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독서회‘

100년 전쯤 회독* 모임이 유행이었는데, 가장 많이 읽힌 교재가 일본인이 쓴 《사회주의 대의》와 《자본주의 기교》라 한다.

대의와 기교.
기교와 대의.

그 사이, 틈을 살아내는 것이 우리이진 않을까.

* 강성호, 《불온한 책 읽기의 문화사》, 오윌의 봄

발.

이분의 가설**에서 벗어난 모두를 위한 전환의 경제가 되었으면 싶다.

삶도 공황과 같은 것이라 오르내린다. 비극으로 지나갔다면 언젠가 희극으로 다시 오겠지 싶다. 삶을 읽어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가올 삶들은 이런 흐름에서야 겨우 읽힐 것이지 싶다.

** 《모두를 위한 경제》,학고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동 평전 2

4. 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프루동은 혁명의 정치 원리가 사회 원리와 다르다고 자신의 책에서 얘기했고, 1848년 초기에 불기 시작한 폭풍을 토크빌만큼 잘 알아챘다. 241

<<사회문제의 해결>> <<민주주의>> ㄱ. 경제적 빈곤의 근원인 기본 모순들을 건드리지 않고 사회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것이 실수. ㄴ. 보통선거권을 신성시하는 것은 중요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소치라는 것 ˝결코 사회개혁은 정치개혁으로 실현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정치개혁이 사회개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ㄷ. 사회개혁을 위한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제안들 <<과세와 대부, 정화, 지폐, 가격통제, 징세, 파산, 농지법, 빈민법, 국립 작업장, 조합, 주식이나 국가 개입이 없는, 상업과 산업을 방해하지 않는, 소유를 공격하지 않는 사회문제의 해결, 신용대부와 유통의 조직>> 노동자 이름으로 요청하는 것은 교화에서의 공정성과 호혜성, 신용대부의 조직화이다. 251, 252 고리대금에 종속되지 않게 노동자들의 실제 생산품이 통화로 사용되고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의 생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교환권, 생산성을 기준으로 각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교환권의 사용으로 실현될 수 있다. 253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을 물신화한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미루어지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258 그 시대의 사람들 중에서 사회악을 없앨 최고의 치료제라는 보통선거권의 환상의 위험성을 즉시 파악했다는 것이 프루동의 명예이다. 259

모든 새로운 이념은 세례를 받는다. 잘못 이해되고 성급하기에 맨 먼저 이념을 퍼뜨리는 사람은 지나친 철학적 독립성 때문에 그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다. 266

총소득을 없애서 소유를 점유로 환원시키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낡은 사회의 폐지가 정파의 열정과 선악의 신념에 따라 폭력이나 평화로 결판날 것이라고 말했다. 의회가 그 첫 단계로서 소득에 세금을 매기자는 자신의 제안에 동의해서 평화로운 이행을 이루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가진 자들은 스스로 혁명적인 사업에 기부해야 하고, 만일 거절한다면 그 결과를 책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273

프루동은 역사를 네 단계로 나눴다. 기독교 혁명은 신 앞에서 인간의 평등을 선포했다. 르네상스는 이성 앞에서 평등을 선포했다. 계몽의 시대는 법 앞에서의 평등을 선포했다. 19세기의 네 번째 혁명은 일할 권리에 바탕을 뒀으며, 그 모토는 재산 앞에서의 평등이고 그 목적은 박애였다. ˝오늘날 노동은 자본의 통제 하에 있다. 혁명은 그 질서를 바꾸라고 말한다. 자본은 노동의 우위를 인정하고, 생산도구는 노동자의 처분에 맡겨야 한다.˝ 281

인민은행은 노동자들의 조합을 장려할 목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총연합˝으로 알려진 자회사와 제휴할 예정이었다. 287


5. 감옥에 갇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혁명의 원리는 해방이다. ㄱ. 보통선거권을 조직화하고 사회 기능의 집중을 독립적으로 만들며 헌법을 지속적이고 영구적으로 개정함으로써 정치적인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 ㄴ. 신용대부와 판매를 상호 보증함으로써 산업에 대한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인간이 권력을 축적해서 다른 인간을 더 이상 지배하지 않는 것이자 인간이 자본을 축적해서 다른 인간을 더 이상 착취하지 않는 것이다.308

아이러니의 정신: 아이러니, 참된 해방! 권력에 대한 야심에서, 정파에 대한 종속에서, 판에 박힌 일상에 대한 존중에서, 학문의 현학성에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존경에서, 정치의 신비화에서, 개혁가에 대한 맹신에서, 이 위대한 우주에 대한 미신에서, 자아도취에서 나를 해방시킨 것은 바로 아이러니이다. 309

<<19세기 혁명의 일반 이념>> 이 책에서 미슐레의 가장 소중한 희망을, 즉 인간의 궁극적인 자유, 영원히 재조직되는 대중의 주도권, 농민에게 보장되는 토지 ㅅ유를, 분할과 합병, 임대, 소작, 저당, 남용 때문에 처음부터 분명치 않았고 이제 확실히 반공화주의적이고 부도덕해진 제도를 만들었던 모든 원인들이 제거된 토지 소유를 실현하려는 시도를 보게 되리라고 감히 믿습니다. 330

혁명은 침울하게 정해진 운명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지자들의 핏물 사이로, 친구들이 뿌린 꽃을 밟으며, 적의 시체를 밟으며....혁명이 통역사들은 정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봉건제의 부괴가 요청했던 경제구조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옛날 왕의 지배을 흉내 낸 정부 지배와 봉건제, 군부 지배의 자리에 새로운 산업구조가 세워져야만 한다. 이렇게 절실한 혁명을 낳을 수 있는 수단은 조합이다. 331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 노동자들의 조합은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못하고 남겨 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332 계약이라는 개념은 정부라는 개념을 배제한다. 계약하는 당사자들 사이에는 반드시 각 개인들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있다. 한 인간은 자신의 자유와 재산을 동시에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협상한다. 반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는, 제 아무리 정부의 대의나 위임 체계를 만든다 해도 반드시 시민의 자유와 재산의 일부를 빼돌린다. 332 법은 더 이상 다수결이나 심지어 만장일치로도 결정되지 않는다. 각 시민과 각 마을, 각 산업 연맹은 자신의 법을 만들 것이다. 정치권력의 자리에 우리는 산업조합을 놓을 것이다 경찰의 자리에 이해관계의 일치를 놓을 것이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라는 자리에 우리는 경제적인 집중화를 배치할 것이다. 법정은 중재재판으로, 국가 관료제는 분권화된 직접 관리로 대체될 것이다. 노동자의 조합들이 대규모 산업이나 운송을 관리할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교육을 통제할 것이고 도제 교육과 분리될 수 없는 교육, 직업 교육과 분리될 수 없는 학문교육이라는 통합 교육이 전통적인 연구를 대체할 것이다. 333


6. 정의의 협객이 되다.

