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 P20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신자로서 나는 내세가 시계, 몸, 뇌, 영혼, 신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모양이나 형태, 내용을 가진 것이 없는 곳이라고. 절대적 해체라고.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줄은 미처 몰랐다. 내 평생을 돌이켜본 것이 세 시간 동안 계속된 일인지 아니면 백만 년 동안 계속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망각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시간이다. 휴지(休止)도 없다. 내세에는 잠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로지 잠뿐인지도. 그래서 영원히 사라진 과거에 대한 꿈이 죽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인지도. 그러나 꿈이건 아니건 여기에는 지나간 삶밖에 생각할 것이 없다. 이것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일까? 망각보다는 나은 것일까, 아니면 나쁜 것일까?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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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챕터에서 생물학적인 성차이에 대한 개관을 읽으면서 마침 생물의 생식에 대해서 배우는 중학3학년 막내로 부터 조금 더 자세한 설명(과 우쭐거림)을 들었다. 이 녀석 역시 ‘this delicate stalk of skin (52)’에 자부심이 크다;;;


During fertilization, the two nuclei merge their substance, and the chromosomes in each are reduced to half their original number: this reduction takes place in both of them in a similar way; the last two divisions of the ovum result in th formation of polar globules equivalent to the last divisions of the sperm.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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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10-08 0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귀여워요^^
안그래도 딸들도 시험공부를 하긴 하는 건가?
청소하다 보니 책상에 딱 저런 그림 막 그려 놓은 수행평가지를 본 것 같습니다.
딸들은 과학을 싫어해서인지 염색체 부분 어렵다더라구요ㅜㅜ
아드님은 과학 소년이군요..중간고사 화이팅입니다^^

유부만두 2021-10-08 08:28   좋아요 2 | URL
저희집 막둥이는 인문소년입니다. 과학을 즐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부분을 뽐내기를 즐기는 편이에요;;;;
예전에 비해서 요즘 중학생 공부는 꽤 어렵네요. 과학 수학 뿐아니라 국어 사회도 내용이 꽤 많아요. 뭐라 간섭하기가 조심스러워요.
 
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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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같은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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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9-29 0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를 흐르게 하는 커피를 아직 마시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아침부터 헤롱헤롱한 저는 커피 타러 갑니다^^

유부만두 2021-09-29 10:17   좋아요 2 | URL
전 마셨는데도 뉴런에 불꽃이 안 튀어요. ㅜ ㅜ

붕붕툐툐 2021-09-29 0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를 흐르게 해야하는군요~ 커피!ㅎㅎㅎㅎㅎㅎ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들 읽어서 기록 남기러 들어왔는데, 이 책이 딱!!ㅎㅎ

유부만두 2021-09-29 10:19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 시녀들 읽으셨군요! 새로운 독서의 장이 좌좌자안 열린 기분 아니십니까?!

붕붕툐툐 2021-09-29 11:09   좋아요 2 | URL
ㅎㅎ맞습니다~ 진짜 새로운 느낌!!ㅎㅎ

독서괭 2021-09-29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 저도 커피 한잔 해야겠습니다..

유부만두 2021-09-29 15:08   좋아요 1 | URL
비도 오고 나른한 오후입니다. 커피의 효능을 좀 보셨을까요?

독서괭 2021-09-29 15:16   좋아요 2 | URL
그냥 맛있었습니다…😦

페넬로페 2021-09-29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오늘 습기가 많아 견디기 힘드네요^^정신 번쩍 들게하는 피같은 오후 커피를 마셔야겠어요**

유부만두 2021-09-29 17:43   좋아요 2 | URL
오후의 카페인은 조심하셔야 해요. 자칫하면 불면을 부를 수도 ... 있지만 우리에겐 책이 있따!

눅눅한 수요일은 빨래가 안 말라서 아줌마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mini74 2021-09-29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밤에 야식도 아니고 야커피? 가 땡기게 하는 글입니다 ㅎㅎㅎ~

유부만두 2021-09-30 17:34   좋아요 0 | URL
심야커피를 좋아하시는군요. ^^
 

“김치의 재료가 되는 채소는 ‘김칫거리’라고 흔히 말하지만 전라도 지역에서는 ‘짓거리’라고 한다.”



