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당착

 

운동엘리뜨

 

 그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은 '방송'때문이었다.

 그녀가 운동의 대장정을 나선 것도 '엘'때문이었다.

 공부에 시달린 청춘과 시대에 대한 염쯩은 살포시 퍼지는 '방송'의 마력과 시원시원함때문에, 애국적 열정은 더욱더 불타오르게 되었다. 사실들은 모두 수렴되어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권이 변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화려한 전술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몸은 전적인 신뢰를 더해갔다. 어찌 조중동 나부랭이의 신문을 믿을 수 있을까? 비방한다는 부류를 이해할 수 없다.

 

 

 

공부하는 것은 내 취미하고도 맞지 않다. 말 많은 놈들. 책을 핑계삼아 하는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들이지 않는가?

 

요즘 점점 불안하다. 내가 민주주의를 알기나 하는 것일까? 폭력배라고 하지만 내가 저지른 폭력을 무엇이란 말인가? 절차적 민주주의라 하지만 경도되어 다양성의 수렴보다 절차만 지키면 그뿐 아닌가라는 행태를 대의아래 봉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성폭력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교육받은 것과 부르조아만 하는 것을 나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놈 피디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는 짓들이라곤,

저년 엔엘들은 도저히 이해도 되지 않는다.  시민운동하는 것들이라 변호사하고 비싼 술 먹고...그러면서 허구헌날 술을 퍼먹고 있다. 운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라며 운동관료가 된 나는 매일 그 비싼 술을 축내고 있는 것이었다.

 

뻔뻔이 1.2.3

 

아줌마

애를 낳으니 온통 사물이 애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이쁜 얼굴도 찍고 먹을 것 신경써야지 온통 정신은 육아로 몰려지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활동했었야고, 사회활동에 관심있었던 것인지 온통 일상은 육아에 모아졌다. 이정도 열정이면 아동학 박사논문은 몇권은 냈으리라. 

어떻게 애를 기죽일 수 있으랴. 귀찮게 제사는 무슨제사. 일도 공평해야하는데.

공평이

제멋대로

운동신참

뭔가 될 것 같다. 운동과 관계없고, 당나라당 선배와도 관계했지만, 나의 정치적 야심은 이 기회로도 맛닿으리라.

우리 노선이 승리해야한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나의 피끓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몰라주는 것인가? 반드시 알 날이 있을 것이다.  볼세비키 아니었던가? 민중을 도도한 흐름을 모르고, 운동사기꾼들만 경도 된 것은 아닐까?

도오사

'도'를 아는가? 음양의 조화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운동을 한다고, 매일 싸움만 해대고 말이야

성공이

운동권이 엉망이다. 정말 왜 그렇게 일하는지 도통 수준이하이다. 바보같은 짓만하고 있다.  나의 원대한 꿈은 우리조직을 잘 만들어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왜들 일들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모르는가?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다들 어리석다. 우리가 하는대로 하면 될텐데말이다.

대시니

아줌마들은 대신 산다. 매니저의 삶이기보단, 한술 더 떠 똑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다시 살고 있는 것이다. 유아는 물로 초중학교를 대신, 그런 바보가 있을까? 대리만족과 대신사는 삶

 일마니

나의 사전엔 퇴근은 없다. 지리한 일상이지만, 나의 착함에는 일밖에, 주말 놀고 싶어도 불안하다. 일터에서 쉬는 편이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들복이지 않고 편하다. 그러고보니 일 외에 할줄 아는 것이 없다. 번듯한 취미도 동선도 제한되기는 마찬가지.  집회 현장도 가본적 없고, 신문 외에 다른 정보에 관심도 없다. 전공이외의 서적은 진절머리가 난다. 일어본 책이라곤 처세책 몇권일뿐

 

말무니

귀멍어리, 듣되 듣지 않고, 말하되 듣지 않고, 말하고 말만하구.  하고싶은 것, 단체나 사람이나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독선이나 자만이 도를 넘어설 경우, 인식의 선에서 배치되고, 배치되거나 한다. 그 이면은 중요한 것도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식의 선만 필요한 것. 자신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봉거니

 

초기 자본주의는 근검-절약성이었다. 부르조아가 시대를 극복하게 했던 것은 최소한 습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성장의 맛을 본, 꼼꼼함도 근검절약도 없는 것이다. 풍요에 넋을 놓은 것인가?

 

권리니

 

대표적 자중심성과 권리찾기의 도착증세는 무엇일까? 뻔뻔함을 넘어서는 무엇이다. 아이를 음식점에 방임하며, 타이르는 사람에게 애 기죽인다는 부모. 아이와 자신의 권리만이 박혀있다. 타인과 관계, 공공장소의 예절 무시는 보수를 넘어서 질타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장만 있지 하여야 할 의무에 대한 시선은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활동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 노예근성


1.

어쩌면 내속 깊숙이 그늘을 드리운 것은 ‘하지말라’는 소리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국민교육헌장만 암송된 것이 아니라,

입속에 무의식중에 배여나오는 소리는 늘 ‘하지말란’ 소리다.

아이를 키우고, 같이 자라지만 기껏 가르치는 것이 ‘하지말란’소리다.

