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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후반기 대작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 간략하게나마 입문서를 통해 전체 틀을 살펴보자.

 

 브로델은 19세기 들어 자리를 잡게 된 산업 자본주의가 '진짜' 자본주의이고 이전의 상업 자본주의는 '가짜'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시각에 반대합니다. 상업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는 없으며, 19세기 이전이든 이후이든 19세기 중에든 금융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상업 자본주의는 늘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경제계 econoie monde(經濟界)'는 브로델이 초반의 주저 <지중해>를 저술할 때 다루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후반의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5 ~ 18세기의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도입한 삼층집 모델과 함께 생각해보면, 삼층집 모델을 지리적 공간에 횡적으로 펼치고 그 공간에 '중심부-중간부-주변부'라는 계층적 지배/종속 관계를 더한 것이 경제계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p188)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해제 中


 브로델의 입문서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La Dynamique du Capitalism>에서는 상업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가 다르지 않으며, 산업자본주의는 상업 자본주의의 한 형태임을 말한다. 그리고, 브로델이 이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계' 속에서 '층'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음을 기억해 두고, 바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결론으로 넘어가자. 인상적인 결론이라 영어판의 본문도 함께 옮긴다.


 여러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economie de marche)" 사이의 구분이 완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종국적으로 정치적 차원에서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p864)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It is in the end at the political level that the distinction - to my mind beyond doubt - between capitalism in its various guises and 'the market economy' takes on its full significance.(p628)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시장경제는 '경쟁'의 성격이 강한 반면에, 자본주의는 '독점'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소수의 대기업이 독과점을 행하는 상층구조와 중소기업이 경쟁을 이루는 하부구조. 브로델에 따르면 이들 모두가 시장경제를 형성하는 층(層 tier)이다.


 케인즈는 불완전 경쟁을 이야기했다 ; 현재의 경제학자들은 한층 더 나아간다. 그들이 볼 때에는 시장가격과 독점가격이 따로 있다. 즉 독점영역과 "경쟁영역(secteur concurrentie)"이라는 두 개의 층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립성의 이미지는 오콘너나 갤브레이스 모두에게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경쟁영역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제일 상층에는 독점이 있고 그 아래에 중소기업들에게 알려진 경쟁이 있는 것이다.(p86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Keynes was already writing about imperfect competition. Today's economists go even further and distiinguish between market prices and monopoly prices, that is they see a two-tier structure, a monopolist sector and a 'competitive sector'. This two-stage model is to be found in J.O'Connor's writing as well as in Galbraiths's. Is it therefore wrong to describe as the 'market economy' what some people would call the 'competitive sector'? At the top come the big monopolies, while underneath them competition is confined to small or medium-sized concerns.(p629)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이러한 관점에서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시장경제와 동일시 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전체 결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판 6권, 영문판 3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의 수많은 실증 분석은 이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다만 경제의 하층(下層)이 상당히 두텁게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상관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여튼 그것이 존재하며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사회적인 것의 총화이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타당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p86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But it is not my intention to list exemples, simply to point out that there is a sort  of lower layer in the economy - it may be small or large, and we may call it what we like, but it exists and is made up of independent units. So we should not be too quick to assume that capitalism embraces the whole if western society, that it accounts for every stitch in the social fabric.... It is still possible then to use the three-tier model whose relvance to the past has already been discussed. It can still be applied to the present. And our statistics which not find room anywhere for the 'basement' of the economy, give us only an imcomplete picture. This is enough to make one think again before assuming that our societies are organized from top to bottom in a 'capitalist system'.(p630)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사실, 자본주의만큼 많은 이들이 사용하면서도, 그 정의가 다른 단어도 없을 것이다. E.K. 헌트 역시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History of Economic Thought : A Critical Perspective>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하고 결론없는 토론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브로델의 관점을 개념어(keywords)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Capitalism 자본주의 : Capitalism'이 특정한 경제 제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영어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이며, 이는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 그 단어의 등장 시기와도 거의 일치한다.(p69)...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 일반이 아니라 특정의 역사적 경제 제도를 지시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고, 이러한 변천 자체가 이 어의의 전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자본'이나 '자본가' 또한 처음에는 모든 경제 제도에 적용되는 전문 용어였다. 이후 19세기초 '자본가'의 용법은 역사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의 여러 기능을 기술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자본주의'란 발전도상에 있는 부르주아사회의 산물이다.(p70) <키워드> 中


