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알라딘에는 리토피아 <<돌이나 물이나 그런>>시집을 구할 수가 없다.(곧 되겠죠. 감사) 


 -1. 구월의 이틀 삼일이 지나자 찬기운이 느껴진다. 얄팍한 마음은 벌써 몸의 길로 깊숙히 들어가 겨울초입까지 간다싶다. 오늘 구름도 하늘의 파랑도 부지런해 아름답다. 


-2.  다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춘도 지났다.(아직도 그런 부류들이 많기는 하지만, 남시인은 시 한가운데에서 '라떼'라고 꼰대에게 막대기를 들이대기도 한다. 83p)평균적인 남성의 삶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수 많은 언어들이 이에 적합하게 일대기에 맞춰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시인의 말은 그들을 닮지 않았다.  


-3. 그는 철저히 식물성이다. <<상처를 만지다>>란 시집.(알라딘에서 검색할 수 있겠죠.)에서 태초에 빛이 아니라 태초에 상처가 있었다라고 선언(105p)한다. 상처로 우리의 언어들이 회자되고 사유할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시집의 행간을 읽어보면 시인은 식사시간이 길 수 밖에 없으며, 평균적인 한국 일터 생활인들과 사뭇  먼 가장자리(그제서야 보이는, 53p)에 자리잡고있다.


 1.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시집이 도착해 푹 빠져든다. 제 1부는 호주(戶主)(15p)로 시작해 여성성 강한 시들로 가득하다.(박은옥 41p) 小史(22p)에서 여자는 언제 죽었나라 물으면서도 어머니의 삶이 한번 더 언제 죽었는지 되묻고 있다. 시인의 여성성은 그저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표준적인 남성상으로 느낄 수 없는 잔잔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여기저기 박히고 기록해두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시인의 말, 7p)


2. 이 시집에서는 또 다른 그의 습관? 아니 그의 삶에서 기면과 얽혀있는 부분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바닷가 우체국장님의 점심일과가 그려지기도 하는데, 시인은 주류에서 벗어난? 식습관의 차이와 불쑥 몰려드는 잠을 소재로 삼는다. 


3.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코로나(제3부)를 반추한다. 정상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터에서도 몇 분이 세상을 등지기도 하고, 아주 가까운 현장대장님이 바이러스성 신경염으로 재활에 전념중이기도 하다. 누님도 완쾌되긴 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정기관이 문제가 생겨 몇 달을 고생하기도 해서...끊임없이 정상이란 무엇일까 되묻게 되기도 한다. 환자이거나 환우. 다르다는 스펙트럼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단어까지 폭 넓다. 왜 그렇게 부류짓거나 편(편먹다, 112p)을 먹으려 하는 것인지. 그냥 다른 체로 놓아두질 않는다. 서로 다른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중심에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노력만이 삶인 줄 아는 우리들은 스스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 가장자리에 서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자리에 서 있는 분들로 출렁거리는 것이다. 아플 것이다. 나이들 것이다. 차별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4. 60대초반의 은퇴한 남성. 여러분의 선입견은 어디에 걸려있는가? 그는 부지런히 꼼꼼히 읽고 전시들을 세세히 챙기고, 그 흔적들을 치밀하게 남긴다.  그는 언제부터 그렇게 살았을까. 시인은 사랑(98p)이란 시에서 그 비밀을 밝힌다. 밥상머리에서 불현듯 터지던 기도가 언제부터 "사랑합니다!"로 바뀌었다 한다. 구하지 않고, 기구하지 않고 애愛써 살았다 한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부지런한 시인의 일상은 곁에서 보기에도 남다르다. 깊이 반짝인다.


덧글.  제 5부는 80년대에 쓴 시로 이루어졌는데, 꺅꺅(185p)부터 각별한 내공이 느껴진다. 시에 대한 사랑이 남다름은 물론 출구(7p 발견하는 언어, 52p 그제서야 보이는 76p 이튿날 새벽)를 간간히 남겨두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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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리좀은 단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차원들 또는 차라리 움직이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난다. 리좀은 n차원에서, 주체도 대상도 없이 고른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들을 구성하는데, 그 다양체들로부터는 언제나 <하나>가 빼내진다(n-1). 그러한 다양체는 자신의 차원들을 바꿀 때마다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리좀은 일종의 반계보이다. 그것은 짧은 기억 또는 반기억이다. 리좀은 변이, 팽창, 정복, 포획, 꺾꽂이를 통해 나아간다.


0. 


