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otte's Web (Paperback, 미국판) - 1953 Newbery
E.B. 화이트 지음 / HarperTrophy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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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스윗한 spider와 사랑스러운 pig라니. 우정과 사랑, 삶과 죽음. 그리고 현대 문명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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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임경택 옮김 / 사월의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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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 특히 독일이나 프랑스같은 선진국은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자동차를 이용하기 불편한 곳이다. 도시 자체가 조성된 지 오래라 넓은 도로는 외곽이 아니면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도시의 구조를 계속해서 보존하려고 하기에 차를 운전하기에 편할 만큼 널찍한 도로나 많은 주차장을 바라긴 어렵다. 운전 문화도 보행자 중심으로 영국같은 경우엔 무단횡단이 합법이다. 반면, 한국은 무척이나 자동차 친화적인 나라다. 좁은 땅덩어리에 차도 꽤나 많은데 도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있고 문화도 자동차 위주다. 보행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초롯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아니면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동차 친화적으로 구조화된 도시, 각종 문화, 국가 정책들에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 사실 보행자 친화적인 나라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동차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 지를 깨닫는 게 어렵진 않다.




2. 이 책의 저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1928년에 태어나 2014년에 타계한,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급격히 성장했던 자동차 산업과 그런 분위기와 함께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가던 일본의 모습을 불안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던 인물이다.

자동차가 현대문명을 상징하고 많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줬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이익이 분명히 있었기에 우리나라만 해도 2023년 기준,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594만 9000대로 인구 1.98명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1970년대에는 13만대에 불과했으나, 1997년 말 1천만 대를 넘어선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우자와 히로우미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그 화려함과 편리함 뒤로,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각종 해악과 그 해악이 제대로 비용화되지 않은, 사회적 비용에 주목했다.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해악으론 어떤 게 있을까? 우선, 앞서 언급한 보행자의 권리, 즉 ‘시민적 권리의 침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은 기본권 중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권은 시민사회에서 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된 도시는 보행자의 보행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보행권에 대한 시민의식이 낮은 곳인데, 도로교통공단이 발간한 “2021년판 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 중 사망자 구성비가 38.9%로 1위를 차지했고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19.3%의 두 배 수준이다. 일본은 36.6%로 우리나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스쿨존, 보행안전법의 시행, 교차로 우회전 통행방식의 변경 등 보행권을 위한 여러 정책, 제도 등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이를 그저 귀찮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도 바로 곁을 스칠 정도로 건물이 가까이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배기가스와 소음을 뱉어내며 달리는 자동차와 회색 건물 사이의 좁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야 한다. 게다가 차도를 횡단할 때는 보행자의 편의를 무시한 신호에 겨우 의지할 수밖에 없다. (…) 육교만큼 일본 사회의 빈곤, 저속함,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시설은 없을 것이다. 가로 설계에서부터 이미 자동차의 효율적 통행만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고, 보행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길고 가파른 그 계단들을 노인, 유아, 신체장애자가 어떻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86, 87)


다음으로는 각종 공해다. 자동차가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오염물질부터, 소음, 그리고 자동차의 생산 및 운행을 위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공해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공해의 수준은 각종 통계자료로 잘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중앙환경분쟁위원회에서 2019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이 체감하는 환경오염 피해 원인의 1순위가 ‘도로의 차량소음 피해’(32.2%)였다. 그리고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대기오염배출량 중 일산화탄소(CO)의 23.8%, 질소산화물(NOx)의 34.2%, 미세먼지(PM2.5)의 7.1%가 자동차에서 배출되고 있다. 수도권으로 한정하면 이 수치는 각각 36.6%, 48.9%, 13.5%로 더 높아진다.

다음으로 각종 교통사고에 따른 피해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서 2023년 발표한 2021년 도로교통사고비용 추산액은은 44조원에 달한다. GDP의 2.1% 수준으로 독일(0.7%, 2020년), 영국(0.7%, 2021년)과 같은 교통선진국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도로가 이처럼 보행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도시환경을 파괴하는 형태로 설계된 결과,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자는 해마다 늘어나서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뿐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신적 고통까지 낳고 있는 상황이다. (…) 보행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도로 구조에서는 자동차 운전자가 아무리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95)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공 교통의 쇠퇴, 각종 도로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 교통체증으로 인한 비용 발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뒤의 두 가지는 그다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진 않고, 공공 교통의 쇠퇴 부분만 살펴보자. 저자인 우자와 히로후미는 20세기 초만 해도 노면전차를 중심으로 발달되었던 공공 교통서비스가 자동차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쇠퇴하고, 수송분담률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서울 정책실의 “서울 교통정책의 변화”라는 자료에 따르면, 1965년 서울시 교통분담률은 버스가 54.4%, 택시가 26.20%, 전차가 19.4%였다. 이는 자동차의 보급 이전의 수치긴 하지만, 자동차 위주의 정책이 대중 교통 위주의 정책과는 상충되는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특히 수도권에서 더) 현재도 그다지 다르다고 볼 순 없겠다.


3.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제대로 계량화되지도 않고, 그 제대로 계량화되지 않은 비용마저 운전자가 부담하는 게 아니라 보행자나 거주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피해는 대부분 힘이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되어있다. 