프루동은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보편 운동의 긍정을, 그 결과 모든 변하지 않는 형식과 공식을 부정하고, 영원이나 영속성, 완전무결함에 관한 교리를 부정하며, 우주의 질서를 포함해 모든 영원한 질서를 부정하고, 변하지 않는 영적이거나 초월적인 모든 주체와 객체를 부정한다....인간에게도 최종적인 결말이란 없다. 규칙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진보는 계속된다...프루동에게 진보는 연방주의, 인민의 직접 통치와 같은 의미였으며 진보라는 개념이 사회관계에서 ˝헌법과 교리문답˝을 대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367

<<증권 거래 교본>>

우리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믿고, 그 변화가 자유와 개인이 평등, 인민의 연방을 향한다는 점을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폭력이나 강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웒지 않는다. ..조건이 불평등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 정부가 착취당하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계급에 맞서, 착취하고 소유한 계급을 보호하는 체제로 변질되었다. 369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
정의를 그렇게 중요하게 만들고 인간 존재와 사회구조, 인간과 사회가 움직이는 세곙 관한 역동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은 정의라는 이념의 균형안에서의 동요와 끊임엇는 운동, 불규칙한 변화이다. 392 프루동은 이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도 받아들였다....신을 무자빈 적이라 부르고 신과 인간의 증오 때문에 기독교가 존재한다고 선언했던 키르케고르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393

집단적인 존잴ㄹ 구성할 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인간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에게서도 자신의 존엄을 느낀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자기 자신보다 우월한 도덕원리를 담고 있다. 도덕 원리는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고 내재되어 있다...정의는 사랑처럼, 미와 유용성, 진리, 모든 권력과 능력처럼 인간 속에 존재 한다...인간 의식의 발저이나 인간 경험의 발견과 관계가 없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공식을 전제하는 초월적인 정의론은 권위를 좌우명으로 삼는 신권에 의지해 국가 행정부와 도덕적인 통제, 사상의 구속, 인류애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라는 체계만을 낳는다. 395 오직 하나의 상수만을 따르고 더 이상 변수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운동은 획일적이고 직선적으로 될 것이다. 396

너 자신을 존중하라를 규칙으로 삼는 개인의 존엄이라는 원리가 생긴다. 일단 이 원칙이 확립되면, 이치에 맞는 결론ㅇ은 우리가 자기 자신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사랑과 구별되는 정의의 본질이다...모든 사람의 이성이 동일하다는 점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이끄는 존중감에서, 정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397

프루동은 지금처럼 순전히 영토나 정치적인 고려보다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인민이 건설하는 행정 구조를 구상했다. 이 행정은 지배하거나 중앙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를 서로 협동하도록 배치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혁명은 출신이나 인종을 인정하지 않는다....한 곳에서 혁명을 실현하면 세계가 뒤따를 것이다. 그 경제 제도의 힘과 신용대부라는 선물, 사상의 탁월함은 전 세계를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399.모든 실용적인 도덕과 마찬가지로 교육은 개인의 양심에 행동 기준을 두는 원리를 따라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 내적 자아를 빼앗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끊으며 죽음 앞에 이른 인간의 사기를 꺾고 정의의 토대인 인간의 상호존중을 파괴한다..인간 생활이 다음의 조건들을 만족시킬 때 그 삶은 충만해진다..ㄱ. 사랑, 부성, 가족 ㄴ. 노동 또는 산업생산 ㄷ. 사회적인 참여 또는 정의, 즉 집단생활과 인류애의 발전에 참여하는 것. 400

프루동이 보기에 근대사회를 재앙에 빠뜨리는 측면 중 하나는 이념과 노동의 분리이다. 철학과 학문들은 인간의 노동 생활에서 나왔고 이념은 행동에서 생겨났기에, 이 둘은 분리되면 안 된다. 따라서 철학과 학문은 산업과 재통합되어야 한다. 실천적 수단으로 경작자에게 땅을, 장인에게 기술을, 자본을 이용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본은, 생산자에게 생산품을, 이익에 기여한 사람들, 즉 사회 전체에게 집단적인 권력의 이득을 줘서 평등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전문화된 도제살이보다 제자에게 인간 산업의 보편 원리를 전수하는 공예식 도제살이가, 청년 노동자가 모든 공정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러다 마침내 동료로 참여하는 것을 인정받는 작업장 조직이 필요하다. 401

우리의 마음에서 절대자를 몰아내면, 모든 이념을 고정되고 획일화된 하나의 개념에 끼워 맞추는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사회의 활기와 역동성만이 아니라 균형과 암묵적인 평화를 이뤄서, 이념과 능력의 적대적인 반응이나 상호적인 반응을 수용하는 사유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사회 내에 합의와 조화를 지속시킬 수 있고, 동시에 영원한 투쟁 상태에 있는 사회 에너지를 유지시켜서 모든 종류의 독재를 피할 수 있다. 402

자유의지나 필연성 모두가 절대명사로 존재하기 때문에, 현실의 논쟁은 언제나 잘못 이해되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인간 사회를 설명할 수 없고, 해방과 필연성 모두가 자기 역할을 최대한 수행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때 진실된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해방의 계열과 필연성의 계열은 평행선을 그리며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은 그 내부에 모든 자연적인 자발성을 담고 있는 인위적인 결합에 자신의 해방을 빚지고 있다. 즉 사회구성체의 자유는 그 모든 다양한 구성 요소의 조화로 나타난다. 404


7. 망명을 떠나다

<<전쟁과 평화>> 옛날에는 전쟁이 사회 진화의 한 요소로 기능했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전쟁이 그 원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되고 더욱더 그 기능을 남용하게 된다..프루동은 극도의 빈곤과 가난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만든다. 가난은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맞게 충분히 일을 함으로써 도달하는 이상적인 조건이고, 강자의 탐욕은 자신들의 부를 위해 극도의 빈곤을 낳았고, 이것은 국가가 무자비한 전쟁에 탐닉하면서도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지 않는 내부의 불균형이 가져올 결과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근대 시기에 전쟁은 경제 혼란을 낳는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이다. 441 프루동의 기본 입장은 전쟁이 하나의 사회 현상이기 때문에, 전쟁을 수동적으로 반대하는 전통적인 평화주의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능동적인 깨달음이 생겼다. 442

소유는 개인주의를 대변하고 국가는 개인의 해방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따라서 프루동은 인간이 국가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을 돕도록 소유개념을 조정하려 했다. 자유로운 신용대부와 조합으로 이루어진 상호주의 제도는 소유의 남용을 막을 것이다. 분권화와 연방 기구는 국가의 강제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것이다. 근본 원리가 없는 소유는 사악하다. 그러나 근본 원리가 통제하는 소유는 고삐 풀린 산업주의의 공격에 맞서는 사회의 지원군이 될 수 있다. 450

나는 소유를 이해할 수 있고 합리적이며 정당하게 만드는 고려 사항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 고려 사항 밖에서는 여전히 소유가 강탈이자 증오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소유는 여전히 내게 잘 맞지 않느 이기적인 무언가를 계속 지니고 있다. 증오와 힘의 남용을 거부하는 나의 평등주의적이고 통치에 반대하는 이성은 소유를 하나의 보호 장치로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소유를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심장은 결코 소유를 충실히 대할 수 없다. 451

이탈리아 통일: 마치니와 가리발디, 이탈리아 혁명가들 대다수는 드디어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듯한 자유를 포기하고 중앙집권화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 정책은 자살행위였다..일단 통일 이탈리아가 세워지면 반동 세력이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고, 해방의 진정한 문제인 사회 문제는 오랜 시간 뒤로 미뤄질 것이다 455


8. 고통스러운 노년을 보내다

자유로운 도시들의 연합: 통치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의 결론인 아나키로 1840년을 시작했다면, 나는 유럽 인민들의 권리이자 나중에 모든 국가조직의 필수적인 기반이 될 연방으로 끝을 맺으려 해...시민의 해방과 양심인 아나키, 모든 제한과 경찰, 권력, 판사, 군대 드이 없는 아나키에 직접 의존하는 공공질서는 최상의 사회 미덕과 비슷한 말이자 더 나아가 인간적인 정부의 전형이 될 거야. 466

