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비가 오면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몸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미동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44

 

그의 집 지붕 위엔

 

그의 집 지붕 위엔 두 개의 첨탑이 솟아 있었다

아버지, 하고 그는 큰 소리로 불렀다

 

폐가 앞에서 삼 년을 기다리다가

그는 또 걷기 시작했다 자기를 무너뜨리며

 

온종일 그는 걸었다 자기를 무너뜨리며

다시 걸었다 어두운 궁륭에선 태아처럼 꼬부리고 잤다

일어나 다시 걸었다

 

좋은 약도, 사랑도 소용없이

그는 걸어갔다 열덩어리 해가 꺼지지 않는 길을 68

 

세월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강이 하늘로 흐를 때,

명절 떡쌀에 햇살이 부서질 때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갔다

흐르는 안개가 아마포처럼 몸에 감길 때,

짐 실은 말 뒷다리가 사람 다리보다 아름다울 때

삶이 가엾다면 우린 거기

묶일 수밖에 없다 16

 

푸른 풀이여

 

푸른 풀이여

풀 위에 누운 두려움이여

내가 죽고 무엇이 더 죽어야

푸른 네 줄기가 꺾이겠는가

 

푸른 풀이여

어느 시대, 어느 고을에서도 멀리

무덤 뚜껑을 열고 보는

완강한 물결이여

 

어는 세대로부터

배다른 다른 세대로까지

물결치듯 너울대는

무겁디, 무거운 어깨춤이여

 

자꾸만 안으로 감기는 푸른 눈썹이여

잦아들지 않는, 잦아들지 않는 푸른 경련이여 39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

 

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 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41

 

그대 위의 푸른 나뭇가지들

 

그대 위의 푸른 나뭇가지들

그 위로 밤,

그 위로 하늘, 갈라터진 별들

 

마음의 갈기가 잔잔히 흔들리고

잊혀진 곳에서 수문 열리는 소리

 

그대가 헤매는 거리를 다 헤매고

마침내 그대 자신을 헤맬 때

기다리라, 기다리라

 

기적처럼 떠오를 푸른 잎사귀 58

 

오래 고통받은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은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71

 

환청일기

 

붉은 열매들이 환청의 하늘 위에 시들고 있다

나는 들지 않는 칼을 들고 내 희망을 자른다

내가 귀기울일 때마다 그들은 울음을 그친다

 

우리의 그리움 뒤쪽에 사는 것들이여,

그들은 흙으로 얼굴을 뭉개고 운다 74

 

밤이 오면 길이

 

밤이 오면 길이

그대를 데려가리라

그대여 머뭇거리지 마라

물결 위에 뜨는 죽은 아이처럼

우리는 어머니 눈길 위에 떠 있고,

이제 막 날개 펴는 괴로움 하나도

오래 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대여 지나가는 낯선 새들이 오면

그대 가슴속 더운 곳에 눕혀라

그대 괴로움이 그대 뜻이 아니듯이

그들은 너무 먼 곳에서 왔다

바람 부는 날 유도화의 잦은 떨림처럼

순한 날들이 오기까지,

그대여 밤이 오는 쪽으로

다가오는 길을 보아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길이

그대를 데려가리라 82

 

이성복이 그린 화자 나의 삶의 도정은 통과 제의적 도정이다. 치욕적인 삶, 죽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저 세계로의 길 떠남, 되돌아옴이라는 네 단계의 도정은 시련과 극복, 죽음과 재생이라는 통과 제의의 도정이다. 그것은 삶의 표면에서 일어난 도정이며 동시에 삶의 내부에서 얼어난 도정이다. 그 도정은 그것이 시작과 종말을 같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사적 도정이다. 서정적 자아는 회상의 달무리 속에서 삶과 삶을 이루는 사물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통과 제의적 도정은 서정적 도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의 선적 움직임에 관련되어 있는 도정이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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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싸움의 기록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씨발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어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법도 없는 동네냐 법도 없어 법도 그러나 나의 팔은 죄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55

