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 긴축의 시대에 살아남는 투자 전략
이종우 지음 / 김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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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계의 자산 구조도 주가의 장기 상승을 이끄는 중요한 이유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전체 가계에서 금융자산의 비율은 미국이 71%, 일본과 영국이 각각 62%, 54%이고 우리나라는 35%다. 우리나라의 가계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율이 특히 낮은 이유는 부동산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22

이종우의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은 투자전략에 관한 책이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주식시장의 전망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책의 결론이지만, 이 책이 가진 차별점은 지면의 적지 않은 분량을 전망에 대한 배경 설명에 할애한다는 점에 있다.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 많은 책들은 기업들이 IR을 통해 제시한 장밋빛 전망을 소개하며 낙관적인 전망들을 쏟아내지만,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에서는 그 대신 과거의 순환주기를 소개하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한다.

2000년대 10년간 유럽 주요국의 평균 성장률이 1.5%였다. 2010년대에 해당 수치가 1.2%로 낮아졌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이 조금씩 약해지는 상태로, 인구 고령화와 소비 둔화, 성장을 이끌 핵심 산업의 부재가 경기 둔화의 원인이다. 특정 계기나 이유 없이 성장성이 약해진 만큼 이를 풀 해법을 찾기 힘들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66

과거로부터 미래를, 선진국으로부터 개발도상국의 경우로 다소 냉정하게 미래를 전망하는 저자의 진단 속에서 단순히 한국주식시장의 문제가 아닌 부동산, 저출산 고령화, 재벌 문제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를 성찰할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IT 산업, 정책, 주식시장의 분위기와 흐름이 우리에게 어떤 기회와 위협요인이 될 것인가를 간략하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주식시장이라는 금융시장의 일부가 아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저자는 어쩌면 주식시장을 통해 자본의 힘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인상을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상승 기간이 짧고 조정 기간이 길다 보니 한국 주식시장의 투자 수익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대단히 낮았다. 중국 주식시장이 만들어진 1991년 10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상승을 보면, 미국 S&P500지수가 11.7배,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33.9배 올랐다. 그사이 코스피는 3.2배 오르는 데 그쳤다. 수익률로만 본다면 처참한 수준이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49

한국에서 주식 투자는 주식을 장기간 가지고 있기보다 상승에 맞춰 매수했다가 주가가 오르면 팔아버리는 모멘텀 투자가 주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주식시장이 짧은 상승과 긴 조정에 의한 계단식 상승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빚어진 당연한 결과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60

현재 재벌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높지만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그 위상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주가는 미래성장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데, 재벌들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p119)... 반도체는 전체 성장의 30%밖에 진행되지 않아 다른 산업보다 성장 여력이 크다. 성장곡선의 기울기가 여전히 가파른 데다 현재와 성장 정점 사이에 차이도 커서 앞으로도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외에 성장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산업으로 IT하드웨어, 바이오 등을 들 수 있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124

결국 주식시장은 일반투자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주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개인의 금융자산이 증가해 주식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졌으며, 투자연령이 낮아졌다. _ 이종우, <이종우의 넥스트 스텝 2023-2025>,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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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3-12-24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3년도 좋은 이웃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안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3-12-24 15: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한냥님께서도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세요! ^^:)
 

그런데 지금은 정부 출범 1년 만에 경제, 남북관계, 외교, 그리고 당연히 민주주의 위기가 이미 전면화되고 있어요. 작년부터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계속 하락했을 뿐 아니라 민생 부문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세수 부족에 대응하고 있어 국민의 어려움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적으로도 대미 편향적으로 일관하여 한국의 외교 발전 공간을 축소시키고, 한미일 군사협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면서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를 운운하는데 민주주의가 안녕할 리 없겠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글로벌 패권체제라든지 국제경제, 시장 시스템 자체는 앞으로 기후패권으로 옮겨갈 겁니다. 이러한 추세는 벌써 10년, 15년 전부터 이어져왔는데도 대한민국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제 표현대로 하자면 ‘전망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빨리 달리려고만 하지 어디로 달려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없어요. 이는 단순히 윤석열정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제정책이 제대로 수립되려면 노동정책이 그와 동등한 수준에서 함께 맞물려가야 합니다. 노동자들이나 국민들의 삶 자체가 시장임금에 매몰되고 사회적 안전망이나 사회임금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결국 노사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거든요.