내 정신의 본성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어. 유동성 그 자체, 하지만 언제나 균형으로 돌아가려 하지. 474
<<예술의 원리>> <<문학적 재산>> 아카데미의 비현실성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이자 예술가들에게 주변 생활의 풍부하고 영감을 주는 현실성을 꼭 회복하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되야 한다. 예술이 그 영감을 생활에서 끌어내어야 한다고 봤다면, 프루동은 반대로 예술이 생활을 빛나게도 한다고 봤다. 공업과 노동이 예술과 연관되면 고상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윌리엄 모리스나 근대의 공예 디자이너들보다 앞서 나갔다. 482 예술은 우리의 모든 사상과모든 성향, 모든 미덕과 악덕, 어리석음을 드러내어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한 뒤에, 존엄의 발전과 존재의 완성에 이바지하도록 이끄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482

1863 생산력을 가진 협도조합들이 제법 설립되었고, 저축은행이자 상호금융이라는 프루동주의 이론을 약간 변형시켜 이용하던 신용대부협회들이 협동조합과 함께 등장했다. 484 국제노동자협회: 보통선거권은 정치적인 면에서 우리를 성인으로 만들지만 우리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해방시키는 과제는 아직 우리의 몫이다. 부르주아지가 그토록 많은 활력과 끈기로 쟁취했던 해방은 프랑스라는 민주 국가에서 모든 시민에게 확대되어야 한다. 평등한 정치적 권리는 반드시 평등한 사회적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485

<60년대 선언> ㄱ. 사회주의 이념의 재각성 ㄴ. 노동자들이 대변되지 않는 이 상황이 변해야만 한다는 점 ㄷ. 당시 사회의 계급적인 성격에 관한 확인. 현존하는 정당과 정부 제도들이 유산계급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체계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는 무기력하게 될 것이다. 즉 노동자들은 좌절감에 빠진 보잘것없는 존재나 정치적인 권리를 파는 인간이 될 것이다. 프루동은 유일한 해결책이 사회 내의 이런 분할선에 따라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과거 로마의 인민들이 자신들을 귀족과 구분했듯이 당신 자신을 떼어내시오...이런 분리로 당신은 승리할 겁니다. 대표도 없고 후보도 없습니다. 488

<<노동계급의 정치적 능력>>

볕뉘.

가을 장마가 참 길다. 푸른 하늘 보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밑줄을 다시 옮겨적는다. 가까운 동반자였던 쿠르베 화가의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간단한 코멘트로 끝낸다는 것이 서로 편지글을 주고 받다가 <<예술의 원리>>라는 저작으로 이어졌다 한다. 이 글의 내용만으로 감을 잡기가 어렵다 싶다. 그의 저작 전쟁과 평화의 전쟁에 대한 관점으로 신선하고 적확하다. 지금 벌어지는 전쟁 역시 그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저작은 톨스토이의 소설로 이어지게 했다 한다.

또 다른 원점에서 사유를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동 평전 1


2.

프루동은 역설의 인간이고 그는 틀리지 않았다 104 이 성향은 프루동의 논쟁 기술에서 가장 고유한 특징을, 즉 자신의 추론을 분명하게 만들고 비판을 심화시키기 위해 역설과 모순, 이율배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을 예고한다. 105

프루동은 모세를 종교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사회 개혁의 아버지로 봤다. 계율의 의미를 ˝도둑질하지 마라˝가 아니라 ˝그대 스스로 무엇도 축적하지 마라˝라며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도덕법의 절대성에 관한 선언을, 그리고 ˝조건의 평등이 사회의 목적˝이라고 단언하는 주장을 덧붙였다. 결국 프로동은 ˝소유는 거짓 신들 중 마지막 신˝이라고 선언했다. 109

루소의 사회계약론: ˝인간의 관습을 권리의 근거로 삼고, 법을 의지의 표현으로, 달리 말해 정의와 도덕을 다수의 결정과 다수결의 지배에 굴복시킴으로써 루소는 자신이 벗어났다고 믿던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었고 자신이 고발했던 사회를 사면했다.˝ 110

프루동은 폭넓게 읽었고 친구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야들에 관해 자신에게 알려 주도록 기꺼이 친구들을 활용했다. 그래서 포티에는 프루동에게 중국철학을, 티소는 칸트를, 그륀과 바쿠닌은 헤겔을 전수했다. 111

성경 외에 프루동이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한 인물은, 1848년에 자신의 제자인 아마데 랑글루아에게 얘기했던 헤겔과 아담 스미스였다. 112 프루동은 스스로 검토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건강하고 독특한 지성을 증명했지만, 그런 시사점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은 그리 꼼꼼하지 않았다. 113

거인이여, 스스로 깨어나라: 평등의 열정을 기득권자들은 모른다. <<가진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 154 우리 모두 맹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를 감상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 맹아를 키울 토양을 가진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시인은 아니다. 160

‘안 좋은 명성‘이 ‘관용되는 무명‘의 처지보다 낫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 158

프루동은 칸트와 헤겔, 콩트같은 철학자들에 빠지거나 그들을 거부했다. 그들의 체게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한 뒤에 프루동은 남은 요소들을 수정해서 자신의 관점에 통합시킨 것 같다. 159



3.

리옹의 상호주의자들: 프루동이 비밀 혁명조직에 개입했던 유일한 시기. 이를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현상 밑에 은폐된 경제 현실에 대한 의식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제공하는 수단으로 이 모임을 생각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171

˝만일 정치혁명을 통해 혁명이 성공한다면 사회혁명은 심각하게 위태로워질 것이다. 일단 조직되어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행진하기 시작하면, 노동자들은 어렵지 않게 봉기할 것이지만 원칙을 세우고 모든 것에 개입해야 한다. 증오는 없다. 증오는 없다. 원칙에 따라 제거하자.˝ 가진 자들에게 요청해서 재산을 빼앗아 생산품을 교환하고 함께 노동하는 경제조합을 조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프루동은 갈등의 장을 거리나 의회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찾았다.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은..작업장에서의 전쟁으로 시작될 것이다.˝ 173 조합을 자유와 질서의 진정한 합(변증법의 합)

각각의 존재, 각각의 사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열이다. 인간의 신체에서 계열의 단위는 기관이고, 한 사회에서 계열의 단위는 개인이다. 계열을 탐구하는 것은 대상을 계열의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로 이해하고 구성원 모두를 포괄하는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수 요소인 질서의 원리를 찾는 것이다. 계열 법칙은 다양성 속의 ㅌㅇ일, 차이 속의 종합이라는 원리이다. 불멸의 계열은 해방의 계열이다. 개인의 해방, 노동의 해방, 양심의 해방, 탐구의 해방, 선거의 해방을 따라 작동한다. 모든 종류의 자유가 서로 의존한다. 사실 계열 법칙 자체가 해방의 법칙이다. 왜냐하면 계열 법칙은 통일의 원리와 차이의 원리가 공존한다는 점을 인간이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177

