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생각꼬리들

1. 성명서를 다르게 쓰고, 지금과 다르게 하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념의 굳은살을 넘어서는 일들은 무엇일까? 문화의 힘이란 무엇일까? 단단하게 굳은 근육들을 풀어 유연성을 발휘하게 하려면? 어떻게 타고 넘으면 재미있을까? 부담도 느끼지 않고 아닌 듯, 그런 듯 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문화라는 속살은 어떤 것일까? 혹 문화에는 끓는 점이 없는 것일까? 우회하는 듯하지만 우회하지 않으면서 차곡차곡 온도를 높이는 것도 문화의 뜨거운 속성은 아닐까? 단단하게 굳은 굳은 살과 경직된 근육에 유연성을 회복하는 일들, 유연성 경쟁이라도 벌일 수는 없는 것일까? 문화의 힘이 유유히 이념의 얼음판을 녹이고 보듬을 수 있을까?

2. 문화의 힘이 그러하다면 예술의 힘은 어떠한 것일까? 그것도 바람처럼, 안개처럼 부유하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의 막힌 퇴로를 뚫어주면서 그것도 채곡채곡 온도를 높여주는 것일까? 섬처럼 일상의 동선에 겉도는 것이 아니라 모임의 결 사이로 스며들거나 배이는 것은 아닐까? 아니 배여야 되는 것은 아닐까? 뜨겁게 데워지거나 펄펄 끓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3. 문화의 막힌퇴로와 예술의 켜로 재워지는 일상은 깊은 맛이 우러날까? 그 맛이 듬뿍 배인 이념의 굳은 살은 유연해질까? 단단하게 담처럼 뭉친 이념의 경직성은 유연성을 회복해, 오히려 외피가 문화의 혼과 예술의 말을 닮을 수 있을까? 080905  오전

세미나 뒤풀이 가운데



4. 샘이 건넨다. 제도권 안이 있고 그 현실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경직성을 비껴나는 것들은 없을까? 그런 시도를 해본 적이나 있을까? 제도곁이나 제도밖의 사고, 상상력에 멈춰섰던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중학교, 시키고 싶어도 시킬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가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현실. 그 순간에 멈춰서보자. 제도의 틀에 정지하고, 그 순간에서 그 상황을 여러 겹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제도가 추구하는 것 같는 것 달라지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엄밀히 살펴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 겹들을 물을 발라 더 겹겹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일까? 제도안에 대해 고민을 공유하거나 현실을 주부들의 입장에서 나눠본 적이 있는가? 설명해보라고 한 적이 있는가? 이*선 샘의 발제에 이어 문제의식이 깊이 다가선다.   080905 저녁 축시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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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속의 책이나 얇은 이야기거리 고르기 

 

 

 

 

 

둘. 요약하기

 

 



셋. 동영상 관찰하고 만들기_처음은 사진컷 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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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짝퉁지혜채널 f 작업 출발(酌)
    from 木筆 2008-09-06 13:17 
       1. 조금 일찍 서둘러 참* 사무실에 들르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 대충하면 되지 않을 것 같아, 책들과 논문들-한정되지만 훑어보면 사이 메모지를 넣고, 논문에도 쓸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며 챙기다. 아*** 근대사 세미나 출발, 뒤풀이 뒤 오늘 학생들과 만남을 위해 술도, 시간도 서둘러 돌아온 참. 안해가 상가에 다녀온 새벽소리 흔적이 잠깐 그래도 숙면을 취하다.  2. 짝퉁지혜채널을 위해 제목을 치고, 간단한 인사
  2. 짝퉁지혜채널 f 작업 마무리(酌)
    from 木筆 2008-11-23 23:04 
       1. 지난 토요일 15명정도 참석하여 15편정도 시연회를 두서없이 하며 마무리를 한다. 진행을 하며 늘 걱정되는 부분은 중간에서 말미로 접어드는 부분이다. 틈틈이 신경을 쓰지 못하면,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모르면 묻고, 전자우편들로 반응이 온 점, 주제를 마음 속으로 가져가 삭힌 점들이 고맙다. 주중의 팀들을 신경쓰지 못하였는데, 조금 전 확인을 하여보니 편집한
 
 
웽스북스 2008-09-0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이거 정말 만드시는 거에요?

