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잡생각-슈스케, Kpopstar 등등등 대중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정치신인발굴프로그램도 기획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수사학이란 예술이 다시 등장하기도 해야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명구는 예외없이 적용될 것 같다. 외로움과 소외를 푸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소외와 고독의 근저를 뜷고가는 기획이 필요한 건 아닐까. 꼭이 아니라 반드시 성공할 수 밖에 없다.

발. 성공의 등식과 방법 가운데 왜 정치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대단하다.

2. 딴생각-난 정부가 바보라고 보지 않는다. 일사분란함 자체가 힘의 표시이자 과시라고 본다. 수중에 넣은 힘의 유용으로 보자면 갑이 아니라 상갑이다. 그에 비하면 야당이나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아마추어라고 봐야한다. 힘도 없고 결정적인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권력유지를 위해 생사를 걸고 ㅆㅏㅇㅜㅁ을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병적인 증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루쉰이 말한대로 미친개는 몽둥이로 패서 더 이상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해야한다. 역사에 양보는 없다. 건전함과 양식 안에서 사고하는 것이 얼마나 생각도 사고도 좁은 일인가는 세상사람들이 다 느끼는 일이다. 정치는 늘 상식밖을 먼저 감안해야한다. 그리고 상식밖을 던지기도 해야한다. 집권해본 야당세력은 원로도 없고 뚫고 나가려는 정치인도 없다. 아쉬운 것이 아니라 절벽으로 서로를 밀어넣는 현실이 더 절망적이다.

3. 관계의 관계 - 동양사람들은 서양사람들보다 관계중심 사고를 한다고 한다. 서양인

이 명사중심 언어구사를 한다면 동양인은 동사부터 구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이를 `내재적` 이라 한다면 우리는 서구합리성을 배우고 교육받지만 언어에서부터 쉽게 익숙해질 수 없다.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집단적이자 관계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백년의 어색한 변화와 동거는 스스로도 서로도 제대로 변화시키고 있지 못하다. 어정쩡한 `관계`, 합리성이란 양말을 벗어들고 끼리만의 결속만 추구하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제대로된 `관계`란 `관계의 관계`까지 배려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합리성이란 서구의 옷을 제대로 입는 것일 것이다. 일터안을 벗어나야하는 이유도 아는 사람만 맺는 관계밖을 지향하는 `그물코의 연결망`을 다시 건들고 꿰는 것이 작은 변화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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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민 - 이번 작업은 외곽 지역을 여행하던 중, 조성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원묘

지와 골프장 부지 주변을 본 것에서 시작되었다. 조경(Landscaping)은 어떤 목적에 의해, 인간이 조율한 경치이다. 다시 말하면, 적절히 조율된 상태로 살아가는 삶의 단면인 것이다. 도시를 떠나 마주하주하는 이러한 풍경과 그 장소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들은...몇 개의 부위가 제거된 신체와도 같다. 내 과거나 누적된 외부의 개입은 삶의 작은 현상도 파악하기 어려운 인식의 불구상태로 낯선 풍경을 보게 한다. ...이 전시의 제목은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슬픈 열대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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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 장지에 묵; 평범한 도시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비정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주 고독하기도 한 것들이 뒤섞여 있는 풍경들을 보여주고 싶었다....먹이라는 재표는 색이 들어있지 않은 단일한 재료이다. 대부분의 작품을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흑백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부분을 장지라는 종이와 먹이라는 재료의 매력을 끌어올리고자 한다. 본인은 마치 흑백사진 같은 모습 속에서 이 시대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자 한다.(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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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재 - 인간의 내면에는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을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자연과 더불어 질서와 규범 속에서 소중히 살아가려는 의지가 존재한다. 앞으로 발전을 위한 개발과 자연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 자연과 인간의 동행이 가능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나의 작업에 나타난 소우주적 인체관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환기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작가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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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운동을 합리와 이성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동학으로 살펴보는 이론적 흐름을 담았다. 랜들콜린스의 관점이 궁금했는데 서두 논문이 가슴에 와닿는다. 마지막 책소개 후기가 개요에 대해 정리가 잘되어있다.

2. 사회운동-개념에 의한 추상화된 이론화 작업이 아니라, 추스리는 과정 가운데 빠져나가버린 감정으로 다시 살펴본다면 어떨까. 사람들의 관계나 모임이 에너지, 사회적에너지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사회운동동학을 `감정에너지`로 살펴보는 것이 된다.

관계나 모임은 이 감정에너지가 커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 자장을 생성하고 남게된다.

`감정에너지`가 중력파처럼 수직과 수평으로 출렁거리는 것이라면

`감정에너지`가 눈밭 위 힉스입자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창공을 훨훨나는 새, 빛같은 것이라면

`나`가 아니라 `나-너-`의 파고가 출렁거릴 수 있는 것이라면

새로운 개념을 이식해서 복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 「감정과 사회운동-열정적 정치」와 에릭느뵈,「사회운동」랜달콜린스,「사회적 삶과 에너지」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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