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사회운동 참고자료 ▼ (콕!)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는 반면 새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공백기간에 매우 다양한 병적인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내가 전에 이야기한 이른바 ‘젊은 세대의 문제’ 와 관련지어 완성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문제라는 것은 권력을 쥔 낡은 세대의 ‘권위의 위기’와 헤게모니를 행사할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명을 수행할수 없게끔 부과된 기계적인 장애로 인해 야기된 문제이다.”
- 그람시 옥중수고 가운데서



“1990년대 초반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바로 그 주제들 -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관계, 시장과 시민사회,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의 이념적 기반과 현실, 시민운동이구사하고 있는 운동전략 및 전술, 시민운동의 구성원들에 대한 실증적 분석 등 - 이 이제는 ‘현장의 치열한 고민’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도 막상 이론진영은 그것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1990년대 초반과 반대로 이론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이론진영이 시민운동을 여전히 정권과 자본의 2중대로 폄하해버리거나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방기해버리는 것은 상황 변화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론 진영의 분명한 직무 유기이자 책임 방기이다.“ 6.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2



시민사회 개념사


고전적 시민사회 - 19세기 중엽까지도 시민사회는 법에 의한 지배, 야만성 대신에 문명성이 지배하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체제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법의 보호아애서 전제적인 권력이 자유로운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통하여 통제가 되는 국가와 동일한 의미를 지녔다. 즉 시민 사회는 법치주의 국가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83

자유주의적 시민사회
반절대주의적 부르주아 시민사회 - 절대군주에 대응한 계몽주의 시민사회론은 고전적인 시민 사회론과 달리 사회와 국가를 구분하고 시민사회는 법에 의해서 규제되고 통제되는 국가인 시민국가에 의해서만 보장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85
토크빌은 시민사회를 압도할 정도로 국가권력이 비대해지고, 통제 불가능한 정도로 권력의 집중이 나타난다. 국가는 국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전대미문의 권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제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부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입법부와 사법주의 독립을 강조하고, 자율적인 시민단체가 발달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86-87
토크빌이 시민사회의 계급성을 무시한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토크빌의 강한 반감에서 유래하고 있다. 토크빌에게 사회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중앙으로 집중된 국가권력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계급성을 무시했던 것이다....이는 자유주의 시민사회 개념을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회를 대립시키는 2분모델에 기초하고 있다...사회내의 경제관계보다는 국가와 사회간의 정치적인 관계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88-89

맑스주의 시민사회
부정적 개념으로서의 시민사회 - 맑스와 엥겔스가 보여준 시민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시민사회를 경제사회와 동일시함으로써 발생한다. 시민사회의 속성이 실제 자본주의의 구조적 논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등가교환으로 나타나는 경제관계는 실제로 착취관계와 종속관계의 외형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한, 그리고 재산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합으로 본다는 견해이다..따라서 전통 적인 신분사회와 절대국가에 대한 부정을 시민사회가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점으로서 인식하 기도 했지만, 맑스의 부정적인 시민사회관은 전적으로 시민사회를 공장과 시장의 영역으로 인식하여, 근대사회의 등장과 관련하여 또 다른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무시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90-91

중립적 개념으로서의 시민사회 - 그람시는 “토크빌의 맑스주의화”를 시도했다. 시민조직의 강화를 통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보호하려는 것이 토크빌의 문제제기였다면, 시민조직의 강화를 통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변혁시키는 것이 그람시의 문제제기였다. 그람시는 혁명적 서구에서 러시아에서와 같은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는가를 묻고 그리고 어떻게 서구에서 사회 주의 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가라는 실천적인 목적에서 시민사회를 해부하고 있다. 92

그람시는 맑스의 시민사회론이 보여준 경제환원론을 부정하고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 시민사회를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람시는 맑스주의나 자유주의 이론에서 공통 적으로 발견되는 국가-시민사회 혹은 정치-경제의 2영역 모델로의 사회를 비판하고, 3영역 모델로서 사회관계를 제시했다. 그람시가 인식한 시민사회는 전체 사회에서 경제와 정치를 제거한 잔여 부분으로서 사회의 ‘재생산’에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 영역이다. 그람시의 3분 모델(경 제-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은 국가의 기능에서 시민사회의 기능을 분리시킨 모델이다. 즉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와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정치사회와 시민사회)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구분한 분석틀이다. 그람시는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견고성이 억압적인 국가로부터 유래하기 보다는 헤게모니가 행사되는 시민사회에서 유래한다고 보았다. 92-93

