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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생들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은 뭐가 다르냐고 질문해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는 합니다. '복잡한데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리얼리즘은 의사의 발화, 즉 진단하고 치료하고 예감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모더니즘은 환자의 발화, 즉 찡그린 표정이고 새어나오는 신음이며 기괴한 몸부림이다.' __ 신형철

 

 

물론 70~80년대 작가들에 비해서 90년대 작가들의 약점은 있어요. 이전 세대는 현실과 체험의 영역이 컸던 반면, 90년대 작가들의 경우에는 뒤에 텍스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요. 그걸 금방 간파하겠더라구요. '아, 이 작가는 무슨 책을 읽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로 오면서는 형식적으로 한층 세련되어갑니다. 내가 어릴 때 쑥스럽다고 여겼던 것처럼, 이들은 '쿨하다'고 해야 할까? 징징대지 않고, 표를 안 내고, 쓱 눙치면서, 돌려서 다른 이야기처럼 하는... [...] 뿐만 아니라 옛날의 서사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접근해 들어가기도 하더군요. 나는 그냥 애들이 놀고 있는가보다 그랬지. 요새 작가들은 딴짓하고 딴 데 가서 놀고 있겠지 그랬는데, 나름대로 지근거리에서 놀고 있었던 거요. __ 황석영

 

 

태도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지식인으로서의 태도이기도 할텐데, 그런 일말의 책임을 좀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태도와 관점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관점이 뛰어나면 태도가 저절로 뒤따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관점이 먼저였어요. 그리고 태도는 늘 뒤늦게 허덕거리며 관점을 쫓아왔었죠. <객지>를 발표했을 때 저는 정작 <객지>에서 나오는 그런 세계인식을 지니고 있지 못했어요. 뒤늦게 '내가 쓴 것이 이런 것이었어?' 하면서 '땜빵'하느라고 몇년이 걸렸지요. __ 황석영

 

 

 

 

황석영 작가께서 집필하실 <철도원 삼대> 이야기를 꼭 읽고 싶다. 작가님 건강 지키시게 적금 들어서 황 작가님께 보약 몇 첩 지어드리고 싶은 심정. 이 대담은 읽고 나면 울컥, 하며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이 막 샘솟아...서 책을 더 지르게 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두 번 읽을 만큼 특 A+ 급 한우랑 결줄 수 있는 특집임. (고기 사랑, 문학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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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의] 원작자인 이사야마 하지메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거인의 모티브는 어디서 온 것인가요? 라그나뢰크며 오딘이며 북유럽의 거인 신화를 머릿속에 그렸을 기자에게 이사야마는 전혀 엉뚱한 현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전에 넷카페에서 심야 알바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 상대했던 취객들을 모티프로 삼은 겁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같은 인간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무서웠습니다. 거인은 다름 아닌 왕(손님), 취객의 갑질에서 잉태된 것이었다.

 

 

 

작가의 눈 코너는 지난 주부터 입소문을 탔던 그 글, 박민규 작가의 <진격의 갑질>이 힘차게 열었다. 아, 그렇구나. 괜한 데다가 정열, 분노를 퍼붓고 멍청이처럼 굴지 말아야지. 벽을 쌓아올릴 때 구경만 했던 착한 아이였던 내가 진격의 거인 앞에선 도망가기 바쁘구나. 이제라도 적어도 반성은 해야될텐데. 윤이형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더 공감을 하는걸까..) '그물'의 의미를 조근조근 말해준다. 편가르기에 혹, 하고 넘어가는 단순한 나란 인간.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책을 덮어버리는 우매한 짓을 저지르지 말자고 하는 최민우 작가의 글까지. 작가의 눈, 코너 정말 좋다. 불편하게 있으라고, 생각 좀 하고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겠지. 그들이 더 섬세하고 민감하게 알아채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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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들은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 그 열망을 충족시키려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거고."
"자기를 사랑하능 사람까지도 말이에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단순한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래리가 죽은 옛날 언어를 배워서 뭐하려고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지식 그 자체를 갈망하기도 해. 그건 멸시당해야 하는 욕망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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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앞에 다다르자 초콜릿빵이 먹고 싶지 않느냐고 뤼크가 물었다. [...] 우리 둘은 초콜릿빵과 커피 에클레르를 단번에 먹어 치웠다. -- 마크 레비 <그림자 도둑>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그 빵 가게에서는 갓 구운 빵을 살 수 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편 - 이 사람은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나는 이곳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빵을 한 개 먹는다. [...] 빵이 담긴 봉투를 들고 돌아갈 대는 기운이 넘친다.

                                            --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남자와 그의 브뢰첸.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인가! 물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어쩐지 저 남자에 비해 너무 어려 보이지 않아? 언제고 브뢰첸이 나이를 먹어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그때 마침 저 남자가 예쁜 크루아상을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가여운 브뢰첸에게는 관계의 빵 부스러기만 남겠지..." 그러나 우리의 신뢰는 그들의 구설보다 강했다.

                                           -- 호어스트 에버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새 잠옷, 모직 양말 두 켤레, 위에 초콜릿을 끼얹은 렙쿠흔 한 봉지, 남태평양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책 한 권, 스케치북,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고급 색연필 한 상자가. 마르틴은 너무나 감격해서 부모님에게 입을 맞추었다.

                                         -- 에리히 캐스트너 <하늘을 나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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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블랙홀

                        안현미

 

곤드레나물밥을 먹는다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며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사는 것

 

곤드레나물밥을 먹는다

곤드레나물밥을 먹으며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씹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사는 것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삶을 인용해서 살고 있는 것만같은

불혹, 블랙홀

 

곤드레나물밥을 먹는다

꼭꼭 씹어 먹는다

 

곤드레나물밥을 먹는 일만으로도

나는 잠시 너를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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