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논리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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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전환의 시대는 언제일까. 저자는 전환의 시기를 1961 - 1966년으로 지정(p338)하는데, 이 시대는 유엔에서의 미국 지배력이 상실되고 다수의 중립국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씌여진 이 책은 베트남 전쟁, 중공(현 중국)의 부상, 경제대국 일본의 정치대국 야심을 배경으로 하기에 여러 상황에서 현재의 정세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 안에서 변함없는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언어 言語'다.


 '절대로 잘못 해석될 수 없으리라고 그들이 진지하게 믿었던 용어'로 분명히 씌어진 헌법조항을 견강부회하려는 세력에 의해서 국가의 비극이 초래된 사례들을 생각할 때 '용어 그대로 생각하자'는 헌법해석의 태도가 국가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척도이어야 하겠다.(p1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일그러진 언어로 전달되는 사상은 일그러진 사상을 그 커뮤니케이션의 상대에게 재구성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사각형을 보고 삼각형이라는 표면의 언어로 전달된 사상이 상대방에게 삼각형의 형상을 재구성케 하는 절차이다. 사각형을 놓고 삼각형의, 또는 원을 놓고 직선의 관념을 국민에게 재구성케 하려는 의도는 현대 국가사회에서는 주로 통치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있다.(p206)  <전환시대의 논리> 中


 저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일그러진 언어로 표현된 비뚤어진 사상이 그릇된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한 언론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대의 표상(表象)은 분명히 변환되어 왔지만, 이 시대를 관통하는 '논리 論理'는 현재도 유효하다는 것을 <전환시대의 논리>는 잘 보여준다. 


 국가이익을 해치고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미국정부가 공개하기를 반대한 그 비밀문서를 숙독해보면 그것이 공개됨으로써 타격을 입는 것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와 정책에 참여한 인물들의 위신과 체면뿐임을 알 수 있다.(p28)  <전환시대의 논리> 中


 사법부의 독립성을 믿을 수 없는 나라 같았으면 신문은 처음부터 그와같은 대담한 폭로기사를 보도할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법의 판단에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 같았으면 그와같은 행정권력의 페어플레이 정신과 사법부의 독립성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p15)  <전환시대의 논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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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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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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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지식인마을 3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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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리성과 일관성을 통해 사물의 내적 원리를 인식하는 능력인 이성(理性, logos)는 본래 개인의 정신적 자질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특정 역사적 시기에 지배적 정신의 위치에 오르면서 그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차원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서구의 근대라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성은 지배적 집단 정신이 되어 정치/사회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p29)... 계몽의 힘,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성의 힘은 단순히 자연과 사회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이끈 실천력으로 이해해야 한다.(p76)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의 주제는 이성(理性)이다. 그리고, 책에서는 이성의 역할을 둘러싼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근대 이성의 어두운 측면을 바라본 푸코와 근대 이성의 밝은 면을 바라본 하버마스. 푸코가 중세의 신을 부정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뒤를 이어 근대의 이성을 부정했다면, 하버마스는 공론장에서 이성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을 강조한다. 


 푸코에게 서구의 근대 이성은 과학적 진리의 이름으로 비이성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은 물리력이 아니라 지식을 매개로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졌다. 푸코는 서구 근대 사회가 정신병과 미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파헤쳤다. 지식의 정치적 힘은 '지식=진리'라는 등식에 기초한다. 푸코는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서구 근대의 지식이 진리와 얼머나 거리가 먼가를, 그리고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그 지식이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얼마나 정교하게 통제하는가를 제시해주었다.(p208)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 이성이 본래 해방적 힘을 발휘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8세기 서유럽 부르주아 공론장을 그에 대한 적절한 역사적 사례로 본다. 문제는 그 해방적 힘이 특정한 역사적 국면 속에서 가라앉아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해방적 힘이 간직되어 있는 영역 속에서 이성의 잠재력을 현실화해야 한다.(p209)

 

  그렇다면, 이들의 다른 상황인식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푸코 & 하버마스>안 에서 우리는 언어에 대한 이들의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하게 된다. 통제 규칙의 전달자로서의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언어. 언어에 대한 이들의 입장차이는 이성에 대한 이들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담론의 질서>에서 인간의 언어 행위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통제 규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식의 고고학>에서 지식은 역사적 연속성 위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단절과 불연속 위에서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그는 인간의 주체성 subjectivity을 부정하는 구조주의적 사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시각을 '고고학'으로 명명했다.(p98)


