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이라, 머무른지가 오래되어서 어디 다른 곳으로 갈 확율이 커지는 참이라. 

 반반을 가늠하며, 

 조금 더 머무르기를 바랬는가 봅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다 많은 혜택을 누린 참이겠죠.  다행히 조금은 한가한? 곳으로 

 가서 다행이지만, 채워야할 일들도 있긴 하지만, 우리 몫이라 여깁니다. 

 외려 살폿이 편안한 곳에서 일들을 더 많이 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몸이 떠나있음은 사실이네요. 마음으로 가슴으로 나눌 일들이 더욱 많겠군요. 

 조금 추춤하긴 하지만, 외려 가벼운 마음으로 몸은 갑니다.    

 걱정마시기를 자극은 늘 필요한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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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두부 2009-01-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삼^^

여울 2009-01-13 17:22   좋아요 0 | URL
넵, 걱정마시구..ㅎㅎ
 
모임셋-책도셋-생각도셋

참새들이 30여마리 몰려왔다. 잣나무 아래 덤불 사이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부리를 쪼아대고 있다. 잠시 후 인기척이 있으면 어느 녀석의 추임새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무가지로 포로롱 자리를 잡는다. 잠시 뒤 기척이 잠잠해지면 어느 녀석의 깃발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쏜살처럼 덤불사이로 축지법을 쓴 것처럼 머리가 반쯤 파묻히는거다.  이 녀석들은 제법 부푼 햇살로 입가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해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만 역시 성가시다는 듯 햇살 두모금 먹고 넉넉한 날개짓으로 포로롱 포로롱 꽁지를 뺀다.

1.

함박눈을 한웅큼 먹은 12월 31일은 마르고 시원한 공기와 하늘이다.  모임의 성찬일까? 모임의 별빛일까? 어제 몹시 곱던 초승달과 별만큼이나 모임의 향기를 안고 한해를 갈무리해본다.[날림]의 청순함과 [신박]의 중후함, 그리고 그 공간을 늘 따스함으로 부풀리는 추임새와 더늠의 공간은 뭉클했다. 책소개의 따스한 시선들도 어찌 마음을 짜고서는 낼 수 없을 정도로 색깔이 녹녹치 않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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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고 마을이야기 한 점. 촛불도 강행군으로 지칠 무렵, 더 이상 열정이 몸을 담보하지 못할 무렵. 마을에서 만난 사람. 엊그제 송년모임을 했고 아픔과 상처, 다시는 보지 않으려했다는 말. 그리고 나를 돌아본다. 기다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는 서늘한 판단이 얼마나 그를 상처입게 했는지 말이다. 나란 인간이 다짐하던 말과 온기가 얼마나 비수처럼 되돌아갈 수 있는지. 애타는 마음들을 나의 잣대로 외면했던 일이 그와 나의 접점에서 얼마나 일그러질 것인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상처를 매만지고 매우는 일. 더디지만 그렇게 표시를 내는 것. 아직도 만날 수 있고 시간이 열려있다는 점이 고마울 뿐이다. 서늘한 스스로 경계와 버릇에 대해서도 곰곰 짚어 보련다. 그렇게 쉽게 관계를 매우는 버릇이 주위에 얼정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겠지~.  하나 더 넣는다.

3.

가족송년회. 처가 처동생들이 모든 상차림을 준비하고, 송년케익까지 준비하였다. 기특함을 넘어서 설겆이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며 늘 대접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식구들과 접점도 마음도 일상을 섞여내고 있지 못한 부재를 발견한다. 애쓰고 나누고 싶어하는 것들에 다가서지 못하고, 스스로 시선으로만 경계를 쳐서 몸의 다가섬 금지령을 내린 듯 멀리했던 것은 아닌지하고 말이다. 아이들은 청년으로, 애기들은 수다쟁이로 벌써 다르게 줄달음질치고 있는데 아무 것도 달리 접점은 없다.  엉거주춤 문턱을 들어서는 자세가 말이 아니다. 생각질만 한가마니다.

4.

올해의 책세권. [나와너]-[서로주체성의 이념]-[동무론]. 세번 숨이 막히다. 하나를 더 보태면 [분자혁명]일텐데 이 책은 묶음이라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서문이 정리가 잘되어 있다) 나만 이야기하는 서양사나 학문은 늘 미심쩍었다. 아닌가 싶은데 아닌 것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빨려들어가다보면 그래서 그 완결적인 구조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물음이 묻어 나왔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여 외도를 하며 찾은 책들이거나 다가선 책들이다. 쭉쭉 이어가다보니 나르시즘의 대한 의도하며, 이어지는 흐름이 너무도 유사하여 놀랐다.  

 



5.

