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델의 아이디어는 사실상 "S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문장 S를 만드는 것이었다. 잠깐 생각해보면 그런 문장은 참인 동시에 증명 불가능하다. 이런 문장을 수론의 언어 내에 짜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 괴델의 놀라운 성취이다...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론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순인 공리계 T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것이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괴델은 T가 무모순이면,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수론의 문장으로 부호화했을 때) T로부터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따라서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참이면서도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p259) <Mathematics 2> 中 


<괴델의 증명>은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의 불완정성 정리(Godel's incompleteness theorems)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한 책이다. 얇은 분량의 책이지만,  불완정성 정리의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라 여겨진다. 책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괴델은 정리를 도출하기 위해 초수학(meta-mathematics 수학을 설명하는 언어)을 수학의 질서로 끌어들인다. 각각의 언어에 정수를 부여함으로써, 초수학적 개념을 수리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괴델은 '임의의 산술공식 G는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산술 공식 스스로 주장'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상(寫像 mapping)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즉, '대상 object'의 한 영역에서 구체화된 관계의 추상적 구조가 다른 영역의 '대상' 사이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괴델이 그의 증명을 구축하는 데 바탕으로 삼았던 것도 바로 이런 특징이었다.(p83)... 괴델은 참값으로 진술된 어떤 초수학적 명제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이나 그 명제의 부정 否定에 대응하는 산술 공식은 어떤 것도 산술 계산식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법을 고안했다.(p85)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이 입증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얻은 주된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괴델은 산술 전체가 포함되는 포괄적 체계의 무모순성을 초수학적으로 증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증명했다. 그런 증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산술 체계의 정리를 유도하는 데 사용되는 변형 규칙과 근본적으로 다른 추론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는 자체 모순이 있다.(p76) <괴델의 증명> 中


  괴델의 두 번째 결론은 더욱 놀랍고, 가히 혁명적이다. 공리적 방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사실을 증명해보였기 때문이다. 괴델은 <수학원리>를 비롯해서 산술학이 전개될 수 있는 다른 어떤 체계도 근본에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달리 말하면, 모순되지 않는 산술 공리로 이루어진 임의의 집합이 주어질 때, 그 집합에서 유도될 수 없는 참값의 산술적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p77) <괴델의 증명> 中


 '어떤 체계를 설명하는 명제의 무모순성을 그 체계 내에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정리되는 '괴델의 증명' 를 바탕으로 서양 철학의 오랜 과제인 신 존재 증명(Proof for the Existence of God) 과제를 다시 살펴보자. 괴델의 신 존재 증명 식은 다음과 같다. 


공리1. (이분법) 속성은 그 부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만 긍정이다.

공리2. (닫힘)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경우에만 긍정이다.

정리1. 긍정적 속성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다시 말해 실례를 가질 수도 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

공리3. 신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공리4. 긍정적인 속성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정의.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리2.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 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의. NE(x) : 핵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x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공리5.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신적이다.

정리3. 신적인 x는 반드시 몇몇 개가 존재한다. (p382) <신의 베틀> 中


  괴델의 신 존재 증명은 이처럼 '신적인 것은 몇몇 개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지지만, 이것이 신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식 이전에 이미 '신(神)적인 것'에 대한 전제가 증명에는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위의 증명에서 일관성, 긍정성, 존재성 등을 신의 속성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만, 다음 공리와 정의로 넘어갈 수 있는 이 증명은 객관성과 타당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중세 철학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자. 


 켄터베리의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AD 1033 ~ 1109)가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Monologion & Proslogion>에서 '존재하는 것들 중의 가장 좋은 것, 가장 큰 것, 가장 높은 것'을 신(神)이라 부르는 것에서 증명을 시작하고, 이러한 존재가 존재할 수 없다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내용으로 신 존재를 증명한다. 

 

 이 큰 선(善)은 모든 선이 그것을 통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자체를 통해 per se 선하다. 따라서 그 밖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선하고, 오직 이 큰 선만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선하다. 오직 그 자체를 통해 선한 것만이 바로 최고선(God)이다. 그러므로 최고선은 또한 가장 큰 것이기도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최고 summum omnium quae sunt 이기도 하다. (p19)...그리고 확실히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생각될 수 없는 어떤 것>은 단순히 지성 속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한다면,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생각될 수 있고, 이것이 [지성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p187)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 中


 돌아가서, 괴델의 신 증명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보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신의 창조물인 인간은 인간과 자연을 설명하는 법칙을 포함하는 신 존재를 수학 공리 체계 내에서 모순성을 포함한 존재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결론이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이 그 내용을 온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개략적인 내용을 아는 것마저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괴델의 증명>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가솔린 엔진(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gasoline-engine)


 우리는 자동차 엔진의 부품과 기능에 대해 잘 모르지만, 별 불편함없이 운전을 한다.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것에 큰 불편함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수학에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굳이 연습장과 연필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수험생은 제외) 만화책을 읽듯이 편하게 수학책을 접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나는 만화책을 편하게 읽지는 못하는 편이다.


