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져/ 백날 해봐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복지 얘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야


TV 시청 하지 않은 지가 오래된다.  손석희 복귀 소문이 들려 일부 시청했다. 첫회에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이견을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 아 이런 합의가 가능한가 의아하기도 했다. 어제도 두 번째 좌담을 이어갔나보다. 혹시나 했는데 토론을 진행중이었다. 부동산에 대한 이재명-원희룡 토론 말미 부분을 보았다. 합의한 원칙을 지키는 것도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변이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어렵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어쩌면 십여년, 오년전을 돌이켜봐도 많은 진전이 있다 싶다. 보수는 위의 전략으로 지배하고 있다. 그 기본적인 전략자체가 민주주의도, 자유도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함유하고 있다. 그 절망의 바닥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늘 유효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저자가 진보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 역시 한쌍의 또 다른 극으로서 똑 같은 기능을 해왔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구도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좌-우가 아니라 상하-하상에 모든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정보를 통해 수정할 용의가 없는 집단들이 늘 힘을 더 많이 갖고 행사하고 있다. 


결국 어느 집단도 완전한 패권을 쥘 수 없다. 다원주의의 가능성이 그 부분한 부분들을 채워나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걸 뚫고가는 정치인들이 없고, 뚫고 나가는 사회단체나 정당세력이 없다는 것이 비극인 듯 싶다. 헤쳐나갈 일들뿐만 아니라 논쟁해나갈 꺼리들이 그토록 많은 것 같은데 합의에 바탕을 둔 덧셈의 정치를 제도권 내에서 보기 어렵다. 구태 역시 쥔 것을 놓치 않으려는 아둔한 유아의 땡깡같아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유난히 정치의 이분법 구도는 강하고 한 걸음 더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싶다. 깨시민들도 흡인하고 만들어갈 수 없는 덫을 놓은 듯 말이다.


 볕뉘. 저자의 책 가운데 사둔 것이 있었고, 중고 매장에서 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것도 다른 조직과도 연관된 것이다. 질문의 수준이 질문자의 시야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너머에 가 있지 않는 이상, 정치는 늘 옛날 질문만 가지고 살 것이다. 그러지 못하게 다른 질문들을 갖고 사는 이가 점점 늘어야 조금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다른 저작들도 챙겨봐야지 싶다. 조효제 교수는 이 와중에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글들을 쓰셨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 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 P226

플로베르는 한때, 만물이 순수 물질 아니면 순수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대립적인 두 철학 사조를 공격하기 위해 훌륭한 구절을 만들어 냈다. 그러한 단언들은 ‘두 개의 똑같은 불합리‘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 P227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진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의분에는 강하지만 풍자에는 약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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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노트 - 한달에 한번하는 유일한 모임인데, 올해는 온라인으로 몇 번, 대면 한 두번으로 마감하고 만다. 온라인으로는 한번 참여하고, 그 다음에는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 불참하였다. 오프와 온라인의 차이는 너무 크다 싶다. 지금은 또 갈림길이다. 가까이에 지내면서 오프만남의 장점을 십분 활용할 수 없다니, 온라인으로 만날 확률이 큰 이상, 자리를 고집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스민다. 

 

2. 화실 - 각자 그림을 그리는 이상, 커피 마시는 외에 접촉을 최소화하자는 선생님의 연락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지 않아도 책과 일터 마무리 일 때문에 일주일남짓 나가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책을 깊이 읽고 싶은 마음도 배이고, 한달 남짓 쉬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어정쩡하게 마음이 이렇게 헤매인다.

 

3. 판화 - 전시 마무리 영상을 오지 못한 샘에게 보낸다. 목판화에 유성잉크 작업으로 보였던 모양인지 맞느냐는 연락이다. 고무판화에 수성이라고 하자 무척 독특하다고 한다.

 

 

4. 페이스북 - 양쪽이란 것으로 구분될 수도 없지만, 사람들의 확증편향은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건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해서, 끝까지 명분을 잡아내려는 어떤 것이기도 하다. 하물며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더 사태는 커지는 것은 아닌가. 역으로 증명해내려고 말이다. 그게 인간이다. 정치는 게임으로 전락했고, 일상은 풍부하게 만들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는 서로 할 말을 잃고 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분기점이 있다면 빚지고 있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사건으로 더욱 다양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치가 잘했다면, 언론이 잘했다면, 검경판이 잘했다면, 다 더 성숙한 판단자라면 시간 속에 자신에게 맞는 것만 골라내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다른 것. 뭔가 보지 못한 것은 없는가 하고 자신의 유책 사유를 가다듬어 볼 것이다.  현 국면은 너무 안타깝기도 하다.  다이나믹 코리아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뭔가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라보기에 호흡하기도 쉽지 않다 싶다.