 하버마스에게 언어는 사물을 표상하는 도구가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타인과 관계 맺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물이었다.(p153)... 하버마스는 서구 근대 사회를 이끈 이성이 과연 부정적인 모습만을 지니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 사회를 관통하는 원리로서 이성의 폭력적, 지배적 속성을 폭로하는 반근대주의, 반이성주의 사상가들에 맞서 하버마스는 서구의 근대가 간직하고 있는 만주주의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p165)


 사실, 푸코와 하버마스 모두 일가를 이룬 철학자이기에 그 방대한 사상을 요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는 <푸코 & 하버마스>가 입문서라는 점을 감안하고, 또 이들 사상가의 차이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푸코는 담론과 언표라는 두 개념을 언어 영역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적 공간에 위치시킨다. 푸코에게 문제는 이러한 언어가 자리한 공간이 우리에게 통제와 감시를 하는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것에 있으며, 푸코에게 판옵티콘은 바로 이성으로 대표되는 근대라 할 수 있다. 


  푸코에게 근대는 진보의 증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근대 서구인들이 얼마나 간교하고 모순적인 정치적 욕망의 덩어리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였다. 근대는 정신병을 제조해내고, 사체를 난도질하고, 성적 욕망의 도덕적 표준을 정립하고, 육체의 감시 장치를 발명해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던 근대는 통제와 억압과 폭력 위에 설립된 건축물이라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었다.(p90)


 <지식의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념은 지식을 구체적인 계기들인 담론 談論 dscours과 언표 言表 enonce다. 언어학적 차원에서 언표는 말이나 글로 표현된 진술을 의미하고, 담론은 그러한 언표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푸코는 담론과 언표를 언어학적 영역 바깥으로 끌어내서 사회적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p134)


 여기에 덧붙이자면, 언표가 언어 바깥에서 이해할 때만 제대로 규명될 수 있다는 푸코의 말은 괴델(Kurt Godel, 1906 ~ 1978)의 불완전성 정리로 뒷받침될 수 있을 것다. 근대를 부정하는 푸코의 이론을 근대의 산물인 수학이 뒷받침하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괴델의 두 번째 불완전성 정리는 "이론은 자신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순인 공리계 T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것이 무모순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괴델은 T가 무모순이면,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수론의 문장으로 부호화했을 때) T로부터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따라서 "T가 무모순이다"라는 문장은 참이면서도 증명불가능한 문장이다.(p259) <Mathematics 2> 中


 반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언어의 기능을 한정시켜 놓는다면, 언어는 사회구조의 강압수단이 아닌 수평 관계를 다지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버마스는 근대 부르주아(bourgeois) 계급 형성과정에서 일어난 정치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난 한 단면에 주목한다. 개인들의 친목모임에서 공론의 장으로, 예술에서 정치의 장으로 확장되는 역사 속의 공론장 모습을 통해 다른 의미의 미메시스가 발견된다.


 하버마스는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메시스 mimesis'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개념적 사유에 대비되는 일종의 충동적 체험을 뜻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주변 세계 속으로 몰입시켜 자신과 주변의 경계와 구분이 해체되는 상태, 즉 물아일체 物我一體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행위들을 통해 서구 근대 사회에서 초래된 주체와 객체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갈등적 심연을 해소하기를 소망했다. 하버마스는 주체/객체 관계를 '주체/주체' 관계로 전환시키기보다는 그 둘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해체하는 힘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p182) 


 부르주아 공론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적 사안들을 논의하는 부르주아 사회의 토론 공간을 뜻한다. 애초에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공간으로 시작된 부르주아 공론장은 점차 국가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이 조성되는 정치적 공간으로 진화해나갔다.(p186)... 부르주아 공론장은 공권력 영역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 속한다. 그것은 곧 부르주아 공론장이 사적인 삶이라는 이해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공론장은 사적 영역 내의 경계가 보여주고 있듯이 단순히 가족적 삶과 경제적 삶으로 매몰되지 않는다. 부르주아 사회의 사적 개인들은 공론장을 통해 공권력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을 주조해내는 '공중'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부르주아는 사적 개인임과 동시에 공중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매우 독특한 정치적 위상을 지닌 부르주아 공론장에는 사실상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p196)


 영화 <스타워즈 Starwars>에서 포스의 어두운 면(Darkside of the Force)과 밝은 면(Lightside of the Force)이 나온다. 다스 베이더(Darth Vader)와 아나킨 스카이워커(Anakin Skywalker)로 표현되는 포스의 양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진정한 포스의 본질(本質)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성의 어두운 면을 바라본 푸코와 밝은 면을 바라본 하버마스 중 누구의 시각이 옳은 것일까. 