[자동차의 보급이 이토록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그 보유대수가 끝없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동차 통행으로 제삼자가 큰 피해를 입고 희소한 사회적 자원이 소모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대가를 거의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즉 자동차 소유주나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보행자나 거주자에게 전가하고 본인은 아주 미미한 대가만 지불해도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면 할수록 이익을 얻는 셈이 되어 그 수요가 증대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 보유대수가 증가하여 도로가 혼잡해지면 다시 도로의 확충과 건설로 수용력을 높여서 혼잡 현상을 해소해온 덕분에 자동차 통행은 점점 더 편리한 것이 되어 보유대수가 더 한층 증가하고 도로도 다시 혼잡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103)


이렇게 발생된 비용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외부로 전가하는 것을 두고 경제학에서는 부정적 외부효과 또는 외부불경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운전자는 차량을 구입하고 그 차량을 몰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개인이 얻을 편리함과 이익만 생각할 뿐, 그 차량이 사회에 가져오는 각종 피해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는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산출하고, 그 비용을 제대로 책임지게 하며, 타인의 시민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로 등을 재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4. 반세기 전에 쓰인 책이고 저자가 주장하는 각종 방법들이 정치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문제의식은 정말 좋았다. 명확하게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아니지만, 나도 늘 한국의 자동차 문화라던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된 도시에 대해 어떤 답답함과 불편함,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실용성에 덧붙여 자기과시용으로 사용하는 문화나 후진적인 자동차 운전문화도 그렇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를 설계하고, 그런 곳으로 가꿔나가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지만 아직 많이 요원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고물가 대응을 위해 유류세 등 각종 자동차 유지비용을 깎으면서, 환경적으로도,  공익적으로도 더 중요한 대중교통은 단순하게 계산된 재무재표상의 적자만을 운운하며 그것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편익은 고려치 않고 요금인상의 불가피성이 주장하는 곳이니까. 우회전 구간에서 일시정지한다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곳이니까.

이런 건 결국 올바른 정책적 방향성을 바탕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더 지게끔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공익을 위한 정책적 방향성은 저자가 잘 보여준 것 같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또한, 여기서 책임을 더 져야 할 사람들은 사회에 가져다주는 비용에 비해, 값싼 가격으로 많은 편익을 누리는 자동차 소유자들, 운전자들일 것이다.


[자동차가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자동차를 구입하고 운전하기 위해 각자가 지불하고 있는 비용은 자동차 이용으로 얻는 편익보다 훨씬 작은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 (…) 수요는 점점 증가 (…) 이 같은 자동차 보급 추세는 도로 건설에 대한 정치적 압력으로 나타나고, 자동차 소유에 따른 사적 편익을 점점 더 크게 만들어서 자동차에 대한 수요를 한층 더 유발한다. 

그러나 자동차 보유대수가 점점 증가하여 국토 면적의 더 큰 비율이 도로 및 관련 시설로 전용되면 될수록 자동차 통행에 수반하는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 시민의 기본적 권리 (…)가 자동차 통행으로 인해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로 건설 등에 얼마만큼의 추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비용을 자동차 통행으로 편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부담할 때 사회적 공통자본의 효율적인 배분이 실현될 수 있고,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형태로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떄 시민의 기본적 권리에 대해 그 구체적 내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 소득분배의 안전성이라는 기준에 근거 (…) 사회적 비용 개념의 배후에는 우리들이 어떠한 생활 수준을 누려야 하는지, 또한 어떠한 자원배분 및 소득분배의 제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 가치 판단이 반드시 전제되어 있다.](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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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is Carroll's Alice In Wonderland: (Wisehouse Classics - Original 1865 Edition with the Complete Illustrations by Sir John Tenniel) Amazon and Pengu (Paperback)
Dyno Designs / Independently Published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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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동화에게 기대하는 장르적 특성을 뛰어넘은 작품. 그 바탕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있었고, 그 사랑의 바탕에는 캐럴의 소아를 향한 순수성의 환상이 있었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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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독서정산


나는 왜 책을 읽는 걸까무엇을 위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으면 좋을 책이 뭘까이렇게 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

어떻게 하면 꾸준히 밀도 있게 읽을 수 있을까?

 

  책과 관련한 고민이 많았던 한 해였다더 많은 책을 밀도 있게 읽고 싶었다하지만 그러진 못했다혼자 하는 읽고 쓰기의 한계를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낀 한 해였달까일에 치이거나 퇴근 후의 고단함이란 벽에 부딪쳐 넘어지기 일쑤였고넘어진 후의 시간을 내적 평화 및 성장을 위해 쓰기보다 쾌락을 가져다주는 도파민의 세계에 쓰곤 했다결과는 번아웃만성피로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건강악화였다.

  마감이 필요했다그게 어떤 구조적인 것이든세미나 참여든기고 일이든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에 나가는 것이든 상관없었다책과 관련된 어떤 행위를 하게 하는 데드라인이 존재하고나의 그 데드라인과 타인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면 됐다그렇게 마감이 존재했을 때나아가 내가 하는 그 행위가 즐거웠을 때나는 꾸준히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혼자서는 안 됐다계속 실패했다무슨 짓을 해도 안 됐다동기부여가 안 됐다내 욕망만으로는 안 됐다.