5. 상수 - 영화 <<밤의 해변에서...>> << ...그때는 틀리다>>를 본다. 솔직하지 못하거나 사랑받지 못할 이유라든가. 뭐 그 날선 자리들이 많이 잊혀졌다 싶다. 사람은 본디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이다. 다들 똑같애. 하지만 인간은 다른게 있다. 다중적이란 걸 인정하는 순간. 아니 그게 있어 사람이다. 아니 그제서야 제3자가 다른 인간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을까. 나-너의 악순환. 어쩌면 사랑이나 책이란 텍스트를 번거롭게 반추하는 것. 또 다른 해석의 실마리. 같은 착각은 줄이는 게 좋겠다. 영화다. 일상이 상수가 되어야 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당분간 쉬어주어야겠다 싶다. 화실 샘에게도 이야기하고, 페이스북도 그만하고, 책도 나누지는 못하고 원하는 만큼 읽기만 해서 넘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러단체 후원을 오늘자로 했다. 하지만 전년에 비해 많이 줄였다. 아쉽다 싶다. 그래도 더 열심히 숙고하면서 활동하시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날이 포근해서 봄날이다 싶다. 그래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야. 부재하는 신은 다가설 줄 아는가. 신은 참 내 안에 있다지..고집부리지 않고 확증편향이 아니라 의심다양할 줄 아는...그래서 더 달라지는....횡설해본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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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1-0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영화 좋아하세요 ^^
고무판화에 수성이군요. 독특한 느낌이에요.

여울 2021-01-01 21:18   좋아요 0 | URL
그렇진 않구요. 몰아서 보는 편이라서 ㆍㆍ감사해요
 

‘가난과 비‘

빗소리에 깨다. 너를 반겨도 너를 맞고 싶지는 않구나. 그랬다. 네가 중력 같아서 너만 발라낼 수 없다고 말야. 그래. 네게 그림자처럼 잠겨 있으면 온통 긴장투성이지. 과잉각성상태*라구. 그래서 달디단 음식들과 술과 약에 절어 살 수도 있어. 내탓네탓도 같이 버무려져 있어. 어항을 들려다 보기만 하거나 나만 잘한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란거야.좌우우좌의 문제가 아니란거야. 상하 하상은 늘 지금으로 튀어나오는 거지. 앞으로 잘해보겠다거나 관리하겠다거나 너만 잘하면 돼. 그런 갈래가 아니란 거야.

비가 와. 아주 많이 오고 있어. 단 한아이라도 그 스트레스의 늪에서 꺼내는 일. 삶의 비를 조금은 덜 맞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 그래 당장 고개가 꺾이거나 말라비틀어지는 식물에게 단비같은 정치행정경제**사회운화심리과학기술예술같은 것이 답이겠지. 지금이야. 그런 게 어디있냐고 묻지. 그런데 한결같이 답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야.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그리고 나이가 들어. 이건 중요하지 않아. 오늘도 우울하고 아프고 일자리를 잃고 빚이 늘어나고 월세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과 이런 부모의 긴장을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늘고 있단 사실이 더.

알맞은 비. 알맞은 삶. 누릴 수 있는 반려 식물과 동물보다 더 필요해.

*《가난 사파리》
**《좋은 경제학》

볕뉘.

밑줄을 긋고 옮기고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손쓰는 작업만 한다. 읽지 않고...물구나무서서 사진 찍어보기 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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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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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지난달 어린이어른어른이를 위한 그림동화를 본다

스스로에게
첫째도둘째도셋째도
이랬으면 좋겠다 한다.