 

그 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63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어느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비는 잠들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재벌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된다 어느날 가자기 새는 갓낳은 제 새끼를 쪼아먹고 캬바레에서 춤추던 유부녀들 얼굴 가린 채 줄줄이 끌려나오고 어느날 갑자기 내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거나 문단에 데뷔하거나 미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어느날 갑자기 벽돌을 나르던 조랑말이 왼쪽 뒷다리를 삐고 과로한 운전수는 달리는 버스 핸들 앞에서 졸도한다

 

어느날 갑자기 미루나무는 뿌리채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까지고 어떤 노래는 금지되고 어떤 사람은 수상해지고 고양이 새끼는 이빨을 드러낸다 어느날 갑자기 꽃입은 발톱으로 변하고 처녀는 양로원으로 가고 엽기 살인범은 불심 검문에서 체포되고 어느날 갑자기 괘종시계는 멎고 내 아버지는 오른팔을 못 쓰고 수도꼭지는 헛돈다

어느날 갑자기 여드름 투성이 소년은 풀 먹인 군복을 입고 돌아오고 조울증의 사내는 종적을 감추고 어느날 갑자기 일흔이 넘은 노파의 배에서 동덩이 같은 태아가 꺼내지고 죽은 줄만 알았던 삼촌이 사할린에서 편지를 보내 온다 어느날 갑자기, 갑자기 옆집 아이가 트럭에 깔리고 축대와 뚝에 금이 가고 월급이 오르고 바짓단이 튿어지고 연꽃이 피고 갑자기, 한약방 주인은 국회의원이 된다 어느날 갑자기, 갑자기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갑자기, *이 서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주민증을 잃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까먹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 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 알들이 꿈꾸며 흙 한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72

 

몽매일기

 

1

한 시대의 여물인 고통과 한 시대의 신발인 절망감 너는 나는 물이요 웃는 물이요 너는 표현할 수 없었다 한 시대의 비행과 한 시대의 불혹증을 한 시대의 길가에서 너는 사랑의 편지를 주웠지만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너는 사망했다 그리고 먹고 마셨다 한 시대의 습기와 한 시대의 노린내를 너는 두 개의 입으로 토해 냈다 자고 나면 햇볕에 이불을 말리고 떠벌려 입을 말리고 시들어 갔다

 

2

처음엔 물건이 사라지고 다음엔 물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한 세대가 오고 또 한 세대가 간다 처음엔 비 맞은 성냥이 안 켜지고 다음엔 비 맞은 해바라기가 빛난다 끔찍하다 비 맞은 공포여, 웃음과 신음의 화촉

 

어떻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어떻든 살 수 없다는 마음을 업고 발바닥이 땅을 업고 그림자가 실물을 업고 쓰레기가 밥상을 업고 입이 자꾸만, 항문을 빨고

 

천국은 유곽의 창이요 뜨물처럼 오는 희망, 희망 - 늙은 권투 선수

 

처음엔 고통이 사라지고 다음엔 고통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뒤집힌 눈, 잔물결 지는 눈썹, 영화는 끝났고 다시 시작된다

 

3

거룩한 거룩한 거룩한 지연 지루한 사랑 마음이 물질이 될 때까지 견디기 못 견디기 고통은 제가 고통인 줄 모르고 고통은 제가 고통인 줄 미처, 모르고 여기는 아님 여기서 기쁨까지 거리, 파동 여기서 죽음까지 거리, 파동 껴안은 사람들 사이의 무한한 거리, 파동 여기는 아님 여기 있으면서 거기 가기 여기 있으면서 거기 안 가기 여기는 아님 거기 가기 거기 안 가기 여기는 아님 피는 강물 소리를 꿈꾸기 달맞이꽃, 노오란 신음 소리를 꿈꾸기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부르기 다른 고통이 대답하기 대답 안 하기 대답하기 여기는 아님 78

 