PS 2. 어떤 체계를 설명할 때 그 체계 내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자. 이것은 '괴델의 불완전성 증명'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의미가 아닐까.


 옛날 중동지방의 어느 부유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세 아들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17마리의 낙타를 물려 줄 터이니 맏이는 절반을 갖고 둘째는 1/3을 갖고 막내는 1/9을 갖거라.단, 반드시 산 채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고민하던 삼형제는 때마침 지나가던 상인으로부터 낙타 1마리를 빌려 유산을 나눌 수 있었다...


 공부가 안 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그때는 잠시 바람을 쐬거나, 커피를 마셔보는 것이 어떨까. 잠시 주위를 환기 시킨 후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분명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아까 할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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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14: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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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7-0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할걸...‘에서 빵 터져 웃습니다.
점심 먹고 잠이 쏟아지는 오후, 덕분에 경쾌하게 시작합니다.
일단 시원한 커피 한잔 마시고 잠을 깨볼려구요~^^

겨울호랑이 2018-07-05 14:30   좋아요 1 | URL
저도 친구에게 들은 농담이었습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양철나무꾼님께서도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7-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연찮게 요즘 저와 비슷한 소재 책 읽으셨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7-05 20:01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워낙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시니, 북다이제스터님의 관심사가 아닌 책을 고르기가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갱지 2018-07-0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아요:-), 말그대로 모순 없는 체계 안에서 증명을 하다보면 그 체계가 모순일 수 있다는 거죠? 인간이 한자락 깔고 신을 증명하듯이... 제 짧은 머리로는 한계가 오네요. 후후
문득 괴델이라는 사람의 종교적 신실함이 궁금해지네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0:19   좋아요 1 | URL
저도 ‘불완전성 정리‘를 완벽하게 아는게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해하기로는 체계 내에서 그 체계의 모순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기에 갱지님의 말씀과 큰 틀에서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괴델의 삶을 보면 다른 논리학자들과는 달리 종교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서니데이 2018-07-0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의 ˝아까 할 걸.˝ 같은 마음에 요즘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여름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7-05 21:37   좋아요 1 | URL
^^:) 제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오네요.. 뭐 지금 하는 것이 남은 인생 중 가장 빨리 하는 것이라니, 마음 편히 드시고 행복한 하루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8-07-05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선생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여전히 신 문제로 옥신각신 중ㅎㅎ
신이 있다 없다를 차치하고서 기독교적 세계가 그들의 종교를 믿는 자만 구원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폐쇄적이고 지극히 인간적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신이라는 전제에 모순이 생겨요. 그러니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란 말이 나올 밖에^^;

겨울호랑이 2018-07-05 22:03   좋아요 1 | URL
^^:) 기독교 이외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도 제법 알고 임습니다. 물론 아닌 분도 있겠습니다만. 신이 있다 없다의 문제보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08 23:47   좋아요 1 | URL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어디서 말이 들었다 생각했는데, 혹시 <죄와 벌>에 나오는 문장이 아닌가 싶네요...

AgalmA 2018-07-09 00:45   좋아요 1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관념적 인간인 이반 카라마조프가 신을 부정하며 내세우는 논리죠^^ 무신론을 논할 때 철학이나 기타 인문학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죠.

겨울호랑이 2018-07-09 00:28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이반도 알게 되네요.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속에서 도박을 좋아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혹시 그래서 ‘도선생‘은 아니겠지만요..