 레이먼드 월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 ~ 1988)의 <키워드 Keywords: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설명은 (시장경제를 경제 제도 일반으로 본다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을 받아들이는 브로델 관점에 가깝다. 


 결국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구분을 받아들인다면 정치가들이 변함없이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전부 아니면 무(無)"라는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가들의 그런 생각은 독점에 대해서 완전한 자유를 인정치 않고서는 시장경제를 보존할 수 없다든지 이 독점을 모두 '국영화하지" 않고서는 처치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p869)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中


 Finally, if we are prepared to make an unequivocal distinction between the market economy and capitalism, might this offer us a way of avoiding that 'all or nothing' which politicians are constantly putting to us, as if it were impossible to retain the market economy without giving the monopolies a free hand, or impossible to get rid of monopolies without nationalizing everything in sight?(p632) <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y, Vol. III: The Perspective of the World> 中















 그렇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를 섞어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용어로 자본주의만이 시장경제체제의 전부인 것인양 오해를 한다. 특히, 지난 시절 개발독재방식으로 이루어진 수출주도형 국가경제 안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 대기업주의 = 시장주의'의 경직된 사고에 빠지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2020년 3월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 비중이 KOSPI200 기준 30% 넘는 대기업 종송경제를 갖는 것을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브로델은 분명 비판할 것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2세대 아날학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1881 ~ 193)은 <인간행동 Human Action>과 <사회주의 Socialism>에서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특정한다. 


 사회주의의 본질적인 징표는 하나의 의지만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의 의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지휘자는 성유(聖油)를 바른 왕이거나, 그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통치하는 독재자일 수도 있고,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 또는 지도위원회일 수도 있다. 모든 생산요소의 사용이 오직 하나의 기관에 의해 지휘된다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다. 하나의 의지만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지휘하며, 행동하고, 명령을 내린다. 나머지 모두는 명령과 지시에 복종할 뿐이다.(p1352) <인간행동론 3> 中


 신자유주의의 할아버지라 할 미제스의 주장에 따르면 대기업과 소수의 기득권의 의지만이 작용하는 현재의 한국경제(부동산을 포함하여) 상황이야말로 반(反)시장주의적인 사회주의 경제라 할 것이다. 


 모든 현상은 움직임을 가져오고, 움직임은 양 방향성을 갖는다. 우리가 시장경제라는 하나의 실체를 본다면, 자본의 집중이라는 구심력(求心力, centripetal force과 분배라는 원심력(遠心力, centrifugal force)의 균형 속에서 이를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사건의 지평선(事件의 地平線, event horizon)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움직임이 블랙홀(Black hole)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너지는 무에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에, 입자/반입자 쌍의 둘 중 하나는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다른 하나는 음의 에너지를 가질 것이다. 음의 에너지를 가지는 쪽은 짧은 수명의 가상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입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항상 양의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이다.(p136)... (블랙홀)에서 밖으로 방출되는 복사의 양(+)의 에너지는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는 음(-)의 에너지 입자의 흐름과 균형을 이룰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면 그 질량은 감소한다. 블랙홀이 질량을 상실함에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의 넓이는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블랙홀의 엔트로피 감소는 방출된 복사의 엔트로피에 의해서 보상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은 결코 위배되지 않는다.(p137)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中

 

 COVID-19를 맞이하여 최근 30여년간 진행되오던 세계화(世界化)의 움직임에도 큰 변화가 생겼고, 통합되던 세계가 다시 분화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주도-대기업 중심의 경제 대신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시장경제로의 복귀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리는 대안경제와 사회적기업, 그리고 이를 우리나라에 이루기 위한 시민운동가 박원순 이해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서없는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도덕경 80장 道德經 80章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p314) <왕필의 노자주> 中


PS. 쓸데없이 글이 길어는 것을 보니 내가 충격을 많이 받긴 했나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끝내고 나서 상세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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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12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논문??

