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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 은 - 순간의 꽃-


시(詩)는 압축적인 표현으로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문학이라 개인적으로 어렵게 다가오는 문학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가 시인이 의도한 바와 같은지, 내가 시인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머리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시가 가슴까지 내려가기전 머리에 맴돌다 빠져가는 느낌이 드네요. 지금껏 많은 시를 읽지 못했지만,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世界)에 제가 다가가지 못하는 벽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여러가지 장벽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장벽을 시와 함께 정리해 봅니다.


1. 언어(言語) 장벽

 

시인(詩人)이 사용하는 시어(詩語)는 의미가 함축적이고, 여러 의미를 담기도 하며, 그 자체로 리듬을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시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특히 외국 시인인 경우 보다 높은 언어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1616)의 sonnet 14의 영어원문입니다.


Not from the stars do I my judgement pluck,

And yet methinks I have astronomy,

But not to tell of good or evil luck,

Of plagues, of dearths, or season's quality;

Nor can I fortune to brief minutes tell,

Pointing to each his thunder, rain, and wind,

Or say with princes if it shall go well

By oft predict that I in heaven find.

But from thine eyes my knowledge I derive,

And, constant stars, in them I read such art

As truth and beauty shall together thrive

If from thyself to store thou wouldst convert :

or else of thee this I prognosticate,

Thy end is thruth's and beauty's doom and date. (p409)


 영문 시는 제게 외국어(外國語)라는 언어의 한계 때문인지 어렴풋하게 내용이 다가옵니다. 마음 깊이 아름다움을 느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래 번역시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별들에게서 판단을 얻으려 하지 않노라.

그러나 내겐 점성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운의 길흉을 말하려 함도 아니요.

질병 기근 계절에 대하여 말하려 함도 아니라.

또 개개인의 생에 오는 풍우 뇌성을 

그 시각까지 예시할 수도 없고,

또는 하늘에서 자주 나타나는 전조를 보고

경사스러울 것을 왕후에게 고하려 하지도 않노라.

그러나 나는 그대의 눈으로부터 지식을 얻고,

불멸의 별 그 눈 속에서 이런 것을 읽었노라.

'그대 회심하여 자신의 공급자가 된다면,

진(眞)과 미(美)는 같이 번영하리라'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예언하리라.

'그대의 죽음은 진과 미의 종말이라'고.(p23)


 외국 작가의 작품인 경우 원전(原典)을 통해 보다 깊이있게 다가가고 싶지만, 지금 현재 언어적 장벽을 포함한 문화적 장벽은 제가시를 즐기게끔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지식(知識) 장벽

 

 대부분의 시가 가슴을 적신다면, 어떤 시는 머리로 읽어야 하는 시도 있습니다. 이 상(李 箱, 1910 ~ 1937)의 <운동>과 같은 시가 그렇습니다.


運動(운동)


一層(일층)우에있는二層(이층)우에있는三層(삼층)우에있는屋上庭園(옥상정원)에올라서南(남)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北(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屋上庭園(옥상정원)밑에있는三層(삼층)밑에있는二層(이층)밑에있는一層(일층)으로내려간즉東(동)쪽으로솟아오른太陽(태양)이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西(서)쪽에떨어지고東(동)쪽으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時計(시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時間(시간)은맞는것이지만時計(시계)는나보담도젊지 않으냐하는것보담은나는時計(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은필시그럴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時計(시계)를내동댕이쳐버리고말았다


 시 전체가 한 문장으로 연결된 이 시는 해설없이는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전집에서 설명한 시의 해설 부분을 살펴봅니다.


 '해설 : 이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와 관련된다. 시적화자는 1층에서 3층 옥상을 오르내리면서 동서남북의 방향을 헤아리고 태양의 고도와 움직임의 방향을 가늠해본다. 그리고 태양이 하늘의 한복판에 와  있는 순간에 자신의 위치를 헤아려보게 된다. 공간 속에서 고도(상하), 위도(남북), 경도(동서)라는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p245)


  해설을 통해서 <운동>이라는 시가 물리학 법칙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시의 배경지식인 상대성(Relativity)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의 <상대성 이론> 중 시와 연관된 '시계실험'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측이지만, 천재(天才) 이 상이 아래의 실험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측자는 시계와 측정자를 가지고 원판 위에서 실험할 수 있다. 이 정의들은 관측에 근거한다. 이 실험에서 관측자는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실험을 시작하기 위해 원판 중앙과 모서리에 동일한 시계를 하나씩 놓았다. 이 시계들은 원판에 대해서 모두 정지해 있다.... 기준 좌표계에서 보면 모서리에 있는 시계는 원판 중앙에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 원판에서 또는 일반적인 모든 중력장에서 시계가 놓인 위치에 따라 시계는 빠르게 가기도 하고 느리게 가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기준 좌표계에 관해서 정지해 있는 시계를 가지고 시간의 정의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p85)


