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강대진의 고전 산책 3
강대진 지음 / 그린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메로스 서사시의 구성 원리는 바로 반복이다. 구절들, 주제들, 장면들 모두가 거듭거듭 되풀이된다. 하지만 그냥 늘 같은 게 나오는 건 아니다. 매번 조금씩 변형된다. 비슷한 것이 다시 등장하면서 전과 조금 달라졌으면 사람들은 그 차이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p44

강대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는 <일리아스>를 읽기 위한 입문서다. 유명한 트로이 전쟁을 다룬 서사시로 널리 알려진 <일리아스>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 받지 못해 발생한 황금 사과 사건도.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독화살에 의해 죽는 사건도, 트로이아가 결국 오뒤세우스의 목마의 계략에 의해 멸망당했다는 10년에 걸친 사건도 모두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10여 년 중 극히 부분인 며칠의 이야기 안에서 작품의 주제를 찾을 수 있도록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는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다.

전체와 부분이 서로 닮아 있다는 것도 강조했다... <일리아스>라는 작품과 그 부분들 사이의 닮음으로 가장 뚜렷한 것은, 앞쪽에는 일반 주제(전쟁), 뒤쪽에는 특수 주제(분노)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첫 부분에는 전쟁 전체가 주로 그려진다... 뒤로 가면서 아킬레우스의 복수가 주된 주제가 되어 전쟁은 배경으로 물러선다. 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p593

전체가 압축된 부분, 부분이 맞물려 만들어진 전체는 '주제-변주'의 구도 속에서 끊임없이 강조된다. 이러한 구조를 저자는 균형을 통해 설명한다. 10년 전쟁의 도중인 만큼 전쟁 양상은 '주고받는' 관계지만, 그 안의 기울어진 불균형은 이야기를 정적(靜的)이 아닌 동적(動的)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몰아넣는다는 것을 저자는 독자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죽음과 삶, 상세와 흐릿함, 실리와 명예. 트로이아군과 희랍군의 불균형적인 교환관계 속에서 거대한 전쟁의 물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학자들과 달리 내가 많이 강조하는 것은 균형이다. 이 균형에는 형식적인 것도 있고, 명예와 실리, 또는 동정심이 이루는 균형도 있다. 뒤의 균형을 이루는 장치는, 대체로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아군에게 주어지는 동정심이지만, 때로는 희랍 청중을 배려하여 희랍 쪽에 해를 끼친 인물이 즉각 응징되게 장면이 짜여 있는 때도 있다. 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p592

<일리아스>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유명한 만큼 기대와 다른 작품이기도 하다. 시인은 영화 <어벤져스>의 압도적인 전투신을 상상한 독자들에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 도입부에서 보여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노래하고, 전쟁의 전말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전장의 며칠을 보여준다. 때로는 무의미한 배의 목록과 이름을 나열하면서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의미해 보이는, 독자의 기대를 배신하는 서사시가 왜 고대의 청중들에게는 열광을 선사했으며, 오늘날의 고전이 되었는가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는 보여준다는 점에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트로이아인들의 목록은 사실상 전사자 명단을 미리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 소개된 인물들이 거의 다 이 작품 내에서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배들의 목록'에 나오는 희랍 쪽 지휘관 중에 쓰러지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과는 대비되는데, 결국 이 전쟁에서 희랍 쪽이 이겼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p1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래소 - 현대 주식시장의 핵심 메커니즘을 밝히다 막스 베버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래소는 근대적인 시장이다. 그곳은 규칙적으로 큰 거래소에서는 매일 모여서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장소이다... 거래소에서는 현존하지 않는 상품, 종종 생산 중인 상품, 심지어는 앞으로 생산될 상품에 대해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거래가 체결된다. 매수자는 보통 그 상품을 자신이 보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상품을 받고 값을 지불하기 전에라도) 이익을 보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사람이다 _ 막스 베버, <거래소>, p22/170


 막스 베버(Maximilian "Max“ Carl Emil Weber, 1864~1920)의 <거래소 Die Borse>는 주식시장의 기원, 주체, 작동 원리, 기능, 상품으로서의 선물(futures)에 대해 정리한 작은 책이다. 책에 담긴 내용 자체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크게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제는 상식이 된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고민은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개인은 그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재화를 만들어내지 않고, 그가 예상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 재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각 개인은 그 자신의 노동 산물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노동 산물을 쓴다. _ 막스 베버, <거래소>, p16/170