겨울호랑이 2020-07-12 11:02   좋아요 0 | URL
이런 잡동사니 주제의 논문이 있을까요? ㅋ 그냥 끄적여 봅니다...

나와같다면 2020-07-14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을 다 이해 할 수는 없으나

겨울호랑이님이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사고의 뻣어나감 까지 전해지는 듯 합니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네요

겨울호랑이 2020-07-14 04:45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님 말씀대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서인지 참 생각도 많아지고 정리도 안 되네요...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다시 정리가 되겠지요......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비용•편익 분석을 지지하는 논거에 따르면 정보가 부족하면 과도한 규제를 요구할 수 있고, 일종의 ‘피해망상과 무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한편 비용•편익분석은 새로운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경우도 많다(p99)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중

캐스 선스타인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에서 동물의 권리, 기후변화, 차별 문제와 같은 사회 현안을 비용•편익 관점에서 분석한다. 각각의 문제들의 찬/반 시 예상되는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면서 이들을 비교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어떤 문제에서도 한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극단이 아닌 ‘중간‘을 선택하는 방안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다.

자신감있는 사람들은 전략적인 이유로 중간주의를 선택한다. 중간주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다수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방법이다. 여기에서 (전략적) 타협안으로서의 중간주의를 지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전략적 중간주의자는 여러 법관으로 구성된 법정에서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해,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고 노력한다.(p297)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중

캐스 선스타인의 다른 저작 「넛지」와 연결시킨다면, 우리는 극단에 서지 않고 중간에서 다른 이들을 부드럽게 우리 편으로 이끄는 전략을 통해 우리의 뜻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정리될 것이다. 캐스 선스타인의 주장대로 산다면 우리는 전략적으로 승자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전략이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보는 넘쳐나지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잘못된 신호만이 감지된다면. 또는 다수가 소수에 의해 끌려가는 상황이라면 과연 이를 승자의 전략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때문에 저자의 전략이 우리가 생각없이 기계적 중립자의 편을 무작정 따라가면서 ‘넛지‘를 당하며 살아갈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못하기에 이 점은 한계라 여겨진다. 중간주의와 넛지는 사회체계 자체의 모순에는 무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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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5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0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피게티(Thomas Piketty)는 20세기 실증데이터를 기반으로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이를 통해 기회균등의 사회가 아닌 상속사회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임을 주장한다.


 사회의 부(富)/연간소득(所得) 비율은 총저축률에서 경제 성장률을 나눈 값으로 수렴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기회가 창출될수록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집단의 지배 아래에 불가피하게도 부는 더욱 집중될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는 소득의 불평등 또한 극심할 것이다. 극심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지닌 사회는 시간이 지나 부에 대한 통제권이 상속자에게 돌아가는 '상속정치' 사회가 될 것이다. 부가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회는 부자가 경제/정치/사회문화적으로 매우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한 사회가 될 것이다.(p20) <애프터 피게티> 中


 현대 사회를 '불평등한 상속 사회'로 규정한 피게티의 근거는 20세기 실증데이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는 미국-소련을 중심의 체제 경쟁으로 이어지고, 이로부터 세계경제는 유례없는 빠른 성장과 불평등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 <21세기 자본> 전반의 주장이다.


 20세기는 로버트 고든 Robert Gordon이 강조한 제2차 산업혁명으로부터 막대한 동력을 얻고, 선진국들이 미국과의 경제적 격차를 성공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하면서 유달리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20세기는 전쟁, 혁명, 혼돈의 시기였으며 사회화와 진보적인 세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정치 운동은 저축률을 유례없이 강하게 감소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20세기는, 그런 힘들이 아직 완전히 쇠퇴하지 않았지만 쇠퇴하고 있는 상태에서 21세기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다.(p20) <애프터 피게티> 中


 2014년에 발행된 <21세기 자본>의 이러한 피게티의 주장에 대해 <애프터 피게티  After Piketty>에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을 자신의 입장에서 평가한다. 책 본문에서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피게티의 실증분석에 대해서 동의한다. 