여울 2008-09-04 13:06   좋아요 0 | URL
그쵸. 과학,기술과 사회,윤리..당분간 이런 주제가 많을 것 같은데요. 웬디양님 혹 만들었으면 하는 주제나 책...이런 것들 없나요? 잘하면 님의 의견을 반영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죠. ㅎㅎ.

밀밭 2008-09-0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대됩니다. ㅎㅎ 저도 언젠가 만들어볼 요량으로 민**에서 단기간으로 한 번 배워본 적 있는데요, 마무리를 못해서 아쉬웠답니다. 사진찍기 이제 시작했는데, 글쎄... 암튼 여울마당님의 작품 고대하고 있을게요.^^

여울 2008-09-04 17:52   좋아요 0 | URL
앗, 제가 하는 것이 아니구요. 참* 자원활동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말씀입니다. 혹 관심있는 주제나 해봤으면 하는 아이템들 없나요??

모토가 짝퉁, 유사품이므로 작품의 완결도보다는 순수성,내용 이런 것들 입니다.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한다고 보시면 될 듯. 완결도보다는 다작이 더 후련할 듯 싶습니다. 내친 김에 동참하셔도... ㅎㅎ
 

 




 


   
  매맞는 아내들이 고통을 표현하는 행위는, 그들의 고통에 의해 유지되어 왔던 가부장제 가족제도의 효율적 작동을 위협한다. 그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안식처 가족의 신화, 보호자 남성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이다. 52쪽
 
   


   
  "아내 폭력"은 피해가 가시화되어야만 "진실"이 되기 때문에 문제해결은 언제나 피해 이후에 논의된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당하는 폭력은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므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피해가 끔찍하고 심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정치학이다. 55쪽
 
   


   
  연구자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때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게 되고" 의미화된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잘 모른다. 69쪽
 
   


   
  연구의 객관성은 연구자가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면서 연구 대상과 부분적으로 동일시할 때 가능하다. 부분적 동일시는 연구자가 상대방의 내적 준거 체계, 그의 구성 개념과 자기 자신의 생각 사이를 자유 자재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의 사고 세계와 타인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융통성 있게 넘나드는 "삼투압" 능력이 필요하다. 72쪽 타인과 대립을 통해 자신의 경계를 구축하는 "독립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에게는 어려운 작업일 수 있다.
 
   


   
  희생자화는 타자화와 관련된다. 타자화는 폭력당한 여성을 "일탈"집단으로 볼 때 가능하다. 연구 대상을 타자화, 희생자화한다는 것은 그들이 연구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7쪽
 
   


   
  "불행한 사건을 잊어라"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치유방법을 주문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적인 상처의 치유는 폭력당한 경험에서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된다. 50쪽  상처의 치유는 문제를 덮어둠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들춰내어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 재발견함으로써 가능하다.
 
   


뱀발 

1. 노인-아이-아내 폭력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는가? 노인-아이는 개인의 문제로 아내는 가족과 가부장의 신화로 의식이 감싸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역시 사회적인 문제이고 그런 의식의 장벽(사회적 논리)으로 인해, 노인-아이 피해자에도 미치지 못하는 해결책들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다.

2. 폭력은 백해무익이 아니라 백해유협한 것/몸에 붙어있는 논리-유격과 별개의 문제로 여기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3. 비정규직도 되고싶지 않은 것, 상상하기 싫은 것이지만 현실. 사회는 눈감아버리고 싶은 것,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으로 여겨 늘 수면아래 있는 것은 아닐까? 타자화하는 일상과 나는 아니라는 의식, 이런 것들이 암묵적 묵인으로 이어져 수면위로 떠오르기 조차 힘든 것은 아닐까?  일이 터진 후에 더 큰 희생을 기다리는 고통의 정치학에 올라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에 있는 문제이면서 당사자는 거론하기 싫어하는, 그렇다고 아무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역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의 입장으로 우리의 입장으로 재해석, 재발견해내지 못하는 반복은 아닐까?