그러다보니 나의 출구는 늘 변칙에서 잉태되는 듯하다.

남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픈지도 이미 오래다.

오늘도 ‘뒷담화’를 즐긴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되지 않는 투성이다.

남이 안되는 것에서부터 쾌감의 출발이다.

어디서 이렇게 뿌리깊은 근성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강렬한 강도로 커지는 잔인함에서 묘한 미소를 띠게 된다.

이젠 스스로 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말란’ 소리에 인이 베겨 하는 재미도 잊어버린 것 같다.

그저 자극하는대로 뱉고, 웃고,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이미 고통으로 자라버렸다.

피자와 콜라가 배달되듯, 오늘도 풍요의 바다에 휩쓸려 떠다닌다. 떠다니기에도 빠듯하다.

싸구려개그에 영혼도 팔아버리고 정신없이 벌어진 입을 다물기에도 벅차다

 

4.

'속도전'에 취해 돌아보는 것을 모두 사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단망각처럼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모든 시선을 주고, 맘을 주는 어리숙함. 애초에 '돌아봄'은 우리의 취향이 아닌 듯, 도대체 시선은 앞만 향해있고, 자신의 행적에 대해 무감각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저자는 지금의 현실을 로마의 폐망직전으로 묘사한다. 사우나와 식당과 환락이 뒤범벅이되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세상은 온통 욕하기 바쁘지만, 자신의 행적에 대해선 객관적 시선을 잃는다. 무한한 관용, 타인에게는 잔인할 정도의 인색함이 우리라고 한다.

050115

5.

피해의식 -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 - 변이 자중심성, 개성이 강하거나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거나라는 것과 씨부터 다른 것 같다. 어쩌면 군사문화가 그 책임소재의 8할이상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적인 생활의 논리는 내 위주이다.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으면, 병장의 반경으로 상병-일병-이등병이, 상병의 원으로 일병-이등병이, 일병의 반경으로 이등병이 돌아줘야 움직이는 시스템은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병장은 쫄병들 누구에게나 뒷담화에 주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일사분란하게 병장 중심으로 도제가 형성되어있다. 화장실 청소까지? 그런 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자중심성의 늪에서 도망갈 수 없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그 포로가 되어 있다.

집단이 성찰해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해도 스캔들, 남이 해도 스캔들이란 바닥을 언제쯤 치고 올라올 수 있을까? 그런 빈틈은 있는 것일까?

6.

환상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취하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요. 하지만 깨어나면 허탈하기만 합니다. 어제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금단현상을 이겨내려는 굳은 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진*권, sbs 창과*패, 1. 13 )

 

언젠가 남겨둔 흔적

 

오늘도 정세와 입장이 중요하다는 말씀올 듣는다. 지도자의 선택에 따른 운동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데 일견 동의하지만, 수긍하기가 쉽지만 않다.

1. 늘 술자리가 되든 그렇지 않든 ‘전투적 문화’ 이것도 무의식중 군사문화 잔재라 볼 수 있
는가? ‘아군과 적군밖에 없는~’ 친하면 아주 친하구, 아니면 뒷담화주제거리로 전락하고 마
는, 하늘과 량차이만한 간극~ 쟁점이 붙는다. 표현하는 바, 의중에 우회하지 않고 직선타
를 날린다. 잘 잘못을 떠나 의중에 정확히 박힌다. 의중이 발가벗겨진다. 이젠 입장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셜전의 와중에 흠집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드디어 발견이다. 역전타. 모임
의 전투성은 활동가!에 인접할 수록 강하다. 오늘 판결내지 않으면 되지 않을 듯, 의기가 충
천하다.


2. 정세와 입장을 거꾸로 따라가볼 수 있을까? 모두 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그릇
된 판단올 했올텐데. 앞만 볼 줄 알아 뒷그림자는 볼 수 없는가? 얼마나 열심히 무엇올??
정치운동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열정을 회석화하자는 것도 아니나


3. 모임이 늘 진위만 가리려 한다면? 옳고 그름만 따지려한다면? 상처난 감정들로 상대방이
들려주는 다른 모습과 견해는 잊혀지는 것은 아닌가? 그 흔하디 흔한 모임의 식탁에 파업
이라는 화두의 요리가 나왔다고 치자? 사람마다 까다로운 입맛, 기호의 차이가 명백해 다른
맛, 다른 식사방법을 나눈다면 좀더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음식에 대해 이런 부분올
모른다고 이야기해줄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음식의 참맛을 보기위해선 이런 조리방식까지
들여다 보아야한다구. 이것은 영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다른 음식부터 맛보아야 하지 않느냐
구. 그래야 다음에 만나면 상대방 식성도 고려하지 않을까?


4. 한번 보고 그칠 사람들은 아닌데, 늘 전투코드는 의욕을 상실하게도 한다.

5. 대중과 활동*의 벽은 점점 높야지는 것은 아닌가? 높아지는 벽을 ‘허물기위해 오로지 한가지 정공법만 태하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 금간 곳이나 틈이 있을텐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인으로서 뭔가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내 피붙이 교육이나 나혼자만 살 궁리하지 않고 비정규직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나 전술은 없는 것일까?