AgalmA 2018-07-09 00:34   좋아요 0 | URL
이번 주 내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었어요. 당시 과학과 유럽 사상의 범람 속에 도선생이 인간의 휴머니즘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엿보이는 작품이죠. 거의 다 읽고 이제 리뷰를 써야 하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ㅎㅎ....겨울호랑이님도 무슨 책을 읽다가 생각나서 말씀하신 게군요~
그래서 도선생ㅋㅋ 역시 이름은 중요해ㅋㅋ 저도 어디서는 개장수의 뜻으로 불리는 건 아닌지ㅋ 그런 이름에 관련된 언어 유희들도 도선생 책에 많이 나와요ㅎ

겨울호랑이 2018-07-09 00: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AgalmA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과 과제가 늘어났네요. 한 권 읽으면 보관함에는 세 권이 쌓이니 만년 독서수지는 적자입니다 ㅋㅋ

2018-07-06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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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6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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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0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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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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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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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인은 인간의 생이 현세에 국한되지 않고 사후세계에서도 현세 이상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내세관은 이집트가 갖고 있는 건조한 사막의 풍토 속에서 잉태되었다. 사막의 열사 위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이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자연적으로 미라화되어 생전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본 후손들은 사자가 현세와 동일한 신체를 가지고 사후생활을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p87) <이집트 사자의 서> 中


 부활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해야만 한다. 마치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살해된 후 이시스에 의해 부활한 것처럼,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육신과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이 말하는 영혼은 카(Ka)와 쿠(Khu)로 이루어진다. 우리식 개념으로 보자면 카는 영(靈)에 해당하고, 쿠는 혼(魂)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에 제3의 개념으로 영혼의 새인 바(Ba)가 있다.(p88) <이집트 사자의 서> 中 


 <이집트 사자의 서 the Egyptian Book of the Dead>는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믿었던 그들의 내세관(來世觀)이 담긴 책이다.  이집트인들은 사자(死者)는 죽음을 통해 오시리스(Asar, Aser, Ausar, Ausir, Wesir, Usir, Usire, Ausare)의 심판을 받은 후 정화되고 태양신 라(Ra)가 지배하는 저편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카는 개인의 운명을 내세로 인도하고 내세에 거주한다. 즉 사자를 도와서 신 앞에서 그를 변호하거나 태양신 라 앞에 인도하며 사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한다... 반면, 우리의 관념상 혼에 해당하는 개념이 '쿠'이다. 쿠는 인간의 육체 내에 있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체내를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믿어졌다.(p89)...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바'가 있다.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체외로 빠져나와 비상(飛上)하여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다시 체내로 들어간다... 신관들이 장례일에 행하는 장의의 목적은 바가 갇히거나 파괴당해 내세로 못가게 되지 않도록 기원하는데 있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인간의 영혼은 '카'와 '쿠' 그리고 '바'로 구분된다. '카'는 웹툰만화 <신과 함께>에서 변호사 진기한(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이고, '바'는 사후 오시리스를 만나는 여행을 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쿠'는 유체이탈을 하는 '혼(魂)'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집트 사자의 서>는 죽은 후 '바'가 몸밖으로 빠져 나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자의 서>에 수록된 각 장은 사실상 전체가 주문으로 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는 열쇠는 "주문을 낭송하기 위해서는 라 앞에서 손을 씻고, 정화하고, 향을 피우고, 빵과 맥주를 바쳐야 한다. 그러면 영혼이 파괴당하지 않고 백만 년의 수명이 주어질 것이다" "이 주문을 아는 자는 내세에서 영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류(類)의 주문에 있다. 이것이 부활의 조건이 된다. 주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자의 영혼이 부활하여 영원을 얻는데 있다. 모든 장들은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p151) <이집트 사자의 서>中 


 심판관인 오시리스를 만나기 전 사자의 '바'는 적들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죽은 자는 끊임없이 오시리스와 라를 향해 기도를 하면서 오시리스에게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의식을 통해 정화된 영혼은 오시리스를 만나고 부활을 통해 영원한 세상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이다.


[사진] 심장의 무게 달기(출처 : 위키백과)



 이집트의 전수 및 죽음의 의식 가운데 절정을 이루는 것은 '심장의 무게 달기'의식이다.(p181)... 충실한 보호자 아누비스와 죽은 자 후네페르 앞에는 진실의 저울이 놓여 있으며 접시 위에는 마트의 흰색 깃털이 꽂혀 있다. 무릎을 꿇은 아누비스가 저울의 균형을 살피고 있으며, 굶주린 괴물 아미트는 불순한 심장의 찌꺼기를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후네페르의 심장이 왼쪽 접시에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진실의 깃털이 놓여 있다. 저울이 균형을 유지하면 후네페르는 '정의로운 것'으로 선언된다. 그러나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면 심장의 불순한 조각을 제거해서 후네페르가 저주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괴물 아미트가 심장의 불순물을 먹어치워 영혼을 순수하게 하고 카르마, 즉 업보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것이다... 심판을 마치고 환하게 미소짓는 전수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에게 인도되어 심판관 오시리스를 만나게 된다.(p183)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오시리스가 동생 세트(Seth)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 아내 이시스(Isis)에 의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다른 삶으로의 연결인 탄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죽음 이후의 삶'은 생전의 육신과 사후 영혼인 '바'의 결합이 필요한만큼, 티벳 불교의 윤회와는 다르다.  죽음에 대한 두 문명의 차이는  장례 문화의 차이에서 보다 극적으로 표현된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을 강조했으며, 사후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천장(天葬)을 지냈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의 귀환을 기다리며 사막 위에 부활의 공간인 피라미드(pyrramid)를 만들어냈다.