하지만 시민사회 문제를 헤게모니와 지배의 문제로 한정시킴으로 해서 그람시의 이론내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와의 관계는 불분명하게 남아있다. 국가에 대한 전면공격을 막아주는 이데올 로기적 완충지대로 보고 기능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한정시켜서 보는 한계가 있다. 93

적극적 개념으로서 시민사회 - 비판이론: 하버마스는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공공영역을 개념화 하여 공적 영역을 여론이 형성되는 사회생활이라고 정의하고, 공적 영역은 경제적 활동이나 통치행위가 아닌 자유로운 사회성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곳이라고 보았다. 부르 주아 공공영역은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의 보장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조건은 문학, 정치적 저널리즘, 살롱과 커피점 등이 발달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가 강조하는 공공영역의 기능은 국가를 견제하는 여론형성기능이다. 그러므로 공공영역의 발달은 곧 정치적 민주주 의의 발달을 의미한다. 초기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확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발달을 의미했 다. 하버마스는 국가와 사회의 엄격한 구분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공적 영역이 19세기 말부터구조적 전환을 겪었다고 보았다. 국가와 사회 사이에 존재했던 공공영역이 국가가 개인들의 사적 영역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재봉건화”가 발생했다는 것이다....이제 사회의 국가화와 국가의 사회화로 순수한 국가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고 본다. 94-95

하버마스는 최근에 공공영역 대신에 생활세계를 도입하여 의사소통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 영역을 논의하고 있다. 사회가 체계와 생활세계로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경제활동이나 관료적인 조정행위가 관찰자 관점에서 보는 체계의 대표적인 예이다. 반면 생활세계는 행위자의 관점에서 사회통합의 기반으로서 ‘합의에 대한 해석적 이해’가 이루어지는 일상영역이다. 해석적 이해는 규범적으로 보장되고 또한 의사소통을 통하여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96

코헨과 아라토는 생활세계 개념을 도입하여, 생활세계는 국가와 경제로부터 구분되며, 생활세 계가 국가와 경제와의 관계는 공적 사적 영역에 의해서 매개된다. 생활세계는 문화, 사회, 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황에 대한 이해와 동의는 문화적인 전통의 공유를 통해서 가능하 고, 개인행위조정은 연대적인 사회집단에 참여함으로서 가능하다. 이런 전통의 공유와 연대의 식의 형성, 사회화를 통한 자기 정체성의 형성은 현대 사회에서 제도와 조직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아라토와 코헨은 생활세계의 제도적 차원이 시민사회의 개념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생활세계에서는 관습적인 규범적 합의가 공개적인 의사소통을 통한 합의로 대체 되었다고 본다.....비판이론의 시민사회론은 문화의 상품화를 통한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복지 국가로 대변되는 전체사회의 관료화에대한 비판의 근거로 생활세계의 제도적 토대인 시민사회의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약화 혹은 국가에의한 시민 사회의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96-97

비판이론의 시민사회모델은 3영역 모델이다. 하버마스는 시민사회를 공공영역이나 생활세계로 규정함으로써 그람시에 비해 구체화된 3분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토크빌의 자유주의 시민사회 모델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와 시민사회가 어떠한 관계를 보이는지 불분명하다...시민사회 내에서 계급, 인종, 성에 따른 분열, 대립, 갈등의 문제가 간과되고 있다. 98