4. 운동이, 활동이 엘리트의 시선으로 조금 더 나은, 아니 그렇지 않은 경직된 앎만으로 접근하여, 삶으로 접근못하는 시선으로 더 모르고 경직되고 한발자욱 나아가기 힘든 것은 아닐까?  희생자로 타자로 바라보기만 하는 사회적 시선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5. 인터넷의 소득별 보급율, 인터넷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이 섞이기나 하는 것일까? 소통의 주류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과 접촉점들이 있기나 한 것일까?

생각꼬리

1. 책을 읽다보니 여러갈래로 생각이 번진다. 비단 아내폭력과 여성운동에 대한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접근방법이나 대상과 나의 경계에 대한 고민들에 시선이 머문다. 어쩌면 겨우 존재한다는 것, 열외자, 세칭 민중이란 표현들도 이렇게 구체적이고 생각의 장벽과 실험?의 반복이 없이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이 스며든다. 그리고 곧곧한 척 경계를 허물지 않는 서투른 자아에 함몰한 나도 그런면에 다른 방향에서 기존의 인식틀에만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앎이란 것이 피상에 피상을 덧붙이거나 머리앎에 머물러 그들의 경계를 들낙거리지 못하는 주춤함이란? 몸앎이란, 희생자나 타자가 아니라 함께 앎을 섞는 과정은 아닐까? 섞다가 서로 모호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붙어 다른 머리-몸-앎이 울릴 때, 그나마 보이지 않던 세계, 넘을 수 없던 세계를 넘을 작은씨앗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2. 폭력에 대한 기억. 말죽거리잔혹사처럼 황당한 중고딩 시절이 아니라도, 늘 팽팽한 긴장은 살아 꿈틀거린다. 군대 구타는 말할 것도 없이 폭력에 앞선 공포가 제일 크다. 몇년전 학운위, 그때 뵌 학부모임원 가운데 한분, 사고소식을 접하면서 기억이 가물했는데, 지난 수첩을 뒤적이다보니 얼굴이 떠올랐다.  사망사건인데 그냥저냥 쉬쉬하면서 소문은 사라져버렸다. 몇번의 만남이나 회의를 통해 안스러운 느낌이 배여나온 것이 사실이었는데, 그 이상은 눈치챌 수 없었다. 맥박없는 눈빛의 신호만이 거꾸로 거슬러올라가 기억될 뿐이다. 폭력은 말이든, 신체에 가하는 것이든 사람을 통해 그 만한 강도로 되새김되는 것이다. 백해무익할 뿐 아니라 백해하고도 늘 위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동물이 좁은 사육장에 사육되듯, 끊임없이 폭력이란 철조망으로 강하게 자신을 두르고, 언제든지 그 긴장을 표독스럽게 푸는 동물들처럼, 때와 상황을 기다린다. 그래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늘 뺄셈으로만 기능한다. 군대에서 단 한차례도 구타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를 않는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다고 하면 더 더구나 믿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폭력의 힘을 믿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폭력의 충동은 강하고 강열하다. 늘 그것에 몸을 기대면 불쑥불쑥 손짓한다.  언어의 폭력도 그러하다. 감정이 표현되지 않는다면 관계는... ...늘 기운다 수평이 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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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파의 상상력에선 좌파에 대해서 개념이 규정되어야 한다. [ 돈 ]이나 [ 상품 ]이 아니라 좌파가 추구하는 것은 [가치]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그것이 명확하면 좌파, 우파를 나누어서 판단하거나 사유하는 것, 가치와 돈의 경계에 대한 사고를 명확히 할 수 있다. 이 점이 아쉽다. :  [가치]를 돈 대신 [ 사람 ]이나[ 사회 ]적 신뢰로 환산하거나 환원, 돈의 신경망처럼 사회를 세밀하게 측정하거나 그려볼 수 있다. 모두에 나온 섹스피스톨즈,너르바나, 첨바왐바의 헷갈림이란 질문은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2.
상상력은 거꾸로 왜 상상력이 없어지는가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상상하라고, 상상력이 없다고, 꿈꾸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들이 우리가 왜 꿈꾸지 않는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 근저에는 불안이 늘 자리잡고 있으며, 거꾸고 여유가 생기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유]가 없으면, [불안]이 늘 자리하면 아무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출발하여 그 틈을 넓히고, 그 호흡이 자리할 수 있도록 [불안의 성]을 구체적이고 면밀하고 무너뜨리는 출발이 함께 있어야 한다.