공산당 선언 전에 프루동은 역사를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선구자로 등장한다. 정치경제학이 ˝역사의 열쇠이자 질서의 이론, 창조주의 끝판 왕˝이고 사회 전체-노동과 정부, 교육과 가족관계 등-를 조직하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178 프루동이 경제의 기반이자 본질로 파악한 것은 사회조직이었다. 따라서 개인을 움직이는 동기와 사회변화가 따라야 하는 정의의 기준은 경제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사회의 경제조직에서 핵심은 노동의 통합에 있고, 노동의 통합에서 핵심은 평등 원리이다. 혁며은 필요하고 옳으며 의무일 수 있으나, 인민들이 적절한 전망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다면 이득이 없거나 혁명의 기능을 확장하지 못해서 완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교육의 조직화는 평등의 조건인 동시에 진보에 대한 지지이다. 179,180

정치경제학과 입법, 도덕과 정부에 관한 모든 가설이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해. 나는 이 모든 모순을 종합적으로 해결할 이론과 사례를 제시하려고 해. 185

헤겔주의 공식은 신의 상냥한 의도나 실수에 의해서만 삼위일체가 된다. 이 공식은 단지 정과 반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세 번째 개념을 고려하고 이율배반이 해소될 수 없다는 점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이율배반이 균형을 잡을 만한 동요나 적대를 암시한다는 점도 알지 못한다. 이점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철학의 빈곤>>의 비판은 논점이 어긋낫다. 프루동은 <<정의론>>에서 이율배반은 해소될 수 없다. 바로 그 점에 헤겔 철학의 불완전함이 있다고 하며 절대적인 진실인 없다. 매우 자주,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197

프랑스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최소한 종교과 유사한 형태의 영성을 주장했다. 엥겔스는 신앙심이 없기로 유명한 국가에 속하는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정말 놀랍다고 했고, 거꾸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늘 프랑스가 전 세계 혁명의 중심지라는 가정을 발전시켜 독일의 진지한 철학 박사들이 파리로 와 가르치려 했을 때 그들을 무시했다....프루동이 이와중에 염두에 둔 것은 작업장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을 위한 조합이었다. 198,199

마르크스 제안에 대한 프루동의 유보조건: 선험적인 독단주의를 파괴한 뒤에, 이번에는 우리가 인민에게 교리를 세뇌시키겠다는 꿈을 제발 꾸지 맙시다. 우리가 운동에서 앞서 있다는 이유로 우리 자신을 새로운 불관용과 편협함의 지도자로 만들진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척하지 맙시다. 심지어 그것이 논리의 종교, 이성의 종교일지라도 말입니다. 문제 제기를 결코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 우리는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혁명적인 행동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수단은 단지 폭력이나 독다에, 간단히 말해 모순에 이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경제집단이 뺏을 부를 다른 경제 집단이 사회로 환수하는 방식, 정치경제학을 이용해 소유이론이 소유에 맞서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성 바르톨로메오의 밤(대학살)을 거행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것보다, 소유를 천천히 불태우는 쪽을 좋아합니다. 201-202

프루동의 책을 꿴 헤겔주의 실은 가늘고 조화를 이루지도 않았다. 사실 프루동은 헤겔보다 칸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는데, 영원히 적대하는 두 힘 사이의 역동적인 균형이라는 개념을 ㅟ해 종합이라는 개념을 포기했던 이후의 발전 단곋 미리 관찰될 수 있었다. 208

노동으로 실현되고 있는 한편으로는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사회로 표현되는 우리 이념의 근본적인 모순은 생산하지 않는 자가 복종해야 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명령하는 사람은 생산하지 않는 자이다. 209

<<경제 모순>>이라는 책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쓴 부분은 프루동이 신학에서 나타나는 신개념을 해부하는 ‘신의 섭리‘이다. 이 부분은 종교적인 태도가 인간 사회 내부의 모순을 없애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부조리의 본보기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지식을 얻었다. 우리는 신의 뜻을 거스르고 행복을 얻었다. 우리는 신의 뜻과 달리 사회를 이루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걸음은 우리가 신성을 짓밟는 하나의 승리이다. 210 신과 인간 어느 쪽이나 다른 한 쪽의 상대일 뿐이다. 신과 인간은 존재의 충만함을 가지지 못한 두 개의 불완전한 실재이다. 신은 이성이 필요하지만 이성은 신을 거부한다. 신이 인간을 보완하는 다른 면이기 때문에, 따라서 신은 틀림없이 사악하다. 212

프루동의 결론은 종합과 균형이라는 개념으로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노동이나 독점의 파괴가 아니다. 독점의 모순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변증법의 종합은 지금 소수를 위해 생산되는 부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생산되게끔 만든다.213 상호성의 이론: 이 상호성의 개념의 통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회, 노동 분업을 과학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사회, 노예를 기계로 대체한 뒤에 생길 위기를 해결하는 사회, 경쟁을 이롭게 만들고 독점을 모두의 안전을 위한 담보로 만드는 사회, 자본에게 신용대부를 요구하고 국가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대신에 그 원리의 힘으로 자본과 국가을 노동에 종속시키는 사회로 정의한다.

프루동의 이상은 언제나 역동적인 사회, 즉 생명력을 계속 간직하며 지속적인 비판으로 운동 상태를 유지하는 사회였다. 그런 사회는 결코 미리 정해진 계획에 따라 건설될 수 없다. 214

마르크스가 가한 공격의 진정한 핵심은 프루동의 사유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이상주의를 간파하고, 그가 성서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점을 폭로했다는 사실에 있다. 217

<<인민>>은 첫 호의 주제가 될 거야. 인민은 집단적인 존재이자 오류가 없는 존재, 신성한 존재이지. 즉 이것이 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야. 그러나 물론 이 점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사회계약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되었어. 인민주권에 관한 낡은 이론은 공허하고 애매하며 완전히 거짓이야. 그것과 함께, 네가 내 사상의 분명함과 능동성, 그리고 그것이 즉각적으로 실현하기 쉽다는 점을 깨달으면 좋겠어. 233 미슐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 지구는 고유명사다

네 부모 세대는 사방에서 죽음을 보며 그 후속 세대는 사방에서 ‘생명‘을 본다. 38

내게 필요한 건 지구에서 ˝모든 건 살아 있다˝라는 사실을 표현해 줄 용어다. 39

우리는 ‘세대 간 갈등‘이 인류의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근대적 증거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고 이해한다. 나는 더 나아가 그것이 발생의 갈등, 한마디로 생성의 갈등과 관계된다고 말하고 싶다...바퀴벌레가 되고 나 후 그레고르가 느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첫 번째 불안 또한 그것인즉,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점은 더 이상 어떻게 제 가족의 생활비를 보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실인 것이다. 40

지구란 무엇인가, 우린 그것이 존속과 생성의 염려를 지닌 모든 자들의 연결, 연합, 중첩,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41 그레테가 자신의 소중한 오빠-벌레를 두고 잔인하게 ˝어떻게 해야 저걸 없애지?˝라고 혼잣말할 때 단순화해 버리고 만 문제가 그것이다.

