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김이듬시인 낭독회와 부산비엔날레를 다녀오다.
아 그리고 지난 목요일 독서노트 모임도 있었네.

그래 한 친구는 발달장애를 다룬 책을 이야기했고,
이듬시인은 어린시절 진주에서 아기인형을 업고 다니는 미친년이야기를 했지.
그리고 수직식물정원으로 꾸며진 미술관에서 난민과 아프리카청년의 절규를 들었지.

그러다 페소아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고, 아니 두 번씩이나 나누었네.
브레히트도 에밀리 디킨슨도 만났네.

표류하는 흑발을 다시 보았지. 무척 처절한 내용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시인이 요구한
페미니스트와 파르티잔, 개의 화자에 집중해보았는데
그녀의 진주사투리와 말 밖으로 나타나는 성격, 일련의 삶의 시선에서 여실히 읽을 수 있었지.

비엔날레는 사실 별로였고, 영상과 설치물 위주라 더 더욱....발품을 한참 팔아야했지.
그 가운데 건질 것이라고는 몇 작품이 없었네. 큐레이터의 설명을 일부러 들어도 그 생경함은 줄어들지 않았지.
이민휘&최윤의 영상작품, 나스치우 모스키토의 아프리카선언, 스마다 드레이푸스의 영상 정도였어.
이내 말라버리는 눈물처럼
흝고 지나치는 감정들처럼

흔적이 자욱, 아니 자국으로...아니면 화인으로 번지면 싶었는지도 몰라.
서정시를 쓰기 힘들어지는지도 모르겠어. 자꾸. 번갈아 뭔가 자꾸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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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편지

[ ] 공명- 그와 같은 난세에 깊은 산속에서 책을 읽고 지내는 인간의 삶이 허락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움이다. 현실의 삶의 소용돌이를 자기 정신 속에서 진실하게 반영하면서도 그 소용돌이에서 직접 비켜선 자리나 개인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문화다.....현실세계를 고도의 반성과 사유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개인이 자기 바깥의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서 한낱 동원의 대상으로 내몰리지 않아야 된다....자기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경작‘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생활의 독립과 품위를 보장하는 문화! 221

[ ] 길에 관한 명상: ‘길들인다‘는 것은 주체가 아닌 것을 주체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데, 그 현상을 우리말에서는 ‘길들인다‘고 나타낸다. 밖에 있는 길을 안에 들여놓는다는 표현이다. ‘안‘이란 물론 인간의 안, 인간의 의식, 인간의 감각의 ‘안‘에 ‘들여놓는다‘는 뜻이다. 31 길 ...>길들이기..> 기르기, 이렇게 ‘길‘은 인간의 곁에 가까워지고마침내 인간 자체의 능력, 인간이 자기 안에 갖추게 되는 ‘기술‘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객체였던 것이 주체의 내용이 된다. 32

[ ] 길:하늘에도 길이 있고, 물에도 길이 있고, 땅에도 길이 있고, 짐승들에게도 길이 있으며 짐승과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길이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길‘이라는 말에는 운동과 규칙성, 객체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 그리고 ‘관계‘따위의 - 인간 의식이 세계를 파악하는 중요한 인식 형식이 모두 들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침내 ‘길‘은 ‘길이‘라는 추상적인 형식에까지 이르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 공간적인 개념이면서도 시간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니까 ‘길‘이라는 말은 실체, 관계, 운동, 시간, 공간, 기술이라는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 32, 33

[ ] 길:언어체계란 인간의 경험인 머릿 속의 산과 벌판, 강과 바다를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 표시하기 위한 좌표계이고 낱낱의 단어는 그 지점의 좌표 값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마음‘이라는 혼돈의 공간에 가로세로 줄을 긋고 그 줄의 교차점마다 이정표를 세우는데 그 이정표의 문면이 우리가 낱말이라 부르는 사물이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해서 길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길은 마음 속에도 있다. 이 마음속의 길은 비가 와도 허물어지지 않고 지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말‘이라는 것은 어느 문명에서나 신성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실체로 오랫동안 믿어왔는데, 그것은 이처럼 ‘말‘이라는 것이 ‘길‘이 내면화된 것으로 인류의 경험의 요약이며, 자신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길‘은 ‘진리‘ ‘지식‘ ‘힘‘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다. 이렇게 쓰일 때의 ‘길‘이란 곧 ‘말‘이다. ‘길‘ ...> ‘말‘..> ‘진리‘라는 길을 밟는다. 35