6. 지도부와 집권만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헌신과 의무만큼, 흑자는 경험만큼 잠재된 이론올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도 삶은 무궁무진한 이론투성이 정세투성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계몽은 가고 벽을 허무는 동선과 움직임만 남으면 좋겠다. 초록이 너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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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01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이 생각나던 중 <대화> 234-235쪽에서 이영희선생님의 견해를 듣는다.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조선인의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어. 냉정하게 제3자적인 시각으로 현대까지의 우리 민족사를 볼 때, 이런 달갑지 않은 요소가 '민족적 유전자'를 형성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때가 있어요.

굳이 '민족심리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민족의 이 같은 특성은 프로이트적인 해석보다는 오히려 카를 융의 '집단적 생존의 역사적 유전론'으로 더 잘 이해될 것 같아....... 생물로서의 진화의 누적이 생물학적으로 계승되는 것과 같이, 개체의 문화사적 의식면에서 과거를 무의식중에 보전하고 있다는 거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간절하지만, 너무도 정확하게 너무도 여러 번 되풀이되는 비극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구요.

 

노신이나 프란츠파농은 당시의 중국 인민대중의 무지.나태.우매.탐욕.교활.갈등.분열.약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결점과 약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는 따위의 값싼 '과잉 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해요. 그 모든 약점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그것을 중국 인민대중의 눈앞에 잔인하리만큼 적나라하게 던져 보여주었어. 노신이 의도하는 바는 그런 자신의 약점들을 인식하지 못학나 또는 인식한다 하더라도 민족적 편애심 때문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기만적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거요.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060701   <의견과 사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 김훈 한겨레신문에 대한 코멘트(일반 민주주의나 다양성의 밑바닥이자 출발점)

최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선거 - 계파간 갈등은 선을 넘어섰고, 부문간 대표의 원색적 비방 - 물밑 작업등 비공식 소통 공간 부재. 서울 다녀오는 버스 - 중간 휴게소에서 쉴 것이냐 말 것이냐로 폭력을 상호 행사하였다 한다.(택시<-->공공) 감정의 골은 반목으로 반목은 폭력으로 행사하였다 한다.

(폭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집단간의 폭력의 행사는 몸의 기억으로 남고 이성적 통로만이 아니라 감성적 통로까지 막아놓은 것. 사람의 권리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형태의 폭력으로 일상이 뒤 흔들리기 때문이다. 행사하는 사람이나 피해자나 모두 문제를 증폭시키기에 그 원칙들을 이야기하나, 무위로 그르치는 폭력 건은 벌써 민주노총에서 몇번째이다. 그 당사자들이 운영을 한다. 무엇을...왜...하려는 것일까? 폭력잡배들에게 평범한 조합원을 맡긴다. )

060702  <참터 방향> 현재의 할 일이 너무 자주 변한다. 철학이나 전망의 부재라고 볼 수 있으나 중심-기획일의 의도가 수시로 변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주관적 판단이 가미되어 방향자체가 수시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획에 맞춰가는 것이 가능한가? 확인되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에서 방향이 가닥을 잡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의도하는 방향에 사실을 맞추어 넣는 기괴함의 풍속은 맞는 것인가?

060703 자주파의 왜곡, 평등파의 왜곡, 활동권의 인권의식, 조합 활동가의 인권의식, 교사의 인권의식 - 인권은 책상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이자 행동이다. 머리와 몸의 간극을 아프게 되물어야 한다. 그 신경증과 병리현상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치료하거나 격리되지 않으면, 그 공간차체가 마이너스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닌가?

 


 

(from 가을산 060703)

FTA고 나발이고.....  
어제오늘은 여느때와 달리 FTA 관련 사이트 점검을 하지 않고 있다.
가슴이 갑갑한 것이, 또 가위눌림이 도지는 모양이다.

알라딘도 나의 '착시'에 책임 있다.  각성하라~!   ㅡㅡ;; 
(왜냐구요?  답은 맨 끝에.)

1.  buddy의 질문. 

지방선거에 부인이 출마해서 몇달간 소원했던 buddy L, 그리고 buddy S와 점심 먹었다.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여러 행사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buddy L 이 묻는다.
"FTA가 언제부터 그렇게 문제가 되었지? 노무현이 아무리 그래도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겠어?"  

지난 몇년간 반세계화,  의료개방, 영리법인, 건강보험, 글리벡, 의약품 접근권, 약가절감, 양극화, 사회 안전망....질릴 정도로 이야기해온게 그럼 다 무어란 말인가?  '언제부터'라니?

buddy L은 운동에서나, 인격이나, 지역사회의 활동에 있어서나......
나보다 선배이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마저 저렇게 나오니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설득하나? 
나같은 먹보가 이날 냉면 먹고 체했다. 


2. 이른바 '강사단'? 

토요일에 평소보다 병원 문 일찍 닫고 '강사단 학교'라는 행사에 참가했다.
내가 들은 이 행사의 취지는 FTA가 전문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많은 교육과 설명이 필요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지역 토론회나 모임에서 '강사'를 할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상는 달랐다. 
일단, 강사단에 참석한 사람이 예상보다 적었다.
참석한 사람들 중에 정작 전문가급은 단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참석한 단체에 대전의 영향력 있는 단체들이 빠져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 중, FTA가 무언지를 처음 들으러 온 사람이 태반이었다.