아들에게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사랑을 배웠다 폭력이 없는 나라, 그곳에 조금씩 다가갔다 폭력이 없는 나라, 머리카락에 머리카락 눕듯 사람들 어울리는 곳, 아들아 네 마음 속이었다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遲鈍의 감칠맛을 알게 되었다 지겹고 지겨운 일이다 가슴이 콩콩 뛰어도 쥐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는다 지겹고 지겹고 무덥다 그러나 늦게 오는 사람이 안 온다는 보장은 없다 늦게 오는 사람이 드디어 오면 나는 그와 함께 네 마음 속에 입장할 것이다 발가락마다 싹이 돋을 것이다 손가락마다 이파리 돋을 것이다 다알리아 구근 같은 내 아들아 네가 내 말을 믿으면 다알리아 꽃이 될 것이다 틀림없이 된다 믿음으로 세운 천국을 믿음으로 부술 수도 있다 믿음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작부들과 작부들의 물수건과 속쓰림을 만끽하였다 시를 쓰고 쓰고 쓰고서도 남는 작부들, 물수건, 속쓰림.....사랑을 응시하는 것이다 빈 말이라도 따뜻이 말해 주는 것이다 아들아 빈 말이 따뜻한 시대가 왔으니 만끽하여라 한 시대의 어리석음과 또 한 시대의 송구스러움을 마셔라 마음껏 마시고 나서 토하지 마라 아들아 시를 쓰면서 나는 고향을 버렸다 꿈엔들 네 고향을 묻지 마라 생각지도 마라 지금은 고향 대신 물이 흐르고 고향 대신 재가 뿌려진다 우리는 누구나 성기 끝에서 왔고 칼 끝을 향해 간다 성기로 칼을 찌를 수는 없다 찌르기 전에 한 번 더 깊이 찔려라 찔리고 나서도 피를 부르지 마라 아들아 길게 찔리고 피 안 흘리는 순간, 고요한 시, 고요한 사랑을 받아라 네게 준다 받아라 88

 

더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연히 스치는 질문 - 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58 모래내 1978

 

남들처럼 나도 두어 번 연애에 실패했고 그저 실패했을 뿐, 그때마다 유행가가 얼마만큼 절실한지 알았고 노는 사람이나 놀리는 사람이나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또 몇 번씩 그 비좁고 습기찬 문간을 지나가야 했다 99 세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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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 로 부끄러운 글을 잘 실어주셨네요. 관련 강의도 토론에 비중을 두면서 이어진답니다. (도안마을신문, 아이쿱생협 기획단, 대충인권연대 모두 수고많습니다. 힘내세요^^)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기술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이란 무엇인가? 너무도 빠른 세상, 과학기술의 변화에 밀려사는 것이 지금의 우리이겠죠? GMO, 가습기 살균제, 원전폐해까지 과학기술이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는데도, 왜 우리 의식은 마치 과학기술의 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 같은 믿음이 되풀이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기존 관념은 어쩌면 압축성장을 해온 이땅의 자본주의 역사와 닮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삶에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도록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른 것은 아닐까요? 철도, 비행기, 자동차, 조선, 우주선, 텔레비전, 가전, 자동화, 인터넷, 스마트폰 등등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 대부분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소개드릴 책. 맞아요. 1990년대 중반. 과학기술의 대중화보다 현실의 문제를 살피고 바꾸려 한 과학기술자운동’, ‘과학기술운동의 흐름에 새로운 관점을 보탠 책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은 스스로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것이 주제죠.

 

과학기술학은 편의상 제1세대(19201960년대), 2세대(19701990년대), 3세대(2000년대이후)를 거쳐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 과학에 대한 선입견은 제1세대의 사고라고 볼 수 있어요. 과학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다. 사회로부터 자율적이라는 데에 공감을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죠. 표준적인 과학관이나 계몽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1962년 출간되었죠. 과학혁명이라는 것도 사회적인 사고나 관성이 바뀌어야 변화한다는 것. DDT로 인해 봄에 새들이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학은 과학만으로 볼 수 없다는 사고전환을 요구했죠. 2세대가 되어서야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은 과학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에요.