OECD 국가 중 극우 정치세력이 집권 중심부로 쑥 들어온 나라는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입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무런 바리케이드 없이 정권의 중심으로 극우세력이 들어왔는데,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만들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또 반복될 수 있는 거죠.

지금 민주당은 ‘윤석열정부를 응징합시다’와 ‘총선에서 승리하겠습니다’라는 두 구호만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어요. 현재까지는 과거 박근혜정부 탄핵 이후 생성 합의가 없었던 시기의 경로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에 이르러 민주주의지수가 굉장히 높아진 반면 출산율, 성평등 지수, 자살률 같은 사회적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지수들은 곤두박질쳐왔습니다. 한국에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전쟁정치가 계속되기 때문이에요. 이념이 다른 세력은 절멸시켜야 한다는 식의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연합을 만들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왔다는 거죠.

유권자들이 선거 때 찍을 수 있는 대안 집합을 구성하는 것은 정당들의 역할이란 말이에요. 그 대안의 집합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시민사회 쪽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선거법 개정이나 위성정당 문제도 정치권에 모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 하고요

한국사회 자체를 완전히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죠. 이 재건을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아무것도 없어요. 엄청난 지구적 변화나 생태계적 전환 앞에서 모든 인류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해체하고 새로 만들어낼 것인가. 이제까지 한번도 당면해보지 못한 가장 거대한 수준의 담론 논쟁을 해야 할 겁니다.

살림은 사람과 지구를 함께 살리자는 것이니 기후위기 의제와 다른 사회개혁의 연결고리가 되고, 돌봄은 페미니즘을 사회개혁과 연결하는 의제입니다. 살림과 돌봄을 모두 연결하여 복합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도 있고요. 한반도평화 문제에 관해서는 왜 민주당이 반국가세력으로 몰리면서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계속 외면하고 뭉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호를 내걸고 진보정당들에 삼고초려 하며 정책연합이든 정치연합이든 호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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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선집 1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외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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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이란 적당한 거리 두기이다. 비평은 관점과 전망이 중요하고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직 가능했던 세계에 터전을 둔다. 그동안 사물들은 너무나 뜨겁게 인간사회에 밀착되어버렸다. 이제 '선입견 없는 공평함'과 '자유로운 시선'은 단순한 무능함을 드러내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아니라면,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138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Einbahnstraße / Denkbilder>의 여러 글 안에서 문학과 벤야민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지 않는 작가. 그의 글쓰기와 실천이 일치하는 문학. 이처럼 작가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삼위 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성공한 문학이 태어나게 된다.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Uberzeugungen)보다는 '사실'(Fakten, 事實)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 말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 뿐이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69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그 소망의 실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실현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즉 그 실현이 목표에 정확하게 합당한 실현이 되는지, 아니면 탐욕스럽고 흐리멍덩하게 소망에 자신을 탕진하는지는 길을 가고 있는 자의 훈련 여부에 달려 있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238


 그렇지만, 위대한 작품은 단일한 것이 아니다. 여성성에 의해 완성되고 죽음을 맞이한 뒤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남성성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이미지. 여성과 남성의 양면적 이미지가 생성과 죽음으로 작품 내부에서 얽혀 있다. 서로 상반된 것들의 얽힘. 그것은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대립적 요소들은 미묘하게 결합되어 떨림으로 우리에게 포착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종종 사람들은 위대한 작품들의 생성을 탄생의 이미지 속에서 생각해왔다. 이 이미지는 변증법적 이미지다. 즉 그 이미지는 그 과정을 두 가지 면으로 포괄한다. 한 면은 창조적 수태와 관계가 있고 천재적 정신(Genius) 속의 여성적인 것에 해당한다. 이 여성적인 것은 완성과 함께 소진한다. 그 여성적인 것은 작품을 탄생시키고, 그런 뒤 사멸한다... 이 작품의 완성은 어떤 죽은 것이 아니다. 그 완성은 외부에서 도달할 수 없다. 그 완성은 작품 자체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이 창조는 완성 안에서 창조자를 새로이 잉태한다. 그 창조는 수태되었던 여성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창조자의 남성적 요소에서 잉태한다. 축복 속에서 그 창조자는 자연을 추월한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242


 어떤 마을이나 도시를 처음 볼 때 그 모습이 형언할 수 없고 재현불가능하게 보이는 까닭은, 그 풍경 속에 멂이 가까움과 아주 희한하게 결합하여 공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습관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120


 

 재현불가능한 대립적인 양극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벤야민은 그것을 고대의 '도취'에서 발견한다. 서로 대립되는 양극을 함께 확신시킬 수 있는 경험. 도취를 통해 상반되는 요소를 함께 확인하고 상상력을 통해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문학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우리 삶에서 그 의미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역자는 <일방통행로> 안에 벤야민의 중/후기 사유의 모티프가 응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넓은 사유를 리뷰 안에 담기에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두 손에 담을 수 있을만큼만 일단 건져본다... 