세바스티엥 뒤트뢰유는 ‘생명‘ Vie이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표기해 살아 있는 것들과 그것들이 흐르는 시간 속에 변형시킨 모든 것, 바다, 산, 땅과 대기를 단 하나의 계통으로 아우를 것을 제안한다. 45


4. ‘지구‘는 여성명사, ‘우주‘는 남성명사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집에 틀어박힌 부모처럼 되는 대신, 마침내 정말로 제 몸을 이동하는 법을 알게 된다. 하나의 도관을 설치하는 것으로 매번 이동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의무가 나를 그 도관만큼 해방시킨다. 파행을 통해 난 내가 있는 곳을 약간 더 길게 탐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7

임계 영역 안에서 산다는 건 이후에 올 생명 형태들의 거주적합성을 위기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조금 더 오래 지속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critique‘ 그것은 위태로우며 무서울 정도로 객관적인 상황을 가리켜 보이며 그 위태로운 근접성을 증명하기도 한다. 50

가이아를 균질적이고 매끈하며 연속된 우주 공간에서 따로 부각되는 기이한 반점으로 봤던 앞선 세대의 착각과 달리, 지구생활자들은 그 이미지를 뒤집어, 자신들의 도정에서 마주치는 우주의 작은 섬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뒤얽힌 생명체들이 사슬들을 끊임없이 깁고 수리해 가며 짜는 가벼운 양탄자를 바탕으로 제 테두리 날에 의해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그리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섬들로. 57 토끼가 오리가 될 수 있고 또 그 역도 일어날 수 있는 저 양면적인 그림들에서처럼, 후방에 있던 것이 전방으로 옮겨온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폭포 형태로 이어지는 생성의 곤란

우리의 불행은 격리되어 있기는 한데 고유한 의미에서 ‘우리의 집‘을 전혀 갖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자기동일성의 덫을 피하도로 해 주는 사실이기도 한다. 격리 덕분에, 드디어 풀려나 숨을 쉬는 것이다! 69

가장 기이한 것은 정치적 개인에게서 사실인 것이 생물학적 개인에게서도 사실이라는 점이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대해 그게 완전한 동물이든 그 동물이 세포나 유전자이든, 동이한 문제를 겪고 있다. 존재자들이 서로 뚜렷이 구분해서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헤아리게 되는 모든 자연과학 속에서, 폭포는 계속해서 예견치 못한 방향으로 점점 더 멀리 되튀긴다. 73

여태까지 공허한 편이었던 ˝행성 의식˝이라는 표현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듯하다. ˝만국의 격리된 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대들은 동일한 적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행성으로 피해 달아나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75 대부


6. 여기 이 낮은 곳에 - 단, 저 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오로지 한편의 생명체들이 다른 편의 생명체들 - 땅, 하는 대양, 공기도 이에 포함된다 - 과 더불어 고정하고, 일으키고, 유지하고, 감싸고, 포개고, 융합하는 벽감들, 둥근 포위망들을 교란하고 강화하고 복잡하게 하는 일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 경험은 ‘물질적‘이지 않다. ‘영적‘이지도 않다. 우리의 경험은 다른 신체들과 함께 이루는 구성composition에 속한다.83

임계영역을 측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뒤로 후퇴하는 일도, 예전의 여기 이 아래로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우린 이제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살 수는 있다. 바로 이 곡예의 전체가 안나 칭이라면 같은 장소에 자신을 다르게 자리매김하는 새로운 방식들이라 부를 것에 기반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각기 자기 집에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84

우린 그 내부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공기 거품의 온도 조절이 우리 자신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진정한 격리란 바로 이것, 우리가 무심결에 우리 자신에 집단적으로 선택해 준이 운명이다. 아틀라스가 그러듯이, 우리 등에 짊어지겠다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벌레-되기란 딴 게 아니다. 바로 그것이다. 변신이란 바로 그것이다. 85


7. 경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도록 놔두기

인위적으로 물속에 지탱시켜 두었던 나무 들보를 놓쳐 돌연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기라도 한 듯, 여태까지 실제 삶의 반박할 수 없는 토대라 여겨졌던 경제가 위쪽으로 다시 올라온 양상이다. 두둥실 아무 어려움도 없이, 근대적인 삶의 저 더할 나위 없이 유명한 ‘하부구조‘가 표면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이제껏 온전히 무시해도 좋을 상부구조라 여겼던 것, 즉 생성의 염려와 존속의 문제가 아래로 미끄러져 심층으로 스며든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경제는 ‘우리 시대의 넘을 수 없는 지평선‘이기를 멈췄다. 90

문제의 핵심은 단지 ‘경제 체계‘를 개선하고, 바꾸고, 녹색으로 만들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경제라는 것 없이 지내는데 있다. 90

호모에코노미쿠스에는 천부적인 것, 자연적인 것, 또는 토착민적인 것이라고는 없다. 머리를 거꾸로 한 채 올 뿐, 결코 일상적이고 실용적이며 철두철미하게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경험으로부터, 생명의 형태들이 다른 생명의 형태들과 유지하는 관계들로부터 오지 않는다. 경제가 확산되기 위해서, 그것이 지상에서 가능한 토대로서 심층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부구조의 제작이라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다. 그처럼 난폭한 식민화에 대항해 가장 평범한 경험이 반격적으로 행사하는 집요한 저항을 누르고 경제가 저 자신의 자명성을 부과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말이다. 91-92

문제의 핵심은 ‘내일의 세계‘가 ‘이전의 세계‘를 대체할지 여부가 아니라 표면의 세계가 마침내 일상적인 깊이의 세계에 제 자리를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아는 데 있다. 93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경제적인 차원이 있다˝라고 말하는 걸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 있다...특벼히 굴복하지 않아야 할 유혹이 있다면 모든 틈들을 매끈하게 메우면서 산술로 그것들을 대체해 버리는 일이다. 산술은 토론을 닫아 버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다른 곳에서, 다른 것들에 의해, 특히 이 현장에서 주 멀리 떨어진 다른 것들을 위해 실행된 것이다. 94,95

이 같은 토론과 협상과 가치 평가의 직조는 우리가 기본값인 것마냥 경제로 환원해야 할 그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는 보다 깊으 어떤 것이 반드시 존재하며, 우린 그것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보다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 물질주의자가 되어서 드리어 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올 시기가 된 듯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96

정치 경제학을 새로이 비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의 형태들이 서로 안에 유지하는 관계들의 설명서로서 그것을 완전히 버리는 데 있다. 경제가 마법으로 정신을 호린다면, 그 마귀를 몰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97

홀로바이온트에게 출납명세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생명체들이 완벽하게 계산을 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오래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그저 계산의 오류가, 우연에 의해, 아무런 섭리없이, 거주적합성의 조건들을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는 말일 뿐이다. 100


8. 하나의 영토를 제대로 된 방향에서 묘사하기

뒤집힌 방향에서 보았을 때는 지도 위에 선으로 둘러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영토를 형성한다. 반면 제대로된 방향에서 보면, 하나의 영토는 자신이 의존하는 자들과의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행위들의 목록만큼 멀리, 더 이상은 아닌 딱 그만큼까지 확장될 것이다.107 당신이 무엇으로 사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삶의 터전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말해 보겠다.