  마감을 통해 어떤 일에 흥미가 붙어 구조적인 선순환이 만들어졌을 때에야 밀도가 생겼고 제대로 사는 느낌이 들었다그런 선순환을 유일하게 만들어낸 게 올해엔 영어공부였다처음엔 미약했다주에 1회 zoom으로 모여 영어 책을 함께 읽는 것이었다내가 발표하는 분량은 A4용지 1/4도 안 되는 적은 내용이었고내 발표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설렁설렁 읽었다. (읽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이거라도 꾸준히 해보자.’하는 마음에 조금씩 품을 더 들이기 시작했고재미가 붙었으며영어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었다덕분에 영어실력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읽고쓰는 일에는 그런 선순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시도를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정착을 못하거나 흥미가 떨어졌으며결국엔 혼자 시도해봤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다 실패했다무엇을 파고 싶은 걸까재미난 주제로 어떻게 1년 이상 꾸준히 공부해볼 수 있을까이와 관련된 마감을 어떻게 만들어 볼 수 있을까내가 모임을 만들어봐야 하나다양한 고민이 스쳤으나 실행한 건 없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몇 년 동안 제자리인 느낌이다.

  올해 붙잡았거나 완독한 책들의 목록을 간략히 정리하고 훑어봤는데 대략 6~70권 정도였다이 중에서 끝까지 완독한 책은 20권이 좀 넘는 것 같다기록은 10~15권 정도 남긴 거 같은데이런저런 글을 구상만 하고 갈무리 하지 못한 게 많은 탓이다아쉽다분명 더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고깊이 감명받고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 기회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2. 기억에 남는 책들

 

1) 우자와 히로후미 저,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사월의 책, 2016














  난 아직 자동차가 없다주변 친구들 대다수가 차를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면확실히 난 조금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다큰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우선굳이 차를 살 필요성을 잘 못느꼈고다음으로는차를 썩 좋아하진 않기 때문이다차보다는 뚜벅이대중교통을 더 좋아한달까뚜벅뚜벅 천천히오감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감각하며 걷는 맛버스나 기차전철같은 걸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어떤 낭만과 달리(아 물론 출퇴근 지옥철이나 만원버스는 좀 힘들긴 하다..) 자동차는 비쌈시끄러움먼지와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제목이 유독 구미가 당겼던 것 같다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저자가 말하는 핵심은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했고이로 인한 외부 불경제 효과를 신고전파 경제학은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니 이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이론적인 부분은 차치하고나는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한다는 말이 유독 인상깊었는데그도 그럴게 한국은 도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충분히 내부화되지 못한 비용을 그저 감당하고 사는 게 디폴트가 된 나라기 때문이다.

  자동차 위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게 뭘까말 그대로 자동차를 이용하기 편하다는 것이다도로가 넓고 많은 것주차장이 많은 것과 같은 사실이 대표적이다자동차 이용이 편하니 자동차를 많이 사고자동차 통행량이 많아지고통행량이 많아지니 자동차 이용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그러다 보니 자동차는 더 늘어나고그렇게 이 비좁은 나라에 자동차 누적등록대수가 2,500만 대가 넘게 됐다많은 자동차는 소음먼지매연환경오염교통사고로 인한 각종 피해 등으로 이어졌고 말이다.

  자동차 이용이 편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이 살기엔 불편하다는 말이다그런데 특히자동차로 인한 불편함은 대개 어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이 겪는다는 문제점도 있다한국의 자동차 위주의 정책에는어떤 점에선 자동차로 인한 효용 대부분을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져가고자동차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많은 부분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 더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함과 불평등함이 내재되어 있다.


2) 요한 하리 저, “도둑맞은 집중력”, 어크로스, 2023















  스티븐 잡스가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이폰을 처음 소개했을 때만 해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나쁜 의미로 말이다전역 후 첫 스마트폰을 샀을 때 참 신기하고 편리한 게 생겨났다고 생각했을 뿐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다닐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내 삶과 관련해서도 그랬다끝없이 이어지는 유튜브 쇼츠를 목적없이 쳐다보다가 늦잠자서 다음 날 하루 종일 피로에 저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요한 하리도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일상화된 스마트 기기와 각종 SNS 어플 등의 영향으로 우리는 집중력을몰입감을깊게 사고하는 능력을숙면을건강을 잃었다는 것이다스마트폰과 각종 어플 때문에 만성적인 스트레스각성 상태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다만기기 자체기술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저자는 기기보다는 스마트 기기의 각종 어플리케이션프로그램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구글유튜브인스타 등 각종 플랫폼의 사업의 수익은 대부분 광고에서 나온다광고의 효과를 높이려면많은 사람이 광고를 오랫동안 보게 하는 게 핵심이다. “이 기업들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더 오래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돈을 벌었다그게 전부였다.”(181) 사람들이 더 자주많이 들여다보게 하기 위해 각종 어플리케이션은 가능한 한 사람들의 집중력을시간을 많이 뺏어올 수 있게끔 세밀하게 설계되었다대표적 사례가 무한 스크롤이다. “보수적으로 추산하면 무한 스크롤은 트위터 같은 웹사이트에서 시간을 50퍼센트 더 많이 보내게 만든다.”(185)

  이 책은 개인의 디지털 디톡스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왜 문화시스템에 내재한 거대한 문제와 관련해 자꾸 단순한 개인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하는가이런 해결책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데도 해결책이 실패하면 개인이 시스템을 탓할 수 없게 만들고결국 개인은 자기 자신을 탓하게”(235)된다저자는 우리의 집중력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걸 건드릴 수 있는거대하고 담대한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3) 칼 포퍼 저,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포레스트 북스, 2023