유럽에서의 시민사회 형성
영국은 토지귀족과 자본가의 대립이 아니라 토지귀족들이 토지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면서 토지에 뿌리를 둔 자본자계급이 형성되었다. 즉 토지귀족과 산업부르주아지의 동질성과 의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의 가능성이 영국 특유의 점진주의 형성에 기여하였고 프랑스에서와 같이 극단적인 투쟁이 나타나지 않았다. 108
영국에서 나타난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는 언론의 발달과 대중교육의 발달을 통하여 시민사회 내에서의 의사소통이 보다 확대되면서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이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과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었다...차아티스트 운동방식이 국민의 여론을 이용하려는 서명운동이었다는 점은 노동계급의 투쟁방식이 이미 형성된 공적 영역 내에서의 의회와 언론매체에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09
영국의 자유주의가 정치적 발전을 보여준 반면, 프랑스의 경우 구체제의 몰락 이후에도 테러와 왕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였다. 그 결과 국가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치주의가 정착되지 못하고, 법위에 존재하는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는 국가주의가 발전하였다. 공화정은 정치적 이상으로 제시되었으나, 현실제도로 구체화되지 못했다...토크빌의 주장처럼 “대혁명이 자유에 유해한 모든 제도, 관념 그리고 습속들을 일소시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것들마저 앗아가버렸다.”고 했다. 프랑스의 경우 1877
년 공화정의 승리를 통하여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진 이후에 어느 정도 발전할 수 있었다 한다. 110
혁명을 통한 구체제의 타파나 점진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경험하지 못한 19세기 초 독일에서 독서시민과 일부 경제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급진적인 자유주의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하나의 이상이엇다. 대표적으로 독일에서 발전한 관념철학에서 유래하는 칸트의 ‘시민사회’이론은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에 기초한 법치국가를 이상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계급 없는 시민사회’의 독일적 표현이었다. 111
결국 국가의 권력을 통제하고 의회를 통해서 사회성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회주의는 성장하지 못했고, 권위주의적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위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영국의 자유 주의자들과는 달리 독일 자유주의자들은 노동계급과의 일정한 연대 혹은 연합을 통하여 정치를 민주화시키는 민주연합을 구성하지 못했다. 이것은 시민사회 내의 조직과 대중적인 정치적 저널리즘이 발전되지 못한 채, 소수의 급진적인 사회주의운동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자들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운동에대해서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111
스웨덴 사회운동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크게 강화되었다. 자유교회운동, 금주운동과 참정권 운동은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추동되었다. 이러한 사회운동 경험은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사회개혁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즉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갈등 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자유주의에 적극 동조하면서 보수연합-민주연합의 갈등구도가 형성되었 다. 111

아시아지역에서의 시민사회 형성
아시아 지역에서의 시민사회 형성은 영국형이나 프랑스형보다는 독일형에 가깝다. 즉 권위주 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국가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으면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성장은 억제되었고 자유주의 세력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전형적으로 일본의 경우, 시민사회의 발달은 국가의 개입과 위계적인 사회질서를 통하여 크게 억제되었다. 그대신 국가권력이 지역수준에서나 중앙수준에서 다른 모든 사회단체나 조직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형성되었다. 112
일본의 근대적인 자유주의 운동이 ‘자유민권운동’의 이름으로 등장하였다. 자유민권운동은 천황의 왕권을 대신하는 입헌공화제와 자유권적 기본권의 보장을 목표로 활동하였지만, 확고한 국가권력과 일본의 대외진출 속에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일부 지식인이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했던 민권운동은 대중적인 조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미 의무교육을 통해서 국가의 발전과 국가 이데올로기가 시민사회내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유와 계급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집회나 결사를 엄격하게 탄압하는 조례와 법률을 만들어 법에 의한 탄압, 비민주적 법치주의가 발전되었다. 서구에서 법치주의는 강력한 절대왕권을 제한하기 위해서 등장하였지만, 일본에서는 국민들의 시민권을 억압하는 절대권력의 수단이 되었다. 112-113일본에서는 영국에서와 같은 근대적인 자유주의 국가와 자유주의적 시민사회가 결합된 근대로의 이행이 아니라, 근대적인 행정조직을 갖춘 절대주의 국가와 신민사회의 결합이 이루어졌 다...자유주의의 맹아조차 사회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하에서 이루어진 절대주의적 근대화의 결과이다. 초기 모든 생활세계의 조직들이 국가의 통제하에 들어감으로써 자율적인 시민사회 영역은 페쇄되었다. ...경제와 정치의 분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일과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위로부터의 혁명’은 국가가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국가주의적 근대화를 의미한다...113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시민사회의 성장은 국가권력과의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국가의 권력에 저항하는 비합법적인 조직이나 결사를 통하여 국가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이 이러한 투쟁을 대표하고 있다. ..중국의 시민사회 형성은 청말민국 초에 ‘초기적 시민사회’로존재할 수있었다. 공공영역의 완전한 발달이 이루어지는 ‘자유주의적 시민사회’와 달리, 정치적인 차원 에서 의회가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민운동에의해서 공공영역이 확장된 시민사회를 말한 다.....한국은 서구에서와 같이 부르주아지가 주도했던 자유주의적 전통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전의 주체는 학생집단과 정치인들이었다. 대신에 한국의 부르주아지는 권위주의적 국가와 연합을 이루었다. 부르주아지는 있었으나,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115 이상 신광영