 가부장제 아래에서 자신의 사용가치를 위해 물건을 생산하던 개인이, 이제는 공동체에서 타인이 필요로 할 것으로 생각되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 생산의 목적이 '사용'이 아닌 '교환'이 되면서 생겨난 것이 시장(市場)이라면, 시장을 통해 우리의 필요(need)는 교환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억제된 것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다른 이들과 연락해야 한다는 필요가 아이폰을 원하게 되고, 아이폰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화폐에 대한 갈구로 이어지는 것이 일련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억눌린 욕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불편함을 해소할 필요, 필요를 해결할 상품에 대한 열망,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 있는 화폐상품에 대한 갈구. 이러한 단계 속에서 최초의 필요는 최소한 사회적 교환가치를 갖는 화폐를 손에 넣기까지 억눌릴 것이며, 억눌림으로부터의 해방은 바로 소비의 순간 이루어질 것이다. 


 이 모두를 기술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행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한 거래소들에서 오늘날 투기매매 형태로 널리 행해지는 거래 형식, 즉 선물거래이다. 선물거래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점에 있다. 투기자는 상품을 즉시 수령해서 인도한다는 조건으로 현금을 지급하며 매매하지 않는다. 수령과 인도의 이행이 장래의 특정한 날, 예를 들면 정해진 날짜로 연기된다. 이 시점이 다가올 때까지는 양자(즉 매수자와 매도자)가 자신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계약'의 '실현'을 시도할 시간의 여유가 있다... 선물거래에서는 투기자에게 필요한 자본이 훨씬 적다. 곡물 가격의 '상승세에' 투기하는 자는 더 이상 곡물의 현금 구입을 위해 오늘 막대한 금액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그는 -  투기가 성공한다면 - 몇 달 후 곡물을 판 다음에야 그 막대한 금액을 회수한다.  _ 막스 베버, <거래소>, p106/170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기업을 돈-기계(moeny machine)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거래소의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의 욕망과 그들의 투기에 대해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거래소를 통해 자신의 (돈과 주식 간의) 교환가치를 자신을 위한 사용가치로 바꾸려는 욕망 자체는 공동체 안의 개인으로서 당연한 본능이 아닐까. 이 경우, 게임의 법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열망에만 이끌려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더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업은 책을 읽을 줄 몰랐지만 충성스럽고 용감하며 지모를 갖고 있어서 공격하여 싸우는 것을 연습하면서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대주(代州)의 북쪽은 고생스럽고 추워서 사람들이 대부분 담요를 걸쳤지만 양업은 다만 솜옷을 끼고 노천(露人)에 앉아서 군사적인 일을 처리하였는데, 옆에 불을 지피지 않았으니 거의 얼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러나 양업은 기쁜 것처럼 하면서 추운 기색이 없었다.

신(臣)들이 자못 더불어 논의하는 것을 들었는데, 모두 말하기를 하남의 백성들은 변방에 사는백성들과 같지 않고 평소에 농사와 잠업(業)을 익혔지 전투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담아서 묶어 모으려니 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되어 이어서 도피하여 도적이 되면 다시 반드시 잘라 없애야 한다고 염려합니다. 하물며 땅을 기름지게 하여야 할 때를 당하여 다시 농사짓는 업무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신은 일찍이 주현(州縣)에서 직책을 거쳐 왔기에 거칠지만 이로움과 병통을 알며 편성된 백성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많으며 춘잠(春蠶, 봄철의 누에치기)이 이루어지면 단지 부조((뼈)를 충당하는 대비가 되며 만삼(蠶, 여름의 누에치기)은 이익은 박(簿)하지만 비로소 1년을 마치는 밑천에 됩니다. 지금 만약에 그 뒤에 도모할 것을 금지한다면 반드시 연(緣)을 이용하는 폐단이 생기고 어지럽고 혼란함이 뚜렷할 것인데 백성들은 얼마나 한가하게 편안하겠습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아이작 버틀러 지음, 윤철희 옮김, 전종혁 감수 / 에포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레지바니예는 배우가 배역의 실체와 깊게 연결되어 캐릭터가 처한 상상의 현실에 철저하게 녹아듦으로써 캐릭터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어쩌면 심지어 캐릭터가 생각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경험하기'는 완전히 그 캐릭터가 된다거나 배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배우의 살아 있는 의식과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허구적 의식이 만난다는 의미이다. _ 아이작 버틀러,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p16/388