  제목에 혹해 구입하고는 생각했던 내용과 달라 당혹해할 수 있는 책이다그럴만 한 게 자기계발서적같은 제목과 달리 과학철학자로 유명한 칼포퍼의 과학철학 및 역사정치철학적 에세이와 강연집을 모아놓은 책이기 때문이다원서를 뒤져보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의 원문인 All life is problem solving은 단 한번 등장하며여기에서의 life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의 이라기보다는 생명체 일반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반증가능성구획의 문제 등 과학철학적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포퍼의 대답이 역사정치철학적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면이 책을 윤리학적으로 읽어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포퍼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태도비판적으로 논의하려는 태도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려는 태도다정치든 사회든 과학이든 역사든 독단적 태도는 뭔가가 더 나아질 수 있게 하는 걸 가로막는 장애물이다도그마를 고수하는 과학자에게 성장이 없었듯전제정치와 독재정권처럼 비판적 논의와 건전한 토론이 불가능한 곳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문제의 직시다포퍼가 강조하는 태도들이나 반증가능성 기준이라는 과학철학적 입장같은 것들은 문제의 직시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다문제를 직시해야 독단에 빠지지 않고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삶도 마찬가지다문제는 삶의 디폴트값이다중요한 건 문제를 향한 태도다문제를 제대로 보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행착오와 잘못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철학자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으나 문제와 사랑에 빠져 도전하고실패하고배우고 하는 과정을 통해 저명한 철학자로 성장한 포퍼처럼 말이다.

 

4) 김영하 저, “작별인사”, 복복서가, 2022

가즈오 이시구로 저클라라와 태양민음사, 2021




  










  인공지능, AI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라 그런가 인간다움이 뭔가에 대해 좀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시발점은 이 두 책이었다클라라와 태양은 따로 기록을 남겨둔 게 없긴 하지만 무척 따뜻한감동적인 소설이었던 거로 기억하고작별인사는 내가 생각하던 인간다움에 닿아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는 클라라와 태양보다 좋았지만그 주제를 소설적으로 펼쳐나가는 데에 많은(너무나도 많은… 이렇게 좋은 주제를… 조금만 더 묵혀서 정치하게 써주셨으면 좋았을텐데아쉬움이 있었던 소설로 기억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인간다움의 핵심이 인간으로서 지니는 나약함비참함에 대한 자각과 수용이라고 생각했다이 자각과 수용이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들며타인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주요한 원리들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롤즈가 원초적 입장을 통해 도출해낸 차등의 원칙을 생각해보자사람들은 내가 나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최소 수혜자가 최대 이득이 되는 기준을 수용하려고 한다여튼그래서 나는 작별인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휴머노이드였던 철이가 유한함을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철이의 주요한 질문인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해소됐다고 생각했다진짜 인간들이 망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유한함을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5. 빅터 프랭클 저,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출판사, 2020














  삶의 의미와 관련된 책이나 각종 인문학 서적에서 정말 자주 봤던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드디어 읽었다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삶의 의미와 관련된 더 좋은많은 책들이 나왔고그것들을 일부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처음 알았던 10년 전에 봤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기술한 것이다그건 바로, ‘인간이란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 삶에 책임을 지며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핵심은 의미의 발견이다어찌되었든 자신 만의 삶의 의미가 있던 사람은 수용소에서의 고단함을 버티고결국엔 살아나가는 경우도 많았는데그게 아닌 사람은 자신을 포기해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왜 사는지 아는 사람은 많은 걸 견뎌낼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그래서 삶의 의미란 뭐고그걸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관한 방법론의 제시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게 목표인 책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한데 이건 가물가물하다여튼나만의 삶의 의미와 목표를 찾는 게 중요하다~!, 정도로 갈무리하게 넘어가야겠다.


5. 김혜진 저, “경청”, 민음사, 2022














구체성을 잃지 않은 말이 빚어내는 삶의 복잡성과 모순지난함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책을 읽고 알라딘 100자 평에 남긴 글이다정말 좋게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어서 김혜진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샀던 기억이 난다. (출간한 작품 전체를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들었던 많지 작가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을 아름답게만추상적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더 곱씹고 추가적인 단상들을 남겨놓지 않은 건 아쉽다.


6. 어맨다 레덕 저, “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을유문화사, 2021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배우고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런데 동화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 특정한 편견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며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도록 한다면저자인 어맨다 래덕은 이야기특히 동화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며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다리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에리얼(인어공주의 주인공의 이름이다.)이 왕자를 얻을 희망을 꿈꿀 수 없다면다리를 절지도 않고 모든 능력을 온전하게 가져야만 고통과 괴롭힘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나 같은 장애 소녀는 어떤 희망을 품으며 살 수 있을까?”(197)란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7. Carlo Rovelli , “The Order of Time”, Penguin Books, 2019
















인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완독한 영어원서다. (자잘한 각색 원서 제외하고책에 대한 단상은 약 4년 전번역서를 읽고 남겼던 독서단상의 일부로 대체솔직히 책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 시간을 관계론적인사건적인 방식으로 구성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내게 그리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진 않았다캉길렘이나 푸코펠드먼 배럿들뢰즈붓다같은 사람들을 통해 변화생성관계사건구성과 같은 키워드의 의미를 엿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내가 보는 세상은 거친 수준에서 말하자면 로벨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평상시에 내가 생각한 시간도 실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구성된 개념에 불과했다물론 물리적 기반 없이 마음대로 구성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필요하다. ‘물리적 변화와 주기.