아직도
설마 그렇진 않겠다 싶은데
이 선을 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혼자넘는 일은 그리 쉽지않아

같이
너머보잔 말이

다시 걸린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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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 2. 사적인 행복:기술의 발전은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면서 풍속과 자아에 대한 감정마저 바꿔 놓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술력은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고립시킨다/함께 살려면 존재해야 한다./글쓰기는 남들과 함께 사는 존재가 되도록 해주고 독서 활동과 자전적 글쓰기는 자아가 시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다/자아 속의 거주는 댐이나 교량처럼 견고한 장소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나 건축가의 욕망 같은 지배욕에 복종한다. 200

[ ] 사드라는 한 인간의 이름에서 비롯한 개인 현상인 사디즘은 구금에서 탄생했다. 사드 작품에서 정신착란의 발생 장소가 주로 섬이나 성채나 감옥이나 수도원 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

[ ] 근대적 인간이 사실상 기계를 통해 자연의 제약에서 해방됐다고 한다면,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신을 비춰볼 내면의 거울을 만들면서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한계에서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는 경향을 보인다./이처럼 개인의 혁명은 ‘개인주의‘라는 용어의 탄생과 함께 완성됐다. 개인은 운행하는 세계의 고유한 중심이다. 개인은 고유한 창시자이자 스스로 중심을 갖춘 작은 우주다. /개인을 정의 하는 것은 개인의 욕구와 욕망이다. 202, 203

[ ] 에고티즘 egotisme ; 에고티즘은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문학작품을 쓰면서 자아의 동반 현상을 맛볼 때 느끼게 되는 은밀한 내적 쾌락을 의미한다. 204

[ ] 니체가 자아의 신격화를 통해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죽은 신의 대체물이었다. 개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거기서 단지 허무만을 발견한 니체느 오로지 자아의 영원한 형성에서만 누릴 수 있는 황홀한 상태의 비극적 행복을 생각했다. 211

[ ] 욕망하는 개인은 혁명적이다.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돌게 하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68혁명은 욕망이라는 무한하고 매력적인 힘의 근원인 개인, 마치 항성과도 같은 이런 개인의 주위에 사회를 위치시키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213/ 68혁명 이후 교육의 관건은 아이들이 성숙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ㅏ는 데 있었다. 216


2.

[ ] 3. 상품화된 행복; 사드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욕망하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가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전복을 기도하고 자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며, 혁명적이기까지 한 존재다./시장경제 사회는 행복 개념의 공허함을 행복과 엇비슷한 이미지들로 대신 채워 넣는 데 열중하는 사회다. 219

[ ] 현대의 행복은 ‘행복해진다‘와 ‘행복을 직접 소유한다‘ 사이에서 동요하다. 220 행복은 점점 야만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최초에 행복은 소유보다는 전투와 승리의 쾌락과 더 밀접했다. 자본주의 경제 메커니즘의 호전적인 성격과 자본주의 경제 메커니즘이 세계를 지배하고 타자들을 짓밟는 과정에서 시장과 대김업이 탈취한 실질적인 행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기서 확인된다. 바로 이것이 오로지 경제에 정통한 몇몇 야수에게만 해단하는 변태적 행복이자 살인적 향유다. 221

[ ] 개인의 부르주아적 해방은 다른 형태의 행복이 가능해졌으을 의미한다. 개인의 부르주아적 해방과 동시에 인간은 행복에서 보편적인 특성들을 제거하기에 이른다. 222 정치의 목적이 국가에 속한 국민의 행복을 창출하는 데 있다면, 자본주의 정치가 보장하는 행복은 오로지 경제라는 우월적인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223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구성된 것은 시간과 돈의 동일성이다. 인간과 사회의 시간은 모조리 생산성과 소비와 효율성이라는 절대적 필요에 따라 작동한다. 시간은 그 자체로 돈이다. 이런 척도에 따라 미래의 번영을 약속하고 미래의 성장을 이뤄내려고 개인과 사회는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224

[ ] 물질의 마력 앞에서 상당 부분 퇴색하게 마련이다. 이제부터 안락의 추구가 행복의 추구를 대신한다. 225

[ ]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행복이 개인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마저 주입한다. 이제부터 개인에게는 보편적인 소비자의 위상이 있을 뿐이다. 개인은 상품이나 서비스, 이미지나 정보, 미리 정해진 감각, 학교나 정치, 심지어는 예술까지 소비하는 당사자가 된다. 227

[ ] 행복은 자본의 신용체계에 따라 기능하는 산업이 돼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 운동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행복을 손쉽게 열거할 수 있는 요소들, 즉 젊음, 건강, 성을 향유하는 행위로 축소했다. 228 현대인은 ‘젊은 세대의 취향‘을 숭배하고 이를 적극 실천한다. 229 대중문화의 신화에 등장하는 행복한 인간상은 항상 젊고, 여성은 늘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한다. 230 젊은이들의 독특한 개방성과 유연성을 특징으로 삼아 그들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그 기준은 바로 가벼움이다. 모든 구속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외양을 확보한 자아는 이제부터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양상을 띤다. 231

