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몇 주가 이어지고 있다. 주변을 채근해서 삶의 동선 사이에 채워둔다는 일. 버겁기도 하고 걸음은 중력을 비껴가는 듯하여 갈피를 쉽게 잡지 못한다. 새로운 환경은 마음과 몸의 중심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일터의 일은 그렇게 충돌하면서 일들을 만들어내고, 전시의 일은 이렇게 책들이 부딪히면서 일들은 만들어내다. 


다행스럽게 부유하면서 두 권의 책을 잡아내어 그 위에서 좀 쉴 수 있었다. 둘로만 나누면 무엇이 문제인가?란 물음에 그것은 언어와 그 구조에까지 물들어있음을 확인하고, 명확하고도 논리정연한 답을 해주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여러 차례 잡담회와 술자리 모임들을 의도적으로 갖기도 하였는데, 지금을 살면서 그 틀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가까운 지인들이라 어느 정도 그 윤곽을 잡고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오산이었다.


절망과 우울을 덕지덕지 바르거나 마음 속에 시시때때로 불쑥불쑥 솟아나지 않고서는 '좋은 삶들'에 대한 인식이나 철학이란 그저 안일한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짓누르는 일상들은 납이란 추를 양쪽 어깨에 매다는 일은 아닐까? 그(녀)들은 차라리 쇼펜하우어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듯싶다.  그들의 마음 속에 안정감이란 드문드문 섬처럼 뜬구름처럼 왔다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책방 매대에 있는 책들을 한 독서가이자 애서가가 쓸고 갔다.  조금 다른 속도로 아직 그 상태로 남아있는 매대의 중요한 책들을 담는다.  


혁명. 혁명. 혁명이라?


어쩌면 책들을 너무 쉽게 쓰는 건 아닐까? 지엽적인 안목들만 부유하는 건 아닐까? 문제를 측정하는 것들이 가늘고 얇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새벽짬들에 뒷장들을 덮으며 보낸다. 젊은 청춘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안녕할까? 무자본 창업이라? 그들이 낳은 새끼들이 정말 복덩이로 굴러들어올까? 가지많은 나무들처럼 바람만 불면 웅웅거리지나 않을까? 부디 안녕하길 바라지만, 왜 하필이면 움직이는 모래 위에 기둥을 세우는 것일까? 거꾸로 물구나무선 책들이다. 안타깝다. 정작 몇 기둥을 제대로 발라내었으나 그 토대가 무엇인지 읽으려는 사람, 보려는 사람의 욕망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몇 년전 보았던 책들이랑 겹친다. 부디 삶의 희망을 변주하길 바라본다. 전시의 삶 가운데 겹쳐 쌓아올린 사상가을 읽어낸다. 무슨 말인줄, 무엇을 얘기하려는지가 뚜렷하게 잡히는 몇 달이었다. 


다시 몇 달 후에 함께 책을 나눈 이들에게 안부를 물어볼 일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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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은 과정을 사유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

 

 

19p 그리스와 중국: 자연은 원하고, 겨냥하고, 착수하며, 능란하고,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중국의 현자나 전략가는 자연처럼 변화시키려는바람을 나타낼 뿐이다. 20p 사람들은 당신을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영웅담도 서사시도 없다. 24p 연인 - 그들이 이제 더 이상 영향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의 차원은 점차 개인의 차원에 대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더 단순하고 실효성 있는 사실 아닌가?

1장 주체/행동과 다른 관점: 변화

 

27-28 이행과정의 존재 자체, 즉 그것의 핵심이 바로 이행과정인 그 존재 자체를 사유하는 데 있다. 그런데 유럽인의 사유에는 이행과정이 존재에 속하지 않으므로 벗어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사유를 멈추고, 아무 할 말이 없어 침묵에 빠진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변화는 고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회색: 잘라 내어 특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분명한색깔이다. ‘둘 사이사이그 자체로서 사유하지 못하는 것은 둘 사이에서는 존재를 규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방식의 전제를 따르자면, 흐릿한 존재는 없고, 구분되고 규정된 존재만이 있기 때문이다. 30p

 

이미 문장에 포함된 바대로 논리의 관점에서 보면, 양보절과 결과절이 어떻게 나란히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하고, 분리 위주인 우리 유럽 통사론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다. . 실제로 이행과정의 사유는 이 둘을 떼어 놓지 않고 동시에 생각할 것을 내포한다. 본질과 정체 규정의 관점이 아닌 사물들의 운행에 투입된 에너지의 관점이다. 33p