현대사회의 위험은 예측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시나요? 기업이나 정부의 입장과 시민의 입장 차이는 왜 갈수록 커지는 것일까요? 1, 2세대까지는 합리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확률과 통계, 과학에 근거한 보험이라는 것으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는 이런 위험에 대한 사고 역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해줍니다.

 

3세대 과학기술은 자동화에 일자리도 없어지는 사람이 우선인지, 자연과 사회와 한몸이어서 동시에 품고 문제해결을 할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역시 선입견을 바꿀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과학기술의 문제를 영원히 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전하면서 말이죠. 이런 사유의 물꼬가 트였으면 하고 이 책을 권면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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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7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7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7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혐오와 염치 사이 - 자신이 없다. 금을 밟고 있는 것일까. 벼랑끝에 서 있는 것일까.

몇년 전 기제사 음식 준비에 딸이라는 이유로 `더더더`라는 꼬리표를 단 할머니- 엄마-오빠-동생 그리고 아빠-할아버지.

딸의 울음에서야 함께 뉘우쳤다.

어머니의 생각과 아들들의 행동을, 그리고 나를 바꿀 책임자가 나란 사실을 말이다.

일이 몰린다. 일이 밀린다. 나서지 않는다. 돕지 않는다. 가장 힘없는 후배의 어깨는 무르춤 바로 서지 못한다.

차별의 길목에서 차별받은 이들은 온몸의 울화를 더 약한 이들을 골라내 푼다. 악순환의 호흡은 더 가빠진다.

난 자신이 없다. 비좁아지는 대중버스에서 땀에 전 냄새. 만만한 사람에게 의심을 보낸 자신. 장애를 나는 당하지 말아야지로 각색하는 나. 이주노동자의 어눌한 말투를 속 꼬리 잡는 나. 여성운전자를 향한 냉대에 불쑥 동조하는 나.

죽비로 한 대 맞은 뒤에서야 염치가 자라는 나. 차이가 아니라 차별에 익숙한 나. `그러면 안되는 거 잖아요`라며 말도 보태지 못한 순간들. 예쁘지 않아 잘생기지 않아 다가섬에 차이를 둔 나날들. 부끄럽다. 똬리 틀고 있는 의식 못하는 차별들. `천하에 남도 없고, 당연한 것도 없다.`는 잣대를 더 깊숙하게 들이미는 수밖에. 일상에 더욱 깊어지는 수밖에.

발. 사회도 삶도 더 팍팍해지고 극단으로 몰리지 않았으면 한다. 강자는 이유를 댈 필요도 느끼지 않고, 약자는 증거를 모으고 읍소를 하고 부당을 알려도 꿈적하지 않는 세상. 그 기로에 서 있다. 삶의 변방으로 몰리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여파는 강해진다. 잘못이라는 이유의 꼬리표를 덕지덕지 붙여놓는다.

예민함과 부끄러움이 그래도 더디가게 할 수 있을까요.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또 다른 사회의 성숙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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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은 여행을 하게. 시간이 된다면 말일세. 단 여행할 거면 제대로 하게. 내가 하는 식으로. 난 여행할 때는 반드시 가는 곳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읽고 생각한다네. 그 바탕에서,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사회적 틀을 통해 그곳 사람들을 바라보는 거지. 대평원을 예로 들어볼까. 홈스테드법에 의거한 이주농의 역사, 시대별 법과 종교의 영향, 이 지역 사람들이 겪었던 경제적 문제와 소통의 문제, 연이어 발견된 가치 있는 광물들의 효과를 알지 못한다면, 대평원 여행 백날 해봐야 다 헛일이네. 64

 