우리가 흔히 시간의 정지를 묘사하는 방식을 떠올려보자나를 제외한 모든 게 잿빛으로 변하고 멈춘다변화가 존재 하지 않는 상태를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여기는 것이다은연중에 시간을 변화(운동)와 관련지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다만모든 게 멈춰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절대 시간이라는 뉴턴 이후의 시간관에 익숙해져 잊고 있었을 뿐이다시간이라는 건 변화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옆에 두고 보는 시계는 무엇을 가리키는 거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세계적으로 동기화되어 마치 절대 시간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니까그러면 시간을 재기 위한 시계의 시간은 어떤 시계가 재는 걸까여기에서 중요한 게 주기역사적으로 인간의 시계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주기를 지닌 변화(운동)’를 기초로 만들어지곤 했다해를 예로 들자면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해가 지면 하루가 끝나는 식으로 해의 주기적 변화를 시계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시계도 자전과 공전이라는 천체의 주기적인 변화를 기초로 만들어졌고지금은 이를 더 정밀화하고자 세슘133이라는 원자의 진동주기를 기준으로 1초를 정의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주기적으로 운동(변화)하는 것이 곧 시계고 그 변화의 기간이 시간인 셈이다물론 여기에는 물리적 변화와 주기를 시간으로 개념화하는 인간이라는 주체도 필요하다주기적으로 운동하는 물체가 있어도 이것을 시간이라는 관념 으로 개념화하지 않는다면변화를 기억하고 이를 기초로 스키마를 형성해 끊임없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려는 뇌의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시간 또한 없을 것이다.

 

2. 사실 뉴턴 이후 시간의 동기화’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시간을 변화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일반적이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란 변화(운동)의 척도로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뉴턴과 동시대 인물인 라이프니츠도 시간이란 동시에 공존하지 않는 것들의 보편적 인과적 질서에 부여한 관념이라는 식으로 이해했다뉴턴이 프린키피아에서보통사람은 시간을 지각 가능한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식하며 여기에는 다양한 편견이 숨어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절대 시간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뉴턴은 그런 통속적인 시간 개념과 달리 변화와 상관없이 흐르는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의 존재를 주장했고그 절대적인 시간t가 흐르며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통해 다양한 운동을 예측했다물체의 상태를 시간(t)에 대한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그게 바로 F=ma이런 절대시간 개념은 뉴턴의 권위와 자본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철도 운행을 위한 시간의 동기화노동 효율성을 위한 시계의 보급 등)와 함께 상식이 되어 현재 우리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그렇게 변화사건과의 관계를 통해 시간을 정의하려던 아리스토텔레스나 라이프니츠는 패배한 듯했다.

 

3. 물론 뉴턴의 시간관에도 문제는 있었다뉴턴처럼 시간을 수학적인 존재로 바라본다면 시간의 방향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실제로 뉴턴 방정식은 t와 -t를 구분하지 않았다우리는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뉴턴 방정식에 따르면 시간이 거꾸로 흘러도 상관이 없는 셈이다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가과학자들은 뉴턴의 운동법칙이 틀린 게 아니라시간은 원래 방향성이 없으나 운동의 특성상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식의 설명을 하게 된다바로 엔트로피의 개념을 통해서다.

엔트로피란 특정 물리계의 무질서 정도를 뜻하는 단어로엔트로피의 법칙인 열역학 제2법칙(델타 S>=0)은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예를 들자면물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시간이 지나며 물감이 물 전체로 퍼져나가지만퍼져나간 물감이 다시 뭉치진 않는다이를 비가역성이라고 한다이것이 곧 시간의 방향을 형성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공기의 분자 하나하나라는 미시적 상태가 아니라 어느 강의실 공기의 압력온도와 같은 거시상태(열역학 상태)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미시상태와 거시상태의 관계를 이해해야 열역학 제2법칙의 의미를 조금 더 명료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거칠게 예를 들어보자면특정한 거시 상태를 표상할 수 있는 미시적 상태의 배열이 10억 가지가 있다고 해보자이 10억 가지가 표상할 수 있는 특정한 거시 상태는 1·2·3·4·5로 5가지다그리고 1을 표상하는 미시적 상태의 배열이 1가지고, 2는 2가지, 3은 3가지, 4는 4가지, 5는 9억 9,999만 9,990가지라고 해보자이런 상황이라면 특정 계의 거시상태는 5에 있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물감이 물에 섞여 퍼져나갈 확률이 물감이 다시 뭉칠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우리가 목격하는 시간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인 셈이다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으므로미시적 배열이 얽히고 얽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쪽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시간의 방향인 것시간이 과거로 향하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이유는 확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확률이 높다는 것즉 덜 특별하다는 것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미시적인 상태를 전부 다 고려할 능력이 없는 데서 오는 희미함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로벨리는 이를 두고 시간은 방향성을 잃었다과거와 미래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한다. (엔트로피의 흐름과 우리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일치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도 가능한데 이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4. 아리스토텔레스와 라이프니츠의 짙었던 패색은 과학자들이 빛의 정체를 두고 발싸심하면서 옅어졌다.