어제는 어류도감 관련 책들을 보려고 간만에 도서관 종합열람실에 들르다. 옛 기억들이 올라온다. 그래도 신간과 제법 많은 책을 보고 나눈 곳.인데 전집류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도서 끝 부분, 나무와 새 가운데서 겨우 몇 권만 추려서 볼 수 있다. 아쉽다. 


1. 


<<천 개의 고원>> 서론:리좀 말미 코멘트를 달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렇게 이어간다.  나무라는 개념에 들뢰즈 가타리는 경끼를 일으킨다. 씨앗을 심다니. 그 비유의 사유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개념과 무관하다고 한다. 식물 관련 동영상을 보다나면 잎을 잘라 감자 편에 꽂아 심거나 과일나무를 다른 가지에 삽입하여 랩핑하여 키우는 장면들을 보고 있다. 따로 모아볼까 하지만 아직 시도는 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말미 핵심개념인 리좀을 이렇게 시작한다.


51. “말하자면, 나에게 닥친 모든 것은 뿌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중간의 어떤 지점에서 온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붙잡도록 애써라, 그리고 먼저 줄기의 중간에서 자라기 시작한 풀을 붙잡아 거기에 붙어 몸을 지탱하도록 애써라”......사물들이나 말들 속에서 풀을 보기란 쉽지 않다(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포리즘은 “반추”되어야만 하며, 고원은 거기에 서식하는 하늘의 구름과도 같은 암소들과 분리될 수 없다).


2. 


그 리좀 개념이 바탕에는 중간이 있다. 중간을 잡아라. 애써라. 어제는 이 대목때문은 아니지만 달개비를 들여다보니 마디마디마다 잔뿌리들이 남아 있다. 고개를 쳐든 외모만 보다가 이리 얼기설기 엮어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은 것이다. 씻고 말리고 젤리판에 올려 작업을 해본다. 여러 장을 해 보았지만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53 역사가 유목을 이해한 적은 없으며 책이 바깥을 이해한 적도 없다. 오랜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국가는 책의 모델이었고 사유의 모델이었다. 로고스, 철학자-왕, 이데아의 초월성, 개념의 내부성, 정신들의 공화국, 이성의 법정, 사유의 공무원, 입법자이자 주체인 인간, 세계 질서의 내부화된 이미지로서의 국가, 인간을 뿌리내기게 했다는 국가의 오만 방자함. 그러나 전쟁 기계와 바깥의 관계는 또 다른 “모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배치물이다. 사유 자체를 유목민이 되게 하고, 책으로 하며금 모든 움직이는 기계의 한 부품이, 리좀의 줄기가 되게 하는 배치물이다(괴테 대 클라이스트와 카프카).


3. 


클라이스트가 여기서 언급이 많이되는 작가다.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인데, 작품들을 본 적이 없어 희곡선을 주문해둔다.  세상은 복잡하다. 복잡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것을 참지 못해 이념으로 잡아두거나 내식대로 막무가내로 가는 것은 시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늘 반복되지만 배치물이라는 것. 연루된 것의 확장. 그렇게 예민해지는 것이 인식의 오만이나 존재에 대한 차별을 너머 세심함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연민하게되는 윤리라는 것이 생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인이 인식이 존재론이나 인식론에 사로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존재론이나 인식론에서 진리를 추구하면 늘 공부를 새로 하듯이 영점으로 세팅해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론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중간, 지금 여기를 얘기하는 것이다.


54 n에서, n-1에서 써라, 슬로건을 통해 써라. 뿌리 말고 리좀을 만들어라! 절대로 심지 말아

라! 씨 뿌리지 말고, 꺾어 꽂아라! 하나도 여럿도 되지 말아라, 다양체가 되어라! 선을 만들되, 절대로 점을 만들지 말아라! 속도가 점을 선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빨리빨리, 비록 제제리에서라도! 행운선, 허리선, 도주선. 당신들 안에 있는 <장군>을 깨우지 마라! 올바른 관념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관념을(고다르). 짧은 관념들을 가져라!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지도를 만들어라. 핑크팬더가 되라, 그리고 당신들의 사랑이 여전히 말벌과 서양란, 고양이와 비비만 같아라! 



4. 


고다르를 이미 호출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장 뤽 고다르. 삶이 마무리까지 영화같은 신비로움을 넘어 일관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글쓰기 방법은 매여있지 않다. 슬로건은 슬로건만이 아니라 다른 개념들로 이어진다. 불쑥불쑥 꺾꽂이 하는 모습은 책이 말미까지 이어진다. 학문이라는 책이라는 보고서라는 틀로 우리는 늘 완결성을 고집한다. 그림 또한 인상보다는 사실화에 가깝게 남기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면에서 방법까지 분기되어야 한다. 그 가짓수가 많을수록 많은 느낌들을 남길 수 있다. 잘 쓰려고만 하지 다르게 쓰려고 하지 않는다. 간절함들은 어느 순간 다른 모습들로 만날지도 모른다. 말벌과 서양란처럼, 제 모습을 닮게 할 것이다. 닮고 싶은 것들을.