 죽음은 냉혹하게도 탄생과 연결된다. 이 둘은 밤과 낮, 음과 양,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렇듯 신은 종종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오시리스는 원래 죽음과 관련이 있지만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기도 하고, 사랑과 탄생의 신인 하토르는 죽음을 상징하거나 매일 저녁 해가 지고 '죽는' 서쪽과 연관되기도 한다.(p177)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이집트의 전생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윤회사상과는 다르다. 이집트인들은 생전에 악행과 악업을 저지른 삶이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혼을 파괴당하면 그의 바는 전생(轉生)하여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때문에 동양적 사고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p90) <이집트 사자의 서> 中

 

 무엇보다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명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삶도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이집트 사자의 서>는 이처럼 이집트인들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또한 책 안에서 유럽 문명의 여러 철학과 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 여겨진다. 그중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카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399년, 스승 소크라테스가 죽자 정신적 지주를 상실한 플라톤은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이집트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그는 카 사상으로부터 지적 충격을 받고 이것을 '이데아'로 받아들여 그의 저작에서 발전시켰다.(p89)<이집트 사자의 서> 中


 저녁에 태양이 지면 그것은 종종 지하 세계나 지옥의 영역으로 잘못 알려진 어둡고 굴 같은 두아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믿었다... 두아트는 12개의 구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밤의 12시간과 일치한다... 이 어둡고 불안한 통로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게 되면 그 결과로 태양이 떠오르고 낮이라는 밝은 세상이 나타나는 것이다.(p162)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中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이집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위의 글을 읽은 후 <국가> 제 7권을 읽어보면,  '동굴의 비유'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속세의 굴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은 후 두아트를 지나 태양신 라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후 다시 동굴로 돌아와 부활한다는 이집트 신화에 기반한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런 뜻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동굴의 비유' 이면에 이집트의 영향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이집트 사자의 서> 속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신화 원형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예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다만, 이처럼 <이집트 사자의 서>는 우리에게 고대 이집트에 관한 새로운 사실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면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사진]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출처 : https://www.pinterest.co.uk/pin/454159943648399992/)


 여기 지하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동굴의 입구는 길고 동굴 자체만큼 넓으며 빛을 향해 열려 있네. 그들은 어릴 때부터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기에 언제나 같은 곳에 머물러 있으며, 쇠사슬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앞쪽 밖에 볼 수 없네. 그들의 뒤편 저 멀리 위쪽으로부터는 불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으며, 불과 수감자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나 있고, 그 길을 따라서는 나지막한 담이 쌓여 있네.(514 a-b)... 그들 가운데 누가 쇠사슬에서 풀려나 갑자기 일어서서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이며 불빛을 쳐다보도록 강요받는다면, 그는 고통받을 것이며 광채에 눈이 부셔서 여태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의 실물들을 바라볼 수 가 없을 것일세.(515 c-d)... 마지막에는 태양을 보게 될 텐데, 본래 있어야할 장소에서 태양 자체를 직접 보며 관찰하게 될 것이네. 그 다음 그는 벌써 계절과 해(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태양이며, 또한 태양이 가시적인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관장할 뿐만 아니라...(516 b) <국가 Politeia> 中


 PS. 이집트 문명 또는 오리엔트 문명이 그리스 문명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래 책들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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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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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4: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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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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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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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1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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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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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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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7-10 23:34   좋아요 1 | URL
미드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곧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종말론적 세계관은 저 역시 공감하기 어렵네요^^:)
 