[ ] 혁명의 본질: 포석 조명희; 타성을 휘어잡고, 그것의 주인이 되자고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짐승에게서 갈라선다. 마음이 없으면 마음의 아픔도 없다. 마음은 아직, ‘밖‘에는 없는 것을 자기 안에서 꿈꾼다. 이 꿈과 현실을 비교한다. 꿈이 현실이 되게 하려고 행동한다. 그는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좌절하더라도 그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좌절한 것이다. 그는 인간답게 살았다. 257 노예제도가 나쁘다는 아무런 윤리적 선험 원칙도 없다. 노예들이 싫다고 할 때 비로소 원칙이 생기는 것이다. 노예가 되느냐 자유민이 되느냐, 그것은 취미의 문제다. 적어도 형이상학적인 아무런 근거도 없다. 어느 쪽이 ‘옳다‘는, 다만 노예든 자유민이든 그 속에 있는 자는 계속 그렇게 있고 싶은 타성을 지닌다.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가 오히려 귀찮음으로 대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316 노예의 달력에는 늘 여름만 있고 자유민의 달력에는 겨울도 있다. 겨울과 폭풍을 두려워하는 자 - 그것이 노예이다. 322 이상 감정이 흐르는 하상에서

볕뉘

흔적들을 다시 보면서 많은 느낌들이 생겨난다. 몇 편의 소설 속에서 작가로서 위상보다는 끊임없이 사유하는 모습이 더 감겨오른다. 아포리즘도 그러하다. 어쩌면 그의 흐름들이 온전히 담겨있는 이 책으로 갈증을 목축이고 있다는 느낌. 더 살펴볼 수밖에 없는 아릿함이 배이기도 한다. 아직 옮기지 못한 밑줄들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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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일기.아침의 피아노

1. 애도일기

[ ] 주체는 (이건 점점 분명해지는 사실인데) ˝인정을 받으려는˝ 목적을 따라서 행위를 하는 (애를 쓰는) 존재다. 143

[ ] 애도의 슬픔을 (비참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려 하지 말 것(가장 어리석은 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다), 그것들을 바꾸고 변형시킬 것, 즉 그것들을 정지 상태(정체, 막힘, 똑같은 것의 반복적인 회귀)에서 유동적인 상태로 유도해서 옮겨갈 것.

[ ] 이 슬픔은 절대적 내면성이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현명한 사회들은 슬픔이 어떻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를 미리 정해서 코드화했다. 우리의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5

[ ] 영혼을 믿지 않는다는 건, 영혼들의 불멸을 믿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야만적인 일인가! 유물론은 진리이지만 그러나 그 진리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진리인지! 169

[ ]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172

[ ] 마망은 내게 가르쳐 주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절대로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179

[ ]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유형. 그러니까 우리가 상상으로 눈앞에 떠올리는 어떤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상상해볼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유형. 그러니까 실제가 직접 우리에게 드러내는 어떤 것이다. 프루스트, 생트-뵈브 193

[ ] 마망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는,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기만 했던 사실을 확신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으므로, 이 논리를 따라서 나 또한 죽어야만 한다는 확신은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216

[ ] 사진은 어떻게 성스러워지고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 사진으로 기억되는 건 동일성이 아니다. 그건 그 동일성 안에 들어 있는 믿기 어려운 표현, ˝덕성 virtus˝이다. 230

[ ] 슬픔의 자기순환적인 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한권의 책을 씀으로써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짓곤 했었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 집요함, 은밀함. 241

[ ] 머리가 뛰어나다는 게 무엇이겠는가. 자기와 함께 지내는 사람에게 아무런 거리낌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보다 더 높은 지능이 어디 있을까. 262


2. 아침의 피아노

[ ] 사랑은 한 단계 더 높아져서 정신이 되어야 한다. 정신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정신이고 그럴 때 정신은 행동한다. 27

[ ] 사는 건 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었다. 남겨진 시간, 흐르는 시간, 새로운 시간, 그 한가운데 지금 나는 또 그렇게 살아 있다. 28

[ ] 누군가는 말했었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33

[ ] 생의 명랑성 - 우렁찬 정신은 야채 장수처럼 목청으로 제 존재를 보여준다.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다. 35

[ ] 사진은 마술이다. 찍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건이 된다. 45

[ ] 물들은 급한 곳에서는 우렁차고 평평한 곳에서는 잠시 머물러 조용히 파문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낮은 곳으로 흐르른 걸 잊지 않는다. 정신이 무엇이고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 정신과 마음이 만나면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알겠다. 생이 음악이라는 것도 알겠다. 48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51

[ ] 사건은 그런 책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기를 만난 마음속에서 태어나는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놀랍고 귀하다. 정신과 몸이 함께 떨리는 울림. 이 울림은 모호하지 않다. 종소리처럼 번지고 스미지만 피아노 타음처럼 정확하고 자명하다. ....마음의 사건 - 그건 문장과 악보의 만남이기도 하다. 53

[ ] 정확한 때 정확한 곳을 베어야 합니다. 그러면 칼은 춤이 됩니다....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79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80