[그림] Darth Vader/Anakin Skywalker(출처 : https://www.planetminecraft.com/skin/darth-vader-anakin-skywalker-4358471/)


 섣부르게 답을 하기전, 우리가 근대와 이성을 바로 보는 것은 이들 양면을 종합해서 이해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종합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을 위해 이정도로 틀만 잡아놓고 입문서는 이만 덮도록 하자...


PS.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의 다른 예. 오늘 아침 주차장에 있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나서 실을 짐이 있어 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른쪽 라이트가 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자동차 안 운전석에 있을 때는 자동차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자동차 밖에 있어서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론(자동차)은 자신의 무모순성(라이트가 꺼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불완전성 정리를 대강 이렇게 받아들이면 무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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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지식인마을 37
김선희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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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펜하우어를 괴롭혔던 중심 물음은 삶의 고통, 즉 '삶은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가?'였다. 그리고 이 물음에 천착한 끝에 그가 발견한 고통의 근원은 의지로 대변되는 의욕과 성욕이었다. 반면에 니체를 괴롭혔던 물음은 '우리 삶의 데카당스 decadence나 허무주의는 어디서 왔는가?'로 대변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존재와 고통의 발생에 대한 물음과 더불어 인류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순간에 사용한 다양한 삶의 기예에 대한 물음이었다.(p17)


 <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와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 입문서로서 '존재'와 '고통'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 사상의 차이점을 살펴본다. 


 쇼펜하우어에 있어서 직관적 표상은 세계의 근거나 고통의 근거에 대한 물음의 답을 표상에서 의지로 이행시키는 열쇠 개념이다. 쇼펜하우어가 표상의 근거를 직관에서 빼앗고 직관의 근거를 육체 Leibd에서 찾고, 육체를 의지와 불가분의 것으로 보는 까닭에 고통의 해석학의 중심축을 표상론에서 의지론으로 이행한다... 모든 표상은 의지의 객관화에 불과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현상들, 즉 표상들의 배후에는 바로 의지가 존재한다. 세계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충족 이유율의 탐구는 바로 의지에 대한 탐구로 집중된다.(p63)... 삶에 대한 의지의 긍정은 바로 성욕을 충족시키는 생식에 의하여 가장 잘 강화된다.(p68)


 쇼펜하우어에게 현상계와 본체계는 다른 세계가 아닌 다르게 경혐되는 같은 세계이며, '의지'와 '표상'이라는 두 측면을 갖춘 하나의 세계다. 표상은 외부에서 관찰되고, 의지는 내부에서 경험된다. 때문에 고통의 원인 역시 외부에서 내부로 이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의지는 기본적인 욕구(성욕) 뒤에 숨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욕구를 해소하려 하지만 탄타로스(Tantalos)의 형벌처럼 기아와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다.


[그림] 탄타로스의 형벌(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426434658452495973/)


 동물 세계의 의지는 인식적이다. 그러나 이때 인식은 의지에 의해서 지배되는 의지의 노예인 인식과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인식으로 구분된다. 후자는 인간이 의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즉 인과율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한 수단을 쇼펜하우어는 바로 예술 Kunst과 이념 idee에 대한 인식에서 찾는다.(p65)... 의지가 강할수록 노/병/사와 같은 실존의 결여적 속성은 더 강한 고통을 야기한다.(p83)...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을 통한 치료적 해석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부각된다. 이 지점이 바로 표상과 의지의 노예인 인간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곳이다.(p89) 


