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사는 길고도 긴 밤이 끝나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밤이기보다 깊이 모르게 파여 내려간 계곡 이쪽 저쪽에 매어 놓은 동아줄을 타고 가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계곡 바닥에서는 용의 혓바닥 같은 지열이 솟아오르고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달려오고, 방금 보았던 광경이 긴 밤 저쪽에서, 긴 동아줄 저쪽에서 마치 서산 마루에 가라앉기 시작하는 불덩어리, 붉은 해같이 떠오른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혼합된 것이었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어우러짐, 그 광경은 혈흔같이 축소되기도 했고 시뻘건 탁류같이 확대되어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온통 붉은 빛, 미친 빛깔, 진홍의 제전 같은 것, 붉은 광무(狂舞)...... 밤은 가는데 어둠이 내려온다. 서서히 안개비가 내리듯이 어둠이, 정수리에서 발끝을 질러나가는 점막이, 모든 것이 정지된다. _ 박경리, <토지 20> , p562/608(4/29)


 <토지> 독서챌린지 40주차이자 마지막 페이퍼. 이번주 미션 주제는 '토지를 마무리하는 소감'이다. <토지 20>의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처럼 끝난다. '온화, 원망, 이끄시는 대로'의 꽃말을 갖는 해당화를 서희가 휘어잡으며 마무리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친일과 독립투쟁의 지원이라는 양면을 모두 갖는 서희 자신이 짊어졌던 삶의 고뇌가 끊어지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많은 인물들의 화해가 사람들간의 만남을 통해서 또는 관음상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산에 숨어든 사람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은 이어질 민족간의 대참상의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랐을까. 둑길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중 한 사람이 앞서가며, "일본이 항복했소!" 하고 외쳤다(p584)...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_ 박경리, <토지 20> , p586/608


 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氷河)와도 같이, 그리고 동천에 얼어붙은 달과도 같이, 물론 봄의 환희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縱]과 자리[橫], 혹은 공간이라는 엄연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_ 박경리, <토지 20> , p342/608


  <토지>를 읽으며 계속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월선의 죽음과 간도로부터 돌아오는 옛 평사리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토지 2부와 진주로 돌아온 이후 이야기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었다. 2부 이전과 3부 이후에서 느껴지는 작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평사리에서 간도로 이주해서 다시 진주로 돌아오는 2부에서는 공간적인 이동이 주된 흐름이라면, 3부 이후에서는 일제 하에서 시간적 흐름이 강조된다. 또한 2부에서는 공간적 이동 속에 개인 감정과 행동이 미시적으로 보여진다면, 3부 이후에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개인의 존재는 작아지는대신 새로운 주체로서 민족,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일본 문화에 대한 비판 등의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2부와 3부 사이에 갈라진 '틈'을 발견한다. 결코 작지 않은 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을 수 있다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그 무엇이 있을까?


 천수를 다하고 간 늙은이 죽음이 뭐 그리 애절할 리도 없고 가족을 제외하고, 영팔노인으로서는 동료들을 다 먼저 보낸 처지인 만큼 인연 맺은 사람도 드문 터에, 더더구나 애통해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누구의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를, 땅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목숨의 명운을 너 나 할 것 없이 생각하며 말없이, 더러 떠드는 사람이 있어도 그 음성은 공허하게 텅 빈 것만 같은 산속에서 울리다간 사라진다. _ 박경리, <토지 20> , p408/608


 이에 대한 하나의 답(答)을 <토지> 독서챌린지 직전에 이뤄진 작품 해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해설 후 Q&A 시간에 김연숙 교수는 (여러 답이 있겠지만) 자신은 '인간(人間)'이라는 답을 주셨다. 토지에 등장하는 600여 명의 사람들이 각기 저마다의 생각과 행동으로 <토지>의 전반을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내고 있기에 <토지>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라는 설명이었다. 개인적으로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었다.