기존의 시민사회론은 한국적 현실을 설명하는 데 다음의 약점을 갖고 있다. 먼저, 기존의 시민사회론은 시민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의 원인에 대해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다. 한국의 시민 사회가 연고주의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한국의 국가와 경제도 연고주의로 침윤되어 있으며, 그것이 다시 시민사회를 제약하고 있음을 기존의 시민사회론은 간과한다.
다음으로 잠잠한 듯하다가도 폭발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이론적으로 해명하지 못한 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보수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또한 4.19, 광주민주항쟁, 6월 항쟁에서 보여주듯이 강한 저항성을 갖고 있다. 풀뿌리 보수주의와 폭발적 저항이 교차하는 한국 시민 사회의 역동성을 기존의 이론들은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145


한국사회의 특징은 압축적 근대화로 인한 ‘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그리고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현존은 바로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적 해결’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비동시 성의 동시성은 경제 및 정치의 근대성과 시민사회의 전근대성 혹은 시민사회 및 경제의 근대 성과 정치의 전근대성이라는 사회 각 부문간의 지체현상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히려 국가, 경제, 시민사회 전반에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접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146


시민사회론의 부활은 세계사적으로 제3세계 및 동구의 민주화라는 맥락과 서구에서의 복지국 가의 실패라는 두 가지 맥락을 갖고 있다. 이 두 맥락이 시민사회론으로 수렴되는 것은 무엇 보다 두 사태가 국가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사태는 시민사회의 부활이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에 못미친 것이었다. 오히려 경제적 불균등은 심화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발전은 정체되고 있는가? 147


서구에서 시민사회의 부활은 두 가지 흐름을 갖고 있다. 국가관료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면에 서는 동일하지만 신사회운동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면,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자율성에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보면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분법은 중요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주장할 때 시민의 자율성과 경제의 자율성이라는 문제가 동시에 나타남 으로써 신사회운동이 주장했던 시민의 자율성이 사실상 희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구 에서 국가를 공격함으로써 최대의 성과를 올린 것은 신자유주의 세력이지 신사회운동세력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물론 신사회운동이 일정 정도 사회구조적 변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국가에대한 공격의 최대 수혜자는 신자유주의였고 자본이었다. 147


김성국의 독창적인 개념화는 사실상 기존의 민주화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대립구조가 국가 및 재벌 대 민중에서 국가, 재벌, 보수층대 시민사회라는 이분법으로 바뀌었을 뿐 시민사회론의 새로운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사실상 민중은 1980년대 계급범주가 사회분석의 주류로 등장하기 이전에 형성된 고유한 역사성을 지닌 개념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피억압자’를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따라서 김성국의 시민개념은 이러한 민중 개념에서 계급적 갈등이라는 문제를 삭제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중 개념의 역동성을 제한한 한계를 가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개념화는 시민사회의 보수성의 원천을 시민사회 외부로만 전가함으로써 시민사회 내의 보수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149


같은 이분모델이라고 하더라도 민주화의 맥락에서 시민사회론에 접근하면 복지국가적 맥락에서 시민사회론에 접근하는것보다 한국적 현실에 보다 접근할 수 잇다.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시민사회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정치사회라는 매개개념을 활용한다.
이 모델은 의회민주주의의 미정착을 정치사회라는 매개개념을 통해서 포착한다는 점에서 제3
세계의 민주화 분석에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설정은 자칫 국가 대시민사회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게 함으로써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이익갈등을 포착하는 데한계를 보인다. 150


시민사회는 국가 및 경제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위치하는 장소로 규정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구분된다고 할 때 시민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세력들이 위치하는 장소이다. 이 세력들은 민주적 요구들을 공론화함과 동시에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정치사회라는 문제의식은 운동정치의 제도 정치화를 통해 사회의 민주적 요구들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151


그람시가 강조한 것은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정체성 형성능력이지 토대의 결정성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계급이 왜 즉자적인 계급에서 대자적인 계급으로 직접적인 전화를 하지 않는가에 있으며, 그것은 시민사회에서의 정체성 형성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계급의식 이외의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 곧 노동자가 노동자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는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손호철의 시민 사회론에 대한 비판은 정확하지만, 그 역시 시민사회론의 의미를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탈부르주아적 시민사회라는 전망을 가질 수 없다. 153


