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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볼프강 하르트비히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최성철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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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비히에 따르면, 독일에서 'Verein'이라는 단어는 중세 때 '렌제의 선제후협정 Kurverein von Rense'(1338)에서처럼 서로의 '약속'이나 '연대' 또는 '결합'을 뜻하는 단어였다 심지어 당시에는 독립 명사로 쓰이지도 않았다. 이후 종교개혁과 근대 초에는 종파를 함께 하는 제후들 또는 종파를 초월한 제후들끼리의 연합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쓰이다가, 18세기에 와서야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즉 이 과정을 거치면서 'Verein'은 1790년대에 들어서부터 "자연법적 국가이론과 사회이론의 전문용어"로 거듭났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옮긴이의 글, P99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4번째 주제는 협회(Verein)다. 전근대 시기 '느슨한 정치 연합'의 의미로 사용되던 '협회'의 의미는 근대 시민 사회에 들어서면서 변화된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 전체의 일부로서 부분이 아닌, 구성원들의 계약을 통해 형성된 공동체라는 인식의 전환은 보편성에 대한 특수성의 위상변화이기도 하다.

열정의 공동체, 신념의 공동체는 단지 정적으로 규범화된 공동체의 삶 안에서 그들 관심사 중 하나의 견고하게 경계지어진 부분만을 느끼는, 개인의 형식화된 단체가 갖는 의미 내용보다 우위에 선다. "영원한 협회"라는 구호에서는 바로 이 시적-정열적인 언어가 지속성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혼자 지내는 것과 단체 결성 사이의 이러한 양극화, 세계 연관과 나의 연관 사이의 상호작용은 하나의 구조 원리로서 신인문주의적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대학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4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에 의하면 근대사회에서 '협회'라는 개념은 인류사회의 진보에 따른 확장된 우애/형제애로 해석된다. 근대사회가 갖는 자유, 평등의 강조로 인한 경쟁과 이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완충장치가 바로 '협회'다. 실제 역사에서 이러한 개념어에 담긴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오늘날에도 의미를 갖는다면 자신의 이상과 다른 현실과의 모순을 극복한 가능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다는 의미. 이러한 의미를 담은 '협회'라는 단어 안에서 꺾여진 희망과 함께 아직 뿌리 깊이 살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민사회는 이제 경제적인 이익사회이자 경쟁사회로, 교육사회로, 그리고 자신을 결정하는 규범체계로 묘사되었다. 즉 연합은 처음에는 "새로운 형식"의 "모든 물질적 재화의 획득과 판매"를 가능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모든 지식 분야에서의 진리의 공동 연구"를 가능하게 하며, 마지막으로는 선교단체들, 금주협회들, 범죄자 재활 협회 등이 갖고 있는 "연합의 정신"이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삶"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시민적 영리단체와 경쟁단체에 상응하는 동호회 형식으로서 연합은 자연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들을 해방시켜 주고, 거의 무제한적인 자아실현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59

"후원협회, 구제협회, 노동협회" 등의 유형을 갖는 사회적 협회 제도들은 그에 따라 고도로 발달한 산업화 속에서 국가시민적 사회의 계급구조를 녹여버리고, 소유의 자유와 정치적 평등의 자유를 기반에 두고 건설된 국가와 사회직서의 진화적 발전을 보증해준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4 : 협회>,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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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로타르 갈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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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작품의 통일은 예술작품을 결정하고 예술작품들과 함께 제공된다. 예술작품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통일, 즉 한 나라 안에서 한 시대 안에서의 예술의 통일, 문학의 통일도 역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동일한 것이 부분적으로 하나의 언어와 문화 공동체로서 한 민족의 통일에도 적용되고, 약간 더 작은 규모로 그것이 한 나라의 역사가 되었든(뫼저), 인류 전체의 역사가 되었든(헤겔), 역사의 통일에도 역시 적용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8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3번째 주제는 통일(Einheit)이다. 나누어진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의미에서 보여지듯, 단어의 전제는 서로 다른 개별자들로부터 보편자로 향하는 방향성이 단어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러한 방향성은 두 개념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중세시대에 대립은 '교권-세속권'의 모습으로, 근세 이후에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사상적으로는  '보수주의 - 자유주의'의 모습으로, 정치적으로는 '연방-중앙집권주의'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의 대립으로 발전된다.