과학자들은 입자인 줄 알았던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파동을 만들어 전파하는 전자기장인 에테르의 존재를 추정했다하지만 에테르의 존재는 광속 차 측정 등의 관측 사실과 모순됐다빛이 파동이라면 에테르가 필요한데 에테르를 가정하면 실험 결과와 모순되는 상황이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이었다. 1905년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다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했다갈릴레이의 상대성 원리를 더 밀고 나가서맥스웰 이론에서도 상대성 원리가 똑같이 성립한다고 가정했던 것이다여기에서 추론되는 게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같은 값으로 나타난다는 광속불변의 원리다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받아들여 뉴턴의 운동 방정식을 재구성했고(로렌츠 변환이게 바로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직관적으로라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지라 여기에서 딸려 나오는 효과만 조금 정리해보자면, ‘시간의 유일함 상실’(로벨리가 말하는 현재지금의 끝도 여기에서 파생하는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과 흐려진 시간과 공간의 경계’ 정도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두 효과 모두 광속 불변의 원리를 가정하기에 나타나는 효과로 이제 시간은 속도질량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되었고공간과 시간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그리고 이러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등속 운동 뿐만이 아니라 가속 운동에까지 확장한 게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여기에서도 거칠게 정리해보자면 공간과 시간에너지와 물질이 동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이 정도면 로벨리의 말뜻을 대략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벨리는 아리스토텔레스라이프니츠의 시간관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부활해 뉴턴의 시간과 통합되었다고 말한다우선뉴턴이 말했듯 시간과 공간은 실재한다시간과 공간은 물질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시간과 공간 그 자체의 실재성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시간과 공간은 물질들의 관계 자체가 만들어내는 효과니까로벨리가 중력장이 곧 시공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테다반면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부정된다시간과 공간은 물리적인 씨실과 날실들의 관계망이 직조해낸 네트워크 자체로물리적 변화의 양상에 따라 휘고 구부러지기 때문이다.

 

5. 그러나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 씨실과 날실의 관계망이라면 양자적인 특성도 지녀야 했다시간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입자성불확정성관계적 양상이라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이 아이디어를 간단히 풀어보자면시간이 물리적 씨실과 날실의 관계망이 직조해낸 네트워크라면해당 물질들을 미시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 양자적인 특성을 똑같이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그것은 무언가와 상호작용하기 전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다가 상호작용이 있을 때만 구체적인 게 되는입자적 특성과 파동의 성격을 모두 지닌 무엇이다.

로벨리는 이처럼 양자적인 특성을 생각했을 때우리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사물이라는 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마주침되어감 등의 과정 그 자체로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장을 한다.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실체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관계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자는 말이다어느 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으면서 그 자체로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렇다는 말은 모든 사물이 사건이라는 말이며(사물 자체가 관계적 상호작용 후에 구체성을 띠니까), 사건이라는 말은 모든 사물이 시간이라는 말이다이게 로벨리가 모든 사물은 시간이다.”라고 말했던 이유다.

변해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인간이 지닌 문법의 부적당함을 지적하고(비동사가 서양의 철학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생각해보자), 시간 변수 t가 없이도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언급(“양자중력 이론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지는 않는다사물들이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서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세상 사물들이 서로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한다.”)한 로벨리는 마지막으로 그만의 우주론을 통해 시간을 다시 이해하길 시도한다.

여유가 없으므로 로벨리가 요약한 것을 참고하자면중요한 건 관점이다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우주 전체가 아닌 특정한 계에 속해 특정한 계와만 상호작용을 한다이 계는 과거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에 있다가(‘우주 초기의 낮은 엔트로피라는 것 자체가 로벨리에 따르면 관점의 효과다.) 점차 높은 엔트로피의 상태로 변화해간다그리고 이런 열적 시간을 시간의 흐름의 흐름 자체로 재구성할 수 있는 건 우리 인간의 관점 때문이기도 하다이렇게만 정리하는 건 아쉽지만거칠게 요약하자면 내가 앞서 시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7. Walpola Sri Raula, “What The Buddha Taught”, one world, 1997

















하루에 1쪽씩 3달 동안 읽어서 완독(뒤의 발췌 부분 빼고)했다. 붓다의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 20세기 서양인이 한참 전의 붓다의 가르침을 최대한 오독하지 않게 강조한 포인트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Among the founders of religions the Buddha (if we are permitted to call him the founder of a religion in the popular sense of the term) was the only teacher who did not claim to be other than a human being, pure and simple. (p1)


3. 2023년의 독서를 돌아보며

  앞서 이런 질문들을 던졌다무의식적으로 자주했으나 갈무리 되지 않은 질문들이다이 질문들을 좀 곱씹어보려는 건 최근의 독서경험이 썩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걸까무엇을 위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으면 좋을 책이 뭘까이렇게 많은 관심 분야 중에서?

어떻게 하면 꾸준히 밀도 있게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왜 읽는 걸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쾌감이다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입이 즐겁고 좋은 향을 맡으면 코가 즐겁다좋은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고 좋은 풍경을 감상하면 눈이 즐겁다책에서 느끼는 쾌감도 이와 같다좋은 책을 읽으면 머리가 즐겁다뭔가를 알게되고이해하고배우는 데서 오는 쾌감재밌으니까 읽는다.