 누가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이탈리아를 떠나 황량하고 일기불순하며 살기에도 보기에도 음울한 게르마니아를 찾겠는가? 그곳이 고향이라면 몰라도.(p26)... 싸움터에서 시종들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주군에게 치욕이고, 주군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은 시종들에게 치욕이다. 그리고 주군이 전사했는데 살아서 싸움터를 떠난다는 것은 평생의 치욕이자 수치이다... 게르마니족은 평온이 싫고, 위험 속에서 더 쉽게 명성을 얻는 데다 폭력과 전쟁이 아니고서는 시종들의 대집단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p50) <게르마니아> 中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AD 55 ? ~ 117 ?)는 <게르마니아 Germania> 속에서 당시 야만족의 땅이라 불렸던 게르마니아의 땅과 게르만 족의 용맹함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농경민족인 라틴족의 시각에서 바라본 게르만족은 용맹스럽지만 야만스러운 종족이었다. 게르만족은 오랜 기간 로마의 골칫거리였고, 중국 흉노(匈奴)의 일파로 추정되는 훈 족의 침입으로 게르만 민족이 이동하면서 결국 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해마다 가을이면 강한 기병을 활용한 흉노의 침입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고사성어다.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흉노 역시 농경국가인 한(漢)과 오랜기간 대립해왔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흉노, 선비, 거란, 몽골과 같은 북부 유목(遊牧)민족과 한(漢)족의 다툼으로 요약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도] 한 제국의 확장( 출처 : https://www.quora.com/Why-did-the-Huns-led-by-Attila-invade-Europe-and-not-China)

 

  진나라가 망한 뒤 혼란을 수습하고 이제 막 등장한 중원의 통일제국 한나라와, 북방 유목민을 모두 통합하고 동아시아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로 탄생한 흉노의 대결은 불가피해졌다... 이제 흉노는 장성 이북의 유목민들을 모두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초원 세계에서는 부족한 식량, 비단, 의복, 금은, 각종 사치품을 전쟁이나 약탈이라는 방법을 쓰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흉노는 서로는 알타이에서 동으로는 싱안링, 북으로는 바이칼에서 남으로는 장성 지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제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p37)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러한 다툼의 양상은 중앙아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이란인으로 추정되는 스키타이인(Scythian)들과 농경 제국 페르시아(Persian)의 전쟁 역시 거대한 '유목 - 농경' 민족의 전쟁의 흐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제국 내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리우스 대제(BC 550 ~ 486)는  BC 514년 대규모 스키타이 원정을 계획하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중앙아시아 역시 '유목 - 농경' 민족 간의 대립이 오랜 기간 있어왔고, 스키타이 원정 이후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입(BC 492)으로 제1차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난 것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 제1차 페르시아 전쟁(출처 : https://www.shorthistory.org/ancient-civilizations/ancient-greece/the-greco-persian-wars-first-persian-invasion-of-greece/)


  스키타이인들은 페르시아 군과 직접 대결을 피하고 계속 초원 깊숙이 들어갔고, 다리우스는 그들의 종적을 좇아 초원을 헤매야만 했다... 상황은 역전되어 스키타이가 추격하고 다리우스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으나, 그는 운 좋게 추격을 피해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의 대군을 물리친 사건이 스키타이의 명성을 크게 높여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스키타이는 외적의 위협이 사라진 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그리스의 여러 도시와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인 번영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p29)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中


 이처럼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공간적으로는 동에서는 한(漢)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페르시아, 서쪽 로마에 이르기까지 유목 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립은 존재해 왔다. 따뜻한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이 '경제력'을 갖췄다면, 추운 북방 민족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고 '경제력- 군사력'의 상호 우위를 통해 세계는 균형을 유지해왔다.  독일의 역사학자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 ~ 1936)는 <인간과 기술 Der Mensch und Die Technik>에서 북방 민족이 강인할 수 있었던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방은 생활 조건의 어려움과 추위, 상존하는 생존의 곤경에 의해서 그 안에 있는 인종을 최고도로 첨예화된 정신과 전투, 모험, 진보에 있어서 엄청난 열정의 차디찬 정열을 갖춘 강한 인종으로 단련시킨다.(p62) <인간과 기술> 中


  오랜 기간 유지되온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균형은 서구사회에서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이 결합된 과학기술(science and technology)면서부터 깨지게 되었다. 슈펭글러에 의하면 본래  '기술'의 의미는 '삶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문명이나 생존 전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유럽 문명은 여기에 과학을 결합시키면서 이야기는 달라지게 되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동물의 삶이란 싸움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삶의 전략 및 "타자"에 대한 그들의 우열성(ihre Uberoder Unterlegenheit) - 이 타자가 유기적 자연이든 무기적 자연 - 은 이 삶의 역사, 말하자면 이 삶이 타자의 역사에 해를 끼치느냐 또는 반대로 타자의 역사로부터 해를 입은 운명이냐를 결정짓는다. 기술이란 전체적 삶의 전략이다. 기술이란 삶 그 자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싸움에서의 수법이 가지는 내면적 형식이다.(p14) <인간과 기술> 中


