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목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간단한 목도리를 해도 저녁무렵이거나 찬기운이 스미면 기침이 인다. 가벼운 증상인데 약국에서 3일치를 지어준다. 왠 걸했는데, 왜이거뿐이냐는 소리. 결국은 3일치 들고 용각산의 힘을 빌어 잠재우고 있다. 


-1. 그 만큼의 시간이 흘러, 제법 라이딩도 순위경쟁 맛에 더 타게 된다. 결국 태양의 차고 넘침이 별에 가 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마지막절을 접하게 된다. 이 양반을 아포리즘의 대가, 시인에 가깝다고 여겼는데, 사실 소설가에 가깝다. 마지막 반전이라니. 개그치려고 무척 애쓰는  니체님.


0. 프리즘으로 비쳐지는 니체가 아니라, 원석 그대로 보고 싶었다. 이 인간이란 대체. 물론 그 확신이 든 건 피터(슬로터다이크)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난 통째로 집어 삼켰다. 아니 오물조물 씹다. 단맛이 스며들도록 말이다.


1. 가장 웃기는 대목은 신은 인간을 동정하다가 그 동정심때문에 죽었다한다. 처음 들으면 이상하게 들린다. 그런데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책에서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나온다. 하다하다 결국 동정심이란 인물을 파견하기까지 한다. 


2. 그는 미적지근한 자들만 상대하다가 드디어 차원높은 인간들이 힘들어 한다는 소문을 듣는다. 세상에나 차원높은인간이 있다니.


0.1 니체는 자아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자아만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서술에는 자기 自己 몸이 늘 곁에 있다. 그는 몸을 이야기한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0.2 사물은 춤춘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생동하는 물질. 살아있는 물질. 이런 표현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말이란 춤추는 걸 넘어서거나 너머서 이어준다는 말 역시 좋다. 정확한 대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말이다.


0.3 우연. 우연을 가장 오래된 귀족이라고 한다. 이 양반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밑바탕에는 미래를 끌어당겨쓰거나 계획하거나 설계하거나 하는 것들이 얼마나 아둔한 일인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로 설명하는 대목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 그 '우연'이라는 양념 요리를 이야기할 뿐이다.


0.3.1 그래 그 대목을 찾다가 이리 늦었다. "만물 위에는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함이라는 하늘, 의외라는 하늘, 자유분방함이라는 하늘이 있다."라고 가르친다.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다음 장에 이런 말까지 걸어 놓는다. "약간의 이성, 별에서 별로 흩어져 있는 지혜의 씨앗, 이 효모는 만물에 섞여 있다. 지혜는 이 어리석음을 위해 만물에 섞여 있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지혜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만물에서 다음과 같은 행복한 확신을 발견했다. 즉 만물은 오히려 우연이라는 발로 춤추고자 한다."고 말이다.


0.4 어김없이 들뢰즈가 천의 고원에서 말했듯이 여기서도, 아니 니체가 먼저다. 늑대이야기가 나온다. 한없이 왜소해진 인간들은 겸손하고 양순함이 미덕인줄 알고 있다. 그 비겁함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따끔을 한방 놓는다.  "그들에게 덕이란 겸손해지고 양순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늑대를 개로 만들었고, 인간 자체를 인간 최고의 가축으로 만들었다." 고....이 대목을 피터가 인간농장이라는 말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3.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는 차원높은 인간들을 만난다.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인간들이다. 평등만을 주장하고 탓을 하는 천민들보다 조금은 낫지만 이들과 만날 때는 차원높은 인간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한다.


4. 그는 망치와 모루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일종의 담금질인데,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럴 때는 극복이란 말을 쓴다. 높이는 깊이를 가지고 있다. 높이 올라가려면 그 깊이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5. 차원높은 인간들을 그는 독수리와 뱀 짐승들이 인도하는 동굴로 가게했고, 그 자리에서 담화와 만찬을 벌인다. 동굴안에서 웃음 소리가 들리고 춤출 기세까지 보이기도 한다. 헌데 뭔가 미심쩍다. 사이 사이 인간들이 틀어지고 또 다시 섬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이런 가련한 인간들이라니...정답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개하는 꼴이라니....어처구니가 없다.