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둔감하다. 그런데 FTA 관련해서는 각 단체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왠지 상당히 삐그덕거리는 것 같다.
대전의 대표자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으로부터 듣자니, 여태까지 '조직도 그리기' 만 하고 있다는데....
걱정된다.


3.  우울의 본질

나는 그저 책 읽고, 애들 공부 시키면서 잔소리 하고, 가끔 맛없는 과자 만들고,
자전거 타고...  목공이나 뚝딱거리고,  도예촌 가서 그릇 만들고.... 그러고 지내고 싶다.

그래서 외국과의 접촉을 제외한 지역활동은 인**과 노숙자 문제를 제외하면 거의 나서지 않았다. 
이런 저런 단체에서 가입 권유가 있어도 오히려 활동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했었다.
지난 몇년간 이번 일만 끝나면..  이번 행사만 하면....  내가 하고 싶던 것들을 하겠다고 생각했었고,
실재로 잠시잠시 할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앞으로 1-2년 혹은 그 이상의 장기전이 될 것 같고,
그 결과는 앞으로의 수십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일선에서 일하는 변모,  우모샘은 그간의 과로로 이제 정신적, 체력적 한계를 보이는 것 같아 염려되고, 
지역에서는 조직이 꾸려지지 않고 있고...  

나서기는 싫고....  ( 난 사람 많은 곳, 말 많은 곳이 정말 싫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은 더더욱 싫고)
그냥 있기에는 사안이 너무나도 다급하다.  '누군가 나서겠지'라는 배짱을 부릴 수 없다는게 문제다.
왠지 책읽고, 목공하고, 딴짓 하던 것을 못하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이 내 우울의 본질인 것 같다.

우울에는 단순 노동이 최고다.
어제 주말 농장 가서 1시부터 7시까지 일했다.  중간중간 비가 내리는데도 밀짚 모자 하나 쓰고.
내밭 김매고, 수확하고, 감자 캐고, 미나리 따고, 남의 밭까지 김매주고....


ps.  알라딘이 왜 책임이 있냐구요? 

알라딘엔  FTA 관련 소식을 모으는 분들, 적절한 비판을 하는 분들, 그리고 그런 글들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이정도가 바깥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 수준인 줄 알았다가 토요일에 충격 받았어요. 
제가 병원에 갇혀 지내는지라 바깥 물정을 너무 모르고 있었나봐요.

ps2.  혹시 제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 같지는 않나요? 
광신도들이 길거리에서 "찬미**  불신 지옥"  피켓 들고 다니는 것과 내가 과연 무슨 차이가 있나 고민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서재 지인들의 냉정한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경주마' '경주견'... ... 폄하의 발언일수도 있으나, 현실을 돌이켜보자면 너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적막함일까요? 저를 비롯하여 활동한다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속도에 놀랄 지경입니다. 눈이 뭐가 씌인 듯, 내달리기만 할 뿐. 옆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하고자 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일들인지도? 무서울 지경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는 아닐까요? 섞어도 준치?? 글쎄요. 성찰이나 되돌아 봄 -- 좋은 이야기일 뿐이지 않나 싶어요. 성찰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 싶은 느낌입니다. 하는 일-하고자 하는 일-한 일에 대해 냉정한 비교는 아예 없는 듯 싶기도 합니다. 뭔가 홀려서 사실을 끼워맞추고자 하는 일들만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하기도 합니다. 필터를 통한 에푸티에이가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계파에 맞춰 구호순위로 싸울지도 모를 일입니다.(과잉정치인가요?) 탈정치화해버린 생활인들도 제 것에 손해가 되는구나만 해야, 달리는 경주마앞에 장애물이 나타나서야, 어~ 이건 아닌데 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귀인을 바라는 것을 아닐지??

가을산님의 실망과 우울모드처럼. 최근 회복가능성이나 소통가능성..에 점점 맘이 멀어져감을 느낍니다. '객토'나 '처음에서'... ...움직임이 오히려 점점 뺄셈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까지.... 그러고보니 저도 실망모드군요

 


060705 운영위 자료를 받아들고 방과후학교 계획(안)/학칙(점수관리합법화)을 비롯해 마지못해 한다거나, 해야할 것에 대해 고민을 품어보지도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일상이 그려지고, 아이들도 그렇게 키워지는구나...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 과연 운영위원들이 느낄까? 그냥 코멘트하고 끝나는구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래도 나아지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답답함이 밀려오더군요. 사실 운영위 번개가 있다고 해서 조금은 기대를 했지요. 낼 모레 회의때문에 모이는 것이구나 할 이야기가 있구나라고... ... 그리고 조금 늦게 번개장소에 가며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말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라고 여겼죠. 이야기가 무르익고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첫마디가 '별 문제없죠' 였답니다. 운영위 OB모임, 행간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는 것이 다른 셈이었습니다.