[ ] 몸에 집착하는 현상과 마찬가지로 유행에 집착하는 현상은 ‘실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하며 1960년대에 새로운 행복의 조건으로 등장한다. 233

[ ] 사생활이 개인이 급부상과 도약을 불러왔다면, 사생활의 부정은 니체가 예언한 자아의 소멸이나 외양으로 축소된 전체주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내적 삶의 파괴를 의미한다. 자신이 쌓아올린 성채는 이제 폐허 위에 고즈넉이 남아 있는 장식만은 아니다. 자기 욕망을 소비하지 않는 자는 사회에서 다시 교육되고, 개인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욕망의 표준화와 가치의 획일화에서 어떤 결론을 발견한다. 236

[ ] 식탁에서 음식이 아니라 영양분을 의식적으로 씹는다. 새롭게 등장한 이런 문제의 핵심에는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사는 데 대한 강박관념이 집중돼 있다. 239

[ ]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고 육체를 찬양하기에 이르렀으며, 가치와 외모에 대한 순응주의를 존재의 표지처럼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미용사와 약사는 정신분석가를 대신하게 됐고, 자신에 대한 지적이고 정신적인 염려는 규범적인 개인주의에 자리를 양보했다. 240 모나리자의 웃음이 내면의 의혹, 입술까지 차올라오며 현실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절대의 심연을 가리킨다면,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모델과 스타들의 웃음은 시민의 면전에 표출된 획일화된 질서를 형성한다. 이 경우, 행복은 하나의 임무이자 과제인 셈이다. ...웃음의 전제주의를 의미한다. 241 이 같은 거짓 행복을 위해 자아를 포기하는 것은 명백하게 언어와 사유 전반의 포기를 의미한다...상품화된 개인주의란 결국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되고, 겉치레와 가식으로 축소된 개인이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행복이 상품화에 직결돼 있다면, 행복은 우리 삶의 조직과 여가의 대부분에 속속들이 침투돼 있다. 242


3.

[ ] 4. 여가; 개인화나 개인주의가 발전해도 여가 사회는 자아의 완성 가능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이제 개인은 끊임없이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야 하고, 정신적 취약함으로 인해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자아를 치료하는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245 우리사ㅚ는 텔레비전을 통해 행복의 유토피아를 조작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전능한 신은 시청률로 대치된다. 모든 것은 현실과 단절된 채 미성숙한 부화 상태로 퇴행하는 것이다....우리는 정치가 조장한 무관심을 토대로 미리 가공된 행복만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251 인터넷상의 축제, 할머니들의 축제, 비서들의 축제, 할로윈 축제 등은 상품 숭배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가 정작 마음 깊이 꿈꾸는 것은 휴가 시간을 늘리는 일이며, 천국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종말을 영원히 구축하는 일이다. 252


4.

[ ] 5. 사소한 것들의 행복; ‘작은‘이라는 형용사는 ‘아주 작은 탄생‘ 같은 매 순간을 포착할 때 얻는 행복과 연관된 핵심 단어다. 작은 행복은 거대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자들이 고조시킨 위대한 저녁 무렵을 이어 받는다. 258 맥주 첫 모금의 맛. 절망은 행복의 또 다른 측면을 반영한다. 행복에 이르려면 인생의 우여곡적을 과감히 가로지를 줄 알아야 한다/행복을 느끼려면 온갖 종류의 원대한 희망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하며,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존하고 우리의 가시권에 포착돼 있으며, 우리의 내부에서 비롯된 것들을 원할 줄 알아야 한다. 친밀한 것들과 하찮은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259

[ ] 누구나 자신의 마술적 잠재력을 이용하거나 정의와 행복의 정복을 상징하는 조로 마스크를 쓰고 변장하여 자신이 놓여 있는 현실을 바꾸는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61 그들은 우리에게 연금술사가 될 것을,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전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262


5.