 

2장 변화 아래에서: 이행과정

 

차이가 아니라 간극: 다른 조망을 부각하고, 시도해 볼 새로운 기회나 모험할 것이 떠오르거나 떼어져 나오게 한다. 간극은 간극이 갈라놓은 것을 긴장 상태에 놓고, 그것을 갈라진 것들 각각에 의해 발견하며, 각각에게서 비춰 본다. 간극은 문화나 사유의 다양성을 얼마든지 사용가능한 자원으로서 생각하게 한다. 이 자원은 모든 지성이 스스로 확장되고 다시 모색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방기하는 대신 오히려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36-37p

 

각각의 사유를 분류함으로써 밋밋하게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맥 탐사가처럼 서로 간의 생산성을 탐색하면서 각각의 사유에서 끌어온 정합성을, 우리의 사유되지 않은 것을 사유하기 위해 시험해 보는 것이다. 39p

 

이행과정만으로도 철학의 오랜 유럽식 도구들이 해체되거나 탈구축된다. 이행과정은 다름 아닌 보편 형상, 가지계의 형상으로 이데아를 해체한다. 40p 존재가 구별되는 정의는 항상 격리하는 힘에서 비롯한다. 플라톤은 녹는 중의 눈을 사유할 수 없다. 41p 반면 도의 이미지는 특징화하는 대신에 모든 특징화 가능한 것을 제거한다. 현상과 감각 한가운데 우리를 머물게 하면서도 그것들을 지우는 쪽으로 우리를 이끈다. 여기서 무미 가 음미된다. 43p

 

중국 사유는 변화의 기체-주체로서 제3의 항을 전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중국 사유에서는 어떤 것의 펼쳐짐에 반드시 다른 것의 응축이 답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전환되고 이 다른 것을 통해서만 쇄신될 수 있다. 따라서 실체의 필연성은 지워지고 변화 아래 유지되는 어떤 것의 관념은 엉뚱한 것이다. 여기서 자기동일성의 관념 자체는 해체된다. 45-46p

 

3장 눈은 녹는다(또는 존재를 위한 입장은 이행과정의 사유를 가로막는다)

 

변화에 대한 생생한 지각을 되찾으려면 우선 모든 변화와 모든 운동을 분할 불가능한 것으로 표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운동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서로 잇따르는 위치들로 분할하여 파악함으로써, 간격이 통과되는 이행을 놓친다. 49p

 

플라톤이 되어가는, 하는, 사라지는, 변하는등으로 성질에 따라분절하면서 말해 본다. 하지만 곧바로 끝난다. 왜냐하면 그리스어는 존재자들의 분절만이 아니라 격변화, 빈위규정, , 수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등위사로 연결되었을지라도 현상을 나타내는 이 수식어들은 존재에 기대어 있고 그들 사이에 공백을 계속 온전히 남겨 두기 때문이다. 51-52p

 

철학의 질문이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모든 철학은 관용어법에 묶인 채 나중에서야 나타난다. 철학은 관용어법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의 사유는 언어가 접어 놓은것으로 나타나고, 결정론이 자신의 사유를 짓누르게 두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성향을 미리 준비시키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55p

 

담론을 위해 기능한 기체로서 사물, 남쪽의 존재를 이루는 주체는 없다. 여기서도 변화는 술어 양상에서 열거를 통해 포착되기에는 너무도 전면에 걸친 분위기의 변화이며 이행과정은 지도위에 표시되기에는 너무도 끊임없는 것이다. 56p

 

시는 지루하다. 특질이 정해지는 사물들을 항상 전제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잿빛이고 하늘은 어둡다는 등으로 말하고 만다. 57p

 

4장 변용에 시작이 있는가?

 