신문, 방송 등의 제도적 공론영역이 보수적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상태에서 진보적 공론영역은 비제도적인 영역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1970년대의 재야운동에서 1990년 대의 시민운동, 노동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다원적 공론영역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람시적 의미의 헤게모니 투쟁을 제대로 개념화할 수 있다. 시민사회는 보수적 공론영역과 진보적 공론영역 사이의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며, 진보적 사회운동세력들은 공론영역과 시민사회를 진보화하기위해 다양한 헤게모니 투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156개인으로서의 시민이 겪는 고통은 시민사회 내의 전근대적 의식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및 경제의 비합리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정부의 인사가 혈연, 학연, 지연으로 이루어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될 때, 개인으로서의 시민은 당연히 생존을 위해 그러한 의식을 갖게 될수밖에 없다. 또한 재벌의 소유권이 대물림되고 총수와의 친근관계에 다라서 인사가 이루어지는 경제계의 현실에서 근대적 시민의식의 형성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 할 수 있다.


나아가 국가와 경제가 철저히 유착되어 있는 현실, 즉 엘리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것도 비합리적인 연고주의에 의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것도 비합리적인 연고주의에 의한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에서 카르텔에 진입하기 위해 연고주의적 방법을 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즉 한국 시민사회의 비합리성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연원하기보다는 국가 및 경제에서 연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57


한국사회의 문제는국가 및 경제가 너무나 합리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한국사회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문제가 관철되고있는 사회인 것이다. 한국사회의 문제가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고, 과제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해결’이라면,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그 메커니즘이 규명될 때에만 비동시적인 문제의 동시적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57


해방이후 한국근대는 사회적 분화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화가 서구의 그것과 다른 것은 분화와 함께 탈분화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탈분화의 주체는 권위주의 국가였다. 국가의 탈분화에 의해 시민사회와 경제는 국가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국가는 경제 및 시민사회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러한 ‘분화와 탈분화의 동시진행’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는 분화된 영역에서의 자기 결정, 즉 독자적인 논리가 형성되지 못했다. 시민사회는 자율적 논리가 아니라 병영화되었으며, 경제는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었고, 국가는 연고 주의에 침투되었다. 의미는 다르지만 하버마스의 말을 빌리면, 한국사회는 ‘생활세계의 식민 화’가 아니라 ‘체계의 생활세계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근대적 합리 성의 영역이 되기보다는 전통적인 연고주의로 운영되었으며 경제 및 사회 역시 근대적 합리성이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158


국가의 탈분화전략은 한국사회 전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대적 개인주의의 미성숙이다. 근대적 개인주의가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의미한다면 국가의 탈분화전략은 사회 각 영역의 자기 결정을 억압함으로써 개인의 자기 결정을 억합하였다.
이는 자율성의 미성숙만이 아니라 책임의식의 부재를 낳고, 이는 부정부패, 연고주의의 ‘무책 임의 사회’를 낳았다. 모든 결정이 집권자 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사회에서 관료적 효율성, 혹은 자본의 효율성은 쉽게 부정부패 및 연고주의로 연결됨으로써 비효율성의 논리가 만연하는, ‘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시민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합리화 및 민주화를 가로막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59


진보적 공론영역은 비록 정치사회와 단절되어 있지만 시민사회내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진보적 공론영역이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도전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기존의 보수적 공론영역이다. 기존의 엘리트 카르텔은 신문, 방송 등의 제도적 공론영역을 확고하게 장악함으로써 시민사회 및 국가와 경제의 민주화를 저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사회가 포드주의에 진입하고 소비대중문화가 지배적인 문화가 되면서 문화산업에 의한 시민사회의 식민화라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대중문화는 저항성과 상업성의 두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국가의 탈분화로 인해 자율적인 논리를 확립하지 못한 한국의 시민사회에 상업적 대중문화는 비판적 의식을 희석화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세계화는 도구적 합리성마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한국사회에 도구적 합리성의 형성과 그것의 극복이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161