 "민족국가적" 독립의 주창자들이 최고 보편 권력을 요구했던 제국과 교황권에 대항해 투쟁할 때 자신들 주장의 근거를 끌어온 것도 바로 이 통일사상이었다. 유기체적으로 구상된 "기독교적 통일"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교권 sacerdotium과 세속권 imperium의 대립에 의해 위협을 받았다. 13세기에 이러한 보편적 권력들의 붕괴와 더불어 유기체적인 통일이라는 이념은 이제 개별 국가의 차원으로 옮겨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15


 중세가 끝나는 시점 이후로 통일 관념은 두 개의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한편으로는 세속권력의 그리고 교황 절대주의의 이론가들에 의해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형성된 중세 전성기의 통일 개념이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영방국가 - "단 하나의 그리고 분할될 수 없는 공화국 republique une te indivisible" - 에 전용되어 쓰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연방적인 통일 이념이 계속 살아 있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3


 에드문트 외르크 Edmund Jorg는 1863년 다음과 같이 썼다. 오직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안에서만 "진정한 권위"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일의 법칙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다. 외르크의 눈앞에 중앙집권주의라는 끔찍한 유령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직 독일의 연방적 체제에서만 자유가 보증될 것이라고 믿었다.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하나의 "대독일적 제국"의 이념은 하나의 "정치적 연방주의"를 찬성하는 그의 입장에 부응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76


 개념어 발전과정에서 중세시대의 '교권-세속권'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된 것은 '자유'라는 개념과 깊이 연관된다. 라틴어 중심의 보편적 질서에 대항하여 중세 말 이후 자국 언어로 쓰여진 작품들과 언어 안에 담긴 민족정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이것은 인간 이성(理性)과 자유(自由)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고, 이러한 기조는 '통일'의 개념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통일은 동시에 자유에 입각한 자결 사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사상이 민족적 통일 안에서 체현된다는 것이고, 통일은 그 사상이 계속 전개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통일'과 '자유'의 개념들은 무엇보다도 그 때문에 아주 밀접한 관계에 들어서는데, 왜냐하면 정치적 현실, 독일연방의 지배적 "체제"는 이 두 개념의 본질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7


 18세기에 이('통일'이라는) 새로운 개념 안에 의식적으로 의미가 채워져 가는 이 과정은 외관상 당시 사람들이 관심을 두던 정치적-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문학과 예술 이론 분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개념은 여기서 '예술작품의 통일'로 연결되면서 일찍이 확고한 표어로 자리잡는다. 사람들은 문학과 예숙의 다양한 장르들에 이들 자신의 내적인 통일성 Einheitlichkeit에 대한 문제를 제시했고, 예술적 통일 안에서, 형식과 내용의 화합 안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의 가치 평가를 위한 결정적인 기준자를 발견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26


 결과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점차 역사와 인류로 확대되면서 '미학(美學)'은 단순한 미적 취미에 대한 담론이 아닌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러한 판단의 심판대 위에 19세기 독일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올라서면서,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大)독일주의와 프로이센 중심의 소(小)독일주의가 충돌하게 되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 애국적인 제국 법률가들은 영방국가적 주권사상과 그것의 통일 모델을 강하게 거부하면서 "독일 제국의 통일"을, 제국헌법의 시의 적절하게 개혁된 기본법들과 제도들의 토대위에서의 "다양성 속의 통일"로, 다양한 정치적 힘들의 "합일"로 이해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35


 독일의 정치적 통일 관념들에 전형적인 현상으로서 '연방'과 '통일' 개념의 결합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슈타인메츠는 "독일에서의 통일"이 오직 하나의 "프로이센-독일적 연방"을 통해 보증될 수 있다고 보았다. '통일'과 '연방'이라는 두 개념은 그에 의해 하나로 명명되었다. 독일의 통일이 하나의 연방이라는 국가적 형태 안에서 실현되는 것은 여기서 곧 자명하고 논라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전제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0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을 읽으며, 미학(aesthetics)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통일'의 개념어 과정에서 드러나듯 미학의 판단 기준이 확장되어 하나의 시대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미학을 그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틀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낭만주의 사조에 드러나는 자연에 대한 경외(敬畏)의 감정 그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경외라는 감정이 표현되는 전후 관계가 바로 사상가들의 시대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지을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칸트, 헤겔, 니체 등 철학자들의 미적 판단이 '아름다움(美)'을 넘어선 '진리(眞)'와 '선함(善)'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임을 '통일'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다시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두 독일인의 서신 교환>에는 헤르더의, 다음으로는 괴테에 의해 계속 전개된 민족의 문화적 통일에 대한 사상이, 언어와 문학에서의 "공통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하나로 통합시켜 묶고 있는 "하나의 공통의 공중"에 대한 사상이, 동시에 이 사상 안에 담겨 있는 정치적 동기가 매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3 : 통일>, P45


"노동자들의 합일"은 그들을 "계급"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은 프롤레타리아의 통일을 암시했고, 프롤레타리아의 "정당"으로의 법제화를 표현했다. 프롤레타리아가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 연합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었고, 그렇지만 동시에 거대한 체제전복적 변혁의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이기도 했다. - P69