자연을 음양이라는 상관 요소들로 본 중국인들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운동하는 물체로 보고 논의함으로써 변화를 운동을 본떠서 생각했다. 59p 늙음이 이행과정 대신에 목적성과 늘어남의 두 논리 사이에 취해지면서 해독불가능하게 된다. ‘이라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목표로 한 것의 목적과 끝의 관점 아래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도약이나 회전의 경우처럼) 변화-운동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이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61p 그리스의 오해는 목적의 차원에 속하는 것과 결과의 차원에 속하는 것을 서로 혼합된 채로 유지했다. 모든 결말을 도착지로 생각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늙음은 아무 데도 향하지않으며, 반복해서 말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늙음의 결과를 차츰차츰 헤아리기 때문이다. 63p 유럽철학은 늙음을 침묵에 빠트렸고 끝만을, 즉 죽음만을 염두에 두었다. 하이데거도 그렇다. ‘향함과 도착점의 사유, 무엇을 위해서와 앞으로 다가옴의 사유이다. 64p 욕망을 죽느냐 사느냐와 같이 현기증 나게 매혹하는 그야말로 존재론 차원의 양자택일이 첨예화하고 드라마틱해지며 절대화되는 논점이, 다른 한편으로는 서스펜스와 그 해소, 실추와 구원, 신비와 부조리가 동시에 극화되는 논점이 그것이다. 65p 모든 것의 의미라는 관점에서 죽음에 대해 묻지 않고서 죽음에 접근했을 것이다. 죽음은 신비로 이끌지 않듯이 더 이상 부조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은 의미 바깥일 것이다. 65p 삶은 나를 힘들게 하고늙음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죽음은 나를 쉬게 한다늙음은 삶과 죽음 사이의 이행과정이나 완충으로서 정당한 자리를 부여받는다. 죽음이 문제로서 초점화되도록 두면 이 문제는 끝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죽음에 대해 논의하지 않으면 죽음은 사물들의 운행에 서서히 흡수되고 고요하게 이해된다. 원체 죽음은 고요하다. 67p

 

5장 이행과정 또는 횡단 - 늙음은 항상 이미 시작되었다.

 

주체의 변화가 아니라, 상황에 내재한 전개과정으로서 그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경향에 따라 이행되는 것을 그리스의 아이티아구도에 따라 인과성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대립하며 보완하는 음양의 효로 조합되고, 이 효들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도래할 진화 과정을 양극성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81p 의 개념은 그 자체로 의 개념과 쌍을 이룬다. ‘은 우선 음악에서 반음의 변화이고 주역의 운영에서 음효에서 양효로, 또 양효에서 음효로의 대체로서 사물들의 -의 거대한 운행, 더 넓은 수준에서 하늘과 땅의 양극성에서 비롯하고 실재 전체의 틀을 잡는모습 그대로의 운행을 뜻한다. 83p

 

6장 반전의 모습

 

변화는 언어에 대한 우리의 사용법 자체와 관계가 있는바, 훨씬 더 은밀하고 숨겨진 방식으로 고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립하는 규정들을 각각의 정의에 가둬 두고 각각의 본질에 굳어지게 하면서 서로 격리시키기 때문이다. ‘젊음늙음’, 또는 약함’, 또는 죽음을 떼어 놓고 보며, 고정된 규정들에 불과한 것 아래에서 한 규정이 다른 규정으로 이행하는 것은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게 된다. 103p

 

7장 삶의 유동성(또는 어떤 것이 이미 다른 것이 되어 있는가?)

 

그리스인들 이래로 우리는 개념상의 분류 및 분리를 통해 정당화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시간의 용어로 포장했고, 시간을 우리 삶에 대해 지배권을 가진 수수께끼 같은 원인으로 세웠다. 시간은 사유되지 않은 것을 이름 붙여 구별하기 위해 우리가 발명해 낸 허구의 드라마 배역이 아닐까? 105p

 

(1)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자연을 운동하는 물체의 관점에서 논의 함으로써 동체 A의 동체 B로 이동, (2) 그리스 형이상학은 시간을 영원성과 대립시키는데, 여기서 시간은 이제 분할 가능하고 연속된 크기가 아니고 끝없는 계기와 변질이 결합된 측면의 시간이다.(3) 유럽언어들은 동사 변형이 있다.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형태론을 분리하며, 따라서 우선 시간을 어떤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의 이행으로 생각한다. 107-108p

 

8장 시간들을 발명해야만 했는가?

 

사건은 동화 불가능한 것을 내포하거나 외부를 가리킨다. 여기서 동화 불가능한 것과 외부는 단지 인과에 의한 모든 설명을 초월하고 해석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사건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대로 사건은 숙성보다는 급격한 돌출의 사태인가? 또는 어떤 점에서 사건은 귀결보다 마주침으로 생각되어야 하는가? 즉 이 마주침이 가정하는 바깥, 나아가 통합 불가능과 더불어 마주침으로 생각되어야 하는가? 121-122p 사건은 유럽에게 그토록 소중한 단절의 이데올로기를 가장 잘 뒷받침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철학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126p 중국 사유는 매 순간 작동하는 이행과정의 현상에 천착함으로써 사건의 마력을 해소하는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중국은 서사시도 또 극화로서 구성된 극작품도 짓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고대 중국은 한결같이 때에 맞는 적응을 위해 사건의 예외성을 희생시켰다. 131p