한국의 진보적 공론영역을 단순하게 구분하자면 시민운동으로 대변되는 분화세력과 노동운동 으로 대변되는 실질적 민주주의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을 다시 시민사회의 공간적 측면과 역학적 측면으로 구분해본다면 한국의 시민사회는 공간적 측면에서 확장되었지만, 역학적 측면에서는 아직 보수적 공론영역이 헤게모니를 갖고 있다. 한국의 진보적 공론영역은 합리화와 권력의 하향화를 아직 이루고 있지 못한 것이다. 163


한국적 문제의 동시적 해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분화와 탈분화의 동시진
행’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화된 진보적 공론영역의 연대 가 필요 하다. 시민사회가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공간이라면 새로운 헤게모니 전략은 우리가 이미 경험 하였던 진보적 공론영역의 새로운 접합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형성된 민중, 즉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피억압자들의 연대만이 보수적 공론영역의 공세 속에서 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163 이상 김정훈
. . . .
삶이 뭐 별거냐?
몸 헐거워져 흥이 빠져나가기 전사방에 색채들 제 때깔로 타고 있을 때한 팔 들고 한 팔은 벌리고 근육에 리듬을 주어 춤을 일궈낼 수 있다면!!
- 황동규, 『사는 기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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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1. 이론은 왜 필요한가? 시차를 두고 나온 논문이나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복기에 가깝다. 1990년초 민중이냐 시민이냐? 2000년초 시민사회론의 맹점은 무엇인가? 또 노동분야의 이론적 흐름과 분화에 대한 최근의 책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변화와 발전이란 부분으로 크게 세줄기로 나누어봐야 할 것이다. 이론은 과거를 품어안아 지금을 보다 더 멀리 앞날을 채우려는 노력이자 시선이다.

 

2. 그람시는 에릭 홉스봄이 얘기했듯이 무솔리니가 감옥에 넣지 않았으면 아마 스탈린에게 더 가혹한 시련을 겪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옥중에서 난 옥중수고의 이론작업도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모르겠다. 러시아와 서구의 차이를 분석하며, 그는 정치사회-시민사회에 시선을 착근하게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 등 또 다른 이론과 시선을 흡수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쟁역시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 나아가고 있음으로 인해서 시민사회의 역할, 그리고 유기적 지식인과 교육이라는 개념, 헤게모니, 역사적 블럭이란 개념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이론적 모색은 변혁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게 된다. 모두가 지식인이다. 하지만 유기적 지식인은 대중의 열정과 감정의 샘을 느낄 수 있으며, 그 샘에서 물을 길어올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윤리적, 문화적 정치적 기반을 확장시키는 살아있는 지식인이 중요한 요소임을 말하고 있다.

 

3. 지금 현실을 새롭게 보려는 노력,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따르면서 확장하고 있다. 토대-상부구조의 도식적인 구분이 아니라 정치-시민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려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관념철학이 발달하면서 대중들과 그 간극이 벌어지게 된다.변증법적 사고는 그러한 현실인식에서 나왔다. 대중을 설득하고 다가가는 방식으로 대화법에 출발을 두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업이다. 마르크스의 저작인 자본론과, 정치의 자본론이라 불리우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전체성과 총체성, 변증법적 사고로 그 이상을 보게하려는 노력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람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훨씬 풍요로워지는 레닌이후의 마르크스주의의 외연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 김정훈교수는 현재 진보진영의 공적영역의 연대를 현실모순을 타개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공론영역, 진보영역이 존재하며, 자본과 보수정권의 언론장악과, 신자유주의의 일상세계의 식민화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하지 않으면 안됨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1980년대 변혁의 시대를 바탕으로 구술과 이론의 역사를 비교적 상세히 볼 수 있는 노동분야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정치진출, 정치운동, 사회운동 등 대중추수와 전위, 주전과 주화의 논쟁에 대한 것을 살펴보고 시민사회론과 접목시키는 것도 지금여기의 현실을 분석해내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5. 토지귀족과 산업화, 그 자본자의 원활한 점진주의를 갖는 영국, 토지귀족과 부르주아의 극단적인 혁명으로 귀착한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절대왕권를 무너뜨리고 국가와 시민사회가 형성된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그런 국가나 부르주아는 시민사회나 정치사회를 아래로부터 끌어올리거나 확장시키지 못했다.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고 숨이 죽어있는 상태가 더 현실적인 표현일 것이다. 나라마다  그 토양과 배경이 다르다. 지역색과 음식처럼 서로 다른 시민사회와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압축적 근대화만큼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사회가 겪고 있다. 국가는 체계를 식민화하고 있으며, 부르주아가 민주주의를 가져온 서구와 달리, 자본과 국가의 수혈을 받고 헤게모니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한국은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분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김교수는 말하고 있다.

