한국, 나는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다녔는데도 뉴스에서 접했던 황석영 작가를 이렇게 다시 만난 자리가 영 실감나지 않았다. 운동권은 커녕, 그냥 겉도는 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대신 전공언어의 문화원에 틀어박혀서 반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영화를 자막없이 보고 있었다. 집을 벗어나는 것만이 꿈이었다. 외국어를 배우고 그 외국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아야지, 라고 결심하면서도 매일 매일 집에서 저녁밥을 부모님과 함께 먹었다. 나말고도 내 세대 전체가 온나라가 방황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 시간 동안 황작가는 유럽, 미국, 일본을 다니며, 그리고 북한에 가서 김주석을 만나며 역사를 엮어내고 있었다.
그후 오랫동안... 나는 .... 그러니까, 평범하게 살았다. 결혼을 하고, 유학길에 오르고, 아이를 낳고 너무나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조용히 살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시선은 내 집 현관문을 넘지 못했고, 큰 아이의 유별난 사춘기를 겪어주느라 나도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역사는 흐르고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제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 나는 안치환씨의 노래의 가사를 놓치며 어쩔줄 모르고 늙은 심장은 안타깝게 두근거렸다. 몰랐을까,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냥 이렇게 말간 눈길로 맹하게 변명하면 이제 와서 통할줄 알았을까. 생경한 문성근 씨의 날카로운 발언, 많이 굽은 황석영 작가의 어깨, 너무 나이 들어버린 나.
아름답고 슬픈 밤. 잘못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이 땅의 역사일텐데, 왜이리 낯설고 무거운지. 첫 권을 조심스레 천천히 이어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