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아, 문학동네에서 새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가 나온대. 예전에 열린책들의 두 권짜리 벽돌 판으로 읽으면서 손이 아팠던 기억도 새롭더라. 막연하게 아버지를 살해하는 아들, 이야기로만 알고 시작했는데 첫권 700쪽이 끝나도록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패륜의 마음으로 조바심이 났었지. 한동안 도스토예프스키를 찾아 읽고, 좀 더 우아한 톨스토이도 읽느라 겨울만 오면 사각형 털모자를 사고 싶었어. 우리 함께 페테르부르그에 가기로 한 약속 잊지않았지? 사실 나의 러시아 문학 읽기는 석영중 교수의 입문서들 덕이었는데, 설명이 너무 재미나서 소설을 찾아읽고, 또 읽고 그 긴 이름을 후루룩 라스콜리니코프, 하고 한 호흡에 말하게 되었어. 그런데 석영중 교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전에 우리끼리 말했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석 교수의 평엔 어쩐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말야, '전쟁과 평화'를 읽고나니까 난 톨스토이가 더 좋아졌어. 그의 도덕책 같은 '부활'은 치워뒀지만 이번에 나온 '하지 무라트'는 좋더라? 얇고 (이거 중요함) 묵직하고 거친 야생의 맛, 이 살아있는데 그래도 그 중심엔 인간, 맞어, 결국엔 인간을 읽는 거니까, 인간을 만날 수 있었지.

 

 

 

작년에 절판된 모출스키 평전도 구해놓으니 얼마나 뿌듯하던지 몰라. 내가 자랑을 했던가? 읽는 건 뭐 천천히 언젠가, 할 거야. 약속.

 

 

우리 같이 러시아 강연 찾아 듣고 책 읽고 그랬는데, 그게 벌써 한참 전이네. 이번에 새로 나온 석영중 교수의 '인간만세', 카라마조프 형제 읽기 책을 얼른 샀어. 네 생각이 먼저 났지. 서문 첫 부분부터 AI나 휴먼게놈 프로젝트, DNA 조작 등을 언급하며 '인간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는 저자는 인간성이 사실 뭔지는, 인간이란 게 뭔지는 그닥 명료하게 적어놓질 못했어. 그냥 어르신들 말씀 같은 느낌도 들어서 살짝 지루하려던 차에 본론이 시작하지. 두둥. 이 책은 얇아서 그나마 다행이야. 하지만 그 깊은 속은 인간, 만큼 복잡하고 어지럽겠지. 혜진아, 할 말이 많아. 함께 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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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만세는 저도 읽고 싶어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온라인에선
제값을 다 받더군요. 얇은데 값도 오지게 비싸고...ㅋ

유부만두 2018-04-08 16:01   좋아요 0 | URL
도서관 이용하시는 방법도 있어요.
 

참... 그렇다...

직접 본 적 없는 삼촌 이상, 집에 그의 책이 없으니 구해달라는 질부, 유물은 없지만 이상의 방,은 조카가 (자신의 음식점 한켠에서) 운영해야한다는 주장... 막무가내로 찾아가 이상 조카 맞냐고 들이대는 저자, 꼽추라고 써대는 그의 수준...