 슈펭글러가 '동역학(Dynamics)' 이라고 표현한 서구과학기술의 발달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결국 문명의 성격도 바뀌었다. 서구 문명이 발달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만나, 기독교라는 사상을 가지고 제국을 추구했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확인 할 수 있다.(유발 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를 참고) 슈펭글러는 서구 문명을  '파우스트적 욕망'으로 정의한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꽃피워낸 문명으로 규정하고, 이 문명은 인간이 속하는 자연(自然)을 점거하고 오염시키면서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고 결론 짓는데, 이는 주저 <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1918)의 결론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정신적 힘과 전리품에 대한 굶주림과 모험심을 가지고 13~14세기의 북부 승려들이 기술적-물리적 물제의 세계로 밀고 들어온다. 여기에는 중국, 인도, 고대 아랍의 학자들이 갖는, 실행에서 동떨어진 한가한 호기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여기에는 어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간단한 "이론"이나 어떤 모습을 담아 내려고 사변력을 발휘하는 일이 없다... 파우스트적 자연 과학, 오직 이것만이 그리스의 정역학과 아랍의 연금술과는 대조적으로 동역학인 것이다.(p64) <인간과 기술> 中

 

  정신적인 바이킹의 이동은 물밀듯이 이어진다. 화약과 인쇄술이 발명된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이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술적 절차 방법들이 잇따른다.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환경 세계로부터 비유기적 힘을 분리시켜서 동물과 인간 대신에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p67) <인간과 기술> 中


 요즘 2018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계는 '기술의 남미 축구'와 '힘과 높이의 유럽 축구'로 양분(兩分)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균형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으로 완전히 힘의 균형이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독일이 브라질을 7:1로 대파한 경기)라 생각된다. 


[사진] 2018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vs 아르헨티나(출처 : 더팩트)


 어제 벌어진 프랑스 VS 아르헨티나 경기는 4 : 3 프랑스 승리로 끝났다. 비록 프랑스의  한 점 차 승리 였지만, 게임 내용상으로는 프랑스가 압도적이었던 경기였고, 아르헨티나는 더이상 과거와 같은 강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메시의 모습에서 이제는 몰락한 몽골 기마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오랜 대립이 서구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력 = 군사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최근의 월드컵을 통해 '자본력 = 스포츠 파워'라는 냉정한 현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 가난한 남미의 여러 국가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식민 종주국들을 누르면서 쾌감을 느꼈다면, 이러한 한(恨)풀이가 더 이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천에서 용(龍)이 나는' 그런 인생 역전 드라마를 보기가 예전보다 어려워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여겨져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장마전선과 태풍의 북상(北上)으로 많은 비가 내린다. 우리의 현재 날씨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의 기상도를 봐야하는 것처럼, 한국사(韓國史) 역시 세계사(世界史)의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2018년 7월 1일 현재 기상도(출처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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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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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1 2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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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이 브라질을 크게 이긴 경기는 결승전이 아니라 4강전이에요.. ^^;;

겨울호랑이 2018-07-02 12:28   좋아요 0 | URL
아 그렇네요. cyrus님 말씀 듣고 수정했습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7-02 1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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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2: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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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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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4: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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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2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_^

겨울호랑이 2018-07-02 20:40   좋아요 2 | URL
혠님 감사합니다^^:)
 
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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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나드 맨더빌(Bernald Mandeville, 1670 ~ 1733)은 <꿀벌의 우화 The Fable of the bees>를 통해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과 연결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맨더빌은 먼저, 우화 속에서 비록 개인적으로는 사악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고, 법과 치안이 잘 유지되는 꿀벌들의 사회를 제시한다. 이러한 사악함 때문에 결국 꿀벌들은 신(神)의 노여움을 사서 미덕(美德)이라 불리는 '정직'을 사회 질서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후 꿀벌 사회의 풍요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이리하여 모든 구석이 다 악으로 가득한데

그래도 전체를 보면 낙원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을 존경하여

평화로울 땐 아첨하고 전쟁을 하면 두려워하니

돈과 삶이 풍족한 그곳은

모든 벌집의 으뜸이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축복이니

저들의 죄악이 저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었다.(155 - 162) (p104) <꿀벌의 우화> 中