 선진국에서 개인의 부는 소수에 집중된 채 자원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일할 장소와 방식을 지시하고, 정치 구도를 형성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해왔다는 피게티의 주장은 옳다. 약 150년 전 벨 에포크/제1차 도금시대에 전형적인 선진국의 축적된 부와 연간소득 사이의 비율이 약6이었다는 주장은 옳다. 약 50년 전 사회민주주의 시대에 자본/소득 비율이 약3이었다는 주장도 옳다. 그리고 지난 두 세대에 걸쳐 부/연간소득 비율이 급상승했다는 주장 또한 옳다.(p24) <애프터 피게티> 中


  <애프터 피게티>에서 피게티에 대한 비판은 대체적으로 불평등의 원인과 불평등 해소에 집중된다. 과연 피게티가 말한 요인 이외에 다른 요인이 불평등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없을까? 또한, 피게티가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 내에 불평등의 요인이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논점에 대한 피게티의 반론(反論)은 <애프터 피게티>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논란이 될 만한 요인은 부/연간소득 비율의 상승이 정말 피케티가 강조한 원인에 의한 것인가의 여부다. 그리고 더 치열한 논란을 과연 그 자체로도 부/연간소득 비율 상승의 결과이기도 한 부의 불평등에 의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었는가의 여부다. 이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실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p24).... 또 다른 가치 있는 논쟁은 제도, 정치, 사회운동에 의한 구조적, 경제적 압력에 대한 상대적인 자율성이다. 피게티의 논지는 미래에 대해서는 완전히 결정론적인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이 모은 부에 관계없이, 부자들은 5퍼센트의 이익률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p25) <애프터 피게티> 中


  이번에 출간될 <자본과 이데올로기 Capital and Ideology>는 이러한 <21세기 자본>의 주장에 대한 보완, 그리고 <애프터 피게티>에 대한 자신의 반론, 그리고 이후 변화에 대한 피게티 자신의 주장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읽기 전 피게티의 전작(前作)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극장에서 상영하는 2편을 위해 명절 TV에서 틀어주는 1편 같은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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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사회는 빈민을 '위험한 계급'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고 그 대응으로서 빈민들을 추방하거나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빈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빈민 정책이 나타나게 되었다.(p368)... 새로운 해결 방식은 대단히 강압적이라는 특징을 띠었다. 빈민들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대개 중앙 집중적인 조치들을 시행했다... 또 근대 사회정책의 기본 방향은 노동의 강조였다. 노동을 통해 그것이 기본적인 매개가 되어 사회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대사회의 기본원칙이 된 이상 그것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노동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권력 당국이 노동을 통해 빈민들을 단속하고 순치시켜 이들을 위험하지 않은 계급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근대사회의 중요한 특징인 것이다.(p369) <빈곤의 역사> 中


 브로니슬라프 게레멕 (Bronislaw Geremek, 1932 ~ 2008)은 <빈곤의 역사>에서 근대 사회의 특징을 중앙 권력 기구에 의한 빈민 감시와 노동을 통한 빈민 교화를 지적한다. 이러한 근대의 유산을 이어 받아 오늘날 우리는 가난한 이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할 수 밖에 없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t Global Poverty >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 (Abhijit Banerjee,1961 ~ )와 에스테르 뒤플로 (Esther Duflo,1972 ~ ) 는 가난의 이유를 게으름이 아닌 '빈곤의 덫'에서 찾는다. 그리고, 현대 빈곤의 문제는 부족이 아닌 배분 문제임을 지적한다.