 모든 인식에는 미량이나마 부조리함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인식에서 인식으로 진행하는 일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인식 자체 내에서 비약이 결정적이라는 뜻이다. 이 비약이 바로 인식이라는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조제되는 모든 상품계열로부터 구별시켜주는 진정한 표지이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220


 고대 사람들이 우주와 관계 맺는 방식은 달랐다. 그들은 어떤 도취 상태에서 우주를 경험했던 것이다. 도취야말로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그리고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경험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과 가장 멀리 있는 것은 항상 함께 확인된다. 그 중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는 결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말은 취합의 상태에서 우주와 소통하는 일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163


 상상력이란 무한히 작은 것 속으로 파고들어갈 줄 아는 능력이고, 모든 집약된 것 속으로도 새로운, 압축된 내용을 풍부하게 부여할 줄 아는 능력이다. 요컨대 상상력은 어떤 이미지든 접어놓은 부채로 여길 줄 아는 능력, 그 부채가 펼쳐져야 비로소 숨을 쉬게 되고 또 새로이 펼쳐진 그 폭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들을 내부에서 연출해 보이는 그러한 능력이다. _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사유이미지>, p116

꿈들이 무의식적인 정신적인 것에 대한 상징들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그리고 대상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꿈의 층위가 인식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그 꿈들이 이제껏 묻혀 있던 진리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주는가 하는 점을 서술형식을 통해 포착하려고 한다는 점에서이다... 꿈은 규율 받지 않은 경험의 매개체가 되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유의 각질 표면에 맞서는 인식의 원천이 된다. 성찰은 작용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멀리 떨어뜨려놓고, 사물들은 섬광이 비치는 순간 보이는 모습 그대로 내버려둔다. - P53

모든 명성은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데, 어떤 신탁도 명성이 갖는 노회(老獪)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불후의 명성을 가진 자는 오벨리스크처럼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불후의 명성을 가진 자는 자신 주변에 거세게 일렁이는 정신적 교통을 통제하지만,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비문은 아무에게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 P108

도장이 찍힌 우표만 모으는 수집가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크게 잘못 말하는 게 아니라면 그들이야말로 비밀의 기미를 알아챈 유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우표의 제의적 부분, 즉 도장을 중요시 여긴다. 왜냐하면 도장은 우표의 어두운 이면이기 때문이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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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영토의 가장자리에서 지도는 국가와 국제 체제를 매개하는데, 특히 경계선을 획정할 때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암석, 나무, 표지판, 철조망 같은 다른 사물도 강이나 산맥 같은 지형지물과 더불어 경계선 표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16세기 이래 과학적인 지도 제작법이 발전하면서 지도 제작은 국가의 경계를 그리는 데 점차 중요해졌고 지도의 존재는 국경선을 표시하고 안전하게 지키려는 향후의 노력을 더 쉽게 해주었다.

급진적 지도학(radical cartography)이나 대항지도학(counter-cartography)이라는 용어는 다음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함이다. 첫째, (흔히 국가 영토와 국제적/국내적 경계선/관할권에 집착하는) 관습적인 지도가 간과하거나 좀처럼 강조하지 않은 부분을 조명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지리적으로 말해서 지도로 표시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현상과 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정학은 종종 사물을 통해 상상되지만 사물을 이용하여 행사되기도 한다. 구글에 ‘지정학’으로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지도와 지구본, 유명 건물들, 군사 시설, 국가 기간 시설 등이 나온다. 지도는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작동할뿐더러 지도책에서 볼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스마트폰에 내려받을 수도 있는 물리적 대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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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19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지정학도 나왔네요..ㅎㅎ
어디까지 나올지 기대됩니다..^^

겨울호랑이 2023-12-19 09:57   좋아요 0 | URL
^^:) 이와나미 문고와 함께 폭넓은 분야를 다루는 시리즈인 것 같아요. 얇으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는 유익한 책이라 여겨집니다. 날이 참 춥습니다. yamoo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