 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은

비뚤어지고 해로운 몹쓸 악덕으로서

방탕이라고 하는 고상한 죄악에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177 - 182) (p106) <꿀벌의 우화> 中


 이렇게 악덕은 교모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하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197 - 203) (p106) <꿀벌의 우화> 中

 

  <꿀벌의 우화>의 부제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명제를 제시한 것일까. 저자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를 통해 개인의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pride, 이기심, 탐욕, 쾌락 등의 악덕 vice이 미덕  virtue보다 사회를 끌어갈 더 큰 동력을 제공하는 요인으로 해석한다. 이는 사람들은 본래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힘을 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욕망을 깨워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이 지닌 탁월함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열정이 빠진 몸뚱이는 바람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육중하게 서 있는 풍차나 매한가지다.(p158)... 그러나 검소하고 정직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가장 좋은 정책은 사람을 단순한 자연 상태 그대로 두고 사람 수가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없어도 되는 물건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지식을 높일만한 것은 다 치워서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p160)  <꿀벌의 우화> 中 

  

 위와 같은 맨더빌의 주장은 "개인의 악덕은, 솜씨 좋은 정치인이 잘 다룬다면(by the dextrous management of a skillful politician), 사회의 이득이 될수 있다" - 해제 中 -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맨더빌은 모든 개인이 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악덕을 행하는 주체는 지도층으로 한정된다. 지도층들은 '사치'를 하더라도 언제든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치(소비)를 통해 돈이 돌기 때문에, 지도층들의 악덕은 사회의 미덕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사치가 가장 지나치게 나타나는 것은 건물, 가구, 마차 그리고 옷이다. 그러나 깨끗한 옥양목을 입었다고 해서 무명을 입었을 때보다 사람이 약해지지는 않는다.(p150)... 전쟁의 고생과 피로를 몸으로 견뎌내는 일은 앞장설 사람들 몫인데, 이들은 나라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로서 사치가 말썽 부릴까봐 걱정해야 한다면, 그 걱정은 기껏해야 장교를 넘어서지 않는다.(p151)... 제 할 일을 하고 명예심을 충분히 갖춘 사람은 위험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언제나 능력있는 장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치는, 남의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제 돈을 쓰는 한, 절대로 나라에 해가 되지 않는다.(p155) <꿀벌의 우화> 中


 반면, 가난한 이들-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사치는 허용되지 않는 덕목이다. 이들은 평소 궂은 일을 하는 집단이며,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제공할 경우 일할 의욕이 감퇴되어 사회가 필요하는 노동이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는 검약이라는 사회적 미덕을 강조하고,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꾸준히 손을 써서 게으름을 줄여주면 강제하지 않고서도 가난한 이들을 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무식하게 키우면 고생을 고생으로 느끼지 않도록 단련시킬 수 있다. 그들을 무식하게 키운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들의 지식이 그들 하는 일 언저리를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그 한계를 넘도록 일부러 애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수단으로 채비하여 노동을 싸게 만들면, 틀림없이 다른 나라보다 싸게 팔 수 있으며, 우리 인구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이 무역에서 상대에 맞서는 멋지고 당당한 길이며, 다른 나라 사징에서 우리가 실력으로 이기는 길이다.(p207) <꿀벌의 우화> 中


 결국, 우리는 <꿀벌의 우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의 모습은 결국 '지배층의 악덕과 기득권의 이익'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배층의 사악한 행위가 사회에 유익한 반면, 기존의 미덕인 금욕 self- denial,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 등은 이제 가난한 이들이 지켜야 하는 덕목이라는 맨더빌의 도발적인 물음에 대해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했다. 그리고, 두 학자가 다른 분야에서 각각 응답하게 된다.


 경제학적으로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1776)을 통해서, 철학적으로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맨더빌의 주장을 반박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연민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통제하며 부강해질 수 있는가를 <국부론>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감성 뿐 아니라 오성(지성)의 역할을 제시하며, 맨더빌의 본능(욕망)에 대한 반론을 펼치고 있다.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이 <꿀벌의 우화>의 내용을 계승하거나 또는 비판하는 등 이 책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꿀벌의 우화>가 당대에 출판되었을 때, '사악한 책'이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는 누구나 알지만 결코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꿀벌의 우화> 가 과거가 아닌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 현대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 여겨진다. 