 

활동에 철학이 있는지? 의외의 빈약함. 자유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말. 당원이자 활동력이 높은 분들에게 나오는 활동의 맘뿌리가 보였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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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정의 부정을 통한 자기긍정의 길입니다.
    from 木筆 2010-12-07 14:05 
    분열.대립.갈등.중상모략   - 4.19후, 80년 '서울의 봄'이후....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분열...        나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이조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당쟁.분당.족벌 정치의 퇴행적 형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나는 수백 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서,
 
 
 

 
집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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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가장 큰 쟁점중의 하나인 교육문제를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바라보자. 교육은 개인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며, 나아가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기반이다. 일반적으로 볼때 교육에 있어서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의 구분은 명확해 보인다. 개인의 자질과 노력, 그리고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적인 문제에 해당되며, 공교육의 질과 투자는 공적인 문제, 즉 공공의 문제이다. 그러나 좀더 주의깊게 생각해보면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육에 있어서 개인과 공공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개인의 문제', 즉 사적인 문제는 한 개인의 성격 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개인적인 관계 범위내에서 발생한다 (by daydreamer)
* 사회학적 상상력 - 한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즉 정치적인 것에서 심리적인 것으로, 단일 가족 연구에서 세계 각국 정부 예산에 대한 비교연구로, 신학교에서 군부대로, 또는 유류산업에 대한 고찰에서 현대 시연구로 옮겨가는 능력이다. 그것은 가장 비 개인적인고도 관계가 먼 지역에서 일어난 변환에서 가장 친밀한 인간 주체의 속성까지 아우르는 능력이며, 또한 둘 간의 관계를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발휘 이면에는 그 사회와 시대에 자신만의 특징과 본성으로 살고 있는 개인의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알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개인의 일생과 역사가 교차되는 조그만 점인 자신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사회학적 상상력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들이 책에 담겨서 싫기도 했다. 영상이었다면, 한 번 보고 지나쳐버릴 기사였다면 차라리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잊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책상에 꽂혀선 자꾸 다시 살펴보라고 나를 재촉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재촉에 못 이겨 책을 다시 펼치면, 아팠던 맘 한 구석이 다시 아파온다. 왜냐! 난 여전히 이 땅의 소수자들을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로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기도 하다. 언제든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꾸짖을 기회를 주니까. 난 그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내 사는 모양이 맘에 들지 않을 때,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머리로만 꿈꾸고 있다는 걸 확인할 때 꼭 이 책을 펼쳐들겠노라고. 그렇게 이 책을 보면서 나를 다듬어가겠노라고.

 

그러다보면, 이 땅의 소수자들 이야기는, 어느새 엿보기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기, 함께 대안 찾기로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은 정말이지 엿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책이다. 내가 소수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그런 마음, 정말 안됐다 하고 눈시울 살짝 적시고 마는 행동, 이 책이 조금씩 바꿔 줄 거라고 믿는다 (by 난칼)



나는 고유한 노동, 즉 생존에 고유한 노동을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지만 생활을 마련하고 개선시켜 가는 것으로 표준적인 경제학의 내부에서 발전된 개념을 사용한 분석으로는 전혀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활동에 '고유한vernacular'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고유한'이라는 말을 상품과 그림자에 대치되는 용어로 부활시킬 것을 제안한다. '고유한 노동'을 통하여 현대적인 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확대시켜야 한다. - 본문 중에서

한미FTA의 공공성에 대한 공격은 특히 에너지, 교육, 의료, 문화 등에 집중되어 있다. 금융은 공공성을 운운하기조차 힘든 수준으로 외자 지배하에 넘어가 있고, 투자와 지적재산권은 미국형 FTA가 각별히 공을 들이는 부분이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공론화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말조차 한국에서는 낡은 개념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결국 국가 주권적 정책공간의 위축과 잠식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 (신)식민주의는 자기 완결적인, 신성불가침의 국경으로 무장한 전통적 민족국가간의 관계에서 나온 개념이다. 오늘날처럼 초국적 자본이 주동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그 양상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수출경제를 사실상 주도하는 초국적 기업과 미국계 초국적 기업은 일종의 ‘이항대립(二項對立)적binary opposition’의 관계에 놓인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 대립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에 동일한 이해를 갖는 그러한 관계말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 중요한 것이 구조조정이다. 글로벌 경쟁격화는 자본의 수익성을 위협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좀 더 나은 투자처, 좀 더 값싼 생산기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이들의 본성이다. 그 과정에서 국가의 모든 규제장치는 한갓 비관세 장벽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이런 점에 착목해 볼 때, 이 새로운 식민주의는 우리에겐 여전히 낯선, ‘초국적 식민주의’라 부를 만하다. - 본문 242~245쪽에서

1.

 <그림자노동>, 이반일리히 - 그가 사망했다는 것을 이책을 접어들고서야 알게 된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앞의 책만 몇권보았으니 어련하겠는가, 하지만 많이 섭섭하다.  이면만 들여다보게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인 것 같다. 감명깊게 읽었던 폴라니의 논리를 확장, 전개시키고 또 한편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발전이라는 관념에 묻혀 버린 공리를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입체적이고 단순하다. 지켜내고 확장시켜낼 것도 명쾌한 느낌이다.