 질문과 응답:

3.
[저항문화] 지배문화와 저항문화로 나누는 것이 오히려 문화를 생동감있게 느끼고 상상의 발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상자에 넣어 박제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규정짓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 발전 동력을 퇴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해석에 머물러 지금의 일상성이 힘을 갇게 하거나, 형식을 닫히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저항문화라는 것이 우상화되거나 상품화된 것은 아닌가? 좌파 상상력을 오히려 옥죄는 것이 아닌가? 일상과 구조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4.
[촛불규정] 과잉규정성이나 환원하여 규정하는 문제가 있다. 삶의 결정, 소통, 형식의 무정형성 정도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반성의 지점이 형식인가 내용인지 궁금하다. 과잉정치화는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안다고 하는데, 여러운동을 연결하여 보려는 눈이 없는 것은 아닌가? 서열화시키는 습속이 은연중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너무 작게보아서도 안되고 너무 크게 보아서도 안되는 것은 아닌가? 정작 20대는 놀라거나 대단해 하지 않는다. 거리에 나선 10대와 전자공간에 갇혀있는 10대가 질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아닌가? 여전히 학생회는 형식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5.
- 관따나메라, pete Seeger 미국 민중가수 [우리승리하리라], [라쿠카라차-바퀴벌레]
- 사르트르와 까뮤 논쟁과 삶: 꺄뮤 [반항인], 피티독재와 소련에 대한 입장
- 생물학, 물리학의 좌우논쟁, 도킨스와 굴드, 빅뱅이론 등 천문학의 좌우논쟁을 다루고 싶었다. [민주노총]
- 2권:[여성운동](헬렌켈러의 삶과 사상- 의료시스템과 자본의 불평등), [긴호흡의 운동]-레닌 [혁명의 뿌리], 차베스 우리가 선택했다.
- 촛불: [집단적 피드백 의사결정구조] -[이머전스],[링크],[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뱀 발
- [ 촛불과 광장 ]에 대한 이야기
[집단 합리점]의 출현,  [집단 사고연결점]의 생성이라고 하면 어떨까?  비합리, 몰상식의 영역에서 합리와 상식의 작은 씨앗이 안개처럼 떠다니는 것이라 보면 어떨까? "집단 지성"?

- 논리보다 느낌의 공유, 새로운 감수성은 가벼움을 키워드로, 이슈의 결합, "가벼운 무거움"
희생과 인내보다 권리와 표현이 필요.

- 상상 - 이야기꺼리를 가지고 다닌다. 이슈의 발아제를 가지고...

1. 작은 강연 가운데 긴장되는 몇 대목을 남긴다. 논의가 더 이어져도 손해볼 것 없는 이야기들. 뒤풀이 자리에서도 낚아챈 것도 있다. 2. 같은 년배의 친구들이 흔들림이 큰 것일까? 아무튼 흥미있고, 좌파교양?으로도 괜찮았다 싶다. 거꾸로 지금 좌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 아니 현실의 수준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다. 3. 책에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 책에 나타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그래서 책만 보신 분들은 많이 아쉬울 것 같다. 4.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듯 싶다. 그때는 많이 들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된 점이 나름 깊은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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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 2008-09-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듯 싶다."에 바람(강풍)가득 실어 보냅니다. 그 때는 버스놓치고 후회하는 일 없어야 할텐데...많이 아쉬워요. 그나마 요렇게 후기 올려주시니 감사할따름임다.