 의지와 인식의 접목 지점은 의지의 사실적 긍정에서 의지의 당위적 부정으로 이행하는 지점이다. 의지의 노예에 불과했던 오성이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성을 넘어서는 예술과 정관에 의한 이념의 인식이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이 차원에서 표상과 의지에 의한 염세주의적 해석이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을 통한 낙관주의적 해석으로 바뀌는 것이다.(p79)


 쇼펜하우어의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 낙관적인 해석으로 이어진다는 그 지점에서 니체의 사상은 출발한다.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odie>에서 말한 디오니소스과 아폴론의 대립은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아폴론적인 요소의 승리가 그리스 문화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을 초기 니체는 주장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광기가 그리스 땅에 가져다준 풍요로움의 산물로 본다. 반면에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그리스의 심미적 명랑함이나 학문적 낙천주의를 그리스의 해체와 약화의 시기에 등장한 병적인 증후라고 여긴다.(p139)...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의 발전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적인 결합 속에서 찾는다.(p140)... 예술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지배하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대립 대신에 디오니소스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이 새로이 등장하고 마침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이르러서 소크라테스의 유령이 승리함으로써 그리스 비극의 디오니소스적 요소는 소멸된다. 이와 같은 역전은 바로 그리스인들의 삶의 몰락을 의미한다.(p152)


 이러한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 니체는 '계보학 系譜學'의 측면이 더해지면서, 문화/예술의 가치전환을 확장시켜 나간다. <도덕의 계보학 Zur Genealogie der Moral: Eine Streitschrift>으로 대표되는 니체 사상은 이제 플라톤/소크라테스 비판에서 기독교 비판으로 방향을 전환된다. 


 니체는 학문 그리고 예술과 관련하여 그것이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적 문제 설정임을 명시한다... 따라서 비판의 대상도 더 이상 소크라테스적 주지주의의 인식론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기독교의 도덕으로 이행한다.(p178)...  니체의 가치 전환은 계보학적 수단을 통하여 순간적인 가능성에 한정되어 있는 음악이나 직관과 같은 비역사적인 수단을 통한 가치 전환에 비하여, 지속적인 가치 전환의 길을 제시한다. 즉 계보학적 성찰은 시간적/공간적으로 각인된 물질화된 과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p181)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유령과 기독교의 도덕을 넘어선 초인(超人)을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말한다. 강인한 낙타에서 자유로운 사자로, 다시 창의적인 어린이가 되면서 제약을 넘어선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모습을 가진다. 


 디오니소스적 예술가라는 개념은 니체의 예술론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개념을 통하여 니체는 더 이상 망각을 재촉하는 도취나 꿈 그리고 기존의 도덕에 반기만을 드는 파괴적인 사자를 내세우는 대신에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하려는 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기예를 제시한다.(p160)... 정신은 사자의 단계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사자는 단지 자유를 쟁취하는 자이다. 자유는 단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이 준비 작업이 끝날 때 정신은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화한다.(p235)

 요약하면,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신의 시야를 한계로 세계를 인식하며, 표상과 의지를 통해 이를 경험한다. 또한 인간의 의지는 본성 뒤에 숨어 있으나, 이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의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고, 예술과 이념에 대한 인식이 고통을 벗어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반면, 니체는 인간은 디오니소스적 요소의 상실을 통해 고대에는 소크라테스 유령이, 중세에는 기독교의 도덕으로 대표되는 이성이 승리해왔으나, 인간이 이러한 제약으로부터 극복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감성과 현재의 회복일 강조했다는 것으로 거칠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깊이 있는 정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겠지만, 입문서로서는 이정도로 일단 넘기자. 


 <쇼펜하우어 & 니체 :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는 입문서적인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에서도 꽤 읽기 어려운 책이다. 이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외에도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와 푸코(Paul-Michel Foucault, 1926 ~ 1984),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1905 ~ 1997)의 사상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알려주고 싶은 저자의 배려 깊음은 입문자들에게는 못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하버마스와 푸코의 이야기는 같은 지식인 마을의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쪽으로 돌리도록 하자. 엄밀하게 말해서, 두 책의 주제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짐은 되도록 가볍게 갈 필요가 있다 생각된다. 큰 사상가의 사상을 대강 정리한 이번 리뷰를 서둘러 마무리 하자...