 

미디어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된다. 왜냐하면 사건은 고유의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건은 고전 존재론을 벗어난다. 사건은 선별되고 처리되며 자기 주위에 말과 구경거리를 엉겨붙게 하는 방식에 따라 견고함과 성과를 갖는다. 뉴스는 일상의 기도가 아니라 조직된 구경거리를 의례화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명백하다. 사건-오락이라고 말해야 할까? 사건-오락의 신뢰성은 우선 그 분량에 기인하고 순환주기에 따라, 놀라게하고-열중하게 하고-분노하게 하고-기분을 전환시키고-다시 잠잠해진다. 사건은 사건 놀이를 한다. 왜냐하면 사건은 소비되기 때문이다. 133-136p

 

9장 사건의 신화

 

10장 부족한 개념: 역사, 전략, 정치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그린비



볕뉘.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하지만  고요한 변화가 십여년 먼저 출간되었다. 탈봉인, 재귀성의 관점에서 잘 된 책이다. 한병철처럼 다작하는 듯싶다. 아포리즘과 책의 중간. 괜찮은 컨셉이라고 여긴다. 번역이 많이 되면 좋겠단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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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협동조합은 자본은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노동은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협동조합이 무엇을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가 라루브 설립자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16p

 

모든 나라의 협동조합인들의 힘을 모아 상호부조와 사회 평화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를 통하여 모든 관대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믿고 있는 이상인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1889) 이렇게 오래전부터 ICA설립자들은 목표를 설정했다. 20p

 

무엇을 어떻게 협동해야 할지, 그 모든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가 있어야 한다. 설계도 없이 어찌 집을 지으랴! 하지만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도를 볼 수 있는 눈, 그래서 잘못 지을 때는 부수고 다시 짓고, 낡으면 수리하고, 고장나면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6p

 

남들이 다 외상으로 거래해도 그들은 꼭 현금으로 거래해서 재정 안전성을 도모했으며,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끌어내기 위해 조합과 많이 거래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잉여는 배당하지 않고 적립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한 사업과 교육에 쓰는 등 지금 우리가 적용하는 협동조합 7원칙의 대부분이 그들의 운영 방식과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36p

 

모든 권력은 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ICA 안내서에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65p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임금노동자인 실무자들이 핵심 운영 주체가 되어, 조합원이 통제하는 정책 파트는 사라지고 사업 파트만 남게 된다.(수직적 균열 상태), 다른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작동하는데 기층 조합원 단위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리더들과 일반 조합원들 간의 균열이 생긴다(수평적 균열 상태) 그러니 오너십 리스크는 결국 결사체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업체로만 남게 되거나 개방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상실한 소수의 음모적인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37p

 

노동의 협동이 필요한가? 앞서 본 라루브의 사례에서 라루브의 민주주의의 99%는 일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합원 노동의 협동은 단순히 실무를 나누어서 한다거나 노동 비용을 줄인다는 제한적인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협동2원칙과 3원칙을 실현하여 주인 노릇하는 조합원들의 협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사고해야 할 것이다. 149p

 

생명이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리려고 새가 노래한다’, ‘나비가 춤춘다고 하지만, 나비는 꿀을 찾아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추는 것처럼 인생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박경리 157p

 

협동조합을 조합원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면서도 사회와 세상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섬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다 떠나서,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65p


'2시간45분'

들리지 않아
듣지도 못해
보이기만 하려는 현대인들은
모여도
모여있지 않고
있어도
있지 못해.
모임도 협동도
산으로 간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조합원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정념과 이해관계.
쉽게 여기서 나온다를 인정하라.
힘을 만들지 말고
이걸 지으라고
수직과 수평의 균열°
그 사이사이
노동의 협동°°이란
주인을 만드는 카드.
점을 그물씨앗으로 엮는 한 수.
한 달에 한 번.
총회말고 이거.
분기에 한 번도.
한 명말고 여러 명도.
뭐든지 해보자.고 싹이라도 나.
자유롭고
행복하려는 나-너.
나비처럼 춤추고 싶다고
아니 일한다.
정작 나비는.
어때 이렇게만 해보자
모임도 조합도 춤출 수 있다는데
ㆍㆍ
<마치며>가 백미.
김신양 , 《협동조합의 돈과 민주주의*》한티재
ㆍㆍㆍ
* 동전의 양면; 이분법은 이제 그만. 너가 문제야.
이론과 실천이 아니라 <이론-실천>이라는. 따로가 아니지.