6. 그렇다. 그는 인간들을 아직도 동정하고 동정심을 풀풀 내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던 것이다.


"모든 위대한 사랑은 모든 동정을 넘어선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의 대상조차 창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볕뉘.


0. 세상엔 알록달록한 것. 그 작은 것들 투성이다. 관조하려고만 할 뿐 뭘 하려고조차 않는다. 그리고 틈만 나면 기댄다. 스스로 서서 걷는 법조차 잊었다. 아 미적지근한 인간들이여. 이젠 제 몸의 온도마저 올리지 못하며 늘어져 있구나. 손가락조차 터널증후군에 걸려 들 힘조차 없구나.


1. 알고보니 여기서부터 길을 시작했구나. 말 많은 이들은. 어쩌다 이름얻는 이들은 이 걸 제 것으로 삼았구나 싶다. 시지프스 마저.


2. 어서 차고 넘치는 것들로 풍요로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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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한 시집들이 늦게 도착한다. 약속한 일정들이 끝나고 일터에 다시 들른다. 전에 작업하던 화실에도 인사 겸 들러본다. 분가를 한 지 백여일이 지난다. 작업실이라니. 


작업실에 들러 책을 펼친다. 그래 작업실이 아니라 야외가 안성맞춤이지. 가을하늘 아래 공원 벤치가 제격이야. <<풀잎>>을 챙긴다. 오늘은 아이들의 흔적이 없다. 


마스크에 깊은모자까지 쓴 걸음걸이가 서툰 중노인이 거닐다가 앉고 또 거닌다. 아주머니 한 분은 운동기구를 옮겨다니며 연신 운동이다. 흐린 하늘에 흰 구름 그리고 푸른 하늘도 조금 섞인 날이다.


풀잎이란 제목은 1,2로 두 편이다. 하지만 시의 전편 행간마다 풀잎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 풀잎 2. 제일 마지막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중략)

우리가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중략)

우리가 '풀잎''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버리거든요.



풀잎 1 에서는


꽃보다

고운 이름.


흙보다

가까운 이름.


풀잎이여.

아 너 홀로

살아 있는 이름이여로 시작한다.


가을이다. 시인의 마음을 쫓아보기에 좋은 계절이다. 한 편 더 소개한다.


해당화


바다는 괴로울 때

몸 전체로 우는

버릇이 있다.


병들어 신음하는

지구덩어리를

그의 등에 업고

몸을 뒤척이는 바다의 곁에 서서


나는 두 손을 높이 들어

경의를 표한다.


이럴 때마다

바다와 나의 이웃에는

붉은 반점이 돋아났다.


동해안의

여름 해당화.


박용래를 만나러 가야겠다. 오늘은 그 공원 벤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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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전이나 해설은 비교해서 볼 때 쉬운 편이다. 정작 그의 저서는 무척 어렵다. 읽기가 어렵다. 번역의 문제일까??. 아무 그렇지 않은 듯싶다.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일 게다. <<GREY ECOLOGY>>. 사실 이 책이 궁금하였는데, 탈출 속도의 한 장이 GREY ECOLOGY다. 



이 생태학은 자연에 의해서보다는 도시의 인공적 환경이 인간들 사이의 , 다른 공동체들 사이의 물리적 근접의 변화에 미치는 효과에 의해서 관심을 갖는 학문인가? 구역들 바로 주변의 근접, 엘리베이터, 기차나 자동차의 기계적 접근, 최근에는 즉각적인 원거리 통신의 전자적 근접이 존재한다. 동시에 땅, 주변의 통일성과 함께, 타인 부모 친구 바로 이웃과 함께 그 만큼 규모의 단절도 있다. 75



원거리 통신에 의한 극도의 근접이 초음속 통신수단에 의한 속도의 극단적인 한계를 대신하는 오늘날, 녹색 생태학 옆에서 회색 생태학을 새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상호접속되는 인텔리전트 '도시무더기들'에 의한 회색 생태학은 곧 유럽과 세계를 다시 개혁할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도시 생태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원격작용의 원격기술에 의해 전복된 공간-시간의 이러한 상황 속에서이다. 생태학은 대도시의 대기오염이나 소음공해 뿐만 아니라 20세기말에 자리잡은 원거리 통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이 '도시-세계'의 때 아닌 갑작스런 출현에도 기인할 것이다.76



