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커의 강연은 당시 중앙은행 책임자와 경제학자, 나아가 정치인들이 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잘 요약했다. 첫째, 인플레이션 완화는 경제를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기초다. 둘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심리에 대처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낮은 수준에 묶어둘 정도로 충분한 신뢰를 얻고 끈기를 보여준다면 분명히 인플레이션을 낮은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은행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단기적 정치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 채 통화 정책을 운용할 자율권을 지녀야 한다.

1996년과 1997년에 그린스펀이 보여준 성과는 우드워드의 책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가 받은 극찬에 어울리는 것일까? 여러 면에서 그럴 만하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경제 성과가 훌륭했다는 사실이다. 견고한 성장과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다. 아울러 그가 위원회를 장악한 솜씨나 기본적인 경제 데이터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능력 등이 여러 사례로 입증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생산성의 본질에 관한 그의 통찰력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중에 교정을 거쳐서 나온 데이터를 보면 실제로 1996년과 1997년의 생산성 성장은 그린스펀의 예측대로 처음 발표된 것보다 훨씬 높았음을 보여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린스펀은 자신도 인정했듯이 금융 안정성 면의 위험을 거의 도외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산 가치의 추이를 주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금융기관과 시장의 위험 감수 성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과도한 신뢰에 그 원인이 있었다. 결국 그런 취약점이 전 세계와 그린스펀이 지닌 중앙은행장으로서의 명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그린스펀의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단기적으로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면 결국 금리는 내리게 되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1995년을 기점으로 장기금리는 실제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만약 시장이 인플레이션의 지속을 막으려는 연준의 노력을 대통령이 방해한다고 믿는다면 장기금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를 것이다. 클린턴은 그린스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연준의 독립성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확립했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도 그의 이런 선례를 따랐다.

구조적 장기침체와 세계 저축 과잉은 서로 강조하는 점이 약간 다르다. 구조적 장기침체는 적어도 초기에는 주로 미국에 관심을 집중했던 데 비해, 세계 저축 과잉 논리는 저축과 투자의 세계적 흐름과 이를 촉진하는 세계 자본시장의 통합화 경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조적 장기침체가 주로 투자 자금 수요(기업의 자본 구성과 정부 적자에 기여)를 더 강조했다면, 세계 저축 과잉 가설은 자금 공급에 더 비중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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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인주(人主)의 일인데 만약에 그 청을 들어 준다면 이는 사사로운 은혜를 파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를 준엄하게 끊어서 은혜를 황상에게 돌리려는 것이다. 만약에 채용하지 않을 사람같으면 이미 그 바라는 것을 잃었는데 또 좋은 말조차 하지 않으면 원망을 받는 길이다."

황제가 조보에게 유시(諭示)하여 말하였다.
"경은 자리가 높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 방종하지 말고 권력이 무겁다고 스스로 교만하지 말며 다만 상을주고 벌을 주는데 삼가 [사사롭게] 아끼고 미워하는 것을 중지한다면 군사와 국가의 일이 어찌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소!"

처음으로 세 번 쟁기를 밀자 유사(司)가 예(禮)가 끝났다고 상주하였는데 황제가 말하였다. "짐의 뜻은 농사를 권고하는데 있는 것이어서 1천 무(飮)를 끝까지 할 수 없음을 한스러워 하는데 어찌 단지 세 번 미는 것으로 제한하는가!" 밭 갈기를 하면서 수십 걸음을 갔는데, 시중드는 신하들이 굳게 청하여서 마침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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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거의 모든 나라가 유예했던 금본위제로의 복귀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1920년대에 연준이 주식시장의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자 금리를 인상한 것은 1929년의 주식시장 붕괴와 국제적 경기 침체의 시작에 모두 영향을 미쳤다. 연준이 금본위제를 철저히 유지하고자 노력한 것은 1930년대 초 발생한 파괴적인 디플레이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다.

스탠리 피셔가 구분하여 널리 알려진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즉 연준에 ‘목표의 독립성
goal independence
’은 없지만(연준의 목적은 대통령과 의회가 법률에 따라 정한다), 최소한 이론상 ‘정책적 독립성
policy independence
’은 지닌다는 것이다. 즉 연준은 자신에게 부여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정책 수단을 선택할 권한을 가진다

필립스 곡선의 기본적인 논리는 민간 영역과 공공 영역의 총수요가 경제의 총생산 능력을 앞지르는 현상이 계속되면 인플레이션이 가속된다는 개념이다.