왜 협동조합은 자본은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노동은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협동조합이 무엇을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에 대해 그동안 아주 구체적으로 설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가 라루브 설립자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 P16p

모든 나라의 협동조합인들의 힘을 모아 상호부조와 사회 평화의 사상을 전파하고, 이를 통하여 모든 관대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믿고 있는 이상인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1889) 이렇게 오래전부터 ICA설립자들은 목표를 설정했다. - P20p

무엇을 어떻게 협동해야 할지, 그 모든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가 있어야 한다. 설계도 없이 어찌 집을 지으랴! 하지만 설계도가 있다고 해서 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도를 볼 수 있는 눈, 그래서 잘못 지을 때는 부수고 다시 짓고, 낡으면 수리하고, 고장나면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P26p

남들이 다 외상으로 거래해도 그들은 꼭 현금으로 거래해서 재정 안전성을 도모했으며, 조합원들의 충성도를 끌어내기 위해 조합과 많이 거래한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으며, 잉여는 배당하지 않고 적립하여 공동의 목적을 위한 사업과 교육에 쓰는 등 지금 우리가 적용하는 협동조합 7원칙의 대부분이 그들의 운영 방식과 원천에서 비롯되었다. - P36p

모든 권력은 조합원으로부터 나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ICA 안내서에는 "모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한다. - P65p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임금노동자인 실무자들이 핵심 운영 주체가 되어, 조합원이 통제하는 정책 파트는 사라지고 사업 파트만 남게 된다.(수직적 균열 상태), 다른 한편으로는 집행책임자와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작동하는데 기층 조합원 단위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리더들과 일반 조합원들 간의 균열이 생긴다(수평적 균열 상태) 그러니 오너십 리스크는 결국 결사체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업체로만 남게 되거나 개방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상실한 소수의 음모적인 조직으로 전락하는 경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P 137p

왜 ‘노동의 협동’이 필요한가? 앞서 본 라루브의 사례에서 "라루브의 민주주의의 99%는 일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합원 노동의 협동은 단순히 실무를 나누어서 한다거나 노동 비용을 줄인다는 제한적인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협동’은 2원칙과 3원칙을 실현하여 주인 노릇하는 조합원들의 협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사고해야 할 것이다. - P 149p

생명이 산다는 건 참 어렵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리려고 ‘새가 노래한다’, ‘나비가 춤춘다’고 하지만, 나비는 꿀을 찾아 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춤추는 것처럼 인생을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박경리 - P157p

협동조합을 조합원이 주인 노릇하는 민주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일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개인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하면서도 사회와 세상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섬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다 떠나서,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비빌 언덕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P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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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쁘게 움직인 하루다. 지진 피해 관련 서류를 내고난 점심짬을 이용해 미니벨로를 탄다. 퇴근,  에돌아 조박저수지로 향하고 효자역 관통육교를 지나칠 무렵 전시장에 다가오는데, 타이어 쿠션이 예사롭지 않다. 왠일이람, 내려서 공기압을 확인해보니 괜찮은 듯 싶은데, 곧이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불쾌하다. 어라. 또 펑크라니... ...책을 넣은 에코백 무게가 문제인 듯하다.  앞으로 옮겨 제법 긴 거리를 끌고 가니 <경인바이크>가 늦은 시각인데도 반겨주신다. 



-1


작업실에 차용하고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챙겨놓은 모습이 성격을 가늠하게 한다. 불편하신 몸인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응대하고 수리를 해주신다. 그의 동선에 알맞은 공간 배치다. 타이어 두께가 너무 얇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된다. 랜턴을 밝혀 사이즈를 확인해주고 또 다른 사양들의 타이어를 추천해주신다.  감사드려요. 6천원. 


0


제법 라이딩을 하였더니 배가 고프다. 이러다간 저녁 때를 놓칠 수도 있겠다. 잠시 보아둔 부추-계란요리를 시도한다. 스크램블처럼 휘휘 젓다가 부추투입 양조간장을 심심하게 간을 한다. 된장국에 강황밥을 지어, 간빠레오또상 사케 한잔에 늦은 저녁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를 오물거려본다. 잘했어. 잘했다. 