 이를 받아들여,  <토지>의 구도에서 시간을 '하늘(天)'로, 공간을 '땅(地)'으로 치환한다면, 그 사이 인간이 있는 구도가 될 것이다. 천/지/인이 만드는 작품 세계. 이것이 <토지>의 세계일까. 더 나아가 이로부터 건(乾)괘와 곤(坤)괴로 시작하는 <주역(周易)>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 만물의 근원인 하늘과 땅의 힘들이 인간들에게 작용해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나머지 62괘에 대응하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런지.  그렇게 본다면, <토지>를 <역易>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반드시 이러한 관점과 맞는 것은 아니지만, <토지> 해설서 중 하나는 음(陰)과 양(陽)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법도 있음을 알려준다. 


 <역 易>은 건괘와 곤괘로부터 시작한다. 건괘와 곤괘 그리고 나머지 62괘. 총 64괘다... 건곤은 <역> 이라는 책으로 들어가는 문이면서 동시에 '변화'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건곤은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힘이다. 정이천은 건괘에서 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건은 천天이다. 천은 하늘의 형체를 말하는 것이고, 건은 하늘의 성질이다. 건이란 강건함이니, 강건하여 쉼이 없는 것을 건이라고 한다."... 하늘이 기능하는 성질이 건乾이며 건建 이다. 그렇다면 땅이 기능하는 성질이 곤坤이고 순順이다. 그러므로 건곤이란 천지라는 우주가 작용하는 힘과 기능이다. 이 두 가지 힘이 천지만물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건곤은 전체 생명의 궁극적 근원으로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란 뜻이다. 동시에 건곤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대립적인 개념쌍이기도 하다. _ 정이천, <주역 역전> , p18 범례


 <토지>의 경우, 외적 행동과 대비되는 말씀과 대화와 지적 담론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사고가 치밀하게 형상화에 작용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작품은 1부에서 가장 행동이 치열하고 2부에 이르면 그 정도가 완화되며 3부에서는 사건들이 분산된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1부와 2부의 사건 전개에서 말씀과 대화는 하나의 초점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이에 비해 4부와 5부에서 말씀과 대화는 왕성하게 펼쳐지고 하나로 통일되며 행동의 측면은 약화된다. 행동과 말씀이 서로 간에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 나면서, 또는 태극의 음양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이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쪽이 약화되고 다른 쪽이 강화되면 반대쪽이 약화되면서 작품이 진행되는 것이다. _ 최유찬, <박경리의 <토지> 읽기> , p135


 겨우 1번 읽은 것으로 작품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응로 여겨진다. 여태까지 읽은 <토지>가 완독(完讀)에 치중했기에 큰 흐름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부분, 작품 안에 담긴 여러 소주제에 대한 고민은 독서 챌린지를 마무리하는 지금 아쉽게 느껴진다. 이에 대해서는 틈틈히 보완하는 것으로 하고, 10개월에 걸친 독서 챌린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생생지위역 生生之謂易.


 역易에 최종적인 끝과 완성은 없다.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다 終則有始". 그래서 마지막 64번째 괘가 미제(未濟)다.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혹은 '아직 다스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제가 곧 미제인 것이다.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미완성이다. 끝일아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처음의 건곤으로 돌아가 새로운 창조와 실천으로 혁신해야 한다. 건곤은 모든 변화와 생성을 일으키는 시초다. 역에는 완성과 종말이 없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다시 생성하는 역동적인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_ 정이천, <주역 역전> , p18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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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01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10개월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토지를 읽으셨네요. 읽어 내시는것도 힘든데 거기에다 챌린지로 글도 쓰셔야하는 여정인데도 아주 입체적인 책읽기를 계속 하신 겨울호랑이님!
그동안 수고하셨고 좋은 글 많이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1 14:40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매주 과제에 강제로 끌려왔네요 .덕분에 겨우 읽었습니다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다만, 부족함을 알게된 것을 소득이라 한다면 더 채우도록 과제를 부여받은 독서챌린지였다고 정리하게 됩니다. 참 갈길이 멉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2-05-01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 주역을 어설프게 어슴푸레 알게 되었는데요, 알수록 참 매력있는 사상인 것 같습니다. ㅎㅎ
서양 사상보다 훨 깊은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5-01 16:10   좋아요 1 | URL
저도 잘 알지 못하니 참 조심스럽습니다만, 철학이라는 부분에 한정해서 본다면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서양에 전래된 주역이 이진법과 같은 부분으로 서양과학에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부분이 컴퓨터, 파동이론, 양자학까지 확장/연결된다고 본다면 (그래서, 서양철학+서양과학 vs 동양철학 구도로 본다면) 쉽게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2-05-01 17:40   좋아요 1 | URL
괘가 서양 이진법의 기원이군요. ^^
그런거 같습니다. 괘가 웬지 모르스 부호를 닮았습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2-05-01 17:43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과거 문명교류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남아 있는 듯 합니다.^^:)