 

6. 사회운동이론은 시대의 변화에 맞서 새로운 사유와 모색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 대한 반성과 돌이킴, 그리고 논쟁과 우리 현실에 맞는 이론의 탐색이 이어져야만 한다. 파시즘, 파시스트 등등 붙이기 좋은 말이어서는 안된다. 역사적 맥락과  또 다른 우리의 색깔에 접목될 수 있는 분석과 판단이어야지만 앞으로 벌어질 세상을 보다 세심하고 멀리 바라보면서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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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은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목련이 죽는 밤

 

피 묻은 목도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날을 떠올리다 흰머리 몇 개 자라났고 숙취는 더 힘겨워졌습니다. 덜컥 봄이 왔고 목련이 피었습니다.

 

그대가 검은 물속에 잠겼는지, 지층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꿈으로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기억은 어디서든 터를 잡고 살겠지요.

 

아시는지요. 늦은 밤 쓸쓸한 밥상을 차렸을 불빛들이 꺼져갈 때 당신을 저주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목련이 목숨처럼 떨어져나갈 때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목련이 떨어진 만큼 추억은 죽어가겠지요. 내 저주는 이번 봄에도 목련으로 죽어갔습니다. 피냄새가 풍기는 봄밤.

 

Cold Case 2

 

(19세기 사람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라는 소설에 보면 시인이 된 주인공에게 친척들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안에 시인이 나오다니 수치다.”)

 

20세기도 훨씬 더 지난 지금 시는 수치가 된 걸까.

 

시는 수치일까. 노인들이 명함에 박는 계급 같은 걸까. 빵모자를 쓰는 걸까. 지하철에 내걸리는 걸까.

 

시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랑 더 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오후다. 시 쓸 영혼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싸구려 호루라기처럼 세상에 참견할 필요가 있을까. 노래를 해서 수치스러워질 필요가 있을까? 자꾸만 민망하다

 

그런데도 왜 난 스스로 수치스러워지는 걸까. 시를 쓰는 오후다.

 

불머리를 앓고도 다시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를 집어 든다.

 

봄산

 

볼품없이 마른 활엽수들 사이로 희끗희끗

드러나는 사연들이 있어 봄산은

슬프게도 지겹게도 인간적이다.

 

아무것도 감추지 못하는

저 산들은 세월 흘러 우연찮게 모습을 드러낸

도태된 짐승들의 유해이고,

그 짐승들을 쫓다

실족한 지 일만 년쯤 된 가장의 초라한 등뼈다.

이제 싹을 틔우려고 하는 불온한 씨앗들의 근거지,

원죄를 뒤집어쓴 채 저 산에서 영면에

들어야 했던 자들의 허물 같은 것이다.

 

기껏 도토리 알이나 품고 삭아가는 노년기의

앞에서, 봄에 잠시 드러나는

의 한 많은 내력 앞에서

못 볼 것을 본 듯, 이 초저녁

난 자꾸만 가슴을 두드린다.

 

기적은 오지 않겠지만

저 산은 곧 신록으로 덮일 것이고,

곧게 자라지도

단단하지도 못한 상수리들은

또 사연을 만들 것이다.

 

산은 무심해서 모든 것들의

일부고, 그런 봄날

생은 잠시 몸을 뒤척인다. 다 귀찮다는 듯이

 

직박구리

 

어느 날이었다 초봄은 추웠다 직박구리가 날아왔다 직박구리는 수돗가에 앉았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차가운 수도꼭지에 주둥이를 대고 물을 먹었다 직박구리는 혼자였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근처강에서 왔다 혼자 왔다 철봉 몇 개 녹슬어 있는 가난한 공원엔 직박구리만 있었다 뭘 가졌냐고 슬픔이라고 직박구리는 울었다 초봄이었다 직박구리는 정적 속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앉아 있었다 안개는 짙었고 초봄은 완강했다 그날 이후 영역 안에서 한때 사나웠던 직박구리는 수돗가에 다시 오지 않았다 초봄이었다

 

며칠 후 강둑의 나무들이 모두 베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초봄이었다 나는 천천히 불행해졌다

 

Republic 1

 

'아이가 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럼 늙은이가 타고 있거나 돼지가 타고 있으면 어떡해야 하지?