PS. 그래도, 하버마스와 푸코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이들은 <쇼펜하우어 & 니체>에서 언급한 하버마스의 비판은 '신은 죽었다'를 통해 기존 질서를 부정하지만, 이에 대해 윤리적 대안을 니체가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에 대한 푸코의 반박은 '파르헤지아' 문제 설정에서 발생하는 변형이 상이한 진리 놀이의 형태를 가져온다는 정도로 대강 정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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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지식인마을 29
박민아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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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의 연구는 20세기 원자핵물리학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여성이었기에 그 연구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이들의 과학적 업적은 과학사의 중요한 자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리 퀴리의 방사는 연구는 ‘방사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폴로늄과 라듐 원소를 찾아내기 위해 채택했던 화학적 분석 방법과 물리적 분석 방법의 결합은 이후 방사화학의 표준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p114)

마이트너의 연구는 퀴리가 시작하고 촉진시킨 연구 위에서 시작되었다. 마이트너와 한의 프로트악티늄 발견은 퀴리의 새로운 원소 발견을 모델로 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핵분열 과정에서 손실되는 아주 작은 양의 질량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식에 따라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마이트너는 핵 시대의 서장을 열였다. 요컨대 퀴리와 마이트너는 그들의 연구를 통해 원자핵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신비로운 연금술의 세계에 속해 있던 것을 합리적인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과학자들이었다.(p115)

<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는 책 표지처럼 20세기 초 열악한 여성의 지위에서 피어난 꽃처럼 세계과학사에 업적을 남긴 두 과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리학과 화학의 결합을 통해 방사선 연구에 발자취를 남긴 마리 퀴리와 핵 분열 연구의 선구자가 된 마이트너의 이야기가 다루어졌다는 점은 다른 지식인 마을의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녀‘에 대함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퀴리 부인‘ 위인 전기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피에르 퀴리 사후 라주뱅 스캔들을 통해 마리 퀴리가 부당하게 마녀 사냥을 당했음을 지적한다.

랑주뱅 스캔들에서 주목할 점은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사건이 우파 언론에 의해 사회/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되는 방식이다. 우파 언론들은 여성, 외국인이라는 마리 퀴리의 정체성을 교묘하게 엮어 국수주의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했다. 마리 퀴리의 불륜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표면적인 논조 아래에는 타자를 설정하여 그에 대비되는 ‘우리‘의 결속을 강화하고 ‘우리 것‘의 가치를 높이려는 배타적인 국수주의적 의도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p143)

책의 제목 <퀴리 & 마이트너 :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가 말해주듯 이 책은 단순히 여성과학자의 업적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주된 독자층이 청소년 층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진정한 의도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다음 세대의 변화 촉구가 아닐까. 이런 면에서 이 책은 과학사라는 역사가 현대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여성 과학자들에게 과학자라는 점보다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면 그것이 여성 과학자들의 사고와 행동의 범위를 제한할 수도 있고, 여성 과학자 본인이 여성이라는 틀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p155)...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라 할 수 있고 이는 다양성의 존중과 일맥사옹한다고 할 수 있다.(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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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1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희 포도밭 근처에 배나무가 있었는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는 했지만 모양이나 맛으로나 탐낼만한 과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아주 못된 아이놈들은 놀이에 미쳐 늦게까지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으슥한 밤에 그 나무를 흔들어 터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는 태짐이 될 만큼 몽땅 싸갔는데 그 배로 저희가 한바탕 먹고 놀자는 것이 아니라 돼지들한테 던져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풍족하게 있고 훨씬 더 좋은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훔쳤는데, 도둑질을 하면서까지 제가 탐내던 것을 향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도둑질과 그 죄악을 향유하기 위해서 그 짓을 했습니다.(p96)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中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AD 354 - 386 )는 <고백록 Confessiones>에서 어릴적 배를 훔쳤던 죄(罪)를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의 무절제한 경향으로 인해 죄가 저지르고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고백록>에서 되돌아보고 있다. 그에게 어릴 적 '도둑질'은 과거 잘못에 대한 고백이자, 자신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인생의 고백성사(告解聖事)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순간 그 마음이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그저 악인이 되고 싶었고 제 악의 惡意의 원인은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악의가 추잡했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p96)... 비록 최하로나마 선하기는 하지만 이것들 때문에 더 상위와 최고의 선이 저버림을 받을 적에, 주 저희 하느님, 당신께서, 또 당신의 진리와 당신의 율법이 저버림을 받을 적에 죄가 범해집니다.(p97)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中


 우리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통해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의 <고백록 Les Confessions >을 통해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을 확인할 수 있다.