55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어디를 향해 가려 하는가? 이런 물음은 정말 쓸데없는 물음이다. 백지 상태를 상정하는 것, 0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 시작이나 기초를 찾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행 또는 운동에 대한 거짓 개념을 함축한다. 여행하고 움직이는 다른 방법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과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내지 않는 것이다....중간은 결코 하나의 평균치가 아니다. 반대로 중간은 사물들이 속도를 내는 장소이다. 사물들 사이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거나 그 반대로 가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와 다른 하나를 휩쓸어 가는 수직 방향, 횡단 운동을 가리킨다. 그것은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이며, 양 쪽 둑을 갉아내고 중간에서 속도를 낸다. 


5. 


어디서 시작할 건데, 어떻게 할 건데. 막히면 되묻는 것이 이것이다. 질문이 탐탁치 않은 것이다. 중간은 그냥 가운데가 아니다. 속도를 내는 곳이라고 한다. 점이 아니라 선, 물결과 물결이 만나는 곳이다. 하나의 재료와 다른 재료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이 바로 고원이다. 천 개의 고원이란 당신이 가까이온 그 개념이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정치이자 삶이자 윤리존재인식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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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늦게 국정감사를 보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다. 밤 늦도록 잠을 설치며 봐야했다. 불편한 감정들이 선을 넘어 분노로 삐죽삐죽 솟는다. 아니오라는 질문을 받아안을 수 없는 조직. 오로지 예스!예스!만이 있는 조직. 항공기 사고의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로 권위주의를 든다. 부장과 부기장. 아니오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아니오를 감히 들을 수조차 없는 비행기는 늘 참사로 이어진다.


-1.1 


안타깝게도 행정부가 행정을 모르고 기관장은 책임과 권한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다. 말맞추기는 물론 공무원들의 변신이 위의 장들이나 문화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부디 엉뚱한 곳으로 엉뚱한 피해를 주는 자살특공대가 아니길 바란다. 모든 것을 지우려는 칼춤처럼 보인다. 과학이라고 과학만 믿으라는 철지난 반복. 과학 곁에 붙은 하이픈 -과학- 이 가진 팔들이 보이지 않는가. 미래세대와 인류에게 대놓고 이렇게 해도 된다는 "지구에 묶인 자"들에게 상징적으로 물먹이는 날이자 분기점. 치욕의 날에 한 몫을 했으니 말이다.



0. 


일터 정례회의를 마치고 조금 일찍 나선다. 저 멀리 올라오고 있다는 태풍의 경로가 걸린다. 예민하다. 서문을 읽고 완독을 찜한 책이다. 


0.1

 사실 1장은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읽었다. 몸문화연구소 저작의 애독자이기고 한데, 넘 밀도가 떨어진다 싶다. 어떡하지. 읽어야 돼 말아야 돼. 긴장하지 마시라. 그 다음도 이 장을 포함하여 술술 읽히고 용어수준이나 사유전개 수준도 맞추어놓아서 일괄되게 읽을 수 있었다고.


0.2 모든 피조물의 존엄. 평평한 존엄론도 좋다. 법적 검토는 간략하지만 설득력이 있다 싶다.



1. 


인류에겐 공산당선언의 울림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유령의 출몰을 알리는 신호. 그 총성으로 인간은 접힌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좌파의 시각은 여기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주요한 텍스트로 삼는 피터싱어의 '종차별주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이 마르크스에 못지 않은 절규라는 걸 눈치채는 좌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2.


 라투르는 과속방지턱을 예로 들면서 높이와 넓이 속도 등등 법-어린이-자동차-문화-경제-기술 -등등 수많은 것이 연루되어 있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가 행위자란 개념으로 얘기하는 것은 환원주의가 낳은 병폐때문이다. 그 사유에서 풀려나오지 않으면 주위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진보 역시 참이라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는 족쇄에 메여서 이리 헤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위 수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생태막으로 둘러쌓인 여기가 지구다.


3. 


지구공학 편에서도 이런 팔달린 사유를 적극적으로 펼쳐줘서 고맙다라는 느낌이다. 과학만능주의하는 신화에서 애써 나오려하지 않는다. 그 알은 얼마나 단단한지 깃발만 세우면 우르르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이 우리이기도 하다. 달나라에 태극기를 꽂자라니...이미 여기는 산불화염이 난무하는데 말이다.