정치적 발전의 과정은 그래서 자유주의의 관념세계에서 원래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통일‘과 ‘자유‘라는 두 개념을 쪼개버렸고, 자유를 통일 뒤로 물러나도록 했거나 아니면 자유가 통일로부터 나오도록 만들었다(p72)... 그와 더불어 전선이 명확히 그어졌다. 민족통일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든 상황에서 정치적 진보를, 자유주의적 헌법 형식을 향한 발전을 포함하는 원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는 통일은 수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 P74

연방주의적-보수주의적 통일 개념과 중앙집권적-민주주의적 통일 개념은 따라서 독일 통일의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다. 1871년의 제국은 이 두 개념들에게 공격 목표를 제공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 제국의 헌법구조가 통일을 지향하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연방적인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 안에는 보수주의적인 경향들과 자유주의적인 경향들이 한데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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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30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 이제 토끼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ㅎㅎㅎ 어려운 책들 잘 풀어내주시고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 가족분들과 행복하게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0 23: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역시 미니님의 좋은 영상과 글들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내년 한 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거리의화가 2022-12-31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한해동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매번 댓글을 남기질 못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겨울호랑이 2022-12-31 23:23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저 역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과 말씀 그리고 격려 덕분에 많이 배웠던 지난 한 해였습니다. 저 역시 댓글을 남기지 못하는 편이라 죄송합니다.. 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역사와 관련한 거리의화가님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통일‘ 개념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정적인 성격을 띠었다. ‘통일‘은 이미 주어진, 종종 의식되지 못한 은폐된 통일을 나타냈다. 예술작품의 통일은 예술작품을 결정하고 예술작품과 함께 제공된다. 예술작품을 포괄하는 더상위의 통일, 즉 한 나라 안에서 한 시대 안에서의 예술의 통일, 문학의 통일도 역시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존하는 현상으로 확인된다.  - P82

‘통일‘은 이제 빈번히, 특히 미래의 기대 속에서, 다름 아닌 질서, 조화, 정의, 행복의동의어로 나타났고,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은 극우주의자들부터급진적인 좌파 세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 집단들에 의해 간절히 요구되었다. 그래서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비합리적인 열광적힘이 우리 세기에도 현실의 이념적인 은폐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동원에서도 입증될 수 있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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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하자면, 고대 전 시기에 걸쳐 살림살이 개념은 비교적 불변하는 사회적 규범에 구속되어 있었다. 고대에 이해한 바로는, ‘오이코노미아‘ 혹은 다른 그 어떤 개념도 각각 개별적인 단위의 경제활동을 총칭하는 개념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고대가 비록 그 용어를 근대에 전해주고 살림살이 활동에 대한 여러가치판단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지만, ‘단 하나의 살림살이 개념을 전해준 것은 아니었다. - P43

요컨대 ‘살림살이‘와 ‘경제‘라는 한 쌍의 개념이 하나의 영역에둥지를 틀었다. 거기에서 사실상 물질적 생활토대가 형성될 뿐만아니라, 생계유지, 재산, 생업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기때문에 근대적인 용어의 변천에 대한 연결고리가 거기에 존재했다. 달리 말하면 당시에는 두 가지 연결고리가 존재했다.  - P97

요컨대 ‘상업Kommerzien‘과 ‘거래Handel‘ 라는 제목 하에서 다루는 영역이 독자적이고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분야로발전했다. 이미 이것은 대부분 근대적인 경제활동의 분야와 일치하며, 근대경제학의 ‘시장‘, ‘가격‘ 그리고 ‘통화‘와 같은 상업적범주도 등장했다. 18세기까지는 ‘상업‘이라는 단어가 가장귀감서와 농업을 특징으로 삼았던 ‘살림살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사용었지만, 이제 전자가 상위 개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유리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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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은 경찰력에 의한 물리적 힘의 행사와 제도언론에 의한 허위 의식의 조작을 권력유지를 위한 두 개의 지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제도언론에 의한 허위 의식 조작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다름 아닌 ‘보도지침‘이다. 다시 말하면 ‘보도지침‘은 단순히 언론정책의 한 가지 사례가 아니라, 일반적인 여러언론통제, 협조요청 등의 수단이 아니라 바로 그 차원을 뛰어넘어 가장 중요한 통치수단의 하나인 것이다. - P56

다시 말하거니와 이 땅에는 두 부류의 언론이 있다. 권력의 ‘탄압‘을 받는 민중언론과 권력의 ‘비호‘를 받는 제도언론이 그것이다. 한쪽은 끊임없는 압수와 연행, 구금의 대상이지만 다른 쪽은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것이 오늘의 형세이다. 그러나 한쪽은 성장해 가는 언론이지만 다른 쪽은 사멸의 길에 들어선 언론이다. 민중언론은 진리의 편에서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제도언론은 권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헛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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