아이작 버틀러 (Isaac Butler)의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The Method: How the Twentieth Century Learned to ACT>에서 독자들은 연기의 새로운 기준을 만나게 된다. 이전 시대까지 배우들은 온전하게 자신을 비워내고 새로운 페르소나(Persona)로 완벽한 인물이 되어야 했다면, 스타니슬랍스키는 '시스템'을 통해 배우가 자신을 비우는 대신 배우가 철저하게 인물가 하나될 것을 요구한다. 이전 시대까지 배우가 이성(理性)적으로 관객들에게 당위(當爲)를 나타내야 했다면, 시스템은 감성(感性)적으로 관객들을 설득한다.

디드로는 대화 형식의 미완성 에세이 <배우에 관한 역설>에서 위대한 연기의 핵심은 이성과 통제라고 주장했다. "극단적인 감성은 그저 그런 배우들을 만들어낸다. 그저 그런 감성은 다수의 형편없는 배우들을 만들어낸다. 숭고한 배우의 탄생은 감성이 완전히 결여되었을 때에야 가능하다." _ 아이작 버틀러,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p13/388

영감이 서식하는 곳은 의식 conscious이 아니다. 영감은 스타니슬랍스키가 초의식 superconscious이라고 명명한 곳에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초의식이란 프로이트의 잠재의식 subconscious 개념이 아니라 의식적인 의지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정신의 일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의식적인 통제력이 부족한 것이 배우에게 특별한 어려움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스타니슬랍스키는 깨달았다... 결국 예술은 현실 삶의 복제품이 아니다. 연극을 포함한 예술은 경험을 편집하고 압축한다. 그 과정을 통해, 그리고 예술가의 관찰을 통해, 경험은 의미와 삶과 진실의 밀도가 높아질 때까지 압축된다. _ 아이작 버틀러,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p68/388

<메소드>는 러시아(소련)에서 태어난 '페레지바니예'가 미국으로 건너와 브로드웨이와 헐리우드라는 배경과 만나 거대한 시대의 흐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배우의 언어와 행동 그리고 무대와 조명 등이 하나로 결합되어 재현 순간 하나하나에 고유한 생명력을 부여하는 연기와 연출은 대본 뿐 아니라 시간에도 아우라(Aura)를 만들어 내고, 관객들은 이를 이성과 감성을 통해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며 작품의 일부와 완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메소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말론) 브랜도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은 자연주의 측면에서 획기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말하는 것처럼 말한다. 대사를 툭툭 던지고 어눌하게 발음한다. 비비안 리가 연기하는 거짓과 허식으로 점철된 캐릭터인 블랑쉬와의 대조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다. 브로드웨이 무대 위 블랑쉬의 거짓된 모습은 고전적인 훈련을 받은 영국 여배우의 그것이었다. 영화 속 블랑쉬의 거짓된 모습은 1930년대와 1940년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활동한 여배우의 그것이다. 그래도 싸움은 변함없이 남아 있다. 바로 사실주의 대 마술의 싸움. _ 아이작 버틀러, <메소드 : 20세기를 지배한 연기 테크닉>, p222/3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릇 군주(君主)와 신하(臣下)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다스리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修行)이다. 양 무제(梁武帝, 464~549)는 자기 몸을 버려서 절의 가노(家奴)가 되었다니 이는 정말로 커다렇게 현혹된 것이다.

"상벌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는 이에 세상을 어거하는 재갈과 굴레인데, 상과 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실로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것이 지극히 공평하면 태평시절을 이루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바야흐로 지극한 말을 듣기를 갈망하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바야흐로 절실하게 직간(直(諫)하기를 기다리는 바가 되었고, 허물을 이끌어내어 스스로 경계하시며 덕을 닦아서 두루 새롭게 하려고하십니다.
신은 책임이 가까이하는 신하에게 있으며 성스러우신 분에게 있지 아니하고, 죄는 간관에게 있고 폐하에게있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