당신이 그 생명의 형태들을 힘겹게 기록했다면, 그 이유는 그것들이 묘사를 깨물고, 자기들을 고려하라고 당신에게 책임을 지우기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목록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당신은 묘사를 다시 시작해야 할뿐더러, 당신이 목록화할 자들과의 대면에 더한층 큰 책임을 져야만 하리라. 착륙한다는 것은 로컬이 되는 것을 뜻하지 않은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의존하는 존재들과 만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제대로 된 방향을 취했을 때 ‘로컬‘이란 공동으로 검토되고 논증되는 것을 일컫는다. 가깝다는 건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날 직접적인 방식으로 공격하거나 살도록 해주는‘이라는 의미다. 109

그동안 경제가 현실주의적이고 무릴주의적일 수 없었는지, 그 까닭을 당신의 살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경제를 선택하는 것, 그건 해명해야 할 내용을 전혀 갖지 않는 존재들을 고안하고 그들이 독점적인 소유권을 통해 자기 경계를 보호받아야 할 독립적인 개인들이리라는 핑계를 대면서 상호행위의 재개를 중단시키는 행위다. 111

각각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중첩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있는‘ 한 영토에서 함께 살고 있다...우리가 이처럼 서로의 경계를 침범한다면,결국 우린 하나의 공동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112

고유의 의미에서 경제는 무리를 흩뜨려 없애고 토양 바깥으로 내보낸다. 반면, 격리는 무엇을 허용했나. 바로, 제게 의존하는 자들의 거주적합성 조건들을 유지하거나 파괴하는 스스로의 능력에 의거해 심판 받기로 동의한 이들을 이끌어 다시 무리짓고 다시 자리매김되도록 했다. 114


9. 풍경의 해빙

아, 그래서 이 도안이 과녁을 닮았나 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구분선 위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당신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다. 바로 여기가 당신이 뛸 곳이다. 말의 모든 의미에서, 당신은 이 자리에서 당신 생명을 다시 걸고 있는 것이다. 118

그건 언제나 면전에 있는 것, 다시 말해 저 17섹 유럽의 발명품인 풍경인 것이다. 주체는 재현되어 어떤 의미에서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되는 이 화잍 큐브를 떠나지 않는다. 이 상자 안에 고정된 채로 남은 자는 순화된 대상들을 제 앞에 대면한 박물학자 주체가 되어 간다. 122

주체또한 갇힌 채 머무르지 않는다. 행진해 가는 대규모 시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대신 그 흐름에 합류하기로 결심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때가지 그저 구경꾼이었던 당신은 이제 소란스럽게 흥분한 군중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당신 목록의 개체들 하나하나와 동일한 생성의 염려를 나누어야 한다. 예전의 대상들앞에 선 예전의 주체와 반대로 당신은 그것들의 역동성에 더는 무관하지 않다. 인간중심주의는 그렇게 끝을 맞는다. 125

홀로바이온트들의, 또는 제휴의 사회학의 역설 일체가 거기에 있으니, 사람이 누군가와 점점 더 친숙해진다는 건 그 자신이 함께 얽힌 이들을 향해 점점 더 멀리 여행하는 일과 같다.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된 개인은 자신을 지배하는 거대함 앞에서 아무 힘도 없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 행위자-연결망, 행위소-민족, 홀로바이온트는 제 목록의, 제 행위의 흐름의 제 이력서의 항목들이 증식될수록 날개가 돋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128

근대적 주체는 시간상으로도 제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큐브 안으로 들어가기 우해 필연적으로 제 과거와 관계를 끊어야 했으니까. 상류도 하류도 상실한 만큼, 근대적 주체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던 길을 되돌려 슷로에게 요긴할 행위의 원천을 다시 찾아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의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제 뒤의 배들을 태워버렸다. 129

우리의 생명이 달린 상류와 우리에게 의존하는 하류의 그 모든 자들이 지닌 생성의 염려를 우리가 무시하지 않기로 한 이상, 어떤 것도 우리가 발길을 되돌리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 둘은 마침내 다시 연결된 것이다. 130 우리는 근대화의 검을 끊어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다시 묶고자 한다.


10. 필멸하는 몸들의 증식
11. 민족집단형성의 재개

끼리끼리-주의를 되찾기로 한 이들이 글로벌화가 아무데로도 이르지 않ㄴㄴ다면 대신 보호받을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있으 수 있는 곳으로 144

이 부정적 보편은 예전에 ‘국제 질서‘라 불렸던 것의 철저한 해체로 인해 나날이 위기를 거듭하며 드러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근대화의 폐허들이 브린이 제시한 풍경과 상당히 닮았다. 146

글로벌화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퇴장이라 불릴 수 있을 행성이 존재한다. 화성이나 초현대적인 벙커. 안전리라는 행성이 존재한다. 다음은 근대인들의 이하 수준에서 저항하면 살아가는 특유의 양식 . 근대외인. 전에는 구식이었지만, 보라 이젠 이 별이 무서울 정도로 현시대적인 것이 되고 우리가 위험에 빠트린 바로 이 민족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수 있다. 150

홀로바이온트들의 외교술. 경계 개념 일체의 경계들을 잡는 것이야말로 외교술의 본질 그 자체다. 저 유명한 ‘붉은 선들‘의 재설정. 문제에 착수하는 방식은 로컬에서 글로벌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라는 어떤 등급의 문제가 아니라 계측법의 문제다. 치명적인 일반화라는 객관적 인식이라는 이상과 섞어 마술을 한 것이다. 마법같은 해결책만 촉구했던 것이다.. 155

각 경계는 다른 경계를 숨기고 있으며 매 등급의 변화는 매번 다른 생명체의 중계를 가정한다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모색을 계속해 나간다는 제 최초의 소명을 외교술이 다시 찾은 것일 따름이다. 156


12. 아주 기이한 전투들

홀로바이온트들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


13. 사방으로 흩어지기

함정으로 가득 찬 어떤 역사여. 어떻게 하면 방향을 잃지 않고 이 역사 안에 똬릴ㄹ 틀 수 있을까? 오늘날, 땅은 또 다시 돈다. 하지만 이번에느 저 스스로에 의해, 저 스스로 위에서 돈다. 그리고 우린 우리 자신을 그 한복판에서, 그 땅 안에 삽입되고 격리되었으며 임계영역 안에 틀어박힌 자로서 다시 발견하며, 더 이상 그곳에서 새롭게 거대한 해방의 무훈시를 읊지 못한다. 오히려 세탁기 드럼통 안에서 압력과 고온에 의해 미친 듯 도는 빨래 같은 느낌이다. 법, 정치, 예술, 건축, 도시 할 것 없이 모든 걸 새롭게 다시 발명해야만 하는데, 더욱 기이한 건 동시에 움직임 그 자체 즉 우리 행위들의 벡터마저도 재창안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무한 속을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 앞에서 후퇴하는 법, 대열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계속 전진하는 행위가 우리를 가뒀다면, 후퇴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격리에서 풀려난다. 우리는 움직임의 능력들, 그렇다. 행위역량들을 다시 발견할 필요가 있다. 줄곧 게와 바퀴벌레의 자격으로 이전과 다른 움직임들을 허락하는 이 벌레-되기를 말이다. 그레고르의 리드미컬한 파행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춤이 있다. 170-171

지구에 격리되어 있으되, 여긴 감옥이 아니라 그저 그 안에 우리가 감싸여 있는 곳일 뿐이다. 해방된다는 건 지구로부터 나가는 걸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된 것들, 곧 그 주름들과 중첩들과 제반 얽힘을 탐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178

적출자들과 수선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길항은 모두 그 같은 권력들의 재배치 문제에 걸린다. 식별 문제로 고충을 안기는 영토들은 언제나 각 국경의 양편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해방의 새로운 방식은 경계 개념의 경계를 넘기, 바로 그 일에 있다. 179

우리가 새로운 세계 속으로 이동했다면, 하여 남은 것들을 우리 스스로 수선해야 한다는 존재 조건들 안으로 되돌아온 거라면, 이 때 가장 중요한 움직임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질 수 있음이다. 그럴 시간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183


볕뉘.

