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과 감사를 받아 마땅했던 이들은 이 세상에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내 앞에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그들이 계시니 나는 더 잘, 그리고 더 정성스럽게 그분들에게 갚아 드리는 셈이다.

옛날 저 델프의 신이 우리에게 했던 명령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대 내면을 바라보라, 그대를 알고자 하라, 그대에게 집중하라. 그대의 정신과 그대의 의지는 지금 다른 곳에서 소모되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 안으로 가져오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흘려보내고 흩뿌리고 있다. 그대의 밀도를 높이라, 그대의 고삐를 죄라. 사람들은 그대를 속이고 있고, 산만하게 하고 있으며 그대에게서 그대를 훔쳐 가는 중이다. 이 세계는 그 모든 시선을 늘 안으로 향하고 있으며, 자기를 명상하기 위해 늘 눈뜨고 있다는 것이 너는 보이지 않는가? 안으로건 밖으로건 너에게는 늘 헛됨뿐이지만 외부로 덜 뻗으려 할수록 그 헛됨은 줄어들리라.

아무도 자기 돈을 남에게 나눠 주지는 않지만 누구나 자기 시간과 자기 삶은 나누어 준다. 이런 것에 대해서만큼 우리가 후하게 구는 것도 없지만, 이런 것을 인색하게 아끼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유익하고 또 칭찬할 만한 태도일 것이다.

날카롭고 격렬한 욕망은 우리의 기획을 수행해 가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방해가 되며, 결과가 지체되거나 불리할 때 우리를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의 협상 상대들을 향해 앙심과 불신에 사로잡히게 한다.

반면 자신의 분별력과 자질만으로 일을 처리하는 자는 훨씬 즐겁게 임한다. 그는 경우에 따라 필요하면 아닌 척하기도 하고 슬쩍 피하기도 하며 마음껏 미루기도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괴로워하거나 아파하지 않으며, 온전히 새로운 계획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항상 고삐를 제 손에 쥐고 간다.

우리의 필요와 소유를 더 확장할수록 그만큼 더 우리는 우리를 운명과 역경의 타격 앞에 드러내놓게 된다. 우리 욕망의 무대는 가장 손쉽고 바로 인접해 있는 즐거움들의 좁은 테두리 속에 제한되고 한정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너무도 선동과 과시를 위해 만들어진 탓에 선함, 절제, 평정심, 지조 같은 고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자질들에 대한 감각을 잃고 말았다. 거친 물체는 느껴지지만 매끄러운 것은 다룰 때 아무런 감각이 없다. 병은 느껴지지만 건강은 거의 혹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진실과 허위는 얼굴도 비슷하고, 태도나 맛, 거동도 닮아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내 생각에 우리는 속임수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데 느슨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 칼에 찔리게 하려고 부러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허공에 섞여 들기를 좋아하니 우리 자신의 존재가 허공과 닮아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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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상상해 본 저 모든 정치 체제의 묘사는 분명 우스꽝스럽고 실행에 옮기기에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최선의 사회 형태와 우리에게 적용할 가장 적절한 규칙을 두고 벌이는 저 거창하고 장황한 논쟁들은 우리 정신을 훈련시키는 데만 적절할 뿐이다. 마치 교양 과목 안에 그 본질이 정신적 자극과 토론에 있고 그것을 떠나서는 어떤 생명도 없는 주제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유의 정치 체제 묘사는 새로운 세계에서라면 적용해 볼 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구속된 인간들, 이러저런 관습에 맞게 형성된 인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생각으로가 아니라 진실로, 뛰어난 최선의 정치 체제는 어느 나라에나 지금 그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체제이다. 그 모습과 본질적 이점은 관습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현재의 상태를 못마땅해한다. 그러나 민주 국가에서 소수의 지배를 혹은 왕정체제에서 다른 종류의 정부를 계속 희구한다는 것은 오류이고 얼빠진 생각이다.

혁신만큼 한 나라를 짓밟아 놓는 것은 없다. 변화란 불의와 학정에 모양새를 갖춰 줄 뿐이다. 어떤 부분이 삐끗 떨어져 나오면 우리는 그것을 받쳐 줄 수 있다.

누구든 자기를 괴롭히는 것을 그저 치워 버리려고만 하는 사람은 생각이 짧은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다음에 꼭 선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또 다른 악이 따라올 수 있으며, 혹은 더 나쁜 악이 올 수도 있으니 카이사르를 살해한 이들에게 닥친 경우가 그러했다.