[ ] 5부 행복은 우리의 숙명이다. 경제 중심의 개발 개념은 계산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들, 예를 들어 삶이나 고통, 사랑의 기쁨 같은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개발의 유일한 만족ㄷ는 생산물과 생산성, 금전 수입이 보장하는 고도 성장에 따라 결정된다. 오로지 양적으로 정의된 이런 개념은 특질과 존재의 특성, 연대성의 특성, 환경의 특성, 삶의 특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269

[ ] 우리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하며, 양적이 아니라 질적인 인간관계에 기초한 행복으로 우리 자신을 개종시켜야 한다. 270

[ ] 미래 전망이 변함없는 관심사로 자리잡은 곳에서 현실은 구체적으로 나타나다. 현실은 완수되지 않은 세계에서, 실질적인 가능성을 구성하는 무한한 미래 없이는 변형될 수 없는 세계에서 전개되는 변증법적 과정의 구조를 이룬다. 272 우리는 헤겔에서 니체, 충직한 제자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프로이트에 걸쳐 환기된 바 있는 인격 개념이 무엇보다도 공격성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74

[ ] 인성학은 오늘날 인간이 살아남으려면 경쟁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행동에 협동의 논리 또한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존속하고 발전하는 데 타인이 필요한 사회적 존재다. 사랑 없이는 갓난아이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발전도 불가능하다. 우리의 삶은 ‘관계의 기호 체계 안에서‘ 형성된다. 275 분리된 지식을 연결하고 결속하는 사유는 인간을 결속하고 연대하게 하는 윤리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276

[ ] 낙원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신으로부터 해방됐지만 이마에 흘린 땀의 대가로 빵을 구해야 할 운명에 놓인 인간이 행복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실마리를 찾게 된 계기는 바로 이 추락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추락은 그 자체로 성찰적 의식을 통해 삶에서 행복을 찾게 되는 진실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279

[ ] 행복하다는 것은 삶에 대해 믿음이 있는 상태를 말하고, 세계를 존재의 매혹처럼, 기쁨과 선택의 징후처럼 발견한다는 것을 말한다. 행복bonheur이라는 단어는 선한 의미의 bon과 징조 또는 징후를 뜻하는 라틴어 augurium에서 온 heur의 합성어다. 행복은 좋은 기회이 징후를 의미한다. 280


6.

[ ] 진정한 행복의 철학은 단순히 행동의 철학이 아니라 존재의 철학이다. 281

[ ] 공존이야말로 행복으로 개종에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철학, 정치, 관계의 형이상학을 다시 정립하는 일, 인간이 함께 산다는 것을 축하하는 새로운 향연을 준비하는 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282

[ ] 각자는 행복의 집결지인 ‘앞서 형서된 세계‘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세계와 우리 정신을 연결하는 다리를 발견해야 한다. 천국으로 향하는 자기만의 길을 그려봐야 한다. 천상 여행을 구상하는 각자의 미로를 만들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의 위대한 책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288 자기만의 신성한 장소에서 삶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다시 느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세상을 통해 온몸으로 느끼는 열정을 느껴야 한다....산스크리트어에는 초월성의 문턱과 우리를 천복에 잠기게 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세 가지 용어가 있다 sat, chit 그리고 anada가 그것이다 sat는 ‘존재‘를, chit는 ‘의식‘을, 그리고 ananda는 ‘지복‘을 의미한다. 289

[ ] 모든 예술 작품에는 그 작품에 몰두한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는 아침의 도래를 알리는 신선한 바람의 숨결이 있다. 290

[ ] 나는 모든 존재가 행복의 숙명을 가졌음을 보았다. 292

 

 

볕뉘.

 

조재룡평론가의 번역이다. 시간이 없다면 옮긴이 해제를 보시면 되고, 저 처럼 읽고 싶은 장에 집중하시면 될 듯싶다. 하지만 천천히 음미하시는게 더욱 좋긴하다. 철학자들을 또 다른 시점에서 보기도 하고, 시인의 울림들을 다시 삼켜보기도 하는 일이기때문이다. 포스트코로나 말들을 많이하지만, 행간에도 언급하듯이 추락의 경험은 나의 삶들과 구체적으로 이어지기도 해야 한다. 남들의 말들을 쫓다보면 역시나 지금까지 쫓기듯이 그러고 말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행복은 아주 작게 작은 곳으로부터 생기기 마련이다. 작은 씨앗처럼, 씨앗에 상처를 살짝내어 싹을 틔어보는 일, 당신의 행복도 또 다른 삶도 시작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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