 소득이 늘어나면 더 많은 식량을 살 수 있다. 기본적인 신진대사에 필요한 열량보다 많은 열량을 섭취하는 사람은 체력이 좋아져 생존에 필요한 양 이상의 식량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현재 소득과 미래 소득 사이에 S자형 관계를 형성한다. 소득이 적은 가난한 사람은 음식 섭취량이 충분치 않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반면, 음식을 충분히 섭취한 사람은 체력이 좋아 힘든 일도 잘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빈곤의 덫이 생긴다. 그리고 이들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p44)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이 지적했듯 최근에 일어난 기근의 원인은 대부분 절대적인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식량의 부적절한 분배, 즉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식량을 산더미처럼 쌓아논는 관행을 허용하는 제도적 실패 때문에 일어난다.(p5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이 '빈곤의 덫'을 벗어나도록 자원을 배분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들은 <넛지 Nudge>에서 제시한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에 주목한다.


 동태적 비일관성을 고려해 올바른 행동을 회피할 자유를 허용하는 동시에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열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교수 리처드 탈러 Richard Thaler와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 Cass Sunstein은 공저 <넛지 Nudge>에서 이러한 행동을 촉발하는 여러 가지 개입 방식을 권고한다. 핵심은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이라는 개념이다. 디폴트 옵션이란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다수 국민에게 가장 유익한 대안이 자동으로 선택되고, 개인이 특정 행동을 할 경우에는 그 대안을 기피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p10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넛지>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향을 고려하여 특정한 행동을 행하지 않을 경우 대상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안을 디폴트 옵션으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 사전에 고려되어 실시될 필요가 있음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강조된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넛지 형태의 간섭은 쉽게 피할 수 있는 동시에 그렇게 하는데 비용도 적게 들어야 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다.(p21) <넛지> 中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토대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노력을 요하는 옵션, 즉 최소 저항 경로(path of least resistance)를 취할 거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모든 요소들은, 주어진 선택에 디폴트 옵션이 있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것을 택한다고 예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해당 디폴트 옵션이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표준을, 심지어는 권고되는 행동 요령을 표상할 경우에는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 경향, 즉 디폴트 옵션을 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p139) <넛지> 中


 그렇다면, 어떤 분야에서 '넛지'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예방보다 치료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의료비 지출 구조를 예를 든다. 이러한 경우 '치료'보다는 '예방'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디폴트 옵션은 가난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이전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에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쓰느냐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비용이 적게 드는 '예방'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치료'에 돈을 쓴다. (p82)...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상 의료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다. 우다이푸르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더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예방보다 치료를,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간호사와 의사의 진료보다 사설 개업의를 선호한다.(p83)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또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넛지와 함께 국가 등 중앙권력기구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통해 기회불평등을 해소할 것을 제안한다. 소득의 양극화가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부와 빈곤의 세습을 낳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소득이 교육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면 부모가 부유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도 교육을 더 받고, 부모가 가난한 아이는 재능이 뛰어나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교육 문제를 시장에만 맡겨둘 경우 모든 아이가 가정형편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소득 격차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면 공적 주체가 공급에 개입해 교육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모든 아이가 동등한 기회를 누리게 하는 것이 사회적 효율성에 근접하는 길이다.(p121)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에서는 가난을 개인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빈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넛지, 시장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모든 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저자들도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듯, 이것은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소액금융은 가난한 사람이 장기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자녀에게 보다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직업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p278)...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단지 초기에 지급한 자산과 금융 지원이 서서히 선순환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런 기회 덕분에 극빈자들이 자신의 힘겨운 삶을 책임지는 동시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려운 첫걸음을 뗐다는 것이 중요하다.(p289)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中