mini74 2022-05-0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주라니 대단하세요. 토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군요. 겨울호랑이님이 소개하신 인간이란 주제, 음양의 주역, 재미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더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2-05-01 17: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토지를 읽은 사람들만큼 해석의 길이 저마다 다를 것 같아요. 또, 같은 사람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분명 시선이 멈춰지는 부분이 다를 것 같네요. 그런 면에서 토지는 분명 여러 번 읽을 작품이라는 생각을 이번 독서 챌린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 294권을 마치며 간략하게나마 이를 정리한다. 전국시대부터 5대 10국까지의 1300여년 시기동안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끊임없이 분열과 통합을 반복해온 중국의 역사에는 일관되는 사람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이를 바라보는 수많은 평론가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사가가 처한 현실이 과거와 같지 않기에 다른 인과의 끈으로 구슬을 엮고, 목걸이를 만든다는 교훈. 


 역사를 과거에 대한 현재의 재해석으로 바라보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E.H. 카의 저서 속에서 이미 확인한 사실이지만, 이번 <자치통감>을 읽으며 우리가 만나는 과거가 하나의 과거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독자가 살아가는 현대사가 아닌 다음에야 저자의 사관(史觀)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통역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양자는 한비자를 군자로 보고 있어서 그가 뜻을 가지고 있으면 되었지 받아들여지고 아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사마광은 한(韓)나라 사람으로 진(秦)을 위해 정책을 제시한 점을 몹시 나쁘게 보고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한비자와 몽념에 대한 평가에서 사마광은 한비자는 충성심이 없다고 비판하고, 몽념은 의롭다고 칭찬한데 대해 양자는 한비자는 능력있는 사람이고, 몽념은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평론하여 각기 보는 시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마광이 역사를 보는 시각은 도덕적 시각, 특히 유가적(儒家的)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_ 권중달, <자치통감전> , p375/957


 <자치통감>의 저술은 사마광이 역사를 좋아했다는 사실 말고도 정치적 목표와 황제를 교육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p407)...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편찬하려는 이유는 철저하게 '제왕을 위한 책'을 만들려는 것이다. 제왕은 시간이 없어 긴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제왕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하는데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싣겠다는 것이다. _ 권중달, <자치통감전> , p410/957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a contin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는 것이다.'(p50)



 여기에 더해 독자가 처한 현실 역시 유동적이기에 '역사적 현실 - 해석된 과거 - 읽는 현재'라는 3개의 역사축(軸)은 끊임없이 회전하며 또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자치통감> 마지막 글을 읽으며, 어제 대통령 인수위의 소상공인 손실보상 공약 파기 뉴스가 떠오른다. 이와함께, 파기된 손실보상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함께 느낀다...