[ ]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 83 투병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사랑이 그렇듯 병과도 잘 이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90 환자는 투명한 주체다. 그는 그에게 일어나고 다가오는 모든 것을 통과시킨다. 환자의 주체는 종결을 각오한다. 그러나 그 종결에게 항복하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사랑의 주체다. 그는 사랑의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 환자의 주체는 미적 주체다. 그는 자기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101

[ ] 하모니는 관계다. 관계는 모두가 음악이다. 105

[ ] 삶의 향연이다. 너는 초대받은 손님이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가라. 119 생은 과정이지 미리 결정된 시스템이 아니다. 121

[ ]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슬픔의 셀러브레이션이다. 이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그건 무력한 상실감과 우울의 고통이 아니다. 그건 사랑을 잃고 ‘비로소 나는 귀중한 주체가 되었다‘는 사랑과 존재의 역설이다. 186

[ ] 선한 사람이 된다는 건 온전히 기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함이 사랑하는 정신의 상태라면 기쁨은 사랑받는 육체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194

[ ] ˝...허리가 아픈데 어떻게 바다 일을 하시나요? ˝늙은 해녀가 말한다.˝물질을 사람 힘으로 하는가. 물 힘으로 하는 거지....˝ 216

[ ]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꼭 간직할 것. 268


볕뉘.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작고소식을 듣다. 검색하다보니 그가 번역한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 그리고 아침의 피아노가 들어왔다. 두 권의 애도일기. 가까운 지인을 보낸지 해 반이 가까워온다. 아직도 여진이 있어 울컥거리기도 하고, 그 시장통을 지나면 못내 그립다. 벗의 말 가에 그가 걸리기라도 하면 그만.... 제목은 김진영고인의 책의 마지막 대목이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삶은 죽음 부근에서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두 편의 일기는 그 자장 속에 있는 슬픔이 삶을 얼마나 애잔하게 하고, 흔히 잊혀지는 삶의 농밀함을 다시 불러낸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함. 아니 분신이기도 했던 아들 바르트 역시 몇 년 뒤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게 된다. 그렇게 죽음은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마음을 여미며 밑줄을 옮겨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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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여우가 말했다.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지나지 않을 거야.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 ... 84, 85

[ ] 제발 나를 길들여 줘! 여우가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 나는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 수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어느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모두 상점에서 사지. 그러나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가 없지. 네가 친구를 갖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

[ ]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거야..... 의례가 필요해.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 있지 .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래서 목요일은 경이로운 날이지!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일에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그게 그거고, 내게는 휴일이 없을 거야. 86, 87

[ ]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집이나 별이나 사막이나 그걸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 아저씨가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그가 말했다.....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구 위에 그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 것은 없으리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달빛 아래서 그 창백한 이마, 그 감긴 눈, 바람에 흩날리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내가 여기 보고 있는 것은 껍질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렇듯 감동하게 만드는 것은, 한 송이 꽃에 바치는 그의 성실한 마음 때문이다....그의 가슴속에서 등불처럼 밝게 타오르는 한 송이 장미꽃의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더욱더 부서지기 쉽다는 걸 알아차렸다. 등불들을 잘 지켜야 한다. 한 줄기 바람에도 꺼질지 모르는.......그리고 나는 이렇게 걸어가 동이 틀 무렵 우물을 발견했다. 97,98

볕뉘

저녁밤 빗소리에 얕은 술을 했는데 취기에 휘청거렸다. 매운 고추를 먹어서인지 연신 눈물이 나기도 했고 빗길을 오는 길 불빛이 휘황해지기도 했다. 새벽에 눈이 떠져 밀린 책들을 책상에 옮기다가 그만 보게 되었다. 책 꼬투리를 접었다. 그리고 쓴다. 세상은 성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동화들이 성경이 되었으면 싶다는 말이 밀려왔다. 시간을 자라게 하고, 서로를 피우는 광경이 미학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이기도 하다. 그래 그래 그 같이 밑줄이 처진 그 구절을 읽어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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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 낡은 패턴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패턴 자체를 조금 더 의식하는 것이다. 6 누구나 알고 보면 깊숙한 문제가 있고 함께 살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직 잘 모르는 사람‘뿐이다. 이것이 고전주의적 접근법의 하나이다. 7 나의 관심사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끈기 있게 스스로를 분석하고 여러 가지 선택지를 시도해본 후에야 어떤 일이 나에게 ‘딱 맞는‘ 일인지 알 수 있다. 9

[ ] 본능을 따르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론은 사랑에 빠지는 상대가 나를 이상적으로 보살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이라 주장한다. ..어른이 되어 맺는 관계 안에서, 어릴 적에 아주 익숙했던 그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한다...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괜찮아서, 그러니까 왠지 매우 안정적이고 성숙하며 사려 깊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런 올바름이 낯설고 과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을 태우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하는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서 좌절감을 느끼는 편이 편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5, 36