그렇지만, 이 작은 발걸음이 엘로라 드르농쿠르(ellora derenoncourt)가 <애프터 피게티 After Piketty: The Agenda for Economics and Inequality>에서 말한 제도적 차별주의까지 폐지로까지 이어진다면, 신석기 혁명 이후 인류의 오랜 고민이었던 부의 불평등 문제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작은 희망의 불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전 세계의 재분배정책은 그저 세계 부유세를 통해 초기 자원을 재분배하기보다는 피지배자 집단이 경제 성장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모종의 역사적 세력이 있음을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 권력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 집단이 많은 지역의 제도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것은 여러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p600)... 제도의 격차와 피지배자를 지배하는 제도적 특권이 확장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초기 자원에 근거한 배상금은 불충분하고 일시적일 것이다. 꾸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재분배 정책은 시민과 피지배자에게 보장돼야 할 경제적/정치적 권리가 확장된 개념으로, 제도적인 인종차별주의를 폐지하는 것이다.(p601) <애프터 피게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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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1-12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보자면,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합리적일 것 같아요. 부유한 사람은 돈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덜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돈이 적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쓰면서 효과가 더 클까, 를 고심하게 될 것 같아요. 예방과 치료 면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새해 인사 하러 왔습니다.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건필을 기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1-12 20:04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이 합리적인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생활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가르침보다 정확한 사실 제공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결정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도 잘 부탁 드립니다.^^:)

2020-01-12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2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달 31일 칠레는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로 인해 11월에 예정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칠레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사망자까지 나오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제각기 달라보인다. 누군가는 APEC 회담 연기로 미중 무역합의가 미뤄진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하는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라는 시위의 원인에 대해 주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달라 보이는 이 시선에는 공통된 인식의 기반이 자리한다. 세계화와 경제 불평등이 그것이다.


[사진] Chile Protests(출처 : https://www.bbc.com/news/world-latin-america-50191746)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915091.html


 칠레와 APEC. 사실 이들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4년 이미 APEC을 개최한 경험이 있는 칠레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 나라이다. 우리나라와도 2001년 FTA를 체결한 국가이기도 하며, 이를 바탕으로 남미에서 성공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글쓴 이가 칠레 경제 전문가도 아니기에, 현 상황을 분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 관련 책 내용을 통해 칠레 현대사의 문제점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펴보는 것은 가능하다 생각되기에, 여러 권의 책에서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뿐 아니라 아마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한 국가일 것이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지난 25년 동안 가장 뛰어난 경제 실적을 기록했다.(UNDP 2002). 그렇다면 칠레의 상대적인 경제적 성공은 과연 신자유주의 개혁이 이뤄낸 것인가?(p567)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 中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 Latin America Transformed : Globalization and Modernity  >의 저자들은 2000년대 초반 칠레가 거둔 높은 경제성장지표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개방의 산물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한다. 그리고, 근거로 칠레인들이 느끼는 높은 사회 불안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칠레 사무소의 선구적인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칠레인들의 불안감은 높은 편이다. 안전보장이란 대중의 주관적 경험뿐만 아니라 객관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p568)... 칠레는 라틴메리카에서 매우 낮은 범죄율과 특히 가장 낮은 살인사건 발생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칠레인들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큰 편이다. 이런 현실은 급속한 근대화과정에서 뒤처진 이들이 느끼는 사회/경제적 불안감의 표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p568)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 中


 칠레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칠레 현대 정치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칠레에서 교회의 지위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대립은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대립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는 구리, 초석 등 원자재 산업의 이권과 맞물리게 된다. 즉, 칠레 정치 위기는 단순한 사상이 대립이 아닌 종교, 경제가 한데 얽혀서 발생한 복합적인 문제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칠레가 19세기에 국제경제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위기가 발생했다. 1859년 내전을 치르면서 지배층은 이제 조용히 기틀을 다질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정치 문제는 교회의 지위와 헌법 두 가지였다. 교회의 지위와 관련해서 자유주의자들은 종교의 평등을 부르짖었고, 보수주의자들은 가톨릭교회의 특권적 지위를 보호하고자 했다.(p483) <현대 라틴아메리카> 中


  19세기 칠레 주요 정당들을 갈라놓은 유일한 쟁점은 교육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역할을 둘러싼 문제였다. 이 정당들의 주된 관심사는 현상유지와 관직의 분배였고, 부패와 비효율이 이 시대 정치 영역에 만연했다.(p322)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하) > 中