 회남에 기근이 들어서 황상이 쌀을 그들에게 대여하라고 명령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백성들은 가난하여 아마도 갚을 수 없을까 걱적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백성은 나의 자식인데 어찌 아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아버지가 그들을 위하여 풀어주지 않겠는가? 어찌 그들에게 반드시 갚으라고 책임 지우려는데 있겠는가? _ 사마광, <자치통감 294>, 中

 관련기사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40849.html


PS. 역사서를 거치지 않고 현실의 역사를 체감하는 상황이 우리가 진실을 접한다는 사실을 보장할 수 있을까. 사실의 왜곡과 편향된 사실의 조명 그리고 이를 천명(天命)으로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기제들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가깝다'가 '진실과 맞닿아 있다'와는 다름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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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9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작업을 끝내신건가요^^ PS에 덧붙인 글까지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전 글까지 짬짬이 읽어볼 참이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29 09: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일단 읽긴 했는데, 읽고 나니 큰 줄기와 부족함만 남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한 기전체 역사서를 다시 들여다 보며 조금은 그 줄기에 살을 붙여볼까 싶습니다. 거리의화가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다수는 집단]과 [기관은 사람]이라는 이 두 개념적 은유는 세계의 많은 지역에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많은 경우 법으로도 인정받았다. 로마법은 특정한 상업 기관과 종교 기관들을 목표, 자원, 기능, 책임, 특권 등 인간적 속성을 갖는 기관으로 인정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기관에 은유적으로 이런 인간적 속성을 부여한다. _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p219/446


 기업(企業)은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인격(人格)을 부여받고 회사법에 따라 법인(法人)으로 등록되고, 세금 납부 등 경제활동을 한다. 세금을 내지만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는 정치적인 인격은 부여받지 못한 법인은 투표권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 이렇게 본다면, 불공평하게 보이지만, 이들은 '후원'이라는 행사를 통해 선거에 자신의 이익을 '공약(公約)'으로 보장받고, 정치인을 키울 수 있으며, 여론을 형성할 막대한 힘을 갖는다. 우리의 '소신투표'가 잘 짜여진 프레임의 '추천권'에 의해 결정되는 의도적인 결과로 흐르는 것이 일상화된 오늘날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 1971 ~ ) 의 트위터 인수가 단순한 기업 인수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때, 일반인들에게 유용한 경제/경영 정보를 제공하던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어느 순간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삼성 경영 승계 도구로 전락했던 것처럼, 머스크 인수 후 비상장 전환 예정인 트위터가 극우들의 놀이터나 암호화폐 교환소로 전락하지 않길 바라게 된다...


 관련기사 :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61116348



 비록 기업이 여론조사나 투표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그 주주들이 자유로이 발언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업은 '사람'으로서 자유로이 발언할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은유, 즉 [발언은 돈(Speech as Money)]이 선거에 관여하기에 이르렀다. 후보자(진짜 사람)가 아니라 기업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지지하면서 말이다. 이는 '시민연합'을 향한 하나의 움직임이었다(p226).... 기업은 광범위한 측면에서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_ 조지 레이코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p23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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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6-09 0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6-09 05:38   좋아요 0 | URL
종이달님 감사합니다
 

  맑스가 제기했던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가치라는 세가지 핵심개념은 근본적으로 서도 다른 시간과 공간의 차원들과 각각 관련되어 있다. 사용가치는 사물의 물리적인 물적 세계 속에 존재하고 이 세계는 절대적 공간과 시간이라는 뉴턴과 데까르트의 개념들로 묘사될 수 있다. 교환가치는 상품들이 움직이고 교환되는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고, 가치는 이와 달리 오로지 세계시장이라는 관계적인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맑스가 이미 확실하게 보여준 것처럼 가치는 교환가치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교환가치는 사용가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세 개념은 변증법적으로 서로 통합되어 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의 세 형태(즉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형태)도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지리적 동학(動學, dynamics) 내에서 변증법적으로 서로 관계되어 있다. 이것이 지리학자로서의 나의 주장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78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1935 ~ )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A Companion to Marx's Capital>가 다른 <자본 Das Kapital> 입문서와 가장 차별화된 부분은 '운동성(運動性)을 중심으로 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다른 입문서들이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운동'을 빼놓지는 않지만, 하비는 자신의 강의의 중심을 '운동'에 놓는다. 다른 입문서들이 일반적으로 '절대성'과 '상대성', '질(質)'과 '양(量)', '개별'과 '특수'라는 정(靜)적인 용어 해설에 치중하는 반면. 지리학자인 하비가 선택한 시공간(space-time)상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상황에서 모순을 발견한다는 방식은 보다 독자들에게 역사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맑스의 변증법은 모순의 끊임없는 확대만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맑스의 변증법을 하나의 완결된 분석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용납하기 어렵다. 그의 변증법은 완결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서 그는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잇는 것이다. <자본>을 읽어나갈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앞에서 이미 읽은 내용만을 토대로 재음미해야 한다. <자본>에서 논의가 전개되는 방식은 모순의 영역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확대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에서 왜 그렇게 많은 내용들이 반복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유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123