이 공화국에선 말도 안 되는 표어가 통용된다

 

새들이 떠나버린 공화국에서 서 있는 자리가 이념이 되는 공화국에서 종의 비열함으로가득 찬 공화국에서 자고 나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공화국에서 눈이 똑같이 생긴 밀랍 인형 여인들이 날마다 지하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화국에서 위도와 경도가 저주인 공화국에서 농담으로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공화국에서

 

근육질의 아이들이 공갈 젖꼭지를 물고 침을 흘릴 때

늙은이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은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볕뉘. 나쁜 소년의 시인. 시 몇 편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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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 - 인공지능에 들썩인다. 사람이 한 일에 대해 서로 사람이 낫다거나, 기계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들썩이는 건 같다. 왓슨이나 딥블루 , 그리고 바둑게임에도 이러하다. `인공뇌`가 쥐뇌프로젝트를 너머서 모종의 장벽인 감정과 정서를 인문학에서 수혈한다고 해보자. 그리 먼 일이 아닐게다.

과학기술은 인간친화적이 아니다. 더구나 이렇게 초거대화된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목격한대로 자본친화적이다. 과학기술에 경도되거나 복속되어 식민화된 경제- 정치- 인문-사회학은 과학기술에 끌려다니지 말고 끌고다녀야 한다. 어쩌면 환호가 아니라 미몽에서 빠져나와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교묘하게 족쇄로 삼는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계급을 층분리 시키는지, 비비정규직이 과학기술의 집중도에 따라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 제3세계는 얼마나 고립되는지. 적정기술의 쓸모는 언제 없어져야 하는지. .세계 절반의 사람을 쓸어내고 있는 것에 과학기술이 책임은 없는건지

.`자본`의 초집중을 위해 쏠리는 경향과 `사람`의 도구로 쓰이는 쓸모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는데 학문이 제 역할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처럼 유행을 빙자해서 극단은 끊임없이 몰려다닐 것이다.

왜 이렇게 세상은 과학기술에 전권을 주고있나. 지금까지 해온 짓이 무엇이었는지 보고도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자기 삶의 도구로 제대로 쓰이는가. 자본에 종속된 도구로 더많이 쓰이는지 구분될 수 있는 지점에 서있지 않는가. 권한의 축소를 다른 학문이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학문의 식민상태는 영구화될지도 모른다. `대중의 직관`은 지금처럼 고여있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채 소멸하고 굶주릴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는다. 떡고물은 우리 몫이 아니다.

짐승은 미리 길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친다. 어~ 하는 사이에ㆍㆍㆍ아! 하는 사이에ㆍㆍ

 

발. 제목은 프레시안 서리풀논평 기사가 유사해서 그 제목으로 해두었다.(프레시안 타이틀 제목은 과하다.) 아래 책들은 주제별로 개요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해서 참고하기 좋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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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478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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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죽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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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좌담 - `열심히 하지만 사회적 인정이 아니라 구박을 겹받는 청(소)년들` 얘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교수, 의사에게 듣다. 내것만 벌고 쓰면 되지. 혼자하는 일은 잘하지만 같이하는 일은 서툴다.

: 아무 곳도 관계맺고 사회 속에 다른 삶과 섞이는 걸 가르치지도 고무해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더 나쁜 삶들은 앞에 지천으로 깔려있고, 내자식 내새끼앞에서는 손에 쥔 것이나 쥘 것을 놓치 않는다.

점점 사회에 인정받는 청년들은 줄어든다.

발.

1. 콩나물국밥에 막걸리 한잔을 더했다. 한국은 일본과 유럽 어느 나라와도 다르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뒤섞여있다. 갈라내고 구별해내어 무엇을 해볼게 아니라 그냥 해봐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질적인 만남과 얘기 일상이 좋은 하루다.

2. 일본답사팀과 저녁을 같이하였다. 그들은 조직의 일상으로 돌아와 지난 여유를 느낄수는 없었다. 히지만 현실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 듯 싶다. 20대 실무자들과 접점이 얼마나 유지되며 서로 건강해질지 모르겠지만 청년, 청소년의 삶과 관계, 사회성에 천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서울일정 반납하고 늦게까지 함께한 김교수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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