“총각김치는 무가 아닌 무청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몇 가닥 남긴 무청이 장가를 들지 않은 떠꺼머리총각의 길게 땋은 머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표준어로는 ‘부추’라고 하는 이 채소는 ‘본추’, ‘부자’, ‘부초’, ‘분추’, ‘불구’, ‘불초’, ‘비자’, ‘세우리’, ‘소풀’, ‘솔’, ‘쉐우리’, ‘염지’, ‘저구지’, ‘정구지’, ‘졸’, ‘졸파’, ‘줄’, ‘쫄’, ‘푸초’, ‘푸추’, ‘푼추’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씨암탉을 먹는 것은 결국 처갓집의 가장 중요한 재산 하나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물론 장모는 가장 귀한 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바친 것이지만 사위는 딸을 도둑질한 것으로도 모자라 또 다른 도둑질을 한 것이다.”



“순화된 이름마저 ‘닭볶음탕’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닭’과 ‘새’가 겹쳤다고 본 것도 우습지만 정작 바꿔놓은 이름도 ‘볶음’과 ‘탕’이 겹쳐 있다. 닭도리탕은 아무리 봐도 볶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어나가면서 새로운 말도 생겨나는 것이다. […] 이런 살아 있는 말에 국어 선생이나 정책 담당자가 끼어드는 것은 어쩌면 없어도 그만이고 있으면 외려 번거로운 닭갈비, 즉 계륵(鷄肋)의 흉내를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 안의 애저와 송치 요리, 영계의 성적 의미에 대해서 : “비싸고 귀해서 맛있게 느낀다면 그것은 음식의 맛이 아니라 돈의 맛이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 생원은 가짜 미식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한마디를 던진다.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허기진 건 배고파 디지겠는 거, 시장한 건 때 돼서 밥을 먹고 싶은 거, 출출한 건 밥때는 아니라서 그렇기 배고픈 건 아닌디 머 좀 먹고 싶은 거. 그거보다 들한 게 구준한겨.”



" '정종'은 正宗이라 쓰고 '마사무네'라고 읽는 일본 청주의 상표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세원진 일본식 청주 회사의 상표가 '마사무네'인데 그것이 워낙 널리 퍼지다 보니 '정종'이 곧 '청주'가 된 것이다."

......


시리즈로 묶인 <음식의 언어>에 비해 우리 음식에 집중했기에 더 친근한 내용이되 얕은 느낌도 든다. 방언을 연구하는 국어 학자의 글이라 말과 음식의 생동감, 변화 가능한 다양성에 관심을 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50대 아저씨의 글이라 어머니, 집밥에 대한 애착이 심하다. 나는 그 집밥을 지겹게 돌림노래로 '짓고' 먹이고 있다. (주부습진까지 얻고 말이지요)




우리나라 밥그릇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밥 말고 다른 먹거리가 풍성해서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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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27 20: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난 정보 많네요! 마지막에 저자에 대한 일침까지!ㅎㅎ
근데 집밥은 너무 맛있어요~ 진짜 저도 애착이 너무 심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9-28 07:47   좋아요 1 | URL
집밥과 밥집의 이야기도 나오고, 음식 이름의 유래와 지방 마다의 특색, 더해서 저자 개인의 추억과 설정 에피소드 까지 많이 나와요. 그 저변에 깔린 오마니, 오마니 손맛 ...뭐 이런 게 아, 저자 아조씨,... 하게 되더라고요. ^^

엄마 밥에 추억 없는 사람이 어디 없겠어요?
그래도 황ㄱㅇ 센세의 음식 이야기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mini74 2021-09-27 20: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밥 ㅠㅠ 하는 입장에선 ㅠㅠ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1-09-28 07:47   좋아요 2 | URL
저도요. 저도요. ㅜ ㅜ
전자렌지에 데파 먹는 밥이라도 손에 물 좀 안 묻히고 먹고 싶어요.