  그리고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삶을 돌아보면 참 많은 걸 책을 통해 배웠다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었을 때를 떠올려보면예전에는 왜 그렇게 힘든지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재했기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괴로운 적이 많았다그런 악순환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 건 크나큰 경험과 사건 때문이기도 했지만그 경험과 사건을 해석 및 정리하고 교훈을 이끌어내게끔 하는 어떤 기준과 원칙을 제공해준 독서때문이었다책이 제공한 지식으로경험을 해석 및 정리함으로써 성장하며 그 지식을 체화했던 게 핵심이었다이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지혜로워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다음으로이것도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다만지혜로워지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아닌 실용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다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접근할 때면 늘 먼저 책을 몇 권 읽고 시작한다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내 경험을 조합해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다이런 책은 책에서 지혜를 길어내는 목적으로 읽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속독이 가능하다지혜를 위한 독서는 깨달음과 체화를 위해 천천히음미하며 읽는 반면지식을 위한 책은 정보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첫째정서적 쾌감을 얻기 위해서둘째지혜로워지기 위해서셋째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이렇게 보면 책 만한 것도 없다즐거운 데다가 각종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지혜로워지기까지 하니까그런데도 요즘 나는 왜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걸까독서경험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뭘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도파민 중독이다중독의 대상이 유튜브 쇼츠같은 생산적이지 않은 활동이라는 게 문제다천천히밀도있게집중함으로써 잔잔하게 느껴지던 정서적 쾌감(만족)이 아닌 즉각적으로 손쉽게 느껴지는 쾌감거의 남는 게 어려운 데도 그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하지만 나는 비생산적인 대상을 향한 도파민 중독이 불만족스러운 독서경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는 생각도 드는데독서경험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만족감이 더 컸다면 오히려 더 활자에 중독되었으면 중독되었지 핸드폰을 그렇게 붙잡고 있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여기서는 이 질문에 더 집중해보고 싶다독서경험을 더 만족스럽게 하기 위해서 어떤 게 필요할까어떻게 하면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보다 책읽는 게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핵심은 결국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그리고 이 환경은 다음의 세 가지에 다름아니다첫째분위기 조성둘째마감셋째선택과 집중분위기 조성이란독서하는 공간이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집중하기에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집에서 그 분위기 조성이 잘 되지 않는다면그 의지란 것을 집에서 집중할 수 있게 노력하기 보다스터디 카페로 나가는 데에카페로 나가는 데에 쓰는 게 맞다.

  다음으로 마감마감은 읽고쓰기의 동기부여를 위한 어떤 규칙과 기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언제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쓸지 기한을 정해놓는 것이다그리고 이 마감 기한은 사적인 것에서 최대한 공적인 게 될수록 좋은 것 같다나 혼자 기한을 정해놓고 하는 것보다는 그 기한을 옆 사람에게 알리는 게 좋고옆 사람에게 알리는 것보다 함께 기한을 정한 후 읽고 쓰는 게 낫다.

  마지막으로선택과 집중독서와 관련하여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큰 어려움 중의 하나가 선택과 집중이었다관심사는 많고욕심도 많은데시간과 기회는 한정되어 있다전에는 충분히 숙고하면 선택과 집중하고 싶은 분야가 조금은 더 명확해질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여전히 모호하다그런데 이렇게 욕망의 과잉상태로 이것저것 붙잡다보니 독서에 대한 흥미가 점점 사라졌다만족과 재미보다는 부담감강박이런 부정적 정서가 더 자주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어디든 상관없겠다란 생각. Lewis Carroll의 “Alice In Wonderland”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Would you tell me, please, which way I ought to go from here?’ ‘That depends a good deal on where you want to get to,’ said the Cat. ‘I don’t much care where-‘ said Alice. ‘Then it doesn’t matter which way you go,’ said the cat.” 애초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명확하지 않다면관심있는 수많은 분야 안에서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 않을까이 관심사가 적어도 현재의 내 삶과 크게 동떨어진 게 아니라면그 안에서는 어디로 가든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내가 직접 뭔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괜찮은 커리큘럼 등의 환경 속으로 나를 여기저기 욱여넣어보고하루하루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는 것이다선택과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에 나를 가져다두는 것그렇게 살다보면 길이 생기지 않을까.

  결국, 2023년의 독서경험에 대한 아쉬움은 이 환경조성의 부재 또는 실패에서 비롯된다는 게 한 해를 돌아보며 주로 들었던 생각이다책이 내게 주는 즐거움지식과 정보지혜를 비롯해 내가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책밀도 있게 읽기 위한 방법은 환경조성을 통한 구조적인 선순환이 형성되면 획득될 것들이다.


4. 2024년의 독서를 생각하며

  이것저것 담아보려고 하긴했다하지만 역시책보다는 문제의식을 위주로 정리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다 읽지도 못할 책욕심만 많아진다.


  복잡하게 말고 최대한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해보자.


1)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에 관하여

2) 원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원치 않는 사람과 적당한 관계를 맺거나 말려들지 않는 것에 관하여

3)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행복하게 사는 삶에 관하여

4)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당한 수준으로손해는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만큼의 경제 공부에 관하여.