 정치가 부정과 무관심 속에 정체되어 있었을지라도 칠레 사회는 깊은 변화를 경험했다. 수출 부문이 이런 변화에서 결정적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원자재 수출은 막대한 이윤을 남겼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만이 칠레로 유입되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수출 산업이 정부 운영에 필요한 세입을 마련하고 증가하는 중산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과두지배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구태의연한 지주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민주주의의 성장과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했다.(p323)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하) > 中


  19세기 발명된 유선 통신 기술은 칠레에게 기회가 되었다. 유선 통신의 발전은 대륙간 해저케이블선의 연결로 이어졌는데, 20세기 초반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유럽 제국은 안정적인 제국 통치를 위해 대륙간 해저 케이블선을 매립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많은 구리 공급을 요청하게 되었고, 구리 생산국이었던 칠레는 이로 인해 많은 외화를 획득하였으나, 동시에 칠레 자국에 미국의 영향력도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국내 정치에 개입된 외세의 영향은 이후 가속화되어 20세기 중반 알렉산드리와 아옌데로 대표되는 칠레 좌/우파는 차례로 집권하지만, 칠레 국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집권으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1958년 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낮익은 이름이었다. 바로 아르투로의 아들 호르헤 알렉산드리였다.(p495)... 신임 대통령은 보수적인 정치경제관을 대변했다. 그는 정통적인 통화정책과 외국투자 개방을 비롯한 자유기업 경제를 신봉했다. 알렉산드리 정부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정통적인 IMF식 안정화 정책으로 맞서 싸웠다. 이를 위해 예산 삭감과 화폐 가치의 평가절하(고정 환율로)와 신규 외국 투자 유치를 시도했다.(p496)... 알렉산드리는 고르지 못한 경제성장 때문에 생긴,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정통 경제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공공사업들에 착수했는데 그 재원은 주로 외국에서 끌어들인 것이었다... 농촌 빈민들이 점차 산티아고를 비롯한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시에서 주택 문제와 식량 문제, 교육 문제에 시달렸다. 게다가 일자리도 거의 없었다. 이들 '주변인'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된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서글픈 뒷모습이었다.(p497) <현대 라틴아메리카> 中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아옌데가 다수표를 차지했다.(p501)... 미국 정부는 칠레의 선거 결과에 극심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미국은 왜 이렇게 강한 반발을 보였을까?  한창 진행 중이던 냉전의 맥락에서는 칠레 사회주의의 승리는 국제공산주의의 승리를 의미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p502)... 또한 아옌데의 사회주의적 성향이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위협하기 때문이었다. 랠스턴 퓨리나와 포드, ITT 같은 미국의 대표적 기업들이 칠레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회사 중역들은 물론 국유화나 정부 수용 계획에 반대했다. 칠레는 한 마디로 위험스런 나라였다.(p503) <현대 라틴아메리카> 中


 아옌데의 집권과 죽음에 대해서는 장 지글러((Jean Ziegler, 1934 ~ )의 <왜 세계는 굶주리는가?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의 한 대목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진] 공격받는 아옌데의 대통령궁 사진(출처 : http://www.abim.inf.br/chile-11-de-setembro-de-1973-uma-segunda-independencia-nacional/#.XcfL4jMzaUk)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칠레가 처한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문제를 놓고 본다면 어쩌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아옌데가 내건 이 공약이 벽에 부딪힌 것은 칠레의 농장을 장악한 네슬레가 1971년 협력거부 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p13)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中


 이후 집권한 피노체트(Augusto Jose Ramon Pinochet Ugarte, 1915 ~ 2006)의 독재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반대파에 대한 과도한 정치탄압에 대해서 인권 측면에서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그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길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칠레 내에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선택과 칠레의 명(明)과 암(暗)은 비교적 명확하다.