‘오빠 이상, 누이 옥희’ 에서 여성주의를 읽을줄 알았던 내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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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 보다 그를 기리는 시인, 소설가, 예술인들에 더 관심이 갔다. 이상의 집터에 기념관을 짓고 그를 기리는 사람들, 이상의 유작을 좇아 새로운 소설을 만든 작가들, 그리고 그의 시를 연극으로, 무용으로 새로이 풀어내는 사람들. 이상은 이국에서 외롭게 병사해 그의 묘소를 이제 찾기도 어려워져 해독하기 어려운 그의 시처럼 그의 인생 전체가 신기루, 혹은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직은, 그의 혈육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상의 조카, 이상이 아꼈던 여동생 김옥희의 아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김옥희의 1962, 1964년의 엣세이, 그녀의 생애와 이상의 부인 및 지인, 무엇보다 외롭고 쓸쓸했던 이상의 생애를 함께 되짚어본다. 궁극적으로 아직도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이상의 미발표 원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그 모든 천재와 문학, 그리고 멀지만 아직은 닿을듯한 시대와 아픔의 흔적을 집요하게 찾아간다. 그런 '의도'는 보였다. 저자 자신이 이상 문학 속 주인공이 되어 하나씩 풀려고 한다. 다만, 그 추적의 결과가 다른 문학 평론과 (학술 발표들과 자신의 책을 별개로 다뤄주길 바라는 저자의 의도가 서문에 분명하게 표시되어있다) 인물 평전 보다 짜임새가 헐겁고 신변잡기에 치워쳐져 있어서 이상의 이름이 민망하다. 그는 기존의 이상 관련 자료나 논문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고 열쩡으로 이상 추적을 시작한다. 그가 새롭게 찾아낸 문학적 역사에 과연 의미를 부여해야할까, 주저하게 된다. 무엇보다, 책의 시작이 설날 다음날 아무런 예고나 약속없이 음식점을 하는 (하지만 영업을 하지 않는 연휴에) 집에 찾아가 다짜고자 '이상이라는 시인의 조카분 되십니까'로 시작하니 독자인 나에게도 매우 무례하게 보인다. 이런 무례, 혹은 낭만, 아니라면 그냥 또하나의 이상 관련 팬북. 새로움은 글쎄. 김연수의 소설을 골라 마음을 추스리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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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20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꾿빠이, 이상 아직 못읽었다는...

유부만두 2018-03-20 07:31   좋아요 0 | URL
추천해요. 오마주 소설이라지만 전 이상을 넘어선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이상은 (문학도, 그의 사생활도) 그리 매력적이 아니라서요.

라로 2018-03-21 14:14   좋아요 0 | URL
여기 <꾿빠이, 이상> 읽지 않은 일인 추가요~~.

psyche 2018-03-22 00:30   좋아요 0 | URL
언제던가 한국가면서 유부만두한테 책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그때 꾿빠이,이상 추천해줬었는데 사려고 했더니 품절이었어. 지금 보니 다시 나왔나봐. 다음번에 꼭 사와야지

유부만두 2018-03-22 06:38   좋아요 0 | URL
네 작년인가, 다시 개정판이 나왔어요. 한동안 절판이었구요.
여름에 오시나요? 그런데 한국은 다시 겨울이 되었어요.
이러다 봄 건너뛰고 여름으로 갈지도 몰라요. 언니가 온다면 여름도 기다려지구요. ^^
 

트위터에서 회자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Ugly Delicious를 봤다. 부엌 창가에 스마트 폰을 얹어 켜두고 설겆이를 하면서, 한없는 채썰기를 하면서 봤다. 나도 마음은 세프라....고 하고 싶지만 일주일에 한 번 고기를 2킬로씩 버무리는 건 유학생적 습관 때문이다. 파도 몇 단씩 사서 다듬고 정리하고 생선도 음악 들으면서 비늘을 긁어 한 마리씩 정리한다. 하지만 김치 냉장고는 없다. 내 몸이 그저 유학생 시절의 고생과 궁상, 혹은 음식에 대한 집착을 기억해.

 

주인공, 혹은 엠씨 데이비드 챙 (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뉴욕에서 시작한 누들바, 모모푸쿠를 세계 체인으로 성공시킨 유명 세프다. 말도 참 어글리 (아니 F.... word) 하게 걸게 하고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도 많고 (그런데 왜 해삼을 못드시나 몰러....난 어리굴젓을 몬먹지) 음식과 요리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려 한다.

 

정통 음식이란 무언가. 쌈과 타코가 어떻게 다르고, 음식에 담긴 문화, 아니 차별은 어떤지. 타이거 우즈에게 프라이드 치킨을 언급한 그 골퍼는 인종차별주의자임에 분명한데 휴가 나온 군인에게 치킨은 가족 보다 반갑다. 퓨전은 또 다른 F word 라며 기겁하는 요리사에게 정통은 그저 높은 벽 쌓기가 아니라고 했다. 복잡하고 오묘하고 ... 하지만 영상은 유혹적이고 (매회 시작시 자막으로 '모방성 높다'는 경고가 나온다) 입엔 침이 고이다가 급기야 지갑을 들고 길로 뛰어나가 ...결국 타코벨에 갔다는 슬픈 이야기. 너무 짠 타코에 눈물이 나서 집에 와선 아보카도 하나를 썰어 먹었다지요.