대기권이나 수권의 오염이 아닌 질주권의 오염은 '영토'의 외관 '영토'의 지구물리학적 현실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영토가 없다면, '사회집단'와 '동물'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의 자연환경에서 존재하는 것은 여기지금, 즉시 자리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된다면 우주를 정복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지리적 죽음이기도 하다. 82,83



그가 말하는 원격시선을 갖게 되어버린 우리는 새로운 것이 없다. 냉소와 도시무더기에서 누에고치처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빛의 속도, 자동차의 속도, 기차의 속도, 말의 속도, 자전거의 속도, 걸음의 속도.....거꾸로 속도가 만드는 자장에 맞춰 삶의 박자는 공명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혼은 자라지 않고 지지직지지직 광파에 오염되어 압축되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빛의 속도는 지구를 점으로 만들어버린 우주의 속도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우린 지구에 사는 생명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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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근길 라이딩. 아니 자전차 느낌이다. 업무마치고 돌아가는 길같은 일상. 페달을 밟고 찬바람이 스미는데, 아버지의 탄광시절이 생각난다. 도시락을 주러간 것인지 아니면 퇴근길인 건지 모르겠지만 함태탄광의  컨베이어를 말안장 위에 서서 타듯 내리던 모습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되새김기억은 상실감이 배경이 되어 또렷해졌다. 막장에서 사고로 구조되어 7개월을 병원생활했다고 한다. 아마 이 체험이 7-8년뒤 그곳을 떠나온 배경이 됐을 것이다. 점방, 양계장, 밭일...어림잡아도 일이 3잡 4잡.


0.


길랑바레로 부장님은 투병중이다. 벌써 9개월째. 장애인등급이 나왔다고 한다. 일터는 빈자리가 커지고 있다. 직장님이 세세히 말하길 노력은 해보지만 일장악력이나 일순서들이 매끄럽지 않다고 한다. 언젠가 짚어주셔야 내년 대보수기간에 좀더 깔끔하게 일들이 진행될 것이라고 귀뜸해주신다. 


1.


마뚜라나의 책 뒷부분에는 사랑이란 대목이 나온다. 식물씨앗이든 나비든 애벌레든 신뢰가 없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한다. 조금만 삐끗해도 생명이 될 수 없다고 말이다. 물에 빠질 것 같은 아이를 구하는 심경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연애가 아니라 식사 뒤 음식부스러기를 챙겨가는 거미를 봐주며 놔두는 것들이 사랑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의견을 공유하는 만큼만 진행되는 것이라면 사랑이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나머지를 채우는 감정이라고 말이다. 책임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마음씀'이라고 말한다.


2.


국밥을 들고 반주를 하고 있는데 켜진 채널A에서는 진행자가 희죽거리면서 전쟁소식을 볼거리라고 현장화면을 전한다. 차마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귀마저 막고 싶었다. 폭음소리. 비명소리. 이어지는 자막에는 로켓은 북한제 의심. 그들은 가르고 찢고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면 온갖짓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패널에게 어떤 코칭을 할까 생각해보자 더 끔찍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책임지지 않는 자들. 애초에 마음쓸 생각조차 없는 집단들이 언론과 권력이라는 무기를 휘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3.


자전거 라이트를 켜고 돌아와 보지 않던 유튜브 정치채널을 본다. 이제서야 조금 움직이는구나. 싶었다. 정치인이 되지 말고 정치를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제발. 하루하루 빚에 허덕이는 젊고 아픈 애딸린 사람들을 보라. 얼마나 지옥같겠는가. 하루하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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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5. 공산토월편.  <대부>에 대한 영화평을 써달라는 대목인데 다른 사설이 길다. 읽는 와중 시인들과 교제를 숨김없이 적고 있다.


대전 박용래시인, 사천 박재삼시인, 광주 박성룡시인들과 친분도 그러하며 몇날 며칠 헤어지지 않고 안부와 시풍을 나누는 모습들도 겹친다싶다.