나는 생각해보았다. 정신분열증은 뇌에서 의미, 중대성, 의도를 지가하는 신경회로,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지각하는 신경회로, 예술과 과학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신경회로 간의 균형이 깨져 강렬한 감정과 현실 왜곡이 과도해진 정신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이들 회로망에서 중간 토대가 없어졌기에, 적정하고 진정시키려는 시도가 그 사람의 상태를 증상이 극도로 고조된 상태에서 극도로 무딘 상태, 일종의 정신적 죽음 상태로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79

 

이야기로 생각하고 역사적 맥락으로 사고하는 내게는 이런 풍조가 몹시 실망스러웠다. 화학에 빠진 어린 시절에 나는 화학의 역사, 화학이론의 진화사, 내가 좋아하는 화학자들의 생애를 다룬 책이라면 마다않고 탐독했다. 그런 내게 화학은 역사가 흐르고 사람이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121-122

 

우리는 두 달 동안 일요일에 아프려는 욕구로 추정되는 문제를 탐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편두통이 점점 줄어들더니 끝에 가서는 거의 사라졌다. 내게 이 사례는 무의식적 동기가 때로는 생리적 경향과 동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이자 어떤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과 맥락, 그 인생의 유기적 질서에서 하나의 질환 또는 그 치료법만 따로 떼어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증이었다. 190

 

그 시절 잉글랜드에서는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간통, 광고 이 ‘4대 죄행중 하나만 위반해도 의사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일반 매체에 실린 편두통 서평이 광고로 비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서서 대중 앞에 나를 판 것이라고. 아버지는 늘 삼가는 삶을 살아왔고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자부한다고 했다. 196

 

델라미어에서는 모든 어린이에게 낮은 돌담으로 둘러싼 1제곱미터의 땅을 주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심고 가꿀 수 있게 했다. 이모나 다른 교사들과 함께 델라미어 숨에서 식물을 키우고 해치미어의 얕고 작은 연못에서 헤엄치고 노는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브레이필드로 유배당했던 그 끔찍한 전쟁 기간에 나는 이 학교가 델라미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갈망했다. 202

 

실제 환자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자 신경의만이 아니라 정신의 역할도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껐다. 편두통 환자들을 만날 때 이 점을 강하게 느꼈고 뇌염후 환자들을 만날 때는 거의 압도적으로 느꼈다. 파킨슨증, 간헐성 근육발작, 무도병, , 이상한 충동, 강박충동, 강박장애, 갑작스러운 공황발작, 몰아치는 격정 등 이들이 겪는 무수한 장애가 신경과장애이면서 정신과장애인 까닭이다.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순수한 신경과 치료법이나 순수한 정신과 치료법이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는 신경과 접근법과 정신과 접근법의 결합이 필요하다. 219

 

임상인원(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음악치료사 등)이 수시로 들러 환자에 대해 의논했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전례 없는 사건들에 대해 거으 하루도 빠짐없이 열띤 토론이 풍성하게 벌어졌고, 여기에는 전례 없는 접근법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지했다. 221

 

미국의학협회저널에 보낸 편지에서 나는 이 상황을 약을 투여하고 효과를 제어하는 단순한 문제로 여기는 태도에 의문을 표했을 뿐 아니라 그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서 우연성이야말로 엘도파투여를 계속하면서 나타난 본질적이며 불가피한 현상이었음을 언급했다. 223

 

루리야는 신경심리학의 창시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살아 있는 풍부한 병례사들이 자신의 탁월한 신경심리학 논문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고전적 접근법과 소설적 접근법,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루리야의 노력은 곧 나의 노력이 되었다. 루리야 스스로 작은 책”(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이라고 칭하던 저서는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어 [깨어남]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책의 원형이 되었다. 224

 

나는 평가서를 제출하면서 전원 A를 줬다. 학과장이 분개해서 물었다...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결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 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 점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든 그렇게 할 수 없듯이. 227

 