 

음식에 대한 신격화는 없지만 예의를 지키려 하고,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그리고 칼로리도. 데이비드 챙의 책을 사서 읽기시작했다. 그의 음식 배우기 여정이 오딧세이 만큼 흥미진진하다 (아, 나는 오딧세이 책이 세 종류로 있는데 아직 안 읽었....) . 모모푸쿠, 라는 가게 이름이 라멘의 창시자에서 따왔고 묘하게 f.... 라는 것, 그리고 그의 열정이 읽는 나도 흥분 시킨다. 음식이야기와 어렵고도 쉬워 보이는 레서피가 많이 실려있다. 오늘 아침은..... 씨리얼. (덴당)

 

--

도망 가는 놈이나 꼬집는 놈을 조심하라. 가재는 살아서 성질 부리는 놈으로 사야 한다. (생가재 요리)

 

소에게 옥수수가 있다면 한국 아이들에게는 떡이 있다.

 

나는 에이허브 선장이었고, 부리토는 나의 모비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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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3-1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넌 해삼도 어리굴젓도 다 먹는데 없어 못먹을뿐... ugly delicious 처음 들어봤는데 재미있어?

유부만두 2018-03-10 11:17   좋아요 0 | URL
네. 근데 f word 너무 많이 나와서 애 있을 땐 못봐요;;;; 인종 문화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엄청 배고플 땐 보면 위험해요.

psyche 2018-03-10 11:19   좋아요 0 | URL
f word 쯤이야. 난 원래 헤드폰 끼고보거든 ㅎㅎ

유부만두 2018-03-10 11:2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목도 f.... delicious 대신 ugly 쓴거 같고요. 중간에 스티븐 연도 나와요. 느무 귀엽고요.
 

오늘 아침은 봄비.

 

이 비는, 이 물 방울들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언젯적 물, 에치투오 들인가. 우주의 원자들일까.

 

설화의 패러디는 이탈로 칼비노라고 '소설의 기술 the Art of the Fiction'에서 존 가드더가 정리했다. 이탈로 칼비노는 그 유명한 '고전은 다시 읽는 것'이라는 인용구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자신이 고전으로 정의될 소설을 썼다. 재미 삼아, 거짓말을, 시침 뚝 떼고, 우주적 뻥과 과학을 양념 삼아.

 

달이 과거엔 너무 가까이 있었다네. 바다로 나가 하늘에 떠 있는 달에 긁히지 않게 고개를 숙이며 배를 저어 나가서 달까지 사다리를 대고 달의 중력에 다가가 폴짝 뛰어오른다고. 거기서 여러 물질이 녹아 달의 비늘 사이에 고여있는 우유를 긁어 온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생명체가 여러 무기물 사이에 부유했는데 이 물질들이 서로 뭉치고 굳더니 지구가 생기더라나. 그 맑은 구체 였던 지구가 굳어가는데 그 속에 빠진 누이를 1912년에 호주에서 만났다니 다행이지.....아, 뭐야?!!! 이게 문학이라고? 설화나 옛이야기가 이런데요? 그쵸?! 재미있고 엉뚱망충한데 그 안에서 말이 된다고요. 인물들의 갈등과 슬품이 더할 수 없이 절절하다니!  하하하 칼비노는 게다가 과학도 섞고 인물들이 (사람인지 뭔지) 제멋대로 쿨시크하고 이름도 대충 달아놨는데 이걸 각잡고 읽는건 우습잖습니까. 그런데 무시할 수는 없더라고요.

 

봄비, 우주적 망상, 아니 상상력으로 에치와 투와 오의 결합과 분해 혹은 실험실의 비이커들을 상상합니다. 아침은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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