 

좌익-우익으로 단순화된 일차원적 정치모델이 아니라, 3차원 모델을 적용시킨다. X축에 좌익--우익, Y축에 소프트와 하드(큰 기술-작은 기술, 원자력,상품,서비스 등등), 그리고 Z축에 경제인(HAVING) 과 예술-생활인(DOING,BEING)을 둔다.( 소유에서 만족을 구하기에 적합한 사회조직과 행위로부터 만족을 구하기에 적합한 사회조직을 배치함.)

 

철지난 개인적 잡생각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46663

 

이 모델로만 하더라도 진보는 좌파지향만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으로 인한 사회구조와 직접 삶에 맞닿아있는 행위의 영역까지 지향과 출발이 들어있는 셈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 개념의 유포와 발전사라는 것이다.

 

1.1

발전이란 개념은 (야만인<손님>-->이교도--->이단자--->미개인--->원주민--->저개발주민)으로 요약될 수 잇는데, 타인에 대한 태도로 간단히 설명된다한다.

그리스은 타인이 이웃 폴리스에서 온 초대 손님인가 아니면 인간 이하의 1.야만인인가로 구별하였고, 교회의 영향으로 구제되거나 교화되어야 할 존재로 보았고,  고대후기에는 2.이교도(세례받지 않은자) 취급되었다. 그 뒤 이슬람교가 생겼으나 개종에 저항했고, 3. 이단자로 취급되었다. 콜럼부스가 대서양을 건넌 뒤 이단자라는 이미지 대신에 문명화 기능을 위협하는 4. 미개인이란 이미지가 등장했다. 이런 미개인은 식민주의와 중상주의에 대해 필요한 것이 없는 유럽인에겐 고귀한 존재로 보였고, 수요을 날조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5. 원주민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2차세계대전 까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원주민의 제한된 수요는 성장과 진보를 저해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원주민은 다시 6. 저개발 국민으로 변신되어야 했다.고 한다.

 

 1.2

이런 '경제인'이라고 하는 서구 이미지는 결코 성적으로 중성일 수가 없으며, 경제인=(노동자인-주부인)이라는 한쌍으로 창조되었고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주부인의 그림자노동이 함께 성장하였다. 그러한 성 분할을 토대로 하여 '산업인'이 창조된 것이라한다. 여성의 제도적 해방 역시 역설적으로 지불되지 않는 노동과 지불되는 노동의 대립을 강화시켰으며, 지불되지 않는 노동과 생활의 자립,자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이런 발전지상주의의 관료제도가 가진 마지막 희망을 그림자 경제를 개발하는데 있다.

 

1.3

그는  Z축의 정점의 그림자 경제에 소속된 생활보다는 '고유한 노동'을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고유한 Vernacular'이란 라틴어로 유급교사로부터 배우지 않고 습득한 언어에 대해 사용되고, 가정에서 형성되고 가정에서 창조된 공용에서 유래하는 가치를 나타내는 말로 쓰여졌다한다. 그것은 시장에서 매매되지 않는 인간이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가치로 상품과 그 그림자에 대치되는 용어로 이 말을 부활시킬 것을 제안한다.

 

1.4

사람을 마비시키고 포만하게 하며 무기력하게 만드는, 저 풍요란 이름의 현대적인 실험모델에 매료되어 온 다수의 사람들에게 대안을 만들 두 조건의 충족을 이야기한다. 첫째, 인간과 도구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서 생긴 생활방식은 '산업인'이 아니라 '예술인'이라고 하는 인간의 인식에 의해 활성화되어야 한다. 둘째. 상품으로부터 독립된 생활방식은 각각의 작은 공동체 속에서 새로이 형성되어야만 하고 강제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2.

2.1 가슴이 답답해지고, 서글픔이 우러나온다. 자본의 식민지이자 마름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팍스아메리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쩌면 이 작은 땅떵어리를 제 몸뚱어리로 만들려는 악날함이 더 보인다. 황색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도 친미주의자와 경제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 앞으론 어떤 진보 정책이나 개선의 노력도 허무하게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제 것이 많이된 은행들을 차치하더라도 지나마 조금 남은 공공영역, 에너지, 교육,보건의료 등 전문직 서비스까지 근본을 흔든다는 점에서 우려를 떠나 식민화로 치닫을 수 있다는 점이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아닐까?

 

2.2 동북아의 허브가 아니라 동북아의 자본식민화의 첨병으로 월남전 못지 않은 잔인함과 화려함을 뿌릴 것 같지 않는가? 공공영역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개량시스템의 제도적 시도의 씨도 말려버릴 현상황은, 동북아중심이란 허구보단 미국식자본주의의 전가를 통해 동북아에 정치,경제,문화적 물의를 일으키기 쉽상인 토대를 굳건히 만드는 것에 그 위험성이 더 클 것 같다.

 

2.3 경제인으로서 미국의 추악함은 이미 우린 IMF에서 경험했다. 그들의 조처가 아무런 경제상황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준 것도 하나없고, 경제 상황을 보는 눈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잇속만 차리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자본화의 정책만 취하는 것도 두 눈 똑똑히 뜨고 봤던 것인데, 지금도 두눈 똑똑히 뜨고 그 짓을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도 친미주의자들은 우려나 일신의 안락만 맘 속에 둘 뿐, 근본적인 변화엔 여전히 두눈을 꼭 감고 있다.

