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품기) 분권에 대한 잡생각

서울공화국, 집중... 하지만 서울로 향하는 마음은 끝이 없다.  끊임없는 식욕과 성장욕의 공룡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에 그저 놀랄 뿐이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  별똥별로 종말을 맞이한 공룡들처럼 수도권 집중의 결과가 과연 장기적 성장이나 지속적?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관련법의 제정이나 제도적인 밑받침이 더욱 더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의 분위기가 더욱 문제가 아닌가 하여  거슬러 올라본다. 지방의 일터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을 보면 서울 회귀본능이 대단하다. 몸으로 겪은 연유인가 없는 것이 없어서 일까? 마음의 좌불안석이나 여유나 공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은가? 지방에 하루만 있어도 불안하다. 중독 증상 하나다. 두번째 문화적 혜택이 문제인 것 같다. 없는 것이 없다.  지방에서 어떻게 살아요. 답답하기 그지없잖아요. 서울 생활비면 비교적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는 그렇더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하방하거나 유배당하는 것 같아 자신을 견딜 수 없다. 그저 거쳐가는 곳으로 자리매김한다. 서울 무의식론자들의 일상은 한가로운 곳에 단 하루도 베겨나지 못한다. 빠른 발걸음, 지칠줄 모르는 가속, 끊임없는 가학적 채근

우리의 지방도시는 제2의 서울만들기에 급급한 것 같다. 제2의 공룡만들기로 논리를 만들어내고, 또 다시 주변의 군,면을 통합해 승격을 노린다. 똑같은 향토음식잔치, 똑 같은 기획의도를 가져 지방색은 더 더욱 없어 보인다.  판소리의 고장이 정말 판소리를 즐기고 문화를 향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와서 살 수 있도록 전통과 배려는 더욱 더 없다.

우리의 서울무의식은 무의식중에 재생산하고 있다.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내야 하구.  돈벌려구 서울가구...끊임없는 상향 엘리트화는 무서울 정도이다.

인재도 재원도, 권한도 삼무의 시대는 제도적인 것을 더욱 더 필요로 한다. 하지만 서울무의식 문화를 깰 수 있는 일상적 노력없이는 그저 또 다른 서울공화국을 자신의 마을에 이식하는 결과를 빚고 말 것이다.(초고 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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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몇가지 건짐 - 월사모 번개모임

도서관엔 책이 없다. 대학교 도서관은 개방을 하지 않는다. 현실이다. 대학은 시민들과 담을 헐어 낮춰지기는 고사하고,  주차 거수기로  가로막고 돈까지 내도록 한다. 책을 빌리려면 평생회원권 백만원을 내라... ...국립대의 현실이다. 상아탑이 자신의 성만 높이는 것은 아닌가?

김경*-우문*부부의 돌연한 *푸른치과 등장으로 이루어진 급속 모임으로 화두는 현정세와 열린**당 진로, 조*구네 식구들,  신상*대표,  명*형, 유신, 늦게 합류한 규웅형의 등장으로 오랫만에 묶은 회포를 푼다. 외*형의 최근 진로(컨설팅)나 유*의 두툼히 오른 살에 대한 규웅형의 핀잔이나, 간만에 듣는 멘트들로 귀가 충만해진다.  지인들의 정치진출이 정치인과 친한 명*형에게 올바른 판단이냐는 답을 요구하는  화살을 날리는 조구라님, 총선 뒤 대열 정비가 많지도 않은 일꾼들사이에 금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반. 정치라는 생물을 생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당, 자신의 이념잣대만 선거때만 들이대는 행위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유난히 많다.

개인적으로 계획세우지 말고 빨리 사교육계로 진출하라는 쓴소리, 오디오북 사업을 하시는 분께 어린이 한시?도 같이 실었으면 좋겠다고...오디오북이 무어냐는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고.  어린이 한시 암송을 권장하고 이를 곧 5학년이 될 해*이에게 큰아빠로서 숙제도 내준다. (술김에 같이 외우자고 했는데...ㅎㅎ 아무래도 잘못한 것 같다.) 오늘 인터넷을 뒤져보았는데 그런 책은 없다. 이를 어째? 다음 모임에 아들의 낭송을 들어봐야 할텐데... ...

중간중간 개인적 소망인 주민회를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와 내심 기뿌다.

다른 모임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것들이 논의된다. 참 이상타.

(해윤,해찬의 서빙이 유난히 돋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절주에 성공하지 못했다.)

 

 탐라국똥돼지- 노가네5, 조가네3, 신2,김 18:00-20:30

우여사네 돌연급한 일로 서울행. 강산이네도 서울에 유함.

천지개벽 신,신,한,조,김,노 20:3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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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_님의 "아침형...인간??"