 칠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안정적인 기조 아래 고도성장을 구현해 왔다. 신속한 민영화와 규제철폐, 그리고 대외개방과 수출산업의 육성으로 칠레는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빨리 구조개혁을 마무리 지었고, 또 그에 따른 과실을 추수할 수 있었다. 대체로 중남미 타국들이 1982년 외채위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던 데 반해 칠레는 1973년 10월에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경제개혁의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p230) <대홍수> 中


 1990년대 칠레가 이룩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물가상승을 수반하지 않는 급속한 성장이었다. 콘세르타시온이 집권한 처음 8년(1990 ~ 1998) 동안 칠레는 연평균 6.7퍼세트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외채가 대폭 줄어들고 새로운 외국 자본 유치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민영화는 사실상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높은 저축률과 투자율이었다. 이것이 생산성을 계속 유지할 견고한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성장의 열매를 나누는 분배는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절대 빈곤 수치는 여전히 높았고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커져 칠레가 역내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로 바뀌었다.(p518) <현대 라틴아메리카> 中


 피노체트 집권 이후 계속된 신자유주의 결과 칠레는 높은 GDP 성장률을 보였지만, 반대로 부작용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소득 불평등의 확대와 과도한 민영화와 국영기업의 외자(外資)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칠레의 경제 개혁에 대한 내외의 예찬에도 불구하고, 이 모델에도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례 하나가 바로 졸속의 민영화 조치로 인해 겪게 되는 주기적인 전력부족 사례이다.(p231)... 스페인계 자본이 가장 큰 발전회사 그룹인 엔데사(Endesa)의 지분을 사들여 전력산업의 핵심부를 아예 통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수익을 내는 전력산업의 탈국적화가 순식간에 진행되어 버린 것이다... 칠레의 전력산업 민영화 사례는 민영화론자들이 그리는 낙관적인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세심한 규제의 규칙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효율성의 증대로 발생한 소비자 잉여가 결국 내외 독과점업체의 손으로 넘어간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p232) <대홍수> 中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19세기 원자료 개발 시 들여온 산업자본 문제가 정치대립으로 이어지며, 칠레 정국은 불안해졌고, 피노체트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인한 높은 경제 지표 달성과 소득 불균형, 과도한 민영화로 인한 독점자본에 의한 경제 지배 확대 등이 칠레인들의 불안함의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공공요금(지하철 요금) 인상안은 이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의 칠레 경제가 보여주는 것은 GDP의 한계를 잘 표현한다 여겨진다.


  의회가 국왕을 신뢰한 만큼 국왕이 의회를 인정했다면 입헌군주제 수립도 가능했으리라. 불행히도 7월 11일 궁정 반대파가 국왕을 제압하면서 네케르는 파면되었다... 시내가 유언비어로 뒤덮이면서 파리 시민은 쿠데타를 염려했다. 빵이 귀해지고 앞으로 3일분의 식량밖에 없었다. 시내에는 12만명의 극빈자가 있었는데 국민의화가 그들을 구원하려는 것을 궁정이 반대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p424)... 7월 12일 무기 판매점을 약탈한 군중은 병기고 습격을 계획해 앵발리드에서 소총 2만 8,000정, 대포 5문을 약탈했고 이어 화약이 바스티유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모든 군중이 바스티유 요새로 몰려갔다.(p426) <프랑스사> 中


[그림] 바스티유 습격(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237213105352248408/)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스티유 습격을 떠올리게 하는 이번 칠레 반정부시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한 이번 사건의 배경에 깊은 정치, 경제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분명하다. 칠레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가, 어쩌면 세계 전체가 겪고 있는 경제불평등 문제에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저자들이 지적한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를 제시하며 문제를 공유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정책입안자들과 사회가 해결해야 할 네가지 주요 쟁점이 있다. 첫째, 소득이나 토지, 금융, 기술, 사회적 써비스 같은 자원의 획득과 활용 등 여러가지 차원의 불평등, 또한 인종, 젠더, 계급 차별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둘째, 신자유주의적 변화와 세계화로 가중된 취약성과 불안정. 셋째, 불평등, 취약성, 불안정을 해결할 대안적 발전 계획의 부재. 넷째, 승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패자로 남게 되는 배제적인 세계화 과정.(p570) <변화하는 라틴아메리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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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1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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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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