 

2.4 그들이 좋아하는 성장과 발전을 들이대더라도, 단기적-장기적인 효과는 최근 10여년간의 상황을 목도해서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경제인으로 동북아로 다가서는 것보다 사회문화, 예술인으로 다가설 때, 그 성장이나 발전잠재력이 더욱 클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박함에서 세련됨이 더 돈을 가져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2.5 그런데도 미국놈들의 천박함에 맞장구쳐 나라를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놈들 같다.

 

2.6 더욱더 어두운 그림자는 동북아 자본주의 성장의 방향에도 커다란 왜곡을 가져온다는 점일 것 같다. 전폭적인(제도적,문화적) 자유주의의 수용으로 개혁이나 개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30년 후퇴라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된 대학에서 어떻게 지금 이야기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의료보험이야기로 가난한 사람들의 보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제약회사사람들은 또 다시 길거리로 내몰리고... ...

 

2. 7 엘리트관료들과 기업엘리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승진이나 이익의 감수성외에 도대체 다른 것을 느낄 수나 있는 것이냐구.


 

2.8 'FTA' 자유무역협정, 뭔가 말이 좋아보이지 않는가? 자유무역 지금까지 해왔던 것 아니예요? 뭔데요?  경제통합도 그렇고 좀더 사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02

3. 비판적 사회주의

 


이 책은 거의 끝에 다다라서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준다. '사회주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계급성향과 그 계급의 과업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와 자연스러운 노력의 총체이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사회주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사회주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의 진영으로 넘어오지는 못했을지라도 설득시켰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괜한 우려다. 사회주의의 진영으로 기꺼이 넘어가겠다고 다짐한 나 같은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by sychaw)

과학적 사회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1901년)

3.1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두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특정한 사회 질서에 관한 상이며 구상이자 학설이란 것과 특정한 사회질서를 향한 운동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상태로 파악되든, 운동으로 파악되든, 운동으로 파악되든, 그  안에 이상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저편의 한 부분이다. 사회주의는 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이나 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을 향한 운동 가운데 있는 것이다.(30쪽)

 

3.2 사회주의를 '협동적 상태를 향한 운동'으로 규정했고 이런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31쪽)

 

3. 3 사회주의는 과학적 인식의 기초 위에 서 있고, 이러한 과학적 인식이 방향을 부여하는 요소임을 인정하지만, 배타적으로 과학이 되어야 하고 특정 시기에 과학으로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사회주의가 강조하거나 인정한다고 보는 관념을 배제하는 사유를 말한다. 이에 적합한 명칭은 '비판적 사회주의'이다.(47쪽)

 

3.3.1  프루동 "우리 함께 사회적 삶의 법칙, 이 법칙이 관철되는 형태와 방식, 우리에게 이 법칙을 발견하게 해주는 방법을 탐구하자. 그러나 우리가 모든 선험적 독단의 체계를 분쇄하고 난 후에는, 이제 우리 편에서 민중에게 독단론을 전파하는 것을 가능한 한 경계해야 한다. 문제가 결코 다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논의를 모두 끝낸 후라할지라도, 필요하다면, 능변과 아이러니를 가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46쪽)

 

 3.4 그리하여 나는 내 설명이, 사회주의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 또 편견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대했던 사람들을 사회주의 진영으로 넘어오게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설득시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나는 사회주의가 위대한 문화적 운동이기를, 끊임없이 지속되는 운동이기를, 그 운동이 거대한 정당으로 결집되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회적 계몽을 확산시키고, 국민 경제의 필요에 대한 이해를 일깨우고, 사회가 사회주의적 진보의 도정에서 더욱 전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악해야만 하는 수단의 성질에 대한 이해를 일깨움으로써 전체를 위한 최선의 것을 낳도록 영향을 미치는 그런 운동이기를 희망한다.(155쪽)


4.

 

사회학적 상상력? 글쎄 우문이다. 철지나듯이 빛바랜 용어를 반추해낸다는 것은 오히려 무식함이나 퇴물임을 말해주는 지표나 아닐까? 내 남편- 내 자식- 내** 라는 용어만 달고 살아가 우리 새끼, 우리 집, 우리 엄마라는 느낌이 없어질 쯤, 현실과 맘이 꼭 같아지는 세상에 별난 생각이 아닌가 모르겠다. 차라리 '사회학적'이란 말을 떼어놓고 '상상력'이란 말만 써놓았으면 좋았으련만? 내 새끼, 내 남편...내 식구 교육이나 승진발에 더 잘 먹히고 '상상력'의 보편적 가치가 있으련만? 한 수식어를 붙어 퇴물이자 시대에 역행하거나 불손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 한몸 추스리기도 힘든데, 무슨 엉뚱하기 짝이 없는 소리라는 이야기도 들을 듯하다. 거기에 사회주의라는 말까지 넣었으니, 이만하면 나에대한 라떼르도 붙을 것 같다.  개인적인 성향을 말하자면 온정적 진보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말고...아니 이말도 사실 과분한 듯하다. 휴머니스트나 양심있으려는.... 존재가 다르다고 크게 이견을 다는 편이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할일이 무진장 많다고 느끼니 온정적 휴머니스트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온정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맘은 더 불편해진다.  '위기론'은 제일 싫어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기임을 핑계대어 사람을 옭죄는 구태만큼은 진저리쳐진다. 일터-삶터-사회를 떠나 연일 위기로 모두를 열고 덧보태 정신을 얽어놓는 미련함은 정말 경계하고 싶고 그치고 싶다. 그런데도 사실 얕은 앎에도 '위기'가 들먹거려진다.  계파의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사업을 하든 그렇지 않듯 주어진 현실에 예민하는 것들이 내새끼, 내식구만이 아니라 자식의 자식까지 여파를 미칠 듯 하여, 정신과 맘을 세상일에 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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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슴이 답답해지고, 서글픔이 우러나온다. 자본의 식민지이자 마름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팍스아메리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쩌면 이 작은 땅떵어리를 제 몸뚱어리로 만들려는 악날함이 더 보인다. 황색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도 친미주의자와 경제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 앞으론 어떤 진보 정책이나 개선의 노력도 허무하게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제 것이 많이된 은행들을 차치하더라도 지나마 조금 남은 공공영역, 에너지, 교육,보건의료 등 전문직 서비스까지 근본을 흔든다는 점에서 우려를 떠나 식민화로 치닫을 수 있다는 점이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아닐까?