[ ] 우리를 폭발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상처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57

[ ] 우리는 ‘사랑‘이 마치 하나로 이루어져 더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인양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사랑은 ‘사랑받기‘와 ‘사랑하기‘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계에 능숙해진다는 것은 기꺼이 사랑할 마음이 더 커지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신의 이상하고 위험한 태도를 더 많이 의식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69

[ ] ‘가정적인‘이란 말은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할 때 주로 반복되는 실질적인 문제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장보기나 냉장고 청소부터 사촌을 저녁식사에 초대해야 하는지 여부나 휴가 때 작년과 같은 곳에 갈 것인지 등이 포함된다...하지만 예술을 대할 때 쉽게 인정하듯이 세세한 부분이 중요하다. 원대한 주제가 뚜렷해지는 작은 지점이 바로 세세한 부분이다. 시인이 단어 하나 선택하는 문제를 두고 고뇌하듯이 말이다. 74, 75 우리가 작은 것에 분개하는 이유는 그 다툼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다. 다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다품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없다...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외교분쟁처럼 다루는 것이다. 76

[ ] 그리스식 애정관은 다른 무엇보다 상대방의 좋은 면과 뛰어난 능력을 흠모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가진 강력함이나 현명함, 친절함, 정직함, 재치, 혹은 아량을 접할 때 느끼는 설렘이라는 이야기다. 그리스인은 사랑이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반면에 낭만주의는 상대의 약점이나 문제점도 포용하고 심지어는 소중히 여기라고 말한다. 또한 이 이데올로기는 사랑하는 사람이 날 가르치려 든다는 구조 자체에 반감을 갖는다. 81, 82 하지만 우리는 어린아이나 동료에게 가르침을 줄 때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번 할 때마다 칭찬을 열 번 하고, 충분히 기다려주기도 하는 방법을 사용할 줄 안다. 83

[ ] 우리의 괴로움과 불안을 잠재울 해결책은 특이하게도 비관에 있다. 사실 비관은 무척 매력 없게 들리는 개념이다. 비관은 실패와 관련이 있고,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을 방해하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기대보다는 비관이 오히려 낫다. 89 서로가 실망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은 어떤 개인의 특별한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 명의 배우자는 그 사람만의 구체적인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어느 배우자든 똑같이 사람 미치게 하는 그만의 콤플렉스나 결정,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배우자에게 정말로 특별한 점은 우리가 그 사람의 가장 나쁜 면을 아주 잘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사람의 매력은 아직 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서 그 또한 우리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른다는 점에 있다. 93

[ ]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맞춰, 든든하고 온화한 태도로, 극적이거나 격앙된 감정 없이, 자신의 성격 중 가장 까다로운 면을 알려주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고는 마치 재난지역을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처럼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을 상대방이 겁먹지 않고, 이해심을 발휘하며, 적절히 대비하고, 어쩌면 용서하고 받아들이기까지 할 수 있도록 주의를 준다. 112

[ ] 결혼하시오. 후회할 테니. 결혼하지 마시오. 그래도 후회할 테니. 결혼을 하거나 안 하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세상이 어리석다고 비웃으시오. 후회할 테니. 세상이 어리석다고 슬퍼하시오. 그 또한 후회할 테니.....목매달아 죽으시오, 후회할테니. 목매달지 마시오. 그 또한 후회할 테니. 목을 매거나 안 매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오. 목을 매든 안 매든 둘 다 후회하게 될 것이오. 선생들, 이것이 모든 철학의 정수라오. 138

[ ] 혼자 살든 부부로 살든 모두 문제점이 있다. 혼자 살면 외롭고, 함께 살면 답답하고 화나고 불만스럽다. 우리의 관계가 어떤 상태이든 간에 아주 비참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결국 너무 급하게 부부관계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 말아야 하되,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144

볕뉘

안전. 상처받는 두려움. 한 칼럼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일터문화가 비교적 잘 유지되는 곳에는 안전함이 깃들여 있다고 말이다. 두려움으로 밀어부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안전으로 열려있다는 말. 어쩌면 우리 몸은 아직 구석기시대여서 본능적으로 낚아채려는 것은 안전에 대한 욕구인지도 모르겠다. 식욕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동물 역시 사람을 보면 느끼는 것은 두려움이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동물이 더 무섭다는 말. 그래서 사람도 평생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조직은 성과를 향해 밀어부치고 그 두려움을 은연중에 조장하지만 결코 잘된 방법이 아니란 걸 말이다. 어쩌면 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남을 만나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며, 그 거리없음을 거리있음으로 시작해보는 것이다. 역시 비관이나 체념은 많은 것들을 도드라지고 보이게 한다. 관계도 그렇게 조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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