여울 2008-09-02 11:27   좋아요 0 | URL
알콩달콩 듣기에는 아깝고 아쉬운 강연이었어요. 녹취한 것이 있으니 그 후기를 보시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다음날 점심도 함께했네요. ㅎㅎ

파란여우 2008-09-0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런 글 읽으면 촌구석에서 다 때려치고 당장 도시로 돌아가야 할 듯~~
그러나 촌구석의 그 많은 보물단지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임다.ㅎㅎ

여울 2008-09-02 11:28   좋아요 0 | URL
여우님 나오게하려면 이런 수를 써야되는군요. 헛점을 보이셨습니다. 하하. 촌의 보물이 더욱 그리워지긴 합니다만...

여울 2008-09-0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보태본다. 이런 관점은 어떤가? 좌-우파의 도식이 아니라 좌표축 몇개 더, 일리히의 관점이다.

<그림자노동>, 이반일리히 - 그가 사망했다는 것을 이책을 접어들고서야 알게 된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앞의 책만 몇권보았으니 어련하겠는가, 하지만 많이 섭섭하다. 이면만 들여다보게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인 것 같다. 감명깊게 읽었던 폴라니의 논리를 확장, 전개시키고 또 한편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발전이라는 관념에 묻혀 버린 공리를 찾기 위한 그의 노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입체적이고 단순하다. 지켜내고 확장시켜낼 것도 명쾌한 느낌이다.

좌익-우익으로 단순화된 일차원적 정치모델이 아니라, 3차원 모델을 적용시킨다. X축에 좌익--우익, Y축에 소프트와 하드(큰 기술-작은 기술, 원자력,상품,서비스 등등), 그리고 Z축에 경제인(HAVING) 과 예술-생활인(DOING,BEING)을 둔다.( 소유에서 만족을 구하기에 적합한 사회조직과 행위로부터 만족을 구하기에 적합한 사회조직을 배치함.)

이 모델로만 하더라도 진보는 좌파지향만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으로 인한 사회구조와 직접 삶에 맞닿아있는 행위의 영역까지 지향과 출발이 들어있는 셈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 개념의 유포와 발전사라는 것이다. 060625

 

1과 3연대(비움과 나눔의 연대)

1.


1.1 목표하는 것의 1/3을 덜고 생긴 것을 치밀하게 환산1)하고, 나눌 셋으로 가릅니다.
1.2 [왜]와 [어떻게]에 대해 3배수로 고민을 숙성합니다.(3번2)의 다른 방향, 3번의 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 다음을 나아가지 않습니다.

1.3

2.

자계自計부


2.1 줄이기3) -

   
  4끼가 아니라 3끼, 인스턴트 1/3로 줄이기, 가공식품 1/3로 줄이기, 육식 1/3로 줄이기, 1/3 잔차이용, 1/3로 줄이기, 언플러그 1/3로 해보기  
   

2.2 늘리기 4) -

   
  자계부의 소통, 3달 해보기, 3달치 나눠보기  
   


2.3 만들기 5) -

   
  3번의 다른방향, 3번의 다른의견, [나], [나-너], [나-너-그], [나-너-그-그녀]  
   

2.4


1) 환산하여야 합니다. 철저히 - 자본으로 환산하고 인간과 사회적 가치로 역환산하는 것만 유통될 수 있습니다.

2) 세번을 다르게 품는 이유 -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근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다르면 다를수록 현실감은 더 있습니다. 이해하지 말고, 논쟁하고 토론하여야 합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논쟁하여야 합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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