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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녀석 이름이 뭐드라. 열매을 먹은 기억이 한해를 바래서인가 이름이 가물거린다. 요녀석의 흔적을 쫓다나니 잎새의 몸통에 난 더듬이가 끌린다. 어디를 부여잡으려고, 예민한 촉수는 곤충들의, 나비들의 그것같다. 이어 그리다보니 참 이상한 것이, 잡을 곳을 잊은 녀석들은 어김없이 낙엽색으로 말라 있다. 먼저 자리를 잡지 못한 세상의 끈을 잡지 못한 기억을 과감히 중동내버린다. 그리고 그 예민함의 힘을 앞의 새로운 더듬이에게 보탠다. 그렇게 덩굴을 잇고 견디고 타넘곤 하는 것이다.

뱀발. 청미래덩굴을 그리다보니, 덩굴잎이 나는 곳에 어김없이 천사날개같은 더듬이가 춤을 춘다. 그 춤을 왜추는 것인지 무엇을 부여잡으려는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도 않지만, 불쑥 커버린 청미래덩굴은 어김없이 더듬이로 부여잡길 갈망한다. 그렇게 더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종태님도 이땅에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며 퇴색하는 빗바랜 더늠이의 안타까움이 아린다. 끝단으로 내동댕이치는 현실에서 우리가 타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부여잡고하는 것인지? 불쑥 마음한점, 손한점 내밀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척 덥다. 가신 님들을 위해 애도의 마음을 간직해본다. 

그 마음들이 [ㅁ ㅏ ㅇ ㅡ ㅁ] 들이 쌓여 멀리멀리 흘러갔으면 한다. 목련꽃같은 그대들에게 그렇게 홀연히 투욱 마감한 아픈 이들을 위해 마음을 다져본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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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선 어쩌면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보스러운 일이다. 바보들, 바보들. 그 바보들이 너무도 없기에 세상은 늘, 바보같지 않은 놈들로 인해 점점 바보같아지는지 모른다. 진흙탕에 연꽃을 피우듯, 그 힘을 주체못하는 저 교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의 틈속으로 그래 그 바보들이 녹아든다. 사이사이. 그래 우리 바보들이 피울 수 있는 것이란, 너희들을 자양분으로 뿌리채 그래. 저 한점 화사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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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관觀이 생긴다는 일. 뚫어볼 수 있는 힘이 미약하게 나마 생기는 일. 현실이라는 괴물의 지극히 작은 단면을 비추어 볼 능력이 생긴다는 일. 작은 등대하나 만들어지는 일. 그것을 무기로 싸우는 허접한 일. 그것이 모든 것이라는 욕심. 자부심을 빙자한 선무당. 하지만 선무당이 필요한 이유. 그것도 많이많이 필요한 이유는. 조그만 그 욕심이 스스러진다면, 조금만 그 빛이 다른 빛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래도 어쩌면 현실이라는 괴물을 비추는 두개의 관점이 생긴다는 일. 그런면에서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다면, 덧셈을 사랑하는 합리주의자라면, 다른 관점의 생성을 반기는 일. 가진자의 자만이 아니라 가진자의 조심스런 연결망이 생기는 일. 바라보는 일이 크냐 적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범하고 소심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이 얼마나 섞일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일. 늘 다른 관이 궁금한 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조금만이라도 다른 시선이 있다면 사물이 굴곡을 더 잘 볼 수 있으므로, 느낄 수 있으므로, 만질 수 있으므로, 음미할 수 있으므로. 관觀이 생긴다는 일. 관은 두엄같아서 엇갈려 삭힐 수도 있고. 싸우고 나를 전부인 듯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나-너를 위한 조그만 출발점. 관의 목마름, 관에 대한 갈증. 갈망. 달라지는 시선의 일상. 그 누적의 상승을 향한 바램. 



뱀발. 관觀을 생각에 넣고 놀다보니, 그 눈길이 녀석들 뛰어다니는 가슴에도 몸에 발에도 있는 듯 싶다. 쿵쾅쿵쾅 섞이다보면 뒤짚어진 놈도 년도 보이는 세상이 다르다 싶다. 그제서야 저 까만밤의 색이 조금은 밝아지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더 현실을 예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안대에 가린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을 가리는 사람은 늘어나고, 그나마 가슴의 눈, 몸의 눈, 발의 눈은 퇴화하여 꼬리뼈처럼 흔적만 남은 것은 아닐까? 두근두근 쿵쾅쿵쾅 눈들이 활짝활짝 마음의 꽃을 피우듯 피울 수는 없는 것일까? 몽매한 눈가리개는 벗을 수 없는 것일까? 그 감옥의 독방에 햇살 한점 스며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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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채워지려는 밤, 잠이 쉬이 오질 않아 뒤척인다. 뭉글거리는 생각끝을 달고 잠 속으로 들어가본다. 도시에 느린시공간이거나 이질적인 시공간을 만들어 볼 수 없을까? 면이어도 읍내여도, 마을 하나, 동네하나를 바닷가의 하나의 섬처럼 가꾸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아주 작은 규칙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고, 자전거나 걸어야 되고, 뭔가 하나 하면 한끼 해결하거나, 한달을 보내거나(가르칠 거리가 있다면..). 한주를 보내거나 품을 나눠, 나눈 것이 서로 남는 그런 시공간은 없는 것일까? 아주 만화같은 이야기만, 아주 어이없는 소리일까? 도시의 한마을의 공간이 이색적이 아니라 과정으로 충만한 공간에 먹고 마시고 나누고 삶의 작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비틀어 둘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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