 <자본>에서는 여러 모순적 상황이 제기된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동적인 구조를 통한 하비의 설명은  현 단계의 모순이 앞 단계에서 모순의 연결상에 있음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독자들은 매단계마다 계속 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차단막과 같은 '모순'속에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 없다는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된다. 이것이 하비의 설명이 다른 입문서와 구별되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하비는 자신의 <자본 강의>에서 이러한 모순을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 赤弊物神性)'의 개념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은폐된 사실 관계를 밝혀나간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지만, 반면 이러한 역동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개념 및 용어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하기에 개인적으로 하비의 이 책은 <자본>을 읽은 후 들여다 본다면 더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권 <교환의 세계>와 관련하여 화폐의 물신성 등의 개념을 잠시 정리해본다...


  물신성 개념은 그의 논의 속에서 경제체제의 중요한 성격이 "이율배반"과 "모순"을 통해 은폐되고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방식의 서술을 통해 이미 예고되어 있다(p78)... 여러분은 상추를 구매하기 위해 그것을 생산한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극도로 복잡한 교환체계 속에서 그 노동이나 노동자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것이 곧 세계시장에서 물신성이 불가피한 이유다. 최종 결론은 다른 사람의 노동활동과 우리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물적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은폐된다는 것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82


 제2권의 처음 세장을 다루면서 나는 화폐, 생산, 상품이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창을 통해 자본유통과정을 살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요점은 분명하다. 즉 서로 다른 순환들이 서로 얽혀 한데 어우러지고 끊임없이 서로 관계하며 운동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운동은 다른 것들의 운동을 위한 조건을 이룬다.... 총괄해서 보면 "과정의 모든 전제가 과정의 결과[즉 과정 스스로가 만들어낸 전제]로 나타난다. 모든 계기는 제각기 출발점, 통과점, 귀착점으로 나타난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 p113


 맑스는 상업자본과 생산자본의 활동이 서로 뒤엉키면서 얼마나 쉽게 물신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신랄한 논평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재생산의 총과정에 대한 피상적이고 전도된 모든 견해들은 상인자본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 p271


 경제는 얼핏보면 생상과 소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완수되고 파괴되며, 생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소비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정말로 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 사이에 세번째의 세계가 끼어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교환의 세계이며 달리 말하자면 시장경제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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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는 일본에 극악상태였다. 작년 7월에 괜찮다, 끄떡없다, 걱정 말라 하고 말해오던 사이판섬의 일본군은 전멸했고 유황도(硫黃島) 오키나와(沖繩)를 내어놓는 것은 시간문제로 박두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도조 같은 미치광이 과대망상증환자가 물러선 것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도 있겠다. 본토결전을 외치며 일본 국민 전원의 옥쇄 감행의 위험은 다소나마 엷어졌다 할 수도 있겠고 어딘가 구멍을 찾아내어 구명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바늘귀 떨어진 것만큼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군부의 미치광이들이 어떻게 누비고 지나갈 것인가, 고이소나 요나이도 군인, 칼은 칼로써 망한다는 이치를 말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움일 뿐이며 식민지 조선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 그들 국민 자체가 불운이며 불행이다. _ 박경리, <토지 20> , p263/510 (4/22)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 주제는 '내 마음대로 결말을 예상해본다면?'이다. 독서 챌린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쉽지 않은 주제라 고민하지만, 나름 전체적인 틀을 잡고 인물 배치를 해보려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사이판 함락이 1944년 7월이었고, 현재 시점은 1945년 8월 이전의 어느 날, 머지않아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는 기대와 불안감이 한껏 고조된 상황이다. 그리고, 곧 맞이할 해방에 서로 다른 처지에서 해방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논의의 주제는 마침내 한반도로 옮겨갔다. 루스벨트는 비공개 석상에서, 조선의 신탁통치에 영국의 동참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요청하지 않으면 처칠이 몹시 분개할지 모른다고 대꾸했다. "영국은 틀림없이 불쾌해할 것이오." 스탈린은 이를 드러내고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칠이 우릴 죽이려들지도 모르지요." 루스벨트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스탈린은 영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데 동의한다면서 유쾌하게 말했다. _ 톰 홀랜드, <일본 제국 패망사> , p886/1261