진선미가 아니라 슬픔을 이야기하고, 생각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 고민과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 겹쳐있다. 나를 멈추고 그것에서 너로 이은 생각들이 의외로 가지치듯 이어진다. 뜨문뜨문 읽은 책들을 올해가 가기전에 마무리하여야겠다고 했는데, 너와 나, 그 울타리를 넓히고 섞이는 일에 고민이 꿈결을 채어가기도 한다. 그래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하는데, 네가 고민과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한다면, 그 고민에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이 대체 무엇인데라구 되물으면 막히는 것이다.

6.

사실 놀라운 것은, 학습도 선행이 있나? 고민도 선행이 있겠지. 생각결을 다가서다보면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동무론]을 마져보고, 어제도 잔여분량을 강독하다보니, 주섬주섬 스쳐지난 책들과 사상가들을 이리저리 맛깔나고 선명하게 엮은 것에 놀랍다고 느낀다.(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이미 나와너가 아니라 서로주체성만이 아니라 저기 저만큼 성큼성큼 두고있다. 인문의 그물망을 이렇게 넓고 촘촘히 엮은 능력에 대해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린다.(오버하는지 모르겠지만)

7.

버릇, 몸을 끄-을-면-서, 고민과 방향의 결, 숙성과 사례, 자본의 나르시즘과 거울을 뚫고 넘어가는 세세함에 대해서는 더욱 풍부한 시선과 삶, 일상, 다름이 더욱 실감나게 하겠지만 역시, 지난 생각흔적을 엮기에는 짜투리처럼 중동날 수밖에 없던 생각조각들을 잇고 보수하기엔 마음을 주고 교재로 삼아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오늘 이곳에서는 송년촛불이 있다. 그리고 마음 속에 남는 사람들은 뫔속에서 아끼기로 하고 광고(데마고그가 아니라 진심을 알리는 일이니 낚였다 생각마시고 몸을 던지시면 본전뽑는다. 나-너-너-나의 그물망은 늘 나를 앞선다.) 남기며 한해 꽁지를 뺀다. 포로롱..으능정이촛불에서 고개를 반쯤 담을 것이다. 포로롱~~~ 건강하시고 어려움을 같이 타넘는 내년 한해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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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  o   8

지금 [입속의 검은 잎]과 [지금 이대로 괜찮아]를 보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벌써 짧은 시간을 잘라 들여다 봐야할 것 같은 세밑. 굳이 되돌아봐야하는 숙제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생각이 겹쳐들어 흔적을 남긴다.

1. [소리의 뼈]를 보다가 마음의 뼈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치환해서 읽고 있다. 마침표가 끝난 뒤에도... ...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한 학기 내내 그는/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그러나 어쨌든/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1984. 7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에서 )

2. 이제는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점을 치는 일이 쉬워졌다. 조만간 식품위생 관련하여 문제가 생길 것이다라구. 기상이변이 아니라 외려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었기때문에 폭설이 오구 가뭄이 올 것이다라구. 정부는 철학도 없고 정책도 없고 행동력만 있으므로 사고를 치기만 할 것이라구. 사람들은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에서 살고 있으므로 자신의 발과 손이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구. 키보드좌파라구 가두고, [우리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하면 불륜이기에]가 [우리-----불륜]까지를 낳고 낳고, 무한 수렴을 하다보면 우리는 없고, 불륜만 자가증식하게 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론상 없는 것으로 귀결되기때문에. 잘한 것은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고 못한 것은 그놈때문이기에 어김없이 [때문에]의 거미줄에 걸려들게 되어있고. 히틀러가 그렇게 [유대인이기때문에]란 사고의 함정에 걸려든 것처럼 내사랑좌판 그렇게 로망의 마법에 빠졌을 뿐이고, 거기에 헤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불륜과 [때문에]를 증식할 뿐이고. 그렇게 좌파는 좌판대에 오르고 있을 뿐이고. 여전히 거시와 비평의 전망탑 속으로 향한 길만 내고 있을 뿐이고...  
           
                         이것이 2oo8년의 진보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이자 자신에 대한 소회이다.

3. 책으로 만난 사람 가운데 손을 꼽으면 니클라스루만이 인상적인데 초입만 들어서다만 느낌이구, 기세춘선생님의 동양고전입문은 아직 심호흡을 하며 발을 들이지 않고 있지만 관점이 워낙 파격적이라 주춤거리고 있다. 스피박할머니는 여전히 마음만 가득하지만 마음을 자라게 하지 못한 한해가 된 것 같다. 지젝-고진은 얼핏얼핏 읽지만 윤수종교수님이 소개하는 라이히, 가타리의 시선에 자꾸 걸린다. 들뢰즈의 열풍처럼 지식계의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올해 독서 가운데 좋았던 것은 풍경-그림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고보니 말미에 본 김상봉교수의 관점도 인상이 깊다.