새파랑 2021-09-27 21: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직접 하신 요리 사진인가요? 완전 대단 하세요 👍👍

유부만두 2021-09-28 07:49   좋아요 2 | URL
하하하 보시면 아시겠지만 반찬 없이 한그릇으로만 해결하려는 제 의지가 뚜렷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두 아이들 아점저 메뉴를 그저 뺑뺑이 돌려 먹이고 있습니다.

persona 2021-09-27 21: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딱 75년 밥그릇 크기가 밥그릇 같아요. 13년 밥그릇은 아가 밥그릇 아닌가요. 너무하네요. ㅠㅠ ㅋㅋㅋ 마트가면 밥그릇이 어째 작아진 거 같다 싶었는데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나봐요.

유부만두 2021-09-28 07:50   좋아요 2 | URL
요새 밥그릇 너무 작죠? 그런데 얼마전 산 그릇은 2006년 사이즈 쯤 되는 것 같아요.
옛날 그릇이 저리 컸나 생각하면 고봉밥은 대체 ...? 싶어요. ㅎㅎㅎ
그래서 밥도둑 젓갈 등이 흥했는지도 몰라요.

페넬로페 2021-09-27 2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저 집밥을 하기 위해 얼마나 부엌에 서서 땀을 흘리며 칼질을 해야했을까요!
한끼 지나면 또 한끼!
언제나 되풀이되는 도돌이표입니다.
부추의 저의 고향말은 정구지 입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1-09-28 07:51   좋아요 2 | URL
네 도돌이표 도돌이표
시지프스의 밥상입니다.

정구지 찌짐, 부추전, 제가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자주 만들다보니 이젠 다듬고 씻어 준비하기나 부치기가 점점 빨라져요. (아, 이런건 자랑이 아닌데. ㅜ ㅜ)

그렇게혜윰 2021-09-27 2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음식보다 그릇에 더 눈길가는 저
....ㅋㅋ

그렇게혜윰 2021-09-27 21:29   좋아요 4 | URL
지금은 운동량이 적어서 머슴밥 먹으면 탈 날듯요 ㅋㅋ

유부만두 2021-09-28 07:52   좋아요 1 | URL
그쵸. 그리고 머슴밥을 먹으면 바로 누워서 .. 소가 될거에요. ㅋㅋ
 



"자넨 방금 그 남녀를 보고 놀리지 않았나? 그렇게 놀린 데는 사랑을하고 싶지만 상대를 구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포함되어 있었을 거야."
"그런 식으로 들렸습니까?"
"그렇게 들렸네. 사랑의 만족을 맛본 사람한테서는 좀 더 따뜻한 말이 나오는 법이거든. 하지만, 하지만 사랑은 죄악이네. 알고 있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P45

"아무튼 날 너무 믿으면 안 되네. 곧 후회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속은 앙갚음으로 잔혹한 복수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건 또 무슨 뜻이지요?"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 P50

"누가 먼저 죽을까?"
그날 밤 선생님과 사모님 사이에 일었던 의문을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그리고 그 의문에는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먼저 죽을지 확실히 안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할까? 사모님은 어떻게 할까? 선생님이나 사모님이나 지금 같은 태도로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아버지를 고향에 두고 있으면서도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처럼.) 나는 인간을 덧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갖고 태어나는 경박함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P103

아주머님은 내가 사는 책의 양을 알고 있었지. 산 책을 다 읽느냐고 묻더군. 내가 산 책 중에는 사전도 있지만, 당연히 대충 훑어보아야 하지만 아직 페이지조차 자르지 않은 책도 몇 권 있어서 나는 대답이 궁했다네. 어차피 필요 없는 걸 사는 거라면 책이든 옷이든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게다가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다는구실로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오비나 옷감을 사주고 싶었네. - P185

지금 자네는 친척들 중에 이렇다 하게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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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27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좋아해서 따로 메모해둔 구절하고 거의 겹칩니다!!

유부만두 2021-09-28 07:42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막 반가운데요?
소세키는 ‘그후‘만 읽고 (가슴쿵) 다른 책들은 영 지루해서 책만 사두고 묵혔더랬는데 아, 이번에 읽으면서 책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왜이리 좋던지요. 늙은 아저씨 글에 이리 감동하다니 분한 마음이었지만 어쩌겠어요.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