라투르의 책이 생각보다 빨리 나와 놀라기도 했다. 읽다가 보니 알게 된 것은 라투르가 항암치료 중이며, 손자에게 건네는 양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다급함이 묻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글들은 전방위적인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다. 7장의 경제편은 유독 관심이 더 가기도 하는데 개념은 무척 간결하고 적확해서 놀랄만하다. 최근 과학이나 학문들의 병행 발전도 확인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싶다. 친철하게 부록 편에 목록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카프카의 변신을 재음미하는 재미도 느끼시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경제는 지구 자원을 재생하는 양의 1.5배 이상 천연자원을 소비하고, 경작 가능한 땅의 3분의 1이 토양 고갈로 황무지가 되었고, 1970년대 이래 척추동물의 3분의 2가 절멸했다. 32

이 세상의 경제는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 1퍼센트‘를 위한 경제다. 그 핵심에 자본 편향이 도사리고 있다. 부자와 금융계에 유리하도록 시스템 전반에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장된 편파주의다. 이를 추출적 경제라 불러도 좋다. 33

오늘날 미국 내 일자리의 40퍼센트는 파트타임이나 계약제로 일하는 긱 경제 유형이며, 그나마 외주화와 자동화에 직면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윤추구가 곧 임금 하락 압박을 뜻하는 현실은 이 시스템의 본질일 뿐 전혀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교란 현상이 아니다. 34

미국 책임지는 자본주의 법령 Accountable Capitalism Act: 수익이 10억달러 이상인 주식회사는 기업의 신의 성실 의무를 확장해 기업 설립허가서로 갱신해야 한다. 이제는 주주뿐만 아니라 노동자 그리고 지역 사회의 이익도 고려해야하고 노동자들은 이사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영국노동당의 포용적 소유권 기금: 직원 250명 이상 고용한 회사는 매년 소유 지분의 1퍼센트를 이 기금으로 이전해야 하며, 이는 기금이 소유한 기업 지분이 10퍼센트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이 기금은 노동자 신탁인들이 운영하고, 이를 통해 각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상당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자는 주주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이윤 일부를 배당금으로 얻게 될 것이다. 35

주정부 공공 은행, 짐승의 배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자라게 하자. 36

깊이 있는 재설계: 우리는 자본주의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이분법 안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여기는 걸까?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탁월한 상상법을 익혀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 민주적 경제는 그 기본이 되는 제도와 조직을 새롭게 설계하고, 기업 투자 경제 개발 고용 구매 금융 자원 등 여러 활동의 방향을 틀어 경제의 핵심 기능이 우리 모두의 공공선에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38-39

민주적 경제의 일곱가지 원칙인 공동체, 포용, 장소, 좋은 노동, 민주적 소유, 지속가능성, 윤리적 금융을 통해 펼쳐지게 된다.  장소의 원칙은 동네 공동체에서 생산한 부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에 머물게 하는 것을 목표로 특정 장소에 대한 책임과 헌신을 공유하는 원칙이다. 방문 간호 협동조합 40-41 민주적 소유권의 원칙: 환경 컨설팅 기업 EA엔지니어링.  지속 가능성의 원칙: 연방 정부의 힘으로 미국의 25대 화석 연료 기업을 모두 사들인다는 것. 윤리적 금융의 원칙; 영국 프레스턴의 매튜 브라운 의원 활용 42-43

1. 언제나 공공선이 우선한다. 2. 오랜 기간 배제된 이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3. 마을의 부를 그 공동체 안에 머물게 한다. 4. 노동이 자본에 우선한다. 5.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업을 설계한다. 추출적 경계는 기업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보지 않고 자산 계급이 소유하고 매각할 수 있는 여러 조작의 소유물로 본다. 노동자는 경제적 참정권을 부정당한다. 6. 삶의 기초인 생태계를 보호한다. 현재의 필요와 미래 세대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 능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것. 전체의 관점에서 행동하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자본 소유자의 이익만 현실로 다룬다. 수천 년 흘러온 시냇물이 무지막지한 폐기물에 끊겨도 이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7. 사람과 장소가 투자와 대출의 우선 목적이다. 65 우리가 바로 쓰나미다. 68

1. 공동체

오래전에는 ‘부‘가 물질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부‘는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을 뜻한다. 85

2. 포용

기회를 얻기 힘든 창업자들에게 사업 초기에 제공하는 씨앗 자본과 멘토링이 얼마나 중요한지...보증기금 200만 달러가 조성되었고 그 가운데 시가 낸 돈이 75만 달러였다.(포틀랜드시 2015년) 96

타이론도 저소득자들을 도울 때는 일반적인 사회 복지 서비스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접근법을 취한다. 포용의 원칙은 혁신적인 사업가 정신, 경제 발전, 제품 개발 가은 기본적인 경제 과정 안에 내장된다. 사회적 가치를 경제 위에 단순히 얹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핵심부에 앉히는 것이다. 낙인찍힌 집단에게는 ‘역사의 진보‘를 앞당길 능력이 없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누군가 잃은 것이 있다면 이는 곧 집단 전체가 뭔가를 잃은 상태임을 기억해야 한다. 102-103

대화를 트는 것,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쌓은 것, 각자의 편견과 편향을 성찰하는 것, 과거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 등. 포용은 실로 지난한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이 그 어려운 과정을 이루는 부분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가능성도 담고 있는 것이다. 105

노예 해방 뒤에도 흑인 노예를 잃게 된 농장주들만 소유권 상실 보상을 받았다. 누구도 흑인 노예에게는 배상하지 않았다. 아무도 노예가 된 흑인들을 수탈 피해자로 여기지 않았다. 모든 인간이 삶을 꽃피울 포용적 권리, 공공선 보호를 으뜸 목적으로 삼는 것,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을 때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무 같은 것들과 균형을 이루게끔 조율하는 길고 긴 운동의 한 부분이다. 107

3.

구매도, 고용도, 생활도 우리 지역에서, 나아가 연결로  buy local, hire local, live local, and connect 117

더 큰 앵커기관 조직: 대체 에너지 업체인 에버그린 에너지 솔루션은 건물 도색, 주택 보수, led 조명 설치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혔고, 도시 농업회사인 그린 시티 그로워스도 네슬레와 80만달러의 바질 납품계약을 맺는 등 노동자 소유 기업이 흑자 전환 121

인류의 역사에서 경제 활동이란 본디 종교, 정치, 가족, 자연 등을 아우르는 사회적 질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 혁명 이후로 자본의 왕이 곳곳에 나타나 노동과 토지를 시장 상품으로 바꿔놓았고, 사람도 땅도 ‘창고에 쌓인 상품인 양 사고팔고 쓰고 버리는‘ 지경이 되었다. 123

기업이 중시하는 주당 이익의 수치 어디에도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은 표시되지 않은 채로 얻은 이윤은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128

4. 노동

투자가 중심 기업체에서는 회사를 사물이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회사를 소유한 투자가란 회사와 분리된 위치에서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려는 존재다. 반면ㅇ 소유자가 회사 내부에서 일상적으로 작업과 노동에 참여하면 회사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체나 대상이 아니라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소유권의 성격은 금전 추출이 아니라 인간적인 귀속감으로 옮겨간다. 139 CHCA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을 주요 고객으로 설정했다.