일종의 처세서, 또 다른 유행이라 여기죠.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 그런 생활을 했군요. 불침번 대신 서주고..ㅎㅎ 밤을 유용하게 보냈죠. 서울 생활 2년했는데, 새벽 일찍 일어났지요. ㅎㅎ 하지만, 몸만 축납디다. 처세, 경영서들이 유행을 몰면서 참~ 혀가 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죠. 아마 모르긴 몰라도...차세대 처세서 "집중형 인간"이 나올겝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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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inority님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최근 러셀의 역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 1997, 사회평론 을 읽었는데, 러셀을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특히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대한 생각거리를 많이 주더군요. 좋은 읽을 거리 있으면 추천부탁드려요. 여울마당. 글보고 흔적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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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품기) 정치와 진리, 책세상문고, 한나아렌트

정치라는 말에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물리지요?  이 단어를 쓰면 저 자신도 물립니다. 현 시류와 겹쳐져 기분도 별반 좋지 않군요.  정치하면 흔히들 떠올리시겠지만 저도 마키아벨리를 떠올립니다. 군대 근무중 불침번을 서면서 진중문고판을 읽고 무슨 이야기인지? 서양사에 무지한 나로서 이해하기도 곤란하였답니다. 그 무지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르네상스시대 마키아벨리 궤적을 읽으며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정치를 도덕이나 진리의 수준에서 끌어내거나 독립적인 사고나 논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역시 고수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힘의 급변관계 속에 살아남고자 하는 치열한 흔적들이 보였던 때문일까요.? 진리와 이상과 다른 수준에서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명제는 오래 남아 있습니다.

셋만 모이면 정치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둘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합리적 같이 살아나가기 위해 합의이겠지요. 여기에 권력의 맛이 비벼져 일방으로 흐른다면 너무 살맛나지 않겠지요. 이것을  일터에 가져와 봅니다. 3명이상 사는 곳이니 힘의 관계가 작용하고, 일반적인 문화 정서보다는 힘을 쫓는 무리들이 있겠지요. 그리고 주요한 결정이 내려주는 과정에, 아니면 일상의 문화 원칙보다도 힘에 기웃거리는 부류들이 있게 마련이겠지요. 이 권력의 냄새들에 밝은 자들은 일상 업무, 정서와 달리 정치적 결정들은 달리 이루어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능적으로란 표현이 맞겠군요. 힘이 분산되어 있지 않고 집중되어 있고 일상의 문화로부터 뿌리내린 상향은 보기 드무니, 그 사이 틈새가 있는 것이지요.

그 와류일까요? 처세책인 마키아벨리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경영처세책도 나오더군요. 냉정히 토요일 퇴근길에 용감히 후배에게 일감을 떠넘기라고 합니다. 처세를 단순히하면 일도 매끄럽고,,,어쩌면 이 자본주의 시대 효율성과 이윤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적절한 방법이라는 서글픈 생각이라고 여겨지더군요.

이런면에서 이 책은 모두에서 이런 마키아벨리는 시대상황이 만들어 내었지, 다시 태어났다면 다른 논리를 내었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정치와 진리는 소속 과가 다른 것이지만, 전체주의와 획일화에 맞선 원저자 한나 아렌트의 잣대로 보면 그나마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끊임없는 공적인 영역에서 의사결정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예제 사회의 사적영역의 역할을 담당한 그리스-로마시대의 정치가 오히려 공적영역이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과,  경제란 사적영역이 공적영역을 침범한 현재는 불가사리처럼 제 몸을 부풀리기에 혈안되어 있는 자본주의 그늘때문에 다양성(복수성)도  공적영역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목이 메여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접근이 또 다른 철학체계로 접근하면 달리 해석되겠지만, 일단 그 논리를 부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옳든 그르는, 신념이든 그렇지 않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아니면 자신의 진리를 관철하는 것과 정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지요. '지구는 둥글다'라는 진리는 알면 끝나는 것이지? '부안 핵 폐기장'관련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전문가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는 관련된 다양한 그룹의 존재를 인정한 후, 그것을 전제로 의사결정이 행해지는 과정이 정치라 합니다.  끊임없는 과정으로서, 문화로서 정치를 이야기 한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중원을 우리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점령하고 우리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배치하는 것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평생 야인을 지향하는, 권력의 손에 놓일 수 있으나, 끊임없는 아래로부터 공적영역에 참여케하고 즐기고, 끊임없는 변화를 놓치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일에 더욱 공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정보혁명을 통해 예전처럼 많이 알고 있음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음이 더 이상 권력과 자신의 힘과 연계성이 많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학연-지연-혈연이 그 빛을 바래고 있는 이유도 이런 것에 있겠지요. 클린턴의 참모 딕모리스도 "신군주론"에서 원칙과 지향이 지름길임을, 늦게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임을 정치가들에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정보로 인한, 재산, 돈으로 인한 아래위 간격이 많이 좁혀지고,  그리스-로마시대 시민처럼 공적영역에 적극 참여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그 간격이 우리의 힘으로 좁혀지길 기대해봅니다.(초고 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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