 

2. 동북아의 허브가 아니라 동북아의 자본식민화의 첨병으로 월남전 못지 않은 잔인함과 화려함을 뿌릴 것 같지 않는가? 공공영역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개량시스템의 제도적 시도의 씨도 말려버릴 현상황은, 동북아중심이란 허구보단 미국식자본주의의 전가를 통해 동북아에 정치,경제,문화적 물의를 일으키기 쉽상인 토대를 굳건히 만드는 것에 그 위험성이 더 클 것 같다.

 

3. 경제인으로서 미국의 추악함은 이미 우린 IMF에서 경험했다. 그들의 조처가 아무런 경제상황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준 것도 하나없고, 경제 상황을 보는 눈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잇속만 차리는 천박하기 그지없는 자본화의 정책만 취하는 것도 두 눈 똑똑히 뜨고 봤던 것인데, 지금도 두눈 똑똑히 뜨고 그 짓을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마음도 친미주의자들은 우려나 일신의 안락만 맘 속에 둘 뿐, 근본적인 변화엔 여전히 두눈을 꼭 감고 있다.

 

4. 그들이 좋아하는 성장과 발전을 들이대더라도, 단기적-장기적인 효과는 최근 10여년간의 상황을 목도해서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더라도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경제인으로 동북아로 다가서는 것보다 사회문화, 예술인으로 다가설 때, 그 성장이나 발전잠재력이 더욱 클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박함에서 세련됨이 더 돈을 가져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5. 그런데도 미국놈들의 천박함에 맞장구쳐 나라를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놈들 같다.

 

6. 더욱더 어두운 그림자는 동북아 자본주의 성장의 방향에도 커다란 왜곡을 가져온다는 점일 것 같다. 전폭적인(제도적,문화적) 자유주의의 수용으로 개혁이나 개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30년 후퇴라는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된 대학에서 어떻게 지금 이야기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의료보험이야기로 가난한 사람들의 보건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제약회사사람들은 또 다시 길거리로 내몰리고... ...

 

7. 엘리트관료들과 기업엘리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승진이나 이익의 감수성외에 도대체 다른 것을 느낄 수나 있는 것이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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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6-2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일합방 당시 조일의 국력 궁금해요.



1.합방당시 일본의 국력지수 세계 몇위였죠?

1) 군사력은 세계 몇위?

육군. 해군.. 병력과 어떤 군사장비를 가지고 있었나요?

2) 경제력은 GDP 얼마로 몇 위?



2. 조선의 국력지수는 세계 몇위?

1)군사력은 ? 세계 몇위

육군, 해군 병력과 장비

2)경제력은 GDP 얼마였고 세계 몇위였죠?



3. 조선에도 합방당시 부국강병 주장한 사람 중

1)군국주의나 제국주의 성향의 학자나 관료가있었나요?

2)있었으면 누구이고

3)어떤 주장을 했나요?

4)혹시 이들이 친일파라고 매도됬나요?



4. 식민지개발론에 의하면 일본의 자본이 조선을 근대화에 기여 했다고 합니다.

1)일본이 조선에 투자한 총 투자액과 조선이 투자한 금액이 어떻게 되죠?

2)일본이 일제 강점기에 수탈한 인적, 물적 자원의 양은 각각 얼마나 되나요?

3)조선의 자주적 근대화가 진행됬으면 식민지 지배 이상으로 조선이 발전했을까요?



5.조선이 일본과 대등한 국력을 유지했었으려면

1)어느 시기에 개화를 했어야 하나요? 학계의 연구결과는?

저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정조시기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요..

2)그리고 어떤 사상이 지배했었을까요?

서구열강처럼 제국주의나 군국주의 사조에 따랐을까요?



6.국제정세, 조선의 국력으로 보아 일본이 아니더라도

1)다른 열강에의한 강점은 피할 수 없었나요?

2)일본이 아니었다면 누가 조선을 강점했을까요? 러시아?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