1


인강 불교강좌를 듣고 있다는데,   60대중반의 기업임원을 한 꼰대형 남성이 제일 많이 변한 걸 본단다. 108배를 꼬박꼬박하고 앎에서 태도변화까지 확연하다고 한다. 중년남성이 가장 변하기 힘든데, 정말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누리고 가진 것들이 많았는데 굳이 그걸 되살펴보는 이가 확률로도 드물다고 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사람들은 '수동적인 지복'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러 번의 기회를 대부분 놓친다. 그는 꾸준히 변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스피노자는 덧셈의 철학자이다. 삶의 철저한 덧셈의 지향하는 것으로 읽었다.









 

어떤 이는 심문하는 언어인 능동/수동의 언어를 가장 많이 피해간 저작이라고 한다. 표현의 과정이나 관계에 그만큼 충실하다는 것일까. 









이렇게 꼬리를 물다보니 사과나무가 생각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 ...아 그러고 보니 네번째 사과를 말한 아나키스트 원조도 있었군.  변할 수 있을까, 변화의 수레바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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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전 상가부터 너무 달렸나보다. 일요일 대구 인사가는 유니와 같이 내려와 작업실인근을 미니벨로로 다니기 시작하고, 이튿날 차를두고 로씨난데로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나서야 몸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저녁 두부와 저렴한 팽이버섯과 부추, 대파, 김치를 사서 보관 겸 마파두부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세탁기를 돌린다. 끓는 물로 햇반을 데우고, 양념장을 만들고, 감바레 오또상 정종 한잔을 보탠다. 역시 일인상은 어렵다. 실패했다는 말, 음식을 남기지 않게 다 들었다는 말은 못하겠다. 다시 일인 요리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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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등기를 보내고, 형제자전거;  로씨난데 1의 펑크를 수리한 곳이기도 한데 틀어진 휠과 기어의 유격을 손 봐줄만 한 곳이라 여기 다시들렀다.  수리점 앞에 지인 할베들이 서너 분이 모여 잡담중이다. 이 사람 뭐 실력있는겨? 야매 아니뎌. 농 사이라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조이고, 고무망치로 치고, 거꾸로 돌려 치고 틀고 하더니 돈도 받지 않을 요량으로 타보라고 한다.  급급 기어변속. 어 매끄러운데,   틱하며 벨트가 주저 앉는다.  아 다시 풀고 조이고 거꾸로 놓고 작업을 하더니, 바퀴 축이 틀어진 걸 발견하신거다. 육각렌치를 끼우고 지렛대처럼 몇 번 축을 흔든다.   그리고 나서 조심하지 말고 타라한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걸, 이만원을 건네니 만원만 받겠다고 한다. 선물처럼 주고 싶은 듯, 베푸는 마음이 보였다. 이 정도라구 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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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사장님과 양자역학 이야기(데이비드 봄 다큐)와 켄로치 최근 영화, 철학과 연계성, 현대인의 듣는 귀와 보여주려고만 하는 습속들의 한계 등등을 나눈다. 그러다가 오늘은 줄운동 미션의 날이라 로씨난데 2를 타고 봄빛이 도는 봄길을 다닌다. 매화가 핀 데가 있을 텐데 하니, 정말 화사하게 핀 몇 그루를 발견하는 맛이 짭잘하다. 며칠 전에 꼽아 둔 전시실의 홍매화와 청매화도 방긋방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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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동안 여기 상태로 지낸 것은 아닌가 싶어. 조금 차분해져 가기로 해. 몸도 마음도 말야. 의미와 논리, 차이와 반복.....우리는 동일한 것을 기억조차 할 수 없다. 의식이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과 강제를 겪는 과정이다. 사건이 생기고 나서야 인식되는 것이다. 행위의 99%는 특이하다. 그 특이함을 인식하는 것은 폭력과 강제를 겪기 때문이다. 세상이 삶이 그러한데도 우리는 습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안주하려 한다. 이를 '수동적 지복'이라고 한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가 분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식하는 순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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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를 놓쳤는데, 하이데거가 이런 인식을 과정을 선물이라고 여겼는데, 아니 여겨야 한다고 하자 들뢰즈는 부득불 말한다. 기호라고....그래야 한다고....


차오르고 그저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아느냐고,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타자의 나르시시즘을 안 첫 타자가 니체다. 니체가 가진 부는 형제자전거 사장이 갖는 순간적인 마음하고 비슷할 것이다. 차고 넘치고 뿌듯해하는 순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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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이렇듯 넘치고 있다. 아니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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