 랑시에르 양의 하녀가 빗들을 가지러 돌아왔을 때, 빗 하나가 한쪽 빗살들이 몽땅 부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러한 손상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묻고 나는 그 빗에 손을 댄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p37)... 내 가련한 외사촌도 나 못지않은 중죄가 씌워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데 묶여 같은 벌을 받게 되었다. 그 벌은 끔찍했다.(p38) <장 자크 루소 고백록1> 中


 나는 내색하지 않고 탐을 내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속이고 거짓말하며 마침내는 훔치는 짓까지 배우게 되었다. 훔친다는 것은 이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갑작스런 욕망인데, 그 이후부터는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칠 수 없었다... 선량한 감정이 나쁜 길로 빠지면 바로 그 감정으로 인해 아이들은 악을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된다.(p59) <장 자크 루소 고백록1> 中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 부당하게 체벌을 당하며 추궁을 당한 어린 시절의 루소는 이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이후 거짓말과 도둑질을 배우며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자신을 변명한다,  루소는 자신이 나쁜 길에 빠졌다는 사실의 원인을 불우했던 어린 시절로 돌리고, 이는 루소에게 일종의 방어기제(防禦機制)로 작용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한 번의 잘못이 계기로 작용했다면, 루소에게 도둑질과 거짓말하는 습관이 성찰의 계기가 되기까지 1728년 베르첼리스 부인 댁에서 리본을 훔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내가 수중에 넣을 수 있는 다른 더 좋은 것들도 많았지만, 오직 그 리본만이 탐이 나서 그것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 별로 감추어두지 않아서, 사람들은 곧 내가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당황하여 우물거리다가 마침내 얼굴을 붉히면서 그것을 내게 준 사람은 마리옹이라고 말했다.(p138)... 아!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양심의 가책으로도 견딜 수 없는 판에, 그녀를 나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양심의 가책은 어떨지 그것은 여러분들이 판단하시라... 그 가책은 이날까지 경감되지 않고 내 양심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어, 어떤 의미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내가 고백록을 쓰고자 하는 결심에 큰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p140) <장 자크 루소 고백록1> 中


 루소는 자신의 잘못을 하녀 마리옹에게 덮어씌우고 이 일을 통해 둘 다 해고당한다. 자신의 거짓말로 부당함을 당한 마리옹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루소는 깊이 반성하게 되었음을 <고백록>에서 밝힌다. 루소의 경우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 모두 어린 시절의 잘못과 성찰이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소의 경우에는 그러한 계기가 하나 더 추가 되는데, 바랑부인(Madame de Warens)과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첫날부터 우리 사이에는 비할 데 없이 달콤한 친밀한 관계가 맺어졌고, 이러한 친밀도는 그녀의 남은 생애 동안 변치 않고 지속되었다. '프티 Petit'가 내 이름이고, '마망 maman'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프티'와 '마망'으로 남았다. 심지어 세월이 흘러 우리 둘 사이의 나이 차이가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도 그랬다.(p170) <장 자크 루소 고백록1> 中


 생후 9일만에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에 목말랐던 루소가 정작 자신의 다섯 아이를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는 사실은 상당한 아이러니지만, 바랑 부인과의 관계 속에서 모성(母性)에 목말랐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그가 후에 바랑 부인과 갖게 된 육체 관계는 그에게 근친상간의 죄의식을 심어 주었고, 이는 또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여러분은 우리가 결국에는 다른 종류의 관계를 갖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기다리시라. 한꺼번에 전부 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p171)... 나는 처음으로 한 여인,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한 여인의 품에 안긴 나 자신을 보았다. 과연 나는 행복했던가? 아니다. 나는 쾌락을 맛보았을 뿐이다.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그 쾌락의 매력에 독약처럼 스며들었다. 나는 마치 근친상간이라도 범한 것 같았다.(p307) <장 자크 루소 고백록1> 中

 