흔들리는 것은 어느 것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그렇게 커다란 조직의 구조는 수많은 못이 지탱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은 자신의 고색창연함으로 버티고 있기도 하다. 마치 오래된 건물이 시간에 의해 그 기초는 낡아 없어지고 외장도 접착제도 사라졌는데, 그래도 살아남아 자신의 무게로 지탱되는 것처럼 말이다.

삶이라는 것이 길다고 하여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죽음은 짧은 것일수록 더 낫다고 한다. 나는 죽음이라는 상태 앞에서 움츠러들고 있다기보다 죽는 것과 친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단단히 챙겨 입고 폭풍우 속에 따뜻이 안기면, 그것은 순식간에 느낌도 없이 나를 덮쳐 내 눈을 감게 하고 나를 쓸어가 버리리라.

우리를 세상에 들어서게 하는 순간에 지혜로운 여성, 산파가 필요하듯이, 세상에서 나가는 순간에는 훨씬 더 지혜로운 어떤 사람이 꼭 필요하다. 지혜롭고, 나아가 벗인 그런 사람은 이런 순간 도움을 얻기 위해 아주 귀한 값으로 사들여야만 하리라.

기쁨은 확장시켜야 하지만 슬픔은 가능한 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이유 없이 동정을 바라는 사람은 막상 이유가 있을 때는 동정해 줄 수가 없다. 항상 탄식하는 사람은 결코 동정받지 못하니, 너무 자주 불쌍한 사람 노릇을 하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불쌍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데 죽은 자 노릇을 하는 사람은 죽어 가는데 살아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노쇠란 홀로 있기를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나는 과도하리만큼 사교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세상 사람들의 눈길에서 내 거북한 모습을 거두어 들이고, 나 홀로 그것을 품으며, 내 몸을 웅크려서 마치 거북이처럼 나의 껍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나는 사람들에게 들러붙지 않고도 그들을 보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죽음도 내 삶의 평안함과 안락함에 제 몫을 지니고 있으면 싶다. 죽음은 삶의 커다란 한 부분이며, 중차대한 것이니 앞으로 남은 이 부분이 지나온 삶과 너무 다르지 않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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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드높아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결단성에서, 지혜에서, 건강에서, 그리고 또 부유함에서이며, 그것도 절제되고 조심스럽게, 나를 위해 적합한 방식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자기 아래 몸을 굽히게 하는 일이 이렇게 편하고 맥없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온갖 즐거움의 적이다. 그것은 미끄러지는 것이지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자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시대는 뒷걸음질을 쳐야만, 시대와 일치하기보다는 불일치함으로써만, 비슷해지는 것보다는 달라짐으로써만 우리를 개선할 수 있는 때이다. 좋은 본보기들에서 배우는 일이 거의 없으니, 나는 나쁜 본보기들을 통해 배우는데 그런 경우가 일상적이다.

내 생각에 우리 정신의 가장 비옥하고 자연스러운 훈련은 대화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 삶의 다른 어떤 행위보다 더 달콤한 경험이라고 여긴다. 바로 그 때문에 만일 지금 내가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듣고 말하는 능력을 잃느니 시각을 잃는 쪽을 택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 행운과 불운이야말로 두 가지 으뜸가는 힘이다. 인간의 지혜가 행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제 손으로 자기 일의 경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뻐기는 자의 기획은 공허하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우리의 지혜 자체도 또 우리의 궁리도 대부분 우연에 의해 이끌려 간다고 말이다. 나의 의지나 나의 추론은 때로 이렇게 때로 저렇게 흔들리며, 이런 동요는 많은 부분 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우리는 적의 칼에 달려드는 나머지 그의 일격이 원래보다 더 깊이 찌르게 도와주는 수도 있다. 예전에 내가 설전을 벌이는 중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반격이 내가 원했거나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정통으로 상대를 찌른 경우들이 있었다. 나는 그저 [길이를 생각하며] 말의 수를 채웠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무게로 받아들인 것이다.

좋은 노래를 한 곡 듣는다고 즉시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멋진 연설을 듣는다고 전장에서 훌륭한 전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무엇에든지 당신이 거기 손을 대려면 오랜 동안의 한결같은 훈련을 통한 도제 학습을 먼저 해야 하는 법이다.