우리 네 형제 역시 어려서부터 병원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음산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가끔 있었지만 환자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환자 개개인의 특별한 가치와 용기를 생각하게끔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아버지도 의료에 관해서는 대하드라마급 이야기꾼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경이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의료와 서사가 조화를 이룬 두 분의 신념은 우리 네 형제 모두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의 글쓰기 욕구 역시 부모님에게서 직접 온 것이 아닌가 싶다. 231

 

나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글을 쓰는 동시에 생각을 발견하는 쪽인 듯하다. 어쩌다 깔끔하게 딱 완성되는 글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차례 다듬고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같은 생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는 내 스타일 탓인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와 문장 중간에서 글의 주제와 결합해 발전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괄호 안에 넣거나 종속절로 덧붙여 대로는 문장 하나가 단락 하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용사 여섯 개가 쌓여 더 적확한 문장이 될 수 있는데 다 쳐내고 하나만 쓰는 것은 결코 내 방식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세계는 온통 촘촘하고 빽빽하기만 하다. 이것을 글에 다 담으려다 보니 두툼한 기술이 되는 것이다. 236

 

알코올중독자는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성격이 바뀌는 사람이고, 술꾼은 그저 술을 원껏 마시는 사람이에요. 나는 어디까지나 술꾼이라오. 244

 

신경의들은 어쩌면 다른 어떤 전문의들보다 더 많이 비극적인 환자들을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러자면 동료애와 연민과 공감 능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환자에게 자신을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도록 초연할 수 있는 어느 정도 냉담한 자세 또한 필수 덕목이다. 260

 

그들의 약물치료 상황과 흔히 불안정한 신경학적 상태를 점검하고 살피는 것이 내 역할이었지만, 또한 그들이 처한 육체의 제약 속에서나마 가능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최선을 다했다. 몸이 굳은 채로 오랜 세월 병원 안에 갇혀 살아온 이들에게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치료를 맡은 의사로서 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느꼈다. 275

 

몇몇 곳에서 나는 의료적 오만과 기술이 철저하게 인간성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환자들을 몇 시간씩 방치하거나 심지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고의적이고 범죄 수준의 태만이 횡행하는 곳들이 있었다......작은자매회의 요양원들은 삶을 중시하는 곳, 거주자들으 한계와 욕구를 감안하여 가능한 가장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뇌졸중 환자, 치매나 파킨슨증 환자, ‘의학적질환을 앓는 환자,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또 몸은 건강하지만 사람의 온기와 공동체라는 테두리가 그리운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 입소해 있다. 276-277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강력한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냈다. 둘다 육감’, 고유수용성감각에 단단히 빠져 있었다. 고유수용성감각은 의식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생명 활동에, 이론의 여지는 있으나, 오감 중의 어느 감각보다 아니 어쩌면 오감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감각이다. 사람은 시각이나 청각을 잃더라도 헬런 켈러가 그랬듯이 여전히 아주 풍부한 삶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고유수용성감각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각하고 팔다리의 움직임을 지각하는 데, 실로 자신의 존재를 지각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능력이다. 만일 이 고유수용성감각이 사라진다면 사람은 생존할 수 있을까? 281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세 가지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하는 문제, 어딘가에 소속되는 문제, 사람들의 말을 믿는 문제요.”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289

 

브루너의 저서를 읽고 난 뒤 나는 언어를 단지 언어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이 생각은 내가 수화와 청각장애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했다. 326

 

괌 방문은 인간적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다. 뇌염후증후군 환자들이 수십 년 동안 병원에 방치되어 살아가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경우도 적지 않은 데 반해, 리티코보딕 환자들은 끝가지 가족과 공동체으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나 정신이 병든 이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놓고 없는 척하며 살려는 우리 문명세계의 의학, 우리 사회의 관습은 얼마나 야만적인가? 411

 