 <고백록>에서는 루소의 짧은 이야기 외에는 다루어지 지지 않았지마, 개인적으로는 <고백록>에서의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자세히 다룬다면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1946 -)의 <연애의 기억 The Only Story>에서처럼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고백록>에서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일생에 미친 영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반면, 톨스토이(Lev Nikolayevitch Tolstoy, 1826 -1910)의 <나의 참회>는 조금 다른 고백이야기다. 톨스토이는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던 시기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 끝에 민중의 생활이 참된 생활이라는 것과 신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내가 영혼의 밑바닥에서 내 생활이 의미가 있다고 몰래 빋고 있을 때는, 이것을 들여다보고 즐기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그 무렵에는 거울에 비치는 여러 가지 광신의 희롱, 인생에서의 희극적인 빛과 비극적인 빛, 감상적인 빛과 미적(美的)인 빛, 무서운 빛 등등의 희롱이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러나 인생이 무의미하고 무서운 것임을 아는 순간, 거울 속에서 본 빛의 희롱은 이제 나를 즐겁게 해 주지 않는다.(p630) <나의 참회> 中


  우리들의 행위, 이론, 학문, 예술이 내 앞에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나타났다. 나는 그 모두가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다는 것, 이런 것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대신 이마에 땀 흘리고 부지런히 일하는 민중 전체의 생활, 스스로의 생활을 창조하고 있는 인류의 생활이 참된 의미를 갖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참된 생활이라는 것, 이런 생활에 주어지고 있는 의미가 참된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을 받아들였다.(p664)... 원인이란 세계에서 시간과 공간과 같은 사색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는 원인이 있고, 또 여러 원인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 만물의 원인은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p668) <나의 참회> 中


 아우구스티누스, 루소, 톨스토이의 고백과 참회를 통해 죄의식과 허무(虛無)의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지하고 어렵고 힘든 시기에 겪은 지우고 싶고, 피하고 싶은 경험이 가져온 변화의 계기. 그것이 진정한 시련의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이는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 - 1987)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에서 말한 자기 내면으로 내려가 자기 정화에 이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시련의 참된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어떤 사회에 속하는 사람이든지, 고의적으로든 타의에 의해서든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상징적인 것들에 둘려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이 집중될) 때인 것이다. 굳이 현대적인 의미의 어휘를 쓰자면, 우리 개인이 가진 과거의 유아적 심상이 분리, 초월, 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p133)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中


PS. 연상의 여인과의 관계는 루소-바랑 부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 - 1849)과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 - 1876),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과 폰 메크 부인(adezhda Filaretovna von Meck, 1831 - 1894)의 관계 역시 연상 여인의 후원과 사랑을 받은 예술가 이야기에 해당한다.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에는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에 해당하지만. 어쩌면 유럽 사회의 이런 관계가 적지 않았기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을 때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넘겨 짚어본다.


 1836년 가을, 쇼팽은 리스트의 애인인 다구(Marie d'Agoult) 백작 부인의 살롱에서 리스트로부터 조르주 상드(1804 - 1876)을 소개받는다. 남장을 하고 잎담배를 피우는 등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남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쇼팽은 그런 점 때문에 처음에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상드 쪽에서는 연하인 쇼팽의 인간성과 음악에 매료되어 버린 듯하다.(p22)... 상드와 쇼팽의 관계는, 남녀 간의 사랑은 처음 얼마간뿐이었고 그 후에는 오히려 누나와 동생, 때로는 어머니와 아들의 애정과 같은 것이었다고도 한다. 상드는 쇼팽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다했다. 이러는 동안 쇼팽은 원숙기이 걸작들을 만들어내는데, 보다 폭넓은 구성법, 동기 발전 서법에 따른 논리성, 한층 자유롭고 대담한 화성 어법, 폴리포니적 서법의 사용, 환성적 분위기 등이 결합되는 후기의 작품이 추구되어 간다.(p23) <쇼팽> 中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예술에 심취하였던 사람(그보다 9세 연상)인데, 기묘하게도 정식으로는 한번도 대면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교제하였다. 미망인은 매년 6,000루블을 제공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창작 활동을 지원했다. 이 연금이 그를 교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시키고 작곡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은 빠뜨릴 수 없다. 편지를 보면 서로의 이성에 대한 사랑도 느낄 수 있는데, 예술가와 그 보호자로서 차이코프스키는 깊이 감사하면서도 어느 정도 그 원조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p14) <차이코프스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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