4.


 이 책들도 소환해주어 감사드린다. 윤리-존재-인식론, 윤리존재인식론은 우리의 인간우선주의 종차별주의 사물객체주의에 젖어있어 그 선입견과 편견을 깨나가기가 무척 힘들다.  천동설론자와 지동설론자의 공유된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다.  사회의 퇴행을 보거나 맥락이 더 없어지는 자들의 출현은 더 어렵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그토록 확신에 차 역사인식에 문제가 없다고 하고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자만감을 보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


5. 


전반적으로 적정한 분량에 주제들이 밀도있게 전개되어 읽는데 불편함이 없다. 특징적인 메시지나 SF흐름까지 짚어주어 읽고 싶

게 만든다.






0.3 선택하거나 하나 하나의 동선에 출렁거리는 슬픔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지구-사회적계급'이다. 새로운 인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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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914년(1915년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관하여>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의 차이를 다루고 있다.)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라는 제목을 달고 2장은 시작한다.  겨울눈밭에 늑대의 발자국 흔적. 이 있는 사진과 함께.


1. <<앙티오이디푸스>>에서 이 무의식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천 개의 고원>>이 만들어진 이유를 여기에 쓴 것이다. 그러니 가장 핵심적인 장이기도 하다.(물론 그는 반대할 것이다. 다 중요하다. 다 필요하다. 고무줄뭉치의 한 올을 당기면 그 긴장이 느껴진다. 어느 줄을 당기든 말이다.)


2. 프로이트는 환원주의자다. 모든 것을 거세로 몰아가는 자. 무의식을 열어버린 자이긴하지만 교묘하게 닫아버린 자이다. 


3.

발리바르를 비롯해서 알튀세르 사단?에는 <자본론>읽기 모임이 있었다. 그런 연유뿐만이 아니라 그 사유의 바탕에는 마르크스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라이히의 문제의식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이 이론에 접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봐야한다. 알튀세르는 궁금했다. 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똑같은 인간들이 재생산되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가 얻은 소결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울을 앓을 수밖

에 없다. 우울증, 신경증, 번아웃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의식이 만들어진다. 성과와 목표를 향해가는 눈옆을 가린 경주마의 비참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양산되는 우울의 무더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고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체 내팽겨쳐지고 있다. 그(녀)가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무의식의 그물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증상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모호함이 시대를 관통한다.


4. 들뢰즈 가타리는 그런 연계 상에 있다. 이 책 곳곳에 그는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불러낸다. 이 책 <늑대인간>을 잘 읽어내야 한다. 그러면 절반은 온 것이다. '정신분석'이 아니라 '분열분석'이라고 하는 이유를 눈치챈다면 말이다.


5. 무의식은 생성되는 것이다. 이 점을 말하고 싶다 그들은. 그래서 무의식조차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던 것이다.

65 충분히 무리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바깥에, 아주 먼 곳에 존재하기. 버지니아 울프류의 가장자리에 있기, 또는 산책하기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라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

67 무의식의 문제는 확실히 생식과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오히려 서식, 개체군과 관련된다. 그것은 땅이라는 충만한 몸체 위에서 일어나는 세계적 개체군의 문제이지 유기체적인 가족의 생식 문제는 아니다.

68 끊임없이 변화하는 저 나누어지지 않는 거리, 그 요소들이 매번 본성을 바꾸지 않고는 나누어지거나 변화되지 않는 저 거리. 다양체의 요소들이 갖고 있는 내포적 성격이자 그 요소들의 관계가 갖고 있는 내포적 성격이 아닐까? 이는 마치 속도와 온도가 속도들이나 온도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매번 본성상의 변화를 표시해주는 다른 속도들과 온도들 안에 감싸여 있거나 다른 속도들과 온도들을 감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양체를 측정하는 원리는 다양체 내에서 작용하는 힘들 속에서, 다양체를 점유하는 물리 현상들 속에 있으며, 정확히 말해 내부에서 다양체를 구성하며 또 그때마다 가변적이고 질적으로 판이한 흐름들로 나뉘는 리비도 속에 있다.

69 <늑대>, 그것은 무리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영으로부터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 매 순간 각각의 거리들은 분해할 수 없다 - 어떤 순간에 특정한 형태로 포착된 다양체이다. 영, 그것은 늑대 인간의 기관 없는 몸체이다.

69 무의식이 부정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무의식에는 부정적인 것이 전혀 없으며 영점에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무한한 움직임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점은 결코 결핍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받침대와 앞잡이로서의 충만한 몸체의 긍정성을 표현한다.