 과거 감춰졌던 수많은 사회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 당대의 석학(碩學)들의 물음과 대답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꿀벌의 우화>를 다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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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6: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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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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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6-2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도덕감정론을 밑줄을 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의 서재와 배경이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오래 사용해 왔는데 싫증이 나지 않고 여전히 좋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7 20:30   좋아요 1 | URL
^^:) 아 그러셨군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라 이번에 바꿨습니다. 배경색이 옅지만 질리지 않아 좋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별 다섯 개는 절대,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27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저 또한 공감합니다. 책 내용에는 저도 반대합니다만,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높게 평가가 되네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같은 느낌이랄까요 ㅋ 제 별점은 그런 의미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32   좋아요 1 | URL
히스 레저 연기에 별 다섯 개는 격하게 찬성합니다. ㅎ 연기가 정말 대단했구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나 스미스가 반론을 내도록 자극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 책의 논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단 점에서 전 이 책에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38   좋아요 0 | URL
네. 주류경제학계통인 신고전학파, 케인즈학파 모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보면,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 사상가임이 분명합니다^^:)

서니데이 2018-06-3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7월이 시작됩니다. 7월에는 기분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6-30 21:4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장마와 태풍이 함께 오는 비로 7월이 시작될 것 같네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반기 여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거대질량 2022-01-13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알짜 요약리뷰네요. 잘읽고갑니다.

2022-01-13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육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하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모의 과업이다. 그 시작은 출산 후가 아니라 배 속의 아이를 키우는 임신 기간부터다. 예비아빠의 역할은 부모가 되는 과정에 동참하며 엄마를 외롭게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p71)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가 다른 육아서와 구별되는 지점은 아빠 역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최근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에서는 적극적인 아빠의 참여가 표현되지만, 출산 단계에 있어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위치에 있는 엄마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책 본문에서 출산에 대한 어려움을 직접 나눌 수 없기에, 출산 시 ‘엄마 - 아기‘의 관계가 잘 설정될 수 있도록 보조자로서 아빠의 역할을 짚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부모가 되는 철학시리즈‘라는 제목에 맞게 게슈탈트 심리학, 볼비의 애착이론,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부모 역할에 대한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면서도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독자에게 육아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에 이러한 부분은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육아라는 현실은 이론처럼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부분을 책에서는 놓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결혼 10년차 남편, 7살 아이의 아빠가 되어 버렸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육아서에 나와 있는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고, 현실은 이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 교육과 심리학에 관한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수많은 이론과 ‘하지 말아야할‘ 주의 사항과 ‘해야 할‘ 당위성은 책을 읽고 덮어두자. 그리고, 아빠들이 아이였을 때 엄마, 아빠에게 느꼈던 아쉬웠던 부분을 아이가 느끼지 않도록 신경쓴다면 훌륭한 아빠까지는 못되어도, 좋은 아빠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서」는 아빠들에게 자신이 있어야할 지점을 지도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도의 그 지점으로 가는 것은 온전히 아빠의 몫이다...

좋은 아빠 육아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님께 감사말씀을 전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잘 읽었습니다^^:)

ps. [사진]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도 부모를 따라하기 마련입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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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8-06-26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자는 모습이 똑 닮았어요.
저희집도 이런 사진이 있었는데ㅎㅎㅎ
보기 좋아요.^^

겨울호랑이 2018-06-27 06:4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닮았나하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라 재밌어 올려봤습니다. ㅋ 꿈꾸는섬님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6-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아닌데도 겨울잠 자는 호랑이었습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8-06-27 09:20   좋아요 1 | URL
^^:) 네 몇 년 전 초여름날 낮잠 자는 모습입니다.ㅋㅋ 잘 땐 몰랐는데, 아내가 자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재밌다고 하네요. 잠자는 유전자의 힘이라고 할까요.ㅋㅋ

단발머리 2018-06-27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도 겨울호랑이님 사진과 완전 비슷한 사진의 ‘아버지-아들‘ 버전이 있거든요.
집집마다 이런 사진이 있나봐요.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찍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7 09:37   좋아요 0 | URL
^^:) 재밌는 사진을 보며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 저도 제가 찍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ㅋㅋ 그리고, 찍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단발머리님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6-2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트 2018-06-30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보기 좋은 사진이네요. 겨울호랑이님 글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30 23: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김유나리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AgalmA 2018-07-03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누가 누구를 지치게 했는지 모르겠는 현장 사진이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18-07-03 06:48   좋아요 1 | URL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치지 않았나 싶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