1993년 나는 스티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편성과 특이성을 접합하는 글쓰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스티브는 이렇게 답했다. “저 역시 바로 그 문제로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개체들에게서 얻는 기쁨은 에세이 형식의 글로 풀고 보편성에 대한 관심은 좀더 전문적인 장르의 글로 푸는 방식으로 해결해왔습니다. 제가 버지스이판암 작업을 그토록 좋아했던 건 이 책을 쓸 때 이 두 요소를 융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23

 

하지만 I씨를 진료해온 지금 이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은 힘을 잃고 뇌와 정신의 관계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감각 정보가 뇌에서 구성 또는 창조된다는 관점이었다. 그리고 운동 지각까지 포함하여 모든 지각 작용이 마찬가지로 뇌에서 구성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편지에 덧붙였다.“ 432

 

나 자신도 30세가 넘을 때까지는 상식적인 수준으로밖에는 생물학을 알지 못했다. 나의 학부 때 전공이 물리학이었기 때문이다.내가 생물학에서 필요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441

 

크릭은 조만간 출간될 크리스토프의 저서 의식의 탐구(2004; 시그마프레스, 2006)와 이 책이 나온 뒤 우리가 하게 될 모든 연구에 대해 말하면서 자부심이 넘쳐났고 그는 10여 가지 연구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해주었다. 특히 분자생물학과 계통신경과학의 융합에 의해 이루어질 이 연구들은 앞으로 수년에 걸쳐 진행될 과제였다. 444

 

신경과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 발전에는 요컨대 일종의 개념적 위기 또는 개념적 공백이 존재했다. 신경학에서 아동발달, 언어학,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다기한 분야에서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와 관찰 기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반이론이 없었던 것이다. 446

 

1987, 에덜먼은 새로운 시대의 획을 긋는 저서 신경다윈주의 NEURAL DARWINISM를 출간했다. 스스로 신경세포집단선택설이라고, 또는 확 와닿게 신경다윈주의라고 명명한 아주 급진적인 주장을 설명하고 그 주장의 추이와 영향을 탐구하는 삼부작의 첫 권이었다. 447

 

크릭이 유전암호를 풀었을 때 에덜먼은유전암호는 체내 모든 단일 세포의 운명을 특정하거나 제어하지 못하며, 특히 신경계의 세포 발달은 온갖 유형의 우발성에 종속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신경세포들은 죽을 수도 있고, 이주할 수도 있고, 예측할 수 없는 모종의 방식으로 서로 뭉칠 수도 있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라도 서로 상당히 다른 신경망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들은 주어진 상황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각기 다른 두 개인이다. 449

 

우리의 뇌는 수백만 개의 번쩍이는 북들이 녹아드는 무늬, 언제나 의미가 담겨 있는 무늬의 직물을 짠다. 그 직물의 무늬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끊임없이 조화롭게 변화한다.” 451

 

연주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연주자는 각자 자기 방식으로 음악을 해석하면서 동시에 부단히 다른 연주자들에 맞추어 조절하고 서로에 의해 조절된다. 궁극의 또는 우두머리의해석은 없다. 음악은 집단적으로 만들어지며, 매회 공연이 다 유일하다. 이것이 에덜먼이 그리는 뇌의 그림이다. 오케스트라이자 앙상블로서의 뇌. 다만 지휘자 없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가는 오케스트라. 454

 

뮤지코필리아 MUSICOPHILIA(2007 알마, 2010). 시작은 소박한 프로젝트였다. 대략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작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적 공감각을 지닌 사람들, 음악을 음악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인 실음악증을 겪는 사람들, 전측두엽 치매로 갑자기 놀라운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보이는 사람들,음악 간질 즉 음악으로 유발되는 간질을 겪는 사람들, ‘뇌리에 박힌 음악이나 반복되는 음악적 심상 또는 음악적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처음 계획보다 훨씬 큰 책이 되었다. 464

 

 

 

 

 

 

 

 

 

 

 

 

 

 

볕뉘. 책 속의 참고할 도서를 보니 대부분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간단한 흐름만 보더라도 올리버 색스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책속의 책들을 건드려볼 기회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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