4. 관점을 품지 못하는 시대 - 아니 관점을 다르게 품을 여유가 없는 시대라고 해야하나 싶다. 아마 조바심을 내거나 어설픈 앎으로 재단하려는 사적욕망인지도 확인을 해보아야 하나라는 반대질문을 놓아두고 이야기를 이어 가본다. 삶이 정치로 녹아든 상황. 그것이 녹을지 겹칠지 겹치는 와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삶과 운동, 활동을 중첩시키지 않고서는 논의를 전개시키기가 힘든 사회가 되었다. 각개약진의 탁월한 실력들을 존중해야하지만, 고민을 좌판에 깔아놓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듯 사적공간에서 밖으로 향하지 않는다. 물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봄직한 것일까? 무엇을 고민해야하는지부터 질문을 늘어놓는 것이 순서이겠다 싶다. 어떻게 하고싶은데, 어떻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데가 시식코너에 있다고 하자. 기역이란 사람이 니은이라고 품평을 하고 디귿이란 사람이 리을이라고 품평을 하고 ....미음이 비읍을 품평한다고 하자. 왜 품평을 하냐구, 오히려 절대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품평을 하지라고 되묻는다면 언제까지 품평을 의탁할지 되물어보자. 맛의 품평이 다르면 다를수록(물론 품평하기까지 공부도 준비도 감도 익혀야하겠지만) 다가올 현실은 양쪽 극단사이에 있을 확율이 높다.

어쩌면 우리가 자꾸 마음들의 렌즈를 모아야할 지점을 모으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꾸 대행시키는 습속이 걸림돌이지 않나 싶다. 다르게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에 시선이 멈추도록, 서서히 좁아져서 빨리 지나가는 관이 아니라 확 넓어져서 서서히 갈 수밖에 없는 시공간을 만들지 않고서는 그 다음은 없다라고 해야하는 것일까? 일리와 오감의 체험을 나눌 수 있도록, 그것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시간과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인지?란 생각도 겹쳐든다.

사회가 자꾸 삶과 정치-경제의 공간을 서로짓누르면서도 간간이 답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사이로 짓눌려있지만 한데 엮여 숨쉬는 진보의생공간이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닐까?
살갗애이는 삶과 연결시키는, 마음들을 렌즈에 쏘이게 해서, 햇침이 모여 검은종이를 태우듯 태울 수는 없는 것일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하기엔 자칭진보라 칭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눠줄 것이 정말 많은 것은 아닐까? 처리하지 말고 느리게 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빨리갈 수 있는 지름길은 아닐까? 우리는 꼭지점을 너무 빠르게 통과시켜왔고 바뀌어 왔다. 너무도 빨리빨리 회계년도의 고점을 통과시키는 버릇이 있어 늘 늦었던 것은 아닌가? 꼭지점을 돋보기로, 현미경으로 셈으로 템으로 들여다보고 걱정하거나 될수록 천천히 아픔을 공감하면서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5. 루만은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소통을 세가지요소로 나눈다. 정보-통지-이해로 말이다. 통지한다고 해서, 정보를 준다고 해서 소통되는 것이 아니란다. 이해되지 않으면 결코 소통할수도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패션으로 소통, 유행으로서 소통을 색바랜 깃발처럼 끝이 났다. 이해하는 척이 아니라 정녕 이해되지 않으면 이해하지 않으면 다음을 접어들 수 없다. 그래서 십년이 지나도 소통하지 않았으므로 늘 부단히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니 결국 하거나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6. 올 한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다. 마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늘 감사하고 고맙다. 하지만 마음이나 생각, 고민을 품고 나누고 자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서로 키울 수 있는 느낌-아픔-즐거움들부터 생각해보아야겠다. 마음 가득한 인사와 만남들이 기대된다. 그래서 2OO9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올해 감사하는 소회 가운데 하나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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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거나 이름이 붙거나 결정화가 되거나 바라보는 행복함의 고개를 넘는 순간, 이미 그것의 분위기를 감싸고 있던 다른 무엇이 잘리우고 사라지게 된다. 이로서 얻는 것이란, 남들은 다 꽃이라고 그 이름이라고 불리우지만,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꽃이 아니고, 그 이름이 아니고 그 결정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꽃과 같은 것, 그것과 같은 것, 되려는 그것이 늘 된 것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된 것보다 되려고 하는 눈도, 마음도, 길인채로 두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 되는 것이다.


 

 

 

 

 

뱀발. 081203 블로그단상. 갈수록 애매함으로 밀고나간다. 한소리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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