윤중호시인 역시 이런 선배들에게서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



답을 못하는 이문구는 혼이 난다. 그래가지고 무슨 문학을 헌다구. 한심허구나야.... ...



언어를 낳는 시인들은 이미 많은 세상을 낳았을게다. 그 그물에 걸려들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늘 사막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이모양 요꼴인지도... ...


시가 구미를 당기는 날들이다. 진주에서 밤새 얘기를 나누다보니 밖이 희윰해졌다. 사람들도 그리운 날들이다. 가을그늘은 노랗지. 빨갛지. 가을도.

블라디보스톡까지 논스톱으루 달리는디 말여....
"경비원으로 묻어갔었다 --그 말이라...."

오 --그 눈...그 눈송이.....그 두만강
"......"
"이까짓 눈두 눈인 중 아네? 눈인 중 알어? 너두 한심허구나야....원산역을 지날 때 눈발이 비치더니, 청진을 지나니께 정신웂이 쏟어지는디, 아 - 그런 눈은 처음이었어......아 -- 그 눈 ..... 그 눈...."
그는 이미 떨리는 음성이었고 두 눈시울에는 벌써 삼수갑산 저문 산자락에 붐비던 눈송이가 녹으며 모여 토담 부엌 두멍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차가 두만강 철교를 근너가는디....오! 두만강 - 오, 두만강! 내 눈에는 무엇이 보였것네? 눈 ! 그저 그 눈! 쌓인 눈, 쌓이는 눈...아무것두 안 보이구 눈 천지더라. 그 눈을 쳐다보는 내 마음은 워땠것네? 이 내 심정이 워땠겄어?"
"워땠는지 내가 봤으야 알지유."
"그너냐, 야, 너두 되게 한심허구나야. 그래가지구 무슨 문학을 헌다구. 나는..나는 울었다. - P180

그냥 울었다. 두만강 눈송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한없이 그냥 울었단 말여..."
어느덧 그의 양어깨에 두만강 물너울이 실리면서 두 볼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시대의 두만강이 흐르고 있었다.
"오 두만강.....오, 두만강 눈....오...오...."
그는 아침 9시 반부터 두만강을 부르며 울기 시작하여, 그날 밤 9시 반이 넘어 여관방에 쓰러져 꿈결에 두만강 뱃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 P181

우리는 아무렇게나 쓰러져 잤는데, 창가에 찾아온 빗소리에 깬, 박시인의 고시랑거리는 소리에 일어난, 임시인의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내가 눈을 떴을 때, 부실거리는 빗방울에 유리창에는 조춘이 숨쉬고 있었고, 그 너머 하늘은 경칩 달무리 비낀 미나리꽝마냥 깊고 묽었다. 박시인이 먼저 한말 시골 나그네 핫바지 같은 내복 차림으로 창문을 척 열어붙이더니 금방 울음이 터질듯한 음성으로
"정월 초닷새 대전 추녀 밑에 비가 내리다....역전 골목을 돌아가는 리어카의 파빛..."하고 중얼거린다.
"뭣 보구 또 시 한 수 짓는디야"
하며 임시인이 뒤를 이어 내다보고는,
"저게 무슨 파여, 미나리구먼, 미나리빛으로 고쳐."했다. 나도 덩달아 벗은 몸으로 내다보았다. 빗속의 리어카꾼이 무와 시금치를 가득 싣고 곱은탱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 P182

그들과 기질이 상통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닮은 서울 시인으로는, 나무 때어 눌린 무쇠솥 숭늉 같은 박재삼씨가 있다. 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잔 헐까요?"
하고 물으면, 고은씨나 이호철씨 못잖은 반가운 미소를 보이며
"안 헐 수 있습니까."
하고 입술부터 핥는 이 낮술의 대가는, 설령 박성룡씨가 없는 자리더라도 반드시 한가락 뽑아야 배긴다.
"3류 시인 난해시보다 뎔 배는 좋다 말이라...."
그는 노래를 부르기 전에 으레 가사부터 한바탕 읊는 것을 바른 순서로 친다.

사공아 뱃사공아 울진사람아
인사는 없다만 말 물어보자
울릉도 동백꽃이 피어 있더냐
정든 내 울타리에 새가 울더냐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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