인플레이션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는 심리는 인플레이션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했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 심리를 강화함으로써 자체적인 순환고리가 형성되었다. 이른바 ‘임금-물가 악순환
wage-price spiral
’이라는 용어가 널리 통용되는 어휘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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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국민의힘이 2020년 총선보다도 더 나쁜 지형으로 선거에 임하게 된건 사실이다. 이는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와 관련이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월23~25일 조사한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31%에 그쳤다. 63%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 P9

그럼에도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낮은 평가를 고려하면 야당 지지율이 지금보다 더 높아야 하는데, 민주당이 현재의 유리한 환경을 당 지지율 상승으로 좀처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정치학 박사전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이명박정부 즈음부터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지않는 현상이 관찰됐다.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정권교체를 한다고 별로 달라지는 게 없구나‘라고 유권자들이 깨달은 거다.  - P10

제3지대보다 ‘한동훈 효과가 크고 그것이 이재명을 앞선다면, 이번 선거는 여당이 이긴 게임이라고 봐도 될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른바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남아 있다.  - P11

여당이 처음 제안한 것은 국회의장 추천권을 없애고 대통령 추천권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거절하자 이번에는 국회의장추천 대신 여야 합의로 추천하게 하자고했다. 여야 간 법안 합의도 이렇게 어려운데 조사위원까지 합의해 정한다면 특조위가 출범하는 데 기약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이 여야 간 가장 첨예한 갈등요소였다.  - P22

이 사건은 대법원장이 직접 ‘공모‘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이끈 사례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번 1심 재판부가 보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직권남용죄 혐의는 ‘권리의 남용‘을 판단할 때부터삐걱댄다.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소부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강제징용 재상고사건의 재판에개입 · 관여할 수 있는 직무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 (중략) (양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일반적 직무권한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 P25

DSR 규제 확대는 금융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전세대출에 DSR 규제가 전면 적용되면, 다른 대출(신용대출 등)이 많은 사람, 소득이 낮은 사람은 전세대출을 받지못하게될 수 있다. 정치적 부담이 생긴다. 한번늘어난 전세대출은 줄이기가 어렵다.  - P40

지금처럼 남한은 미국과 일본에,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올인하면 지정학적 숙명론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강경책과 온건책을 뛰어넘어 북한을 잘 다루는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은 그것이 가교 파워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말 폭탄을 퍼붓는다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지정학적 숙명론으로 귀결되고 말 터이다.  - P48

한반도 전략의 핵심은 지정학적 숙명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일본같은 해양 세력과 중국·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나아가 아세안 국가처럼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양을 끼고있는 나라들과 함께 대륙과 해양을 통해진출하는 전략, 그리고 대륙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진출하는 전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해양 전략과 대륙 전략, 그리고 해양 세력과 육상 세력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 역량을 ‘가교 파워 (Bridge Power)‘라고정의할 수 있다. - P47

포로 감시원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잘 감시하는지 늘 감시받았다. 잘 때리라고 늘 맞았다. 피에르 불은 <콰이강의 다리>에서 이렇게 적는다. "(니콜슨) 대령은 다시 구타를 당했고, 고릴라 같은 조선인은 처음 며칠동안의 가혹한 체제를 재개하라는 엄명을 받았다. 사이토는 감시원까지 때렸다. … 죄수뿐만 아니라 간수에게도 권총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중첩된운명의 희생자였다.  - P53

이 문제의 원인을 한 가지로 콕 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불평등·빈곤 등 여러 가지 요인 중에서 ‘절망의 죽음‘과가장 일관되게 상관성을 보인 것은 지역의 고용률이었다. 일자리 자체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나마 존재하는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으며, 이런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전망도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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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3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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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4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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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미국 통화 정책을 책임지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그동안 맞이했던 수많은 도전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지를 독자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 책은 주로 역사라는 렌즈를 통해서 오늘날의(그리고 미래의) 연준을 들여다본다. 이게 바로 내가 본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며, 연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켜온 수단과 전략, 의사소통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나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프리드먼과 슈워츠가 보여주었듯이, 중앙은행의 철 지난 정책과 경제에 대한 오판이야말로 그 시절에 파국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 즉 잘못된 신념이 비극을 만들어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케인스는 1946년에 작고했으나 그의 후학들은 대공황 시대에 그가 남긴 저술을 기반으로 거시경제학, 특히 통화 정책의 잠재력을 강조하여 불황에 대처하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자 했다. 이른바 케인스 경제학은 오늘날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중심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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