75 어떤 군인은 늑대가 되고 어떤 군인은 개가 된다. 두 가지 다양체 또는 두 가지 기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하나의 동일한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복합체(=콤플렉스)"에 대응하는 언표들의 집합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신분석은 우리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오이디푸스, 오로지 오이디푸스. 왜냐하면 정신분석은 아무 말도,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은 모든 것을, 즉 군중과 무리를, 몰적 기계와 분자적 기계를, 모든 종류의 다양체를 으깨어 납작하게 만든다.

79 먹이라는 오이디푸스적 장치,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기, 또는 썩은 고기를 처리하기 위해 먹어치우기. 재칼들은 문제를 적절히 제기한다. 그것은 거세의 문제가 아니라 "청결"의 문제이며, 욕망-사막을 시험하는 문제다. 어느 쪽이 이길까? 군중의 영토성이냐 무리의 탈영토화냐? 리비도는 극이 상연되는 기관 없는 몸체에 다름 아닌 사막 전체를 적시고 있는데.

80 개인적 언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전혀 없다. 모든 언표는 기계적 배치물, 다시 말해 언표행위를 하는 집단적 행위자의 산물이다.("집단적 행위자"란 말은 사람들이나 사회가 아니라 다양체를 의미한다.) 고유명은 개인을 지칭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 개인이 자신의 진정한 고유명을 얻는 것은, 가장 엄격한 몰개성화가 실행되고 난 후에 개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다양체들에 개인이 열릴 때이다. 고유명은 다양체에 대한 순간적 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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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러 일정이 겹친다. 중학교 가는 마지막 계단길.(이사 온 곳에서 이리 가까운 줄 몰랐다.) 어머니와 산책도중 발견하다나니 여러 느낌들이 올라온다. 하루의 밤. 어머니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내려오는 길 대부분이 매진이다.(그 와중에 누가 부르기에 돌아섰더니 논산에서 올라오는 지인이다.) 버스를 예매하고 취소하고 기차를 다시 탈 수 있어 다행이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제법 편안하게 다음 일정으로 합류하다.


1. 대전 미술관, 머물기로 한 초정행궁 부근의 '운보의 집'을 잠시 들르다. 그리고 예술공장두레 주관 마당극도 관람하다.(제19회 농촌우수마당극큰잔치)


 2. 백팩에 넣은 책들이 제법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로 견딜만 하다. (아무래도 라이딩의 힘인 듯.) 올라가는 길에는 기차 안에서 랭보가 손에 잡혔고, 불암산 그늘이 좋은 집에서는 <<인류세의 윤리>> 개요가 잡힌다. 대전으로 내려오는 길엔 <<생물학의 쓸모>>가 남은 동선에서 <<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이 손에 맴돌아 버린다.




3. 2박 3일이 2박5일처럼 길게 느껴진다. 많은 시간 책담과 삶담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추스려진다. 두 책이야기를 안주삼아 전하고 나누다보니, 초연을 한 <산막골돌각시> 마당극의 늑대인간하고 겹쳐 놀란다.  의상 예술가의 <외줄타기 광대>의 옷만들기 이야기를 하다가 외줄타는 곡예사의 단편소설 얘기로 번졌고, 갇혀있는 삶들에 대한 나누기로 이어진다.


4. 청원은 무척 크고 넓다. 상당산성 휴양림에서 일박은 호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슬란드 여행객들의 놀라움과 경험을 식기 전에 맛보는 기분이기도 하다. 책여행한 경험을 찾아내느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결국 찾아내었다.



5.

가만히 있으면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더 기묘하고 짜릿하기도 하다. 몇주전 다녀온 피렌체는 다른 여행객들이 겪지 못하는 날 것들을 오히려 많이 얻었을 것이다. 벽에 붙여둔 지명을 자꾸 보게 된 일도 그렇고,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정말 다르다. 책여행을 하면서 꼭 가고 싶다는. 인구 30만. 갓난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는. 지인들 입여행에 그만 부러워졌다.


6. 맥락이 없는 자들의 대거 출현을 저지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스토리와 맥락을 짚어주는 자들의 출현이다. 뭐라도 하자. 시간이라는 외줄을 걷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좁고 비좁은 외줄에서 충분히 곡예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넓히고 뛰어노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없는 것이 아니다.


-1. 벗이 빌려간 책이 다른 이에게 옮겨진다는 소식이 왔다. 한 권은 정말 잘 봤고, 한 권은 어려웠지만 다른 이가 좋아할 것 같아 건넨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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