우리에게 노동을 필요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고용주에게 노동이란 비용항목 중 하나일 뿐이며, 자동화 등으로 완전히 제거하면 가장 좋지만 그게 아닐 경우엔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들은 노동을 달갑지 않은 것, 마지못해 임하는 것으로 여기고, 일하는 것보다는 여가를 선호한다. 따라서 고용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피고용자 없이 생산물을 얻는 것 이상적이며, 피고용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하지 않고 소득을 얻는 것이 이상적이다. 145

슈마허는 노동은 내면의 가장 고상한 자아를 일깨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생산하게 만드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노동을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멍하게 만드는 것‘으로 느끼도록 일을 조직하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146 이 회사는 저소득층 흑인 여성, 라틴계 여성, 이민자 여성에게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을 창출해주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았다.

5. 소유권

EA 엔지니어링은 한 번에 한 가지씩, 환경의 질을 개선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윤과 목적의 균형으 취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설계에 공공선이라는 목적을 명시했으며, 자산 소유권은 보통 사람들에게 널리 분산했다. 155

우리는 소유권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환경 운동 진영이 기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더 근본적인 문제 대기업의 의사 결정을 추동하는 소유권의 설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외면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소유권 설계가 윤리적이며 지속 가능한 의사 결정에 더 큰 힘이 되는지도 무시되었다. 166

지속가능성은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윤리 관념에 기초한다. 타인이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장래에 태어날 이들까지 포함한다. 167

이런 식으로는 지구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도 다를 것 하나 없는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이다. 공공선이 실현되려면 기업들의 유전자를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의료와 교육 분야에 추출적인 소유궈이 나타나지 않도록 특별히 금지할 수 있다. ..우리는 소유권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부터 인식해야 한다. 소유권 설계를 고민하는 이론가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기후 위기 연구자에 비하면 훨씬 적지 않은가? 소유권의 대한 형태를 가르치는 경영 대학이 몇이나 있을까? 심각할 정도로 적다. 169-171

추출적인 경제 설계를 한가지 작물만 키우는 단작에 비유한다면, 민주적 경제 설계는 공공 소유, 개인 소유, 협동조합 소유, 직원 소유 등 다양한 소유권 설계에 의지하면서 부문에 따라 다양한 규모로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주는 구조라 할 것이다. 172

협력하는 민주주의는 50-50프로젝트를 출범했다 2050년까지 직원소유주 5000만명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173 직원 소유 기업은 경제가 어려울 때 회복 재생력을 더 크게 발휘한다.

6. 지속가능성

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막으려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0년치의 45퍼센트로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태워서는 안 되는 탄소, 금융 용어로 말하자면 좌초 자산이다. 이 자산이 20조 달러라 한다. 178-179 문제 핵심은 소유권 설계, 자본 권리 신수설: 자본이 극대이 부를 가져간다는 불멸의 권리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은 아닐까. 자본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지, 그게 정당한지 묻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82

화석 연료 기업들의 정치 권력을 깨고 싶다면 이 기업들이 동원하는 화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기업들을 정부가 매입한다는 발상은  금융위기에 AIG나 제너럴 모터스를 사실상 국유화하는 등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85 거대 은행처럼 지구도 구제 금융으로 살려내자.

녹색 양적 환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화폐를 창출해 친환경 기간시설에 직접 자금을 대라는 것이다. 통화정책도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 논리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수순이다. 187

우리는 토지를 우리에게 귀속되는 상품으로 간주하므로 마구 남용, 오용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토지를 우리 공동체가 귀속되는 존재로 바라본다면 애정과 존경을 담아 사용할 것이다. 토지는 공동체라는 것, 이것이 생태의 기본 개념이다. 하지만 토지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윤리학의 연장이다. 원주민들은 토지와 물을 소유물이 아니라 ‘성스럽고 살아 있는 친족, 조상, 고향으로 본다. 뉴질랜드에서는 140년에 걸친 법적 투쟁끝에 왕가누이 마오리족의 조상드리 살던 왕가누이강이 마침내 인간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갖게 되었다. 2017년 법제화되었다. 미국 헌법 전문에 자유의 축복을 우리에게 또 우리 후손에게 보장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191

좌초자산은 주택 시장 거품으로 생겨난 금액보다 훨씬 크다. 우리의 공공선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 미래가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물론 금융 세계도 지켜낼 수 있다. 193

7. 윤리적 금융

프레스턴 모델: 지역 주민이 소유한 기업을 양성하고 시의회 지원아래 프레스턴 협동조합 개발 네트워크를 만들고 2012녀에는 시 스스로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임을 천명했다. 199 12-13년 앵커 기관들의 지출규모가 10억 파운드나 되는데 지역 내에는 5%에 불과했다. 이에 시의회는 지역에 뿌리를 둔 농업 인쇄 건설업체를 이용해달라고 설득했고 4-5년 뒤에는 18%까지 올라갔고 랭커셔주 전역에서 앵커기과늬 지출은 39%에서 79%로 늘었고 일자리도 4500개나 생겼다. 경제에서 민주주의를 더 많이 부여하고 소유권을 분산하므로써 회복 탄력성을 높였다. 198-200

2017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소유권의 범위를 넓혀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경제를 재구성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혁신적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201

은행과 금융은 인간과 지구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하며, 이윤은 목표가 아니라 그저 결과일 뿐이다. 203

은행이 소속된 마을 공동체를 지원한다는 목표를 사업허가증에 명시한다. 이 햄프셔 마을 은행은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중소기업 대상 대출 비중은 70퍼센트나 된다. 마을금고 연합은 고객이 은행을 통제할 수 있고,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한다....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임무를 뚜렷하게 내건 마을 은행은 은행 업계에 파란을 불러온다. 206

공공 소유 은행: 추출적인 경제에서 금융은 지역과 을의 돈이 런던 금융가나 월스트리트의 소유주에게 빨려나간다는 뜻이 된다. 돈이 지역에서 흐르게 만들어 두루 살아나게 해야 한다. 208

금융 보험 부동산 fire 에서 소득과 자산을 불리는 방법은 금융으로 가는 몫은 늘고 제조업으로 가는 몫은 줄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가는 몫은 줄고, 금융 엘리트로 가는 몫은 늘어났다.  경제는 상품이  아니라 부채를 만들어내는 장치가 되었다. 금융경제란 본질적으로 주식 채권 대출 주택 담보 대출 같은 자산을 모은 것으로 모두 실물 경제에 청구권을 행사하는 증서일 뿐이다. 이렇게 금융 자산의 규모는 1990년 영국 GDP대비 4배에서 2017년 10배로 늘었다.  210-212 무엇이 이 거품을 터뜨리는 바늘이 될까?

윤리적 금융이 발전하는 길은 녹색채권을 지원한다든가, 임팩트 투자를 한다든가, 화석 연료 산업 투자를 줄인다든가 하는 책임 투자가 한 방법일 것이다 214



볕뉘.

1. 금융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어떻게 바꿔나가 노동과 지역, 그리고 생태계가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겠는가를 두 도시의 사례로 짚어나가는 책이다. 1%가 아니라 90%을 위한 경제이 물꼬를 어떻게 트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둘 때, 무척 발랄하고 경이롭다는 느낌이 든다. 이론과 데이터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7가지 분류의 원칙으로도 이렇게 희망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을까 싶다.

2. 아내의 품에 안기면서 숨을 거두는 프루동 전기를 마치면서, 소유란 무엇인가하는 180년전의 울림이 메아리치는 것 같다. 역사의 비명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 덧셈과 곱셈들이 난무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 그 원칙들을 뿌리내리게 하는 재미들도 쑥쑥 커져나가면 좋을 것 같다. 홍기빈선생의 번역이 고맙다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