5) 의미있는 삶에 관하여


5. 2024년을 맞이하며 하고 싶은 독서 다짐

떠오른 글이 하나 있었다. 6~7년 전에 썼던 글이다돌아가신 신용복 선생의 마지막 인터뷰 글을 읽고는 떠오른 감상을 끼적였던 거다.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인터뷰를 읽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특히 이 말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웹진 <다들>에서 2015년 10월에 신용복 교수와 나눈 대담이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인터뷰웹진에서는 신용복 교수에게 깨달음과 공부를 주제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20년의 감옥생활을 견딘 힘이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라고 하는데그 깨달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깨달음은 바깥으로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고안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성찰입니다."라고.

신 교수는 깨달음이 많은 지식을 얻는 것많은 책을 읽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책이 중요하지 않고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자기의 삶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기 재구성 능력이 훨씬 중요하지요." 자신이 접한 수평적 정보들을 수직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기 인식을 심화하면서 재구성 능력을 높여가는 게 바로 공부고 학습이라고 한다그래서 신 교수는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 아래서 책을 읽기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려고 했지요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생각을 높이는 것은 '가슴으로 하는 공부'를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공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애정으로 나아가야 진정한 공부라는 뜻이다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다.가슴으로 하는 공부에 대한 신 교수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처음 5~6년 감옥살이할 때 함께 징역 사는 숱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들을 대상화하거나 분석하곤 했지요그러다 차츰 '나도 저 사람 부모 같은 사람 만나 저런 인생 역정을 거쳤으면 똑같은 죄명으로 감옥에 앉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나더라구요대상화하고 분석하는 근대적 인식틀이 조금씩 깨져나갔던 것이지요그 사람들과의 공감과 애정이런 게 생기면서 내 공부가 가슴까지 온 것입니다."

머리로 하는 공부와 가슴으로 하는 공부의 차이는 실천에 있다. "단순히 배우기만 한다고 기쁜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개인적사회적 실천과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공부라는 거지요." 그래서 가슴으로 하는 공부는 개인적 변화로도 이어진다또한,"공부는 이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게 되고그러기 위해 "당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변화시켜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분석이 있어야"한다고 한다이 말도 인상적이다.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사유를 학습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공부니까요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죄다 공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글을 읽으며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면서도 내가 변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가슴과 괴리된 지식을 모으는 데에만 열을 올렸던 탓이었다넓히는 것에만 열중했지 생각을 높이는 일에는 소홀했다며칠 전 일기에 썼던 "생각을 머리로만 하지 말고 느껴보기"라는 이야기와 같다생각의 속도가 삶과 괴리된생각을 체화하지 못하는 내 삶. '생각의 속도를 삶과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연습내 생각을 곱씹으며 느끼는 연습생각을 체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지만몇 가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친구가 "생각을 너무 대자적으로 하는 거 아냐?"라고 말했는데그 말이 참 맞다내 삶타인의 삶에서 자꾸 거리를 두고 '대상화하고 분석'하려 든다이러니 내가 사는 현실에 적극 참여하지 못한다생각이 마음과 괴리되고 삶과 괴리된다생각을 많이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실천하지 않았던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생각을 대자적으로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구체적인 현실에 적극참여하면서 공부의 대상에 애정공감을 느끼고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이게 필요하다그런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을 대자적으로 하는 습관은 삶의 관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내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지 못하고나를 대상화 한 후 외부에서 주입한 가치에 빗대어 나를 평가하는 습관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게 아니라 억압하는 습관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안 돼' '아니야' '바꿔야해'라고 외친다타인의 시선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도덕적 기준사회적 기준 등 외부의 기준에 맞게 나를 억압하고나를 평가한다그러니 갈등하고소모되고공허해지고무기력해진다종국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인터뷰 글을 보며 책 읽는 방식도 반성하게 됐다.지적호기심에 기대 마구잡이로 책을 읽으며 지식만 쌓길 바랐다책 읽는 게 마음을 울리지 못하고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못했다그것은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듯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며 아무것도 산출하지 않는방종한 안일함에 푹 빠진 향락"에 불과했다아타루는 "읽어버리면 미쳐버리고 맙니다."라고 하는 데 나는 미치지도 않았고불편하지도 않았고그래서 바뀌지도 않았다내가 섭취한 지식이 나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못하는데감동시키지 못하는데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으로가슴으로 느끼려 노력하고 느낀 걸 풀어 쓰기내가 다다른 결론은 이거였다나를 자극하고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매체는 책이 될 수도 있고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뭐든 머리로만 생각하기보다 몸으로 함께 느끼려하고그 느낌을 계속 풀어쓰는 연습을 하다보면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그러니까 매일 블로그에 일기 쓰는 연습을 더 게을리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가슴으로 느낀 바를 부여잡고 구체화해 풀어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기에.

 

다짐은 이걸 다시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하겠다아 그리고 하나 더어떻게든 규칙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그 환경 속으로 나를 욱여넣기.

 

고생했다, 2023야무지게 살아보자,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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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2024-03-07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3년의 정산 글도 유익하고 재밌네요! 매년 기다려져요! 올해도 기대해 봅니다
 
What the Buddha Taught (Paperback)
Walpola Rahula / Oneworld Publications / 199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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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책이었다. 나온 지 70년이 다되어가는데도 읽히는 이유가 있다. 불교의 핵심을 쉽게, 잘 전달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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