지혜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고 불만족스럽고 두려운 상태로 만들어 두는 데 반해, 고집스러움과 무모함이 그 주인들을 기쁨과 자신감으로 채우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재앙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문이 막히면 음성과 표정이 바뀌며, 자신을 수습하는 대신 무례하게 화를 냄으로써 그들의 허약함과 초조함을 드러내고 만다. 장난스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약점이라는 비밀스런 심금(心琴)을 집어 뜯는 수가 있는데, [이 마음의 현악기는] 평상시에는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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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나 욕망이 사라지면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가치를 못 느낀다. 지배권과 완전한 소유권을 우리가 갖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무한히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충실성과 지조에 완전히 항복하고 난 뒤라면 이제 그녀들이 얼마간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충실성과 지조라는 덕성은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플라톤은 모든 종류의 사랑에서 용이함과 조급함은 방어하는 쪽에게 금기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렇게 경솔하게 통째로 급격히 항복하는 것은 탐식의 기미로서 여성들이 온갖 기교로 감춰야 하는 것이다. 고르고 절도 있게 베푸는 호의를 통해 여성들은 우리의 욕망을 더 잘 이끌어 가며 자기들의 것은 감추는 것이다. 그녀들은 우리 앞에서 늘 달아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요란하게 활활 타던 불길이 한순간에 죽은 듯 얼어붙고 불씨마저 꺼지는 것이 나는 늘 놀랍다. 이런 욕망은 꽃피는 저 아름다운 젊음에 속해야 마땅한 것이다. 어찌 되는지 보려면 그 욕망을 믿고 당신 안에 있는 이 지칠 줄 모르고 충만하며 한결같고 담대한 열정을 북돋아 보라. 그대는 얼떨떨한 상태로 길을 헤매게 되리라.

이 점에서 내가 남들의 기질로부터 멀어질수록 나는 나 자신의 것에 가까워진다. 결국 이 거래에서 나는 완전히 몰입하지는 않았다. 거기서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나를 잊지는 않았던 것이다. 나는 자연이 준 저 얼마 안 되는 분별력과 신중함을 온전히 보존해, 여자들과 나를 위해 썼다.

사랑을 섬길 때, 철학은 그저 육체의 요구를 채워 주기만 하지 영혼까지 동요시키지는 않는 대상을 택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영혼은 이것을 자기 일로 만들지 말고 그저 육체를 따르고 거들어 주기만 해야 한다고 말이다.

사랑이란 상호 관계와 호응을 필요로 하는 교제이다. 우리가 얻게 되는 다른 쾌락들은 다양한 성격의 보상을 통해 고마움을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똑같은 종류의 화폐로만 지불이 된다.
C
사실 이 즐거움에서는 내가 느끼는 쾌감보다 내가 일으킨 쾌감이 더 달콤하게 내 상상력을 간지럽힌다.
B
그런데 자기는 조금도 주지 않으면서 쾌감을 받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전혀 도량이 없는 자이다.

판결의 권위는 판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받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상급자를 세우는 것은 상급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급자를 위해서이며,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직이든 모든 전문 직업이 그러한 것처럼 그 목적을 자기 너머의 무엇엔가에 둔다. "어떤 기예도 그 자신을 목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키케로)

왕의 덕성은 다른 무엇보다 정의로움에 있다. 그리고 정의로움을 이루는 온갖 부분 중에서도 후덕함에 수반되는 정의야말로 왕들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정의로움은 다른 이를 매개로 행사하는 데 비해 이것만은 특별히 자신들의 직분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공간과 시간의 무한한 광대함을 우리가 명상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쪽으로든 뛰어들고 뻗어나가는 정신은 사방으로 걸어 나가면서 그의 행보를 멈추게 하는 어떤 한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니, 이 무한 속에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존재형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키케로 텍스트의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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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덕이 당신의 불행을 질식시키게 하라. 선한 사람들이 그 원인을 저주하게 만들고, 당신을 모욕한 자로 하여금 자기가 모욕한 자가 당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기만 해도 떨리게 만들라. 그리고 소인배에서 가장 대단한 인물까지 이런 일로 이야기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단어들을 생산하고 이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의미이다. 이 단어들은 더 이상 바람으로 된 것이 아니고, 살과 뼈로 된 것이다. 단어들은 그것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언어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훌륭한 정신이 그것을 다루고 사용함으로써이다. 그것을 쇄신하기보다 활기차고 다채로운 용법으로 그것을 부풀리고 늘리고 구부리면서 말이다. 그들은 언어에 새로운 단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네 단어를 풍요롭게 하며, 그 의미와 용법에 더 큰 무게와 깊은 심도를 부여하고,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을 언어에 부여하되, 신중하고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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