 해방 직전의 전세는 일본에 현저하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일전쟁에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고, 동남아 전선에서는 남태평양 여러 곳에서 고립된 일본군들이 죽어가고 있었으며, 만주 지역의 관동군들은 다른 전선으로 이미 빠져 나간 상황이었다. B-29 등장 이후 일본 본토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하게 황폐화되었고, 이는 식민지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본 패방으로 막을 내리는 <토지>의 마무리는 해방 이후의 혼란상과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이후 민족 분단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희와 길상의 아들들인 최환국과 최윤국의 인생을 대비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양현까지 포함해서 이들을 각각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로 표현해 보면 어떨까.


 미술 선생을 한 최환국은 윤국의 학병 지원 이후 최씨 집안의 당주로서 민족주의자로서 지방에 자리를 잡지만, 최윤국은 군대에서 충칭 지역 전선에 투입된 후 중국군에 포로로 잡혀 마오저뚱 휘하 팔로군 부대에 배속되고, 해방 이후 조선의용군의 한 명으로 북측으로 돌아오고, 한국전쟁으로 남으로 내려오게 된다. 양현은 고향에서 병원 개업 후 공산주의자로 변한 윤국과 대립하는 환국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끼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길상은 일본 패망 이후 석방되어 아들 환국과 함께 지내지만, 아들 환국이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어 종교적, 예술적으로 갈등을 겪는다. 서희는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늙어간다.

 

 산으로 들어갔던 산 사람들과 이범호는 해방 이후 남조선노동당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리산으로 들어가 남부군으로 지내며, 일본에서 살던 찬하 부부와 쇼지는 해방 이후 조용히 살 계획을 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 4.3을 맞는다. 명희는 사학 재단을 설립해서 학교를 만들고, 명빈과 함께 운영하며 노후를 보낸다. 홍이와 인실은 모두 만주에서 해방을 맞지만, 국공 내전을 겪으며 홍이는 대만으로 이주하고 인실은 중국 본토에 남는다... 대략 이런 구도로 큰 이야기 틀을 잡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면 어떨까. 다만, 여기서 한 인물이 남는데 이에 대한 배치가 쉽지 않다. 김거복이다.


 그의 친일 행적을 생각하면, 남은 자산을 정리하고 히로시마로 넘어가 피폭 당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싶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현실적이라면, 아들을 목사로 만들고 개신교 계 신문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로 가야할까, 그리고, 등장인물 자녀 중 한 명을 사법고시를 패스시켜야 하는데 누구로 할지도 아직은 미정이다. 만약 작품을 이정도 선에서 마무리짓는다면, <토지> 6부를 시작하더라도 큰 무리없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독서 챌린지 주제라 두서 없이 뒷이야기를 만들어 보았으나, 이야기가 너무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이미 있는 인물들을 역사적 흐름에 세워 놓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새로운 작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이번 챌린지를 통해 실감한다. 부족한 상상력을 보완한 책들을 마지막에 실으며, 이번주 독서 챌린지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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