  이러한 상대적 시간 속에서 시인은 공간적 운동을 노래합니다. 작품에 대한 수리철학적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詩)는 화자의 수직운동과 태양과 시계의 회전운동을 노래한다. 태양이 양(positive)의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는 동안에 시계는 그 대립인 음(negative)의 방향으로 운동한다(p215) ... 이 시의 회전운동은 태양이 동(東)에서 서(西)로 양(+)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에 시계는 반대로 음(-)의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태양이 한 바퀴 회전하는 동안에 시계는 바쁘게 2바퀴를 회전해야만 한다. 정오의 시각만이 태양과 시계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일치하는 유일한 곳이다. 또한 그곳은 화자의 시선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3방향의 운동이 동시에 일치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다.'(p218)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교점, 태양과 시계와 화자의 교점이 시간적으로는 '정오'에서 공간적으로는 '옥상'에서 형성됩니다. '시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의 시계는 정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정지된 시계'를 통해 시간의 정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결국 화자는 쓸모없는 시계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운동 運動>의 내용인듯 합니다.(이 내용과 '자아분열'이 연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를 마음으로 느끼기 전에 겪는 이러한 언어적(또는 문화적) 장벽, 지식 장벽외에도 다른 여러 장벽이 있기에 아직 시는 제게 어려운 분야입니다. 이런 장벽에 걸려 시가 머리에서 차마 가슴까지 내려가기 전 증발해 버리고 말지만, 작가와 좀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상의 시를 읽고 나니 문장도 괜히 길어집니다..) 앞뒤없이 시를 멀리하는 자신을 합리화시켰네요... 보다 쉬운 시(詩)도 많으니 다른 작품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나을 듯 합니다.ㅋ 


이웃 여러분, 시(poem)와 함께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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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8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8 17: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상의 시 한 편 읽기 위해서 이 시를 연구한 학술 논문 한 편을 먼저 읽어야합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5-28 17:41   좋아요 1 | URL
그래야할 것 같네요. 많이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AgalmA 2017-05-28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상 시와 상대성이론을 비교한 논점이 멋집니다^^b 수학과 과학을 늘 대입해보는 겨울호랑이님 특징이죠ㅎㅎ

겨울호랑이 2017-05-28 21:46   좋아요 2 | URL
^^: 에고. 이 상 전집에 ‘상대성 이론‘이 나와있어서요... 생각해보면 꼭 고등학교 때 국/영/수를 못한 애들이 사회 나와서 국/영/수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꼭 군대 안 다녀온 애들이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경우와 마치 비슷한 것 같군요..ㅋ

AgalmA 2017-05-28 22:11   좋아요 2 | URL
영/수는 아직도 제 恨이죠ㅎ;;
음...제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양성 병역 의무제 찬성하는 지도요ㅡ,.ㅡ 지금 가라고 한대도 가긴 갈 거라는.
다만 국가 착취 구조로 운영되는 지금 시스템이 병역 문제를 남녀 성대결로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8 22:15   좋아요 2 | URL
^^: 여성의 군 복무가 필요하다면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겠지요. 다만 현재 지상군 중심의 한국군 체제에서 여성징병제는 수용할만한 여건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평화 정착이후 단계적으로 지원제로 가야겠지요.^^:

AgalmA 2017-05-28 22:21   좋아요 2 | URL
인구 축소와 기술 발전화로 어차피 군대는 인적 자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수순이죠. 이미 지금 전쟁 양상도 지상군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니까요. 거의 날마다 군대내 위계적 성폭력 문제가 자주 터지니 여성 병역을 기피하게 만든다는 게 문제죠.

겨울호랑이 2017-05-28 22:26   좋아요 2 | URL
네 AgalmA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육군 위주로 운용되는 현 상황과 일본제국군의 구태를 벗은 군 제도 개혁. 그런 후 인적쇄신이 한국군의 선결과제라 생각되네요.. 군 기득권 세력 교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28 22:43   좋아요 1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해야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경우, 여성은 군복무 대신 사회적 약자돌봄과 같은 대체 의무 부과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마립간 2017-05-29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병역 의무에 대한 대체 복무는 실현 장벽이 별로 없기에 논의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여성이 병역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 선천적 이유가 더 큰지, 아니면 후천적 이유(사회적 환경)가 더 큰지 고민되지만 저는 잠정적으로 전자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5-29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여성의 병역 문제가 이슈가 될 가능성은 현재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향후 인공지능의 발전 등으로 ‘전투‘보다 ‘전략‘이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는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체 능력이 전쟁 수행 능력과 직결되는 과거와 전쟁 양상이 달라진다면, 이에 따른 제도 변화도 이야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2017-05-29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0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9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30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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